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8 장. 天下莫柔弱於水(천하막유약어수)
- 백서본 제43장
남회근 : 당신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길 수 있는가
장치청 : 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주춘재 : 바른말은 거꾸로 들리는 법이다
톨스토이 : 물보다 더 약하고 부드로운 것은 없다
오강남 : 세상에 물보다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다 – 물의 역설적 위력
도올 김용옥 : 물의 본성
여운 이준호 : 천하의 왕은 물처럼
남 : 남회근(1918~2012) 근래 20~30년 대만에서 국사 대접을 받은 분으로 장개석과 장경국의 국사
장 : 장치청(1959~) 중국 고전 연구의 권위자. 북경중역국학원 원장. 북경중의약대학 경영대학원 원장.
주 : 주춘재(1957~) 화가, 작가. 중국문화보급과 전세계 대중화에 앞장섬.
톨 : 레프 톨스토이(1828~1910) 러시아 소설과, 사상가.
오 : 오강남(1941~) 캐나다 리지아나대학교 명예교수, 종교학자.
김 : 도올 김용옥(1948~) 철학자, 사상가.
여운 이준호 : 야매 한학자, 지식 노가다꾼.
78. 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強者莫之能勝. 以其無以易之. 弱之勝強.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 是以聖人云, 受國之垢, 是謂社稷主. 受國不祥, 是爲天下王. 正言若反.
천하에는(天下) 물처럼(於水)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莫柔弱). 그러나(而) 견고하고 강한 것을 뚫는 데는(攻堅強者) 물을 능히 이길만한 것이 없다(莫之能勝). 그 이유는(以其) 물을 대체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無以易之). 약한 것이(弱之) 강한 것을 이기고(勝強), 부드러운 것이(柔之) 단단함을 이기는 법이다(勝剛). 천하가(天下) 이를 모르지 않거늘(莫不知), 능히 실천하는 자가 없다(莫能行). 이런 까닭에(是以) 성인은 이르노니(聖人云), “나라의 수치를(國之垢) 수용할 줄 알아야(受), 이를 일러(是謂) 사직의 주인이라고 말이다(社稷主). 나라의 상서롭지 못한 일도 수용할 줄 알아야(受國不祥), 천하의 왕이 되어 옳게 다스린다 할 수 있을 것이다(是爲天下王).” 바른말은(正言) 그 반대되는 것을 허락함이다(若反).
There is nothing in the world more soft and weak than water, and yet for attacking things that are firm and strong there is nothing that can take precedence of it; for there is nothing (so effectual) for which it can be changed.
Every one in the world knows that the soft overcomes the hard, and the weak the strong, but no one is able to carry it out in practice.
Therefore a sage has said, 'He who accepts his state's reproach, Is hailed therefore its altars' lord; To him who bears men's direful woes They all the name of King accord.' Words that are strictly true seem to be paradoxical.
天下莫柔弱於水(천하막유약어수). 而攻堅強者莫之能勝(이공견강자막지능승). 以其無以易之(이기무이역지).
남 : 천하에서 부드럽고 약하기로는 물보다 더한 것이 없음나, 굳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는 이것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없다. 물과 바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장 : 천하에 물보다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지만 굳세고 강한 것을 뚫는 데는, 물을 이길만한 것이 없다. 이는 그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주 : 세상에 물보다 약하고 부드러운 것은 없다. 한편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기는 데 물보다 더 나은 것도 없다. 물의 성질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톨 : 온 세상에서 물보다 약하고 부드러운 것은 없다. 그러나 물은 가장 단단한 것을 파괴할 수 있다. 세상에는 물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물은 어떤 것보다 더 부드럽고 약하기 때문이다.
오 :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단단하고 힘센 것을 물리치는데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습니다. 이를 대신할 것이 없습니다.
김 : 하늘 아래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연약한 것은 없다. 그런데 단단하고 강강한 것을 치는 데 물을 이길 것이 없다.
