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장 ------ 劍道의 끝...... 心劍
저녁식사를 마친 후, 슬며시 침실을 빠져나가는 금천풍호의 뒤에
서 단봉중옥은 조용히 불렀다.
"공자, 잠깐만......"
금천풍호는 막 침실을 빠져나가려다가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허나,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담담한 음성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오, 소저......?"
"오늘도 이 침실에서 주무시지 않을 셈인가요......?"
그렇다. 먼저 침실을 놓고 서로 말다툼이 있은 이후, 금천풍호는
그동안 한번도 침실에서 잠을 잔 적이 없었던 것이다.
"후후! 소저,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무고에서 자는데 그동안 익
숙해져 있으니까......!"
금천풍호는 여전히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어깨너머로 나직한 웃
음을 흘렸다.
단봉중옥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내 마음이 편치를 않아요. 잠을 자도 꼭 가시덤불 위에서 자는
것 같고요......"
"그래서......?"
순간 단봉중옥이 눈빛을 빛내더니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부터는 공자께서 이 침실에서 주무셨으면 해요."
순간 금천풍호의 시선이 천천히 돌려지며 단봉중옥을 조용히 바
라보았다.
"그렇다면 소저는......?"
"......"
단봉중옥은 잠시 말을 하지않고 침묵을 지키며 금천풍호를 바라
보았다. 그러던 어느 한 순간이었다. 문득 그녀는 나직한 탄식음을
흘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정말 당신같이 고집센 사람은 처음 보았어요. 제가 누구에겐가
꺽여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예요...... 하지만......!"
그녀의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어느새 금천풍호가 다가와 그녀의 교구를 번쩍 안아들더니 그대
로 침상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이었다.
이 행동은 너무도 듯밖의 행동이었기에, 평상시의 단봉중옥이었
다면 비명을 질렀어도 몇번은 질렀을 것이다. 허나 진정 기이하게
도 단봉중옥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입가에
조용한 미소를 띄운채 그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금천풍호의 고개가 숙여지며 그녀의 얼굴 가까이 갔다. 숨결마져
느낄수 있을 정도로 지척간의 거리를 두고 금천풍호의 얼굴이 멈춰
섰다.
"후후! 잘 생각한 것이오. 여인이란 자고로 사내의 말을 고분고
분하게 들어야 예쁘게 보이는 법이니까......!"
이어 금천풍호는 자신의 입술을 단봉중옥의 꽃잎같은 입술 위로
눌러갔다. 순간이었다.
"안돼요......!"
단봉중옥은 갑자기 완강하게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금천풍호의 안색이 흠짓 굳어졌다.
순간, 단봉중옥은 배시시 웃더니 앙증맞은 손끝으로 그의 입술을
살짝 눌렀다.
"그건 안돼요...... 이 세상에는 인륜이자 도덕이 자리잡고 있어
요. 아직 시집도 안간 처녀가 외간남자에게 함부로 몸을 내맡긴다
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예요. 내 마음...... 이해하시겠어요?"
금천풍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후후! 무공초식이라면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만 그렇게 어려운
것은 모르겠소......!"
금천풍호의 입술에 닿아있던 단봉중옥의 손가락에 조금 더 힘이
가해졌다.
"당신의 조건대로 오늘 밤부터 당신과 함게 이 침대를 쓰겠어요......
하지만...... 그 이상은 안돼요......!"
금천풍호는 미소를 지은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지, 그 정도는...... 하지만......!"
순간, 이번에는 손바닥 전체로 단봉중옥이 금천풍호의 입술을 막
았다.
"그만해요. 그 다음말을 듣는다면 제 마음이 이상해질지 모르니
까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채 피지도 않은 꽃을 꺽는 사람
이예요......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으시겠죠? 내일
아침을 굶고 싶지 않다면 말이예요......"
"......"
"당신은 몰라요. 이제까지 외간남자를 침대 위에 같이 누울수 있
도록 허락한 것은 당신이 처음이예요. 제게는 어려운 결단이었어요.
