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청골 마을
나의 출생지는 삼척시 미로면 하거노리 466번지다. 속칭 청골(淸谷)이라 불렀다. 지금의 미로중학교가 있는 자리에서 100여M 거리다. 지금은 옛 초가집이 없어지고 그 자리는 밭이 되었다고 한다. 청골엔 지금 다섯 집이 살고 있다. 나의 소꿉친구 병철이와 용순이가 있다. 몇 년 전에 전화했더니, 병철이는 대구의 딸집에서 살고 용순이는 수단이 좋아 소장수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얘길 들었다. 병철이는 성격이 온순한 편이고 용순이는 걸걸하고 매우 활동적이었다. 그런데 소식이 끊어진지가 오래되었다. 추억이란 나이가 먹으면 멀어지는 게 아니라 가까이 다가온다. 어제 일처럼 눈을 감으면 생생하다.
병철이는 6,25전에 아버지가 좌익사상을 가졌었다. 해방 후에 좌,우익이 대립해 혼란할 때 병철이 아버지는 좌파민중들이 군중집회를 열면 연단에 올라 연설을 했다. 나는 그때 어렸기 때문에 사리분별역이 없었다. 좌우익의 대립이 극에 달했을 때 6,25가 터졌다. 인민군이 낙동강 전선에서 후퇴하고 치안이 원상회복이 되었을 때, 병철이 아버지는 경찰에 끌려갔다. 정라진 영진안에서 총살되었다. 그때 병철이가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려고 삼척에 와서 나의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나는 애도의 뜻을 표했다. 용순이의 경우는 형이 바람둥이였다. 지나는 처녀들을 보면 농을 자주 걸었다. 그런 형이 6,25 무렵에 인민군을 따라서 월북했다. 그 후 소식에 따르면 북에서 인민군 장교가 되어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나의 경우도 형이 동란 때 의용군에 끌려가 생사를 모른다. 용순이와 병철이 그리고 나 셋은 같은 나이에 미로초등학교 동창생이다. 말 그대로 삼총사였다.
청골 마을은 서북쪽이 산으로 쌓여 있고 남쪽으로 과히 넓지 않은 들이 있었다. 두타산에서 발원한 냇물이 흘렀다. 남쪽은 산허리에 기찻길이 있어 수시로 석탄차가 오르내렸다. 들판에는 주로 보리와 밀을 가꾸었는데, 지금도 보리밭이 많다고 하고 가을엔 코스모스 축제도 열린다고 전한다. 여름엔 삼밭도 많았다. 삼나무를 베어 묶어 땅에 묻고 불을 때 그 김으로 삼나무를 익히는 방식인데, 삼 껍질을 베껴 겨우내 베틀에서 벼를 짰다. 뿐만 아니라 목화밭에서 목화솜을 거두어 무명을 짜가도 했다. 봄 나기가 어려워 산에서 칡뿌리를 캐 그 가루를 앉혀 수제비나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또 닥나무도 생각난다. 닥나무의 껍질을 벗겨 한지를 만드는 집도 있었는데, 그 과정이 신비스러웠다.
어느 집에 초상이 나면 꼭 불려가서 염을 했던 아버지, 그러니까 아버지는 염쟁이었다. 뿐만이 아니라 이웃 마을에 병자가 생기면 북을 두들기며 귀신을 부르는 무속인이 판을 벌리게 되는데 아버지는 대나무를 잡곤 했다. 그걸 신대라고 했다. 신대를 잡고 있으면 신이 와서 대나무가 흔들렸다. 그런 미신을 숭상하던 청골 마을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뒷산에 오르면 동굴이 있었는데, 거기 박쥐가 많이 살았다. 가파른 벽을 겨우 올라가면 부엌 아궁이만 한 작은 구멍이 있었다. 주머니에 많은 돌을 넣고 가서 그 작은 동굴 속으러 던져 넣으면 참으로 신비로운 소리가 났다. 그 돌이 끝도 없이 부딪치며 내려가는 소리가 피아노 두들기는 소리 같았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첨벙 소리가 났다. 동굴 밑에 물이 있다는 증거다. 이런 추억들이 내 기억에 살아있다.
나의 집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近山이 보기 좋았다. 근산을 구방산이라고도 했다. 산의 8부 능선에 바위 동굴이 있는데 9개의 방이 있다. 그 동굴 속에는 신비하게도 물이 차 있으며, 그 물이 어디론가 흘러간다고 했다. 부모들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물에 바가지를 띄웠더니 그 바가지가 삼척 사직동에 있는 동굴로 흘러갔다고 한다. 신비로운 전설을 나는 간직하고 살았다. 미로의 공동묘지엔 조상들의 묘지가 있다. 그러나 찾아보지 못한 지가 오래되었다. 찾아간다고 해도 비석이 없으니 찾을 수도 없으리라. 고천에도 먼 할아버지의 묘가 있다. 이젠 덩굴 속에 묻혔을 것이다. 무사리는 내 외갓집이 있는 마을이다. 외할아버지는 대대로 山竹을 쪼개 댓돌에 놓고 나무 방망이로 두들겨 방에 까는 댓자리를 만들었다. 그걸 삼척시장에 내다 팔아 생활에 보내었다. 어찌 여기서 세세한 일들을 다 쓸 수가 있겠는가. 近山을 평일에 보면 늘 동굴에서 안개가 새어 나온다. 그 안개를 보며 살았다.(끝)
첫댓글 심심해서 이런 잡소리를 써봅니다. 참 좋은 날 입니다.
추억속의 청골 마을이 그림으로 그려 집니다. 참 좋은 날 만끽 하세요.
이선생님, 감기는 안결렸지요. 이달에 우리 만나지요.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