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것이 아름답다 ♣
- 2018년 10, 11, 12월에 정성 주신 분들 -
<퇴임교사>
김시영 김승래 권나무 박유희 전주연 김정화 문경주
<동문>
강계형 장호영 김홍근 박경희
<현직교사>
양현철 안대준 한상배 김치헌 이형복 홍미영 이미정 김명숙
차희경 송미기 김영하 김은선 박진만 이원섭 남상욱
<후원회원>
김선애 이종숙 공희천 김현자 임재연 김세영 성논산 이강은 이화순 홍성훤
손태성 신명기 이철민 이복희 서준영 임선숙 임춘희 유인숙 장혜원
박성욱 이화영
♣ 훈훈한 새물내 인정 ♣
시를 주고받는 사람들은 참 아름답고 따뜻한 사람일 것 같습니다.
(저는 빼고요. 하하...)
12월 어느 날 제가 참 좋아하는 형이 저를 또 불러 주었습니다.
밤이 깊어갈 때 형은 저에게 아래와 같은 시를 들려 주었습니다.
나무가
풀이
뿌리를 내린다는 건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첫 맹서이다
어쩌려고
나는 그대 가슴에
뿌리를 내렸는가
이 시는 아마 그 형이 직접 쓴 시일 겁니다.
생각해 봅니다.
나는 지금까지 상대의 가슴에 뿌리를 얼마나 내렸는지를.
그것도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첫 맹서로서의 뿌리 내림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뿌리 내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정한 사람이 아닌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의 소중한 가슴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형이 내 가슴에 소중히 심어준 삶의 깊은 뿌리는 아닐지라도
흐르듯 따뜻한 웃음이 생각나는 그런 가볍고 정겨운 뿌리 내림 같은 것이라도 말입니다.
사랑과 정성으로 동부 밑거름학교를 키워 주시는 새물내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사랑하고 존경하는 여러분의 가슴속에 작은 뿌리 내림의 흔적이라도 남을 수 있게
우리 밑거름학교! 예쁘게 성장해 나가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훈훈한 새물내 인정 1 >
- 장혜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
살아가다 보면 전혀 드러나지 않게 살며시 소리 없이 사람의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주시는 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런 분은 든든함과 큰 축복으로 다가와 세상살이를 살맛나게 해줍니다. 장혜원 선생님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작년 봄, 차등 성과급 폐지를 위한 성과금 균등분배에 함께해서 힘과 용기를 주시더니
어느 깊어가는 가을에는 우리 동부밑거름학교에 따뜻한 웃음으로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아이들 교육에도 역시 소리 없는 헌신과 사랑, 열정으로 한결 같은 마음을 보여 주시는
장혜원 선생님!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 사랑합니다!로 여는 따뜻한 새물내 인정 2 >
작년(2018년) 한 해 동안 동부 밑거름학교를 정성으로 사랑해 주신 분들을 다시 마음속으로 새기며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김시영 김승래 권나무 박유희 전주연 김정화 문경주 강계형 장호영 김홍근 박경희
한상배 이원섭 김선애 이종숙 공희천 김현자 임재연 김세영 성논산 이강은 이화순 홍성훤
손태성 신명기 이철민 이복희 서준영 김치헌 임선숙 임춘희 유인숙 장혜원 님!
고맙습니다. 위의 분들, 한 분 한 분을 소리 내어 불러보니 떠오르는 시가 있습니다. 고마운 마음을 담아 김남주 시인의 ‘사랑은’을 전합니다.
사랑은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 함께 생각해 보는 고독한 새물내 인정 3 >
1.
새해
예수와 맑스는 의외로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새로운 사회는 없던 게 생겨나는 게 아니라
지금 사회가 그 씨앗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삶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내 안의 씨앗이 드러나는 새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2.
머슴들의 근심
현재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니 좌파와 우파니 하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헛소리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는 진보와 보수로도 좌파와 우파로도 나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좌우 기득권 연합’(10)과 ‘나머지 인민’(90)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그 분할은 갈수록 고착화하고 세습화한다. 한국 사회는 내용 면에서 조선시대 신분제와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치닫고 있다. 그 가장 주요한 원인은 90의 인민이 10의 기득권 다툼을 제 일로 받아들여 머슴 노릇을 한다는 데 있다. ‘좌파가 세상을 점령했다’ 혹은 ‘극우정권이 다시 온다’ 같은 말들은 그 자체의 의미를 떠나 머슴들의 근심을 표현한다. 이른바 촛불 혁명은 보수 기득권세력의 패악질에 분노한 인민이 진보기득권 세력을 불러들이는 일로 귀결했다. 이 상황을 빠져나가는 유일한 길은 90의 인민이 좌우 기득권 연합의 머슴 노릇을 거부하고 제 삶의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만일 한국 사회에 진보나 좌파라는 게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면, 오로지 그 싸움에 기여하는 일로서다.
3.
20년
①평소 노동을 비롯한 온갖 사회 문제에 각별한 관심과 진보적 태도를 피력하다가 ②선거 때면 ‘극우 척결 우선’ ‘한국적 정치 상황’ ‘사회 변화의 점진성’ 등의 논리로 리버럴 정당의 집권에 온 힘을 다 쏟고는 ③리버럴 정권이 결국 본색을 드러내고 여론이 악화될라치면 개혁의지가 변질되었네, 초심을 잃었네 비난하며 ①로 돌아간다.
이 행태를 20년째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들이 리버럴 집권에 집착하는 이유는 예의 ‘치우침 없는’ 정치적 소신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정치적 소신을 만들어내는 건 자취방을 전전하며 경찰에 쫓기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 은행 잔고와 부동산과 사회 문화 자본을 안정화하면서도 '진보 행세' 하려는 욕구다. 단지 그 욕구 때문에 그들은 대중과 급진 정치의 차단막이 됨으로써 이 사악한 자본의 제국의 수호에 기여한다. 또 한명의 젊은 하청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그들이 유체이탈적 개탄은 멈추고 그 사실을 되새기길 바란다. 20년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4.
인문학은 질문이다
인문학은 지식이 아니라 질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리고 그와 관련한 끊임없는 질문이다. 우리가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인문학적 지식은 그 질문들의 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습득이 나를 인문주의자로 살게 해주는 건 아니다. 남의 질문으로 내 질문을 대체할 순 없다. 인문학은 ‘고독한 질문’이며, 인문학적 지식은 다만 그 질문에 기여한다.
5.
나쁜 인간, 좋은 사람
맑스의 말마따나 사회는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게 아니라, 개인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들의 합으로 구성된다. 모든 관계에서 나쁜 개인도 모든 관계에서 좋은 개인도 없다. 나에게 나쁜 인간이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일 수 있고 나에게 좋은 사람이 누군가에게 나쁜 인간일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우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의 인격이 아니라 그의 행동을 판단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는 나쁜 인간이다’보다 ‘그는 나쁜 행동을 했다’가 우리를 좀 더 현명하게 한다.
6.
