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실용농업유씨엠티농법(원 출처 : 귀농 사례 - 충남 예산군 이태형(장성드림빌)
귀농 사례 - 충남 예산군 이태형
벌써 9년이란 세월을 땅에서 나는 물을 먹고 살고 있다. 돌아보면 좋은 일보다 힘들고 어려웠던 적이 더 많았지만 누군가 말했듯이 아직까지 농촌에 버티고 있으면 성공한게 아니냐는 말을 위안삼아 성공한 농업인이라고 말하기는 어색한 한 가정의 농촌 정착과정을 말하고져 한다. 차후 아님 지금이라도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작으나마 보탬이 됐으면 싶고 현재 귀농해서 정착단계에 있는 분들에게 나의 경험이 위로가 되고 길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싶어 못쓰는 글을 적어본다.
흙과 기후가 작물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 덤비자
2000년 5월 나무들은 신록의 축제가 펼쳐져 5월의 하늘을 진한 쪽빛으로 물들일 때 아직 한 돌도 되지 않은 아들내미 하나를 안고 젊은 부부가 연고도 없고 집도 없는 충청도의 한적한 시골로 들어오고 있었다. 마을 어르신들은 잠깐 머물다가 서울로 올라갈 젊은 부부가 왔다고 좀 거리를 두고 다가왔지만 나는 터를 잡고 살려고 왔다고 적극적으로 접근을 하기 위해 귀농 육개월 만에 마을반장을 맡았다. 좀 더 마을의 주민들을 알고 싶고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억지 행동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연고도 없는 곳에 와서 그분들하고 가장 쉽게 친해지는 방법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즈음 미리 밭을 얻어서 무를 심고 그 무는 열심히 크고 있었다.
그해 초여름 무값은 꽤 비싼 편으로 남들은 시기를 잘 맞추어서 돈 좀 만질거라고들 해서 밭떼기로 넘길려고 이쪽 저쪽 알아보는 중에 몇몇 도매상들이 왔었는데 모두가 밭에 가서 무를 뽑아보고는 실망스런 모습으로 가락시장 경매가격 5톤 트럭 한 대 가격의 삼분의 일 정도만 부르는게 아닌가. 나는 무슨 소리냐고 5톤트럭 세대 물량은 되는데 어찌 이렇게 낮은 가격을 제시하냐고 물으니 무우는 황토땅에서 나와야 되는데 여긴 검은 흙에 질흙이라 그렇다는 것이였다.
그래서 안 판다고 했더니 그냥 갔는데 그후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불볕 더위는 무를 썩여 버렸다. 사실 농촌에 오면 고령의 어르신들이 많은 까닭에 농사지을 논밭은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흙의 특성과 작물의 고유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질땅에 고추를 심고 마사땅에 마늘을 심는 어리석음을 귀농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일걸로 생각한다.
작물의 특성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다음해 나는 우리땅이 있어야 되겠다 싶어 땅을 구입하기로 했다. 밭을 사고자 했으나 자금이 부족해서 임야를 사기로 결정하고 마침 임야에 다랑이 계곡 논이 달려있는 문중산을 사기로 했다. 문중 다랑이 논은 전형적인 천수답으로 농사를 짓지 못해 몇 년 동안 묵혀 놓은지라 싼 가격에 매입 단가를 결정할 수 있었다.
약 만평(임야 오천여평 답 사천여평)을 일억 이천에 계약은 했지만 자금이 문제였다.
우선 식구들을 동원하기로 하고 우리집과 처가댁에 사정을 얘기하고 어렵게 만들 수 있었다. 농협에서 대출을 받을려고 했지만 조합원에 가입해야 되고 담보도 있어야 된다고 해서 일단 접어두고 식구들에게 빌려서 매입하고 개간하는 것은 대출을 받아서 해결하기로 하고 일단 저질렀다.
내가 만약 이곳에 부모님이나 친척 또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지금 이 넓은 땅을 마련하지도 못했을 거란 생각이 자주 드는건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으니까 나 혼자 일어서야 된다는 강박관념 탓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어쩜 잘 됐는지도 모르겠다.
