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늑대와 여우의 情事
<월화루(月花樓)>
항주 서호(西湖)의 수려한 호반(湖畔)에 자리한 월화루는
색향(色 鄕)으로 소문난 항주에서도 가장 이름이 높은 기루(妓樓)다.
당연히오늘 밤도 월화루는 예외 없이 흥청거리고 있었다.
그 월화루의 후원에는 널찍한 인공연못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멀지 않은 서호와 수로로 연결된 이 인공연못은
서늘한 초여름의 밤바람에 물결을 일으키며
누각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편월(片月)의 달빛 아래 삼 층으로 세워진 그림 같은 누각은
흥청거리는 월화루의 다른 곳과 달리 아주 조용하여
적막감마저 감돌고 있었다.
이 연못가의 삼 층 누각 에 위층에 자리한 한칸의 아담한 방은
호사의 극치를 자랑하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두터운 양탄자, 벽에 입힌 금칠, 오목(烏木)으로 만 들어진
침상과 가구 등등 실로 호화롭기 이를데 없는 방이었다.
지금 이 호화로운 방에는 사람의 키만 한 동경(銅鏡) 앞에 서서 자신의 몸매를 비추고 있는 미녀(美女)가 있었다.
나이는 이제 삼십 세가량 되었을까?
우유빛 보드라운 살결에 촉촉히 젖은 듯한 눈매와 앵두빛 입술,
흑단같이 보드라운 머리는 허리까지 드리우고
풍염한 몸매는 옅은분홍빛 망사의에 감추어져
튀어나올 듯이 부풀어 오른 젖무덤,
실로 보기 드문 미녀였다.
-월화(月花)!
그녀가 바로 이곳 월화루의 주인이며,
항주의 밤을 좌지우지하는요화(妖花) 월화였다.
월화가 항주에 나타난 것은 칠 년 전이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월화루의 기녀로서 일했으나
단 일 년 만에 당시 월화루의 주인이었던 장과(張科)를
치마폭에 감싸고 주인행세를시작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장과가 갑자기 병사하자
그녀는 완전히 월화루를 수중에 넣어버렸다.
그러나 이 주루도 오래지 않아
월화가 다른 사업을 하기 위한수단으로 쓰이게 되었다.
그녀는 이곳 월화루의 밀실에서 값비싼물건을 팔고 싶어하는
암흑가의 사람들과 그것을 사려고 하는 사람들을 소개해 주는
역할을 시작했던 것이다.
암거래뿐만 아니라 그녀는 누구든 암살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지 그 일을 맡아하겠다는 자객과 손을 잡고 있었다.
그로 인해 그녀는 오래지 않아
자객들의 배후에서 보이지 않는유력자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다른 일도 아니고 살인청부업이란 것은
그만큼 위험도 뒤따르고 생명의 위협도 있었다.
만일에 청부자와 자객 사이에서 중개가 실패하거나
어느 쪽이 파멸된다면,
그녀는 목숨으로 보상하지 않으면 안될지도 모른다.
사실 이 일에는 그녀가 청부자나 자객에 대하여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일이 있을 때마다 그녀에게는
쌍방에게 거금의 액수를 받을 수 있었고,
그 결과 불과 오 년 만에 그녀는 수많은 돈을 축적할 수 있었다.
드르륵!
갑자기 등 뒤의 방문이 열리자 동경을 보고 있던 월화는
아미를상큼 찌푸렸다.
염소 수염을 기른 사십대의 교활하게 생긴 장년인이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조(趙)관사, 무슨 일이예요?}
돌아보지도 않고 묻는 차가운 그녀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있었다.
조관사라 불리운 장년인은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석(石)공자께서 왔습니다.}
순간 월화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마침내 지난 며칠 동안
그녀를 전전반측하게 만든 사건의 장본인이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곧 나갈 테니 그 분들을 밀실로 모시세요.}
그녀는 입술을 지긋이 물며 조관사에게 쌀쌀맞게 지시했다.
조관사가 다시 한 번 깊이 머리를 숙여 보이고 방에서 나가자
월화의 행동이 갑자기 빨라졌다.
가장 화려한 옷과 장신구와 향수가그녀의 깊은 서랍에서 꺼내어졌다.
모충이 진여상과 함께 피살됐다는 소식을 듣고 부터
그녀는 불안감에 떨어왔었다.