허황된 충고
'나 자신을 찾아야 한다' '나답게 살아야 한다' 같은 충고는 지당하면서도 허황되다. 사람들이 나 자신을 찾지 못하고 나답게 살지 않는 주요한 이유는 흐트러진 심리(스스로 정신만 차리면 회복되는)가 아니라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는 곧 상품으로써 가치다. 그의 인격적 면모, 개성이나 특징 같은 것들은 그 자체로 발현되는 게 아니라 상품으로써 가치로 추상화하거나 환원된다. 그게 자본주의에서 보편적 삶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인간은 나 자신을 찾고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앞서 충고와 같은 심리 조정이나 무책임한 위로 따위가 아니라, 내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와 대면을 수반한다. 자본주의와 그 가치 체계에 승복하면서 나 자신을 찾고 나답게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지적 각성으로부터 말이다. 세상엔 자본주의의 수혜를 누리면서도 멋스럽게 자신을 찾고 자신답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그런 삶의 스타일을 구매했으며, 그럴 수 있을 만큼 성공한 상품이다.
7.
혁명가
혁명은 인민의 자기 해방이다. 혁명가는 인민을 해방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인민의 자기 해방에 기여하는 존재다. 혁명가가 인민을 해방시키는 존재일 때 혁명은 새로운 지배로 귀결한다.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8.
자기 해방
극히 사적인 억압에서든 거대한 구조적 억압에서든 해방은 오로지 ‘자기 해방’이다. 누군가 위기에 빠진 나를 구출해 줄 수 있다. 내 해방에 기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구도 나를 해방시켜 줄 순 없다.
9.
감정의 인과관계
논리적 인과관계에 밝은 사람일수록 감정의 인과관계에 약한 경향이 있다. 감정의 인과관계를 ‘감정에 대한 논리적 인과관계’로 치환하려 들기 때문이다. 논리적 인과관계에 밝은 사람은 똑똑하지만, 감정의 인과관계에 밝은 사람은 사랑할 줄 안다.
10.
특별 상품
오늘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무엇 하나 구현할 수 없는 상황은 ‘경제적 불평등에 의해 자유가 침해된 상태’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그런 상태야말로 자본주의적 자유의 본 모습이다. 자본주의에서 ‘자유’ 개념은 ‘사적 소유’ 개념과 한몸으로 생겨났다. 존 로크를 비롯한 초기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일정 수준의 재산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들은 재산이 없는 사람은 자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에서 자유란 누구나 구입할 권리가 있지만 돈이 없으면 구입할 수 없는 ‘상품’이다. 예컨대 ‘느리고 생태적인 삶’은 돈과 관련없이 세계관과 삶의 철학에 의거하여 누구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상당한 재산이 있거나 안정적 지대 수입을 가진 사람만이 구현할 수 있다. 부지런히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 ‘느리고 생태적인 삶’을 구현하려 들면 생존의 위기에 직면한다. 그것은 시스템의 응징이다. ‘느리고 생태적인 삶’은 자본주의의 승자들을 위한 ‘특별 상품’에 속한다. 승자들은 그 상품들 덕에 ‘교양미’ ‘지성미’ ’존경’ 같은 일반적 소비로 얻기 어려운 특별한 효용을 얻을 수 있다.
< 시로 느껴 보는 새물내 인정 4 >
1.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 것은 한순간에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은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은 오고야 말리니
-푸시킨-
2.
긍정적인 밥
시 한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함민복-
3.
사랑
봄 물보다 깊으리라
가을 산보다 높으리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한용운-
4.
시(詩)가 된 그대 325
“잠자는 숲속 미녀는 왕자를 기다리며 100년 동안 잠을 자고 있었다.”
왕자가 아니라서 주인공이 되지 못했지만
저는 100년 만에 그대를 찾았어요.
그대 잠을 깨울게요.
한 사람이 마음에 들어와 씨앗을 뿌리면
사랑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잎사귀를 내밀며 커 가는지
한 사람이 가슴에서 꽃으로 피어나면
사랑이 어떻게 넝쿨을 뻗어
지경을 넓혀 가는지
그대 잠을 깨우고 알려드릴게요.
어떤 입맞춤이
100년 동안 사랑을 모르고
잠자던 숲속 미녀 그대를 깨우는지
신께 무릎 꿇고
그림형제 동화 주인공이 되게 해 달라
기도할게요.
-신명기-
5.
보헤미안 랩소디
마마--
나는 항상 감사했어요
그 많은 엄마 중에서
당신이 내 어머니여서
나를 세상 밖으로 보내준 당신
마마--
당신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안개 속처럼 흐려져요
태풍 앞에 마주 섰을 때에도
당신이 심어준 느티나무 같은 믿음 하나로
당당하게 주먹을 내뻗고 세상을 이길 수 있었죠
마마--
그러나 지금 나를 뒤흔드는
그녀의 바람은
당신이 가르쳐준 발걸음으로는
버틸 수가 없어요
마마--
밧줄로 꽁꽁 묶어
바닷속으로 던져진 몸이
숨도 쉬지 못해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때처럼
요동치는 이 가슴을 어이할까요
마마--
돌아와 주세요
제 앞에 다시 돌아와 말해 주세요
세상 손가락질 마디마디 부서뜨리고
버러지처럼 웃는 저 비웃음에
가래침 뱉고
네 심장을 감정에 맡긴 채
그녀에게 달려가라 말해 주세요
마마--
노래하게 해주세요
그녀를 위해
제 사람이 노래가 되게 해 주세요
밤하늘 쏟아지는 별로
악보를 만들고
여름날 퍼붓는 빗소리로
노래하게 해 주세요
마마--
고마워요
당신이 나를 세상으로 보낸 의미가
그녀를 선물로 주기 위해서라는걸
세상 눈치 길바닥에 던져버리고
갑갑했던 도덕에 휘발유를 부어 태울 거예요
태우고 불살라
날아오를게요
마마--
용기를 주세요
그녀를 안을 수 있게
마마--
용기를 주세요
마마--
- 프레디 머큐리 -
6.
갈대
언제부터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7.
천장호에서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나희덕-
8.
山에 가면
산에 가면
나는 좋더라
바다에 가면
나는 좋더라
님하고 가면
더 좋을네라만!
-조운-
9.
봄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중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김수영-
10.
꽃씨를 거두며
언제나 먼저 지는 몇 개의 꽃들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이슬과 바람에도 서슴없이 잎을 던지는 뒤를 따라 지는 꽃들은 그들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며 사랑한다는 일은 책임지는 일임을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는 일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시듦, 화해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일이어야 함을 압니다. 시드는 꽃밭 그늘에서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어 주먹에 쥐며 이제 기나긴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삶에서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것이 남아 있는 우리들의 사랑임을 압니다. 꽃에 대한 씨앗의 사랑임을 압니다.
-도종환-
♣ 재미있는 우리말글 ♣
겨울 강가에서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내리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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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는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이번 새물내 재미있는 우리말글은
삶의 무게가 느껴지고 철학적 여운이 감도는 시 ‘겨울 강가에서’로 시작해 봅니다.
