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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산장의 혈겁 소식은 소림사에도 전해졌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혈겁을 당한 용화산장과 소림사가 있는
하남성은 바로 지척이었으니까. 소림사는 물론 소림사에 남아 있던
각 문파의 기재들은 용화산장의 혈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사건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준비를 마치지 못한 데 반해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무비와 함께 남궁세가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남궁성 역시 천왕성
의 남침 소식을 들었다.
"젠장~! 천왕성이란. 아니, 사천에 있던 놈들이 왜 산서성에 나
타난 거야? 빌어먹을!"
"아무래도 그들이 성동격서의 꾀를 쓴 것 같소. 천하와 십자성의
시선을 사천으로 몬 다음 산서로 진격을 한 것이오."
"사천과 산서를 통한 양동 공격이라...... 십자성이 제대로 홍역을
치르겠네."
"아미타불! 문제는 그들이 지나가는 곳에 존재하는 중소 문파들을
궤멸하고 있다는 것이오. 용화산자을 비롯해 벌써 다섯 곳의 문파가
멸문을 했소. 현실적으로 산서성에는 그들의 전진을 저지할 만한 강
한 문파가 없소이다. 만약 그들이 이대로 하남성까지 치고 내려온다
면 소림은 십자성과 상대를 하기도 전에 그들을 상대해야 할 것이외
다."
무비의 심각한 말에 남궁성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냥 통과시키면?'
"그게 무슨 말이오?"
"소림에서 신경 쓸 필요 없이 천왕성을 통과시키는 것이오. 박이
터지든, 어떻게 되든 자신들끼리 치고받게 말이오. 두 문파가 피투성
이가 되었을 때 뒤를 친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니오?'
"그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면 얼마나 좋겠소. 하지만 그들의 성향
을 볼 때 그 정도의 대비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없소이다. 분명
무언가 대책을 가지고 소림이 인근에 있는 산서성을 택했을 것이오."
"휴우! 그야말로 점입가경이구려."
결국 남궁성도 한숨을 쉬고 말았다.
저들이 구파의 수장인 소림사를 의식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불성설
이다. 무언가 대책이 있으니까 저렇듯 파격적으로 움직이는 것일 것
이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여유가 있지만 소림에는 여유가 없었다. 소
림은 십자성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빠듯했다. 이로 인해
소림에서도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이 소식은 전서를 통해 구
파일방으로 전해졌다.
"천왕성의 진격을 막지 못하면 우리의 계책도 전혀 소용없게 되는
데. 빌어먹을!"
남궁성이 결국 분통을 터트리고 말았다.
남궁세가의 부활이 멀지 않았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천왕성에 발목
이 잡히고 말았다.
"무언가 방법을 생각해야 하오."
"아미타불! 일단 기다려 봅시다. 위에서도 무언가 생각이 있을 테
니."
"젠장! 이렇게 아무런 힘이 없다니."
남궁성은 처음으로 자신의 무능력을 저주했다. 자신에게 세력을
뛰어넘는 강력한 힘이 있다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남궁성 또래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하얀색 장포에 고풍스런 문양이 새겨진 검을 허리에 차고 있는 남자.
그의 얼굴에는 귀티가 흐르고 있었다.
남궁성이 그를 보며 말했다.
"문 형, 무슨 일이오?"
"남궁 형도 마침 여기 있었구려."
그는 종남의 대제자인 문상인이었다. 그와 같이 소림사에 온 종남
의 장로는 돌아갔지만 그는 남아서 무비 등과 같이 남궁세가로 가기
로 했다. 본래는 폐관수련을 해야 했지만 천하가 어지러운 때 한가하
게 폐관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문상인은 남궁성과 무비를 보며 말했다.
"예정대로 우리는 남궁세가로 가기로 결정했소. 그러니 모두 대웅
전 앞으로 모이라고 하시오."
"아니, 천왕성은 어찌하고 우리끼리만 남궁세가로 간단 말이오?"
"그건 나도 모르겠소. 이야기를 전해 준 계율원주인 원상대사님의
말씀으로는 우리는 십자성에만 전력을 기울이라고 하셨소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거야 나도 알 수 없소. 짐을 다 쌌으면 우선 대웅전으로 갑시
다. 그쪽으로 가면 연유를 알 수 있지 않겠소?"
"아미타불! 그럽시다."
결국 남궁성과 무비는 문상인을 따라 대웅전으로 향했다.
적무강은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생사도
가 놓여 있었다.
어젯밤부터 그는 명상을 하며 심심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이
제 곧 천하로 나가야 한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오로지 혼자서
걸어야 할 길. 고독보다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서문아를 두고 홀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서문아에게만 매달려 있을 수
는 없었다. 그리고 서문아를 위해서라도 그는 자신의 길을 가야 했
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랐다. 어떤 역경에서도 목
표한 바대로 곧게 가기를 바랐다. 그는 그렇게 마음을 다스렸다.
그때 그의 방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서문아가 들어왔다. 그녀는
명상에 잠겨 있는 적무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에요."
그제야 적무강의 눈이 조용히 떠졌다. 그는 반개한 눈으로 잠시
생사도를 바라보다 서문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은은하게 미소를 짓
고 있는 서문아의 모습이 보였다.
우는 모습 따위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서문아는 자신의 남자가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가기를 원했다.
그가 마음의 짐을 안고 가길 바라지 않았다. 그녀는 미소를 보여 주
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적무강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배려였다.
그래서 그녀는 웃었다. 비록 가슴은 아프지만 적무강에게 미소를 보
여 주었다.
적무강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그는
생사도를 들어 허리 뒤쪽에 걸고 나서 벽에 걸려 있는 자신의 옷 쪽
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서문아가 먼저 벽으로 다가가 그의 장포를 들
었다.
"뒤돌아서 봐요."
"음!"
적무강은 순순히 뒤돌아섰다. 서문아가 그에게 장포를 입히며 말
했다.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줘요."
"약속할게요."
"반드시......"
"반드시!"
적무강의 말에 서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눈가에 맺힌 한
방울의 눈물을 감추며 적무강에게 장포를 입혔다. 그리고 허름한 피
풍의를 마저 걸쳐 주었다.
적무강은 묵묵히 서문아가 하도록 놔두었다. 떨리는 그녀의 손길
이 느껴졌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범하게 보이려 노력하지
만 떨리는 손길마저 숨길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을 아는 것만으로 족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적무강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서문아는 그런 적무강의 미소를
볼 수 없었다. 그녀가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등뿐이었다.
두 사람은 조용히 방을 나섰다.
대웅전으로 가는 내내 그들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때로는
말이 없어도 마음이 통할 때가 있다. 적무강은 지금이 바로 그런 때
라고 생각했다.
적무강은 잠시 자신을 어루만지고 지나가는 바람을 느껴 보았다.
부드러운 바람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덕분에 대웅전으로 가는 동안
마음이 한결 풀어졌다.
두 사람이 대웅전 앞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각파의 후기지수들
이 모두 모인 상태였다. 이제 서문아는 저들과 남궁세가로 향할 것이
다. 그리고 적무강은 홀로 북쪽으로 향해야 했다.
적무강과 서문아가 나타나자 후기지수 중 몇 명의 눈빛이 변했다.
그들은 모두 적무강의 정체를 아는 자들이었다. 무비와 문상인은 감
정이 복잡한 눈으로 적무강을 바라봤다.
"어서 오시게, 적 시주."
지객당의 원율대사가 적무강과 서문아를 맞이했다. 적무강과 서문
아는 그에게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햇다.
아마도 견오대사에게 어떤 언질이라도 들은 모양이었다. 적무강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안타까움과 고마움이 공존했다. 그러나 적무
강은 짐짓 그런 원율대사의 눈빛을 무시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인사
했다.
"그간 적조했습니다. 평안하셨습니까?"
"덕분에 좋았다오. 적 시주가 고생이시구려."
"하하하! 제가 고생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아미타불!"
적무강은 원율대사에게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서문아와
함께 후기지수들 곁으로 다가갔다. 무비와 문상인이 아는 척을 했다.
적무강과 서문아는 그들과도 인사를 했다.
그가 무비를 보며 느낀 점은 예전에는 커다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던 그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것이다. 아마 자신과 견오
대사의 비무를 보면서 무어나 느낀 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
이 견오대사가 의도했던 결과 중의 하나였다.
적무강은 무비에게서 시선을 돌려 문상인을 바라봤다.
"청령환은 고맙게 썼소. 반드시 보답하겠소."
"유용하게 쓰셨다니 다행입니다."
문상인이 오히려 송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적무강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
십자성의 천라지망에서 살아남은 자, 웅풍대와 참호대를 쓸어버린
것도 모자라 우내육마마저 고혼으로 만들어 버린 남자. 도저히 같은
또래라고는 볼 수 없는 가공할 만한 무위와 치밀한 심계. 눈앞의 남
자는 평범한 얼굴로 본래의 모습을 숨기고 있는 괴물이었다. 그가 소
림에 들어와서 적무강이 이곳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경
악했는지 모른다. 다른 후기지수들이야 적무강의 존재 자체를 모르
지만 그는 적무강이 도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죽었다고 소문난 그가 이곳에 와 있다는 것은 십자성의 추적 자체를
완벽하게 뿌리쳤다는 말이었다. 그러니 어찌 그가 놀라지 않을 수 있
겠는가.
'문 형은 결코 아무에게나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아닌데 어찌 저리
저자세를 보인단 말인가? 도대체.....'
무당의 대제자인 고운이 문상인의 모습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아
직 자신의 사분인 청송진인과 적무강의 대결을 몰랐다. 그들이 싸웠
다는 것을, 그 결과 사부인 청송진인이 패배했다는 것을.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 상관없이 문상인은 서문아와도 인사를 했
다. 서문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와 인사를 했다.
