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설계가 오웅성 - 가장 예술적인 자연과의 커뮤니케이션
고즈넉한 정자와 연못, 그 위를 지나는 돌다리, 그리고 야트막한 동산과 초가. 분당의 중앙공원을 여러 차례 산책하면서도 한번도 이런 멋진 곳을 만든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해 한 적이 없었다. 조경이란 자연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이고 예술적인 방법이라고 말하는 조경설계가 오웅성. 조경을 향한 그의 끝없는 열정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진행 : 김윤희 기자
아직은 일반인들에게 조경이라는 분야가 쉽고 빠르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인터뷰 전 미리 훑어본 그의 이력은 생각보다 화려했다. 그의 굵직한 작업들이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곳이라는 사실은 그와의 만남에 앞서 설레임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삼성에버랜드라는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으며 건축 및 조경학박사라는 타이틀 때문이었을까? 말끔한 양복에 단정하고 정형화된 모습일거라는 기대와 달리 그는 예술가다운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편안한 복장과 퍼머를 한 긴 머리, 그리고 팔목에 찬 메탈릭한 악세사리들.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지독히도 그와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nterior.housing24.com%2Fcommunity%2Fwebzine%2Fimage%2F0301_timg_639_2.jpg)
‘조경’이라는 섬에 표류하다
어렸을 적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었고, 대학을 가기 전에는 의사지망생이었다. 그러던 그가 조경을 공부하게 된 것은 다른 곳에 가기 위해 항해하던 중 우연히 어느 섬에 표류하게 됐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곳은 ‘조경’이라는 나라였다.
“조경에 대해 잘 몰랐지만, 막연하게 공간을 다루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조경은 무언가 풍경을 만들고 공간을 다루는 일인 것 같았죠. 잘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했는데, 설계를 하다 보니 매우 흥미가 있더군요. 아마도 크리에이티브한 점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가 조경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분당과 일산 신도시를 개발하면서 우리나라에 조경 붐이 막 일기 시작할 때였다. 마침 그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처음 맡은 작업이 분당 신도시 프로젝트였고, 그 중에서도 그는 중앙공원을 담당했다.
“처녀작인 중앙공원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입니다. 20대 후반에 13만평이라는 큰 공원을 설계한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운이 좋았던 거죠. 청년작가로서 꿈을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지금도 가끔 중앙공원에 가는데, 노인분들이 앉아서 ‘중앙공원 때문에 이사를 못가겠다’라는 말씀하시는 걸 들으면 매우 뿌듯해져요.”
중앙공원 얘기를 할 때면, 그의 표정이 달라진다. 약간 상기된 듯한 얼굴에 수줍은 소년처럼 연신 미소를 머금고, 그의 눈빛은 낭만적인 옛시절을 회상하듯 촉촉하게 빛난다. 그런 그가 중앙공원의 설계를 마치고 프랑스로 유학을 결심하기까지는 많은 고민이 따랐다.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해서 유학을 결심했습니다. 대학 4년과 대학원 2년 동안 교수님들로부터 미국조경과 일본조경을 주로 배웠어요. 대학원 1학년 때만 해도 미국으로 유학을 갈 생각이었는데, 회의적인 생각이 들어서 유럽행을 결심했죠. 유럽에서도 조경의 출발이 프랑스였기 때문에 프랑스로의 유학을 선택했습니다. 유학을 결심할 당시에는, 지금 공부를 하지 않으면 절대 안된다는 참을 수 없는 지식에의 욕구가 있었어요.”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nterior.housing24.com%2Fcommunity%2Fwebzine%2Fimage%2F0301_timg_639_3.jpg)
한적한 곳의 연못과 정자 하나
그렇게 프랑스에서 10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삼성에버랜드의 환경개발사업부에 입사해 지금까지 디자인디렉터로서 각종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공모전을 통해 당선돼 2년간 프랑스를 오가며 작업한 ‘파리서울공원’은 특히 그의 기억에 남는 작업이었다. 한국정원을 기본 테마로 하되, 실제 사용하는 프랑스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해 현지 감각에 맞게 한국식 정원을 각색한 것이었다.
“사실 한국에서 한국정원을 100%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조경은 심플가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운데에 물(연못)이 하나 있고, 정자가 하나 있는 것이 기본이죠. 그것이 럭셔리하게 표현된 것이 신라의 안압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이 자신의 본가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하천 옆에 루나 정자를 하나 만들고 이 곳에서 시도 읊고, 머리를 식히기도 했죠. 이러한 공간이 바로 심플한 가든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정원에 들어와 있는 정원건축이 집 형태로 된 루나 정자인데, 이것은 건축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자연에는 우리가 머무를 곳이 없기 때문에 그 머무를 곳을 제공하는 장소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정자나 루는 인공적인 건축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연에 가깝다. 그러고 보니, 그것 자체가 자연으로 발산하는 구조이다. 그는 소쇄원의 광풍각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광풍각은 빛과 바람을 즐긴다는 뜻의 낭만적인 이름이죠. 자연이 다 통과하게끔 되어 있고, 건축의 임시적인 형태입니다. 정원에서의 건축은 바로 그런 것이죠.”