이 시를 마음에 담아 삶의 자세를 늘 새로 가다듬을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이번에 발행되는 동부밑거름학교 새물내 ‘재미있는 우리말글’에는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쉼표, 마침표>와 한글문화운동 시민단체인 한글문화연대에서 발행하는 소식지 <한글 아리아리>에 실려 있는 글을 옮겨 왔습니다.
재미있게 읽고 많이 생각하면서 우리말글을 더 아끼고 사랑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름다운 당신을 늘 응원합니다.
◆ 우리말 달인 ◆
기해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올해의 계획을 세우며 우리말 달인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 아래의 밑줄 친 부분의 표기는 바르게 되었을까요?
1. 벌레 물려 가려운 데에는 이 약이 직효다.
2. 그 일을 끝내는 데 꼬박 여드레가 걸렸다.
3. 우리 집 강아지는 얼룩배기다.
4. 올해 벼농사는 망쳐서 쭉정이가 반이다.
5. 그 문제는 문화적인 맹락에서 생각해야 한다.
6. 그는 이미 그쪽 사람들에게 세뇌되었는지 모른다.
7. 잠을 못 자서 오전 내내 흐리멍텅했어.
8. 그는 왜소하지만 힘이 세다.
9. 일이 얽히고섥혀 풀기가 어렵다.
10. 이번 작업은 웹툰-만화 영화 영역을 넘나드는
매체 융합 콘텐츠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정답 확인>
1. X ‘즉효’가 맞습니다. ‘곧 반응을 보이는, 약 따위의 효험’ 또는 ‘어떤 일에 바로 나타나는 좋은 반응’을 뜻하는 말은 ‘즉효’입니다.
2. O ‘여덟 날’을 뜻하는 말은 ‘여드레’입니다.
3. X ‘얼룩빼기’가 맞습니다. ‘겉이 얼룩얼룩한 동물이나 물건’을 뜻하는 말은 ‘얼룩빼기’입니다.
4. O ‘껍질만 있고 속에 알맹이가 들지 아니한 곡식이나 과일 따위의 열매’ 또는 ‘쓸모없게 되어 사람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은 ‘쭉정이’입니다.
5. X ‘맥락’이 맞습니다. ‘사물 따위가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나 연관’을 뜻하는 말은 ‘맥락’입니다.
6. O ‘사람이 본디 가지고 있던 의식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게 하거나, 특정한 사상·주의를 따르도록 뇌리에 주입하는 일’은 뜻하는 말은 ‘세뇌’입니다.
7. X ‘흐리멍덩하다’가 맞습니다. ‘정신이 맑지 못하고 흐리다’를 뜻하는 말은 ‘흐리멍덩하다’입니다.
8. O ‘몸뚱이가 작고 초라하다’를 뜻하는 말은 ‘왜소하다’입니다.
9. X ‘얽히고설켜’가 맞습니다. ‘가는 것이 이리저리 뒤섞이다’나 ‘관계, 일, 감정 따위가 이리저리 복잡하게 되다’를 뜻하는 말은 ‘얽히고설키다’입니다.
10. O 국립국어원의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에서는 ‘트랜스 미디어’의 다듬은 말로 ‘매체 융합’을 최종 선정 하였습니다.
◆ 우리말 이야기 ◆
<1>
‘나침반’과 ‘나침판’
우리가 자주 쓰는 말들 가운데는 발음이 헷갈려서 잘못 적고 있는 말들이 더러 있다. 받아쓰기를 해보면, ‘폭발’을 ‘폭팔’로 적는 학생들이 많다. [폭빨]이라고 발음해야 할 낱말을 [폭팔]로 잘못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판판하고 넓은 나뭇조각은 ‘널판지’가 아니라 ‘널빤지’라고 해야 올바른 말이 된다. ‘널빤지’는 (한자말이 아닌) 순 우리말이다. 이 말을 한자말로 표현하면 널조각 판(板) 자를 붙여 ‘널판’ 또는 ‘널판자’가 된다. 곧 ‘널빤지’라고 하거나 ‘널판’, ‘널판자’라고 하는 경우만 표준말이다.
그런가 하면, 발음의 혼동으로 잘못 적히던 말들이 그대로 복수 표준어로 인정된 사례도 있다. 기계 장치들의 작동 상태를 알리는 눈금을 새긴 면을 ‘계기반’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동차에 이 계기반을 붙여 놓고 흔히 ‘계기판’이라고 부르다보니 ‘계기반’과 ‘계기판’이 복수 표준어가 되었다. 또, 동서남북 방향을 지시하는 계기를 ‘나침판’이라고 하지만, 이 말도 본디는 ‘계기반’과 마찬가지로 ‘나침반’이 옳은 말이었다. 그러다 ‘나침판’이라고 자주 부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전에 올려서 둘 다 표준말로 인정하였다.
발음 때문에 혼동해서 말하다가 거꾸로 본디의 말이 없어져 버린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남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을 ‘끄나불’이라고 했는데, 이 말을 많은 사람들이 ‘끄나풀’이라고 말하다 보니, 아예 표준말을 ‘끄나풀’로 정해버렸다. 이제 ‘끄나불’은 북한에서만 쓰이는 말이 되었다. 이 밖에도 “나발을 분다.”의 ‘나발’과 ‘꽃’이 합해진 ‘나발꽃’이 오늘날에는 ‘나팔꽃’으로 바뀌어 버린 경우나, ‘사이 간’(間) 자와 ‘막이’의 합성어인 ‘간막이’가 ‘칸막이’로 변한 경우가 모두 그런 사례들이다.
<2>
아퀴, 잡도리
황금돼지해라 불리는 새해가 밝았다. 누구나 한 해 동안 여러 가지 어수선한 일들이 있었을 텐데, 이렇게 어수선한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갈피를 잡은 뒤에 끝매듭을 짓는 것을 ‘아퀴 짓는다’고 한다. 여기서 ‘아퀴’는 어수선한 일들을 갈피 잡아 마무르는 끝매듭을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한 해를 아퀴 짓고 새해를 맞이하자.”고 하면, 한 해 동안 있었던 잡다한 여러 일들을 제자리에 잘 끼워 맞추고 새해를 맞이하자는 뜻이 된다.
‘아퀴’라는 말이 요즘 잘 쓰지 않아서 낯설게 들리는 데 비하여, 이와 비슷한 ‘매조지다’라는 말은 비교적 귀에 익숙한 말이다. ‘매조지다’라고 하면 “일의 끝을 단단히 단속하여 마무리하다.”는 뜻으로 쓰이는 순 우리말이다. “소포 꾸러미를 단단히 매조지다.”처럼 쓸 수도 있고, “올해를 잘 매조지어 내년을 준비하자.”처럼 쓸 수도 있다.
직장에서 가끔 “한 해 업무를 잘 단도리하자.”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때의 단도리는 일본말로서 ‘준비하다’는 뜻이지 ‘마무리하다’는 말이 아니다. 이런 경우에, “일이 잘 되도록 단단히 대책을 세우다.”는 뜻으로 쓰는 우리말은 ‘잡도리하다’라고 한다. ‘잡도리하다’는 한자말 ‘단속하다’와 같은 말이다. 한 해 업무를 잘 잡도리하고 새해를 맞이하자.
