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에서 제대 한 후 일상이 무료 할때 오랜만에 쓰리쿠션볼 이라도 쳐볼까 싶어 가까운 당구장에 나가 보았다. 당구장 사장의 부킹으로 쿠션볼을 몇번
쳤을때 실내 한켠에 뒷방문이 자주 열리고 닫혔다. 아마도 하우스 플레이를 하는것으로 보였다. 관심 두지 않고 당구나 치러 몇번 드나들던 어느날
쿠션볼 상대가 없어 연습볼이나 치고 있는데 주인 정사장이 다가와 물었다. "혹시 쎄븐카드 칠 줄 아세요.?" 지루했던 차에 난 거절할 인간이
못되었다. "겨우 족보나 볼줄 아는데 왜유.?" 그의 얼굴이 더욱 환해지며 "5만 정도 적게 놓고 자리 한번 메꿔 주세요 다들 매너가 좋아요" 부추겼다.
할일이 하나도 없으면서 괜히 약속이라도 있는 양 시계를 살피고는 답했다. "두어시간 앉았다가 빠져도 되쥬.?" 정사장은 옳거니 하는 표정을 지었고
"네, 네.! 한시간도 상관 없어요" 말하고 뒷방으로 날 안내했다. 정사장의 형색처럼 삥발이 방 내부는 넓지도 않고 칙칙했다. 다들 새로운 얼굴인 내게
접대 맨트들을 해왔다. "고향이 어디유.?"
"기산이유.! 스물셋이구요" 뻔할뻔자 나이를 물을것이기에 미리 말하였다.
"내가 한살 많네유, 기산이믄 정식이 알것네유.?" "정식이가 날 잘 알쥬.! 쎄븐 같은거 치면 제가 맨날 잃고 호구짓이 하니까유 하하하" 판이 돌았다.
판돈이 다들 크지 않으므로 열기도 약했다. 그러다가 원정단 두명과 한우집 사장이 판에 들어 오면서 활기가 넘쳐났다. 나 또한 승부욕이 동했다.
열흘 후
"당신 나이 오십이랬죠.? 포커장 당장 집어 치우고 바닥에 꿇어 앉어유 안그럼 당신 내손에 오늘 개작살 날꺼유." 내 윽박 지름에 박씨는 무슨 일이냐는
눈으로 "왜 그러는겨 동생 뭔지 말을 해봐 왜그랴.!" 고물상 박씨는 그간 당구장에서 승률이 아주 좋았다. 그럴싸 한 판에서 일순위 패를 가지고
대부분 그가 이겼다.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 서서히 이면적인 의심이 동했고 '혹시라도.!' 하는 생각이 더욱 가중 되었다. 박씨는 평소 나긋나긋하게
나에거 잘 대했으므로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이일이 터지기전 모두 계획적 친절 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자는 판 안에서 잡지 않으면 소용 없다.
경미한 장난질은 그냥 넘기기도 하지만 박씨의 사건은 그럴 수 없었다. 장시간 동안 그는 테이블 호구들을 상대로 구라를 치고있었다. 보지 않았다면
나 또한 계속적인 호구로 남을 일이다. 그를 꾸준히 지켜본 결과 남들과 달리 트리플 석장을 자주 들고 시작한다는 점과 캔맥주를 쉬지 않고 주문하는
점도 이유가 있었고 남과 달리 다 필요도 없을 앞전을 300만원 가량 잔뜩 가방에서 꺼내어 테이블에 쌓아 놓고 게임 한다는 점이다. 그날은 판이 길어져
꼬박 이틀 동안 쟁반국수와 보쌈, 김치찌게를 시켜 먹으며 화장실 가는것 외에는 오로지 포커 게임만 하였다. 집중을 하고 또 하였지만 정신 상태는
말이 아니었고 다들 그러 했을 것이지만 돈을 잃은 사람들이 놓아 주질 않았다. 다들 동네에서 안면이 있는터라 화를 낼 수도 없다보니 그곳을 탈출
하려면 올인 시키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밤 열한시쯤 되었을것이다. 갑자기 머리도 지끈하고 정신도 흐리멍텅 해지더니 카드가 카드로 안보이고
이상한나라 앨리스의 만화처럼 트럼프 병정 같이 울렁울렁 살아 움직이는 환상이 보였다. 카드들이 마치 나를 보고 손을 흔드는것 같기도 하고 상대의
카드는 해석될 수 없는 느낌으로 7, 10, 6 이런것들이 허상에 떠오르면 실제로 오픈된 카드와 같을때도 여러번 있었다. 현실에 걸맞지 않아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오픈카드가 열릴때 마다 드륵드륵 환청도 들렸다. 희안한 일이었다. 귀신이 있다면 온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내게 원페어
카드가 손에 들면 여지없이 트리플 풀하우스로 이어졌고 상대는 끌려 들어올 만큼의 카드가 만들어졌다. 순식간에 연달아 플러시와 풀하우스, 스트레이트
등을 손에 쥐며 판돈을 거의 휩쓸었다. 급기야 상대들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표정들이 되었고 지고난 다음 다시 맞 붙으면 또다시 좋은 카드가
들었을까 의심 하고는 그 의심에 또 당하고 당하였다. 지폐가 하도 많아서 높게 몇 줄로 쌓아 놓았다. 그리나 정신을 차려야 했다. 갑자기 판도가 박씨
한테로 흐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졸리고 정신 없음에 세수를 하고 다시 돌아 왔다. 그때 우연히 가지런 한 내 지폐 더미에 삐죽이 튀어 나온 만원권
한장을 보게되었다. 맨 윗장의 세종대왕이 한심 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비웃는것 같았다. 그순간 번뜩 눈에 힘이 들면서 박씨의 지폐 뭉치를 쳐다보았다.