'천하의 적 대협이 목숨을 걸고 구한 여인......'
아직도 문상인은 그날의 광경을 잊지 않고 있었다. 우내육마와 적
무강의 처절한 대결 속에서도 고고한 자태로 적무강을 바라보던 그
녀를.
문득 문상인은 그녀의 얼굴에 있던 한 줄기 자상이 거의 눈에 보
이지도 않을 정도로 흐릿해졌음을 알아차렸다. 또한 그녀의 손등에
보이던 흉터들도 말끔히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이럴 경우 가능성은 단 하나였다.
'환골탈태...... 분명 환골탈태를 했다!'
문상인은 침음성을 눌러 삼켰다. 어찌된 연유인지 모르지만 서문
아가 환골탈태를 했다면 내공이나 무공이 비약적으로 늘었을 가능성
이 컸다. 그렇다면 눈앞의 여인의 무위는 결코 자신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더할지도......
문상인의 생각을 꿰뚫어 보았는지 서문아가 손가락으로 입을 막으
며 '쉿'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에 문상인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
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때 고운이 그들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하하하! 이분이 누구신데 문 형과 무비 스님이 그리 반갑게 인사
를 나누는 게요? 소인과 다른 분들에게도 소개를 시켜 주시지 않겠
소?"
"아, 미안하구려. 내 반가운 마음에 그만 정신이 팔려......"
그제야 문상인이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적무강을 다른 후기지수들
에게 소개했다.
"여러분들도 모두 이분의 명성을 들어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이분
이 바로 도마(刀魔) 적무강 대협이오. 십자성의 천라지망을 뚫고 우
내육마마저 이분이 죽였소."
"설마......"
"어떻게? 그는 죽었다고 알려졌는데."
고운을 비롯한 사람들의 눈에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종남
의 대제자인 문상인이 그들에게 거짓말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에
서둘러 분분히 인사를 해 왔다.
"무량수불, 무당의 고운이라고 합니다."
"화산의 무양자라고 합니다."
"저는......"
적무강은 생각지도 않게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나자 당황해 했지만
곧 그것이 서문아를 위해 나을 거라 생각하고 그들의 인사에 답했다.
그리고 서문아를 그들에게 소개시켰다.
앞으로 서문아는 자신의 손을 떠나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해야 했
다. 그렇다면 미리 친분을 쌓아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
의 배경 때문이라도 그녀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것으로 족했다.
적무강의 의도대로 서문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선망으로
변했다. 그중에서도 각파의 여제자들은 서문아에게 질시 어린 눈빛
을 보냈다. 그러나 서문아는 오연한 시선으로 그녀들의 눈빛을 무시
했다. 그녀들과 자신은 겪어 온 삶의 깊이가 달랐다. 그녀들은 편안
하게 구대문파에 선택되어 무공을 익혔지만 자신은 수많은 사선을
넘었다. 생의 끝에서 절망을 한 적도 있었기에 그녀들을 바라보는 서
문아의 시선은 담담했다. 저들이 어떤 눈빛을 하든 간에 서문아에게
는 애송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소림 방장인 원광대사가 십팔나한과 함께 나왔다. 후기지수
들이 분분히 인사를 했다. 이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이렇게 여러 후기지수 여러분들을 만나게 되어서 반갑
소이다. 모두 잘 알고 있을 테니 내 긴말은 하지 않으리다. 여러분들
이 먼저 남궁세가로 가서 기반을 닦아 주어야 하오. 이미 남궁세가주
에게 전서가 갔기에 모든 준비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오. 그러니 여러
분들은 자파의 지원 병력이 오기 전까지 남궁세가주의 행보에 힘을
실어 주시오. 이것이 바로 정도련(正道聯)의 시발점일지니..... 아미
타불!"
"정도련?"
"정도련이라니......"
원광대사의 말에 후기지수들이 동요했다. 막연히 뭉친다는 생각만
하고 있던 그들에게 정도련이라는 통일된 단어가 던져 주는 충격은
컸다. 그것은 이제까지 흩어져 있던 구파가 같이 움직인다는 의미였
다.
원광대사는 동요하는 후기지수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아미타불! 여러분의 역할이 중요하오. 난세로 향하는 이때, 우리
가 힘을 합쳐 대응하지 못하면 겁난이 천하로 번져 갈 것이오. 우리
의 목표는 겁난의 종식이오. 정도련은 겁난의 종식 때까지 한시적으
로 운영될 것이오. 어쩌면 우리는 이번 일에 수많은 피를 보아야 할
지도 모르오. 그러나 그 역시 천하를 위해서라면 담담하게 받아들여
야 할 일. 더 이상 구파는 산에서 일신의 안락을 위해 세상을 외면하
지 않을 것이오."
그의 사자후에 후기지수들이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그들
이 얼마나 큰 짐을 부여받았는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때 무비가 원광대사에게 말했다.
"아미타불! 지금 북쪽에서는 천왕성이 내려온다고 들었습니다. 그
런데 저희들이 남쪽으로 내려가도 괜찮은 것입니까? 그들의 진격을
먼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웠느니라. 넌 아무런 걱정 없이 저들
과 함께 남궁세가로 가면 될 것이다."
그의 확고한 말에 무비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구파의 후기지수들은 원광대사로부터 주의할 점을 듣고 남궁세가
를 향해 내려갈 것을 명받았다.
적무강은 서문아와 함께 그들과 같이 움직였다.
그의 머릿속에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미타불! 적 시주의 앞길에 무운이 깃들길 바라겠소.>
불문의 지고한 공부 중 하나인 혜광시어가 원광대사를 통해 펼쳐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적무강은 동요하는 빛 없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들은 등봉현까지 같이 내려왔다.
마시장에서 적무강은 구파의 후기지수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후기
지수들은 아쉬웠지만 그를 말릴 수는 없었다.
적무강은 서문아에게 담담히 말했다.
"돌아올게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이 어떤 상황에 있든 반드
시 돌아올게요."
"기다릴게요, 언제까지나."
두 사람은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영원한 이별이 아니니까 아
쉬움 따위는 없었다. 반드시 다시 만날 테니까. 그것이 그들이 사랑
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방식이었다. 그들은 눈물이 어울리는 사
람들이 아니었다.
"내가 먼저 갈게요."
"아니, 형님. 같이 안 가십니까?'
"잠시 어디 좀 들렀다 가겠다. 난 좀 늦어질 테니 너 먼저 가 있어
라."
"에이~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빨리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래."
남궁성의 말에 적무강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그는 힘차게 북쪽을 향해 말을 달렸다. 서문아는 적무강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모습이 사라졌을 때 몸을 돌렸다.
남궁성이 걱정스럽게 그녀를 바라봤다.
"형수님."
"괜찮아요. 우리도 서둘러야 하잖아요. 어서 움직이죠."
"예!"
서문아를 비롯한 구파의 후기지수들도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남
쪽으로 말을 달렸다.
"가셨는가?"
견오대사는 감았던 눈을 조용히 떴다.
그가 홀로 북쪽으로 떠났다. 그러나 견오대사는 그에게 어떤 도움
도 주지 못한 채 그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는 하염없이 염주만 굴렷다. 그의 나직한 독경 소리가 조그만
골방 안에 울려 퍼졌다.
2장 산서성의 격돌
1
천왕성의 거침없는 진격이 이어졌다.
그들은 산서성의 성도인 태원을 돌파했다. 태원에 자리하고 있던
십자성의 분타는 초토화가 됐다. 건물은 새까만 재가 되어 지리상에
서 사라졌고, 분타주인 새만검(塞蠻劍) 무수군 휘하 오백 명의 무인
들은 모조리 몰살당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산서 분타에 있던 식솔
들은 물로 개미 한 마리까지 살아남지 못했다.
태원에는 관부가 존재했다. 그것도 태원 분타의 바로 코앞에.....
하지만 낭혈문의 문인들은 관부의 존재조차 무시하고 산서 분타를
쳤다. 한밤중에 일어난 참화에 관부에서 출동했으나 낭혈문의 무인
들은 그들을 무시했다. 노골적인 무시에 관부의 무인들은 분노했으
나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들의 엄청난 무력 과시에 감히 함부로 움직
일 수가 없었다.
관부의 무인들조차 무시할 만큼 엄청난 무위를 가진 자들이 하나
둘도 아니고 이천이 넘었다. 태원부의 무인들과 병졸들까지 합하면
모두 육백 명. 때문에 관부의 무인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세상에는
관부를 무시할 수 있는 자들도 있었다. 분했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낭혈문주 좌천기가 그런 자였다. 그는 자신의 앞에 누구나 온전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고,
계획보다 즉흥적인 감흥에 의해서 움직이는 자가 바로 좌천기였다.
관부를 건드림으로써 훗날 벌어질 일 따위는 무시했다. 그래서 무서
운 자가 바로 좌천기였다. 두려움을 모르는 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법이니까.
그렇게 낭혈문은 거침없는 진군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산서
성의 모든 문파는 자진해서 봉문을 하고, 낭혈문이 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문파들은 임시로 자리를 피했다. 일단 눈앞에 닥친 재앙부터 피
하고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산서 무림은 초토화가 되고 있었
다.
낭혈문을 비롯한 천왕성의 진격을 막기 위해 십자성에서 선택한
곳은 태곡(太谷)이었다.
태곡은 태원으로부터 남쪽으로 삼백여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조
그만 마을로 산서성 남부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주요 거점이었다. 하지만 중요성에 비해 너무나 척박한 곳에 위치하
고 있기에 마을의 규모는 무척 작은 편이었다. 전부 합해 오십 가구
에 백육십 명 정도 되는 사람들만이 마을 구성원의 전부였다.
