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삶] 칼을 쥔 자

[성선경]

[시로 읽는 삶] 칼을 쥔 자
                                                                                  조 성 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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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7/03/29 미주판 13면    기사입력 2017/03/2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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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바닥은 늘 염전鹽田이다/발자국마다 고이는 시간의 간수/얼금뱅이 곰보 왕소금/헉헉 나는 목마른 낙타같이 숨이 차/사막의 모래등 같은 혹 떼어버리고 싶지만/쌍붕같이 짊어지고 가야 할 내 생애의 소금가마니/달마의 눈거풀같이 획 떼어 던져버리지 못한다/끝끝내 던져버리지 못한다, 그래서/저 소금장수의 짚신같이 늘 간기가 흐르는/내 삶의 바닥은 늘 염전이다

-성선경 시인의 '소금밭-목욕탕 가는 남자' 전문



삶의 바닥은 늘 염전이더라는 시인의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오륙십 대이거나 그 이상의 연배에 있는 분들이라면 특별한 몇을 빼고는 삶이 쌍봉낙타의 봇짐처럼 무거움이었다는 걸 동감하고도 남는다.

늘 염전인, 염전에서 간수처럼 쓴 시절을 살다가 어느 날 노년이라는 시기를 맞게 된다. 아름다운 혹은 멋진 노후가 되리라는 기대와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직면한 현실적 노년이 기대와는 너무 다를 때 그 난감함은 크다.

더군다나 일밖에 모르던 남자들의 노년, 젊어서 가족을 부양한 헌신의 대가로 맘 편한 노년이 보장되리라 믿던 남자들에게 불어오는 시대적 이상기류는 견디기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벌써 오래 전, 아마 이십여 년 전이었지 싶다. 일본에서 황혼이혼이 급증했고 나는 그 현상에 관해 어느 글에선가 언급한 적이 있는데 지금 한국사회가 그 전철을 밟고 있다. 황혼이혼이 최근 이십여 년 사이 2배나 증가했다고 한다. 선진화의 진행과정이란 게 대체로 비슷하다. 선진화가 유발하는 사회현상도 어느 나라나 비슷한 과정을 거치 게 된다.

황혼이혼이란 결혼생활 이십 년 이상 된, 오십 세 이후인 사람들의 이혼을 말한다. 전체 이혼 건수 중 세 쌍 중 한 쌍은 황혼이혼이라는 통계가 있다. 이혼을 원하는 쪽은 여자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이혼의 원인도 다양한데 성격차이와 경제 문제 그리고 상대의 불륜이나 폭력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아이들 다 키워놓고 멋진 노년을 기대하던 차에 느닷없이 배우자로부터 이혼하자는 제의를 받는다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겠다. 꼭 이혼까지는 아니더라도 졸혼(이혼은 아니지만 서로의 자유로움을 위해 각자 사는 방식)이라는 묘한 삶의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여자들이 이혼을 원하는 경우는 유교적 가치관이 잔재하는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존재성을 박탈당했다는 피해의식이 강하고 늦게라도 자신만을 위해 살아보고 싶은 욕구가 크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선진화 과정을 앞서 겪은 미국 땅에 사는 동포들의 사정은 어떤지 모르겠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고 살던 남자들에겐 위기다. 안전지대가 없어진 것 같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승해 저절로 결혼생활이 유지될 수 있다는 안일함은 이제 금물이다. 아내가 젊었을 때처럼 노후에도 남편을 뒷바라지하며 헌신적으로 곁에 있어줄 거라는 생각도 버려야 할 것 같다. 아내들에게 인내를 요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소금가마니를 메고 낑낑대며 살아온 세월의 보상이 겨우 이혼이어야 한다면 인생이 좀 비참해진다. 날개 다 꺾여 날지도 못하는 새를 일방적으로 내친다면 게임의 법칙으로도 페어플레이는 아닌 것 같다.

남편들은 자기주장만을, 살아온 방식만을 고집하지 말고 아내에게 시선을 맞추자. 가사 일을 돕는 것을 기죽는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따뜻한 역할분담으로 생각해 보자. 아내들은 늘 염전이던 삶의 바닥을 걸어온 사람이 남편임을 잊지 말자. 노고를 치하하고 격려해 보자. 칼을 쥔 쪽이 조금은 더 품이 커야 할 터인데 늘그막엔 칼을 쥔 쪽이 아무래도 여자 아니겠냐고 사회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