그러니만큼 당신의 어려운 결심도 필요한 거예요. 전 책임감 있는
남자를 좋아해요......"
"말로서는 도저히 못당하겠군......!"
금천풍호는 미소를 지은채 고개를 흔들었다. 이어 그는 침상위에
올라가 단봉중옥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본능이었으리라! 살과 살이 닿는 감촉을 느끼자 단봉중옥이 흠칫
몸이 굳어진 것은......
금천풍호는 그런 그녀를 향해 빙긋 웃어보였다. 그것은 이제까지
그가 지어왔던 약간 멍청해 보이는 그런 웃음이었다.
"후훗! 걱정하지마시오. 소저. 나는 침상 위에만 누우면 금세 잠
이와서 못견디는 사람이니......!"
다음순간 그는 천정을 향해 똑바로 눕더니 눈을 감았다. 그러더
니 채 일각도 되지 않아 코가지 골며 잠을 자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단봉중옥의 고개가 살며시 그의 얼굴을 향해 돌려졌다. 사내의
옆모습이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느꼈다. 한순간, 그녀의 봉목에 야
릇한 갈등이 스쳤다. 그러더니 문득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
을 향해 자신의 입술을 가져갔다. 금천풍호의 이마 위로 단봉중옥
의 입술이 미끄러지듯이 스쳐 지나갔다.
야릇한 숨결이 흐르듯 스치고...... 다음순간 그녀는 조용히 눕
더니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 * *
광음여류,
누군가 세월을 물에다 비유하며 흐르는 것이라 하였던가? 시간은
지하에 위치한 천지제황부에도 어김없이 흘러갔다.
얼마나 흘렀을까? 해가 드지 않으니 자세한 시간은 알수 없었다.
다만 배가 고플 때마다 먹은 식사를 대충 어림잡아 적어도 석달은
흐른 것 같았다.
그동안 금천풍호와 단봉중옥은 각자 천제와 지황의 무학을 익히
는데 전력을 다했다. 허나 처음과는 달리 금천풍호의 무공연공 속
도는 매우 느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 비해 단봉중옥의 속도
는 무섭도록 빨라져가고 있었다.
처음, 금천풍호가 두개의 서가를 지날 때 걸린 시간은 삼 일이었
다. 그리고 바로 다음번째, 즉 세번째 서가를 통과하는 데는 무려
보름이 걸렸고, 그리고...... 여덞번째 서가에서 걸린 시간은 무려
석달이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열번째 서가를 지나고 있는 지금,지
금가지 걸린 시간은 거의 일년이 걸렸다.
그에 반해 단봉중옥이 처음 두개의 서가를 빠져 나가는데는 무려
두달이 걸렸다. 그 뒤로 세 번째 서가는 한 달 보름....그 뒤로 다
섯번째 서가는 한 달...... 그래서 일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두 사
람이 서가를 지나온 속도는 거의 같아져 있었다.
허나,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무학의 이론상
정공은 그 연성속도가 느리나 정심방대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 반면
마공은 그 목적을 패도적이고 살상적인 것에만 중점을 둔 속성무학
이기 때문이다.
금천풍호.
일년이 지난 지금 그의 모습은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와는 많
이 달라져 있었다. 옷을 낡아있었으며 모습은 매우 초췌했다.
허나 눈빛, 그의 눈빛은 이를데 없이 강해졌다. 아니 단지 강해
진 것만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부드러움이 있었고 또한 만인을 포
용할 듯한 관용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인생을 불도에 몸 바쳐온
고승의 눈빛이라고 할까? 그의 전신에서는 극히 밝고 혜지로운 선
기가 후광처럼 서려 있었으니......
아아! 천신이 이렇듯 수준하고 선기가 넘치는 기품을 지니고 있
을까?
변해있었다. 변해도 무섭게 변해 있었다.
처음에 이곳에 드러왔을 때 그의 성품이 굽힐 줄 모르는 강한 의
지를 지닌 젊은이 특유의 ㎖기와 고독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면
지금 그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삼라만상을 포용하고도 남을 대
영웅의 풍도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한권의 책, 지금 책을 보고 있는 금천풍호의 눈에는 적지않은 경
악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대유가신기!
