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함을 버리고 기본에 충실해야 합격한다”
1. 들어가는 말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경기 공립 임용 역사과목에 합격한 양신혁이라고 합니다! 3수 끝에 붙었기 때문에 지나치게 오래 걸린 방법일수도 있고, 제 주관이 개입되어 있어 본 내용이 모든 임용 공부의 마스터키라고는 감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저 역시 합격했던 여러 주변인들의 말을 참고하여 공부했지만, 한 사람의 모든 방법을 모두 벤치마킹하기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통합하여 저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적용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의 방법이 여러 임용합격의 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의 3년간의 긴 여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대학 때 우수한 성적으로 재학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다가 계속 실패의 쓴맛을 보았으며 그때마다 느낀 좌절들을 극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제 나름의 방식대로 극복을 해보았는데, 여러분들도 임용의 길에 마주할 여러 고난 속에서 저의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 성적(초수~삼수)/전반적인 조언
초수 때까지는 아슬아슬하게 떨어졌다고 어디가서 말이라도 했으나, 재수의 실패는 정말 제게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시험장에 나올때도 정말 잘 본줄 알았고, 2차도 정말 열심히 준비했었는데 오히려 결과는… 제 자신도 믿을 수 없어서 저는 부모님, 친구들, 김구 선생님께도 제가 밀려썼다고 애써 거짓말하며 남을 속였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제가 너무 미울 것 같았거든요. 여기서 전 많은 것을 바꾸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재학 중에도 저는 제가 역사를 굉장히 잘 안다고 생각했고, 졸업시험도 몇몇 과목은 최종까지 보기도 전에 모두 통과하여 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컸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귀담아듣기보다는 제 마음대로 하고자 하였고, 가면갈수록 저에 대한 믿음과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오만함으로 바뀌어 이것이 재수까지 실패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① 어차피 떨어지면 다 똑같다. 자기 자신을 비우기
② 합격자의 조언과 충고를 항상 귀담아 듣기
③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까지는 버리지 말기
여기서 ①②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공부 방법이 잘못되었으면 이를 바꾸어야 합니다. 특히 ②가 쉽지 않은데, 제가 3수까지 하게 되었을 때에 저보다 나이가 어리고 제가 공부 방법을 가르쳐주었던 친한 후배가 저보다 먼저 붙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낮은 자세로 공부 방법과 조언을 간청했습니다. 오히려 그 동생들이 부담스러워 할 정도였는데, 이때의 조언 구하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③은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현타를 느낄때가 있는데, 조금 순서가 늦었을 뿐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날이 올 테니 그때까지만 조금 더 기다려보자! 라는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유치할 수도 있겠으나, 3수시절에 3~5월까지는 스터디플래너에 아침마다 ‘나에게 보내는 응원 메시지’를 적어보았습니다. 1명을 뽑아도 그자린 내꺼다! 내 자신을 사랑해! 올해는 필승이다! 이런 식의 메시지를 매일 아침마다 적고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부끄럽고 오그라들었지만, 정말 이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형식적이고 뻔한 응원보다, 내가 내 자신에게 보내는 응원메시지를 되뇌이는 것이 저의 자신감을 회복하는데 절대적인 기여를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3. 초수 시절(4학년, 전공은 타학원 모의고사만 인강/김현쌤 교육학 수강)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고 선택과목으로 세계사와 윤리와 사상을 선택했기 때문에 한국사가 굉장히 취약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얻은 공짜 공무원 한국사 개념강의로 한국사의 뼈대를 잡고, 3학년때부터 친구와 함께 스터디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제 자신에 대한 오만함이 가장 컸던 시절이라 저의 멋대로만 스터디를 운영하였고,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결국 2.33점 차이로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4. 재수 시절(노량진 생활, 김구 전공역사/김현쌤 교육학 수강)
초수의 실패로 인해 학교 주위에서 공부하려던 생각을 접어두고 향후 거취를 결정하게 될 때, 수원의 본가에서 독서실을 다니면서 하다가 당시엔 누나도 취준생이어서 집안 분위기가 그다지 좋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마침 12월 강의를 듣고 있으면서 졸업동기 1명이 노량진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00고시텔로 상경하게 되었으나, 코로나가 막 퍼지기 시작한 터라 바로 3월달부터 직강에 나가진 못했습니다. 여기서 저는 정신을 차리고 공부했어야 했으나, ‘나는 학교다닐때 잘했으니까’, ‘실수 좀만 안했으면 붙었는데 뭐’라는 안일함을 경계하지 못했습니다. 개론서를 볼 때도 기본적인 개론서(서개, 동개, 한통 등등)보다 어려운 몇몇 각론서를 뒤적이며, 개론서는 너무 쉬우니깐~ 이라는 정말 다신 반복해선 안될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강의에 대한 복습은 어느 정도 이루어졌으나, 4월 중반을 넘어가며 점점 밀리기 시작했고, 이를 복구하는 데에도 굉장한 애를 먹었습니다. 5월에 직강이 열리고 나서 스터디가 조직되었고, 6월까지는 복습 문제 만들기 스터디를 통해 많은 실력 향상이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7월달에 다시 한번 슬럼프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내가 왜 재수를 하지? 아.. 놀고 싶다. 나보다 공부를 못했던 친구는 벌써 붙었는데 난 뭐지,,? 이런 생각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고시텔이라는 좋지 못한 환경에서 생활하다보니 그런거 같기도 하고, 제 멘탈이 좋지 못하여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78월의 수업은 대체로 문제풀이로 들어가고, 역교론은 신간 위주로 진행됩니다. 여기서 저의 패착은 지나치게 역교론에서 신간의 비중을 잔뜩 늘리고 녹남갈 등 기본적인 개론서를 등한시했다는 점입니다. 김태규 선생님도 분명 개론서 반, 신간 반 으로 비중을 정해서 공부하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스터디를 강의 복습이 아니라 한국사, 동아시아사, 세계사 교과서 분석을 하게 되다보니 자연스레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개론서도 등한시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모의고사 점수는 그저 그렇게 나오고, 뿌리가 단단하지 못했던 나무는 얕은 바람에도 휘날리게 되어 1차 시험에서 고배를 마시게 됩니다. 물론 당시엔 이를 깨닫지 못해 1차 이후 말도 안되는 자신감을 가지고 2차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2차를 준비하게 된 상황인 것은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튼 재수 실패의 원인을 좀 분석하면
① 코로나 상황 → 이것은 핑계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만 힘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공평히 힘들었기 때문이지요.
② 오만함 → 대학 시절 개론서 정독을 좀 많이 봤다고 해서 재수 때에 개론서를 보기보단 지나치게 제가 정리한 교재만을 본 것
③ 체력 관리가 안됨 → 4월~6월 헬스장을 조금 다녔으나 이후에는 운동에도 소홀히 하게 되어 지속가능한 공부가 되지 않음
④ 잘못된 스터디 방향 → 복습 스터디를 운영하는 것이 베스트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스터디 방향도 있겠으나, 김구 선생님의 강의는 굉장히 양이 많고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이 소요됩니다. 따라서 부가적인 스터디 운영은 서브로 하고, 들은 수업을 완전히 이해하고 넘어가는 데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⑤ 기본에 충실하지 못함 → 기본적인 개론서를 다독하는 것이 중요한데, 신간과 일부 각론서를 주로 봐서 뼈없는 살만 만든 것
⑥ 교육학을 등한시함 → 전공은 직강으로 들었는데 노량진까지 와서 몸 조금 편하겠다고 교육학은 인강으로 들었던 것. 스터디도 하지 않은 것. 이것이 월화의 생활리듬을 깨뜨린 장본인이었다고 생각
⑦ 무계획적, 충동적 공부 → 사전 계획표를 작성하지 않고 무계획적으로 공부하여 과목별 편차가 커진 것(싫어했던 역교론 등한시하게 된 큰 원인 제공)
➇ 답안을 적확하게 쓰지 못함 → 임용고시는 객관식이 아니라 서술/논술형이기 때문에 ‘맞기 위한’답보다는 ‘누가 봐도 틀리게 할 수 없는 답’을 써야함을 간과함.