무기를 든 무인들이 마을에 들어오면서부터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
이 집을 빼앗겨야 했다. 이 낯선 침략자들은 대의를 앞세워 칼을 들
이밀고 그들의 거처를 침탈했다. 순박한 마을 사람들은 칼을 앞세운
무인들의 위세에 떠밀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해야 했다.
주인은 그들인에 어느새 객만도 못한 신세가 되어 버린 기막힌 현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들이 하소연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오히려 여인
들이 아직 겁탈당하지 않고, 장정들이 칼부림을 당하지 않은 것에
안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태곡에 배치된 십자성의 책임자는 당사혁이었다.
대공자인 마정옥이 중상을 입어 전력에서 이탈한 뒤 어부지리를
얻은 사람이 바로 당사혁이었다. 그는 호시탐탐 십자성의 후계자 대
열에 끼어들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산서성에서 천왕성의 진격을 막
으란 명령을 받았을 때 흔쾌히 승낙했다. 이것은 그에게 기회였다.
굳이 십자성의 후계자 자리를 노리지 않더라도 십자성에서 당문의
영향력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
당사혁은 숙부인 백안혈수(白眼血手) 다관일과 더불어 자신의 형
제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였다. 그와 함께 당문삼병(唐門三兵)이라고
불리는 형제들을 불러들인 것은 그만큼 그의 의지가 확실하기 때문
이다.
십자성에서 당사혁에게 지원한 병력은 내성의 비밀 병력 중의 하
나인 혈루십삼조(血淚十三組)였다. 당사혁조차 혈루십삼조라는 조직
이 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그에게 배속된 인원은 혈루십
삼조 중에서 칠조부터 십삼조까지 칠백 명이었다.
단지 칠백 명뿐이었지만 혈루십삼조에서 풍기는 기운은 범상한 것
이 아니었다. 마치 낭인들같이 자유분방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절
제된 분위기를 풍기는 자들.
도대체 십자성에는 이만한 전력이 얼마나 존재하는 걸까? 이 괴물
은 마치 양파와 같아서 껍질을 벗기면 벗길수록 더욱 많은 비밀이
존재했다. 그래서 더욱 욕심이 났다. 미치도록 십자성이라는 괴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당사혁에게 십자성은 정말 탐스러운
먹잇감이었다.
당사혁은 자신의 거처에서 당관일과 당종혁, 당만혁, 그리고 혈루
십삼조의 부대주이자 책임자인 마안귀(魔眼鬼) 독종행과 함께 천황
성의 진로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의논했다.
눈처럼 하얀 피부를 가진 당사혁과 확실히 대비되는 검은 피부를
가진 남자가 지도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가 바로 당사혁의 동생인
당종혁이었다. 그는 당문에서도 손꼽히는 용독술의 고수였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감숙성에 적을 두고 활동하던 불귀당(不歸黨)이라는
문파를 멸문시킨 일 때문이었다.
불귀당은 문도 수 삼백 명의 중견 문파였는데 당시 외유를 나갔던
당문의 식구 한 명이 그들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
에 당문에서는 당종혁을 감숙성으로 파견했고, 그가 감숙성에 들어
선 지 채 하루가 되기 전에 불귀당은 이름 그대로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삼백 명의 고수가 채 반항도 못하고 독에
중독되어 죽은 이 사건은 다시 한 번 당문의 무서움을 만천하에 알
렸다.
삼백의 고수를 몰살시킨 당종혁은 대국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고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났다. 때문에 당사혁을 비롯한 삼형제가 함께
움직일 때는 두뇌 역할을 했다.
"저들은 거치적거리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일직선으로 남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행로를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막느냐는 건데......"
"무슨 방도가 있느냐?"
"후후후!"
당사혁의 말에 당종혁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이에 당문의
사람들도 똑같은 웃음을 지었다.
한편 당문 사람들을 바라보는 마안귀 독종행은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당사혁 등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분 나쁜 느낌 때문이다.
'이들은 분명 정파의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사기를 내포
하고 있군. 원래 인물됨이 그런 것인가, 아니면 당문이란 가문 자체
가 그런 특성을 가지는 것인가?'
자신 역시 마도의 인물들보다 더욱 패도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만 이들을 보니 그런 자신의 생각은 수정되어야 할 것 같았다.
독종행이 입을 열었다.
"그 웃음은 그들의 전진을 막을 자신이 있다는 뜻이오?"
"후후! 물론입니다. 단,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조건이라...... 그게 무엇이오?"
"후후후!"
당종혁은 확답을 피하고 묘한 웃음만 흘렸다. 그러자 당사혁이 대
신 입을 열었다.
"몇 명만 희생하면 됩니다. 그러면 저들의 전진을 확실히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 후에 혈루십삼조가 그들을 친다면 확실히 궤멸시킬
수 있을 겁니다."
"대체 그 방책이 무엇이오? 어떻게 몇 명의 희생으로......"
"그것은......"
당사혁의 말이 이어졌다. 그의 말을 듣는 독종행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계책을 다 듣고 난 이후, 그의 기분은 그야말로 최악이
었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토로했다.
"난 그 계책을 받아들일 수 없소. 내 아무리 패도를 지향한다 하
더라도 내 부하들을 그리 허무하게 희생시킬 생각이 없소."
그의 강경한 어조에도 당사혁은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이 정도의
반대는 이미 염두에 둔 탓이다. 그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 방법을 쓰면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소.
비록 몇 명의 희생이 있겠지만 그게 무슨 대수겠소. 그리고 수적 열
세인 우리가 놈들을 확실히 제압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소. 다른 좋은
방법이 있으면 이야기해 보시오."
"그건......"
독종행이 대답을 못하자 당사혁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방도가 없다면 우리의 말대로 행동하시오. 그러면 독 대주
에게도 탄탄대로가 열릴 테니....."
"하지만 내 부하를 희생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소."
"누가 혈루십삼조를 희생시킨다고 했소이까? 여기에도 얼마든지
지원자가 많은데......"
당사혁의 입가가 미미하게 움직였다.
"누구? 설마!"
독종행이 당사혁의 의도를 깨닫고 눈을 부릅떴다. 그러자 당사혁
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당신은 십자성을 뭐로 보는 거요? 아무리 당신이 당문의 대공자
라 해도 이런 작전은 결코 용납할 수 없소!"
"당신은 생각보다 무르구려. 하지만 생각해 보시오. 정상적인 방
법으로는 저들을 절대로 막을 수 없소. 적들의 수는 이천이 넘는데
우리는 불과 칠백 정도요. 제아무리 혈루십삼조의 무공이 출중하다
하더라도 적들 또한 정예요. 지금까지 그들이 내려오면서 벌인 흔적
으로 보아 그들의 전력은 우리보다 훨신 압도적이오."
당사혁의 말에 독종행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자 당사혁이 승
리의 미소를 더욱 짙게 베어 물었다.
"모든 죄과는 내가 뒤집어쓰겠소. 그러니 독 대주는 내 말대로 하
시오. 모든 것은 종혁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리고 이 일은 절대 밖
으로 새어 나가는 일이 없을 것이오. 내가 장담하오."
결국 독종행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역시 정상적인 방법
으로는 결코 천왕성을 쓰러트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
문이다. 비겁한 변명이지만 모든 책임을 당사혁이 진다고 했을 때 그
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그는 결과의 책임이 자신에
게 돌아올 것을 두려워했는지도 몰랐다.
결국 모든 안건은 당사혁이 의도한 대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형제들과 독종행이 나간 후 단둘이 남은 방 안. 당사혁과 당관일
이 마주 앉았다.
"너는 이번 일의 결과가 어찌 되리라고 예상하느냐?"
"당연히 우리의 승리지요.'
"자신 있느냐?'
"숙부님은 누구보다 저에 대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안 된다면 되
게 해야지요. 그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하기는......"
당관일은 당사혁의 말에 수긍을 했다. 그의 조카인 당사혁은 심계
가 뛰어났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얻어냈
고, 추진력과 의지가 굳건했다. 그런 당사혁을 걱정하는 것은 헛된
일일 것이다.
당관일이 찻잔을 들며 말했다.
"이번 일은 우리 당문에 무척 중요한 일이야. 결과에 따라 십자성
내에서 우리의 위상이 달라질 게야. 그리고 십자성을 먹어 치울 수도
있겠지."
"그 때문에 치욕을 감수하고 십자성에 들어간 것 아닙니까. 대공
자가 도마란 자에 의해서 얼굴에 커다란 자상이 생기는 수모를 당했
습니다. 물론 성주야 자신의 핏줄인 아들을 옹호하겠지만 한번 금이
간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알게 모르게 어느 정도 불신이 싹텄
겠지요."
"모든 것이 너에게 달려있다, 당문의 영화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런 각오면 됐다."
적무강에 의해 십자성의 전력에 큰 구멍이 뚫렸다. 도저히 한 사
람에 의한 피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피해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큰 타격은 대공자 마정옥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것
이다. 그로 인해 이제까지 숨죽이고 있던 십자성의 다른 후계자들이
서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당사혁에게 기회였다. 그는 야심이
큰 자였다. 십자성을 통째로 집어삼켜도 배부르지 않은.
당종혁은 밖으로 나온 후 마을 사람들이 있는 곳을 향해 어슬렁거
리며 걸음을 옮겼다.
마을이 십자성의 무인들에게 점거당한 후 주민들은 한 집에 여러
식구가 모여 험악한 무인들을 피했다. 그들은 이 낯선 침입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자신들의 터전에서 나가기를 바랐다. 아직까지 주민
들에게 별다른 해코지는 없었으나 시일이 더 지난다면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먹물을 뿌려 놓은 것처럼 시꺼먼 남자가 다가오자
두려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지고자 애를 썼
다. 마치 쥐가 고양이의 기운에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주민들이 쥐였고, 당종혁은 그들을 노리는 고
양이였다.
