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성(北漢山城) 13성문(城門) + 1수문(水門) 종주기(從走記)
□ 산행일시/ 2017년 10월 21일 토요일 맑음
□ 참가인원/ 나 홀로
□ 산행진행상황
06시 40분 : 파주집 출발
07시 45분 : 구파발역
08시 10분 : 북한산성 입구 버스정류장/ 산행시작
08시 15분 : 북한산성 탐방안내소
08시 28분 : 1번째 성문 - 대서문
08시 50분 : 국령사 입구
08시 58분 : 2번째 성문 - 중성문
09시 06분 : 국령사 입구
09시 35분 : 3번째 성문 - 가사당암문
10시 02분 : 용출봉
10시 12분 : 용혈봉
10시 23분 : 증취봉
10시 33분 : 4번째 성문 - 부왕동암문
10시 50분 : 나월봉
11시 08분 : 나한봉
11시 18분 : x715봉
11시 26분 : 5번째 성문 - 청수동암문
11시 36분 : 문수봉
11시 48분 : 6번째 성문 - 대남문
12시 05분 : 7번째 성문 - 대성문
12시 16분 : 8번째 성문 - 보국문(동암문)
12시 21분 : 칼바위능선 갈림길
12시 30분 : 9번째 성문 - 대동문
12시 38분 : 시단봉(덕장봉)
12시 55분 : 동장대
13시 15분 : 10번째 성문 - 용암문(용암봉암문)
13시 55분 : 11번째 성문 - 위문(백운봉암문)
14시 15분 : 북한산 백운대
14시 35분 : 11번째 성문 - 위문(백운봉암문)
15시 08분 : 대동사 갈림길
15시 37분 : 12번째 성문 - 북문
15시 48분 : 원효봉
16시 20분 : 13번째 성문 - 시구문(서암문)
16시 48분 : 14번째 수문 - 수문터
17시 20분 : 북한산성 입구 버스정류장 / 산행종료
17시 45분 : 구파발역
19시 05분 : 파주집 도착
<총 산행시간 / 9시간 10분>
□ 산행지도
<북한산성 13성문 + 1수문 종주경로>
대서문~중성문~가사당암문~부왕동암문~청수동암~대남문~대성문~보국문~대동문~용암문~위문~북문~서암문~수문터
<위의 지도를 클릭하면 확대됨>
□ 산행개요
북한산성 (北漢山城 12.7km)
북한산성은 삼국시대에 백제가 위례성(慰禮城)에 도읍을 정한 뒤 도성을 지키기 위하여
서기132년 백제 개루왕 5년에 토성(土城)으로 최초로 축조 하였다.
특히 이 지역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을 벌였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도성을 지키는 중요한 곳이었다.
이 북한산성은 고구려의 남진을 막는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근초고왕의 북진정책하에서는 북정군(北征軍)의 중심요새지가 되기도 하였다.
삼국시대에 삼국이 모두 군사요지로 여겨 치열한 쟁탈지가 되었는데,
475년(개로왕 21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이 성을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전사 시킴으로써 백제는 웅진성(熊津城)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 뒤 553년(진흥왕14년) 신라가 한강 하류까지 진출하여 북한산성을 차지 하고서
북한산 비봉능선 정상에 진흥왕순수비를 세웠다.
603년(진평왕 25년) 고구려군이 신라의 북한산성을 포위했으나 곧 격퇴당했다.
또한 661년(무열왕 8) 고구려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말갈군과 함께 20여 일 동안 포위 공격했을 때
성주 동타천(冬陀川)이 성 안의 주민을 동원해 끝까지 성을 지켰다.
고려시대에는 현종이 거란의 침입을 피해 고려 태조의 재궁(梓宮 : 임금의 棺)을 옮긴 일이 있는데
이때 성을 증축했으며, 1232년(고종 19년) 이곳에서 몽골군과 격전을 벌였다.
조선시대에는 양 난을 겪은 뒤 도성 외곽성을 강화하자는 축성론(築城論)이 일어나,
숙종 37년(서기1711년) 음력4월 3일 착수하여 6개월 만인 10월 19일에
백운봉, 만경봉, 용암봉, 문수봉, 의상봉 등 북한산의 주요 봉우리를 연결하는 9.5km의 석성을 완성 하였다.
성의 규모는 둘레 7,620보(93,716m), 면적 약200여만평, 높이3~5m의 석성을 완성시켰다.