⑨ 수업 복습을 제대로 하지 않음 → 수업을 듣긴 들으나 복습을 스터디때 잘 안하다보니 ….
지금이야 저렇게 실패의 원인을 충분히 분석하고 글로 남길 수 있었으나, 56점이라는 충격적인 점수를 받아든 상황에서는 이성적인 판단이 들지 않았습니다. 당장에 임용공부를 때려치고 싶었고, 다른 길을 찾아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사범대 출신이 다른 길을 찾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스펙도 없고, 공무원 공부를 하자니 영어를 손놓은 지도 어언 몇 년이 되어가고, 컴퓨터 등 실무능력도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전화 한 통이 오게 되는데, 저의 극복에 좋은 영향을 준 전화 한 통이었습니다.
5. 삼수 시절
(1) 시련과 극복
전화의 내용은 과 선배 중에서 전북 사립 연합고사를 같이 응시하자는 전화였습니다. 사립에 대해서 전혀 생각이 없었고 갈 마음도 없었는데, 어차피 1월달에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해서 ‘사표를 던지는 심정으로’ 전주로 가서 현장 원서 접수를 했습니다. 1차는 필기시험이었는데, 공립 1차를 시원하게 말아먹은 저로서는 이것조차 굉장한 ptsd였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던 1월 초반의 삶이었기에 과 선배와 살짝 수업실연-면접 스터디만 병행하고, 1차는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험 본후 저만 붙어버린 상황이 되었습니다. 56점이라는 점수를 받은 이후 저의 능력에 대한 기대치와 자신감이 0이었던 현실 속에서 다시 한번 도약하게 되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혹시 여러분도 1차 점수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점수가 지나치게 나오지 않았을 경우 자체 임용시험을 보는 사립학교를 꼭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합격이라는 문자만 하나 왔어도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이후 사립 2차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합하고, 노량진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수원 본가로 와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집의 상황도 절대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대를 많이 하셨던 부모님의 표정, 친구들의 동정어린 시선 이런 것들이 스트레스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2월 중순에서야 공부를 시작하게 될 시간을 마련한 저로선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위에서 말했던 저의 재수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저의 후배든, 선배든 가릴 것 없이 조언을 구했습니다.
먼저 자신감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4월초에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신청했고, 5월 말에 대한검정회 한자 준1급 시험을 준비하고자 했습니다. 2번의 시험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2번의 시험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바탕으로 자기효능감을 길러 11월의 1차시험에 만전을 기하고자 했습니다.(임용에 도움이 되는 자격증이니깐요)
(2) 교육학/스터디 (3-4월 권지수쌤 인강, 5~11월 직강)
교육학은 제가 초수때 인강을 들으면서 공부를 안했던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불친절하게 공부했습니다. 전반적인 이해를 통한 암기가 중요한데, 저는 마인드맵만 외웠고 그 와중에도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들만 공부했습니다. 이게 초수때는 통해서 나쁘지 않은 점수가 나왔는데, 재수 때처럼 응용 문제가 나오거나 미진한 부분이 나오면 무너지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스터디를 한번도 한적이 없어서 꾸준한 공부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전공에 치이고 치여 등한시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2월 말부터 스터디를 하기로 하고, 계획표도 꼼꼼히 세웠습니다
너무 대충 적은 것이긴 하지만, 34월달에는 저렇게 진행했습니다. 권지수 선생님으로 갈아타서 양이 너무 많기도 해서 인강을 듣고 복습하는 데에만 치중했습니다. 그런데도 하루에 3~4시간은 잡아먹더라구요. 스터디는 인강 부분에 대한 형성평가를 문답식으로 진행했는데, 3명이서 만나서 했습니다. 저 외에 다른 체육과 한 분이 최탈하신 분이셔서 교육학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매월 마지막 금요일에는 형성평가 이후 교육학 모의고사도 진행했습니다. 월별 모의고사를 시간을 재고 같이 풀고, (잘보든 못보든 상관없이) 답안 작성에 대해 토론도 하면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갔습니다. 정말 좋은 분들이셨고, 저도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제가 5월달에 독서실에서의 공부에 한계를 느끼고 다시 노량진으로 올라오게되면서 수원에서의 스터디는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후 저는 직강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6월달까지 전공은 인강(1-2월 강의만 수강)으로 들었기 때문에 비교적 교육학을 공부할 시간이 확보되었습니다. 권지수 쌤을 절대적인 권위자, 무조건 들어야 할 사람이라곤 생각지 않지만 정말 개념이 방대하고 자세해서, 어느 정도 교육학 전반에 대한 지식이 있는 저에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다만, 스터디원들 2명이 모두 초수라서 이분들은 좀 힘들어하셨습니다. 스터디는 34월에서 사람만 바뀐 형식으로, 월화의 강의를 듣고 이와 관련된 내용을 서로 문제를 만들고(형성평가는 이미 한바퀴 돌렸어서) 밴드에 업로드하고, 구두로 인출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서로 문제 만들 범위를 미리 상정하고 했으며, 교육학과 구두인출 특성상 문제를 만들기가 그렇게 난해하지 않기 때문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특히! 7시반에 제가 전화를 하려면 고시텔에서 나가서 독서실을 가든 뭘 하든 밖을 나가야 했기 때문에 미리 6시 즈음에 일어나 씻고 밥을 먹고(골든볼) 7시부터 스터디 문제를 빠르게 만들어 업로드 한 뒤 7시반에 맑은 정신으로 스터디를 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문제 예시) 스턴버그의 경험적 지능의 하위요소 2가지는?
많은 분들이 초수생과의 스터디를 배울 점이 없다, 내가 알려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냐, 등 꺼리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오히려 좋았습니다.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하시는 분들이어서 굉장히 밝으셨고, 기본적인 내용에 충실하자는 저의 모토에도 딱 들어맞았습니다. 교육학의 특성상 선생님이 알려주신것만을 알면 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에 스터디 진행 자체는 훌륭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교육학에 대한 많은 시간 투자는 다소 아까웠을 수도 있고, 저렇게 많은 시간을 매일 투자하긴 사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저도 교육학에 쏟는 에너지가 다소 과하다고 생각될 때도 있었고, 권지수 선생님 강의 자체가 어렵게 느껴질 때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까지 알아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실 권지수 선생님의 강의는 2차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프로젝트 수업, 역량중심 교육과정이 나아가야 할 방향, 평가 등 수업실연과 면접에서 활용하는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혹시 권지수쌤 들으시는 분들은 힘드시더라도 분명 2차에서도 도움이 많이 되니깐 참고 견뎌주세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7월부터 전공까지 직강을 듣게되어 정말 빡센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교육학에만 더 이상 많은 시간을 쏟을 순 없게 되어 월화에 최대한 몰아넣고, 수목금토에는 아침에의 스터디와 간단한 복습 정도만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에 다행히 6월 중간 모의고사에서 19점? 정도 나와서 교육학에 대한 자신감이 조금 올라갔었다고 생각됩니다. / 7월부턴 요점쏙쏙에 단권화를 하기 시작하여 8월에 마치고, 9월부턴 요쏙만 반복하여 봤습니다!