당종혁은 그런 주민들을 재미있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꽤 괜찮은 물건들이 몇 개 보이는군. 재밌겠어!"
그에게 있어 눈앞에 보이는 사람들은 그의 흥미를 충족시켜 주는
장난감에 불과했다. 그에게 있어 사람이란 존재는 그와 동등한 무력
을 소유한 인물들뿐이었다.
그가 히죽 웃었다.
천하의 정보 조직들은 사천과 산서를 중심으로 인원을 운용했다.
현재 천하에 불어 닥친 폭풍의 핵은 바로 사천과 산서였기 때문이다.
십자성과 천왕성을 비롯한 구파, 그리고 천하의 세력들은 간자를
파견해 치열한 정보전을 펼쳤다. 십자성에서는 동천을 가동하여 십자
성의 전력을 숨기고 대신 적의 전력을 알아내려 애를 썼다. 천왕성
또한 십자성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그들의 모든 것을 알아내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더구나 구파마저도 속가제자들을 이용해 두
거대문파의 싸움을 주시했다. 때문에 사천과 산서에서 벌어지는 일
이 전서구를 통해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천하에 속속들이 알려지
고 있었다.
작은 문파들은 숨을 죽이고, 어느 정도 힘이 되는 문파들은 이합
집산을 거듭하며 자신들의 이해타산에 맞춰 움직였다.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진 못했지만 천하는 크게 삼분되는 양상을 하고 있었다.
십자성을 비롯해 지지하는 문파, 천왕성과 그들을 지지하는 마도
문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대문파.
십자성은 그 방대한 영향력으로 호북의 문파들과 인근 성의 중소
문파를 끌어들여 거대한 세력을 구축했다. 때문에 연이은 격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향력은 오히려 더욱 커져 갔다. 위기를 기회로 활
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십자성의 위세에 숨을 죽이고 있던 마도의 문파들은 천
왕성의 행로에 속속 합류했다. 때문에 천왕성이 남하하면서 그들의
영향력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었다. 그들은 병력을 사천과 산서 양쪽
으로 나눠 십자성을 압박해 오고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남하하면서
자신들의 편에 서지 않는 문파들은 철저하게 궤멸시키고 있었다.
복종 아니면 멸문, 그들의 극단적인 행보에 수많은 중소 문파들이
정든 터전을 버리고 십자성으로 향했다.
구대문파는 조용히 움직였다. 그들은 내부의 단속을 철저히 하고
자신들끼리의 결속력을 바탕으로 은밀히 움직였다. 지금까지 거의
봉문 형태로 숨을 죽이고 있던 그들의 움직임이 감지되자 십자성과
천왕성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문수영은 천왕성의 행보에 구대문파마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
이자 급히 십자성의 정보 조직인 동천의 수뇌 회의를 소집했다.
동천의 수뇌부가 참석한 자리에서 그녀는 구파의 움직임을 예의주
시할 것을 지시했다. 아직 십자성에는 천왕성뿐만 아니라 구대문파
마저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문수영의 모
든 작전은 그런 십자성의 능력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천하는 바야흐로 난세로 치닫고 있었다.
좌천기는 말을 몰며 지루하다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의 입
에서는 연신 하품이 터져 나왔다.
용화산장을 멸문시킨 것을 시작으로 거치적거리는 수많은 문파들
을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만들었다. 피로 얼룩진 혈로(血路),
관부마저 그들의 눈치를 보며 무림의 일로 치부하고 한발 뒤로 물러
서서 관망만 했다. 덕분에 그들은 이제까지 편하게 남하할 수 있었
다. 하지만 오히려 역설적으로 그 때문에 지루한 일정이 되었다.
낭혈문의 무인들도 좌천기와 마찬가지로 지루하다는 눈빛이었다.
그들의 눈은 어디 건수가 없는지 두리번거리는 건달처럼 그렇게 사
방을 연신 살피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들이 가는 길목에 존재하
는 문파는 모두 문을 걸어 잠근 후 피신을 한 상태라 더 이상 피를
볼 핑계가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욕구불만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좌천기의 곁으로 낭혈문의 부문주인 혈사검 교사영이 다가왔다.
그 역시 좌천기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피를 볼 일이 없겠군요."
"흐음! 부문주는 이대로 십자성에서 두고 보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마 지금쯤 산서성 어딘가에 우리를 노리고 정예를 보냈겠지요.
애들이라도 다 알 수 있는 사실 아닙니까?"
"흐흐흐! 그래. 이 평화로움 뒤에 또다시 한바탕 피바람이 불겠지.
문제는 그게 언제냐 하는 건데......"
천왕성에서는 이미 중원에 정보망을 확보해 두었기에 각지에서 십
자성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 조만간 이곳 산서성의 상
황도 그들의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들은 결코 아무런 대책 없이 무
작정 중원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다.
'성주......'
좌천기는 문득 천왕성주를 생각했다.
마동육문으로 분열돼 있던 천왕성을 사상 처음으로 일통한 남자.
그의 가공할 무력 앞에 마도육문의 문주들이 차례로 무릎을 꿇었다.
강한 자존심과 무력 때문에 삼백 년 동안 지루하도록 싸움을 했는데
이제는 그나마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마치 거대한 어둠의 장막을 보는 듯 전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숨 막히는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자, 천
하의 좌천기마저도 그의 앞에 설 때면 전신이 위축되는 듯한 착각이
들곤 했다. 때문에 좌천기뿐만 아니라 마도육문의 문주들은 성주와
한자리에 앉는 것을 꺼려 했다.
이번에 천왕성주가 중원 진격을 결정했을 때 마도육문의 문주들은
흔쾌히 그의 결정에 찬성했다.
천왕성주는 이번 중원 진격에 가장 큰 공로를 세운 문파에서 후계
자를 지목하겠다고 천명했다. 이에 어지간해서는 결코 움직이는 법
이 없는 마도육문이 움직였다. 그러나 그런 문제보다 더욱 큰 문제가
있었으니, 마도육문을 비롯해 천왕성의 힘이 너무 커져 버렸다는 것
이다. 강력한 힘은 바깥에 풀어야 하는 법, 그래서 그들은 감히 십
자성을 상대로 일어선 것이다.
'성주, 당신의 뜻대로 철저하게 중원을 부숴 주지. 그런 후에 당신
의 자리는 내가 갖겠다.'
좌천기가 예의 웃음을 지었다.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그는 이번
천왕성의 중원 정벌에 자신의 낭혈문이 가장 큰 공로를 세우리라고
자신했다. 그래서 선발대를 자처하고 나온 것이다.
'암내 나는 계집들로 이루어진 혈화문(血花門)이나 밀종문(密宗門)
의 고리타분한 가짜 중들 따위는 우리가 지나간 자리나 청소하라고
해. 그 연놈들에게 돌아갈 떡고물 따위는 없을 테니까.'
그가 히죽 웃었다.
천왕성에서는 이번 중원 정벌에 양동작전을 실시했다. 우선 사천
성에 십자성의 병력을 끌어들여 전력을 분산시킨 후 산서성에서 압
박을 가하는 기본적인 병법, 그러나 그 누구도 십자성을 상대로 천
왕성이 양동작전을 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마도육문
으로 이루어진 천왕성이기에 가능한 병법이 바로 양동작전인 것이다.
좌천기는 기필코 이번 싸움에서 공을 세워 천왕성주의 자리에 오
를 생각이었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한 번쯤 정점에 서 보는 것이 모
두의 목표가 아닌가? 좌천기 역시 그랬다.
그때 낭혈문의 무리 뒤쪽에서 누군가 좌천기 쪽으로 급히 달려왔
다.
"전서구입니다."
"이리 다오."
교사영이 남자에게 전서를 받아 좌천기에게 건넸다.
전서를 읽는 좌천기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러자 교사영이
연유를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크크! 태곡에 십자성의 무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구나. 수
는 대략 칠백 명 정도, 하하하! 이거, 우습게 봐도 너무 우습게 봤
군. 겨우 칠백으로 우리를 막겠다니."
"후후! 무언가 복안이 있겠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우리를 우습
게 본 것은 확실하군요."
"궁금하군. 과연 어떤 수로 우리를 막을 것인지. 정말 궁금해. 크
흐흐!"
좌천기가 사뭇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 삼백 리만 더 가면 태곡이 나온다. 그때까지 확실하게 몸을
풀어두도록."
"와하하!"
"크하하!"
좌천기의 말에 좌중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낭혈문 무인들의 웃
음에는 진득한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들은 곧 있을 피의 축제
를 기대하며 번들거리는 눈으로 전방을 노려보았다.
태곡에 가까워질수록 낭혈문 무인들의 눈에는 흥분과 기대의 빛이
떠올랐다.
교사영이 손짓으로 부하 몇 명을 불렀다.
"너희들이 먼저 상황을 살피고 오도록."
"존명!"
교사영의 명을 받은 무인들이 말을 달려 먼저 태곡으로 향했다.
좌천기가 외쳤다.
"태곡이다. 모두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한 놈이라도 놓친다면 그
것은 우리의 죄악이다. 힘이 약한 것은?"
"죄악이다."
"뭐라고?"
"힘이 약한 것은 죄악이다."
좌천기의 말에 낭혈문의 무인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그들의 일치
된 소리에 공기가 쩌렁쩌렁 울렸다.
힘이 약한 것은 죄악이다.
낭혈문의 신조다.
약자는 도태되고 생존경쟁에서 떨어진다. 오직 강한 자만이 모든
것을 가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다. 천왕성은 그야말로 적자생
존의 세계.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직 강해야 한다. 강한 것
은 생존의 필수 조건이지만 약한 것은 죄악이고 힘없는 자들의 전유
물일 뿐이다.