이 북한산성은 사적 제162호로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축조한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축성인력은 3군문(훈련도감, 금위영, 어영청)이 산성의 각 구역을 담당하여 축성 하였는데
수문 북변에서 용암봉까지 2292보의 구간은 훈련도감에서 축성을 하였고,
용암봉 남변에서 보현봉까지 2821보는 금위영에서 축성 하였고,
보현봉에서 수문 남변까지 2507보는 어영청에서 각각 담당하여 축성 하였다.
용도는 임란이어처(臨亂移御處) 즉, 위급시 임금과 백성을 피신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축성 하였다.
성의 규모는 130칸의 행궁, 140칸의 군창(軍倉), 12곳의 사찰,
2곳의 암자와 8곳의 창고, 99곳의 우물, 저수지 26곳과
성벽위에서 적을 공격할때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시설인 여장이 2807첩이 있었으며
99곳의 우물과 26곳의 작은 저수지, 그리고 8곳의 창고가 있었으며
숙종37년 수축 당시13곳의 성문(大門-6, 暗門-7)을 건축하였으며, 1년이 지난 후
지대가 평탄한 대서문쪽 방면의 수비보완으로 성내에 중성문을 축조하여 총14기의 성문이 있었다.
산성의 지휘본부인 장대는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는데 현재 동장대만 남아 있다.
이 북한산성은 길이12.7km, 면적543,795㎡ 규모의 산성으로 1968년 12월 5일 사적 제162호로 제정 되었다.
□ 산행사진
오늘은 오랜만에 북한산성에 설치되어 있는 13성문과 1수문을 종주하기로 계획하고 06시 40분에 파주집을 나섰다.
경의중앙선과 3호선 지하철을 타고 구파발역에 내려서 주말에 운행하는 북한산행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입구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간단하게 산행준비를 하고 북한산성의 13성문과 1수문의 종주산행을 출발하였다.
대서문을 시작으로 <대서문~가사당암문~중성문~부왕동암문~청수동암문~대남문~
대성문~보국문~대동문~용암문~위문~북문~서암문~수문>의 순서로 종주 하기로 계획을 하고 종주산행을 시작하였다.
북한산성입구에서 대서문으로 향하는 도로를 이른 아침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상쾌한 기분으로 걸었다.
대서문 (大西門 150m)
의상봉 서북쪽 방향으로 해발고도 150m 높이의 낮은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는 성문으로 북한산성에 있는
현재 실존하는 13성문 중에서 서쪽을 대표하는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정문이다.
1712년 숙종38년 숙종이 북한산성에 행차하였을때 이 대서문을 통하여 성내로 들어갔다고 한다.
1958년에 최헌길 경기지사의 주도로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된 문루(門樓)는 북한산성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
문루(門樓)란 성문 위에 지은 다락집으로 유사시에는 장수의 지휘소가 되며,
전시에는 성밖의 적을 조기에 발견하고자 감시하는 기능을 가진 건축물로서 암문을 제외한 여섯 문에 설치되어 있다.
대서문에서 중성문으로 오르는 도로를 오랜만에 걷는데... 이렇게 폐 타이어로 인도를 만들어 놓았다.
중성문 (中城門 200m)
북한산성을 축성한 다음해인 숙종38년(1712년)에 북한산성의 수비 보완 대책의 일환으로
성 안에 성을 겹쳐 축조하였는데, 이 성이 바로 중성이다.
이 중성문은 노적봉과 증취봉 사이의 협곡에 쌓은 중성에 설치한 성문으로
1998년에 문루를 올리고 성벽도 말끔히 복원하였다.
현재의 중성문은 석축기단인 육축부, 그 위에 올려진 문루와
무지개 모양의 출입구인 홍예문을 갖춘 전형적인 대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중성문 바로 옆을 흐르는 계곡에는 수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대서문에서 이곳을 거쳐서 중성문을 다녀와서 다시 이곳 가사당암문 입구에서 세 번째 가사당암문으로 향하고...
가사당암문으로 오르면서 뒤 돌아서서 바라보니 북한산 주봉의 장엄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가사당암문으로 향하는 오름길은 등로가 많이 훼손되어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가사당암문 (袈裟堂暗門 488m)
의상봉과 용출봉 사이의 고개마루에 위치하고 있는 고도 488m에 설치된 암문(暗門)으로
암문이란 노출을 꺼리는 출입 통로로 출입문 위에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고 적의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출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문이다.
