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를 만나다

[청향/정연균]

일요일, 인왕산을 찾았다.

8월의 인왕산은 짙은 녹색의 물결로 춤을 춘다.

남산과 더불어 서울의 콩팥이라 할 만한 인왕산이다.

오래 전 명을 달리한 분들은 인왕산 근처에도 접근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산 전체로 등산길과 둘레길이 거미줄처럼 조성되어있다.

산길을 걸으며 문득,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의문이 생긴다.

해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넌지시 던져보기도 한다.

그러나 뚜렷한 답은 여전히 도출되지 않는다.

‘그래, 나는 나로 살다가 가면 되겠지 뭐.’

겨우 혼자 그렇게 중얼거려본 게 다다.

청와대 뒤편에서 부암동으로 넘어가는 길에 윤동주문학관이 있다.

대부분의 문학관들이 조금은 호화롭게 단장된 모습인 반면

윤동주문학관은 신축이 아니라 기존에 사용되던 수도가압장 건물을

리노베이션 해서 작품화한 이색적인 공간이다.

인왕산은 청년시절 윤동주가 자주 오르내리던 산책로였다고 한다.

그는 연희전문 재학시절 틈틈이 쓴 시 열아홉 편을 출판하려 했지만

일제의 탄압을 걱정하는 주위의 만류로 포기하고 원고를 정병욱에게 맡긴다.

정병욱은 동주와 하숙도 같이 하며 인왕산을 함께 오르내린 친한 후배였다.

그러던 중 정병욱이 학도병으로 강제징병 되자 윤동주의 시는 다시 정병욱의

어머니에게 맡겨지게 되는데 정병욱의 어머니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을 피해

우리말로 쓴 윤동주의 친필 시를 항아리에 담아 고이 보관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분의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윤동주의 시는 영원히 묻힐 수도 있었던 것이다.

낡은 건물을 단장했지만 많은 건축상을 받을 만큼 문학관은 전체가 볼거리다.

우여곡절 끝에 건축가 이소진씨의 탁월한 설계로 2012년 개관했다고 한다.

맨 아래 사진은 윤동주생가에서 발견된 곡물함은 이곳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윤동주의 시 '자화상'이 친필 그대로 적혀있다.

제 1전시실에서 문 하나를 열면 제멋대로 생긴 건축물이 나온다.

건축물이라기보다는 그냥 견고한 콘크리트 벽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을 열면 기이한 공간 하나가 나오는데

바로 윤동주의 생애를 다룬 10여 분짜리 다큐를 보여주는 영화관이다.

영상을 보여준다 해서 따로 흰 스크린이 걸려있는 것도 아니다.

세월의 흔적, 물때 묻은 그대로의 벽에 투시하는 흑백영상이다.

바닥에는 작은 의자 몇 개가 놓여있고 나를 포함 다섯이 앉아 관람했다.

그의 생애에 관련된 사진과 대표작 몇 편이 벽면의 얼룩위에 그려진다.

1943년 그는 치안유지법에 따른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된다.

그리고 2년형을 선고받고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판결문에 보면 ‘조선독립의 야망을 품고 망동을 저질렀다.’로 되어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2년의 형기를 채 마치기 전에 윤동주는 옥사하고 만다.

1945년 2월 16일, 해방을 불과 석 달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옥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았고

이는 일제의 생체실험의 일환이었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었지만 일본은

유족도 오기 전에 이미 시신을 화장하여 유해만 넘겼을 뿐, 아무 말도 없었다.

윤동주. 그는 우리민족의 자랑스럽고도 매우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2022. 8. 21. 淸鄕

[텃밭지기(대전)]

이름만 들어도 울컥하는 몇사람 중에 한분이지요.
해방되는 모습도 못보고 가셨네요.

[청향/정연균]

참 아까운 나이에 요절하여 더욱 안타까운 시인이지요.
아침저녁으로 기온 차가 큽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소리(대구)]

어려운 시절의 인사들을 만나셨네요
가슴이 찡합니다

[청향/정연균]

나이 먹어가다 보니 지난 날의 역사가
더욱 소중하게 되새겨지는 것 같습니다.
소리님,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