책의 제목이다.
이것은 열번째 서가에서도 맨 마지막에 꽂혀있는 책이기도 했다.
무학이란 한마디로 인간의 몸에 잠재된 잠재력을 정신집중에 의
해 단 한 순간에 폭발시키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
대유가신기는 인체의 잠재된 힘을 정신의 조종에 따라 자유자재
로 발출시킬수 있는 비학으로써 서장밀교의 밀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서장.
감란고원에서부터......티벳고원에 이르는 이 대지는 지형적으로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서장
에서는 단번의 호흡법을 발전시켜 특수한 비공을 창안하였는대, 그
것을 흔히 요가라고 부르는 정신집중술이었다.
서장밀교는 바로 그 요가를 특수한 수련방법에 의해 발전시켜 온
밀교. 그리고 이 대유가신기는 그 서장밀교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비전이엇다.
서장에서도 실전된지 오래된 이 대유가신기가 놀랍게도 이 천지
제황부 안에서 이천오백 년 간 숨을 쉬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이 사실을 서장밀교의 라마승들이 알았다면 그 자리에서 거
품을 물고 혼절을 하고 말았으리라!
인체의 잠재된 능력!
그것이 얼마나 무한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는 오직 하늘만이 안
다고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현인들은 인간의 신체를 저 광대무변
한 대우주에 비교하여 소우주라 하지 않던가?
대유가신기가 극서에 이르면 뜻에 따라 사람을 죽이고 살릴수 있
는 의형살인(意形殺人)의 경지에 이른다.
그 밑으로...... 대유가신기의 구결이 적혀있다.
무심공즉...... 이형심인...... 무우광생......
구결은 계속 이어지고...... 구결을 암송하면서부터 금천풍호는
이미 무아지경에 빠져들고 있었다.
억년 호수처럼 맑아지는 마음이오......
억겁의 공을 누비는 듯한 혼이라......
헌데, 어느 한순간이었다.
스으읏......!
금천풍호의 백회혈에는 서기로운 백색안개가 피어 오르는 것이
아닌가?
검,
순식간에 그것은 희미한 검의 형상을 취했다.
오오! 이것은 바로 진기가 검으로 화한 것!
동시에.......
파아아아아......
그 안개검은 허공을 향해 무섭도록 빠른 속도로 큰 원을 그리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파------!
그것이 스칠 때마다 동굴의 벽들이 마치 무우조각 갈라지듯 마구
베어지며 돌조각들이 우박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 빠름! 형용할 수도 없었다.
그 변화! 아예 정신이 혼란한 지경이었다.
파파파파파------!
금천풍호가 앉아있는 주위의 석벽들은 안개검에 의해 박살나며
부서져 내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
스으읏......!
금천풍호의 머리 위에 떠있던 검의 형상이 재차 안개처럼 흐트러
지며 백회혈 속으로 스며 들었다. 금천풍호의 눈이 떠진 것은 바로
그 다음, 금천풍호는 주위에 폐허에 가까운 광경을 보고 경악을 금
치 못했다.
"놀랍구나......! 대유가신기의 최정화, 심검의 위력이 이 정도
라니......!"
오오! 그렇다면 방금전 그의 머리 위로 떠올라 있던 안개가 모여
서 이룩된 것 같은 검의 형상이 바로 전설적인 검의 최후단계인 심
검이란 말인가?
심검!
그것은 무인들이라면 누구나 꿈속에서라도 한번즘 상상해보는 검
공의 최후단계였다. 물질적인 검으로 초식을 펼쳐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힘으로 검법을 펼쳐낼수 있는 검의 최후단계!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에 불과했다. 그리고 세상 어디에
도 그런 이론이나마 정립되어 있다는 소문조차 없었다.
헌데, 그것이 사상 최초로 금천풍호에 의해서 시전된 것이었으니
아아...... 이 순간!
무림사에 있어서 검학이 가장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그런 감동적
인 순간이었다.
