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20 산행 진도군 이순신 명량대첩 승전광장
◈산 행 지: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산2-83
◈산행 일자: 2016년 8월 20일(토)
◈참가 인원: 산사나이
◈날 씨: 등반에는 매우 좋은 날씨
◈산행 코스: 광주상무지구 호대 (도14:00출14:00)~113.7km~이충무공 승전공원(도15:20출16:40)~113.7km~광주상무지구 호대(도18:00출18:00)
◈산행시간 : 14:00~18:00(04시간00분 휴식포함)
◈산행거리 : 입산113.7km (가는1시간20분) 하산113.7km (오는1시간20분) 총산행227.4km
◈소요경비 : 주유비 23L/26,100원 통행료:6,800원 총경비32,900원
진도타워
위치: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만금길 112-41
진도타워는 이순신 장군이 대승을 거둔 명량해협이 한눈에 조망되는 진도의 랜드마크이다. 예전에는 이곳에 녹진전망대가 세워져 있었으나, 허름한 전망대를 허물고 진도타워가 세워지면서 진도의 랜드마크로 탈바꿈하였다. 진도타워는 높이 60m에 지하 1층, 지상 7층의 규모로 2013년 11월에 개관하였다. 타워의 1층에는 안내데스크와 티켓부스가 있고, 진도의 특산물을 구입할 수 있는 특산물 판매장이 마련되어 있다. 2층은 전시관으로 진도군 역사관, 옛 사진관, 명량대첩 승전관 등의 전시실을 돌아보며 관람할 수 있다. 3층부터 5층까지는 카페테리아와 레스토랑, 다목적실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7층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진도대교와 울돌목 해협, 우수영 관광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야외에는 이순신 장군의 어록비와 당시 해전의 장면을 연출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이충무공 소개
이순신 - 李舜臣 (1545 ~ 1598)
1576년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지위가 낮은 벼슬만을 지내다가, 1591년 유성룡의 추천으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어 군비 확충에 힘썼다.
1576년 무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지위가 낮은 벼슬만을 지내다가, 1591년 유성룡의 추천으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임명되어 군비 확충에 힘썼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에서 승리하고, 사천에서 거북선을 처음 사용하여 당포, 한산도에서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남해안 일대의 적의 수군을 완전히 격파하고 한산도를 본영으로 삼아 최초의 삼도 수군통제사가 되었다.
1597년 원균의 모함으로 사형을 받게 되었으나 우의정 정탁의 변호로 도원수 권율의 밑에서 백의종군하였다. 정유재란 때 원균이 참패하자 삼도 수군통제사에 다시 임명되어, 명량에서 133척의 적군과 대결 31척을 부수었다. 다음해 철수하는 적선 500여 척이 노량에 집결하자 명나라 제독 진인의 수군과 연합작전을 펴, 적군을 기습하여 싸우던 중 전사하였다.
연보
1545 인종원년
음력 3일 8일 서울 건천동에서 출생
1576 선조 9년(32세)
무과,병과 합격
12월 함경도 동구 비보권관(종 9품)
1579 선조 12년(35세)
훈련원 봉사(종 8품)
1580 선조 13년(36세)
7월 발포수군만호
1583 선조 16년(39세)
10월 건원보 권관 11월 훈련원 참군
1586 선조 22년(42세)
1월 사복시 주부(종6품)
1589 선조 22년(45세)
12월 정읍 현감
1592 선조 25년(48세)
3월 거북선 진수
4월 임진왜란 발발
5월 옥포, 합포, 적진포 해전에서 왜선 54척 격파
6월 사천 당포, 당항포, 율포 해전에서 왜선 90척 격파
7월 견내량, 안골포 해전에서 왜선 60척 격파
9월 부산포 해전에서 왜선 135척 격파
1593 선조 26년(49세)
8월 삼도 수군통제사
1594 선조 27년(50세)
3월 당항포 해전에서 왜선 31척 격파
1597 선조 30년(53세)
3월 원균의 모함과 당쟁으로 투옥후 백의종군
9월 명량해전에서 12척으로 왜선 133척과 싸워 31척 격파
1598 선조 31년(54세)
노량해전에서 적선 200척 격파 후 총탄에 맞아 전사함
1643 인조 21년
전사한지 45년 후 "충무"의 시호를 받음
주요해전
부산포해전
시기 :1592. 09. 01세력 :아군 166척, 적군 470여척전과 :적선 128척 격침. 아군 피해 무의의 :왜선 집결지인 부산포 공격을 위해 고된 훈련 후 야간 이동 실시. 장사진(종렬진)편성하여 전선 격파를 위한 치열한 장기 포화전. 사후대책 고려 및 적 후퇴로를 개방하기 위하여 일단 귀향. 수륙공격의 필요성에 대한 장계 올림.