모의고사 시즌에는 월화에 1~2개씩 모의고사를 보게되는데, 정말 매우 베리베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논술형 시험이기 때문에 현장감각이 정말 많은 영향을 줍니다. 독서실과 같은 개인형 공간에서보다, 일반 스터디카페 같은 각자 공부하는 환경보다, 다 같은 사람들이 다 같은 문제를 와다다 푸는 환경.. 정말 필요합니다. 처음엔 모의고사를 보는 데에도 떨리기도 했고, 다리를 습관적으로 떠는 사람들 때문에 신경이 쓰이기도 하지만 실제 시험장에서도 빌런들은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버텼습니다.
(3) 전공 (1~6월 독학, 7~11월 직강)
저의 재수 때의 전공 점수를 보셨다시피 매우 처참했습니다. 이것에 굴복하지 않고 극복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정말로 교육학 포함 하루에 10~12시간 이상 공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① 회복적 생활공부 - 나를 알자!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2번의 시험을 떨어졌으니 다른 시험을 2번 붙고 최종시험에 모두 붙는다는 마음가짐으로 나아가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 4월초에 한능검을 응시하고 100점을 맞았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수도 있지만, 소확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능검 시험을 치르고 나서 친구들과 1박2일 부산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다시한번 주위를 환기하고, 바다를 보면서 마음을 비우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5월말에는 조금 어려울수도 있는 대한검정회 한자 준1급을 응시하였고, 굉장히 어려웠고 힘들었지만 이를 극복해나가면서 자신감을 향상시켜나가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꼭 해보세요! 한능검을 하면서 자칫 도외시할 수 있는 한국문화사를 재정리할 수 있게 되었고, 한자 급수 공부를 통해 사료학습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② 스터디 - 함께 가자! 내일을 열자!
3~6월에는 수원에서 한달에 한번 만나는 스터디를 진행했습니다. 코로나라서 자주 만나기도 좀 그렇고, 같은 인강을 듣는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여 복습 스터디도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3~4월에는 한국사와 동아시아사, 세계사 교과서 단권화 스터디를 진행했습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저는 9종의 한국사 교과서를 모두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단권화를 비상 교과서에 몰아서 하였습니다. 상당한 작업이고,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전근대사를 제외하고는 근현대사는 절대 교과서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저와 스터디원들의 확신을 통해 힘든 과정을 계속하여 진행했습니다. 동아시아사와 세계사는 교과서에 따로 정리하지 않고 교과서 내용을 선생님을 위한 세계사에 정리했습니다.(교과서 출처는 중요하지 않으니 그냥 비상 교과서에 다 때려박았습니다.)
5~6월에는 기출을 분석하였는데요, 한달에 한번 모여 모의고사식 기출변형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이건 큰 도움은 안됐고 밴드에 서로 공부 어디까지 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더 도움이 되었던것같습니다.
7~8월에는 직강에 오게 되어 스터디를 새로 조직하였고, 본격적인 강의를 수강하는 단계였기 때문에 복습 스터디를 구성했습니다. 따로 문제를 사전에 제작하지 않고, 3명이서 모여서 구두 인출 스터디를 진행했습니다. 78월 강의, 특히 역교론이 새로운 개념이 추가되는 시즌이기 때문에 역사에서는 알고있는 내용 재확인, 역교론은 새로운 정복의 느낌으로 진행했습니다. 수목금토 수업이기 때문에 목금토일 스터디였습니다. 수요일의 역교론은 목요일이런식으로 하루씩 미뤄서 스터디룸에서(직영상반에서 스터디금지령…)했습니다.
9~11월에는 모의고사와 개념 따로 하기로 해서, 일주일에 2번 만나는 것으로 줄였습니다. 토요일은 수목 개념 정리, 일요일은 금요일 모의고사 총정리 이렇게 스터디를 했습니다.
③ 한국사
한국사는 정말 양이 많지만, 페이백이 적은… 그런 이상한 과목입니다. 그리고 가장 공부할 것이 많음에도 한국사는 다들 자신있어합니다. 이러한 과목적 특징상 중요한 것은… 바로 교과서입니다. 제가 시험에 응시했던 2020년도부터 특이하게도 근현대사는 교과서에서만, 전근대사 역시 너무 어렵게 내가 다틀리게 내거나 교과서 수준으로만 내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재수때까지 봤던 뿌샘, 한길 등을 과감히 버리고 개론서는 다찾사와 한통과 기출, 선생님을 위한 한국사, 교과서만을 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근대사는 선생님을 위한 한국사에 단권화하고, 근현대사는 비상 교과서에만 단권화 했습니다. 기출분석 역시 연도표시만 해서 단권화했습니다. 객관식 선지, 사료의 내용 등등도 모두 말이지요. 이번에 나왔던 신문왕 파트 예시입니다. 녹색 연도별 동그라미 참고해주세요.
7~8월 부터는 수업의 복습 내용과 교과서, 교재 형광펜 및줄치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중요해 보이는 부분, 구영모 선생님이 강조하신 부분 등을 꼼꼼하게 정리해나가며 11월까지 한 5회독 넘게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실제로 시험에서도 전근대사, 근현대사 할거없이 대부분 교과서 개념에서 나왔다고 확신합니다. 앞으로의 시험의 방향을 예측할 순 없지만, 한국사 공부는 6월까지는 많이 투자하되 7월부터는 세계사에 힘을 더 실어야 해요!
④ 동양사
재수때까지도 동양사를 정말 싫어했고, 동개 서술이 마음에 들지 않아 정리된 교재만을 탐구했던 저에게 2021년도 시험에서 동양사에서 괴멸에 가까운 결과를 안겼습니다. 따라서 저는 오히려 아예 제로부터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월 중순부터 6월까지 동개 3회독, 한중사 3회독, 기출 1회독을 하면서 선생님을 위한 동양사에 꼼꼼히 정리해두었습니다. 하지만 교재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개론서와 교재를 함께 보며 어떠한 유형이 나와도 대비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단권화 방식은 한국사 방식과 유사했습니다. 7~11월에는 구영모 선생님의 수업에 대한 복습을 철저히 하여 심화 개념역시 충분히 대비했습니다. 개론서도 놓치지 않고 계속 탐독했고요. 그리하여 최종 동양사에서는 돈목방교령 1점을 제외한 모든 문제를 다 맞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10월 중순 이후에는 사료로 보는 아시아사 내용을 전반적으로, 특히 근현대사 중심으로 훑어보았습니다.