이러한 물의 기능을 대신할 게 없는 것이다.
여운 : 천하에는(天下) 물처럼(於水)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을 것이다(莫柔弱). 그러나(而) 그 견고하고 강한 것을 뚫는 데는(攻堅強者) 물을 능히 이길만한 그 어떤 것도 없다(莫之能勝). 그 이유는(以其) 물의 본성을 바꿀만한 것이 없기 때문 아니겠는가(無以易之).
莫(없을 막/모/멱) - 없다, 말다, 불가하다, 조용하다, 드넓다, 장막, 저물다, 어둡다, 덮다.
柔(부드러울 유) - 부드럽다, 순하다, 연약하다, 복종하다, 편안하다, 사랑하다.
弱(약할 약) - 약하다, 약해지다, 쇠해지다, 잃다, 패하다.
於(어조사 어) - ~에, ~에서, 어조사, 기대다, 따르다, 가다, 있다, 탄식하다.
水(물 수) - 물, 강물, 액체, 홍수, 수재, 큰물, 적시다, 축이다, 긷다, 헤험치다.
攻(공 공) - 공, 공로, 공적, 일, 사업, 공부, 공의, 공치사하다, 공격하다.
堅(굳을 견) - 굳다, 굳어지다, 굳게 하다, 단단해지다, 굳세다, 강하다, 안 변한다, 갑옷.
強(강할 강) - 강하다, 굳세다, 힘세다, 강제하다, 세차다, 권하다, 세도, 억지로.
勝(이길 승) - 이기다, 뛰어나다, 훌륭하다, 넘치다, 지나치다, 바르다, 곧다, 이김.
易(바꿀 역/이) - 바꾸다, 고치다, 교환하다, 전파하다, 다르다, 어기다, 주역, 바꿈, 쉽다.
剛(굳셀 강) - 굳세다, 강직하다, 억세다, 단단하다, 성하다, 강철.
78장은 통치자의 자세에 관한 장이다. 천하의 왕이 되려는 자는 불이 아니라 물처럼 되는 것이라 강조한다. 8장에서 노자는 물에 대하여 “최상의 선(上善)이란 물을 허락하는 것이다(若水). 물은(水) 만물(萬物)을 참으로(善) 이롭게(利) 하지만 다투는 법이 없다(不爭). 세상 모든 것들이(處衆[人]) 꺼리는 곳도 마다치 않으니(之所惡), 도리어(故) 그 자체로(於幾) 도(道)가 아닌가!”라고 물을 정의했다. 한 방울의 물이 억겁의 시간을 통해 바위에 구멍을 뚫는다. 아주 오래전 안기부에 근무하는 요원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사람에게 가장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것은 전기 고문 같이 무식한 방식이 아니라, 캄캄하고 아무도 없는 곳에 손발을 고정하고 누여서 이마에 물을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뜨리는 방법이라고 했다. 몸 외형에 상처도 없이 공포를 주는 방법이라고 들었을 때 충격과 함께 고개가 끄덕여졌다. 인간의 진정한 공포는 예측이 불가할 때이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인간은 공포와 불안에 빠진다. 물은 가장 연약하고 흔하지만, 세상을 구할 수도 세상을 쓸어버릴 수도 있다. “천하에는(天下) 물처럼(於水)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을 것이다(莫柔弱). 그러나(而) 그 견고하고 강한 것을 뚫는 데는(攻堅強者) 물을 능히 이길만한 그 어떤 것도 없다(莫之能勝). 그 이유는(以其) 물의 본성을 바꿀만한 것이 없기 때문 아니겠는가(無以易之).” 물은 생명을 잉태했고 생명을 품어준 어머니이다(萬物之母). 그러기에 물을 대체할 그 어떤 것도 우리 우주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弱之勝強(약지승강), 柔之勝剛(유지승강), 天下莫不知(천하막부지), 莫能行(막능행).