우선 땅을 매입하고 농업경영인 후계자 신청을 했다.
농사에 관해서 알고 싶었고 자금도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3월부터 개간작업에 들어가고 나는 매주 화요일에 공주대학교 예산 캠퍼스로 후계자 교육을 아니 농업교육을 받으러 다녔다. 개간 공사는 3개월 정도가 걸려 6월에야 끝이 나고 나는 만여평이나 되는 땅에 무얼 심어야 할지 고민을 할 즈음 퇴비도 별로없고 이제 개간한 땅에 심을 만한게 마땅하지가 않아서 서리콩을 심기로 했다. 하지만 콩의 특성상 한 번도 밭작물을 재배하지 않은 땅에서는 키만 크고 열매가 맺히질 않는다는 말을 듣고 고민을 하다가 옆 묵혀 놓은 밭에서 흙을 고운 망에 친 후 비료살포기에 넣어 개간한 밭에다 뿌리고 나서야 콩을 심었다. 이렇듯 작물은 자기 나름대로 특성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맞지 않으면 열매를 주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흙과 작물의 연계성 못지않게 중요한 게 기후와 작물의 연계성이다. 앞에 서리콩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콩의 원산지는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산뚱반도 일원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콩이 우리나라 전역에서 재배되는 건 아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재배 가능한 콩 종류는 몇가지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애기콩 종류처럼 콩알이 작고 야생콩 유전자를 가진 몇 개만이 우리나라 전역에서 재배가 가능한 걸로 알고 있다.
만약 서리콩을 남해안 지역에 가서 심으면 어떨까? 재배는 가능하다. 하지만 콩알이 몇 개 달리지 않고 밑밥용 콩이라는 고유의 특성도 사라지게 된다.
단감은 남쪽에서는 잘 되지만 북쪽으로 올수록 안 된다.
최고 북방 한계선은 고창 정도지만 현재는 지구 온난화 탓인지 서천에서는 대량으로 재배를 하고 있어서 나도 우리밭에 대봉 500여주를 식재했다. 사과를 보자. 너무 북쪽이나 너무 남쪽은 재배 적지가 아니다. 한두 그루 심어놓고 따먹을려고 식재는 가능할 지라도 상품성있는 사과가 나올려면 밤낯 기온차가 심하면서도 겨울에는 너무 춥지 않고 여름에는 적당히 더운 지역에서야 가장 맛나는 사과가 나올 수 있다. 이곳 예산지역은 사과로 유명한 곳이다보니 사과도 밀식재배 형식으로 500여주를 식재했다.
이렇듯 흙과 기후 작물의 연계성을 잘 이해하고 내가 재배할 것이 이곳에 잘 맞는 작물을 선택해서 재배를 해야 실패하지 않고 농촌에서 사는 재미를 느낄거라 생각한다.
유통을 알면 성공한다.
농산물 유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감하게 버릴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과 한 상자에 천원짜리 일곱 개와 칠백원짜리 세 개가 들어 있다. 그럼 이 사과 상자는 얼마일까?
칠천원이다. 모든 경매는 좋은 걸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상자 중에서 가장 안 좋은 걸 기준으로 경매가를 정하므로 철저한 선별로 좋은 가격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럴려면 안 좋은 건 과감하게 버리는게 유통의 시작이라 하겠다. 나도 서리콩을 심어 수확이 걱정이었는데 콩은 크로스 콤바인으로 수확하면 된다고 해서 기술센터에 문의를 해도 예산군 관내에서 크로스 콤바인을 소유한곳은 원종장 밖에 없다고 해서 그 곳에 부탁을 했지만 안 된다는 거였다.
만평이 넘는 콩을 인력으로 수확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어서 마침 공주대 농업인 후계자 교육생 중 크로스 콤바인을 소유한 사람이 아산에 살고있다는 걸 알고 어렵게 부탁을 했다.