⑤ 서양사
수능때도 세계사는 1등급을 놓치지 않았을 만큼 서양사는 매우 좋아했습니다. 개론서는 볼대로 봐서 책이 거의 찢어질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서양사 역시 기본에 충실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6월까지 서개, 서강, 기출 등 새로운 단권화를 마치고 78월 이후에는 복습한 내용을 중심으로 보았습니다. 거의 개론서를 4회독 이상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⑥ 역사교육론
김태규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왜 배우는지조차 의심이 되는 그러한 과목이었기 때문에 상당한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재수 때는 개론서보다 신간과 문풀 위주로 해서 모래성이 되었기 때문에, 이번엔 개론서를 암기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3월달부터 암기카드를 만들었습니다. (샘플을 사진으로 찍으려고 했는데 다 버린 상태...ㅠ) 다이소나 아트박스에서 영단어 암기 고리카드를 활용하여 앞면에는 예를 들어 개념학습의 장점/단점 하여 뒷면에 그 답이 작성하였습니다. 만드는 것 자체가 굉장히 고되고 사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그것을 본다는 것도 웃기기 때문에, 실용성에 대해서 의심이 드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녹 남 갈 모두 암기카드를 만들면서 개론서를 한번 더 글로 써보는 것이 암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암기카드를 만드는 방법은 합격자들의 조언에 따라 만든 것입니다. 암기카드를 만드는 작업은 3456을 거치면서 녹 남 모두 완료되었고, 갈색은 남색에 끼워서 했습니다. 자칫 녹색과 남색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던 부분들 (예를 들어 녹2장, 남5장 드레이크 앞부분)을 빼놓지 않고 수행함으로써 이번 시험에 흔들리지 않은 점수가 나온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5월 중순 정도에 암기카드 만드는 작업이 끝나면서 녹남갈을 각각 3회독을 하게 되었고, 아래 사진과 같은 단권화도 7월 직강을 수강하기 전에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습니다.
78월 강의는 사실 두려웠습니다. 신간을 배우고, 나올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도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두려운 마음이 컸습니다. 따라서 재수 때처럼 모든 시간을 신간을 공부하는데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녹남갈 0.5/신간0.5의 비율을 유지했습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22년도 문제처럼 모두 녹남갈에서 나올 수도 있고, 2020년도처럼 신간폭격기가 쏟아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두가지 상황을 모두 대비해야 합니다. 시험은 내는 평가자 마음이니깐요. 다행히 9월 모의고사에도 김태규 선생님이 고전적인 개론서 문제를 많이 출제하시고, 개념도 재확인하여주셔서 저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11월 모든 강의가 종료된 뒤에는 작년(재수)역교론 모의고사를 정리해보았습니다. 재수때는 특히 신간 문제가 많았는데, 이것들은 2차에 도움이 크게 되었습니다. 이번 2차 수업실연에는 2차 세계대전이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전쟁사 학습의 의의를 실연할 때 평가관 분들이 참 좋은 리액션을 취해주셨습니다. 필요없다, 안나올 것 같다 라는 생각은 버리시고 녹남갈 0.5 / 신간0.5 비율은 황금비율로 꼭 지켜주세요!
⑦ 한문
한문이라는 것에 대해서 중요하지 않다, 혹은 중요해도 하기가 싫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하셔야 합니다! 이번 시험에서도 도르곤 답을 ‘섭정’ 이라는 키워드를 읽지 못하면 낼 수 없었고, 고려시대 문제에서도 감찰 이라는 키워드를 캐치하지 못했으면 굉장히 난해한 문제로 다가왔을 겁니다.
저는 이 해결점으로 대한검정회 2급정도 자격증을 취득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5월 말정도에 시험이 있습니다.(8월 말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한문이라는 것이 바로바로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 보이지 않고 성취감이 적기 때문에 꾸준한 공부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성취감을 가지기 위해선 자격증 취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0자 정도 되는 양을 하루에 30분씩 공부하신다면, 3월부터 시작해도 5월 말의 시험에 충분한 시험 결과를 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2000자는 대한검정회 사이트에서, 기출문제는 “한자능력검정시험 뽀개기” 네이버 카페에서 다운받으실 수 있으니 참고하세요. 한시와 한문장이 나와서 한문 독해력도 향상시킬 좋은 기회가 되실 것입니다. 2급 정도면 충분합니다. 저는 군대에 있을 때 2급을 따고 3수 중에는 준1급 자격증을 획득했습니다. 조금 어려웠지만, 많은 성취감과 한문 독해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자격증 획득 뒤에는 계속해서 복습하도록 하세요. (하루에 30분 정도)
(4) 건강관리 / 슬기로운 노량진생활
운동은 정말 중요합니다! 공부는 정말 체력싸움입니다. 저는 3월부터 7월까지는 수원, 노량진에서 각각 헬스장을 다니면서 체력을 키웠습니다. 이후 학원에서도 확진자가 나올 정도로 코로나가 심각해진 이후에는 한강대교에서 대방역까지 / 한강대교에서 동작대교까지 뛰었습니다. 격일로 가서 공부가 끝난 9시30분 이후에 나가 11시 정도에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운동했습니다. 부담이 되고 힘드시겠지만, 유산소 운동에 만전을 기해주세요!! (10월까진 뛰었다가 11월부턴 너무 추워서 안뛰고 고시텔에서 무산소만 했습니다.)
노량진 생활은 정말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저도 2년을 내리 산 것이 아니라 2020년 3월~2021년 1월 / 2021년 5월~2022년 1월 이렇게 약 2년 정도 살았습니다. 고시텔 방에 화장실이 있긴 했으나 1평도 안되는 매우 좁은 곳이었고, 방음도 안되어 조심조심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주방도 공용이고, 혹시 밤에 화장실을 사용한다면 옆방에도 들릴 수 있으므로 자제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헤어드라이기 사용, 수도꼭지 물 소리 등등) 하지만 저는 이러한 환경이 좋았습니다. 공부하다보면 제일 드는 생각이 ‘아, 집에 가고 싶다, 눕고 싶다’ 였던 제가 고시텔에 안들어가고 조금이라도 더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말 그대로 정말 잠만 자는 장소가 되어, 공부하는 학원, 혹은 독서실이라는 공간과 잠을 청하는 고시텔의 공간을 완전히 분리하여 효율이 크게 올랐다고 생각합니다. (독서실은 6월까지 다니고 7월 이후는 학원에서 쭉 자습했어요.) 원룸이라는 좋은 공간도 물론 장점이 있겠지만, 원룸을 살게되면 편한 환경에 익숙해져 안에서 공부도 하고 휴식도 취하게 되기 때문에 어느 하나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노량진에서 공부하시겠다면 개인적으로 원룸보다는 고시텔을 추천합니다.
(5) 모의고사 시즌
9월이 되어 모의고사 시즌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9월을 시작할 때 저와 함께 1차 스터디를 하시던 분이 코로나에 확진되어 명동에 있는 모 호텔로 11일간 자가격리 되었기 때문에 시작부터 화려하게 끊었습니다. ㅠㅠ 스터디 하시던 분도 일부러 무언가를 하다가 걸린 것이 아니라 정말 억울하게 걸리셨기 때문에 그분을 원망하기보다는 응원을 해 드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매우 부정적인 상황이었지만, 제가 이렇게 자가격리됨으로써 교사로서 혹시 확진이 되거나 자가격리를 하게 된 상황에 처한 저의 학생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2차때 면접 준비할 때 매우 유용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11일동안 하필 장염이 겹쳐서 제대로 공부는 못했지만, 많은 주변 분들의 응원을 받아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좋은 유대감과 감정적인 치유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이후 모의고사를 학원에서 격주로 응시하게 되었습니다.