<3>
신병 인도
새해 들어 개봉되는 영화 가운데 ‘말모이’가 눈에 뜨인다. 일제강점기 아래에서 모진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조선말 사전을 만들어낸 조선어학회 어른들의 희생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그 암울한 시기에 우리말을 지켜내 독립의 기틀을 삼았음에도, 광복 70년이 훨씬 지난 아직까지 우리는 일본말을 오롯이 떨쳐내지 못하였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넓은 뜻으로 우리말이라고 하면, ‘하늘’, ‘땅’, ‘사람’과 같은 순 우리말과 ‘천지’, ‘인간’, ‘세상’과 같은 한자말을 포함하여 이른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한자말 가운데는 우리말 곧 우리식 한자말이 아닌 것들이 무척 많이 섞여 있다. 그 대부분은 일본말이다. 가령 “정부의 납득할 수 없는 인사”라는 기사에 쓰인 ‘납득’은 일본식 한자말이다. 이와 비슷한 우리식 한자말에 ‘이해’가 있다. “정부의 이해할 수 없는 인사”라 하든지, 아니면 “정부의 알 수 없는 인사”처럼 우리말로 고쳐 써야 한다.
“범죄자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고 있다.”에서, ‘신병’이란 말도 본디 우리에게는 없는 일본말이다. 이 말은 ‘몸’이나 ‘일신’, ‘신상’, ‘신분’과 같은 우리식 한자말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인도’라는 말 역시 일본말을 한자음으로 읽은 것이다. 이 말은 ‘건네줌’, ‘넘겨줌’으로 순화해서 쓰도록 권장하고 있다. “범죄자의 몸을 넘겨주도록 요구하고 있다.”로 고쳐 쓰는 것이 옳다. 우리말을 두고 일본말을 버릇처럼 쓰다보면, 일본말 잔재 청산은 더욱 더 먼 길이 될 것이다.
<4>
‘재원’과 ‘재사’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지긋지긋한 무더위도 자연의 큰 걸음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나 보다. 어느덧 한밤중에는 창문을 닫고 자야 할 만큼 서늘해졌다. 오랜만에 마주한, 여름을 견디어 낸 벗들은 마치 훈장을 단 것처럼 목덜미와 팔뚝이 그을어 있다. 이때 ‘그을렸다’를 가끔 ‘그슬렸다’라 말하기도 하는데 ‘그을다’와 ‘그슬다’는 뜻이 다른 낱말이다.
한여름 햇볕에 피부를 살짝 태운 모습을 나타내는 말은 ‘그슬리다’가 아니라 ‘그을리다’이다. 알맞게 햇볕이나 연기 등에 오래 쬐면 빛이 검게 되는데, 그런 상태를 ‘그을다’, ‘그을었다’고 한다. ‘그을리다’는 이 ‘그을다’의 피동형이면서 또한 사동형(그을게 하다)이다. 햇볕에 그을린 얼굴도, 연기에 그을린 굴뚝도 새까맣게 된다. 이와는 달리, ‘그슬다’는 “불에 겉만 조금 태우다”는 뜻이다. ‘그슬리다’는 이 ‘그슬다’의 피동형이면서 사동형이다. 햇볕에 살갗이 검어지면 ‘그을리다’이고,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짐승의 털이 불에 약간 타면 ‘그슬리다’이다.
이처럼 그 모습과 뜻이 비슷하여 헷갈리는 낱말 가운데 ‘모사’와 ‘묘사’도 있다. ‘모사’는 대상을 흉내 내어 그대로 표현하는 일이다. 따라서 남의 그림을 똑같이 베껴 그리는 것도 모사이고, 남의 목소리나 동물의 소리를 흉내 내는 일은 성대모사다. 이와는 달리, ‘묘사’는 대상이나 현상을 언어로 서술하거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일이다. ‘심리 묘사’라든지, ‘생생한 현장 묘사’처럼 사용한다. 말하자면, 모사는 ‘똑같이 흉내 내기’이고, 묘사는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기’이다.
- 성기지 운영위원 -
출처: http://www.urimal.org/1860?category=411615 [한글문화연대 새 누리집]
◆ 맛의 말, 말의 맛 ◆
금수저의 오류
인간이 ‘먹이’가 아닌 ‘음식’을 먹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리고 온갖 종류의 음식을 ‘우아하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리스 신화에 기댄다면 프로메테우스와 헤파이스토스 덕분일 것이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덕분에, 신 헤파이스토스에게 대장 기술을 배운 대장장이 덕분에 우리는 음식을 우아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 중 하나가 불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불의 열로 무언가를 익힐 수 있는데 이 덕분에 인간의 먹거리에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가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인데 불에도 잘 견디고 튼튼하기도 한 각종 조리 도구와 식사 도구 덕에 동물과는 다른 생활을 하게 된다.
‘굽다, 끓이다, 삶다, 찌다, 지지다, 볶다, 튀기다, 부치다’는 모두 불을 이용해 재료를 ‘익히는’ 과정이다. 이 중에서 ‘굽다’는 특별한 도구 없이 그저 불 위에 재료를 얹으면 되니 가장 먼저 이용된 방법이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익힐 재료와 불을 분리하되 열을 전달할 수 있는 도구를 필요로 한다. 재료를 익히는 도구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도구는 ‘솥’인데 이는 아궁이에 불을 때서 취사와 난방을 겸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주거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냄비’는 난방과 취사가 분리되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다. 부뚜막이 아닌 화로나 가스레인지 등에 올릴 때는 작고 가벼운 도구가 필요한데 그것이 ‘냄비’다. 그런데 이 말의 기원이 영 애매하다. 냄비는 우리의 전통적인 주방 도구가 아니기 때문에 옛 문헌에는 보이지 않다가 19세기에 ‘남비’가 보인다. ‘남비’가 ‘냄비’가 되는 것은 ‘아비’가 ‘애비’가 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문제는 ‘남비’란 말의 기원을 일본어의 ‘나베(なべ)’로 보는 것에 있다. ‘나베’가 ‘남비’로 바뀌는 것은 말소리의 일반적인 변화로는 설명이 안 된다. 말 끝에 있는 ‘베’가 ‘비’로 바뀌는 것도 이상하지만 ‘ㅁ’이 끼어드는 이유도 알 수 없다. ‘나베’를 ‘남와(南鍋)’로 쓴 사례도 발견되는데 여기서 ‘남’을 따온 것일 수도 있으나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우리말 속에 들어와 있는 일본말에 대해서 우리는 심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 고유어가 있는데 굳이 한자어를 쓰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냄비’에 대해서만은 관대한 편이다. 19세기 이전에 들어와 우리말 속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웃 간에 말과 글이 오고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솥’의 다른 말인 ‘가마’는 일본어에서도 똑같은 뜻, 똑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으니 ‘냄비’의 빚은 이미 갚은 것인지 모른다. 말과 글이 오고가는 자연스러운 문제에 대해서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 특히 한글날 즈음만 되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이를 ‘냄비 근성’이라 하여 우리의 뿌리 깊은 습성처럼 비하하는 것은 더더욱 기분이 나쁘다. 열을 빠르게 전달하는 데 최선인 냄비는 죄가 없다.