하루에서 이틀 물량은 면적에 상관없이 무조건 백만원을 받아야 온다고 해서 백만원을 주고 콩을 수확했다. 일톤이 넘는 서리콩을 팔아야 하는데 막막했다. 우선 선별이 문제였다. 국내에서 콩 선별기를 보유한 곳은 몇 곳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대전에 있는 충남 농업기술원에서 콩 선별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전화로 부탁을 하고 대전으로 가져갔다.
지금은 자동 선별기가 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수동 선별기였는데 다행히 콩담당 직원의 도움으로 인력 지원까지 해주어서 다행히 선별을 마치고 판로를 찾으려고 서울에 있는 큰 상회도 가보고 지역에 있는 상회도 가보았지만 콤바인으로 수확한 콩은 뿌연 먼지가 묻어서 색이 진하지 않아서 매입을 꺼려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노란콩은 그나마 덜 표시가 나지만 색깔있는 콩은 거의 국내에서는 콤바인 수확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광천에 있는 상회에서 현 시세(1kg에 8000원)의 70% 수준에 맞춰주어서 다행히 그쪽에 넘겼지만 농사를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 다음해에는 유통에 실패를 하지 않기 위해 봄배추를 심으려고 농협을 찾았다. 농협에서는 자체 판단하에 무우 배추를 계약재배를 할 수 있는 물량이 있다.
단 중앙회에서 배정을 받아야 되지만 농협의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배정받을 수 있기에 농협에 가서 계약재배를 하자고 우기다 시피해서 6천여평의 봄배추를 계약재배를 할 수 있었다. 퇴비도 많이 넣고 정말 열심히 배추를 심어 가꾸었다. 여튼간에 계약재배니까 농사만 잘 지으면 유통은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말이 계약재배이지 처음부터 판로까지 모든 것을 농업인이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계약이란 포기당 300원에 계약을 하고 내가 가락동 시장에 500원에 팔면 초과분 200원은 50%씩 농협과 내가 가지는 거고 100원에 팔았으면 밑지는 200원중 50%는 농협이 손해 나머지는 농업인이 손해보는거라 사실 큰 의미가 별로 없는 계약이었다.
그런 까닦에 많은 농업인들이 배추값이 비싸면 중도매인에게 그냥 넘겨버리고 농협의 매출을 올리지 않은 계약해지가 속출하여 농협도 계약재배를 해도 되고 안 해도 손해가 없는 장사다. 근데 그해 배추값은 풀 값만도 못한 가격으로 하락하여 배추를 심은 농가들은 큰 시름에 빠지게 될 즈음 정부에서 배추수급 안정 차원에서 현장 폐기처분할 농가들을 신청을 받고 있어서 한걸음에 달려가 신청을 하였다.
밭에서 로타리로 폐기처분을 하면 최소 비용 즉 종자대금, 비료값, 인건비 등 포기당 백원씩은 인정해 농가에 지급해 주기 때문에 신청을 하고 로타리로 배추를 갈아엎었다.
마을 어른들은 그 아까운 걸 로타리친다고 아쉬워 했지만 작은 돈이라도 건질려면 어쩔 수 없었다. 만약 현장 폐기처분을 못하면 밭에서 썩고 마는데 그거라도 건진게 어딘데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내년에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다음 해에도 농협에 계약재배를 하자고 했으나 전년도에 워낙 이득을 남긴게 없어서 계약 재배를 하지 않는다기에 작년에는 안 좋아 올해는 배추값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심었지만 그해에도 로타리를 쳐야만 했다.
그렇게 삼년을 로타리 작업으로 배추를 마무리 짓고 지금은 배추는 김장용만 심어서 먹고 있다. 이렇듯 유통을 하지 못하면 농산물은 밭에서 썩어야 한다.