학원에서 확진자가 2번 정도 나오게 되자 격주로 학원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다시 독서실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의고사를 보는 금요일에 시간을 맞추어 정확하게 문제를 풀고자 했습니다. 재수 때에 점수가 심각하게 낮았던 이유는 제가 공부를 안해서, 모자라서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답안을 적확하게 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답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굉장히 연구했습니다. 먼저, 답안을 쓰는 요령으로서는 키워드입니다. 하지만 그 키워드는 해당 시대에 국한되는 키워드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왕권 강화’ 라는 지나친 만능키워드는 답으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고등학교 때 역사좀 한다, 역사에 관심이 많다라는 사람들이 모여 거기서 17:1의 경쟁률을 자랑하는 역사 임용고시라는 점을 상기하세요.) 김구선생님들께서도 답안 요령을 알려주시긴 하지만, 자신 스스로가 어떻게 자신의 답을 어떻게 쓸지 많은 고민의 시간도 필요합니다! 차라리 내가 몰라서 틀리면 억울하지라도 않지만 아는데 답안을 불충분하게 써서 틀리면 정말 골때립니다. 억울한 패배를 느끼시지 않기 위해서라면 답안을 정교하게 쓰는 방법도 꼭 생각해주세요!
다행히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 모의고사 성적은 꽤 괜찮게 나왔습니다. 수강생 평균에서 항상 +5~9점 정도가 나왔고, 처음 봤을 때는 굉장히 떨리고 힘들었으나 갈수록 긴장도 줄어들고 성취감도 올라갔습니다. 이러한 자신감은 본래 경기를 치지 않으려던 저의 다짐을 다시 고치도록 하였고, 다시 한 번 경기 지역을 응시하게 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6) 1차 시험
이후 11월 26일이 되고 시험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수원이 집이었지만 집에 들어가면 멘탈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에 근처에 숙소를 잡고, 시험에 임했습니다. 워낙 긴장이 되는 시험이기에 2주 전부터는 야식을 먹지 않았고, 시험 패턴을 유지하기 위해 11월 모의고사 수업이 종료된 이후부터 시간에 맞추어 9시~10시에는 교육학 모의고사(권지수 선생님 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 모의고사를 구해서), 10시 이후에는 2014년도 이후부터, 즉 서답형 기출문제를 연도별로 풀었습니다. 기출문제 풀이를 예전에 했었기 때문에 답안이 기억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답안지를 따로 인쇄해 풀어서 답안을 더욱 정교하게 쓰는 연습을 끝없이 하였습니다. 이러한 연습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께 시험장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부디 섣불리 시험에 대해 판단하고 가벼운 말을 하지 말아주세요. 이번처럼 겉보기에 시험이 쉬웠다고 해서 ‘아 너무 쉬웠다, 이거 백퍼 컷 80점 아니 90점??’ 이러한 망언을 지나치게 크게 하신 분이 시험장에서도 많았는데, 굉장한 스트레스였습니다. 전 정말 어려웠고, 단 한문제도 쉬운 문제가 없었습니다. 교육학은 전반적으로 굉장히 당황스러웠고, A형 1번부터 예상했던 교육과정이 나오지 않고 오랜만에 등장한 딜타이와 콜링우드가 나와서 당황스러웠습니다. 이렇게 어려웠는데 시험이 종료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들 쉬웠다느니, 3456월달에 스터디했던 분들도 연락와서 괜찮았다느니 하는 말이 정말 저를 힘들게 만들었고, 친구들을 만나서 놀 때도 계속 우울해있어서 괜히 제가 불러놓고도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2차 준비를 하지 않으려고 할 정도로 망한 줄 알았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먼저 붙었던 분들이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계속 해주셔서 2차 준비는 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운이 좋게도 월요일에 김구 선생님의 시험 채점 강의에서 생각보다 점수가 좋게 나오고, (전공 55~58점정도로 예상) 실제 시험은 더욱 점수가 올라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점수가 좋게 나온 이유는 어느 정도 물채를 한 것도 있었겠지만, 11월에 지속적으로 2014년부터의 서답형 기출을 시간을 재고 답안지까지 타이트하게 풀어보았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학원 자습실 즉 비슷한 환경 속에서 시험을 치름으로써 정확한 답이 튀어나왔다고 할까요..?. 꼭 해보세요~
(7) 2차 시험 준비 (12월)
① 수업, 수업나눔
원래 2차를 안하려고까지 했고, 상당히 우울했었기 때문에 열의가 없었지만 도저히 더는 임용공부를 못하겠어서.. 마음을 고쳐먹고 스터디를 조직하였습니다. 원래 알던 분과 새로운 분 1명을 포함하여 3명씩 스터디가 조직되었고, 계획표를 작성했습니다. (스터디는 수업실연은 홍대입구역, 면접은 노량진에서 했어요)①②③을 각자 순서를 정해 문제를 만들어오고, 해당 부분의 교과서 내용을 분석하고 와서 만나서 사다리타기로 각자 수업할 부분을 골라서 하고, 수업나눔은 사이다 문제를 통해 했습니다. 또한 세계사는 역사1과 세계사, 동아시아사를 순서대로 3개씩 잘라서 돌아가면서 했습니다. (선생님을 위한 수업실연 부분은 계획표에서 뺄게요)
월 수 금 4시간씩 해서 수업실연 2번씩(한국사, 세계사), 수업나눔은 1회 했습니다. 수업나눔은 많이 하는것보다는 한번 할 때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수업나눔은 정말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개인적인 공부가 필요합니다. 각자의 공간에서 교과서를 분석하실 때 조건만을 지키는 것보다 ‘자신만의 틀’을 만드세요. 저는 이러한 만능 수업나눔 답변을 위해 정말 노력하셔야 됩니다. 경기도 특성상 내용지식을 어떻게 쉽게 가르칠까도 분명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색깔이 담긴 수업을 하는 것이 수업나눔 때 할 말이 많습니다. 남이 짜준 수업, 조건을 지키기에 급급한 수업은 수업나눔에서 밑천이 드러나고, 10분을 채우기도 어렵습니다. 꼭 자신만의 수업 틀을 12월까지 완성하시고, 1월에는 그것을 내재화하는 데에 중점을 두세요!
12월에 제일 부담스러운 것은 김구쌤 앞에서 대표수업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원해서 대표수업을 하게 되었고, 오히려 실제 2차 시험장보다 더떨렸습니다. 아무래도 준비가 완전하지 못했고, 어려운 제국주의 부분을 골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다들 이 대표수업을 안하려고 스터디원끼리 서로 미루고 안하려고 애쓰시는 분들이 많던데, 김구쌤처럼 피드백 자세하게 해주시는 분 앞에서 어디가서 수업 못합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하여 엄청 긴장하고나니 이후의 수업실연에서 거의 안떨게 되었습니다. 꼭 하세요~
연합스터디는 코로나 때문에 위험하긴 했으나 그냥 했습니다. 지도안 지역 분들이랑은 못했고 강원과 경기 지역분들과 했습니다. 큰 도움이 되기보다는 색다른 사람 앞에서 수업한다는 것이 굉장히 좋은 경험입니다. 선택이긴 한데 기회가 되면 버리진 마시길 바라요.
원래는 세계사도 중학교 역사1 교과서를 통해 자체 제작하려고 했으나,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소모되는 느낌으로 인해 선생님을 위한 수업실연을 중심으로 진행했습니다. 사실 한국사가 나올 줄 알았고, 설마 세계사가 또 나오겠냐는 생각에 세계사는 교과서를 많이 보진 않고 한번 훑어보기만 했습니다. 물론... 정말 세계사가 또다시 나와버렸지요.. /
② 면접
면접은 시책을 보긴 봤지만, 교육 뉴스를 자주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사이다 면접 모의문제를 풀기보단 전반적인 경향을 알기 위해서 면접 기출문제를 분석했습니다. 경기도 면접의 특징은 시책이 그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다른 몇몇 지역과 다르게 경기는 시책을 얼마나 암기하고 있느냐를 물어보지 않습니다. 따라서 시책을 아예 보지 말란 것이 아니라, 시책을 달달 암기하는 방향이 아니라 다양한 교육 뉴스를 접하고, 사이다 책을 보면서 어떤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다각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더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외에도 면접 단권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는데, 예시 파일이 너무 길어져서,,,,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방식대로 자유롭게 시책과 면접 관련 단권화를 사이다를 통해 해주세요!
