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예화
▣ 어찌하여 너는 한국으로 가지 않느냐 ?
한국교회사를 보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 언더우드 박사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나옵니다. 언더우드 박사는 1884년에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기로 굳게 결심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인도행을 결심합니다. 당시 많은 질병과 고통으로 시달리고 있던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1년 동안 의학과 그 나라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이렇듯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 무렵, 어느날엔가 그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어찌하여 너는 한국으로 가지 않느냐 ?” 그는 환상을 겪은 뒤에, 정신을 수습하고 한국이 어디 있나를 지도상에서 확인해봅니다. 이것이 언더우드 박사가 한국에 오게 된 동기입니다. 그는 1885년 4월 5일 아침, 인천항에 첫발을 내림으로 한국교회의 토대를 이루었습니다.
▣ 졸지에 개새끼가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새끼 호랑이가 엄마와 풀밭에서 재롱을 떨며 장난을 하고 있었습니다. 새끼 호랑이가 그 어미 호랑이에게 물었습니다. "나 호랑이 맞아? 달리기도 못하고 토끼 한 마리도 못 잡고 사냥도 못하는 내가 호랑이 맞아?"
어미는 대답합니다. "그럼. 내가 낳은 새끼니까 너는 틀림없는 호랑이다." 또 물어봅니다. "강아지만도 못한데 나 호랑이 맞아? 난 아무 것도 못하는데 내가 호랑이 맞아?" 자꾸 물어보니까 화가 난 어미 호랑이가 "야, 이 개새끼야!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졸지에 개새끼가 되어 버렸습니다.
▣ 내가 예수 믿은 덕에
나는 김익두 목사님 살아 생전에 몇 번 뵌 것을 나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분은 유명한 깡패였습니다. 예수를 믿고 신촌 서북교회에서 목회할 때 제가 그 교회에 나가서 목사님으로부터 친히 들은 이야기입니다.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어서 제가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 자주 말씀드립니다.
어느 날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서 교통 수단이 좋지 않을 때에 여름에 보따리를 걸머지고 산을 넘어가는데, 너무 덥고 괴롭지마는 빨리 올라가서 산정에서 바람을 좀 쇠면서 쉬고 갈 것이다 생각하고, 참고 올라가서 아무도 보는 사람 없는 때라 윗통을 다 벗어 젖히고 거기 앉아서 불어오는 바람을 이렇게 쐬고 있었어요.
그런데 맞은 편에서 술취한 친구 하나가 비틀비틀 올라오더니 딱 쳐다보더니, "너 왜 나보다 먼저 올라왔냐?" 그러고는 막 때리는 거예요. 그냥 맞습니다. 목사님 표현대로 할까요? '이사 나간 집 굴뚝 부수듯이' 그냥 부수는 거예요. 그냥 때려부수는 겁니다. 한참을 때리더니 대항을 하지 않으니까 숨을 몰아쉬면서 씩씩거리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 말씀이 "형님 다 때렸소? "그러고 악수를 했는데, 그 김익두 목사님 손이 아주 억셉니다. 딱 붙들고 악수합니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네." 하셨습니다. 유명한 말입니다. "예수는 내가 믿고 복은 자네가 받았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니까 "내가 김익두야!" 사내가 깜짝 놀랐대요. 아이쿠, 죽었구나. 벌벌 떱니다.
"그래 내가 뭐라고 하던가, 예수 믿기 전에 이런 일 당했으면 자네는 여기서 장례식까지 끝나는 거다. 그런데 내가 예수 믿은 덕에 네가 살았지 않았느냐." "아이구, 그러면 나는 어떡하면 좋을까요?" "뭘 어떡해? 따라와." 데리고 가서 부흥회 참석하게 하고 예수를 믿게 하고, 그가 뒤에 장로가 됐다고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씀하시던 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 제가 한순간 적에게 이롭게 한 것은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봉무제라고 하는 노나라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신부라는 고을의 원님으로 있었는데 어느날 불현듯 이웃 제나라에서 군사들을 이끌고 쳐들어왔습니다. 봉무제는 모든 고을 백성들을 서둘러 성 안으로 모이게 하여 성문을 닫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마침 보리를 추수할 때인지라, 성 밖 들판에는 보리가 노랗게 익어 있었습니다. 만일에 성 안으로 피해 들어간다면 제나라 사람들이 이것을 다 약탈해갈 것입니다.
