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단상
유병덕
2015harrison@naver.com
소식이 뜸하던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청와대를 개방한다는 뉴스를 듣고 예약했다며 호들갑이다. 지난날 청와대경호실에서 요인경호를 했던 그의 말이 왠지 마뜩잖다. 현직에 있을 때 청와대를 몇 차례 드나들면서 느낀 감정이 좋지 않아서이다.
청와대 초입에 들어서면 독수리눈처럼 매서운 눈과 마주하게 된다. 본관에는 풀 먹인 베적삼처럼 목이 빳빳한 이가 방문한 사람의 기를 꺾는다. 그 바람에 나는 아이처럼 옹알이 짓만 했다. ‘날아가는 새도 손가락으로 찍어내면 떨어뜨린다.’할 정도로 지난날의 청와대는 두려운 곳이었다.
절대 권력의 상징이던 청와대가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니 만감이 교차한다. 주인 입장에서 한 번쯤 가볼 일이다. 입구에 도착하니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던 이가 보이지 않는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 젊은이와 아이들이 길게 줄지어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이곳저곳 꼼꼼히 살피며 사진을 찍는 이가 있다. 훼손한 부분을 찾아내어 임차인에게 원상 복구라도 할 요량처럼 보인다.
청와대 경내는 깨끗하고 우아한 정취가 풍긴다. 주인이 보러온다고 하여 건물과 수목을 정성껏 관리해 놓은 것 같다. 잘 다듬어진 정원과 잔디 구장을 보니 느낌이 새롭다. 예전에 살벌했던 분위기가 없으니 마음이 아늑하고 편안하다. 바로 앞에 남산을 올려다보니 친근감마저 든다. 영빈관, 본관, 관저…, 내가보기엔 흠 잡을 곳이 없다. 벽 한쪽에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눈에 들어온다. 나름대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나도 모르게 박정희 대통령초상화 앞에서 걸음이 멈추었다. 문득 1.21사태가 떠올라서다.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청와대 인근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소식에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것이 궁금하여 춘추관 뒷길로 올랐다. 권력의 심장부를 지키느라 산기슭 곳곳을 헤집어 놓았다. 하늘 높이 치솟은 담장과 두꺼운 철책, 군데군데 구축한 방공 시설이 북악산의 혈 자리를 끊어 놓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육백여 년 동안 수도의 든든한 울타리로 자리해왔던 한양도성을 따라 발길을 옮겼다. 숙정문, 촛대바위, 곡장…, 청운대를 지나니 소나무에 파편 자욱이 있다. 1.21 사태 소나무라고 적어놓았다. 우리 군경과 간첩단 사이 치열했던 총격전의 상흔이다.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미수에 그쳤지만, 어떻게 서울 중심부까지 침투했는지 소름이 끼친다. 나무가 크면 그늘도 크듯 권력이 커지면 상처도 큰가보다. 박정희 대통령처럼 작은 체구의 북악산이 상처투성이다.
지난 시절 청와대를 떠올려본다. 일제강점기에 핍박받다가 해방이 되어 주인이 어리바리 할 때다. 그 사이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임차인으로 들어왔다. 당시 청와대가 아니라 경무대라고 불렀다. 그는 이데올로기 혼란 속에 동족상잔의 6.25 비극을 겪으며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그는 주인인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부정하게 임차 기간을 연장하려다 4.19 혁명으로 하야했다. 이어 윤보선 대통령을 들이며 경무대는 청와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그는 불운하게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5.16 군사 정변을 맞았다. 이때 군부가 힘으로 밀어붙여 어쩔 수 없이 청와대를 내주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들어와 앉으며‘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노래했다. 그가 사심 없이하기에 주인이 장단 맞추어 주었다. 청와대는 한번 들어가면 나가길 싫은가보다. 그는 영구입주하려다가 10.26 사건으로 비운의 생을 마감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불나방처럼 군부가 달려들었다. 예전처럼 주인이 시절이 아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6.10 민주 항쟁으로 맞섰다. 도도히 흐르는 민주화물결에 군부는 맥을 못 추고 썰물처럼 쓸려나갔다. 지난 일을 반면교사삼아 청와대 임차 기간을 5년으로 못 박았다.
나의 편견 일거다. 청와대에 들어와 살던 이들이 모두 불행해 보인다. 북악산 기슭의 물만 먹으면 장님처럼 보지 못하고, 귀머거리처럼 듣지 못한 채 힘센 씨름선수가 되는 것 같다. 좌로 갔다, 우로 갔다 힘만 쓰려한다. 주인을 무시하고 들어와 앉든, 주인이 골라 앉히든,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주인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아마도 북악산 혈을 끊어놓아 그런지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터만 탓할 일도 아니다. 미국 대통령이 사는 백악관은 19세기 초부터 현재까지 무탈하게 잘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를 따져보고 싶다. 청와대 임차 기간이 문제인가. 아니면 터에 문제가 있는가. 시골 살 때 쟁기질해보았다. 쟁기에 힘을 주고 갈아보니 이랑이 삐뚤빼뚤하다. 아버지 말씀대로 쟁기에 힘을 빼고 멀리 있는 뽕나무그루를 향해 슬슬 가니 이랑이 반듯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골프를 쳐봐도 그렇다. 초보 때 그립에 힘주고 스윙하니 볼의 방향이 왔다 갔다 한다. 훅이 났다가 슬라이스가 났다 하여 골프를 망치곤 했다.
힘이 문제인 것 같다. 세상사 힘이 들어가면 자연스럽지 못하다. 우리가 법을 들먹거리지만,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게 법이다. 지난 날 청와대 들어온 이가 갈지자 행보를 해도 무서워서 한마디 하지 못했다. 그러니 늘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누가 소유자인지, 누가 임차인인지 법대로 가르마 타고 싶다.
머릿속에 부화하지 못한 생각이 남아 있다. 인간은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 자연에 순응하려면 힘을 빼는 게 먼저다. 이제 임차인의 힘을 빼야 할 것 같다. 예로부터 ‘화무는 십일 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 나니라’ 자연을 노래했다. 누구든 모를 리 없다. 설사 모르더라도 떠나 보면 알거다. 거추장스럽고 추한 게 힘이라는 걸.
경복궁 가로등 등불아래서‘있을 때 잘해’노래가사를 흥얼거려본다.
첫댓글 올려주신 수필 잘 읽었습니다.
청와데 방문을 하셨근요..
많은 걸 느끼게 합니다.
참 좋은 수필입니다.
김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