경기도는 워낙 지원하신 분이 많았고, 특강이 대부분 주말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말 쉴틈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정말 힘들었고, 단 하루라도 마음놓고 쉴 수가 없었습니다. 김쌤이 아직 시험은 끝난 것이 아니다, 절대로 방심하지 말라 라는 말을 하셨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1차도 쉼없이 달려오고나서 2차까지 계속 하니 사실 온전한 100%의 에너지를 다 쏟은 것은 아니었고 쉬기도 많이 쉬었습니다..ㅎ 물론 이렇게 나태했기에 1월에 엄청 더욱 고생을 하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저도 12월에는 엄청 열심히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께 해드릴 말은 없지만, 1월의 고통을 분담하고 싶으시다면 12월에도 최선을 다해주세요!
1차 시험 발표가 난 뒤에는 너무 기뻐서 2일간은 펑펑 놀았습니다. 사실 발표 당일만 즐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 여러분은 꼭 바로바로 준비하세요!
(8) 2차 시험 준비(1월)
금요일에 발표가 나고 월요일에 스터디가 조직되었습니다. 모두 2차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다소 걱정은 되었으나 다들 열심히 참여해주셔서 좋았습니다. 월~토 9시부터 18시까지 진행했습니다. 합격의 기쁨은 잠시, 1월이 되자마자 엄청난 부담감 쓰나미가 몰려옵니다. 12월은 그래도 즐기면서 하고 패턴을 유지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면, 1월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막다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기간 중에서 제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육체적으로 한계에 부딪혔던 기억이 납니다. 고시텔에 들어오면 계속 뻗어버리는 등 진짜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1차 공부하는 것이 그리웠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2개 다 두 번 다신 하면 안되었기에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제가 학교가 충북대인데, 학교에서 특강을 하거나 충북 지역 선배 분이 수업이나 면접을 봐주신다고 하면 바로 고속버스터미널로 달려갔기 때문에 서울에서만 준비하진 않았고 학교 혹은 충북 지역 선배님들이 근무하고 계신 모 고등학교 까지 가서 했기 때문에 24시간이 모자랐습니다. 이렇게 바쁘기 때문에 12월달에는 수업에서 자신이 자랑할 틀이 완성되어있어야 합니다!! 1월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신이 어떤 수업을 해야 하는지 방향성이나 방법을 정하지 못했다면 정말 헬게이트 오픈입니다. 같이 스터디하시는 분들이 하루에 9시간 정도 계속 보기 때문에 처음에는 미진해보이는 스터디원도 가면갈수록 실력이 일취월장해가기 때문에, 자신만이 그대로 멈춰서있으면 추월당합니다. 이럴 경우 조급해하시진 마시고 자신이 12월달에 했던 수업 스타일을 천천히 되돌아보시고 자신의 수업을 촬영한 것을 돌려보면서 강점을 찾아보세요!
1. 수업 실연
스터디원 1분이 [전공역사 2차 수업실연 실전문제집 2022, 수업만점자의 비밀노트]를 가져오셔서 이 순서대로 하기로는 했습니다. 문제 만드는 것이 시간도 많이 들고, 귀찮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문제들이 학습목표를 직접 작성하라는 괴랄한 문제들뿐이라서… 그대로 사용할 순 없었습니다. 자료만을 참조하거나 서로서로 12월 스터디원들과 만들었던 문제들을 공유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꼭 이렇게 하세요;;;; 새로 문제를 만드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문제를 만들 시간에 제 생각엔 교과서를 한 번 더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수업실연을 제가 만점을 받았고 나눔은 0.33점만 감점되었는데, 그 비결은 생각해보니 다음과 같습니다.
① 적극적인 학생 피드백과 확산형 발문으로 전개
: 저는 수업을 함에 있어서 판서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절대 칠판 앞에서 가만히 서서 수업하지 않았습니다. 수업 시작에 앞서 저는 “생각 열기 질문”이라고 해서 확산형 발문을 할 때, 학생들에게 다가가는 모션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쫙쫙 펼쳐서 절대 수업이 정적이지 않게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부분은 수업나눔에도 충분히 활용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항상 학생들에게 웃는 모습으로 다가갔고, 특히 마스크를 껴야 하기 때문에 눈웃음을 잘 지어야 했습니다. 얼굴 근육이 아플 정도로 연습을 했고, 실제 수업 실연 현장에서도 좋은 인상을 주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② 성장 중심의 피드백
: 저는 학생들에게 피드백할 때 그저 ~~잘했어요, 이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학생이 어떠한 부분에서 잘했는데, 이번 수업에서 ~~을 수행하여 어떤 부분에서 어떠한 성장이 일어났는지를 명확히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수빈이는 역사 사실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뛰어났는데, 방금 발표를 들어보니 역사 자료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능력도 크게 성장해보이네요. 이렇게 점점 성장해가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이렇게 최대한 성장중심평가가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실제 시험장에서도 이 부분에 있어 굉장히 평가관 분들이 흡족해하시는 것이 느껴졌고, 나눔 때에도 굉장히 할 말이 많아졌다고 생각합니다.
③ 끊임없는 자기평가
: 자기 자신의 수업을 보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습니다. 저도 제 목소리를 듣기가 기분이 좋진 않았고, 자꾸 못한 부분만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기평가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나눔에 있어서 어색해보인다는 부분은, 자기가 자신의 수업을 명확히 알지 못하는데 자신이 억지로 끼워놓은 장치를 그대로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이 느껴지기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수업을 가장 잘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자기 수업을 모르는데 어떻게 자신의 수업에 대해서 나눔을 할 수 있겠습니까.
④ 현직 교사들의 도움
: 이 부분은 할 수 없으신 분들도 많겠지만, 저도 저보다 일찍 붙은 후배들에게도 부탁하여 수업을 보여주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선배, 후배 중 교사가 된 분들을 밴드로 초대하여, 매일매일 영상을 올려서 어떻게든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연합 스터디를 하기가 부담스러웠고, 1월달에는 다들 예민하고 지치기 때문에 원활한 피드백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꼭 여러분들도 선배나 후배 중에서 친하지 않더라도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서 피드백 꼭 받도록 노력하세요!!
⑤ 수업 구상지 효율적 활용
: 조건에 해당하는 부분은 빨간색 펜으로, 선생님들께서 새로 만든 조건과 틀은 파란색 펜을 활용하세요. 그러다 보면 조건을 저절로 지키고 활용하는 데에 신경이 더욱 쓰이게 되는 좋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입니다.
2. 면접
면접은 수업실연과 나눔보다는 중요하지는 않지만, 굉장한 복병입니다. 시책을 외우자니 1월에는 시간이 별로 없었고, 그렇다고 시책을 안보자니 불안했습니다. 다행히 12월달에 면접 단권화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서 외우기보다는 방안을 찾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다양한 교육뉴스, 현직 교사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제가 생각하는 답변이 현실적으로 실현이 가능한가..?를 중점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굉장히 섹시하고 새로운 답변일지라도 현실적이지 못하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지요. 자신이 생각한 답안이 괜찮다고 생각할지라도, 꼭 현실성의 여부를 판단해주세요. 면접관분들은 이것을 굉장히 잘 캐치하고 있습니다...