남 :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는 것을 천 하에 모르는 사람이 없으면서도 실행할 사람은 없다.
장 :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굳셈을 이기는 것은 천하가 다 알지만 행하지는 못한다.
주 :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기는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실천하는 사람이 드물 뿐이다.
톨 : 약함이 강함을 능가하고, 부드러움이 딱딱한 것을 능가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오 :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기는 것, 세상 사람 모르는 이 없지만 실천하지는 못합니다.
김 :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딱딱함을 이기는 것은, 천하 사람들이 모르는 이 없건마는, 그것을 능히 행하지는 못한다.
여운 : 약한 것이(弱之) 강한 것을 이기고(勝強), 부드러운 것이(柔之) 단단함을 이기는 법이니(勝剛), 천하가(天下) 이를 모르지 않거늘(莫不知), 능히 실천하는 자가 없도다(莫能行).
36장의 “柔弱勝剛强(유약승강강) 부드럽고 약한 것이(柔弱)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기는 법이다(勝剛强).” 40장에서는 “되돌아오는 것은(反者) 도의 운동이다(道之動). 약한 것은(弱者) 도의 작용이다(道之用). 천하에는(天下之) 지극히 유약한 것이(至柔) 지배하여(馳騁) 천하에 영향을 미치니(天下之) 더욱이 견고하게 한다(至堅).” 43장에서는 “천하에는(天下之) 지극히 유약한 것이(至柔) 지배하여(馳騁) 천하에 영향을 미치니(天下之) 더욱이 견고하게 한다(至堅).”라고 하였다. 노자에게 세상을 이기는 법은 유약(柔弱)한 것이 강하고 견고한 것을 이긴다고 점진적으로 강조한다. “천하가(天下) 이를 모르지 않거늘(莫不知), 능히 실천하는 자가 없도다(莫能行).” 감각기관인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평가하고 판단하는 직관적 사고가 우선인 가시(可視) 세계에서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인 가지(可知) 세계를 본다는 것은 고도의 메타인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서양에서는 인간 본성에 대해 본성(本性, nature)과 양육(養育, nurture)에 대한 논쟁을 지금도 하고 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하게 태어난다. 그러나 후천적으로 어떤 환경에서 가정교육을 받고 친구를 만나 뇌의 배선 회로가 어떻게 생성되느냐에 따라 유전자의 발현이 다르게 된다. 노자의 도덕은 바로 후천적으로 이루어지는 양육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교육의 목적과 질은 좋은 대학이 아니라 높은 메타인지 능력인 도덕성으로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是以聖人云(시이성인운), 受國之垢(수국지구), 是謂社稷主(시위사직주), 受國不祥(수국불상), 是爲天下王(시위천하왕). 正言若反(정언약반).
남 : 이런 까닭에 성인이 말하기를 나라의 욕된 일을 떠맡는 일을 사직의 주인이라 하고, 나라의 상서롭지 못한 것을 떠맡는 이를 천하의 제왕이라 한다고 하였다. 올바른 말은 반대되는 것 같다.
장 : 이 때문에 성인이 말하기를 나라의 치욕을 받아들이는 자를 사직의 주인이라고 하고, 나라의 재앙을 받아들이는 자를 천하의 왕이라 했다. 바른말은 마치 반대인 듯하다.
주 : 그래서 성인은 말한다. 나라의 치욕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랴야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세상의 불행을 떠안는 사람이라야 천하의 왕으로 불릴 수 있다. 바른말은 거꾸로 들리는 법이다.
톨 : 성자는 말한다. (황제로부터) 영지를 받은 자가 영주가 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국가의 감독을 맡은 자가 황제가 될 것이다. 진실의 목소리는 들 리는 것과 반대이다.
오 : 그러므로 성인은 말합니다. “나라의 더러운 일을 떠맡는 사람이 사직을 맡을 사람이요, 나라의 궂은일을 떠맡는 사람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바른 말은 반대처럼 들립니다.