특히 자신만의 정보망을 통하여
모충의 시신이 무림맹의 절강지부로 옮겨졌다는 사실에
그녀는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었다.
자신의 행각이 들어났다고 여긴 그녀는
종내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잠적을 해 버릴까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세상이 비록 넓다지만 거의 전 무림에 걸쳐 뻗혀있는
무림맹의 감시망이나
이번 일을 청부한 제 삼 세력의 살수를 피한다는 것이
불가능한일이란 것을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결론은 하나
, 뒤로 물러 설 수는 없으니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나름의 복안이 이미 세워져 있었다.
[이 정도면 되었겠지!]
이윽고 전신을 새로이 치장한 월화는
다시 한 번 자신의 자태를살펴본 후 입술을 깨물었다.
살며시 걷는 그녀의 자태는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그
녀는 지금껏 숱한 난관과 위기를
자신이 가진 최대의 무기인 미모와 교태로 넘겼었다.
(잘 될 거야!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월화는 스스로를 위안하듯 되뇌었다.
하지만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마음 속의 공포는
그녀 자신도 참기 어려웠다.
두툼한 융단이 깔린 방 안은 전체적으로 포근한 감을 주었다.
하지만 방 안에 머물고 있는 네 사람으로 인해서
어딘지 모르게방안의 분위기가 삭막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월화는 자리에 앉았다.
월화의 맞은편 좌석에 앉아있던 청삼(靑衫)의 청년은
그녀가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고
무심히 어두워져가는 바깥 풍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청삼청년의 뒤에서 그를 보호하듯이 서 있는
세 명의 건장한 회색 옷의 장한들 또한
힐끗 그녀를 한 번 쳐다보았을 뿐,
파충류처럼 무심한 동공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이들은 바로 항주 교외의 폐장에서
모충과 진여상을 살해한 그 일행들이었다.
월화는 방안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들의 표정을 통해
자신이 계획했던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대는 여자의 아양이나 교태로
마음이 움직일 인간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내심 싸늘히 식어가는 가슴을 억누르며
요염한미소를 띄웠다.
{호호...석공자님 어서 오세요.}
월화가 미청년과 만나는 것은 두 번째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의 배 위에서 만났었는데
그때는 서로 복면을 했던 관계로 얼굴을 알지는 못했다.
청삼청년이 자신의 얼굴을밝히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얼굴을 가리지도 않고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데 대하여
월화는 문득 심장이 오므라 드는 공포심을 느꼈다.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지만,
전날 청년의 뒤에 서 있는 장한들의 무예를 보고 난 후
그녀로서는 결코 상대할 수 없는 무서운 세력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이들의 무서움을 느끼고 난 후
그녀는 청부를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 대가가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이윽고 청삼청년의 시선이 월화를 향했다.
{이런 시간에 찾아와서 방해가 안되었는지 모르겠소.}
언제나처럼 그의 말은 예의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에게 급한 용무가 있어서 말이오.
특히 소개해준 한사람이 기대를 저버려서
결례를 할 수 밖에 없었소.}
청년의 예의바른 말투에서 월화는 올 것이 왔다는 것을 느꼈다.
{저도 모충의 소식은 들었어요.
이 일은 저의 책임인 만큼 보상책을 강구하고 있어요.}
재빠르게 말을 하는 월화의 표정은 애원의 빛이 서려 있었다.
청년은 스산한 눈빛으로 그런 월화의 전신을 지그시 훑어보았다.
몸 구석구석에 청년의 강렬한 시선을 느낀 월화의 눈꺼풀이
문득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그래, 나를 보고도 나의 몸을 탐내지 않는 남자는 한 명도 없었다.
비록 일이 잘못 되었지만
나의 몸이라면 그 대가로 충분할 것이다.)
월화는 한껏 요염한 미소를 떠올리며 입술을 약간 벌렸다.
붉디붉은 입술 사이로 옥같이 고운 이가 들어나며
그녀의 농염한 표정에 약간의 백치미까지 더해주어
한층 고혹해보이게 했다.
그런 그녀를 잠시 동안 말없이 쳐다보던 청년의 입가에
희미한웃음이 스쳤다.
(호호 그럼 그렇지, 네놈도 사내인데...
오늘밤 나의 치마폭에 감긴다면...)