'그것이었다.! 그거였어.!' 라는 심증이 강하게 뇌리를 자극했다. '지폐 사이에 유리한 카드를 몇장 감춘다면' 만원짜리가 비집고 한장 튀어나와 있는
모습에 흰트를 얻었다. 굳이 그가 벽을 등지고 앉으려 고집 한것도 그것과 맞았다. 그런 의혹을 갖다 보니 필요 이상의 맥주 주문 또한 캔에 묻은 수분을
이용해 밑장을 빼는 일을 수월하게 할 수있다 생각하니 그때부터는 게임 보다는 박씨를 관찰하는 일에 온 신경을 세웠다. 그러던 중 박씨가 유독 타인의
눈치를 살피는 타임을 발견했다. 카드를 돌릴때는 전판을 이긴 사람이 돌리기로 하는데 속칭 먹딜(먹은 사람 딜)이라고 한다. 전에 당구장 아르바이트
아줌마가 패를 돌려 준다 할때 패가 안 뜬다는 둥 자극적으로 반응했던 일도 모두 지금의 수상한 행동과 맞아 떨어졌다. 밑장을 빼는것은 눈으로 보기에
어렵다. 설령 본다고 해도 박박 우기고 오히려 큰소리치면 증거가 될 수 없다. 이미 빠져 나온 밑장 이기에.... 삼사십분을 지켜본 결과 그가 얕은판에
비교적 큰레이즈를 부어 먹딜을 하게 되었다. 의혹의 시각으로 지켜보니 모든게 맞아가는 느낌이었다. 초이스 카드를 보는것에 집중 할때 그가 카드
몇장을 지폐쪽으로 가져가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쌓아 놓은 지폐 더미는 카드를 감추기 위한 틀이고 알고 보면 단순한 속임의 방법이었다. 한참을
아무도 그것을 모른채 계속 게임이 이어질 뻔 하였다. 하지만 그의 긴 꼬리를 내가 밟을 찰나이다. 레이즈가 한참 이어지고 판이 혼잡할 즈음 아직
돌리지 않은 박씨의 손에 든 카드 뭉치를 내게 줘보라고 했다. "....왜 그러지.?" 하고 물었지만 낚아 채듯 카드를 빼앗아 중앙의 배팅 판돈쪽에 놓았다.
박씨가 당황하는 표정이 역려했다. 좀전 소리 지르고 재차 말했다. "당장 꿇어 앉아요 그러면 더이상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을꺼요." 나는 대략 의연한
눈을 보이고 말했다. "뭔 헛소리여 지금.!" 그가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잡아 떼려했다. 그가 인정하고 바닥에 꿇으면 속임수는 공개하지 않고 나가서
이야기 좀 하자 하고 판에 의문이 남더라도 조용히 끝내려고 했다. 하지만 박씨가 반항했다. 이 타임에 기선을 제압하지 않으면 오히려 카드와 함께
돈더미를 집어 던진다던가 역발상적인 행동이 나올 수있다. 앉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박씨의 오른쪽 뺨을 힘껏 후려 갈겼다. 아주 힘껏. 그가 반항하고
싶었겠지만 이미 기가 꺽였다. 당구장 주인 정사장이 눈을 똥그레 뜨고 들어왔다. "정사장 박씨 지페더미 좀 주욱 펼쳐봐요.!" 정말 지폐속에서 AA
두장이 나왔다. 그 뾰족한 무늬로 수없이 많은 판을 찔러 자빠 뜨렸다고 생각하니 더욱 화가났다. 뺨 한대를 더 후려쳤다. 당구장 정사장에게 박씨의
300만 넘는 지폐 더미에서 하우스비 10만을 챙기고 정확하게 판에 앉은 사람수 대로 나누라 했다. "정사장님 하우스 붙이려면 이런것도 살피셔야죠.!"
당구장 사장 정이 나누던 박씨의 돈에 침을 흘리는 눈치라 나는 그에게 한수 덪 붙혔고 사실상 정에게도 책임이 있는것이고 잃은 사람들의 돈인데
하우스 정이 함께 나눠 받을 돈은 아니다. 그곳에 있던 이들 모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있다가 사태를 파악한 듯 한사람이 "개새끼네.!" 하고 거들려
하기에 "조용 해주세요.!" 하고 잘랐다. 맥주캔과 지폐 더미에 대해 질문하니 박씨는 입만 살짝 벌려 수긍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돈을 나눠
갖는것으로 더이상 오늘의 일은 끝냅시다. 하고 박씨의 신변보호를 위해 "먼저 가방을 챙겨서 나가요" 말했다. 그는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아무
소리도 못하고 달아났다. 그 이후로 그를 볼 수 없었고 당구장 판은 끝났다.
첫댓글 잘 봤습니다. 지난일 돌이켜보면, 포커판에 참 타짜가 많더군요. 포커책 저자가 한 말 기억납니다. 큰 판에는 무조건 타짜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고 하더군요
역시 모르는 사람들과의 세븐오디는 조심해야는게 정석이군요
그걸 잡아내다니 대단합니다 ㅎㅎㅎ
음 ...당구장에서 빠질수없죠 !!!
ㅋㅋㅋ
잘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