옥포해전
시기 :1592. 05. 07세력 :아군 91척, 적군 50여척전과 :적선 26척 격침. 아군 피해 무의의 :최초의 해전. 무저항의 안심속에 기습공격으로 승리.진두지휘 및 첫 승리로 사기 앙양.
사천해전
시기 :1592. 05. 29세력 :아군 26척, 적군 13척전과 :적선 13척 격침. 아군 피해 무의의 :최윈X갠?? ??ⓒ???곌?¥). 지형, 조수를 이용 한 유인작전. 개인적인 공훈보다는 전체적인 성공 독려(이순신 등 일부 부상)
당포해전
시기 :1592. 06. 02세력 :아군 26척, 적군 21척전과 :적선 21척 격침. 아군 피해 무의의 :적정과 지형 관찰을 통한 정보 획득. 경계의 원칙실용(탐망선 외양 배치로 기습 대비 및 주력대는 거북선을 선두로 공격 개시). 화력 집중위 원칙 실용(거북선으로 적 기함인 누각대선에 화력 집중 공격)
당항포 1차해전
시기 :1592. 06. 05세력 :아군 51척, 적군 26척전과 :적선 26척 격침. 아군 피해 무의의 :전선 3척 포구내 지형 정찰 및 전선 4척을 도주 왜선 격멸 및 왜군 지원 함선 대비 복병 으로 배치. 주민보호 및 왜군 육상 도피 방지를 위한 후퇴 및 함대를 좌우 분산 이동 후 협격하여 섬멸
안골포해전
시기 :1592. 07. 10세력 :아군 91척, 적군 42척전과 :적선 42척 격침. 아군 피해 무의의 :함대를 외양배치 및 주력 및 후속으로 3분 유인작전 미반응으로 조 편성하여 포내로 번갈아가며 연쇄공격. 모든 화력을 왜군 기함인 층각선에 집중. 지리적으로는 불리한 여건이었으나 작전 지휘의 승리
한산해전
시기 :1592. 07. 08세력 :아군 56척, 적군 73척전과 :왜선 47척 격침. 12척 나포의의 :양측 전력 대부분이 투입된 대해전. 지형을 고려하여 판옥선 5~6척으로 유인,전술적 후퇴 후 적전에서 대선회하여 학익진 편성 공격. 적 주력선 공격으로 명령계통 혼란 초래
웅포해전
시기 :1593. 03. 03 ~ 04, 03세력 :아군 89척, 적군 40척전과 :적군 100명 사살, 아군 통선 2척전복의의 :육군 요청 거절로 자체 병력 이용. 제포 및 안골포 좌우 상륙 공격 및 경쾌선 15척으로 주력대를 편성하여 돌진. 육전에만 사용되었던 비격진천뢰를 전선위에 장착하여 활용. 백성들의 농사 및 전력 정비차 귀향.
당항포 2차해전
시기 :1594. 03. 04 ~ 04, 03세력 :아군 124척, 적군 50여척전과 :적선 31척 격침. 아군 피해 무의의 :불의사태에 대비한 예비대 편성. 경쾌선 31척 선발하여 은밀 기동 공격. 주력대의 퇴로를 차단 및 해상의 주요 수로를 장악하여 함대의 위용 과시. 이순신의 삼도수군통제사 임명으로 명령계통 일원화
장문포해전
시기 :1594. 09. 29 ~ 10, 04세력 :아군 50여척, 적군 117척전과 :적선 2척 격침. 아군 피해 무의의 :초군 수백명을 산을 통하여 공격토록 함. 선봉선 파견하여 해전을 유도하고 주력 중군은 후속 배치. 육군의 무능 및 왜군의 응전 회피와 방어 위주 전술로 전과 미미. 금토패문 답서 후 작전 강행
칠천량해전
시기 :1596. 07. 16 ~ 10, 04세력 :아군 삼도수군 268척전과 :조선 수군 거의 궤멸의의 :7년 임진왜란 중 조선 수군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패를 당한 해전. 원균의 음주 태만으로 배설의 안전구역 이동 건의 무시.