갖가지 방법으로 조리를 한 음식은 각각의 상태에 맞는 도구를 사용해 입에 도달하게 해야 비로소 마시고 먹을 수 있게 된다. 솥이나 냄비에 익힌 음식 중에는 따뜻하게 먹어야 제맛이 나는 것들이 있다. 특히 국물이 있는 찌개나 국은 따끈한 상태에서 먹어야 하고, 일부 탕류는 펄펄 끓는 상태에서 먹기도 한다. 이런 음식에 입을 가져다 대면 화상을 입기 십상이니 다른 도구가 있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숟가락이다. 오래된 무덤을 파 보면 우리의 무덤에서만 발견되는 도구가 바로 숟가락이니 우리의 음식 문화에서 숟가락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여러 반찬을 골고루 먹는 우리의 상차림에서 먹고 싶은 반찬을 쏙쏙 골라 먹는 데는 젓가락이 제격이다.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젓가락을 사용하지만 우리만 유독 쇠로 된 무거운 젓가락을 쓴다. 집고, 찢고, 찍는 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숟가락’과 ‘젓가락’은 서로 다른 맞춤법 때문에 자주 거론이 된다. 비슷한 구성으로 보이는 합성어인데 받침이 각각 ‘ㄷ’과 ‘ㅅ’인 것이다. 이 두 말에는 모두 ‘가락’이 들어가 있으니 ‘술’과 ‘저’가 ‘가락’과 결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젓가락’은 소위 ‘사이시옷’이 들어간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지만 ‘숟가락’이 문제다. ‘술’과 ‘가락’이 결합될 때도 ‘사이시옷’이 필요하니 ‘숤가락’이 되고, 과거에는 이렇게 쓰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것이 ‘숟가락’으로 바뀐 것은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런 예로는 ‘이튿날, 사흗날, 삼짇날’ 등이 더 있다. 이러한 예들도 있으니 ‘숟가락’을 ‘숫가락’으로 쓰고 싶어도 ‘숟가락’으로 쓰는 것이 맞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합쳐 ‘수저’라 하는데 이는 ‘술(匙)’과 ‘저(箸)’가 합쳐진 말이다. ‘술’은 ‘밥 한술’이란 말 속에서 확인할 수 있고, ‘저’는 본래 고유어인데 한자 ‘箸’를 빌려 적은 것으로 보인다. 두 말이 합쳐질 때 ‘ㄹ’이 ‘ㅈ’ 앞에서 떨어져 ‘수저’가 된 것이다. 음식을 먹는 도구를 가리킬 때는 ‘수저’라는 말보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각각 쓰는 경우가 더 많다. 대신 이 도구를 만드는 재료와 함께 쓸 때는 ‘수저’를 써서 ‘금수저’, ‘은수저’ 등으로 쓴다. 이 말들은 그저 재료를 구별하기 위한 것일 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쓰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참으로 씁쓸한 일이다. 밥을 먹는 도구가 어쩌다 사람의 신분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다. 부유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가리킬 때 ‘금수저’니 ‘은수저’니 하는 말을 자주 쓰게 된다. 팍팍한 현실에 대한 자조의 표현이니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금수저’란 말에 숨겨져 있는 오류가 맘에 걸린다. 요즘 쓰이는 말은 ‘금수저’이지만 이 말의 근원은 ‘은수저’ 그것도 영어의 ‘silver spoon’인 것은 분명하다. 영어의 관용적 표현인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가 격을 더 높여 ‘금수저’로 바뀌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독에 반응하는 은의 특성 때문에 임금을 비롯한 부유한 이들이 사용하기도 했고, 아이들의 백일이나 돌 선물로도 흔했으니 ‘은수저’는 그리 낯선 표현은 아니다. 그리고 부의 등급을 매기기 위해 ‘금수저’를 추가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수저’에 있다. ‘silver spoon’을 ‘은수저’로 번역한 것부터 잘못된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으니 ‘스푼(spoon)’은 ‘숟가락’으로 번역해야 더 정확하다. 그러니 ‘금수저론’도 ‘금숟가락론’이 되어야 하고 다른 등급의 ‘수저’도 모두 ‘숟가락’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냄비’도 다른 나라 말에서 들어온 말이고, ‘금수저’도 다른 나라의 속담에서 유래한 말이다. ‘냄비’의 용도를 감안하면 이 말은 우리말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수저’는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말이다. ‘금수저’를 ‘금숟가락’으로 고치라는 말이 아니다. 사람의 등급을 수저로 매기는 세태가 문제다. 현실에서는 금수저나 은수저로 밥을 먹는 이는 드물다. 우리에게 익숙한 수저는 손잡이 쪽에 인삼이 새겨진 스테인리스 수저다. 현실의 ‘금수저’들이 온갖 사고를 치는 소식들이 들리고 있지만 대다수의 ‘스테인리스 수저들’은 묵묵히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글_한성우(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이 글은 필자가 2016년에 펴낸 ≪우리 음식의 언어≫(어크로스)에서 일부를 추려 내어 다시 쓴 것이다.
◆ 다채로운 우리말 ◆
<처음과 관련된 우리말>
*마루 : 어떤 사물의 첫째 또는 어떤 일의 기준
*마수걸이 : 맨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
*어귀 : 드나드는 목의 첫머리
*첫선 : 처음 세상에 내놓음
*첫입 : 음식을 첫술로 먹거나 첫 번으로 베어 물어 먹는 입
<겨울 추위와 관련된 우리말>
*된추위 : 몹시 심한 추위
*매얼음 : 매우 단단하게 꽁꽁 언 얼음
*장대추위 : 오랫동안 내리 계속되는 심한 추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포실하다 : 눈이나 비, 연기, 안개, 빛 따위의 양이 많다
*한추위 : 한창 심한 추위
*누그럽다 : 몹시 추워야 할 날씨가 따뜻하다
*누긋하다 : 추위가 약간 풀리다
*득하다 :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다
*서리꽃 : 유리창 따위에 서린 김이 얼어서 꽃처럼 엉긴 무늬
*손돌이추위 : 음력 10월 20일 무렵의 심한 추위
<풍성함과 관련된 우리말>
*활짝 핀 국화가 소담스럽다 : 생김새가 탐스러운 데가 있다
*밤톨이 오달지다 : 허술한 데가 없이 알차다
*가을배추가 옹골지다 : 실속이 있게 속이 꽉 차 있다
*제철 맞은 대하가 푸지다 : 매우 많아서 넉넉하다
*코스모스가 흐드러지다 : 매우 탐스럽거나 한창 성하다
<수량과 관련된 우리말>
*꾸러미 : 달걀 열 개를 묶어 세는 단위
*두름 : 조기 따위의 물고기를 짚으로 한 줄에 열 마리씩 두 줄로 엮은 것을 세는 단위
*뭇 : 미역을 묶어 세는 단위. 한 뭇은 미역 열 장을 이른다.
*접 : 채소나 과일 따위를 묶어 세는 단위. 한 접은 채소나 과일 백 개를 이른다.