김 : 그러므로 성인은 말한다. 나라의 온갖 오욕을 한 몸에 지닐 수 있어야 사직의 주인이라 할 것이요, 나라의 온갖 재해를 한 몸에 수용할 수 있어 야만 천하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바른말은 반대로 들린다.
여운 : 이런 까닭에(是以) 성인은 이르노니(聖人云), “나라의 허물인들(國之垢) 수용할 줄 알아야(受), 이를 일러(是謂) 사직의 주인이라 하느니(社稷主), 나라에 닥친 상서롭지 못한 일도 수용할 줄 알아야(受國不祥), 천하의 왕이 되어 옳게 다스린다 할 수 있는 것이다(是爲天下王).” 바른말은(正言) 그 반대되는 것을 허락함이다(若反).
云(이를 운) - 이르다, 일컫다, 성하다, 같다, 다다르다, 도착하다, 있다, 돌다, 만일, 구름.
受(받을 수) - 받다, 거두어들이다, 회수하다, 받아들이다, 얻다, 누리다, 주다, 응하다, 등용.
國(나라 국) - 나라, 국가, 서울, 도읍, 고향.
垢(때 구) - 때, 티끌, 수치, 부끄러움, 때묻다, 더럽다, 나쁘다.
謂(이를 위) - 이르다, 일컫다, 논평하다, 설명하다, 알리다, 고하다.
社(모일 사) - 모이다, 제사를 지내다, 토지신, 땅귀신, 단체, 모임, 사창, 사학, 회사.
稷(피 직) - 피, 기장, 곡신, 농관, 빠르다, 삼가다, 합하다, 기울다.
主(주인 주) - 주인, 임자, 임금, 우두머리, 상전, 주체, 하느님, 당사자.
祥(상서 상) - 상서, 조짐, 제사, 복, 재앙, 상서롭다, 자세하다.
爲(위할 위) - 하다, 이루다, 만들다, 위하다, 다스리다, 되다, 바꾸다, 길들이다, 삼다, 속하다.
王(임금 왕) - 임금, 천자, 수령, 으뜸, 할아버지, 왕 노릇, 왕으로 삼다.
正(바를 정) - 바르다, 정당하다, 바람직하다, 올바르다, 정직하다, 바로잡다, 정곡, 과녁, 네모.
言(말씀 언) - 말씀, 말, 견해, 의견.
若(같을 약) - 같다, 어리다, 이와 같다, 허학하다, 좇다, 너, 만약, 및.
反(돌이킬 반/번/판) - 돌이키다, 돌아오다, 되돌아가다, 뒤집다, 배반하다, 반복하다, 반대하다.
마지막으로 국민이 선출한 위정자에 대한 자세에 대해 성인의 말씀으로 끝맺음하고 있다. 이 구절의 핵심은 ‘正言若反(정언약반)’이다. ‘올바른 말은 반대되는 것과 같다.’ ‘바른말은 거꾸로 들린다.’ ‘진실의 목소리는 들리는 것과 반대다.’ ‘바른말은 반대처럼 들린다.’ ‘바른말은 반대로 들린다.’ 나는 ‘바른말은(正言) 그 반대되는 것을 허락함이다(若反).’라고 번역하였다. 다 같은 의미이다. 위정자의 자세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충고를 수용할 줄 알고 허락하는 것이다. 미련하고 어리석고 극악무도한 지도자일수록 남의 말을 안 듣고 저 혼자만 떠든다. 침팬지 무리의 알파 수컷은 명령과 지시로만 무리를 통제한다. 무리의 구성원들이 명령과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한바탕 난리가 난다. 두들겨 패고 괴성을 지르고 돌이나 나뭇가지를 집어 상대에게 집어 던진다. 우리가 알고 있던 타잔의 다정한 친구였던 ‘치타’를 잊어버려라!