낯설기만 했던 조경에 관해 세계 여러 나라의 조경과 우리나라 조경의 역사를 함께 듣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인터뷰라는 사실을 잊고 전공과목 수업을 듣는 학생의 마음가짐이 되어버렸다.
자연과 건축, 그리고 사람과의 조화
조경을 설계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관계성이라고 대답한다.
“공원처럼 조경만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조경은 건축과 함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조경이 건축에 기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죠. 조경과 건축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봅니다. 조경 자체보다는 조경과 자연, 건축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프랑스가 지리학이 발달돼 있어서 땅을 발견하고 식민지를 개척했듯이, 지리학이 땅과 사람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조경은 땅과 사람의 관계와 자연의 가치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건축은 닫혀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프라이빗한 경향이 많은 반면, 조경은 외부를 향해 오픈돼 있기 때문에 상당히 사회적인 성격을 띤다.
“우리나라와 서양 조경의 차이는 자연을 포섭하는 방법의 차이입니다. 서양의 정원은 굉장히 건축적이어서 정원과 자연을 구분하는 반면, 우리의 전통 조경은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죠. 소쇄원에 가면 계곡이 내려오는데, 그 계곡에 정원을 앉혀놓은 형태입니다. 자연지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냥 아름다운 계곡을 정원화 시켜 놓은 것이죠. 우리나라의 전통 조경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nterior.housing24.com%2Fcommunity%2Fwebzine%2Fimage%2F0301_timg_639_5.jpg)
웰빙시대는 곧 ‘정원의 시대’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조경의 위치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점점 조경의 중요성을 사람들이 알아가고 있는 추세이다. 아파트를 분양할 때도, 조경을 잘 해놓는 것이 차별화된 전략이 되기도 한다. 공원 같은 아파트라는 이미지가 분양성이나 상품성에 상당히 기여하기 때문이다. 점점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사람들의 욕구에 따라 아파트 뿐만 아니라 모든 건축에 있어 조경이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다. 이렇듯 조경이 중요시되는 이유는 친환경, 생태라는 큰 담론에 같이 얽혀있다. 오웅성 소장은 최근 붐을 일으키고 있는 웰빙시대는 곧 ‘정원의 시대’라고 말한다. 그는 또 다음과 같은 아주 흥미로운 제안으로 '웰빙조경에 관한 생각을 마무리 한다. "사람을 죽이는 집이 아니라 살리는 집, 건강을 위한 집을 위해서 최근 나 없이 여러 가지 친환경 자재나 공법, 공기청정기 같은 대안이 봇물 쏟아지듯 광고되고 있습니다.
름알데히드, 납 같은 중금속 등의 인체 유독성분을 감쇠시켜 주는 자재나, 은나노기술을 응용한 공기청정기도 기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지만 조경디자이너로서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집의 벽면을 활용하여 그 위에다 식물을 붙여 친자연,생태벽면을 예술적으로 연출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은 최근 제가 직접 설계,시공에 참가하여 해외작가와 협업하여 수행한 바 있는 국내에서는 최초인 대안인 셈입니다.
는 현재 원예실무분야에서 상용되는 실내식물(소위 몸에 좋은 건강식물)을 아파트 거실(주로 대형평수과 같은 실내나 실외의 벽면에 식재하여 일종의 버티컬가든을 연출하는 방법인데, 가장 친자연적인 법으로 실내공기를 정화하는 기능에다 실내.외의 벽면을 예술적으로 장식하고 감상도 하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는 일종의 '에코아트(Eco-Art)'라 이름할 수도 있을 겁니다. 살아있는 식물로 채워진 한 폭의 식물벽화!, 그야말로 '공격하는 집'에 살 수 밖에 없는 현대생활에 있어 가장 건강하고 예술적인 자연의 커뮤니케이션 방법, 웰빙시대의 생활의 코드가 아닐까요?" 조경을 더욱 대중화시켜서 많은 사람들
게 조경이 더 이상 사치가 아니라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에 기여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 한 줄기 아름다운 환상을 가져본다.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자연 안에 그대로 스며들어 인생을 향유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nterior.housing24.com%2Fcommunity%2Fwebzine%2Fimage%2F0301_timg_639_6.jpg)
오웅성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
베르사이유 국립조경학교 조경최고과정 수료
파리라빌레뜨 건축학교 건축사과정 수료
프랑스 파리국립사회과학대학원 건축 및 조경학 박사
파리서울공원(2002)
분당중앙공원(1990)
타워팰리스(2002)
2002 안면도 국제꽃박람회장(2001)
프랑스 고속도로 A15 조경(1996)
프랑스 고속철도(TGV)동유럽선 조경(1993)
현 삼성에버랜드(주) 디자인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