(천지제황부의 무학! 이곳의 무학이 비록 대단한 것이기는 했으
나......일곱 노야의 무학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은 통틀어 세 가지
가 안 된다.)
오오! 그랬던가?
(허나, 이 대유가신기에 의한 심검은 여타 무공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절세비기다!)
다음 순간,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시선을 허공으로 던졌다.
(어쩌면......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옥사황의 대승천검도
결을 깰수 있는 유일한 무학일런지도 모른다.
아니 나는 확신한다.
옥사황의 대승천검도결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는 몰라도 결코 이 심
검도 그에 뒤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그러던 한순간, 그는 약간 어두운 기색으로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제 심검은 일성의 성취에 불과한 것! 그 구결이
난해하고 복잡하여 일순간에 모두 터득할 수는 없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연성하리라.“
* * *
손,
세상에는 수천수만의 손들이 있다.
농사꾼의 투박한 손에서...... 한번 손짓으로 영웅의 철담을 녹
이는 미인의 손에 이르기 까지......
허나,
미리홍옥수!
단연코 이보다 무서운 손은 없었다.
오직 죽음만을 선사한다는 악마의 소수!
스쳐서 부서지지 않는 것이 없고...... 일수에 태산을 날린다는
악마의 손...... 그래서 생사양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붉다.
그리고 매그럽다.
마치 혈수를 통째로 깍아 조각해 놓은 듯한 손, 그 손엔 지금 요
사스럽도록 강렬한 혈광마져 감도는데......
파파------ 팟------!
붉은 손은 여지없이 석벽을 꿰뚫고 이윽고 손목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히 박혔다.
오오......! 석벽의 재질은 천하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청강
석! 그 청강석에 흡사 두부덩어리처럼 으깨어지며 손목이 반자 깊
이나 박힌 것이다.
전설상의 어장이나 막사라는 신검이 있다고 한들 저토록 날카로
울까? 더우기 놀라운 것은 이 손은 지금 공력이라고는 조금도 사용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발휘된 것이라는데에 있는 것이었다.
(호호! 미리홍옥수...... 가장 마음에 드는 마공이다. 허나 아직
은 멀었다. 이제 팔성의 수준 뿐...... 십이성까지 이루려면 아직
좀 더 수련이 필요하다!)
단봉중옥은 석벽에서 손을 빼며 사이한 미소를 떠올렸다. 바라보
는 그 눈에 감도는 저 요사스러운 광채......
변했다.
단봉중옥, 그 아름답고 가을 햇살처럼 맑고 깨끗하던 그녀의 모
습이 아니라 손을 들여다 보고 있는 지금 그녀의 눈빛은 마성에 젖
은 눈이었다.
그때였다.
무심히 땅바닥을 살피던 그녀의 눈에 한차례 짧은 이채가 스치고
지나갔다. 벌레 한마리가 꿈틀거리며 바닥을 기어가고 있었다. 벌
써 천년이나 가까이 습기에 차있던 동굴이었기에 자연 벌레도 많았
다. 그리고 지금 그 벌레는 방금전에 그녀가 석벽을 부수는 바람에
석벽에 붙어있다가 떨어진 모양인데......
발,
앙징맞도록 작은 단봉중옥의 발이 슬며시 옮겨졌다. 이어,
빠지직------!
벌레는 그녀의 말에 깔리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발을 빼는 그
녀의 발밑으로 조금 전에 벌레가 깔려죽은 듯한 자리에 시뻘건 혈흔
이 손바닥만 하게 배어 있다.
피를 보아서인가?
단봉중옥의 눈에 서려있는 요상한 광채가 더 한층 요사스럽게 발
하는 것은......
(미리홍옥수! 지황은 말했다. 미리홍옥수가 극성에 이르면 천하
에서 대적할 무공이 없는 천하제일마공이라고...... 호호! 옥사황
의 무공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결코 나의 미리홍옥수를 능가하지
는 못할 것이다. 허나...... 아직은 부족하다. 미리홍옥수를 극성
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나의 내력이 부족하다. 그것을 단시일내
에 보충할 수 있는 방법은 약재창고에 있는 영약을 복용해야 한다.