56장에서 노자는 “도를 아는 자는(知者) 말로만 떠들지 아니하니(不言), 도를 모르면서 말로만 떠드는 자는(言者) 제대로 아는 게 없다(不知).”라고 하였다.
“이런 까닭에(是以) 성인은 이르노니(聖人云), “나라의 허물인들(國之垢) 수용할 줄 알아야(受), 이를 일러(是謂) 사직의 주인이라 하느니(社稷主), 나라에 닥친 상서롭지 못한 일도 수용할 줄 알아야(受國不祥), 천하의 왕이 되어 옳게 다스린다 할 수 있는 것이다(是爲天下王).” 바른말은(正言) 그 반대되는 것을 허락함이다(若反).” 노자를 읽으면 읽을수록 대한민국의 현실 정치를 예언한 것 같다.
한글비교역주 참고 문헌
남회근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 – 번역 설순남
남회근(Nan Huai-Chin, 南懷瑾, 1918~2012) 선생을 소개한다. 본문에는 [남 : ~ ]으로 표기되었다. 부·키 출판사에서 2012년 초판 출판되었다. 1987년 남회근 선생의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본으로 ‘남회근 저작선 5’의 시리즈물이다.
남회근 선생은 중국의 승려, 종교학자, 작가이다. 현대 중국에서 존경받는 영적 스승인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 불교 부흥의 주요 세력으로 여겨졌다. 1918년 절강성 온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당 교육울 받으며 사서오경을 읽었다. 17세에 중국 항주 국술원에 들어가 각 문파 고수들로부터 무예를 배우는 한편 문학, 서예, 의약, 천문 등을 익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사천(四川)으로 내려가 장개석이 교장으로 있던 중앙군관학교에서 교관을 맡으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였다. 교관으로 일하던 시절 선생에게 영향을 준 스승 원환선(袁換仙, 1887~1966)을 만나 삶의 일대 전환을 맞는다.
1942년 25세에 원환선이 만든 ‘유마정사’에 합류하여 수석 제자가 되었고, 스승을 따라 근대 중국 불교계 중흥조로 알려진 허운(虛雲, 1840~1959) 선사(先師)의 가르침을 배웠다. 불법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중국 불교 성지 아미산에서 폐관 수행하면서 대장경을 독파하였고, 이후 티베트로 가서 여러 종파 스승으로부터 밀교의 정수를 전수 받고 수행경지를 인증받았다. 1947년 고향으로 돌아가 절강성 성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문연각 사고전서와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을 열람하고, 이후 여산 천지사 곁에 오두막을 짓고 수행에 전념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9년 봄 대만으로 건너가 문화대학, 보인대학 등과 사회단체에서 강의하면서 수련과 저술에 몰두하였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동서학원을 창립하였고, 1988년 홍콩을 거주지를 옮겨 칠 일간 참선을 행하는 선칠 모임을 이끌며 교화사업을 하였다. 1950년대 대만으로 건너간 후부터 일반인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유불도가 경전을 강의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렀고,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4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여 동서양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선생의 강의는 유불도를 비롯한 동양사상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깊은 수행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엄중한 가르침, 철저히 현실에 기초한 삶의 자세, 사람을 끌어당기는 유머를 두루 갖춘 것으로 정평이 있다. 2006년 이후 중국 강소성 오강시에 태호대학당을 만들어 교육사업에 힘을 쏟다가 2012년 9월 29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키 – 2013년 1월 8일 초판
번역 - 설순남
서울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사회과학원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수학했으며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결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다. 저서로 『황준헌 시선』이 있고, 옮긴 책으로 『대학 강의』 『맹자와 공손추』 『노자타설』 『맹자와 양혜왕』 『약사경 강의』 등이 있다.