용출봉으로 오르면서 바라본 북한산 주봉들의 시원한 모습
용출봉 (龍出峰 571m)
용출봉에서 바라본 북한산 주봉들의 모습과 가야할 의상능선의 모습
용혈봉으로 오르면서 뒤 돌아서서 바라본 용출봉, 의상봉과 북한산 주봉 들의 시원한 모습
부왕동암문 (扶旺洞暗門 521m)
부왕동암문은 나월봉(羅月峰)과 증취봉(甑炊峰) 사이의 고도521m 지점에 설치되어 있는 암문으로
부왕동 이란 성곽안 동쪽의 부왕사로 내려가는 계곡 일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보이는데
이 부왕동암문은 북한산성에 설치되어 있는 7곳의 암문 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정식 홍예(虹霓)는 아니지만 위쪽 성돌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 처럼 만든 아름다운 암문이다.
홍예란 성문 얼굴의 윗 머리가 무지개 같이 반원형이 되게 만든 구조물 또는 그러한 구조로 만든 문이다.
715봉으로 오르면서 바라본 방금 지나온 의상능선의 모습과 북한산 주봉 들의 멋진 모습
x715봉
정상에 넓은 안부가 있는 해발고도 715봉 정상부에는 현재 무슨 공사를 하는듯 차단줄을 쳐 놓았다.
앞쪽으로 문수봉 정상의 바위가 돌출되어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청수동암문 (靑水東暗門 694m)
청수동암문은 715봉과 문수봉(727m) 사이의 고도694m에 설치되어 있는 암문이다.
이 암문은 1711년(숙종37년)에 북한산성을 축성하면서 설치한 13성문 중에서 7곳의 암문 중의 한 곳이다
문수봉 (文殊峰 727m)
보현봉 (普賢峰 714m)
사자능선의 발원봉인 해발고도 714m의 보현봉은 주변 조망이 그야말로 사방팔방으로 시원하게 보이는 곳으로
조선 태조 이성계가 도선국사와 함께 저 보현봉에 올라 조선 건국기도를 드렸다고 하는데...
저 보현봉은 예로부터 한양도성의 내맥을 살펴보기 위해 임금과 신하들이 오르 내리던 봉우리로
수양대군, 황희, 강희맹, 양성지 등이 삼각산 보현봉에 올라 삼각산의 형상과 한양의맥을 진단했다고 하며
그런 명성과 영험한 기운 탓인지 보현봉에는 하늘과 좀더 가까운 곳에서 기도를 하려는
토속, 무속, 무당 등의 잡신앙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퇴폐적인 허상을 쫒는 몰지각한 잘못된 토속, 무속 신앙인들을 단속하기 위하여
현재 북한산국립공원에서 저 사자능선을 2026년까지 자연휴식년제로 묶어놓고 출입을 금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대남문/ 문수봉암문 (大南門/ 文殊峰暗門 633m)
북한산성의 동서남북 4방위중 남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처음 축성 당시에는
문수봉암문(文殊峰暗門)으로 부르던 문으로 문수봉(727m)과 보현봉(714m) 사이의 안부에 설치되어 있다.
대성문 (大城門 625m)
대성문은 북한산성의 동남쪽의 고도 625m에 설치되어 있는 성문으로 형제봉능선을 타고
서울의 북쪽 평창동과 정릉동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관문으로
성문 하부는 홍예 모양으로 통로를 내고 성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도록 하였다.
상부 단층 문루는 우진각 지붕 형태인데 이는 지붕 네면 모두에서 불화산 공격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 대성문은 13성문 중에서 문루가 있는 6곳의 성문 중에서 가장 큰 문으로 문루는 1992년에 새로 복원 되었는데
현재 보는 바와 같이 다시 복원공사를 하고 있는 중으로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보국문으로 향하면서 앞쪽으로 북한산의 주봉들의 모습과 그 우측으로 도봉산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보국문/ 동암문 (輔國門/ 東暗門 567m)
정확한 본래의 명칭은 동암문(東暗門)으로 대성문과 대동문 사이의 고도567m 높이에 설치되어 있는 암문이다.
대동문 (大東門 540m)
북한산성의 성문 중에서 동쪽을 대표하는 성문으로 1993년에 문루를 새로 복원하였다.
성문 앞에는 그야말로 넓은 광장이 있어서 늘 산행인들로 붐비고 있고,
이 곳 대동문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시작되는 진달래능선이 우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단봉 (柴丹峰 607m)
동장대 (東將臺 610m)
동장대에서 용암문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성벽의 모습과 바닥에 통나무를 박아 놓은 특이한 길
앞쪽으로 노적봉과 만경대, 인수봉의 북한산 주봉들의 멋진 모습이 보이고 있다.