*채 : 가공하지 아니한 인삼을 묶어 세는 단위. 한 채는 인상 750그램을 이른다.
<바다와 관련된 우리말>
*까치놀 : 석양을 받은 먼바다의 수평선에서 번득거리는 노을
*난바다 : 육지로 둘러싸이지 아니한,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목새 : 물결에 밀리어 한곳에 쌓인 보드라운 모래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해미 : 바다 위에 낀 아주 짙은 안개
◆ 단어장 ◆
1. ‘잎파리’와 ‘이파리’ 중 맞는 것은?
*거센 바람에 나무 (잎파리/이파리)가 모두 떨어졌다.
☞ ‘이파리’가 맞습니다. ‘나무나 풀의 살아 있는 낱 잎’을 뜻하는 말은 ‘이파리’입니다.
2. ‘바둥거리다’와 ‘바등거리다’ 중 맞는 것은?
*갓 태어난 강아지들이 밖으로 나가려고 네 다리를 (바둥거렸다/바등거렸다).
☞ ‘바둥거리다’가 맞습니다. ‘덩치가 작은 것이 매달리거나 자빠지거나 주저앉아서 팔다리를 내저으며 자꾸 움직이다’를 뜻하는 말은 ‘바둥거리다’입니다.
3. ‘케케묵은’과 ‘캐캐묵은’ 중 맞는 것은?
*동생은 (케케묵은/캐캐묵은) 장롱을 닦았다.
☞ ‘케케묵은’이 맞습니다. ‘물건 따위가 아주 오래되어 낡다’, ‘일, 지식 따위가 아주 오래되어 시대에 뒤떨어진 데가 있다’를 뜻하는 말은 ‘케케묵다’입니다.
4. ‘느지막하다’와 ‘느즈막하다’ 중 맞는 것은?
*형은 (느지막하게/느즈막하게) 아침을 먹었다.
☞ ‘느지막하다’가 맞습니다. ‘시간이나 기한이 매우 늦다’를 뜻하는 말은 ‘느지막하다’입니다.
5. ‘몰아붙이다’와 ‘몰아부치다’ 중 맞는 것은?
*고양이는 생쥐를 구석으로 (몰아붙였다/몰아부쳤다).
☞ ‘몰아붙이다’가 맞습니다. ‘한쪽 방향으로 몰려가게 하다’ 또는 ‘남을 어떤 상황이나 방향으로 몰려가게 하다’를 뜻하는 말은 ‘몰아붙이다’입니다.
6. ‘빗다’와 ‘빚다’ 중 맞는 것은?
*일부 공사가 차질을 (빗고/빚고) 있다.
☞ ‘빚다’가 맞습니다. ‘어떤 결과나 현상을 만들다’를 뜻하는 말은 ‘빚다’입니다.
7. ‘아등바등’과 ‘아둥바둥’ 중 맞는 것은?
*아이는 선반 위의 과자를 꺼내려고 발끝을 세우고 (아등바등/아둥바둥)했다.
☞ ‘아등바등’이 맞습니다. ‘무엇을 이루려고 애쓰거나 우겨대는 모양’을 뜻하는 말은 ‘아등바등’입니다.
8. ‘기로’와 ‘귀로’ 중 맞는 것은?
*우리는 지금 성공과 실패의 (기로/귀로)에 있다.
☞ ‘기로’가 맞습니다. ‘여러 갈래로 갈린 길’ 또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은 ‘기로’입니다.
9. ‘괘념’과 ‘궤념’ 중 맞는 것은?
*급한 일이 있으면 (괘념/궤념) 말고 가 보게.
☞ ‘괘념’이 맞습니다. ‘마음에 두고 걱정하거나 잊지 않음’을 뜻하는 말은 ‘괘념’입니다.
10. ‘수군거리다’와 ‘수근거리다’ 중 맞는 것은?
*아이들이 (수군거리며/수근거리며) 낄낄대고 있었다.
☞ ‘수군거리다’가 맞습니다. ‘남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낮은 목소리로 자꾸 가만가만 이야기하다’를 뜻하는 말은 ‘수군거리다’입니다.
11. ‘괴나리봇짐’과 ‘개나리봇짐’ 중 맞는 것은?
*옛날 선비들은 (괴나리봇짐/개나리봇짐)을 하나씩 둘러메고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왔다
☞ ‘괴나리봇짐’이 맞습니다. ‘걸어서 먼 길을 떠날 때에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메는 작은 짐’을 뜻하는 말은 ‘괴나리봇짐’입니다.
12. ‘의뭉스럽다’과 ‘으뭉스럽다’ 중 맞는 것은?
*그는 (의뭉스러운/으뭉스러운) 바보짓을 했다
☞ ‘의뭉스러운’이 맞습니다. ‘보기에 겉으로는 어리석어 보이나 속으로는 엉큼한 데가 있다’를 뜻하는 말은 ‘의뭉스럽다’입니다.
13. ‘재작년’과 ‘제작년’ 중 맞는 것은?
*누나는 (재작년/제작년) 여름에 결혼했다
☞ ‘재작년’이 맞습니다. ‘지난해의 바로 전 해’를 나타내는 말은 ‘재작년’입니다.
14. ‘할퀴다’와 ‘할키다’ 중 맞는 것은?
*고양이가 달려들어 팔을 (할퀴고/할키고) 달아났다
☞ ‘할퀴다’가 맞습니다. ‘손톱이나 날카로운 물건으로 긁어 상처를 내다’를 뜻하는 말은 ‘할퀴다’입니다.
15. ‘깎다’와 ‘깍다’ 중 맞는 것은?
*그는 머리를 짧게 (깎았다/깍았다)
☞ ‘깎다’가 맞습니다. ‘칼 따위로 물건의 거죽이나 표면을 얇게 벗겨 내다’, ‘풀이나 털 따위를 잘라 내다’를 나타내는 말은 ‘깎다’입니다.
◆ 다듬은 말 알아보기 ◆
<1>
먹을거리 찾아
‘먹거리 장터’로
우리 먹거리 문화도 어느새 서구화되어 있습니다. 빈대떡이나 파전 대신 피자를 즐겨 먹고, 더운 여름에는 수박 화채에 얼음을 띄우는 대신에 과일 등을 얼려 만든 스무디1)나 주스 등을 살짝 얼린 슬러시 등을 더 좋아합니다.
‘푸드’라는 말이 ‘먹거리’ 또는 ‘먹을거리’라는 말이나 ‘음식’ 또는 ‘식품’이라는 말을 누르고 자리를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공간도 ‘부엌’에서 ‘주방’을 거쳐 ‘키친’으로 변해 왔습니다. 부엌에 설거지할 수 있는 ‘싱크대’ 하나가 놓이더니 이제는 준비대, 개수대, 조리대, 가열대 등이 하나로 연결된 붙박이형 부엌 가구인 ‘시스템 키친’까지 등장했습니다.