2. 장치청 『도덕경 완전해석』 - 번역 오수현
두 번째로 소개할 장치청(張其成장기성, Zhang-Qicheng, 1959~) 교수로 본문에는 [장 : ~ ]으로 표기되었다. 중국 고전 연구의 권위자이자 역학과 중의학 분야의 석학이자 대중적인 양생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북경중역국학원 원장과 북경중의약대학 경영대학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북경대학·청화대학 특별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으며, 중국 관영 방송 CCTV, 북경 TV 등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학문의 대중화 작업에도 힘쓰고 있다.
국가급 무형문화 유산 명의 ‘북송의 장일첩(張一帖, 1130~1200)’ 가문의 제15대 계승자로, 훈고학의 대가 베이징중의학대학 교수 첸차오천(錢超塵, 1036~2022)과 역학의 대가 베이징대학 철학과 주보쿤(朱伯崑, 1923~) 교수에게 사사했다. 1992년 중국 최초로 『역학대사전』, 『역경응용대백과』 등을 편찬했고, 《역도주간》을 창간하여 유교, 도교, 불교, 의학과의 융합적인 차원에서 ‘역(易)’에 접근하고자 했다. 2003년부터 북경대학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고전 강의를 시작했으며, 멘토제 서원을 세워 ‘중국학의 지혜를 적용한 경영모델’ ‘오행을 통한 인재관리 시스템’을 제시했다. 국가급 석사 교재 『중국전통문화개론』을 편찬하는 등 현재까지도 국학 5대 경전 『주역』, 『논어』, 『도덕경』, 『육조단경』,『황제내경』을 강연하는 ‘고전멘토’로 활동 중이다. 2009년에는 “현대 국학의 선두 주자” 중 하나로 선정되어 “국학 연구의 일인자”로 칭송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주역 완전 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논어 완전 해석』, 『육조단경 완전 해석』, 『황제내경 완전 해석』, 『역경 양생 대도』, 『유가 양생대도』, 『불가 양생대도』, 『도가 양생대도』, 『주역 인생 지혜』 등 다수가 있다. (yes 24 작가소개)
판미동 - 2022년 2월 7일 1판 1쇄 찍음
옮긴이 - 오수현
숙명여대 중어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산동과기 직업전문대학 한국어과 교사, ㈜효성, KELLEY ASSOCIATES를 거쳐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출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주역 완전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자치통감: 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 『주역에서 경영을 만나다』, 『나의 최소주의 생활』,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 『시의 격려』, 『세포가 팽팽해지면 병은 저절로 낫습니다』, 『오늘, 뺄셈』, 『중국은 무엇으로 세계를 움직이는가』, 『비즈니스 삼국지』 , 『똑똑한 리더의 공자 지혜』, 『똑똑한 리더의 노자 지혜』 외에도 다수가 있다.
3. 주춘재 『만화 도덕경』 - 번역 박영재
세 번째로 소개할 분은 저우춘차이(周春才 1957- ) 선생이다. 본문에는 [주 : ~]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출생한 화가이자 작가로 오랫동안 중국문화의 연구와 대중화에 전념해왔다. 서양 문화와 비교를 통해 과학과 철학을 포함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새롭고 참신한 해석을 전개해 내외의 주목을 모았다. 만화를 넘어서는 풍부한 내용과 생동감 있는 작품 이미지로 광범위한 전문가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십여 개의 언어로 작품이 번역 출판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예기 : 모두들 알지만 아무도 안 본 사서오경》, 《만화 주역》, 《만화 논어》, 《만화 노자》, 《만화 장자》, 《화설 황제내경》 등이 있다. (yes 24 작가소개)
가갸날 - 2021년 8월 10일 초판
번역 박영재
고려대학교와 타이완 정치대학교 동아시아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4. 러시아 최초의 완역본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 최재목 역주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러시아어: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영어: Lev Nikolayevitch Tolstoy, 1828~1910) 러시아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본문에는 [톨 : ~ ]로 표기.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 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을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 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 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18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폴랴나에 농민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크로이체르 소나타』,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yes 24 작가소개)
그러나 그가 『노자, 도덕경』에 관심이 많았고, 또한 최초로 러시아어 완역서『노자, 도덕경』을 남겼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부처와 불교, 노자와 공자에 심취하였다. 특히 그는 『노자, 도덕경』의 ‘도道’와 ‘무위(無爲)’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무위사상은 바로 그의 무저항, 박애, 비폭력 평화주의와 공명하는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어로 된 『노자, 도덕경』 완역본을 희망한지라 여러 차례 번역을 시도하였다. 마침 모스코바 대학에 유학 와 있던 일본인 고니시 마스터로를, 그의 지도교수인 그로트(톨스토이 친구)를 통해서 만나, 1892년 11월부터 1893년 3월에 걸쳐서 『노자, 도덕경』의 러시아 역을 완성한다. 이것이 러시아 최초 완역 『노자 도덕경』이다. (본문 중)
21세기문화원 - 2021년 1월 20일 1쇄 인쇄
역주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원에서 문학석사·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하버드대 · 도쿄대 · 베이징대 · 라이덴대 등에서 연구하였다.