사람들은 봉무제에게 말했습니다. “무조건 성 안으로 피할 것이 아니라, 고을 백성들로 하여금 내 것 남의 것 가릴 것 없이 보리를 추수해서 각각 가지라고 해버립시다. 그러면 너도 나도 달려들어서 재빨리 추수할 것입니다. 1년 동안 수고한 것이 아깝지 않습니까? 적에게 내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봉무제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결국은 그냥 성 안으로 들어가 굳게 성문을 닫았고, 제나라 군사들이 그 많은 곡식을 거두어 가버렸습니다.
이 사실이 온 나라에 알려져서 봉무제는 급기야 재판정에 서게 됩니다. 임금님은 봉무제에게 묻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적에게 이로운 일을 하였느냐? 차라리 그 곡식을 불질러 버리든지 할 것이지!” 그는 정중하게 말합니다. “제가 한순간 적에게 이롭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마음대로 거두어 먹으라고 한다면, 그들이 앞으로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마도 피땀흘려 살 생각은 안하고, 남의 것은 공짜로 아무 때에나 얻을 수 있다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불로소득을 한 것이라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못된 마음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10년이 걸려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임금님은 봉무제의 그 깊은 뜻을 헤아리고는 그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고 합니다.
▣ 자전거 도둑은 빼놓고요
토리라고 하는 네 살 된 예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아버지, 어머니, 오빠를 비롯한 모든 가족과 주변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고, 또 모두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를 오빠에게 조그마한 새 자전거를 사주었습니다. 오빠는 자전거 뒤에 토리를 태워주었습니다. 토리는 자전거 타는 것이 재미있었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뒤뜰에 놓아둔 자전거를 그만 도둑맞았습니다. 온 집안이 이 일로 인해서 다 기분이 안좋았습니다. 특별히 토리는 마음이 상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토리는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에게 아버지, 어머니, 오빠 주신 것을 감사하구요, 모든 것을 다 감사드려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축복해주세요.” 그리고는 덧붙여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전거 도둑은 빼놓고요.”
▣ 보시오. 행복하지 않소?
어떤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는데 그날 따라 갑자기 비가 옵니다. 그래서 신혼 여행길에 온통 비를 맞게 되었습니다. 신부는 짜증을 냈습니다. “하필이면 우리 결혼식 하는 날에 재수없이 비가 와 가지고.....” 신랑이 신부를 달랩니다. “무슨 소리요? 우리가 이런 날로 정한 게 잘못이지. 또 비가 온다고 해서 일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행복한 이 시간에 우리의 마음이 흔들려서야 되겠소?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그것이면 됐지 이까짓 비 때문에 우리의 사랑이 손해를 봐서야 되겠소?”
아무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목적지에 도착한 후, 방안에 들어와서 불을 켜놓고 보니 그것 참 분위기 있더랍니다. 비가 오니 밖에도 나갈 수 없고 둘만이 방안에 있으니 절로 무드가 생깁니다. 신랑이 말합니다. “보시오. 행복하지 않소?” 여러분, 날씨 탓할 것 없고, 세상이 어떻고, 라고 말할 것 없습니다. 어떤 경우를 만나도 우리의 마음은 항상 고요해야 합니다.
▣ 선과 악이 공존한다
탈무드에 전해지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노아 홍수 때의 일입니다. 많은 비가 오고 이제 홍수로 인하여 모든 것이 물에 잠기게 될 때, 노아는 모든 짐승들을 암 수 한 쌍씩 방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선(善)이 혼자서 덜렁덜렁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노아가 “전부 한 쌍씩 들어오라고 했는데 너는 왜 혼자 들어오는 것이냐?”하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선은 자기와 짝이 될 것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악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제서야 노아는 그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이 세상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사람들이 ‘세상에 왜 악이 있을까? 왜 선과 악이 함께 있을까?’를 머리 아프게 생각한 나머지 이런 이야기까지 생긴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유는 묻지 마십시다. 분명한 것은 선과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 30년 동안을 고생했다
한 젊은 농부가 어떤 농부와 나란히 이웃하여 오랫동안 살았는데, 어느 날 이웃 농부로부터 참기 어려운 모독을 당하였습니다. 아주 분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화가 난 농부는 복수할 양으로 존슨쵸라고 하는 잡초씨를 이웃 농부의 밭에 뿌렸습니다. 당연히 그 밭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얼마 후에 그 농부의 딸과 그 밭을 이 사람에게 결혼 선물로 주었습니다. 농부는 그 밭의 잡초를 없애느라고 무려 30년 동안을 고생했다고 합니다.
▣ 선을 한가지도 못하고 임종을 맞는 것
페르시아의 왕이 어느 날 세계적인 현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인류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죄악이 무엇이겠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그리이스의 현자는 “늙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도의 현자는 “사람이 도저히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당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페르시아의 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암흑의 세상에 광명을 줄 만한 선을 한 가지도 못하고 임종을 맞는 것입니다.”