요즘에는 현지 농협에서 농산물을 집하하여 가락시장으로 매일매일 올라가는 곳도 많이 있지만 극히 일부 빼고는 운송료, 수수료 빼고 나면 실질적으로 농업인에게 돌아오는 금액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농협에 들어와서 서울로 농산물을 싣고 가는 차량은 운송료로 먹고 살기에 무게가 무거운 건 운송료가 비싸 맞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더군다나 소농 위주의 현재 농업 현장은 비싼 돈을 주고 선별기를 구입할 수가 없기에 수작업으로 농산물을 선별하다 보니 제대로 된 물건값을 받을 수가 없고 가락동시장에 가서도 외면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실질 가락동시장에 가서 보면 경매사들은 농업인처럼 농산물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건 발로 차고 다니는 것도 많다. 이런 실정에서 소농인 농업인이 자기 물건에 관해서 경매가를 정하고 그 금액 이하로는 경매를 포기한다고 배짱을 부릴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 현재 농업법인이나, 연구회, 작목반 등 많은 단체들이 움직이고 있는데 내가 사는 곳 가장 가까운 곳의 연구회나 작목반에 가입하여 선별도 공동으로 하고 좋지 않은 건 과감하게 버리고 정말 자신있게 물건만 만들어 내면 농업인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
현재 파프리카 연구회나 아스파라거스 연구회, 제천 브로코리 작목반 등 전국에 많은 단체나 모임이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판로를 개척하기 보다는 이런 단체들을 이용하면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된다.
기존 농사 방법은 망하는 지름길, 새로운 걸 두려워 마라
두 번 배추를 갈아 엎고 다시 조사를 하였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이쪽 지방에서 비싸게 받는 품종이 뭐가 있는지를 조사하였다. 예산은 사과의 고장이니 사과는 당연했다. 그러나 그건 삼년 후부터나 수확이 가능하니 당장 먹고살기 힘든 농촌생활에서 바로 뛰어들기란 쉽지가 않았다. 또 투자비가 많이 드니 쉽게 덤빌수가 없고 해서 사과는 천천히 배워서 심기로 하고 고추를 골랐다.
전국 최고 양질의 고추 즉 가장 비싼 고추는 당시만 해도 안면도였다. 그 만큼 색택이 잘 난다는 말이다. 전라도 고추는 600g에 4000원 하면 예산지역은 1만원, 안면도 지역은 1만원을 웃도는 금액이었다. 그 만큼 수확량도 적은 곳이 이쪽 지역이었다.
수확량을 많이 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인터넷과 신문 책자를 살피다 고추 꺽꽂이(삽목)를 하면 다수확할 수 있다는 글을 읽고 고추삽목을 연구했다.
첫해 백주, 다음해 이천주, 작년과 올해는 팔천주 전체를 삽목 방식으로 재배를 하고 있다.
삽목방식은 의외로 쉽다.
처음에는 발근제도 발라보고 실패도 했지만 뿌리만 잘라서 버리고 그냥 상토에 꽂으면 된다. 물 관리와 이십일 동안 그늘에 있어야 한다는 것만 지키면 성장속도도 일반 고추에 비해 배 정도 빠르다. 보자. 이곳에서는 5월 1일부터 5일 안에 고추를 정식한다. 그러면 역으로 계산해서 60일 2월 28일 이전에만 가식에 들어가면 된다. 20일동안 그늘에서 뿌리내리는 거는 절대 계산에 넣으면 안된다.
성장 속도가 그냥 심은 것보다 빠르기 때문에 늦은 것 같아도 크기 시작하면 엄청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그 이유는 뿌리의 굵기 탓 일거다. 일반 가식용 모종의 뿌리 굵기가 0.5mm라면 삽목용 모종뿌리는 1mm 정도로 배정도 굵다. 그러니 성장이 빠르고 본 밭에 정식 후에도 성장이 빠를 수밖에 없어서 모종의 50%이상이 첫 가지가 세 갈래로 나온다.