‘한국양명학회장’ 및 ‘한국일본사상사학회장’을 지냈다. 전공은 동아시아 양명학 비교(동아시아사상사비교)이며, 저·역서와 감수한 책으로는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근대 일본의 양명학』,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제8시집), 『풍수 환경학』, 『불교 도상학』 등 50여 권이 있다.
5. 『오강남 풀이 도덕경』
종교학자 오강남(1941~) 교수님이시다. 8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존경하는 스승이시기도 하다. 본문에는 [오 : ~ ]로 표기.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하고 있다. 더불어 ‘종교너머, 아하!’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동안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서강대 등에서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AAR)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경』, 『장자』,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종교 너머, 아하!』가 있으며, 최근 인생과 종교에서의 깨달음을 담은 『움켜쥔 손을 펴라』,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펴냈다. 번역서로서는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이 있다.
현암사 – 개정판 2010년 3월 15일
6. 도올 김용옥 역주 『노자가 옳았다』
도올 김용옥(金容沃, 1948~)선생은 대한민국의 철학자, 종교학자, 사상가, 한의사,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광산. 호는 도올(檮杌)이다. 본문 [김 : ]으로 표시
도올 김용옥 선생은 천안 대흥동에서 광제의원을 운영한 집안의 6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초등학교를 천안에서 졸업하고, 보성중·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고려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에서 수학한 후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72년 9월 중화민국으로 가서 국립 타이완 대학 철학연구소에서 2년간 수학하면서 〈노자 "자연" 철학에서의 "무위" 의 기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일본으로 가서 1977년까지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왕선산의 동론(王船山の動論)〉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7년에 미국으로 가서 펜실베니아 대학교 동방학과 대학원과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어문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는데, 하버드에서 〈왕부지王夫之의 철학, The Philosophy of Wang Fu-zhi(1616~1692)〉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에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학사학위도 취득하였다.
대학교수, 철학자, 사상가, 언론인, 한의사,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희곡 작가, 극단의 단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활동하였다. 동, 서양 철학과 종교사상까지 다양한 학문적 탐구와 저작 활동을 벌였다. 1982년 9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부교수가 되고 1985년 9월에는 동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1986년 양심선언(‘한국의 오늘을 사는 한 지성인의 양심선언’)을 하며 고려대학교 교수직을 사퇴한 후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 등을 강의했다. 1988년 무렵부터 방송 강연에 출강하였다.