▣ 우러러 뵈는 연설
1945년, 태평양 전쟁이 끝났을 때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맥아더 장군이 동경땅에 발을 디디었다. 들은 바로는 동경 시민들이 구름같이 모여서 이 적국의 장군을 뜨겁게 환영했다고 한다. 매스컴들은 그 모습을 가리켜 이례적인 광경이었다고 보도했다.
맥아더 장군은 그 환영 군중을 향하여 유명한 일장 연설을 했다. 그 연설의 마지막 대목이 인상적이어서 기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는 경제 문제입니다. 경제 문제는 군대 문제입니다. 군대 문제는 정치 문제입니다. 정치 문제는 정치가의 양심 문제입니다. 양심 문제는 도덕 문제입니다. 도덕 문제는 종교 문제입니다. 종교 문제는 신학적 문제입니다.” 하고 연설을 맺은 것이다.
오늘에 다시 음미해 보아도 위대한 연설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맥아더 장군의 면모가 절로 우러러뵈는 연설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맥아더 장군이 지적한 문제는 바로 오늘의 우리에게도 절실한 문제이다.
▣ 어리석은 듯 슬기로운 사람
중국의 철학자인 노자가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연약한 것이 강한 것보다 낫 다. 어리석은 듯 슬기로운 것이 얌체 같이 똑똑한 것보다 낫다.” 그러자 제자 중에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연약한 것보다는 강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이에 노자는 대답합니다. “강하면 부러진다. 약하면 부러지지 않는다. 센 바람이 불 때에 큰 나무는 뿌리째 뽑히지만 연약한 갈대는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는다.”
이 말을 들은 제자는 되물었습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게 느껴집니다마는,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보다 못하다는 말씀은 잘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다시 노자가 대답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똑똑한 사람은 남들의 미움을 받기 쉽다. 어리석은 듯 슬기로운 사람은 남들이 모두 좋아한다.”
▣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워있다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학교라고는 국민학교만 조금 다녀본 정도입니다. 그런 그가 대통령에 출마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이 있었겠습니까? 적도 많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중에 스탠톤이라는 사람은 얼마나 링컨을 괴롭혔는지 모릅니다. 그가 한 말은 유명합니다. “링컨은 교활한 어릿광대, 오리지날 고릴라이다. 고릴라를 구경하려면 아프리카로 가지 말고 일리노이주 스텐필드로 가라. 거기에 가면 에이브러햄 링컨이라는 고릴라를 만날 것이다.”
그런데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되어 내각을 조직할 때, 그 스탠톤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링컨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그렇게도 당신을 비난하던 사람인데 어떻게 그러실 수 있습니까?” 링컨은 여유있게 대답합니다. “그 자리는 그 사람이 맡아야 합니다. 사명감이 분명하거든요. 그런고로 다 극복할 수 있어요.”
여러분, 링컨은 넉넉히 이길 수 있었습니다. 훗날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당했을 때에 가장 슬피 운 사람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여기,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워 있다”고 통곡을 했습니다. 이 얼마나 강합니까? 이 여유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링컨은 철저한 사명의 사람이기에 평생 자기를 비난하던 원수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독일 쾰른지방의 어느 건물 지하실 벽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낙서로 남아 있습니다. ‘태양이 구름에 가려 햇빛을 볼 수 없을 때에도 나는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비록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실 때에라도 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엄연히 계심을 믿는다’ ---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때에 그 지하실에 갇혀 있었던 어느 전쟁 포로가 하나님께 고백한 기도의 말을 새겨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위대한 신앙고백이 아닙니까 ?
▣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
프랭클 박사가 쓴 <의미를 찾는 인간의 탐색>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것은 나치하의 유대인 포로 수용소에 대한 것을 자세하게 관찰하여 기록한 책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당시 6백만에 이르는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수용소에서 죽어갔습니다. 끔찍한 생체 실험과 갖은 고문을 다 당하고, 가스실로 옮겨져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나치 독일의 그 죄악상과, 유대인들이 그 핍박과 고통을 어떻게 견뎌냈는가를 고발하고 연구하면서 프랭클 박사는 그의 저서를 이렇게 끝냈습니다. ‘마음으로 포기한 사람은 몸도 쇠약해졌다. 그러나 끝까지 소망을 잃지 않은 사람은 살아남았다.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절망 속에 있는 동료들에게도 소망을 가지도록 격려하던 사람은 모진 고문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에 있었다.’ 똑같이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서도 소망을 지킨 사람은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출처] 강단설교예화: 곽선희목사편(9)|작성자 선한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