사이다만 본 것이 아니라 면접레시피도 1월달에는 봤습니다. 면접레시피는 전국 임용수험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문제가 경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제별로 나누어 문제를 풀어봤습니다. 사이다 책이 굉장히 좋긴하지만, 사람이 만든 책이라 생길 수밖에 없는 옥의 티를 꼭 면접레시피로 보충해보세요.
교육감 신년사는 당연히 굉장히 중요합니다. 초등면접에는 아예 그대로 나오기도 했었죠. 이를 활용하는 방법은 어렵진 않았습니다 바로! 사이다 유튜브를 보시면 됩니다.......... 여기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명확하게 판단이 가능합니다.
제가 충북대를 나왔고, 주변에 충북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이 주를 이뤘기에 (경기는 1명밖에 없습니다.) 수업 실연에서는 많은 교사분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면접은 그다지 큰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대한 파훼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나만의 답변”을 만들어라
: 우리 경기는 다른 지역과 다릅니다. 몇몇 지역은 시책을 그대로 외우고, 기계처럼 답변하는 데 치중하면 노력은 해도 점수는 안나옵니다. 꼭! 자신만의 답변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에 대한 방법으로는 교육 뉴스를 끊임없이 찾아보고, 현재 교육계에서 무엇이 화두인지를 캐치하고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과정이 가장 중요합니다.
② 사이다 유튜브를 끊임없이 반복하라
: 사이다 유튜브에서 이지수 선생님이 올리시는 내용은 정말 중요합니다. 2차 스터디 특성상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시간이 많으신데, 그때 오며가며 꼭 들으세요. 확실히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너 , 나, 우리 등등)
(9) 2차 시험
사실 1차가 더 떨렸습니다. 정말 1차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긴장을 했고, 교육학 때는 정말.. 정신이 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2차는 떨렸다기 보단 시험이 끝나면 정말 이제 다 끝이라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고, 2차는 긴장하면 정말 망할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인드 컨트롤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시험장 가시면 수험번호대로 앉게 되는데, 책상에 붙어있는 관리번호는 이따가 다시 뽑게 됩니다. 아침에 앉은 자리가 3번이라서 굉장히 좋아했는데...
① 수업 실연 (30+29.67)
11번을 뽑았습니다..... 마지막에서 2번째 자리에 걸렸다는 생각이 드니 아찔하기도 했고, 난방이 잘 나오지 않아서 정말 벌벌 떨면서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부디 앞번호 뽑으세요.. 수업실연만큼은 꼭 앞번호가 좋습니다. 진짜 경기도는 기다리는데 그 어떠한 책도 못보게 해서 정신과 시간의 방이 따로 없었습니다. 뒷번호를 뽑을 경우를 어느 정도 대비하긴 했지만 정말 힘들었습니다. 뒷 번호를 뽑을 경우 저는 수업을 더욱더 역동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평가관분들도 지쳐있을 것이고, 저 역시 지쳐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할 수 있다라는 마음가짐을 가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 차레가 돌아왔습니다. 다같이 모여 구상실로 이동했습니다. 시험지를 펼치자마자 드는 생각은 엥...? 이었습니다. 세계사인 제2차 세계대전이 나온 것은 별로 놀랍지 않았습니다만, 뭐 이런 조건이 복잡한지.... 총괄적 설명과 지도의 특성은 녹색책의 개념이었는데 이것이 실제 2차에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고, 3번째 페이지에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여기까지만 해라 저기까지만 해라 등등 별의별 조건이 굉장히 뜨악했습니다. 여기서 드는 생각은, 다시는 2차 할 짓이 못된다 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여기서 굴복하면 내년에 이 짓을 또 해야한다는 생각이 저를 옥죄었습니다. 그리고 조건을 처음에 잘못 파악하여 5분을 날렸기 때문에 20분동안 미친 듯이 구상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지... 하는데 여러분들도 당시 상황이 되신다면 초인적인 힘이 나올 것입니다.
구상이 끝나고, 평가실로 이동했습니다. 복도 감독관분이 정말 친절하시도 뒷 번호를 뽑은 저를 굉장히 응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평가실로 들어가서 굉장히 큰 소리로 인사드렸습니다. 제 앞번호가 대부분 여성분이셔서 화끈하게 수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야수와 같은 심정으로 수업에 임했습니다.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생각 열기질문(확산형 발문)을 할 때 교탁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수업을 하였고, 굉장히 매끄럽게 시작하니 평가관분들이 저를 흥미롭게 보기 시작하셨습니다. 판서도 구조화하여 깔끔하게 했고, 활동까지 마치고 수업나눔으로 이동했습니다.
수업나눔은 문제가 당황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이다 수업나눔 예상문제를 크게 벗어났다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에 편안히 웃으며 답변드렸습니다. 실제 학교 현장에서 대화하듯이 하라는 것에 중점을 두어 웃으면서 나눔을 했고, 면접관분들 역시 굉장히 만족스러웠던 모습이 잘 드러났습니다.
수업나눔 복기(상세히 기억이 안나서 간략합니다.)
㉠ 공감과 소통 역량을 발달하기 위해 당신의 수업에서 잘한점 및 보완점
: 2015교육과정에 있어 공감과 소통 역량은 매우 중요하다. 잘한점은 공감 위해 성장중심피드백, 소통 역량 위해 생각열기 질문을 했다. 보완점으로는 좀더 학생들의 참여를 위해 발표 기회를 더 많이 부여했어야 했다. 기초 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설정하여 학생들이 서로 또래 교수하는 소통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 온오프라인 수행평가 방안 각각 말하시오.
: 코로나 19의 상황으로 인해 온오프라인 블랜디드 러닝이 어느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강의식, 인지 중심 수업을 위주로 전개하며, 오프라인에서는 활동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온라인 학습에서는 이전에 비해 학생들이 무엇을 더 알게 되었는지 성장 중심 평가를 자기 평가를 통해 실현해야한다. 오프라인에서는 교사 혼자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활동에서의 평가를 위해 동료평가를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 당신의 수업을 마을학습공동체와 연계한다면?
: 본 수업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자칫 한국사와 크게 관련이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현실로 와닿지 않는 부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이러한 전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주변에 위안부 할머니들이 계신 쉼터 가 있다. 여기에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통해 직접 방문하는 마을학습공동체로서 활용한다면 학생들이 비록 세계사일지다고 우리 고장의 환경과 상황에 접목된 부분을 스스로 체혐할 수 있다.
② 면접 (39.2)
전날에 4시에 시험을 봐서 집에 도착하니 6시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매우 지친 상태라 무엇을 하기가 굉장히 힘들었고, 누워서 면접 정리본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괴로웠지만 다음날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에 하루만 더 버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부디 앞 번호를 뽑기를 학수고대했습니다.
다행히 3번을 뽑아서 어제에 비해 굉장히 빨리 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구상실로 이동해서 문제를 보았는데, 생소한 문제는 없었고 오히려 그다지 큰 부담을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이다 문제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양식은 면접레시피를 살짝 참고한 느낌이라 둘다 준비한 저에게는 익숙한 문제들이었습니다.