고추란 놈은 열 번째 가지를 치면 1차성장이 멈추고 첫 마디에 열린 고추를 익히기 시작한다. 열 번째 고추꽃이 피고 고추가 달리면 본 고추를 따기 시작하는데 그 이후에 2차성장이 된다. 하지만 삽목용 모종은 1차성장 자체가 거의 없이 계속 성장한다. 첫 마디 고추가 익을 때쯤 되면 열 세 번째나 열 네 번째 꽃이 피니까 수확량 차이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좀 거추장스러운 건 키가 큰 만큼 지주 말둑도 커야 되고 고추 줄도 두 번에서 세 번은 더 매야 된다는 게 거추장스러워도 많은 수확량으로 인해 기분은 좋아지니 새로움에 대한 도전은 늘 재미있다.
사 오년 전쯤에 오가피 나무가 인기가 있었다.
마치 만병 통치약처럼 광고를 하고 심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부자가 될 것처럼 묘목 장사꾼들이 광고를 하고 해서 몇 번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하지만 포기했다. 그 이유는 내가 몇 번 로타리로 작물을 없애면서 느낀 점이 있는데 그건 많은 사람들이 쉽게 구입해서 먹는 품종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배추는 딱 맞는 품종이었다.
하지만 나는 우물안 개구리였다.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양의 김치가 들어온다는 걸 계산에 넣지 않은 것이다. 다행히 내년부터는 김치도 원산지 표시를 해야 된다고 하니 아마 내년 봄에는 배추값이 비싸질거라 생각이 든다. 여튼간에 몸에 좋고 아니면 늘 먹고 많은 사람이 먹는 품종이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면서 오가피는 들어가고 헛개나무가 뜨고 있었다.
다음해에는 헛개나무가 지고 복분자가 뜨고 있고....
하지만 눈에 차지 않았다. 국내에서만 소비되는 품종이다 보니 귀에 쏙 들어오지가 않았다. 그러다 선택한 게 아스파라거스. 한 번 심어서 삼 년후부터 생산이 되고 십년 이상 수확이 가능하고 전세계적으로 두 세 번째로 소비되는 채소. 이거였다. 2003년 종자를 구입하기 위해 몇몇 종묘상을 알아보다 어렵게 그린타워란 품종을 구입해서 파종을 할 수 있었다. 바닥에 퇴비만 많이 넣으면 정말 잘 크는게 아스파라거스였다. 2006년 첫 수확을 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로타리를 쳐야만 했다. 삼년을 키워서 첫 수확에 들어갔는데 품종이 F4였다.
종자일 때는 몰랐고 수확을 해서 협회에 올려보니 팔 수가 없는 품종이라서 로타리를 치고 다시 협회에서 추천해주는 품종을 골라서 심었다. 2008년 올 봄에 첫 수확을 했다. 3주 정도만 수확하고 뿌리를 키워야 하기에 지금은 그냥 키우고 있는 실정이지만 내년에는 두 달 정도 다음해부터는 6개월 이상 수확이 가능해 시장에서 좋은 가격이 형성되고 우리나라도 많은 사람들이 먹기를 바랄뿐이다.
복분자가 한창 인기가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복분자를 심으라고 권장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나는 블루베리를 골랐다. 미국 일본뿐만아니라 전세계에서 자국 소비도 다 충족하지 못해서 수입해서 먹는 과일 2006년 여름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아스파라거스처럼 또 갈아엎지 않기 위해 품종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당시에는 몇 곳이 되지 않는 곳에 식재되어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발품을 많이 판 덕인지 몇 곳을 가보고 거기에서 몇몇 특성에 대해 들을 수 있었지만 정확한 거는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수입되서 소비되는 양은 많은데 블루베리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알고 있는 농가들이 없었다. 2007년 봄 마침 예산 지역 특화사업으로 블루베리가 선정되어서 신청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묘목을 구입하기 위해 몇몇 묘목상을 찾다가 들어서 신청 마감 날에서야 신청을 해서 선정되는 혜택을 얻었다.