좌천기가 다시 외쳤다.
"전진이다. 우리의 앞길을 막는 모든 것을 부순다. 십자성과 천하
에 우리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다."
"와아아아!"
낭혈문의 무인들이 무기를 쳐들며 흥분했다.
좌천기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어렸다. 이 정도가 딱 적당했다.
적당한 흥분과 살인에 대한 욕구가 저들의 몸을 풀어 주리라.
좌천기가 고개를 끄덕이자 교사영이 부하들에게 외쳤다.
"모두 전진한다."
"와아아!"
그렇게 사기가 최고조에 오른 채 그들은 전진을 했다.
그들이 태곡에 도착할 무렵 밀정으로 보냈던 무인들이 되돌아왔
다.
"어찌 되었느냐?"
"적의 종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마을 사람들만이 남아 있습
니다."
"어떻게 된 거냐? 전서에 의하면 분명 그곳에 십자성의 무인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저희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피한 것 같습니다. 그것
도 아니라면......"
"유인이겠지. 알았다. 물러가라."
"존명!"
밀정으로 보내던 무인이 물러가자 교사영이 좌천기에게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흐흐! 그들이 무엇을 노리고 기다리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할 것 아닌가?"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병력의 반을 이끌고 먼저
태곡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문주님께서는 천천히 오시길."
"좋다. 모든 것은 너에게 맡기겠다."
"감사합니다, 문주님."
교사영이 좌천기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낭혈문의 문인 절반을
끌고 태곡으로 질풍처럼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좌천기는 나머
지 부하들과 함께 여유롭게 말을 몰았다.
좌천기는 교사영의 능력을 믿었다. 자신이 아니었으면 낭혈문의
문주가 되었어도 충분한 역량을 발휘할 사내이다. 더구나 냉철하면
서 사리 판단이 뛰어나 제아무리 위기의 순간을 맞아도 기지를 발휘
해 금방 위기를 벗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좌천기는 교사영을 신뢰하
고 부문주의 자리에까지 올렸다. 그는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사내
였다. 비록 무공이 떨어지는 것이 흠이었으나 그 정도는 충분히 감
수할 수 있었다.
교사영은 본진에서 벗어나 부하들을 이끌고 태곡으로 들어왔다.
과연 태곡은 밀정들의 말 그대로 텅텅 비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만
이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을 뿐, 십자성 무인들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교사영이 부하 몇 명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와 너, 그리고 너는 지금부터 주위를 수색한다. 십자성의 흔적
을 찾아라."
"존명!"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부하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제에 이어 또다시 칼을 든 무인들이 마을에 난입하자 마을 사람
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서도 교사영은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어차피 이들은 무림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자들이다. 지금 여기에
서 한바탕 칼부림을 한다 하더라도 어떤 반항도 할 수 없는 인간들,
교사영이 보기에는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나 그들이나 모두 똑같았다.
"쓰레기들......"
교사영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부하들이 가져올 소식을 기다렸다.
웅성웅성!
그때 부하들의 동요가 느껴졌다.
교사영의 냉철한 시선이 부하들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으로 향했
다.
"훗!"
그의 입가에 차가운 웃음이 어렸다. 부하들의 시선이 닿아 있는
곳에 아낙들의 모습이 보였다. 마을 아낙들인 듯했는데 촌 아낙들이
라 그런지 피부도 칙칙하고 지저분해 보였다. 하지만 이미 여러 날
여체를 접해 보지 못한 부하들은 단지 여인이라는 이유로 흥분을 하
고 있었다. 몇몇 부하들은 벌써 입에 침을 흘리며 아낙들에게 다가
가고 있었다. 그러나 본래 예의와 규범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이들이
었기에 특별히 뭐라 하지는 않았다.
"왜, 왜 이러세요?"
"이러지 마세요."
동네 아낙들이 겁에 질려 덜덜 떨었다. 그러자 그들의 남편으로
보이는 듯한 사람들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이러지 마시오. 제아무리 당신들이 강호인들이라 할지라도 이리
경우가 없단 말이오? 그래도 먼저 왔던 무인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는 절대 손을 대지 않았소."
촌장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 비록 겁에 질
린 얼굴이었지만 그의 눈에는 단호한 눈빛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교사영이 보기에는 겁 없는 사마귀 한 마리가 수레바퀴를 막어선 경
우에 불과했다. 제아무리 사마귀가 날카로운 발을 들이대도 수레바
퀴 앞에서는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다. 바로 지금처럼.
쉬익!
교사영의 손에서 무언가 희끗한 게 번쩍였다 사라졌다.
"크윽!"
"아악! 촌장님!"
"촌장님!"
순간 촌장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의 미간은 어
느새 번개 문양으로 갈라져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낭혈문의 무인들
중 그 누구도 교사영이 무기를 뽑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는
그가 어떤 수법을 쓴 것인지 아는 사람조차 없었다.
"감히 누구 앞에서 종알대는 것이냐? 그들도 모조리 죽여라. 지금
은 계집 따위에 정신이 팔려서는 안 되는 때이다."
교사영의 명령에 음소를 흘리며 동네 아낙들에게 다가가던 무인들
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그들은 어느새 무기를 꺼내 들고 아낙들을 비롯해 마을 사람들에
게 무기를 휘둘렀다.
퍼퍽!
"으악!"
"꺄악! 살려 줘요."
"이놈들아!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냐?"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무기를 피해 이리 피하고 저리 피했지만 무
공을 익힌 자들을 당할 수는 없었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눈
을 부릅뜨고 죽어 갔다. 그들의 눈에는 원독의 빛이 가득했다.
힘이 없어 자신들의 식솔을 지키지 못한 자들의 원한의 기운이 마
을에 가득 찼다. 그러나 낭혈문의 무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칼을 휘
둘렀다.
"이놈들! 내 죽어서도 네놈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무인이라
는 것들이 힘만 믿고 이런 만행을 저지르다니! 부처님께서 네놈들에
게 천벌을 내리실......"
퍼ㅡ억!
무시무시한 저주를 내뱉던 노파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뒤통수
를 쇠망치로 얻어맞은 채 바닥에 쓰러졌다.
"퉤! 할망구가 재수 없게."
노파의 머리를 부순 남자가 바다겡 가래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순식간에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했다. 백여 명이 훨씬 넘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일 각여. 그 짧은 시간 동
안 마을 하나가 지도상에서 완벽하게 사라진 것이다.
곳곳에 시체 더미가 쌓였다.
"정찰을 나간 놈들은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것이냐? 이제 곧 문
주께서 도착하실 텐데."
교사영이 짜증난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마을 하나를 통째로 멸
망시켰지만 짜증나는 이 기분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쿵쿵!
그때 그의 귓가에 무언가 고목이 쓰러지는 듯한 소리가 연이어 들
려왔다.
"무슨?"
교사영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의 눈이 부릅떠졌
다.
하나 둘씩 쓰러지는 그의 부하들, 채 비명도 지르기 전에 입에서
거품을 게워 내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크으으~!"
손을 허우적거리며 바닥에 나뒹구는 부하들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
어 가고 있었다.
"중독! 언제.....?"
분명히 중독의 증세였다. 그것도 중독되자마자 즉사할 정도의 극
독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마을에 들어온 이후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런데 언제 중독되었단 말인가?
교사영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그가 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그 순간에도 무더기로 쓰러지는 부하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순간 그의 눈에 쓰러진 마을 사람들의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그
의 부하들은 마을 사람들의 시신을 중심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설마 마을 사람들의 몸에 수작을 부렸단 말인가?"
그가 이를 뿌득 갈았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지만 적들은 마을 사람들의 몸에 독을 심어
넣고 그들이 죽자 발작하게 만든 것이다. 이런 가공할 용독술이라니.
"모두 마을 사람들의 시신에서 떨어져라. 중독된 자들은 놔두고
그대로 물러간다. 절대로 그들의 몸에 손대지 마라."
그의 명령에 부하들이 급히 마을 사람들의 시신에서 멀어졌다. 그
리고 마을 밖으로 급히 빠져나갔다.
순간.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쳐라."
산에서 외마디 고함과 함께 수많은 남자들이 밀려 내려오기 시작
했다.
"으득! 십자성의 조무래기들."
교사영의 눈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
3
마을에서 빠져나가는 동안에도 낭혈문의 무인들은 무더기로 쓰러
지고 있었다. 그들은 예외 없이 시체 부근에 있던 자들로 미처 손을
써 볼 틈도 없이 중독되어 쓰러져 발작을 일으켰다. 하나같이 입에
게거품을 물로 손발을 부르르 떨다가 곧 숨이 끊어지는 부하들을 보
며 교사영의 눈에 핏발이 어렸다.
"이놈들!"
순식간에 오백 명 가까이 되는 낭혈문의 고수들이 제대로 무기 한
번 휘둘러 보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그나마 교사영의 판단이 빠르지
않았다면 천 명이나 되는 인원 모두가 몰살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아쉽군! 잘하면 한 방에 몰살시킬 수 있었는데 말이야."
당종혁이 마을에 뒹굴고 있는 시체들을 보며 아쉽다는 듯이 입맛
을 다셨다.
당문에는 수많은 용독술과 비전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백
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뽑는다면 만천화우(滿天花雨)와 지황활독술
(地皇活毒術)이다.
만천화우는 강호에 잘 알려졌다시피 당문의 가주와 후계자만이 익
힐 수 있는 전설의 암기술로 한번 만천화우가 펼쳐지면 방원 십 장
의 모든 생명체가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당문 최후의 무공이었다. 그
에 비해 지황활독술은 강호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용독술이었다. 그
것은 당문에서 지황활독술을 극비리에 부쳤기 때문이다.