• 푸드(food) → 음식, 식품 → 먹거리, 먹을거리
• 키친(kitchen) → 주방 → 부엌
• 싱크대(sink臺) → 설거지대, 개수대
• 시스템 키친(system kitchen) → 일체형 부엌(주방) 가구
부엌에서 요새는 행주 대신에 종이로 된 일회용 ‘키친타월’ 또는 ‘페이퍼 타월’을 흔히 씁니다. 세수하고 나서 닦는 ‘타월’은 ‘수건’이지만 부엌에서 쓰는 타월은 행주입니다. 키친타월이나 페이퍼 타월은 주로 종이로 만들어서 부엌에서 주로 쓰는 수건이니까 ‘종이 행주’라고 하면 됩니다.
• 타월(towel) → 수건
• 키친타월(kitchen towel)/페이퍼 타월(paper towel) → 종이 행주
요새는 ‘주방장’이 ‘주방’에서 먹을 것을 요리하는 대신에 ‘셰프’가 ‘푸드 코트’에서 ‘레시피’에 따라 ‘쿠킹’을 합니다. 셰프는 요리사나 주방장을 이르는 말입니다. 어느새 우리말에 들어와 주방장보다는 더 전문적이거나 고급스러운 행세를 하려 합니다. 호텔에서나 동네 짜장면 집에서나 요리를 하는 사람은 요리사이고 그 우두머리는 주방장입니다. 주방장과 셰프는 격이 다르다고 항변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요리를 할 때 쓰이는 재료나 만드는 방법, 보관 방법 등을 설명해 주는 것을 ‘레시피’라고 하는데 이 말은 ‘조리법’이라고 하면 됩니다. 백화점 지하 등 한 건물 안에 여러 종류의 식당들이 모여 있는 구역을 ‘푸트 코트’라고 하는데 여러 먹거리를 파는 가게가 모여 있으므로 ‘먹(을)거리 장터’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 셰프(chef)2) → 요리사, 주방장
• 푸드 코트(food court) → 먹거리 장터, 먹을거리 장터
• 레시피(recipe) → 조리법
• 쿠킹(cooking) → 요리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요리는 맛깔스러워야 하지만 보기에도 좋아야 합니다. 요리에 멋을 더하는 사람을 ‘푸드 스타일리스트’라고 합니다. 패션 분야에서 ‘스타일리스트’는 ‘맵시가꿈이’라고 할 만한데, 요리 분야에서 스타일리스트는 ‘요리 예술사’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맛깔스럽고 보기 좋게 요리된 음식을 손님에게 제공하는 것을 ‘서빙하다’라고 합니다. ‘서빙하다’는 ‘내다’ 또는 ‘내오다’라고 하든지 ‘봉사하다, 접대하다’라고 해도 됩니다.
• (패션) 스타일리스트(stylist) → 맵시가꿈이
• 푸드 스타일리스트(food stylist) → 요리 예술사
• 서빙하다(serving-) → 내다, 봉사하다, 접대하다
1) 규범 표기 미확정.
2) 규범 표기 미확정.
<2>
‘뼈째회’ 맛있게 먹고
‘각자내기’ 하자
횟집이나 일식집에서 본 음식이 나오기 전에 밑반찬으로 딸려 나오는 여러 음식을 우리는 흔히 ‘쓰키다시(つきだし)’라고 합니다. 이 말은 ‘곁들이찬’이라는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곁들이’는 다음과 같은 뜻의 우리말입니다.
• 곁들이: 주된 음식의 옆에 구색을 맞추기 위하여 차려 놓은 음식
• 쓰키다시(つきだし) → 곁들이찬
생선 중에서 주로 ‘머드러기’를 골라서 살을 얇게 저며 회를 쳐서 먹습니다. 이것을 ‘사시미’라고 하는데, ‘생선회’라고 바꿔 쓰면 됩니다.
• 머드러기: 과일이나 채소, 생선 따위의 많은 것 가운데서 다른 것들에 비해 굵거나 큰 것
• 사시미(さしみ) → 생선회
전어나 광어, 도다리 새끼 등은 뼈째 썰어서 먹기도 하는데 이것을 ‘세고시’라고 합니다. 뼈째 썬 회니까 ‘뼈째회’로 바꿔 쓰면 됩니다. 초와 소금을 친 흰밥에 생선 살점 등을 얹은 음식을 ‘스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스시’는 ‘초밥’으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 세고시/*세꼬시(せごし) → 뼈째회
• 스시(すし) → 초밥
생선회를 다 먹으면 생선 살의 나머지 부분으로 끓인 탕이 나오기도 하는데 이것을 흔히들 ‘서더리탕’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서덜’에 ‘탕’이 붙은 말인 ‘서덜탕’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때는 생선과 채소, 두부 등을 넣어 맑게 끓인 국인 ‘지리(ちり)’를 먹기도 하는데, 이것은 ‘맑은탕’이라고 하면 됩니다.
• 서덜: 생선의 살을 발라내고 난 나머지 부분
• 지리(ちり) → 맑은탕
우리 선조들은 여럿이 어울려 음식을 ‘도르리’하며 먹었습니다. 요즘 방식으로는 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더치페이’나 ‘각출’과 비슷한 것입니다. ‘더치페이’는 ‘각자내기’로 바꿔 쓸 수 있습니다.
• 도르리: 똑같이 나누어 주고 골고루 돌라 줌
• 더치페이(Dutch pay), 각출(各出) → 각자내기
잔치 음식을 여러 군데에 나눠 주려고 ‘반기’하기도 했습니다.
• 반기하다: 잔치나 제사 후에 음식을 여러 군데에 나누어 담다
한 끼 음식을 먹더라도 사시미와 세고시를 쓰키다시와 함께 먹고 스시와 지리까지 먹고 나서 더치페이하는 것보다는 ‘생선회와 뼈째회를 곁들이찬과 함께 먹고 초밥과 맑은탕까지 먹고 나서 각자내기’하면 훨씬 맛있지 않을까요?
글_김형배(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 우리말 비빕밥 ◆
<1>
수납 ⇥ 계산, 배선실 ⇥ 공동 주방
2018년 말에 서울시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에서 우리 한글문화연대가 제안한 ‘병원의 다듬을 말’ 3가지를 확정, 발표하였다. ‘수납’은 ‘계산’으로, ‘하이 패스’는 ‘자동 결제’로, ‘배선실’은 ‘공동 주방‘으로. 서울시에서 이렇게 다듬기로 확정하여 공무원들과 산하 기관에 권장하면, 서울시가 세운 서울의료원, 서울대보라매병원 등 7개의 시립병원에서는 이 말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낱말들은 우리 한글문화연대에서 병원 현장을 조사하여 뽑아낸 것이다.
’수납‘은 돈을 거둬들인다는 뜻인데, 대개 환자에게 “수납하시고 처방전 받으세요.”하는 식으로 잘못 쓰고 있는데다가 공급자 위주의 고압적인 느낌이 드는 용어인지라 ’계산‘으로 바꿔야 한다. ’하이 패스‘는 고속도로 통행료 받는 방법을 본따 일부 병원에서 쓰는 말인데, 의미를 분명하게 밝히는 게 혼란을 줄일 수 있으므로 ’자동 결제‘로 바꾸는 게 좋다. 일반인이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배선실‘은 전기 배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환자들 밥 차려 먹는 일과 관계된 곳이라는 뜻을 분명하게 밝혀 ’공동 주방‘으로 제안하였다.