생각만 해도 전신에 짜릿한 기운이 펴지는지
월화는 기묘한 미소를 지었다.
{호호... 석공자님 우선 술부터 드세요.}
한껏 염기를 풍기며 월화는 술을 따루었다.
{소저, 오늘은 늦었소.
몇 가지 일이 있으니 이 밤의 남은 시간을
더 이상 빼앗고 싶지는 않소.}
한점의 변화도 없는 조용한 목소리에
월화는 자신의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기에
별로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이라면...?}
월화는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소저! 나는 소저 덕분에 녹초가 되어 버렸소.}
청년은 날카로운 눈으로 다시 그녀를 노려보았다.
{당신의 소개가 잘못되는 바람에 많은 일이 틀어졌소.
소저가 나의 기대를 배신하게 되면
나도 나의 윗사람에게 실망을 주게 되고
연쇄반응으로 나의 힘이 그만큼 더 들게 된다 말이오.}
[그 점은 진심으로 죄송하게...!]
월화가 무어라 변명을 하려했지만
청삼청년은 자신의 말을 끊지않았다.
{그래서 내가 왔다갔다 이리저리 뛰게 되고
마치 쥐새끼처럼 맴돌게 된다 말이오.}
청년은 한숨을 내쉬며 고소를 지었다.
{소저도 같은 입장에 서게 되면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닐 것이오.}
{죄송해요. 석공자님의 일에는 최선을 다했는데...}
월화는 누가 봐도 진솔한 자세로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나 청삼청년은 가차 없었다.
{그만큼 대가는 충분히 받았지 않소?}
청년의 그 싸늘한 대꾸에 월화는 할말을 잃었는지 낯빛을 굳혔다.
{일은 이렇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발뺌을 할 생각이시오?}
약간 흥분을 했는지 늘 예의바르고 차분하던 청년의 목소리가
다소 격앙되어 있었다.
월화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청년이 자신을 해칠지도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대로는 끝낼 수 없소.}
그는 말을 멈추고 주의 깊게 월화의 표정을 살폈다.
{이 일에는 내 책임만은 아니예요.}
월화는 즉시 변명하듯 말했다.
{석공자님께서 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건 그렇소.}
청년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이번 일은 나에게도 얼마간의 책임은 있지.}
월화는 약간 안심이 되었다
. 눈 앞의 이 청년은 분명 새로운 거래를 하러 온 것이 분명했다.
모충의 건으로 이번일을 취소할 생각이라면
이렇게 긴말은 필요없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 자신의 목은
바닥에 깔린 갑 비싼 서역산 융단을 피로 적시며 뒹굴고 있을 것이다.
아직 실수를 만회할 기회는 있는 것이다.
{루주가 추천한 다른 두 사람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소.}
청년은 조용히 말했다.
월화는 암암리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진 것이고,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실력자가 두 명 더 필요하오.}
월화의 눈이 둥그래졌다.
그녀는 급히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석공자님이 일고 계시다시피 저는 이제 더 이상
비마영과 같은수준의 사람을 구할 수가 없어요.}
그녀의 말에 순간 청년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소저, 이 일은 절대 피할 수가 없소.}
청년은 월화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듯이 말했다.
{이 일에서 벗어나고 싶겠지만 그런 생각은 그만 두는 것이 좋소.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니까.}
그의 말에 월화는 비로소 자신이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진기분이 들었다.
{그랬군, 그랬어.}
월화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인정하긴 싫지만
이미 자신에게는 재고나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 것이다.
청년은 그런 월화의 표정을 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일을 서둘러 주시오.
이번 일로 인해 우리 쪽의 계획에 차질이생겨서는 절대 안되오!}
말과 동시에 일어선 청년은 습관인 것처럼 뒷짐을 지으며
월화에게 말했다.
{명심하시오! 두 사람이오. 그것도 최고의 자객들이어만 하오.
이일에 소저의 몫도 대단할 거요.}
월화는 더 이상 청삼청년의 요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더 이상 주저하거나 미련을 갖을 필요는 없었다.
{시간은 어느 정도나 있어요?}
그녀의 물음에 청년은 시선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여유는 삼일 뿐이오.
그 안에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소저를 위시해서 이번 일에 관계된 칠인(七人)은
더 이상 햇빛을 볼 수 없게될 것이오.}
월화는 청년의 말에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지독한 놈, 이미 나의 뒷조사를 다했구나.
