이 세상에 내 맘을 전할 수 있는 단 한 사람. 누굴까?
내 딸이다.
셋밖에 안 되는 진실하고 진정한 친구들은 소식이 안 닿아 전할 수 없고 엄마나 네 할머니나 다른 친구들은 감정의 공유를 진실하게 할 수 없어 오로지 네게만 이 아빠의 맘을 전한다. 네 아빠의 눈물을 받아줄 수 있을 정도로 장성한 딸이기에 오늘은 이 아빠의 가슴 깊이 지니고 있는 그 슬프게 응어리진 감정의 씨앗을 따낼 작정으로 이렇게 너에게 위로를 받을 목적으로 편지를 쓴다.
맥주병이 큰 게 보이고 방울토마토가 몇 개 있고 썰어놓은 오이가 제법 보이는 밤 오늘은 아빠가 가슴에 묻어 둔 눈물을 바보처럼 그냥 꺼내고 만 날이다. 봄날이다. 너를 목마 태우고 우장산 공원길을 노을이 만개 아름다운 잘 포장된 길을 걸으면서 속삭이던 말이 기억나는지 모르겠구나.
“내 딸, 저기 하늘 너무 이뿌지? 봐, 봐, 근데 저긴 시골의 하늘보다 조금 더 안 이뿌다. 시골은 노을이 상고 더 이뿌다. 마치 내 딸 얼굴 같이. 우리 딸 눈동자 같이.”
그래서 네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일곱 살 때 네 동생과 함께 아빠가 태어났던 고향인 남해로 너희 둘을 내려 보냈다. 네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보냈더니 훗날 그러니까 너희들이 남해 생활을 일 년 조금 못 되게 보내고 돌아온 날 이 아빠한테 엄마보고 무슨 말을 맨 처음으로 남겼는지 아니?
“엄마 서울에도 대동경운기 있어요?”
너희들의 두 얼굴은 까맣게 타 꼭 인도네시아 좀 후진국 아이들의 얼굴처럼 자신 있고 생기 있는 천진난만한 모습이었다. 네 할머니가 사랑을 주었든 안 주었든 그것은 상관 않고 오로지 기분 좋은 느낌은 이 아빠가 어렸을 때 보았던 하늘과 땅과 바다와 들과 길을 너희들이 보았다는 것이다. 이 아빤 그것으로 만족했다. 네 친구들이 산수와 영어를 그리고 국어를 학원에서 과외 선생님한테 배워 너희들보다 수십 배 뛰어나게 잘해도 이 아빤 그들보다 너희들을 더 멋지게 키워낼 자신이 있었다. 웬 줄 아니?
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딸과 아들아. 이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내 딸 아들아!
이제 아빠가 그 이유를 설명해 줄게. 너희들이 벌써 자라 딸은 스물여섯이 되었고 아들은 넷이 되었으니까 이제 그것을 이야기해줄 때가 된 것 같다.
바로 결론부터 말할 게.
자연은 이 아빠가 가르쳐 줄 수 없는 슬기와 지혜를 가르쳐 줄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그랬다. 파란 하늘이 그렇고 쪽빛 푸른 바다가 그렇고 그 더없이 푸르고 파란 산 숲들이 그렇고 무한히 펼쳐진 들판이 있어 너희 둘을 그 곳에 보냈다.
이 아빠가 살아 느꼈던 그 감정의 신선하고 참신하고 풍성한 자연이 준 느낌을 너희들도 가져보라고 아빠는 너희들이 원하지 않았던 할머니의 품으로 냉정하게 보내었다.
새까맣게 탄 원시인들 같은 몰골을 해가지고 다시 찾아왔던 너희들의 얼굴이 오롯이 기억나는 날. 이 아빠는 너희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아니?
그래 너희들 유치원에서 같이 다녔던 동무들이 너희들이 시골로 간 동안 학원에서 배웠던 그 산수와 영어와 여타 다른 과목들을 배우면서 가지게 되었던 소양보다 천 배 만 배 억만 배보다 더 값진 깊이의 소양을 심어주었다고 자신했다. 이제 그 이유를 말할 게. 지금 내 딸이 아들이 가진 심성의 깊이를 보라.
