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민중시를 쓰면서 등단한 신경림 시인이 세상을 떴다. 시를 많이 읽지 않는 나에게 신경림 시인의 시집 세권이 있으니 나로서는 가장 많이 접한 시인인 듯하다. <농무>, <새재> <남한강>... 물론 이 외에도 그의 시집은 여러 권 있고, 그밖에 다양한 책을 펴냈다. 그는 민요에도 관심이 많아서 <민요기행> 두 권을 발간했는데, 그것도 구입하였고, <시인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책도 읽었다.
시인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를 뛰어넘어 이 땅의 참혹했던 민중의 삶과 저항에도 관심이 컸다. 이미 1979년에 나온 시집 <새재>에는 절반 정도가 長詩 ‘새재’가 차지하고 있는데 한말 일제초기 농민운동, 반일운동을 담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다룬 것인지는 잘 알 수 없다.
정참판댁 습격사건은 1910년 합병이 일어난 뒤의 사건인 듯하다. 2장에서 가난은 정참판이 넓은 논밭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갑자기 이 들판이 모두 우리 것이라고 하면서 삿대, 곡괭이, 몽둥이, 삽자루를 들고 곳간을 습격하였다. 순포와 헌병보조원, 심지어 말탄 헌병까지 등장한다. 도망갔다가 다시 습격하기도 하였다.
다시 1913년에는 충주, 음성 사이의 철도공사장에서 일하였는데 이웃 고을에서 화적, 의병 소식이 들려오기도 하였다. 그런데 공사장의 왜놈기사, 헌병보조원, 십장 등이 아낙네를 희롱하고 격분하여 인부들이 함께 일어서서 이들을 공격하고 이들이 최부잣집으로 숨자 그곳까지 가서 공격하였다.
그리고 검단산, 주을산 등을 다니며 새 세상을 찾아나서고 의병들도 만나기도 하였다. 결국 무장하여 연풍, 풍기, 문경, 영해, 청산, 청안, 괴산, 가은 등을 쳤다. 그러다가 토벌대에 쫓겨 끝까지 싸우다가 총을 맞고 잡혀서 연풍 향회공당에 갇힌 다음 1916년 처형당하였다.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든걸까?
‘새재’의 일부 중요 대목을 뽑아 만든 노래가 있다.
‘돌아가리라’
https://www.youtube.com/watch?v=84imvuFG0nI
모내기전에 돌아가리라 황새떼오기 전 돌아가리라
정참판네 하인들- 눈 뒤집고 우릴 찾는다해도
두팔을 들어 어깨를 끼고 열-이 아니다 스물이 아니다
빼앗긴땅 되찾으려다 쫓겨난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다.
찔레꽃이 피기 전에 돌아가리라 새우젓배 오기전에 돌아가리라
그-어느 한곳 찾아 목숨 걸건가 이-억센 두 주먹 불-끈쥔채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두팔들어 어깨를 끼고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이 억센 주먹 불끈쥔채
이 억센가슴 어디에 쓰랴 더-딘봄-날 푸진 햇살만
등 줄기에 따스운데 잠 덜깬 연이는 나를 수줍게 웃네
이 억센 다릴 어디에 쓰랴 그-의 몸에선 비-린 물내음
그의 몸에서는 신살구 내음 취할 듯 진한 살구 꽃내음
이-억센 주-먹을 어디에 쓰랴 부엉이가 울-고- 여울이 울고
여-울-속에서- 이무기 울고 새벽 하늘 성근별 헛헛한 가슴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두팔을 들어 어깨를 끼고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동지들 곁으로 돌아가리라
‘새재’에다 1980년대에 ‘남한강’, ‘쇠무지벌’ 등의 장시를 추가하여 모두 연결하여 이른바 全作詩 <남한강>을 출판하였다. 전작시란 책 한 권 전체가 하나의 시로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새재’는 한말 일제초기, ‘남한강’은 일제시기, ‘쇠무지벌’은 해방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모두 지명인데 문경 새재를 넘으면 넓은 벌이 펼쳐지면서 그 사이를 남한강이 흘러가고, 그 강변에 있는 옛 삼국시대 다인철소가 있던 곳을 곧 쇠무지벌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러니 모두 저자의 고향인 충주 지역에서 일어난 한말(명확하게 연도가 나오는 건 1904년)부터 해방초기까지의 민중운동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이 얼마나 널리 읽혔는지 모르겠지만 유신시기에서 5공시기 시인의 관심이 어디에 있었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하나의 역사사건을 이렇게 전작시로 출판한 사례가 그동안 있었는지 궁금하다. 아무튼 천상병 시인과도 친했듯이 그 역시 오랜 소풍을 끝내고 그가 그리던 ‘새재’, 남한강, 쇠무지벌로 ‘돌아가리라’ 여겨진다.(미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