이 자가 원하는 네명의 자객이라면
황제라도 살해할 수 있는 자들이다.
도대체 어떤 사람을 표적으로 한단 말인가?)
속으로는 염두를 굴리면서도 월화는 나직이 대답했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할 준비를 해야 된다면
그들은 구하는데 시간이 걸려요.}
청년이 쌀쌀하게 말했다.
{그들이 함께 일하는 것은 아니오.
표적은 하나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임무를 수행하면 되는 거요!]
말을 하며 청년은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억해 두시오. 시간은 삼 일 뿐이라는 것을...!]
그 순간 청삼청년 뒤에 서 있던 장한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뒤를 따랐다.
{삼 일은 너무 짧아요. 오 일이라면...}
월화가 다급히 외치자 문 앞에 도착한 청년이 빙글 신형을 돌렸다.
{소저_!}
청년은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만일에 그 시간이 인생의 마지막 삼 일임을 기억한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야겠지 않소?}
위협은 이제 확실히 표면에 나타났다.
월화는 전신이 싸늘해졌다.
억지로 웃는 얼굴을 보이려 했지만
굳어진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월화는 문 앞까지 그들을 배웅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 서서
천천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사인을 지켜보았다.
세 사람의 장한이 위협을 과시하는 그림자처럼 그의 옆을 따르고 있었다.
(제미랄 것! 시간이 너무 없어!)
이윽고 네명의 방문자가 사라지자
월화는 미친 사람처럼 자신의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이제 그녀에게는 한시도 지체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든삼일 안에 의뢰자들의 요구를 충죽시켜주어야한다!
헌데 막 삼층 누각에 들어서던 그녀는 흠칫 놀라운 표정으로
자신의 침상을 바라보았다.
한명의 사내가 그녀의 침대에 비스듬히누워있었던 것이다.
나이는 삼십 오륙 세 가량쯤 되었을까?
황갈색 장포에 한 자루의 장검을 지닌 건장한 체격의 장한이었는데,
남자답게 생긴 얼굴에는 사람을 얕보는 듯한 야릇한 미소가배어있엇다.
전체적으로 퇴폐적인 분위기와 잔인한 인상이 함께 느껴지는
호남(豪男)형의 인물이었다.
자신의 침대 위에 앉아있는 그 장한을 발견한 월화의 얼굴에
돌연 반가움과 욕정의 불길이 확 솟아올랐다.
{천갈(天蝎), 언제 왔어요?}
그녀는 부르짖듯이 외치며 그대로 장한의 품 속에 안겨들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절망에 빠져있던 그녀는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표정이 되었다.
그녀의 침대에 앉아있는 사내는
그 만큼 월화에게 중요한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천갈(天蝎)이란 기괴한 이름으로 불린 사나이도
기다리고있었다는 듯이 그녀를 껴안으며 침상에 나뒹굴었다.
그자는 잠시도기다릴 수 없다는 듯,
월화의 치마를 벗기며 그녀의 사타구니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아이! 뭐가 그리 급해요!}
자신의 비지를 굶주린 짐승처럼 거칠게 더듬는 손길을 막으며
월화는 다급히 외쳤다.
허나 사내는 막무가내였다.
치마가 벗겨진 월화의 은밀한 곳을가린 자그마한 천조각도
뜯기듯이 제거되고 미끈한 허벅지는 부끄러운 자세로 활짝 벌어졌다.
백옥같이 희고 우윳결처럼 매끄러운 속살 중앙에 자리한
무성한수림지대가 밝은 불빛 아래 거침없이 들어나보였다.
그 무성한 수림 속의 깊은 균열을 노려보는 사내의 눈빛이
벌겋게 충혈되었다.
[하악!]
마침내 사내의 머리가 사타구니 사이를 파고들자
월화의 입에서더운 김이 쏟아져 나왔다.
가장 예민한 곳을 뱀처럼 움직이는 사내의 설육이 헤집어대는대로
여체는 요동을 치며 울부짖었다.
일찍부터 육욕에 잘 길들어져있는 월화의 육체는
사내의 직접적이고도 강렬한 자극에
그녀 자신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달아올랐다.
그녀의 중심부는 삽시에 뜨거운 홍수를 일으키고 있었다.
[너...너무해!]