약재창고에 있는 영약의 반은 천제 무후대상인이 자신의 후인을 위
해 남겨 놓은 것! 이제껏 우리는 그 영약을 반반씩 나누어 복용을
해 왔지만...... 할수 없다. 나의 내력의 증진을 위해서는 금천풍
호의 영약가지도 내가 복용하는 수 밖에는......!)
내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던 단봉중옥, 그녀는 요광이 일렁이는 눈
으로 금천풍호를 바라보았다.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 속으로...... 책을 펼쳐들고 삼매경에 빠
져들어 있는 금천풍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침 잘됐군. 지금이 절호의 기회인 듯하다.)
순간,
분명 사방이 막힌 동굴이건만...... 하늘로 솟았는가, 땅으로 꺼
졌는가? 그녀의 신형은 이 순간 찾아볼 수 없었으니......
* * *
(이제 마지막 남은 한권의 책자다. 이것만 읽는다면 천지제황부
에 무후대상인이 남긴 모든 무공비급을 다 읽는 셈이다!)
금천풍호는 내심 그렇게 뇌까리며 서가 맨 끝에 꽂혀있던 한권의
책을 꺼내들었다. 이어 그는 그것을 펼쳐 들었다.
순간 눈 안으로 가득 쏘아 들어오는 낯익은 글씨,
<연자여......
이제까지 노납의 무공을 익혀온 그대의 노고를 치하하노라......>
그 글씨는 바로 무후대상인의 글씨였다.
<이제 연자는 마지막 최후의 관문인 불마현관만 통과하면 극성지
체에 이르게 한다. 이로써 모든 사와 마는 그대 앞에 스스로 무릎
을 굻고 만악이 지상에서 사라지리라!
허나, 주의해야 한다.
불마현관은 노납의 선기와 대조종 혈천대마종의 마기, 이 두 가지
의 기운이 한거번에 어울린 옥석혼효의 상태,
이것은 태초에 인간이 지상에 맨 처음 나타났을 때 선과 악이 공
유된 마음의 상태와 같은 것이다. 만일 그대가 조금이라도 욕념을
지니고 불마현관을 통과하다가는 그 자리에서 주화입마하여 전신혈
맥이 파열되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또한, 그대의 상대자이자 지황의 후인이 불마현관을 먼저 통과하
더라도 그대는 영원히 이곳에서 뼈를 묻을 수 밖에 없다.
천지제황부는 오직 일인만이 세상에 나갈 수 있게 안배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그대가 불마현관을 먼저 무사히 통과하게 된다면
그땐 노납이 불귀도에 걸어놓은 안배가 해체되어 불귀도는 영원히
소멸되고 말 것이다.
연자는 이 점에 특별히 주의하기 바란다.
그럼...... 연자의 무운을 빌겠다.
------ 무후대상인, 서.>
* * *
약재창고,
단봉중옥은 선반 위에 가득 올려져 있는 약병을 바라보며 섬뜩하
도록 요사스런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아! 지난 일년 동안 그녀는 지황의 마공을 극성으로 연마하였
기에 이미 돌이킬수 없을 정도로 짙은 마성에 젖어 들은 상태였다.
게다가 그녀는 전설이 말하는 천혈음맥이 아닌가?
사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이지만, 그녀의 천혈음맥은 전설대
로라면 벌서 일년 전에 폭발했어야 마땅한 것이었다.
허나 그녀가 일년간 천혈음맥의 폭발을 억제할수 있었던 것은 바
로 불가의 대고승이라고 할수 있는 무후대상인이 죽기 전에 남겨놓
은 선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무후대상인,
중원전통불문의 대조종이자 살아있는 활불이라 불리기 까지 하지
않았던 그가 아니던가? 그랬기에 그 선기가 단봉중옥의 천혈음맥을
아제껏 억누룰수 있었던 것인데......
이제 마의 대조종인 지황의 마공을 완전히 터득한 그녀는 무후대
상인이 펼쳐놓은 선기로도 제압할 수 없을 정도로 마성이 짙어졌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