용암문/ 용암봉암문 (龍暗門/ 龍岩峰暗門 584m)
대동문 북쪽에 설치되어 있는 용암문은 용암봉 아래에 있어서 용암봉암문으로도 부르고 있다.
암문은 그 모양이 홍예가 아닌 방형이라는 것이 특징이며
상부에 문루를 만들지 않는데 용암문은 동암문인 보국문과 달리 성 내부를
홍예형으로 만들었고, 용암문 상부의 여장은 무너졌던 것을 1996년에 새로 복원한 것이다.
만경대 아래 사면 암릉길로 위문으로 향하면서 바라본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의 장엄한 모습
위문/ 백운봉암문 (衛門/ 白雲峰暗門 725m)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 고도725m의 안부에 설치되어 있는 암문으로
북한산성의 13성문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일제시대부터 위문이라 부르고 있다.
위문을 지나서 많은 산행인과 함께 백운대로 오르면서 뒤 돌아서 바라본 만경대와 노적봉, 인수봉의 모습
백운대 (白雲臺 836.5m)
북한산 정상의 모습으로 어린시절부터 이 북한산을 바라보며 성장을 하였는데 신라 말 고려 초에 도선국사는
이 북한산을 <북한산의 형상은 천하 으뜸이요 땅의 기운은 해동 전역에 퍼져 나갈만 하다>고 하면서
전국 제일의 길산으로 해동5악(海東五岳)의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지리산과 더불어
북한산을 해동5악에 포함시키며 북한산을 중악화산(中岳華山)이라 하여 해동5악에 중심이라 하였다.
해동5악은 北岳에 백두산, 南岳에 지리산, 東岳에 금강산, 西岳에 묘향산, 中岳에 북한산으로 해동5악의 중심이라 하였다.
백운대에서 바라본 인수봉과 만경대의 모습으로 <백운대~인수봉~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무원마을은 고향이 고양시 백석동으로 어린시절부터 이 산을 바라 보면서 성장을 하였다.
어린시절에 내 눈에 보이던 북한산의 모습은 저 멀리 푸르른 산이... 마치 에베레스트산 같이 보였었다.
고양시 백석동에서 자라면서 이 산을 삼각산이라고 불렀었는데, 언제부터인지 이 산 이름을 북한산으로 부르고 있다.
백운대에서 바라본 인수봉과 만경대의 모습으로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과 노원구 일대의 시가지가 한 눈에 조망되고 있다.
이곳에서 대동사 갈림길에서 직진을 하면 산성입구로 내려서는 하산길이고,
우측으로 접어들면 대동사와 상운사의 절 두 곳 지나면서 북문,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다.
아늑하고 편안한 고향집 뒷 동산같은 산책길을 휘파람을 불며 북문으로 향하고...
멋지게 붉게 물들은 환상적인 모습의 단풍이 힘든 <산행길에 수고가 많다>고 격려를 해주며 반기고 있다.
북문 (北門 430m)
4방위 중에 북쪽을 대표하는 성문으로 원효봉과 염초봉 사이의 고도430m에 위치하고 있다
원효봉으로 오르면서 바라본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과 의상능선의 의상봉, 용출봉, 문수봉 등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원효봉 (元曉峰 505m)
원효봉에서 서암문(시구문)으로 내려서면서 우측으로 바라본 노고산과 광탄면에 위치하고 있는 고령산의 멋진 모습
서암문/ 시구문 (西暗門 / 屍柩門 180m)
1711년 숙종37년에 북한산성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7곳의 암문 중에 한 문으로
북한산성 내에서 사망한 시신(屍身)들을 내 보내는 문이라 해서 시구문이라고도 불리우고 있다.
수문터
수문은 대서문과 서암문(시구문) 사이 계곡에 설치 되었던 북한산성의 수문의 흔적으로
조선시대 단위로 높이 16척(15.5m) 폭 50척(5m)로 북한산성 안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1925년 8월 을축년 대홍수 때에 성돌과 장대석이 모두 유실 되었고,
현재 계곡 옆 능선 위로 무너진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고, 수문 주변 바위에 축성 당시로 추정되는 구멍들이 보이고 있다.
무원마을
첫댓글 무원마을님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에 북한산성길 다녀오셨군요.
깊어가는 가을의 모습도 잘 담으셨습니다.
덕분에 지난 추억을 잠시 되돌려 봅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