미칠 것만 같은 욕정에 몸부림치면서도 월화는
짐짓 앙탈을 부려보았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섬섬옥수는 자신의 중심부에서 움직이는
사내의 머리를 내리누르며 하체를 요동치고 있었다.
이윽고 사내는 히죽 웃으며 그녀의 중심부에서 얼굴을 떼며 일어섰다.
그리고는 재빨리 옷을 벗어부치고는
건장한 동체로 그녀의육체를 찍어눌러왔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사내의 구리빛 동체,
월화의 깊숙한 곳을 파고드는 사내의 머리 속은 싸늘하게 식어갔지만
하반신은 그와 달리 뜨겁게 달아올랐다.
월화의 앵두빛 입술 사이에서 자지러지는 비음이 터져나왔다.
몇 달 새 허전하기만 했던 몸의 어느 곳으로
뜨거운 불덩이가 그득히 들어참을 느끼며
그녀는 사지로 뱀같이 사내의 몸을 휘감았다.
사내의 움직임은 폭풍과도 같았다.
망망대해를 끝없이 급류하는일엽편주랄까?
거침없이 나아가는 배는 파도와 강풍에 한 점의 요동 없이
야생마처럼 질주했다.
월화는 마침내 참을 수 없다는 듯 울음을 터뜨렸다.
전신의 모세혈관 하나하나에 파고드는 전율감,
계곡은 끊임없이 넘쳐 흐르고,
종내 그 물줄기는 땀과 범벅이 되어 온통 계곡을 적셨다.
어느 순간 월화는 단말마의 비음을 토하며 축 늘어졌다.
몸서리쳐지는 전율이 그녀의 팽팽해진 신경을
가닥가닥 끊어버린 것이다.
허나 월화가 쾌락의 절정에 올라 반 실신하며 늘어졌음에도
사내의 움직임은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갈수록 힘차게
전신을 움직여 축 늘어진 여체를 집요하게 공략해갔다.
그러자 한 순간 축 늘어져 있던 월화의 눈망울이 다시 벌어졌다.
휴식을 용납지 않는 사내의 행위는
여체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가파른 정상으로 치닫게 만든 것이다.
사내에 의해 억지로 쾌락의 혼미에서 일깨워진 월화는
짐승의암컷처럼 울부짖으며
다시금 무섭게 사내에게 휘감겨들었다.
사내는 여인이 반응을 보이자 히죽 득의의 웃음을 떠올리며
더욱 세차게 하체를 움직였다.
광란(狂亂)_!
굶주린 한쌍의 짐승같은 두 남녀의 광란의 행위는
밤이 깊도록 계속 이어져갔다.
뿌옇게 밝아오는 햇살이 창문을 통해 어둠을 밝혔다.
그제서야 온통 땀으로 덮인 한 쌍의 남녀는 서로에게서 떨어졌다.
밤새 정사의 열기를 말해 주듯
월화의 표정은 온통 포만감과 허탈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미끈한 지체는 땀으로 번들거리고,
무성한 수림에 가려진 계곡 일대는
서로의 분비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반듯이 누워 천정을 바라보며 숨을 고르던 사내의 눈빛이
문득음산하게 빛을 발했다.
{월화! 석무심(石無心)의 일에 관계하니...
당신도 정말 무모하군 그래.}
조용하게 뇌까리는 사내의 목소리는
악의를 담고 스산한 울림을 발했다.
그 순간 천갈의 팔을 베고 누워있던 월화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무...무슨 소리예요 지금? 석무심이라니...!}
월화는 놀라움에 찬 목소리에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천갈은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 그런 그녀를 올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설마 석무심을 모른단 말인가?}
천갈의 그 말에 월화의 희미한 눈동자로
심각한 우려의 빛이 스쳤다.
{석공자... 저녁에 찾아온 석공자를 말하는 것이예요?}
그녀는 긴장이 가득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가 아니면 누가 철혈무정(鐵血無情) 석무심(石無心)이겠어.}
천갈은 비릿한 조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한 순간 월화의 전신에 파르르 경련이 스쳤다.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들어난 것이다.
{그가...석공자가 철혈무정... 석무심이란 말인가요?}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숨길이 없는 공포가 담겨 있었다.
사내는 여인의 놀라운 표정에도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갈이 확인을 해주는 순간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뒤통수에 쇠망치를 맞은 느낌이랄까?
