弔 詩
-노무현 대통령의 영전에 바침
하루 세끼 잘 처먹고
부와 권력을 거머쥐었다고
어디 다 인간의 삶인가요?
짐승만도 못한 무뇌충들이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의 영혼을 유린하고
슬픔에 젖어 살게 한 이 땅에서
사람 사는 세상 만들려고
피 말리는 시간들을 견디어온 님이여!
우리가 잘못했어요
우리가 당신을 너무 외롭게 하였어요
용서해주세요
이제는 우리가 함께 할께요
당신의 고운 뜻 가슴에 담아
이 세상 다하는 그날까지
기어이 사람 사는 세상 만들어 놓고
님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당신은 아시잖아요
우리 민초들의 진정한 사랑과 용기를
그 오랜 독재의 잔혹함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이 땅에 민주화를 이룩해낸
거룩한 죽음들을
당신은 아시잖아요
이제 거짓 없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신 님이여!
오늘 우리가 슬퍼하는 것은
당신과의 이별이 서러워서가 아닙니다
시간이 강물처럼 흐르다
어디쯤에서 한없이 고여 있을
지울 수 없는 님을 향한 그리움 때문입니다
내일이면 당신을 많이 보고 싶어 하였을
먼저 가신 민주화 동지들을 만나겠지요
이곳의 일들일랑 다 잊으시고
반갑게 얼싸안고 술 한 잔 하십시오
우리들은 우리들끼리
…….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백무산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그건 프로 정치가 아니야, 바보야
진보란 그런게 아니야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그건 사이비 민주주의야, 바보야
애국은 그런게 아니야!
아, 우리가 당신을 버렸습니다
말뿐이던 우리가 텅텅 빈 우리가
허세뿐이던 우리가 당신 손을 뿌리치셨습니다
새벽닭 울기 전에 열번 스무번 당신을 부인했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버리고 돌아서니
난데없이 철벽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렇게 당신을 벼랑에 떠밀고 내려다보니
바위 벼랑 아래 처박힌 피투성이 얼굴은
우리의 얼굴이었습니다
운명이었습니다
아, 운명이었습니다
운명은 첫 순간에 종말을 결정해 버렸습니다
당신을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자는 뜨거운 정의의 감정을 품어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순결한 영혼을 동경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과 순결한 영혼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짓 따위는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가난한 자를 높이 세우려는 짓 따위에
열정을 품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권력자가 선한 일을 행하고자 한다면
자신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당신을 이것을 거부함으로써 운명의 비극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우리가 알게 되었습니다
이천년 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한 사내의
외침을 이제서야 알 것 같습니다
나의 패배가 여러분의 승리가 외치고 있습니다
피에 굶주린 자들에게 당신을 먹이로 던지고
피의 잔을 나누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 슬픈 선지가의 꿈이여!
당신은 정치가가 아니었습니다
아, 살아서 훌훌 벗어버리고 싶었던 사람이여
다 벗고 인간만 남기고자 했던 사람이여
정치도 벗고 권력도 벗고 모든 권위도 벗고
오직 벌거숭이 인간만 남기려 했던 사람이여
차별 없는 인간만 남겨 조건 없는 사랑을 꿈꾸었던 사람이여
당신의 눈물이 우리들 가슴에 강물처럼 일렁입니다
당신의 눈물이 검은 아스팔트 위에 붉게 출렁입니다
.................
<내가 아는 그는> 류시화
내가 아는 그는
가슴에 멍 자국 같은 새 발자국 가득한 사람이어서
누구와 부딪혀도 저 혼자 피 흘리는 사람이어서…
세상 속에 벽을 쌓은 사람이 아니라 일생을
벽에 문을 낸 사람이어서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마시는 사람이어서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밥 속의 별을 먹는 사람이어서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지평선 같은 사람이어서
그 지평선에 뜬 저녁 별 같은 사람이어서
때로 풀처럼 낮게 우는 사람이어서
고독이 저 높은 벼랑 위 눈개쑥부쟁이 닮은
사람이어서…
어제로 내리는 성긴 눈발 같은 사람이어서
만 개의 기쁨과 만 개의 슬픔
다 내려놓아서 가벼워진 사람이어서
가벼워져서 환해진 사람이어서
시들기 전에 떨어진 동백이어서
떨어져서 더 붉게 아름다운 사람이어서
죽어도 죽지 않는 노래 같은 사람이어서
-------
<운명> 도종환
당신 거기서도 보이십니까
산산조각난 당신의 운명을 넘겨받아
치열한 희망으로 바꿔온 그 순간을
순간의 발자국들이 보이십니까
당신 거기서도 들리십니까
송곳에 찔린 듯 아프던 통증의 날들
그 하루하루를 간절함으로 바꾸어 이겨낸 승리
수만마리 새 떼들 날아오르는 날갯짓같은 환호와 함성
들리십니까
당신이 이겼습니다
보고싶습니다
당신 때문에 오래 아팠습니다
당신 떠나신 뒤로 야만의 세월을 살았습니다
어디에도 담아둘 수 없는 슬픔