밭에 퇴비를 넣고 구덩이를 파고 피트모스를 넣고 묘목을 식재하였다. 성장력은 정말 좋았다 하지만 여름이 되자 하나 둘 시들해지기 시작하더니 코빌이라는 품종은 전체가 말라 죽었다. 다른 두 개 품종 중 노스블루는 퇴비에 적응을 하였고 다로우는 죽지는 않았지만 성장이 멈춘 듯이 더디 컷다. 퇴비를 많이 넣은 까닭이었다. 더군다나 산성을 좋아하는 나무인데 몸살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들을 보니 우드칩을 넣기에 우분 퇴비는 좋아하겠지 싶었는데 잘못된 거였다. 하지만 누구도 퇴비를 많이 넣으면 안 된다는 걸 가르쳐 주지 않아서 모르고 한것이었다. 올해는 퇴비가 완전 분해된 까닭인지 성장력이 되살아나 다시 성장하고 있으나 다른 곳에 비해 아직도 뒤떨어진다.
원인은 퇴비 탓도 있겠지만 풀이 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 부직포를 씌웠는데 부직포를 씌우면 20% 정도 성장이 떨어진데나. 하지만 이제 와서 그걸 볏겨내기도 뭐해서 다른 집에 비해 물을 더 많이 주고 있다. 물을 주면 부직포가 열을 식힐거고 나무의 뿌리는 열을 적게 받아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물을 더 주고 있으나 이것도 실패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2009년에는 블루베리 매출을 살아남은 육백 주에서 오천만원 이상을 할려고 노력중인데 잘 될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키우고 있다.
처음에 언급했듯이 기후나 토양이 작물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늘 낮은 자세로 욕심을 내지 않는 농심이야말로 농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요즘 기후는 전라도나 경상도에서 감귤나무가 자랄 정도로 평년기온이 20년 사이에 많이 올랐다고 한다.
충청도에서 자두는 생산이 된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게 아니고 밭 둑이나 울타리 주변에 몇 그루씩 심어서 따 먹고 있는 실정이고 하여 돌아다녀 보니 논산에서 대량재배를 하는데 그것도 하우스 재배를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재배는 되는데 왜 대량재배는 안 될까? 그건 해거리 탓이였다. 울타리에 심어 놓았는데 올해는 수확하고 다음해는 안 열고 하니 사람들이 자두는 안 되는갑다 하고 미리 포기를 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난 올해 2500여평에 자두를 식재했다.
만약 이게 성공한다면 가장 북쪽에서 나오는 자두가 될 거지만 굳이 매스컴을 탈 필요도 없이 많이 알려질 것이다. 자두의 품종은 가장 늦게 꽃이 피고 가장 늦게 9월에 수확하는 추희라는 품종을 골랐다. 늦 서리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여보기 위해 이 품종을 골랐고 수확시기 때문에 이 품종을 골랐다. 남들은 자두는 여름에 먹어야 제 맛이 난다지만 농업은 대량 수확시기에 대량으로 나오기에 가격 조정이 힘들지만 틈새에 생산하는 품종은 아무래도 좀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꼭 벤처기업만이 틈새시장에서 성공하는 게 아니고 어찌보면 농업이 최초의 벤처사업이요 최고의 틈새시장 공략을 잘하는지 모른다. 이 부분은 다음에 좀더 깊게 얘기하기로 하자.
겨울에 놀려면 농촌에 오지마라
흔히 말하길 시골에서 겨울에 뭐 할 일이 있겠느냐고 한다. 맞는 말이다. 겨울에는 할 일이 없다. 그래서 돈을 못 벌고 1년동안 일한 돈을 쓰고 있는 게 농촌의 현실이다. 그리고는 봄이 되면 영농자금을 받아 농사일을 시작한다. 영농자금은 가을걷이가 끝나면 갚지만 겨울동안에 수입이 없다보니 다시 영농자금을 받아서 자재비나 비료 등을 준비한다.
그렇지 못한 집들은 작년에 받은 영농자금을 이자만 들고가서 다시 메꾸는 일을 되풀이하는 게 현실이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다.