면접은 제가 12분 조금 넘겨서(12분에 종이 1번 울립니다.)5문제를 모두 말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조건을 모두 충족했다고 생각해서 당황하지 않고 저의 포부를 30초정도 드러낸 뒤, 평가실에서 나갔습니다. 시간을 좀 남겨서 이것이 불이익이 될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별로 싫어하시진 않는 눈초리였습니다. 결과적으로도 0.8점만 감점되서 그다지 큰 영향력을 행사하진 않다고 보여집니다.
면접복기는 크게 생각이 나지 않아서 생략하도록 할게요,,,
6. 마치는 말
경기도에서 지난 2년간 2일~3일 빨리 발표해서 화요일부터 기다리고 있었는데, 결국에는 목요일에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발표했습니다. 진짜 떨리는 2일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히려 시험장에서보다 더 떨렸습니다. 혹시 안되면 어떻게 하겠냐는 생각에... 2월 7일까지는 친구들과 여수, 경주, 광교 등 별의별 지역을 다 여행해서 별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8일부터 10일까지는 무슨 정신으로 살았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차 점수도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욱 잘 나왔고, 6등이라는 굉장히 높은 등수까지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3수 끝에 붙어서 합격을 확인했을 때 엄청 기쁘다기보다는 얼떨떨했고,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신 못할 것 같았거든요. 거기에 최탈의 아픔을 주변에서 많이봐서(같이 공부했던 동훈이...)정말 최탈만큼은 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2차도 정말 살이 5KG넘게 빠질만큼 고생하면서 미친 듯이 했고, 여기저기 발품팔아서 교실과 유사한 공간에서도 수업을 원활하게 이끌어나가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가 저를 이렇게 합격수기를 쓰게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3수가 아니라 초수에 붙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제가 만약 초수에 붙었다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한 저의 제자들에게 해줄 말이 없었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저의 3년간의 수험생활이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감사하고 은혜였던 때라고 여깁니다. 순탄하고 탄탄대로같은 삶도 물론 좋지만, 아픔과 좌절을 겪고 이를 극복해내는 과정 속에서 학생들을 좀더 공감하는 자세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혹시 수험 생활 속에서 여러 환난을 겪을 때, 이를 극복해내어 나중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거울이 되는 선생님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같이 재수때 완전히 무너진 사람도 다시 이렇게 일어나게 된만큼, 여러분도 나도 할 수 있다라는 마음가짐을 재정립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재수와 삼수 등 여러 해를 공부하면서 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버리시고, 모든 것이 은혜이며, 내 삶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생각을 가지세요! 모두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7. 1차 복기
<전공 답안> 65/80
A형
1. 추체험, 표현
2. 오경정의, 경교
3. 사학, 사덕
4. 흑수말갈, 신라
5. ㄱ은 학습자의 삶과 연관성이 있어야 하고, 다양한 관점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 수렴적 질문 / 자신과 다른 입장의 학생들이 어떠한 근거로 그러한 주장을 하였는지 파악할 수 있다.
6. 북경 / 남경지방에서의 미곡을 운반하여 운반비용의 지나침은 북경의 관리들이 실질적으로 수령한 봉급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ㄷ이 발생했다. / 도르곤 / 이자성
7. 자유 / ㄴ에의 소유권이 1791년 헌법에 반영되어 납세액을 기준으로 능동적 시민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하는 제한선거제를 실시하였다. / 데카브리스트의 난 / 카를스바트 법령
8. 중방 / 흥녕부 / ㄱ은 여러 무신들의 합의로 정치가 운영되었다면 ㄴ이 집권한 시기는 ㄴ을 중심으로 한 일원적인 지배질서가 구축되었다. / 어사대, 낭사(낭사 맞게 채점했대요)
9. 조선 내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을 ‘부’라고 하였다. / 산미증식계획으로 인한 지나친 수리조합비 비용 등으로 인해 ㄴ이 심화되었다. / 강남의 번화한 지역은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여 번영하였으나. 빈곤한 조선인들은 토막민이 되어 도시 외곽에 거주하였다. / 애국반
10. 여러 역사적 사실들 간의 공통관계를 비교할 수 있다. / 평가자 내 신뢰도 / 학생들의 글쓰기 등 표현 능력을 측정할 수 있다. / 제시문에서 활용한 자료들이 무엇인지 학생들이 탐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11. 리키니우스-섹스티우스법 / 2명의 집정관 중 1명은 반드시 평민출신이어야 한다. /ㄷ은 농지법을 제정하여 누구든 리키니우스법에서 정한 것 이상의 땅을 소유한 자의 토지를 몰수하여 빈민에게 분배했다. / ㄴ은 ㄷ을 통해 로마 사회의 불안을 일소하고 자영농과 시민군을 창출해 군사력을 강화했다.
12. ㄱ은 국민정부가 내부의 공산당 처리 문제를 외부의 일본의 침입보다 우선시한 것을 의미한다. / 항일여론금지법 / ㄷ이 장성 이남에 설정된 비무장지대에 괴뢰정부인 기동방공자치정부를 설립하고 통치하려 하자 (나)를 선언한 운동이 일어났다. / 5.4운동은 일본이 본래 독일이 갖고 있던 산동 지역의 이권을 남겨받은 사실에 항거하고자 일어났다.
B형
1. 체르노빌 / 지속 가능한 성장 (맞았습니다)
2. 정약용 / 여유당전서
3. ㄱ학습을 통해 역사적 사실들 간의 관계를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 가설 / 문화권 / ㄷ중심 내용조직방식을 통해 역사적 사실들을 보다 거시적,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4. 미일 안전 보장 조약 /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었다. / 한일회담에서 대한민국은 일본에게 경제협력자금 명목의 돈과 차관을 받는 대신 대일 청구권을 포기한다. / 미국은 일본을 반공기지의 거점으로 삼고자 일본의 국제사회로의 복귀를 서두르기 위해 ㄹ이 포함되었다. /
5. X / 역사는 추상적 어휘로 쓰여진 것이 많기 때문에 약 16세 이상이 되지 않으면 ㄴ이 일어난다. / 영역고유인지이론 / 관련 영역의 지식
6. 환관 / 광무제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신권을 약화시키고, 환관부를 설치하여 환관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 당고의 금 / 직용의 변
7. 송 / 서하 / 전연의 맹 / 송과 거란이 형제 관계를 맺고, 송은 거란에게 세폐를 지급한다.
8. 아바스 왕조 / 직전 왕조에는 아랍인 제일주의를 표방하였으나, ㄱ왕조에서는 비아랍인 무슬림도 지배 계층으로 포섭하였다. / 성상 파괴 운동 / 당시 수도원 세력들이 대토지를 소유하여 ㄷ 문제가 발생했다.
9. X / 인물행위결정분석모형 / 해당 인물이 그러한 행위를 하는데 영향을 준 모든 요소를 고려하도록 한다. / 신문 내용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였는가의 여부
10. 신문왕은 교육제도 개혁을 위해 국학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유교적 재능을 갖춘 6두품세력을 양성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다. / 관인들에게 일정 지역에서의 수조권만을 인정하는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다. 또한 녹봉을 지급했다.(축년사조가 답이었대요.)
11. 베스트팔렌 조약 / 칼뱅파가 용인되고, 개인의 신앙의 선택권을 인정한다. / ㄴ은 독립을 국제적으로 보장받게 되었다. / 전쟁과 평화에 관한 법
첫댓글 형 고생했어용 :)
너도 고생했어~~~박쌤★★★
붙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_^
같이 잘되서 다행이요!!!
혹시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대댓으로 달아주세요😲 비댓은 안보여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