이억기 등 지휘관 및 대부분의 군사 전사. 전선 12척만 탈출(원균 사망)
명량해전
시기 :1597. 09. 16 ~ 10, 04세력 :아군 12척, 적군 330여척전과 :적선 31척 격침.의의 :일자진(횡열진)편성 공격. 주변 해역의 지형 및 시간대별 조류 변동을 고려하여 출전 시간 조정. 죽음을 불사한 임전무퇴의 정신으로 정유재란의 전환점 마련
노량해전
시기 :1598. 11. 18 ~ 11, 19세력 :아군 83척(명나라 63척 포함), 적군 200여척전과 :적선 200여척 격침. 이순신 전사의의 :이순신 전사. 전 함대를 좌우로 나누고 주위 섬에 복병 배치 후 야간 기습 공격. 퇴로가 차단된 왜선들의 최후 발악으로 근접전의 일대 혼전
주요작품
난중일기(亂中日記) 난중일기(亂中日記)는 충무공(1545~1598)께서 임진왜란 7년 동안 싸움터에서 직접 쓰신 것으로 공의 성품이나 국정에 대한 솔직한 심정, 군사에 대한 비밀계책, 친지.부하.내외요인들과 내왕한 내용, 부하들에 대한 상벌 등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어 임진왜란 당시 정치. 군사에 관한 전체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진중음(陣中吟) 1님의 수레 서쪽으로 멀리 가시고 왕자를 북쪽에서 위태한 몸 나라를 근심하는 외로운 신하 장수들은 공로를 세울 때로다. 바다에 맹세하니 용이 느끼고 산에 맹세함에 초목이 아네. 이 원수 모조리 무찌른다면 내 한 몸 이제 죽다 사양하리오. 진중음(陣中吟) 2삼백년 누려 온 우리 나라가 하루 저녁 급해질 줄 어찌 아리오. 배에 올라 돛대 치며 맹세하던 날. 칼 뽑아 천산 위에 우뚝 섰네. 놈들의 운명이 어찌 오래랴 적군의 정세도 짐작하거니 슬프다 시 구절을 읊어 보는 것 글을 즐겨 하는 것은 아닌 거라네. 진중음(陣中吟) 3한 바다에 가을 바람 서늘한 밤 하염없이 홀로 앉아 생각하노니 어느 께나 이 나라 평안하리오. 지금은 큰 난리를 겪고 있다네. 공적은 사람마다 낮취 보련만 이름은 부질없이 세상이 아네. 변방의 근심을 평정한 뒤엔 도연명 귀거래사 나도 읊으리.
무제(無題) 1병서도 못 읽고서 반생을 지났기로 위대한 때 연마는 충성 바칠 길이 없네. 지난 날엔 큰 갓 쓰고 글 읽기 글씨 쓰기 오늘은 큰 칼 들고 싸움터로 달리노니, 마음엔 저녁 연기 눈물이 어리우고 진중엔 새벽 호각 마음이 상하누나. 개선가 부르는 날 산으로 가기 바쁘려든 어찌타 연연산(燕然山)에 이름을 새기오리. 무제(無題) 2 아득하다 북쪽 소식 들을 길 없네 외론 신하 때 못한 것 한이로구나. 소매 속엔 적을 꺾을 병법 있건만 가슴 속엔 백성 건질 방책이 없네. 천지는 캄캄한데 서리 엉키고 산과 바다 비린 피가 티끌 적시네. 말을 풀어 화양으로 돌려 보낸 뒤 복건쓴 처사되어 살아가리라. 한산섬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戍樓)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伽)는 남의 애를 끊나니. 제사망군졸문(祭祀亡軍卒文)윗 사람을 따르고 상관을 섬겨 너희들은 직책을 다 하였건만 부하를 위로하고 사랑하는 일 나는 그런 덕이 모자랐도다. 그대 혼들을 한자리에 부르노니 여기에 차린 제물 받으오시라.
