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북한을 사랑한다.
분단의 아픔을 안고 있는 동족이라는 이유 외 에도 나에게는 특별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북한은 나의 마음의 고 향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조상대대로 삶의 터전은 바로 황해도 장연군 금수리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친북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렇게 따지면 한국에서 친북주의자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북한을 남의 나라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대한민국 헌 법도 한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부속도서라고 명시하지 않았는가. 북한 도 우리의 땅이고 북한 주민도 한국민인데 어찌 한국인들이 친북주의 자이기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안전 만큼 북한 주민의 안전도 생각하고 우리가 잘 사는 만큼 북한 주민도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친북'의 의미가 요즈음 이상하게 변색하는 것 같아 매우 가 슴이 아프다.
소위 반미 친북세력의 '친북'이 그것이다.
그들의 친북 이 북한 김정일 정권을 옹호하는 것인지 북한 주민에 대한 것인지 불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친북주의자이지만 김정일 정권에는 반대한다.
오히려 친북 이기 때문에 김정일 정권을 더욱 미워한다.
왜 그런가. 내가 사랑하 는 북한 주민들에게 고통과 굶주림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삼촌 고모 조카들이 황해도 어느 곳에선가 땔감이 없어서 추위에 떨 고 양식이 없어서 배를 주리면서도 김정일에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기가 막힌다.
도대체 김정일 정권이 무엇인가. 김정일은 우선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수장이 될 자격이 없다.
'인민'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인민에 대한 애정이 있다면 남북경제협력의 대가로 받은 돈으 로 기아문제는 해결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체제유지용 행사와 군비증강에 쓸 돈은 있어도 인민을 배불리하는 데 쓸 돈은 없는 듯하 다.
오히려 그는 국제앰네스티가 지적했듯이 기아해결을 위한 식량을 협상의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 북한에 필요한 것은 '국민영양 증강'이지 결코 '군비증강'이 아니다.
김정일 정권은 또한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독재정권이다.
미 국도 아닌 유럽연합 (EU)이 유엔 인권위에 북한 인권규탄 결의안을 상정했다.
스콧 카펜터 미국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북한을 "세 계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체제 중의 하나로 최대 규모의 감옥체제"라 고 묘사했다.
재판 없는 체포와 구금, 20만명 이상에 달한다는 정치 범 수용소, 최대 3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는 탈북자 문제 등 북 한의 인권상황은 한국의 국가인권위 김창국 위원장만 모를 뿐 전세계 가 다 아는 상식이다.
셋째 김정일 정권은 동족의 안전을 위협하는 집단이다.
93년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한 일은 누구나 다 기억할 것이다.
이제 또 다시 핵무기 개발로 위협한다.
남한의 감상적 친북주의자들이 북한이 핵 개발해 놓으면 통일 후 우리 것이 되지 않느냐, 북한이 남한을 상 대로 핵을 쓰겠는냐 등등 말의 유희만을 즐기고 있는 사이 휴전선에 서 북한의 총부리는 여전히 한국군을 상대로 겨누어져 있다.
한국이 주적을 명시하는 문제로 국방백서도 내지 못하고 있는 동안 북한은 결코 적화통일 노선을 수정한 일이 없다.
올해 비무장 지대 북쪽에 '통일 대통령'이란 선전문구가 새로 등장했 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통일 대통령이 되라는 소리가 아니라 김정일 이 적화통일 과업을 완수하겠다는 말이다.
나는 평화를 원한다.
왜냐하면 전쟁은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 에게도 커다란 고통이고 희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화는 구걸한다 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 북한의 인권상 황 개선을 요구하지 못하고 식량배급의 투명성을 감시하지 못하고 경 협자금의 군사목적 전용을 감시하지 못하는가. 평화는 결코 반전시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차 세계대전 때 각국의 사회주의 세력이 연대해 반전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반전시위 는 오래 가지 않았다.
사회주의 연대가 깨졌기 때문이다.
국익 앞에 국제적 연대는 무기력했던 것이다.
평화는 'No 라고 말할 수 있는 당 당함'과 '군사적 우위'만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통독 과정에서 서 독은 동독에 대해 당당했다.
인권개선도 요구했다.
지원자금의 투명 성도 요구했다.
한국 정부처럼 끌려다니지 않았다.
정상회담을 구걸 하지도 않았다.
우리에게 미군이 필요한 이유는 평화유지의 한 축인 군사적 우위 때 문이다.
미군이 빠진 한반도에서 군사적 균형은 깨져버리고 만다.
그 런데도 "미국의 필요 때문에 한국에 주둔하니 나가라"고 말할 수 있 겠는가. '친북'과 '친김정일'은 분명 다르다.
우리의 대북정책의 정 신적 기초가 어디에 근거해야 하는지는 명약관화하다.
그리고 국민들 도 '친북'과 '친김정일'의 옥석을 가릴 수 있는 혜안을 갖춰야 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