병원의 잘못된 높임말 “들어오실게요. 앉으실게요...”를 고쳐가면서 병원의 안내 용어 가운데 바꾸면 좋을 말도 골라 내었는데, 이 세 낱말이 첫 성과다. 한글문화연대에서는 2019년 들어서며 <공공언어 시민감시단>을 꾸리고 있으니, 뜻이 있는 분은 누리집에서 확인해주시라~
<2>
나이가 깡패인 나라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럽 출신 유학생들 가운데에는 한국말 참 잘한다 싶은 사람들이 제법 있다. 미국에서 유학한 우리나라 사람들 증언에 따르자면, 현지인처럼 영어를 구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던데, 그에 비하면 이 외국인들은 매우 유창하게 한국말을 한다. 한국말이 쉬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술집 등 우리 생활문화가 말 배우기에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같은 어족에 속하는 말끼리는 조금 수월한 면이 있겠지만, 그래도 제 말이 아닌 남의 말을 배우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한국어는 옛날에는 그렇다고 알던 알타이 어족도 아니고, 어떤 어족에도 속하지 않는 말이라는 게 요즘 언어학계의 정설로 굳어가고 있다. 한국어는 인도-유럽어족과 매우 거리가 먼데, 아주 어릴 적부터 한국에 산 것도 아니요, 그리 오래 머무른 것도 아니면서 한국어를 능숙하게 해내는 이 외국인들 참으로 대단하다.
물론 한국말이 쉬워서 그러리라는 추측에 한국 사람들은 대개 동의하지 않을 터. 우리는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말이 어렵다고 느낀다. 한국어가 어렵다고 할 때 흔히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을 쓰는데, 이는 발음이나 표기의 문제를 가리키는 이야기가 아니다. 말하는 이의 속뜻이나 태도와 관계가 있다. 어릴 때부터 한국말을 자연스레 몸에 익힌 우리조차 우리말의 특질보다 말에 녹아 있는 우리 생활문화의 특질이 간단하지 않아서 한국어가 어렵다고 투덜댄다. 호칭과 경어법이 그런 생활문화 가운데에서도 으뜸 암초다. 자칫 실수하면 후폭풍이 거세다.
호칭과 경어법은 말 상대를 제대로 대접해주느냐 아니냐 하는 인정의 문제라서 예민하다. 말을 거는 사람 처지에서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를 때 아주 답답하고, 듣는 처지에서는 기대했던 호칭이나 높임말이 아닐 때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어 불편하다. 듣는 사람이 혹시라도 불편하게 느낄까 봐 더 신경 쓰는 면도 있다. 특히 우리 사회의 호칭에서는 위아래 서열의 인정을 요구하고 요구받는다는 사정이 있어서 더더욱 조심스럽다. 즉, 호칭으로 그 사람의 정체성 일부를 드러내 주는 것 말고도, 그 사람의 서열을 적절하게 표현해주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 서열의 잣대는 대개 나이와 지체(사회적 지위), 그리고 남성 우월적 남녀 구별이다.
사실, 대화 상대의 기분을 좌우하기는 경어법이 더 하지만, 어렵기는 호칭이 더 어렵다. 경어법이야 높임말과 예삿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호칭은 모인 사람들의 관계가 지닌 성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므로 매우 복잡하다. 사적 관계에서 ‘언니, 형’이라고 부르던 대로 공적인 자리에서 불렀다가는 낭패를 면할 수 없다. 이런 복잡하고 섬세한 호칭 문화, 윗사람을 높여주는 경어법 문화를 우리의 전통 미덕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 이 문화가 할 말을 못 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어서 문제다. 나이 서열 기준이 매우 강하게 작동하는 동호회 같은 곳의 예를 들어 보겠다.
나는 이소선합창단에서 테너로 활동하는데, 알토 쪽에 나보다 몇 달 늦게 태어난 대학 동기가 있다. 그는 내게 ‘오빠’라고 부르는 다른 알토 단원과 태어난 해가 같아서 서로 말을 놓고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셋이 얼굴을 마주하면 좀 이상하다. 거꾸로, 나보다 한 해 일찍 태어났지만 학교에 들어간 해가 같아서 나랑 서로 이름을 부르고 말을 놓는 베이스 남자 단원이 있다. 그는 알토의 내 대학동기와는 2년 차이가 나지만 나랑 친구가 되는 바람에 둘도 처음 부르던 호칭을 버리고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내게 오빠라고 부르는 알토가 이 베이스와 말을 트기는 좀 마땅치 않다. 사연까지야 모르지만, 이 베이스 단원은 자기보다 한 살 많은 어떤 테너 단원과 말을 놓고 이름을 부른다. 그러니 나는 나보다 두 살 많은 이 테너 동료를 어찌 불러야 할지 머뭇거리고, 그러다 말을 놓치기도 한다. 이렇듯 나이 서열이 호칭을 규정하고 경어법으로 이어져서 다시 인간관계를 좌우한다.
호칭과 경어법은 짝으로 가는 편이다. 호칭에서 위아래가 분명하다면 대개 존대말과 반말이 이어지고, 호칭에서 수평적이면 서로 존대하거나 서로 예삿말로 대화하는 상황이 이어진다. 그러므로 호칭에서 위아래 서열 문화를 넘어서는 새로운 길을 여는 일은 경어법의 변화까지 부를 일이리라. 즉, 호칭의 민주화는 우리 말 문화에서 갑을 서열을 은근히, 또는 노골적으로 강요하는 분위기를 어떤 식으로든 누그러뜨리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목표로 삼아 ‘사장, 부장, 과장’과 같은 직함 호칭을 떼어내고 모두 이름 뒤에 ‘님’만 붙이는 호칭이 기업 세계에 퍼지는 현상은 매우 바람직하고 흥미롭다. 씨제이그룹, 에스케이텔레콤, 홈플러스, 넥슨, 네이버 등 많은 대기업에서 새로운 수평적 호칭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기업 조직의 변화와 달리 공무원 조직에서는 아직 변화가 느껴지지 않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문화가 스며들고 피어날 것이다.
조직이 체계적인 곳과 온라인 공간에서는 호칭 문화가 매우 빠르게 바뀌고 있지만, 조직의 구조가 느슨한 동호회나 가족 같은 곳에서는 아직 호칭으로 서열을 인정받으려는 전통이 살아 있는 것 같다. 이런 서열 문화를 줄이려면 누구나 부담 없이 부를 수 있는 호칭이 필요하다.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방법, 별명과 같은 호를 지어 호만 부르는 방법, 이름 뒤에 ‘선생님’의 경상도식 줄임말인 ‘쌤’을 붙이는 방법 등 서로 수평적인 호칭을 써보는 의도적인 실험을 해보자. 여기에는 방송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방송작가협회-방송작가 2018년 12월호]에 실린 글
이건범 대표
출처: http://www.urimal.org/2095 [한글문화연대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