주요작품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 (誓海漁龍動 盟山草木知 )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
1934년 청주에서 간행된 「이충무공 전서」중 15권에 실린 “진중음” 으로 임금의 피난 소식을 접한 후 나라의 앞날을 근심하면서 충신의 굳센 의지와 장부의 기개 및 충혼을 표현한 말씀으로 원문은, “임금은 서쪽으로 멀리 가시고, 왕자님은 북쪽에서 위태한 오늘, 외로운 신하가 나라를 걱정하는 날이여! 이제 장사들은 공을 세울 때로다. 바다에 맹세하니 어룡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 이 원수 왜적을 모조리 무찌른다면, 비록 내 한 뭄 죽을지라도 사양치 않으리라”이다.
물령망동 정중여산(勿令妄動 靜重如山)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 침착하게 태산같이 무거이 행동하라.
1592년 5월 7일. 임진왜란 중 처음으로 출전한 옥포해전을 앞두고, 경상좌우도 수군과 육군의 패배 소식으로 긴장하고 당황한 군사들에게 공격에 대한 세부사항을 지시 후 공포심과 전쟁경험 부족을 극복하고 전장에서의 여유와 냉철함을 가질 수 있도록 한 말씀이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則生 必生則死)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왜선 133척을 전선 12척으로 싸워야 하는 명량해전을 앞두고, 9월 15일 전투력의 절대 열세를 정신력으로 극복하기 위해, 장수들의 전투의지 분발과 ‘결사구국’의 각오를 나타낸 말씀이다. 원문은,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하였고, 또 ‘한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명도 두렵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오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 너희 장수들은 살려는 생각을 하지 마라. 명령을 조금이라도 어긴다면 군법으로 처단할 것이다”이다.
차수약제 사즉무감(此讐若除 死卽無憾)
이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임진왜란 중 최후의 결전인 노량해전을 앞둔 1598년 11월 18일 밤 12시가 지날 무렵, 함상에서 손을 씻고 무릎을 끓어 향불을 피우면서, 겨레의 생명과 나라의 보존을 위한 최후의 염원을 담아, 하늘에 빌었던 내용으로 충무공의 “결사보국” 정신의 말씀이다.
전방급 신물언아사(戰方急 愼勿言我死)
싸움이 한창 급하다.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임진왜란 중 최후의 결전인 노량해전을 앞둔 1598년 11월 18일 밤 12시가 지날 무렵, 함상에서 손을 씻고 무릎을 끓어 향불을 피우면서, 겨레의 생명과 나라의 보존을 위한 최후의 염원을 담아, 하늘에 빌었던 내용으로 충무공의 “결사보국” 정신의 말씀이다.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
이제 제거는 아직도 전선 십이척이 있으니, ...
칠천량해전 이후 공께서 다시 통제사 재임명 교서를 받고 수군을 재정비한 결과 전선 12척에 군사 120명이라. “수군을폐하고 육전에 참가하라”는 임금의 밀지에 수군을 없애서는 안된다고 조정에 강력히 건의한 내용이다. 원문은, “이제 제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있으니, 죽을 힘을 다해 항거해 싸우면 오히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비록 전선은 적지만 제가 죽지 않는 한 적이 감히 우리를 업신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이다. 이는 수군의 존속과 가치와 그 효용론을 강력히 주장한 공의 뛰어난 전략적 식견의 발언이라 하겠다.
송사(讀宋史)
어허! 이 때가 어느 때인데 저 강은 가려는가! 가면 또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무릇 신하된 자로서 임금을 섬김에는 죽음이 있을 뿐이요, 다른 길은 없다. 그때야말로 종사의 위태함이 마치 터럭 한 가닥으로 천근을 달아 올림과 같아 신하된 자로서는 몸을 버려 나라의 은혜를 갚을 때 인데, 어서 간다는 이 말은 마음에 생각도 못할 말 이거늘 하물며 어찌 입 밖으로 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면 내가 강이라면 나는 어떻게 한다 할까. 몸을 헐어 피로써 울며 간담을 열어 젖히고서 사세가 여기까지 왔으니 화친할 수 없음을 밝혀 말할 것이요, 아무리 말하여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면 거기 이어 죽을 것이오, 또 그렇지 못한다면 짐짓 화친하려는 계획을 따라 몸을 그 속에 던져 온갖 일에 낱낱이 꾸려가며 죽음 속에서 살 길을 구하면 혹시 만에 하나라도 나라를 건질 도리가 있게 될 것이다
즐거운 산행을 함께한
산악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