-철혈무정(鐵血無情) 석무심(石無心)!
이 이름이 강호에 알려진 것은 삼 년 남짓이었다.
하지만 그리 길지 않은 동안 철혈무정이란 이름 앞에
기라성 같은 강호인들이 쓰러졌다.
그와 부딪쳐 살아 남은 강호인은 아직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를 직접 보고도 살아난 자가 없는 때문에
내력이나 얼굴은 온통 신비에 가려졌지만
철혈무정 석무심이란 이름은
그 잔인한 손속과 초절한 무공 덕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특히 일 년 전 강호의 명숙(名宿)인
만승검존(萬勝劍尊) 백장천 (白長天)이
석무심의 손에 쓰러졌을 때 강호는 벌컥 뒤집혀졌다.
-만승검존(萬勝劍尊) 백장천(白長天)!
그는 검의 달인으로 칠십 평생을 검도(劍道)에 몸 바친
일대검호(一代劍豪)다.
천신검류(天神劍流)의 마지막 전승자인 그는
일파의종사(宗師)에 못지않은 초절한 무예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만승검존조차도
철혈무정 석무심이란 이 신진고수의 살수를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그가 바로 철혈무정 석무심이었다니..!)
자신이 방금 전에도 만났던 그 예의바른 청삼청년이
다름 아닌 철혈무정 석무심이란 사실에
넋이 빠진 표정으로 멀리서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천갈의 입가에 희미한 조소가 스쳤다.
(철혈무정의 명성이 과연 무섭군.
천하에 둘도 없는 독부(毒婦)가 얼이 빠졌으니.)
사내는 내심 통쾌함마저 들었다.
-천갈(天蝎) 냉유도(冷有道),
이것이 사내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당금 강호무림에서 이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것은 천갈 냉유도의 무예가 남보다 못하다거나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고
그가 언제나 암중으로 활동해 왔기 때문이다.
월화도 오랜 동안 살을 섞어온 그의 내력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냉유도란 그의 이름도 진짜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월화가 냉유도를 만난 것은 칠 년 전이었다.
당시 월화루의 주인이던 장과에게
심신(心身)이 시달리고 있었다.
뒷골목 출신답게 탐욕스럽고 잔인한 장과는
상당한 값을 치루고 사들인 월화의 진을 다 빼먹을 기세였다.
월화는 장과의 주머니를 채워주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만 했다.
한 번에 몇 명의 사내와 그짓을 하거나
하루에도 수십여 명의 노리개가 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뿐만 아니라 장과 자신도
틈만 나면 월화에게 갖은 수치를 다주며 욕심을 채웠다.
정상적인 행위로 만족을 얻지 못하는
그자의 취향을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월화는 안 해본 짓이 없었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으며 성장한 월화도
결코 만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녀는 장과에게 당하는 수모와 착취를 결코 잊지 않았으며,
언제고 몇 배 몇 십 배로 돌려받을 독심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후일을 위해 장광의 비위를 맞춰 주면서도
자신을 대신해서 그를 죽여줄 인물을 물색했다.
그때 만난 사람이 바로 천갈(天蝎) 냉유도였다.
냉유도는 한 달에 두세 번씩 월화루에 찾아와 여자를 사곤 했었는데
한 번은 뒷골목의 건달들 십여 명과 시비가 벌어져
은연 중초절한 무예를 드러내보였다.
냉유도의 뛰어난 실력을 간파한 월화는
갖은 방법으로 은밀히냉유도를 유혹했고,
월화 자신의 육체와
장과의 막대한 재산에 구미가 동한 냉유도는
그녀의 악랄한 계획을 간단히 승낙했다.
결국 장과는 냉유도의 무시무시한 고문에 견디다 못해
자신의 숨겨둔 재산을 모조리 토해낸 뒤 비참한 종말을 맞았다.
장과의 죽음은 병사(病死)로 공표되었고,
월화루는 일찍부터 그의 첩으로 소문이 난 월화의 것이 되었다.
결국 따지고 보면 월화가 살인중개를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라고 할 수 있었다.
월화루의 주인이던 장과가 죽고
전 재산이 월화의 손으로 들어오자
냉유도는 자신의 몫을 챙겨 말없이 사라졌다.
그 후 일 년 만에 다시 나타난 냉유도는
본격적으로 청부살인업을 시작한 월화의 곁에서
자객 일을 하며 지냈다.