어디에도 불지를 수 없는 분노
촛농처럼 살에 떨어지는 뜨거운 아픔을
노여움 대신 열망으로 혐오대신 절박함으로 바꾸며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해마다 오월이 오면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지는 5월이 오면
나뭇잎처럼 떨리며 이면을 드러내는 상처
우리도 벼랑 끝에 우리 운명을 세워두고 했다는 걸
당신도 알고 계십니까
당신의 운명으로 인해 한순간에 바뀌어버린
우리의 운명
고통스런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드리며
지금 우리
역사의 운명을 바꾸고 있습니다
시대의 운명을 바꾸고 있습니다
타오르되 흩어지지 않는 촛불처럼
타오르되 성찰하게 하는 촛불처럼
타오르되 순간순간 깨어있고자 했습니다
당신의 부재
당신의 좌절
이제 우리 거기 머물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
당신이 추구하던 의롭고 따뜻하고 외로운 가치
그 이상을 그 너머의 별을 꿈꾸고자 합니다
그 꿈을 지상에서 겁탈의 현실 속에서 이루고자 합니다
보고 싶은 당신
당신의 아리고 아프고 짧은 운명 때문에
많은 날 고통스러웠습니다
보이십니까
당신이 이겼습니다
당신이 이겼습니다
당신으로 인해 우리들이
우리들이 이겼습니다
========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안도현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무거운 권위주의 의자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으로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끝도 없는 지역주의 고압선 철탑에서
버티다가 눈물이 되어 버티다가
뛰어내렸어요, 당신은 편 가르고 삿대질하는 냉전주의 창끝에서
깃발로 펄럭이다 찢겨진, 그리하여 끝내 허공으로 남은 사람
고마워요, 노무현
아무런 호칭 없이 노무현이라고 불러도
우리가 바보라고 불러도 기꺼이 바보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아, 그러다가 거꾸로 달리는 미친 민주주의 기관차에서
당신은 뛰어내렸어요, 뛰어내려 으깨진 붉은 꽃잎이 되었어요
꽃잎을 두 손으로 받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팔뚝으로 받쳐주지 못해 미안해요
꽃잎을 두 가슴으로 안아주지 못해 미안해요
저 하이에나들이 밤낮으로 물어뜯은 게
한 장의 꽃잎이었다니요!
저 가증스런 낯짝의 거짓 앞에서 슬프다고 말하지 않을래요
저 뻔뻔한 주둥이의 위선 앞에서 억울하다고 땅을 치지 않을래요
저 무자비한 권좌의 폭력의 주먹의 불의 앞에서 소리쳐 울지 않을래요
아아, 부디 편히 가시라는 말, 지금은 하지 않을래요
당신한테 고맙고 미안해서 이 나라 오월의 초록은 저리 푸르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미워하지 않잖아요
아무도 당신을 때리지 않잖아요
당신이 이겼어요, 당신이 마지막 승리자가 되었어요
살아남은 우리는 당신한테 졌어요, 애초부터 이길 수 없었어요
그러니 이제 일어나요, 당신
부서진 뼈를 붙이고 맞추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흐트러진 대열을 가다듬고 일어나요
끊어진 핏줄을 한 가닥씩 이어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꾹꾹 눌러둔 분노를 붙잡고 일어나요
피멍든 살을 쓰다듬으며 당신이 일어나야
우리가 슬픔을 내던지고 두둥실 일어나요
당신이 일어나야 산하가 꿈틀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동해가 출렁거려요
당신이 일어나야 한반도가 일어나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일어나요,
아아, 노무현 당신!
=====
===================
수평은 수직이 만든 것이다
산의 수직 하늘의 수평을
해저의 수직 바다의 수평을
기둥의 수직 천장의 수평을
언덕의 수직 강물의 수평을
꽃대의 수직 꽃의 수평을
동이에 가득 담긴 물
이고 가는 그대의,
출렁출렁 넘칠 듯 아슬아슬한
사랑의 수평도
마음 속 벼랑이 이룬 것이다
수직의 고독이 없다면
수평의 고요도 없을 것이다
========
사랑 하는 님을 보내고
5월에 떠난 님을 그리워하며
언제나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어라!
노래하며 늘 행복해 하던 그대여!
일찍이 하늘을 알고, 땅을 알았든가
솜털 같은 가슴으로 온갖 사랑 나누던 그대여!
무엇이, 그 무엇이 그리워 오월의 푸른 강을 저 먼저 건넜단 말인가요.
미아리고개 흥건하게 적셔놓고 꼬부랑 지팡이 짚고
우리 모두 만나자던 그 약속은 어디에 두고
그대, 나 몰라라 하시나요. 그대 그리움을 어찌하라고
사랑하는 그대여! 내 가슴 이미 석류처럼 불어 터졌는데
어디쯤에 그댈 묻어 달란 말인가요. 모래알 같은 사연들
그 어디, 숨길 곳 있다 했든가요 가져갈 수 있다 했든가요
하룻밤이면 모두가 쉬 잊어버리는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대를 차마 잊을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그대여! 이승의 모든 것, 벗어던지고
하얀 비단옷 가벼이 입으신 그대
아린 육신 한눈에 감아낸 그대여
우리의 기도가 더는 닿지 못해
이제는 몸 편히, 마음 편할 날만 소원합니다.
부디, 꿈꾸듯 키워온 미소 잊지 마시고 행복한 날만 맞으소서.
두 손 맞잡은 정성, 우리 모두 보냅니다. 그리고 편히 잠드소서!
5월에 떠난 님을 그리워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