지황활독술은 살아 있는 사람을 매개체로 독을 퍼트리는 극악한
수법이다. 이것이 맨 처음 연구된 것은 백 년 전의 일이다. 백 년 전
에 당문에는 당수윤이라는 천재가 존재했다. 그는 수많은 당문의 비
전 중 특히 독을 연구하는 데 미쳐 있었는데, 독을 찾아 남만과 서
역, 천산과 해동 등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말년에
찾아낸 독이 바로 지황이었다. 지황은 그가 천산에서 찾아낸 광물에
서 얻은 독으로 무척 특이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주위의 기온이 차가우면 절대 활성화되지 않고 일정 이상의 온도
가 올라가면 급속히 분열을 하며 주위로 퍼져 나가는 광물독(鑛物
毒), 더구나 몇 번의 분열을 거쳐 한 시진 정도가 지나면 흔적도 없
이 사라지고 만다. 이런 지황의 성질을 최대한으로 살려 만든 방법이
바로 지황활독술이었다.
일정량 이상의 지황을 인체에 주입하고 발병 시기를 조절한다. 그
러면 지황이 인체의 온도에 활성화되면서 주위의 살아 있는 생명체
를 잠식해 나간다. 그리고 마침내 활성화가 최고조에 다다르면 발병
을 한다. 마치 전염병이 번지는 것과 같다. 때문에 낭혈문의 무인들
이 굳이 마을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더라도 그들은 죽을 운명이었다.
단지 그들이 죽음으로써 지황이 조금 더 빨리 활성화된 것뿐이다.
무림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무고한 양민들을 이용해 천인공노할
작전을 입안한 당문, 그리고 십자성의 무인들. 그들은 이 사실이 영
원히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태곡의 주민들은
모두 이번 지황활독술의 제물로 사용됐다. 극악한 방법이지만 어차
피 일반 양민들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 그들이다. 주민들의 죽음에 슬
퍼하는 사람 따위는 이 자리에 없었다. 그들에게 백칠십 명의 주민
목숨 따위는 하등의 감흥도 줄 수 없는 것이다.
당종혁이 아쉬워하는 것은 단지 낭혈문 측에서 너무 일찍 낌새를
알아차려 중독이 전체로 퍼져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
다면 굳이 힘들게 무기를 휘두르며 싸우지 않았어도 됐을 것이다.
"와아아ㅡ!"
"천왕성의 떨거지들을 죽여라."
혈루십삼조가 무기를 휘두르며 산비탈을 뛰어 내려갔다. 이미 독
으로 반수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해 볼 만했다. 더구
나 십자성 측의 인물들은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상태였다.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기세였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유리한
것은 십자성들의 무인들이었다.
콰콰쾅!
순간 십자성의 무인들과 낭혈문의 무인들이 격돌했다.
쉬익! 퍼억!
둔탁한 무기로 골육을 뭉개는 섬뜩한 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크아악!"
"켁!"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오며 천 명이 넘는 무인이 격돌했다.
인세에 지옥이 현신한다면 바로 이와 같은 모습일 것이다. 도무지
인간과 인간이 싸우는 것 같지 않은 무자비한 광경, 오직 상대를 죽
이기 위해서 무기를 휘두르는 아비규환의 참상이었다. 팔다리가 몸
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에 나뒹굴고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피
가 흐르고 흘러 내를 이루고, 강을 이뤘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데 이리도 잔인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무서
울 정도였다. 그러나 낭혈문과 십자성의 무인들은 결코 망설이는 법
없이 서로를 향해 무기를 쑤셔 넣었다. 적아를 구별할 수 없는 난전,
그들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복장뿐이었다. 같은 옷을 입었
으면 같은 편이고, 다른 옷을 입었으면 적이다. 그것뿐이다. 그들이
적아를 나누는 기준은.
전체적인 전황은 십자성에 유리했다. 그들은 칠백이었고, 낭혈문
은 지황활독술에 의해 오백 명이나 죽어 반으로 줄었기에 수적으로
열세에 처해 있었다. 아직 문주인 좌천기가 도착하지 않아 상황은 점
점 더 어려워져 갔다.
쉬익!
"큭!"
교사영이 눈앞에 거치적거리던 혈루십삼조의 무인의 목을 긋고 전
장을 바라보았다.
시뻘건 복장을 한 이놈들은 의외로 강했다. 어떤 방식으로 단련시
켰는지 모르지만 황야에서 수련을 한 자신의 부하들에게도 전혀 밀
리지 않는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더구나 전원이 검기를 이용한 공격
을 펼치고 있었다.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전력이었다.
"칫! 독에 당하지만 않았어도."
그가 혀를 찼다. 처음에 독공에 당한 피해가 너무 컸다. 그러지 않
았다면 이리 밀릴 이유가 없었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뒤돌아볼 여유
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좌천기가 올 때까지 전황을 유지하
는 것이다.
"으아악!"
"크허헉!"
유난히 비명 소리가 많이 들려오는 곳으로 교사영의 시선이 향했
다.
"저놈들!"
순간 교사영의 눈에 불길이 치솟았다.
유난히도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는 인간들, 다른 십자성의 인물
들과 차별적인 복장을 한 인간들. 그들이 휘두르는 손짓 한 번에 낭
혈문의 고수 두어 명이 쓰러져 갔다. 무기가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픽
픽 쓰러져 가는 낭혈문의 고수들. 그것은 그들이 독과 암기에 당했기
때문이었다.
"으드득! 당문의 떨거지들이 감히!"
이런 난전 중에서 독과 암기가 뿌려지게 되면 그 누구라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교사영은 당사혁 등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분명 교사
영의 손에는 그 어떤 무기도 없었지만 당사혁이 있는 곳에 도착했
을 때 그의 손에는 정체불명의 연검이 들려 있었다.
쉬리릭!
연검이 춤을 추며 당사혁의 목을 노리고 짓쳐 들어갔다. 마치 독
사가 춤을 추듯 붉은 검기가 어린 연검이 움직였다.
"호오!"
당사혁의 눈에 의외라는 빛이 떠올랐다.
일견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연검은 치명적인 사혈만
노리고 있었다. 더구나 연검에 맺혀 있는 붉은 색의 검기는 한눈에도
위험해 보였다. 결국 당사혁은 자신이 즐겨 쓰는 절기인 삼양수(三
陽手)를 펼쳐 연검을 막아 갔다.
촤촤ㅡ촹!
분명 연검과 손바닥이 부딪쳤는데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연검과
마찬가지로 붉게 달아올라 있는 당사혁의 손바닥에는 흠집 하나 나
있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손바닥이 교사영의 연검에 맺힌 검기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극성에 이른 삼양수? 당문이 맞구나!"
교사영이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당사혁의 절기를 알아보고 소리를
쳤다. 그러자 당사혁의 입가에 한 줄기 비웃음이 떠올랐다.
"용케도 알아보았구나. 하면 이것도 알아보겠지?"
그의 손에 검은 색의 모래가 보였다. 순간 교사영의 눈에 놀라는
빛이 떠올랐다.
"귀왕령(鬼王零)!"
귀왕령은 당문의 금용암기 중의 하나로 극악한 위력 때문에 강호
에서 사용이 금지돼 있었다. 귀왕령은 마치 모래 알갱이처럼 미세해
서 사람의 모공을 통해 인체에 침투한다. 그렇게 귀왕령에 당한 사람
은 지독한 고통 속에서 몸부림 치다 서서히 몸이 녹아 죽어 간다.
때무네 장문의 사람들은 귀왕령을 쓸 때 심사숙고를 거듭한다. 하지
만 지금 교사영의 눈앞에서 당사혁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귀왕령을
사용하고 있었다.
휘류우!
귀왕령이 바람을 타고 교사영을 향해 밀려들어 갔다.
자신을 향해 밀려오는 검은 바람에 교사영은 이를 악물고 혈사검
의 최고 수비 초식 중 하나인 비사만공(飛蛇滿空)을 펼쳤다.
투투퉁!
순간 교사영의 전면에 투명한 강기막이 형성되며 귀왕령을 사방으
로 튕겨 냈다.
"크아악!"
"으악! 살려줘. 이게 뭐야?"
불똥은 엉뚱하게도 교사영의 주위에서 싸우던 무인들에게 튀었다.
한참 눈앞의 적과 싸우던 무인들은 갑자기 불어 닥친 검은 모래에
전신을 긁으며 괴로워했다. 손톱으로 피부가 벗겨지도록 긁었으나
가려움은 사라지지 않고 엄청난 고통으로 변했다.
"끄아아아!"
처절한 비명과 함께 귀왕령에 당한 무인들의 몸이 녹아내리기 시
작했다. 그 처참한 광경에 교사영의 눈빛이 변했다. 하마터면 자신
이 저들과 같은 꼴이 될 뻔했던 것이다.
"놈! 용서하지 않겠다!"
교사영이 연검에 공력이 주입됐다. 그러자 흐느적거리던 그의 연
검이 마치 창처럼 꼿꼿이 일어섰다.
교사영의 일변한 분위기에도 당사혁은 웃음을 지우지 않았다.
"숙부님, 이제 그만 처리해도 됩니다."
"뭐?"
당사혁의 말에 교사영의 눈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당사혁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의미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곧 당사혁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아무도 없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서늘한 목소리. 분명 주위에 아
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는데도 불구하고 누구나 그의 등 뒤로 접근
한 것이다. 그것은 그자가 교사영의 감각을 벗어난 고수라는 것을
의미했다.
"젠장!"
교사영이 급히 뒤돌아서며 연검을 휘둘렀다.
서걱!
검 끝에 무언가 베이는 감촉이 전해졌다.
'잡았다.'