일반 무림인들과는 비교 조차할 수 없는
초절한 무공을 지닌 냉유도가 맡는 일은
주로 뒷골목의 파락호들이 해치울 수 없는 거물들의 암살이었다.
어떤 무림고수나 권력자도 냉유도의 살수를 피할 수는 없었고,
그 덕분에 별 볼일 없는 청부조직에 불과하던 월화루는
삽시에 그 방면에서 확고한 명성을 굳히게 되었다.
결국 오늘의 월화루는 냉유도 덕분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 냉유도는 월화에게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였던 것이다.
허나, 냉유도의 행방은 일정치가 않았다.
한 번 훌쩍 사라지면
짧으면 한 달, 길게는 반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었던 적도 있었다.
냉유도가 최근에 그녀의 곁을 떠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삼 개월 전이었다.
헌데, 오늘밤 갑자기 나타난 그가
철혈무정 석무심의 존재를
월화에게 일깨워준 것이다.
월화는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쉬었다.
{천갈, 이 일을... 이 일을 어떻게 해야 되나요?}
{어떻게 하다니? 항상 하던 대로 그쪽의 요구를 채워 주면 되는 것이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천갈의 목소리는 다분히 조롱 섞인 어조였다.
월화의 눈꼬리가 위로 치켜 올랐다.
{흥, 당신은 언제나 그따위 말투군요.
그래 이번에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왔어요?}
그녀가 토라져서 말했지만 냉유도는 어디까지나 능글능글하기만 했다.
{흐흐! 내가 못 올 곳을 왔나! 오늘은 갑자기 왜 이러지.}
천갈은 음험한 미소를 띄우며 월화의 미끈한 몸매를 훔쳐보았다.
눈에는 다시 붉은 열기가 피어올랐다.
{색마 같으니 밤새 나를 괴롭히고도 또 그래요?}
냉유도의 끈적한 시선을 느낀 월화는 차갑게 외치며 침상에 내려왔다.
따뜻한 아침 햇살에 비친 월화의 나신은 환상 같은 신비감을 풍긴다.
동산 같은 젖무덤이 출렁거리고,
세루요의 허리, 그 아래 풍만한둔부는
터질 듯이 팽팽한 탄력을 지니고 있었다.
거기다가, 전날 밤의 격렬했던 정사를 말해 주는 듯
곳곳에 얼룩진 물기와 비릿한 살내음은
사내의 욕정을 유발시키기에 충분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쌀쌀맞게 구는 거야?}
냉유도는 재빨리 월화의 나신을 끌어 안으며 침상으로 끌어당겼다.
{이거 왜 이래요. 해야 될 일이 있단 말이예요.
어멋! 어딜 만져요.}
월화는 냉유도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이미 욕정이 되살아난 사내의 손길을 벗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악!]
월화는 고개를 쳐들며 숨넘어가는 듯한 신음을 토했다.
달아나려던 그녀는
네 발로 엎드린 자세로 냉유도에게 붙잡혔고,
야릇한 그녀의 자세에 더욱 흥분한 냉유도는
무쇠기둥같이 단단해진 일부를
뒤로부터 그녀의 탐스런 엉덩이 사이로 밀어 넣은 것이다.
뒤쪽으로부터 몸 속 깊숙이도 삽입되는 뜨거운 이물질의 감촉에
월화는 자신도 모르게 짐승의 암컷같은 신음을 토해내었다.
냉유도는 한줌 밖에 안 될 것 같은 월화의 허리를 움켜쥐고는
거칠게 허리를 앞뒤로 움직여대었다.
무르익은 복숭아같이 발그레 홍조를 띈 탐스런 살덩이 사이로
자신의 실체가 출몰하는 것을 내려다보며
두눈은 흥분으로 벌겋게 충혈되었다.
{당..당신같이 여자를 거칠게 다루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흐윽!}
월화는 뒤쪽으로부터 가해지는 그 거친 출입에
자지러지는 신음을 토하며 몸부림쳤다.
냉유도의 행위에 박자를 맟춰서
달덩이 같은 엉덩이가 절로 요동을 치고
모양좋은 젖가슴은 땀에 흠씬 젖은 채 털렁거렸다.
{흐흐! 좋으면서 뭘 그래?}
냉유도는 음흉한 미소를 띄우며 힘차게 허리를 앞뒤로 저어나갔다.