2004년 겨울 마을 형님벌 되는 분이 칡을 캐서 파는데 꽤나 쏠쏠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형님을 따라 칡을 캐기 시작했다. 칡을 캐서 즙을 만들어 와서 막상 팔려고 하니 친구들이나 친지들에게 말을 하기가 쑥쓰러웠다. 그래도 팔아야 하기에 누나에게 먼저 말을 했다.
누나도 주변 몇몇 사람에게 전해 주었지만 별 신통한 주문은 없었다.
스티커를 찍어서 박스마다 넣고 지인 몇 사람에게 보내주었다. 근데 의외로 칡을 먹고 있는 집들이 있었다. 그걸 기점으로 2006년도 2007년도에는 천 박스 가까이 팔았으니 엄청난 물량이고 무시못할 매출이다.
칡은 산에 가서 캔다. 집에서 고압 기계로 깨끗하게 세척을 해서 즙을 짜는 곳으로 보내 박스포장한다. 그러나 갈수록 물량이 많아지는 것 같아 내년부터는 마을에서 본인들이 직접 짤 수 있는 시설을 할려고 한다. 현재 우리 마을에서는 열다섯 가구 정도가 칡을 캐서 소매를 하고 있고 칡즙 내리는 값만 일년에 약 칠천만원 정도가 지출되어 본인들이 내리겠다는 의지들이 강하다. 1년에 천 박스면 매출이 삼천만원 정도다. 겨울에 그냥 놀면 없애는 돈을 우리는 벌고 있다. 어떤 집은 2천여 박스를 파는 집도 있으니 겨울에 노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11월 초순부터 칡을 캐기 시작하면 눈이 많이 쌓이는 날 빼고는 매일 산으로 출근을 한다. 눈이 많이 쌓이는 날은 정말 노는 날이다. 1월 말경이 되면 고추씨를 사와서 싹을 틔우고 삽목 가식을 하고 밭에 퇴비도 내야하고 명절도 준비해야 하고 봄 배추 심을 사람이나 하지 감자 심을 사람들은 모종 준비와 본포 정리에 정신이 없을 때가 겨울이다.
몇 년전에 한 번 봄감자를 심은 적이 있었다.
그때도 2월에 강원도 평창가서 종구를 구해온 적이 있는데 모든 농사는 이미 겨울에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다. 과일은 한 바구니에 담지마라. 내가 농촌에 들어와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아이들 교육비나 생활비는 매월 들어가는데 돈은 매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배추를 심어서 로타리를 몇 번 치다보니 느는건 빚 밖에 없었다. 그래서 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매월 생산되게 만들자는 것이었다. 3월부터 하우스에서 아스파라거스를 수확하면 7월까지 수확이 가능하다. 6월부터는 블루베리를 수확하여 8월 초면 끝난다. 9월에는 자두를 수확한다. 10월부터는 사과를 수확하고 11월에는 대봉 감을 수확한다. 겨울에는 칡을 캐서 3월까지 생산한다.
이렇게 분배를 해놓으니 내년부터는 한꺼번에 몰리지 않고 일년동안 천천히 수확하면 어느 한 종목의 가격이 폭락하여도 가계에는 부담이 덜 되겠지 싶어 나는 이렇게 한 종목이 아닌 여러 종목으로 분산하였다. 주식의 유명한 격언 중에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말이 있다. 위험은 분산하여 작게 만들라는 말로 알고 있다.
앞으로 농업은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한다.
한미 FTA. DDA 등 국제적으로 우리 농업은 매우 불리한 입장에 서 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농업의 미래가 어둡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자기 스스로 얼마만큼 노력하고 연구하느냐에 따라 농업의 미래는 충분히 달라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시에서 사업하다 안 되면 시골에 가서 살면 되지 하는 식으로 농촌에 오면 망하니까. 철저히 준비하고 연구해서 농업의 발전에 한 몫을 차지하는 진정한 농업인이 되리라 갈망하길 바라며
두서없는 글을 여기서 접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