교사영의 눈에 희열의 빛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의 눈에서 환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얼굴 전체에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크아악!"
얼굴의 모공에서 느껴지는 불같은 통증에 그가 자신도 모르게 비
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그의 눈 안에 들어오는 것은 온통 시뻘건 세
상이었다. 눈 안의 핏줄이란 핏줄이 막대한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고 만 것이다.
교사영의 머리가 커다란 붉은 손바닥에 잡혀 있었다. 한 손으로
교사영의 얼굴 전체를 누르고 있는 이는 바로 당사혁의 숙부 당관
일이었다.
붉은 세상 속에서도 교사영은 당관일의 눈동자를 똑똑히 볼 수 있
었다. 투명하게 빛나는 그의 백안(白眼)을.
백안혈수(白眼血手).
당관일을 지칭하는 별호다. 백안이 빛을 발하고 혈수가 뿌려지면
세상 그 누구도 생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해서 붙여진 별호다. 당문의
가주 대신 무력을 행사하는 실질적인 당문의 최강자가 바로 백안혈
수 당관일이다.
사실 교사영이 제아무리 강하다 해도 당사혁과 대결을 벌이면서
당관일의 은밀한 접근을 감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그가 일대일로 당관일과 싸웠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르
나, 한번 지나간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교사영은 당관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연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연검은 너무나 쉽게 당관일의 다른 손에 잡혔다.
푸스스!
마치 모래처럼 부서져 내리는 교사영의 연검. 그것은 놀라운 광경
이었다. 강철로 이루어진 검을 부러트리는 것은 내공을 익힌 고수라
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단처럼 부드러운 연검을 부러트리려
면 절정의 공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더구나 연검을 모
래처럼 만들려면 내공이 노화순청(爐火純靑)의 경지에 이르지 않으
면 불가능한 것이다.
'이자, 정상적인 대결을 펼...쳤더라도... 크윽!"
푸욱!
순간 등 뒤에 극통이 느껴졌다. 당사혁이 그의 등에 손을 박아 넣
은 것이다.
"후후! 이 정도가 천왕성의 전력이라면 정말 실망스럽군."
당사혁이 교사영의 등에 손을 박은 채 이죽거렸다. 사실 그의 힘
만으로 교사영을 제압하려 했다면 오백 초 이상 손속을 나눠야 가능
했을 일이지만 그는 애써 그런 사실을 무시했다.
얼굴이 당관일의 손바닥에 함몰된 채 교사영이 힘겹게 말문을 열
었다.
"크흐흐! 나...와 문...주는 질...적으로 달라. 나를 기준으로
모...든 것이라 판단...하면 그것은 너의 착...각이야. 흐흐흐! 이제
부터 절대...적인 공...포를 느끼게 되...리라. 죽는 그...순간까
지."
그의 말은 마치 예언과도 같았다.
"와아아ㅡ!"
순간 저쪽에서 엄청난 함성이 밀려왔다. 당사혁이 급히 고개를 돌
리니 새로운 낭혈문의 무인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좌천기가 이끄는
낭혈문의 본대가 도착한 것이다.
화하학!
지독한 살기가 느껴졌다.
교사영의 입가에 처절한 웃음이 어렸다.
"흐흐흐! 너희...들의 지...옥은 이제...부터...일지니. 크하핫!"
"시끄럽다."
후두둑!
교사영의 불길한 말에 당사혁이 박아 넣은 손을 뽑았다. 그러자
교사영의 척추가 통째로 뽑혀 나오며 절명했다.
파삭!
당관일이 이미 시체가 된 교사영의 머리를 으스러트리며 전장을
바라보았다.
그가 음울하게 말했다.
"이 전쟁, 아무래도 쉽지 않겠구나.'
저 멀리서부터 그에게 보내는 가공할 적의가 느껴졌다. 교사영과
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살의. 그의 피부에 소름이 올라
오고 있었다.
움찔!
너무나 힘겹게 그녀의 입이 달싹거리고 있었다. 한 점의 생기도 없
는 눈빛. 그녀의 눈에는 생기보다 사기가 더욱 많이 존재하고 있었
다. 이미 그녀의 내부 장기는 모두 녹아 버린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
서도 그녀가 아직도 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은 그녀의 눈앞에 있는
어린아이의 얼굴 때문이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아이는 그녀의 아들이었다. 애지중지하며 기르
던 아이, 자신이 배 아파 나았고, 그녀의 모든 것이 바로 아들이었
다. 그런데 아들이 자신보다 먼저 죽음의 강을 건너고 말았다. 그것
도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그녀의 뇌리를 지배하는 것은 격렬
한 증오와 아들에 대한 사랑. 그렇기에 쉽게 눈을 감지 못했다.
그녀는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미 그녀의 육신은 그녀의 의지를
벗어나 있었다.
또르륵!
그녀의 뺨으로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세상에 대한 원망의
눈물이었다.
"내...아...들, 미...아...안...."
세상의 외풍에서 지켜 주지 못해서, 피어나기도 전에 지게 해서
미안했다. 엄마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해서 미안했다. 그래서 죽어서
도 눈을 못 감을 것이다.
털썩!
결국 그녀의 목이 힘없이 꺾였다. 죽는 순간까지도 그녀의 눈은
아들을 향해 있었다.
그렇게 태곡의 마지막 주민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저벅!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그녀의 앞에 낯선 이의 발이 나타났다. 그
는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다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쥐었다. 그리고
바로 앞의 아이 손에 올려 주었다.
스륵!
그제야 여인의 눈이 거짓말처럼 감겼다.
순간 칠흑처럼 검은 남자의 그림자가 커다랗게 출렁였다
4
좌천기는 당관일에 의해서 부문주인 교사영이 죽는 모습을 보았다.
비록 그들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로 인한 난전이 벌어지고 혼란이 일
었으나 좌천기는 그들을 뛰어넘어 교사영의 척추가 뽑히고 머리가 부
서지는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이놈들!"
그의 이빨이 뿌득 갈렸다. 그의 주위에는 가공할 살기가 넘실거리
고 있었다.
"십팔령(十八靈)!"
그가 살기를 담아 허공에 외치자 마치 유령처럼 뿌연 그림자가 그
의 앞에 나타났다.
좌천기의 시선이 당관일과 당사혁 등을 향했다.
"잡아와. 반드시 산 채로!"
"존명!"
순간 아침 안개가 햇살에 사라지듯 그렇게 십팔령의 형체가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다시 나타난 곳은 당관일과 당사혁이 있
는 곳이었다. 마치 공간을 뛰어넘은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움직였다.
"음!"
당관일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눈으로도 어떻게 움직인 것인지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상대의 움직임이 그의 예상보다 신속했기 때
문이다.
"문주님의 명이다. 너희들을 끌고 가겠다."
십팔령의 우두머리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무심히 말했다. 흔히 하
는 협박이 아니다. 당관일은 그들이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능력이 된다면......"
"끌고 가겠다."
쉬릭!
순간 십팔령이 마치 유령처럼 당사혁과 당관일의 주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심해라. 이들은 결코 수월한 자들이 아니니."
"예. 숙부님."
당사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눈앞의 상대들이 결코 범상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게 수하들로 보이는 자가 수뇌급보다 더 강해 보이는
거지?'
그런 의문이 들었다. 그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십팔령의 정체를
알지 못할 것이다.
십팔령은 낭혈문주의 호위로 대대로 비전을 전수받고 음지에서만
활동한다. 인간의 감성을 완전히 제거하고 오로지 목적을 위해서만
활동하기에 통상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다. 더구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에 어떤 중상을 입히더라도 죽기 전
까지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렇기에 무서운 존재들이 바로 십팔령
이었다.
쉬쉬쉭!
십팔령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그에 당관일의 눈가가 더욱 가
늘어졌다.
좌천기는 무심한 시선으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비록 교사영이 죽
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으나 그로 인해 마음의 평정이 깨진 것은
아주 잠시에 불과했다.
낭혈문에는 교사영과 같은 인재가 몇 명 더 있었다. 그들은 언제
라도 교사영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었다. 낭혈문에서 부문주란 그런
존재였다. 문주의 자리가 가시권에 있지만 없어져도 아쉽지 않은.
좌천기와 그가 이끌고 온 전력의 가세로 전황은 금세 낭혈문 쪽으
로 기울어졌다. 방금 전까지는 그나마 백중세로 맞섰으나 마치 늑대
와 같이 사납게 물고 늘어지는 낭혈문도의 기세에 혈루십삼조가 위
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흐름을 바꿔야 한다, 흐름을.'
이곳에 파견된 혈루십삼조의 부대주이자 책임자인 마안귀 독종행
이 갈수록 불리해져 가는 전황을 보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그들이 유리했으나 이제는 그 반대였다. 밀리는 쪽은
혈루십삼조였고, 쓰러지는 자들은 자신의 부하였다. 최악의 흐름이었
다. 그에게는 안 좋은 흐름을 뒤집을 일발역전의 계기가 필요했다.
독종행의 눈에 전장의 한가운데에 오연히 서 있는 좌천기가 눈에
들어왔다.
"저놈!"
독종행의 눈에 말 그대로 독기가 감돌았다. 그는 좌천기를 향해
몸을 날렸다.
"놈! 목을 내놓아라."
쉬릭!
독종행의 검이 분열을 일으키며 허공에 검영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을 향해 밀려오는 살기와 검기를 보면서도 좌천기의 얼굴에는
전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감히 날 무시하다니!"
독종행의 눈매가 사납게 일그러졌다. 자신의 몸에 닿기 직전인 검
기를 보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것은 분명 그를 무시하는 행위였다. 독
종행이 더욱 공력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검기가 더욱 확연하게 형상
을 갖춰 가며 난도질할 듯 좌천기를 향해 밀려갔다.