여인은 다시금 몸속으로 가득히 번져가는
짜릿한 전율감에 감겨들면서도
뇌리 속에는 한 가지 계획을 떠올렸다.
[부...부탁이 있어요 천갈!]
월화는 할딱이면서 고개를 돌려 냉유도를 돌아보았다.
[말해봐!]
냉유도는 더욱 힘차게 그녀의 허리를 자신쪽으로 끌어당기며
대꾸했다.
{이번 일... 당신이 좀 도와주어야겠어요!
그들은 비마영 수준의 자객 두 명을 더 요구했어요!}
지금까지 감당 못할 청부대상이 생기면
냉유도가 나서서 해치워주곤 했다.
월화는 이번에도 냉유도가 자신을 위해서 나서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다음순간 냉유도는 검미를 꿈틀하더니 움직임을 멈추었다.
[왜...왜 갑자기 멈춰요?]
급격히 절정을 향해 치달리던 월화는
갑작스런 냉유도의 반응에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
사내를 머금은 그녀의 하체가 절로 움찔거리며
행위의 계속을 재촉했다.
하지만 냉유도는 오히려 여체에서 지신의 일부를 이탈시켜버렸다.
{왜...왜 그래요 천갈?}
돌아앉으며 토해내는 짜증섞인 월화의 투정에
냉유도는 서늘한 눈길로 싸늘하게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번 일에는 결코 말려들고 싶지 않아.
나는 아직 죽고 싶지는 않단 말이야.}
[그...그게 무슨 소리예요?]
냉유도의 예기치 못한 싸늘한 반응에
월화의 눈빛이 초조하게 물들었다.
{당신도 잘 알고 있잖아요. 천갈!
이 일에는 이미 비마영(飛魔影)과 추명사(追命蛇)가 투입되었다구요.
나로서는 그 두 사람 이상의살수를 구할 재주가 없단 말이예요.
이런 때에 당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난 어떻게 해요?}
월화가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냉유도는 욕정의 불길마저 사그러들었는지
그냥 벌렁 침상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뿐이군.]
그는 팔베개를 한 채 비릿한 조소를 떠올렸다.
[석무심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한다면
당신 목숨을 내 놓을 수밖에 없지.]
[뭐예요?]
순간 월화의 눈꼬리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참기 어려운 듯
그녀의 두 눈에서는 독기가 시퍼렇게 쏟아져 나왔다.
{당신은 내가 죽든 말든 상관이 없단 말이예요?}
매섭게 소리치는 그녀의 입술은 창백하게 질린 채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켰다.
하지만 천갈이라는 이 사내는 아무런 동요도 없이 담담히 말했다.
{어쨌든 나는 이번 일에는 끼어들고 싶지는 않아.}
그리고는 더 이상 말을 하기 싫은 듯 두 눈을 감았다.
월화는 한동안 독기에 찬 눈길로 천갈을 노려보았다.
{흥! 좋아요! 당신이 도와주지 않아도
나를 도와줄 사내는 얼마든지 있어요.}
월화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침상에서 뛰어 내려와 옷을 입었다.
{그래! 철혈무정의 요구에 맞는 자들을 구하려면
아침부터 부지런히 뛰어야겠지.}
정사의 흔적이 역력한 몸에 옷을 걸치는 월화를 보며
천갈은 혼잣말처럼 나직이 중얼거렸다.
{흥! 걱정 말아요.
팽노대(彭老大)라면 나를 위해 방법을 강구해줄 것이예요.}
냉랭하게 말한 월화는 재빨리 옷을 걸치고는 냉유도에게 등을 돌렸다.
그런 그녀에게 냉유도는 음험하게 웃으며 말했다.
{비밀통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밖에는 벌써 무림맹의개들이 쫙 깔려 있으니까!}
방문을 열려던 월화는 냉유도의 그 말에 한 순간 움찔했지만
이내 차갑게 코웃음치며 방을 나갔다.
쾅!
방문이 요란스럽게 닫히자,
천갈의 눈빛이 한 순간 칼날같이 전광이 이글거렸다.
{팽노대라! 과연 월화는 요화로군.
벌써 그 늙은이와도 손이 닿아 있다니.}
중얼거리는 천갈의 눈빛에
기묘한 광채가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