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인천호지곡(月印千戶之曲)
일기예보는 전통적으로 농사나 고기잡이 같은 1차 산업 종사자들에게 민감한 정보였다. 산업 현장에서는 토목이나 건설 노동 현장도 날씨가 일거리 변수가 되었다. 일반인들은 그냥 스칠 수 있겠으나 장터 노점상들에게도 날씨는 그날 수익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지 싶다. 날씨는 김밥을 말아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와도 불가분 관계다. 요즘은 주말 날씨가 골프장의 예약률과 연관된다.
전 국민적 날씨 정보 관심사는 한 해 가운데 몇 차례 된다. 먼저 새해 첫날 해돋이를 제대로 볼 수 있는지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다. 밀레니엄 세기 2000년이 시작 되던 그해부터 해돋이 명소는 사람들이 들끓었다. 일출을 볼 수 있는 바닷가 펜션이나 모텔은 섣달그믐이면 예약은 진작 동이 날 것이다. 생활권에서 먼 곳까지 차를 몰아 해맞이를 떠나는 사람들로 교통이 혼잡할 정도다.
날씨가 관심을 받는 날이 크리스마스이브다. 난 기독교 문화와 거리가 멀어 성당이나 교회 의식은 잘 모른다. 요즘은 시들해졌지만 성탄절을 앞둔 12월 초 시내 거리에선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러 퍼졌다. 교회 첨탑에선 알전구 조명등이 켜지고 크리스마스 추리가 세워졌다. 많은 청춘남녀는 크리스마스이브에 휜 눈이 펑펑 내리기를 소망한다. 순백의 그 눈이 무얼 의미하는지 궁금하다.
날씨 정보가 궁금한 것은 보름달을 볼 수 있는가 여부다. 추석은 우리 민족 최대 명절의 하나다. 이날 밤 한가위 보름달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다. 동산에 휘영청 솟아오르는 보름달을 보고 저마다 마음에 품은 소원을 빌게 된다. 그리고 또 한 번 관심을 끄는 달이 정월대보름이다. 정월 대보름은 민간에서 여려 풍습이 있다. 재래시장이나 할인매장에도 대보름이면 활기를 띨 정도다.
올해 대보름에는 정월 열나흘부터 방송 기상게스트는 날씨가 흐려 달은 볼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제주도와 남해안으로는 비가 살짝 내릴 것이라고 했다. 오곡밥에 묵나물로 반찬을 하고 부름을 깨물고 귀밝이술을 드는 것은 집안의 모습이다. 정월 대보름 풍습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달집태우기다. 달집태우기는 시골에서 뿐만 아니라 일부 도심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열나흘 창원 근교 들길을 걸어보려고 길을 나섰더니 외곽으로 빠지는 도계중학교 곁 공한지에는 우뚝한 달집을 지어 놓았더랬다. 대산 들녘을 걷고 가술에서 창원으로 복귀하는 마을버스를 기다렸더니 대산초등학교 곁 보리논에도 어디선가 청솔과 대나무를 잘라와 커다란 달집을 지어 놓은 것을 보았다. 행사를 주관한 지역사회 단체에선 달집 주변 천막을 세 동 지어 의자를 준비했다.
동창원 인터체인지 부근 무성마을이 있다. 마을 가운데 아파트가 한 동 있긴 하지만 시골이다. 그 마을에서도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달집을 지어 달이 솟아오르는 시각에 맞추어 달집을 태웠다. 몇 해 전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하루 전 달집을 완성해 대보름 저녁 불태우려 했다. 그런데 짓궂은 누군가 열나흘 그 달집에 불을 질려 소방차가 출동하기도 했다. 얼마나 허망했을까?
주남저수지에서 본포 방향으로 가면 봉강이라는 마을이 나온다. 그곳에선 삼운청년회 주관 성대한 정월대보름 행사가 열린다. 달집은 삼거리 논에다 하루 전 열나흘 완성해 놓고 보름날 낮부터 축제를 펼친다. 너른 창고 안에 식탁을 마련하고 지역민이 모두 모여 뜨끈한 쇠고기국밥으로 점심을 들고 돼지수육과 과일에다 술을 권했다. 어느 해 나는 과객이 되어 대접을 잘 받은 적 있다.
도심서도 정월대보름은 맥을 잇고 있다. 재래시장에선 정월대보름에 알록달록한 고깔모를 쓴 사물놀이패가 지신밟기를 했다. 화재를 예방할 수 있는 선에서 달집태우기 축제가 펼쳐진다. 앞서 언급한 도계동 달집태우기는 정월대보름이면 달집 주변에서 낮부터 풍물장터와 노래자랑이 열렸다. 올해는 아쉽게도 구름이 끼어 달을 볼 수 없다. 그렇지만 가슴으로나마 밝은 달이 솟았으면 한다. 16.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