그때 좌천기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마도육문의 문주라는 것은 감히 너희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흉악
한 싸움 끝에 얻는 영광된 자리다. 그런데 감히 너 따위가......"
쉬아악!
순간 벼락같이 그의 몸이 움직이며 이제까지 허리에 얌전히 잠들
어 있던 천랑도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촤아앙!
독종행의 검기가 산산이 부서져 나가고 검기 뒤에 모습을 감췄던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경악한 듯 입을 벌리고 있는 그의 얼굴.
분명 그의 검기에는 혼신의 공력이 담겨 있었는데 단 일도에 그
모든 검기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좌천기의 말이 이어졌다.
"너 따위는 백번을 죽었다 살아나도 내 몸에 손 하나 대지 못한
다."
철컥!
좌천기의 도가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순간 부릅떠지는 독종행의 눈. 그의 안구에 있는 혈관이 빨갛게
물들어 갔다. 그리고 빨간 핏줄은 전신으로 급속히 번져 가고 기어이
몸 전체가 빨갛게 물들었다.
독종행이 입을 열었다.
"뭐?"
퍼ㅡ엉!
순간 독종행의 몸이 공중에서 그대로 폭발하고 말았다. 허공에서
혈우가 쏟아져 내렸다.
단 일초의 출수로 혈루십삼조의 부대주인 독종행의 몸을 산산이
부숴 버린 좌천기. 그의 위력 앞에 주위에서 난전을 벌이던 낭혈문과
혈루십삼조의 싸움이 일시 멈췄다.
"......!"
혈루십삼조원들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크게 떠졌다. 그들의
수장이자 우두머리인 독종행이 믿을 수 없게도 단 일 초에 죽었기 때
문이다.
좌천기는 분명 가만히 있었지만 마치 거대한 늑대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것만 같았다. 그 압도적인 분위기에 혈루십
삼조원들의 눈에 공포가 어렸다.
"죽여라. 죽이고 또 죽여라. 그래서 늑대들의 공포를 영혼 깊숙이
각인시켜라."
"와아아ㅡ!"
좌천기는 나직하게 말했지만 낭혈문의 무인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그의 말을 알아들엇다. 그리고 그들은 더욱 흥분해 혈루십삼조원들
을 몰아쳐 갔다.
"크윽!"
당사혁의 눈에 당혹한 빛이 어렸다.
전장의 분위기가 일변했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독종
행이 단 일초를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는 사실은 그를 경악하게 만들
었다. 자신도 독종행을 제압할 자신은 있지만 단 일초는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숙부인 당관일도 불가능할 것이다. 더구나 그들을 둘
러싸고 있는 이 열여덟 명의 괴물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쉴 새 없이
그들을 따라붙으며 지독히도 괴롭히고 있었다.
독도 통하지 않고 암기도 통하지 않는다. 마치 만독불침의 괴물
같았다. 그래서 당문의 천적이었따. 독과 암기가 통하지 않는다면 당
문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귀왕령도 썼고, 추혼연미표(追魂燕尾標)도 썼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십팔령의 육체에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은 당관일도 마찬가지였다. 당사혁과 마찬
가지로 그의 암기나 독술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타격을 주
는 것은 단지 공력을 이용한 물리적인 공격뿐이다.
파앙!
그의 혈수가 펼쳐지며 십팔령 중의 한 명이 뒤로 밀려났다. 그의
가슴팍이 움푹 함몰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멈춰 섰을 때, 그의 가
슴은 이미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었다.
"이런 바보 같은......!"
믿기 힘든 모습에 당관일이 신중히 눈을 빛냈다. 분명 혈수(血手)
는 인체의 주요 기관을 파괴하는 효능이 있었다. 그런데도 상대가 아
무런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두 가지 중의 하나였다.
"강시와 같이 죽은 시체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특수한 기공을 익
혔거나...... 둘 중의 하나이겠군."
그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파파팟!
당관일이 고심할 새도 없이 십팔령의 공세가 들이닥쳤다. 옷깃이
날아가고 몸에 상처가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마치 유령과 싸우는 것 같았다. 자신의 상처는 늘어 가는데 상대
는 그 어떤 타격도 입지 않고 있었다.
"좋아! 승부를 건다."
당관일의 백안이 차가운 빛을 발했다. 동시에 그의 혈수가 더욱
붉은빛을 뿜어냈다.
"마령혈백수(魔靈血魄手)!"
그가 혈수의 절초인 마령혈백수를 펼쳐 냈다.
콰콰콰!
순간 그의 손바닥에서 붉은색의 강기가 폭죽처럼 터져 나오며 십
팔령을 향해 날아갔다.
"됐다."
당사혁의 눈에 희열의 빛이 떠올랐다. 그는 숙부의 저 초식이 얼
마나 위험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마령혈백수의 초식인 것이다.
십팔령의 눈이 일제히 붉은색으로 빛났다.
스스스!
순간 사방에 흩어져 있던 십팔령이 모두 한 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마령혈백수의 초식이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일직선으로 쭉
늘어서며 앞에 있는 상대의 어깨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대마증폭회선강(大魔增幅回線강)!"
맨 마지막에 있던 십팔령이 내력을 앞에 있는 자의 어깨에 집어
넣었다. 그러자 내력을 전이 받은 자가 자신의 내력까지 합해 앞에
있는 남자를 향해 전도했다. 그런 식으로 순식간에 내력이 열여덟
단계를 거쳐 증폭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일 앞에 팔을 뻗고 있
는 남자의 몸을 거쳤을 때는 가히 파천황적인 위력을 보이고 있었
다.
콰우우!
거대한 빛줄기가 십팔령의 몸을 관통해 마령혈백수의 기운에 부딪
쳤다. 마령혈백수의 기운은 몸부림을 치며 빛줄기를 빠져나가려 했
으나, 빛줄기는 마령혈빅수의 기운을 침식하며 당관일을 향해 밀려
왔다.
"설마! 실혼마인(失魂魔人)이란 말이냐?"
어지간하던 당관일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실혼마인은 강시에게 펼치는 대법을 살아 있는 사람에게 행한 사
람을 말한다. 시체를 살리기 위해 펼치는 대법을 살아 있는 인간에
게 펼치는 만큼, 지독한 부작용에 대부분의 사람이 죽는다. 하지만
이 대법에도 인간이 살아남는다면 엄청난 육체적 능력을 얻는다. 더
구나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실혼마인끼리는 정신적인 감응이 이루어
지기 때문에 삼십 장 안에만 있다면 서로의 생각을 읽어서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더구나 살아 있는 사람처럼 무공을 쓸 수 있기에
절정고수를 상대하는 것보다 더욱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데 그런 실혼마인이 한둘도 아니고 무려 열여덟이다.
열여덟 명의 몸을 통과하면서 증가할 대로 증가한 대마증폭회선강
의 기운이 당관일의 몸에 작렬하기 직전, 그가 급히 호신강기를 펼
쳐 냈다.
콰ㅡ아아앙!
"크윽!"
엄청난 굉음과 함께 당관일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깊게
파인 구덩이 속에서 당관일이 손으로 입가를 닦았다. 내장이 찌르르
울리는 게 심상치 않은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열여덟 명의 내력이
합쳐진 대마증폭회선강은 호신강기마저도 무용지물로 만들며 그의
몸에 내상을 입힌 것이다.
당관일이 외쳤다.
"물러나라! 실혼마인은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없앨 수 없다.
이대로는 개죽음을 당할 뿐이다."
"숙부님?"
"십자성의 무리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우리라도 몸을 내빼야
한다."
당관일이 쏜살같이 일어나 망설이는 당사혁의 손을 잡았다. 그리
고 뒤로 몸을 내뺐다. 동시에 당종혁과 당만혁에게 전음을 날렸다.
<어서 물러나라. 실혼마인 열여덟 구라면 우리에게 승산이 없다.
그들을 모두 처리하기도 전에 다른 자들이 합세한다면 우리는 분명
죽을 것이다. 차라리 외곽으로 저들만을 유인해 죽이는 것이 쉬울 것
이다.>
대여섯 정도라면 지금 당장 당관일의 힘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모험을 한다면 열 명까지도 어떻게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그가 얻는 게 무엇인가? 이미 전황은 낭
혈문에게로 기울었다. 더 이상 십자성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것은 무
의미한 일이었다. 더구나 상대의 수괴는 단 일도에 혈루십삼조의 부
대주인 독종행의 숨통을 끊은 절대의 고수였다. 지금 그는 전장에 참
여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만약 그가 참여를 하게 된다면 도주마저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당관일이 당사혁의 손을 잡은 채 산으로 몸을 날렸다. 이에 당종
혁과 당만혁이 합류했다.
십팔령이 눈을 빛냈다.
"문주님의 명령은 저들을 사로잡는 것."
그들은 당관일 등을 따라 숲으로 몸을 날렸다. 한번 내려진 명령
은 무슨 일이 이더라도 완수하도록 세뇌가 돼 있었다. 문주인 좌천
기가 명령을 철회하기 전에는 그들은 임무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좌천기는 당관일이 도망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십팔령이 그들
을 따라 몸을 날리는 것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십팔령에게 내린 명
령을 거두지 않았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낭혈문주의 말은 지켜져
야 한다. 그것이 좌천기의 생각이었다.
이미 전세는 기울 대로 기울어져 있었다.
낭혈문의 낭인들은 십자성의 혈루십삼조를 일방적으로 추살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백의 인원이 죽었지만 어차피 이 정도 싸움에
죽을 정도면 약하고 힘없는 쓰레기들일 뿐이다. 좌천기는 그들이 아
깝다는 생각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어서 놈들을 잡아 오거라. 인세의 지옥을 보여 줄 테니."
그의 입가에 잔인한 웃음이 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