아빠를 알고 엄마를 알고 대하는 너희들의 마음. 물론 다 컸지만 어리광으로 아직도 어린이처럼 행동하려고 하는 그 앙큼하고 예쁜 짓. 어디서 비롯했는지 아니? 너희들은 알지 못하지만 그것은 소나무의 푸른 수없는 이파리들이 햇빛을 타고 때론 바람을 타고 때론 비를 타고 같이 어우러져 살면서 성숙한 물성. 다른 말로 자연의 성질. 그것 때문이란다. 옥수수 이파리가 바람에 맞아 심하게 흔들리고 비바람이 들이쳐 그것들이 푹 고개를 수그리고 때론 햇살에 푸르게 웃으면서 살아내는 존재의 더 야물게 영글어지는 성질. 그것은 다른 말로 곧 자연의 성품이란다. 그것을 너희들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아빠는 보내지 말았으면 하는 너희들의 애원에 찬 눈망울을 보면서도 부모가 가진 그저 같이 있으면 잘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을 따내고 과감하게 보내게 되었다. 너희 둘은 지금 못 느끼고 있겠지만 네 친구들과 다른 것이 확연히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라. 그것은 무엇일까? 함부로 친구들을 무시하지 않고 또 함부로 선배들을 대하지 않고 또 맘대로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생각 없는 짓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물론 그 후에 자그마한 눈감아 줄 수 있는 실수들이야 왜 없겠냐만 그것보다 더 너희들이 가진 장점들이 더 많기에 이 아빤 그저 흡족할 뿐이란다.
자연이 주는 것! 바람이 태양이 들판의 곡식을 만들어내는 나무들이 그리고 밤에 별들이 낮에 낮달이 주는 것은 있지 뭘까? 사람의 감정에게 무엇을 심어줄까?
그것은 돈을 가지고 이 세상을 지배하려고 애쓰는 돈 많은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결코 지닐 수 없는 그것은 그지 바로 두 글자. 사.랑.이다.
도시인들이 잃어버리고 사는 것 무얼까? 저를 키워주신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홀로 시골에 계셔도 단지 명절에나 찾아가 뵈면 족하지 하는 심정 그 마음 없는 정서를 나타내는 두 글자. 그래 내 딸 아들아 바로 사.랑.이다.
오늘날 우리들은 자본 즉 돈에 질식되어 사랑을 잃어버리고 사는 생명체 다른 말로 뭘까? 바로 동물이고 짐승이다. 이미 사람의 도리는 그만두고 인간의 도리마저 상실하고 살아가는 이 미천한 세상의 미물들. 맘속에 사랑을 잃어버리면 그는 그 순간부터 짐승이 되는 것이다.
사랑은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엄마의 사랑(?) 그것은 제 배를 아파 나았다는 본능의 보호본성에서 비롯되는 감정 그것은 사슴도 가지고 있고 코끼리도 가지고 있고 심지어 우리들이 툭하면 잡아먹는 돼지들까지도 갖고 있는 인간의 썩 달갑지 않은 감정일 따름이다.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딸 아들아! 이 아빠도 노력하겠지만 항상 노력하고 노력하여 제 자신에게 마주하고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시작하여 이웃 그리고 나아가 사회인들까지 진심으로 내가 당신을 존중하고 있어 요 하는 만개 애정에 찬 감정을 성실히 자주 보여주어야 한단 뜻이다. 사람은 헤아리지 않기로 하고 인간이란 동물은 제게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앞에 잘 해준 것은 금방 다 까먹어버리고 네가 나한테 그랬단 말이지 하는 앵한 못마땅한 감정 그것을 가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의 천한 미천한 그것일 뿐이다.
이제 하품이 길게 터져 나오는 시간 이것만 말하고 마치자.
사람은 저와 맞닥뜨린 사람에게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내밀 수 있는 존재란다.
그것은 서로가 가진 감정의 느낌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란다.
자, 이제 내일을 보자.
오늘보다 더 나아질 내일에선 이렇게 해야 한다. 내 딸 아들아!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오늘 참 날씨 좋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고.
먼저 전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잘 지내지요? 하고.
근데 인간들은 어떤지 아니? 딸아.
자기보다 잘하고 자기보다 더 노력하고 자기보다 조금 더 잘하는 일이 있으면 그가 누구든 가리지 않고 시샘을 하고 칭찬이란 단 한마디도 내밀 줄 모르는 그런 천박한 인간이란다.
즉 생각 없는 돌대가리 인간이란 말이다.
우리들은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사람은 먼저 배려하고 손을 내밀고 먼저 인사를 하는 깜냥이 깊은 인간에서 한층 더 진화한 생물이란다.
그것은 오로지 깊이 사유하는 데에서 그 반대급부로 찾아온 사람들의 사심 없는 마음 즉 사랑이란 것이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만족시킬 수 있는 맘. 사랑.
내일은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밤이 깊어가는 데에서 씀. 아빠가.
항상 노력하여 너희들에게 작은 감동이라도 주려고 애쓰는 부족한 아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