그는 문화계에서도 몇 가지 활동을 했다. 악서고회(樂書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국악을 콘템포러리 뮤직으로 승화시키는 다양한 기초작업을 하였다. (1984년 3월~1987년 12월). 한국의 전통음악을 이끄는 대표적 주자, 백대웅, 김혜숙, 박범훈, 송방송, 이성천, 권오성, 최종민, 이보형, 양승희 등이 참여했다. 이후 한대수와 록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도도회(檮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 교수들과 그 대학 출신 화가들(이종상, 김병종, 김호득, 장상의, 심현희, 장혜용, 이민주 등)과 정기적인 활동을 했다. (1988년 6월~1999년 6월)
영화와 연극 활동도 했는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마당극으로 유명한 극단 ‘미추’를 손진책, 김성녀와 함께 창단(1986년 8월)하여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키는 많은 연극 작업을 했다. 《시간의 그림자》, 《그 불》 등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잠시 영화인 심포지움을 만들어 유현목, 김수용, 임권택, 이장호, 김호선, 하명중, 정지영, 박광수, 이두용, 황기성 등과 활동했다. 이후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개벽》, 《취화선》의 대본을 썼고, 특히 《취화선》은 2002년 55회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획득하였으며 《개벽》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이덕화는 본인(김용옥)이 진행자로 활동 중인 KBS 2TV 《도올학당 수다승철》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취화선》과 《왕의 남자》의 자막은 직접 영역했다.
유기화학자 친형 김용준과 함께 신과학운동 세미나를 주도하고, 대우재단지원 과학사상연구회(科學思想硏究會)를 설립했다. (1984년 3월~1990년 2월)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자, 과학사상가들(조순탁, 이성범, 장회익, 김두철, 서정선, 신중섭, 이봉재 등)이 참여했으며 이후 꾸준히 과학과 철학이라는 학술지를 출간했다.
1989년에는 한국사상사연구소(Korean Institute of Classical Studies)를 세워 한국고전 최초의 일자색인인 《삼국유사인득》을 출간했다. 이 작업은 후에 제자 김현 교수의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전체 한글번역 프로그램인 CD-ROM작업으로 이어져 한국학의 신기원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류의 원류인 사극 드라마들의 희곡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1993년에는 도올서원을 세워 15기에 걸쳐 3,000여 명의 학생을 배출해 한학의 배경을 가진 우수한 인재들이 이 사회에서 활약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민족문화추진회의 한국고전국역사업을 지원하였고, 그 기관은 이후 한국고전번역원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에는 태권도철학세미나를 개최하여 무술의 본질과 태권도 문화의 세계화를 논하였다. 유병관, 양진방, 김영선, 김용범, 최의정, 임신자, 바비 클레이튼(Bobby Clayton), 스티븐 카프너(Steven D. Capener) 등이 참여했고 이 세미나의 결과물로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를 집필, 출간했다. 이 작업의 정신과 성과는 이후 무주 태권도공원으로 이어졌다.
한의대 졸업 후 ‘도올한의원’을 개원하여 2년간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중앙일보에는 《도올고함(檮杌孤喊)》이라는 칼럼을, 중앙선데이에는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신발굴 성서자료)를 연재하였다. (위키피아)
통나무 – 2020년 10월 9일 출간
마지막으로 영어 번역본을 실었다. 아마도 그의 번역본을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인 화이트헤드와 그의 제자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읽었다. 러셀은 1920년 북경대학에서 1년간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독일의 실존철학자 카를 야스퍼스(1883~1969),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등이 읽었다. 아마 수많은 서양의 지식인들이 작은 분량의 동양고전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청나라 말에 선교사로 왔다가 중국 고전의 깊은 뜻에 놀라 일부 청나라인들의 도움을 받아 중국 고전을 영문으로 번역한 제임스 레게의 영문본을 찾아 옮겨 보았다.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의 언어학자, 선교사, 생물학자, 번역가이다. 그는 중국 고전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한 초기 번역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Legge는 말라카와 홍콩에서 런던 선교사 협회 (1876-1897)의 대표로 봉사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학 최초의 중국학과 교수 (1875-1879)였다. Max Müller와 함께 그는 기념비적인 동양의 신성한 책 시리즈를 썼다. (위키피아)
첫댓글 놀랍도록 한국의 정치를 예언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