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 현천무관
종남파는 섬서성 서안 남부 종남산에 자리 잡은 문파로 한때 구파일방과 위세를 나란히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세가 줄어 대부분 선도에 힘쓰고 무예를 익히는 도관은 몇 남지 않았다.
하지만 맥맥히 이어온 절기는 여전하여 종남을 대표하는 천하삼십육검법을 비롯해 현천건강기, 유운비수, 쾌장권구식은 널리 알려진 만큼 위력을 발휘했다.
현천무관은 종남 삼검이 산을 내려와 종남을 알리고, 종남파의 살림을 돕고자 세운 무관으로 서안 남쪽 장평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용형호는 장평현에 들어서자 시전에서 차와 만두를 사 들고 무관을 찾았다. 시전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언덕 아래 자리 잡은 현천 무관은 입구에서부터 앳된 기합소리가 울려 나왔다.
용형호가 무관 안으로 들어가자 제자가 보고 달려와 맞았다.
"막내 사숙 오셨습니까?"
"길석이로구나, 잘 지냈느냐?"
"이곳이야 늘 그렇지요, 사숙께서도 평안하셨습니까?"
"나야 집에서 지내는데 할 일이 있겠느냐, 너희들 실력은 늘었는지 모르겠구나?"
"헤헤~ 그만 그만 하지요 뭐, 그렇게 빨리 늘겠습니까? 사숙께서 산을 내려오시고 일 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모두 계시느냐?"
"예, 모두 계십니다. 아침 수련을 마쳤으니 들어가셔서 함께 식사하시지요."
"그러자꾸나. 만두 조금 사왔으니 식사할 때 나눠주거라."
"시전 뚱보에게서 사셨지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리지 못해 생각났었는데 감사합니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걸음을 옮기는 동안 벌써 씻고 온 무관 제자들이 용형호를 보고 인사를 하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 한쪽 관주의 자리에 종남 삼검이 앉아있다 들어오는 용형호를 보며 놀라 일어나며 반겼다.
"사제, 이렇게 일찍 무슨 일인가?"
"사형들이 보고 싶어 달려왔습니다."
"하하 그럴 리가 없지만 아무튼 반갑네 이리 앉게."
"봄에 사부님의 허락이 있었으니 이제 벌써 일 년이 지난 건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무척 오랜 것 같군."
"소제도 늘 함께하다 홀로 수련하려니 사형들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표정을 보니 거짓이라 쓰여있군, 놀러 다니기 바빴을 터인데 사형 생각이 날 리가 없지 않는가?"
"어디서 그런 헛소문을 들으셨는지 몰라도 정말 열심히 수련했습니다."
"대형, 조금 있다가 검을 대보면 알 일 아니겠습니까, 제대로 하지 못하면 혼을 내겠습니다."
"둘째 형, 그리 장담하시다 큰코다치십니다. 이 막내가 그리 신용이 없는 사람인 줄 오랜만에 오니 알겠습니다."
"하하, 막내 반가워하는 소리이니 어서 먹고 가서 대보세나."
"그렇게 말씀하시는 셋째 형이 더 얄밉습니다. 소제가 특별히 셋째 형은 봐드리지 않겠습니다."
"뭐라, 봐준다고, 이거 밥이 안 넘어가네, 지금 나갈까나...."
"그만하고 드시게, 표국은 어떤가?"
"작은 표국이 별일 있겠습니까, 요즘 진평에 새 바람이 불어 일이 많기는 합니다."
"막내, 그러고 보니 소문을 들은 것도 같으이, 허 공자라 했던가..., 시전 상인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네."
"사형, 그분이 맞습니다. 지금은 소제도 그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막내, 그게 무슨 말인가, 막내는 표국을 이어야 하지 않는가?"
"아버님의 허락도 얻었습니다. 표국이야 규모가 작고 아버님도 아직 건강하셔서 별문제는 없습니다."
"그래도 진평 표국하면 이곳 섬서에서는 알아주는 표국이 아닌가, 그곳이 작다 할 정도로 그 허 공자가 운영하는 곳이 큰가?"
"이제 시작하여 그리 크다 할 수는 없지만 준비하시는 것으로 봐서는 천하를 아우를 만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진평에서는 누구도 부정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막내, 촌에서야 조금만 크게 시작해도 그리 보이는 것이 당연하지만 천하라니 그것은 아닌 것 같네."
"셋째 사형, 소제의 생각도 사형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 년도 안 되는 사이 거두어들인 약재만 해도 수백만 냥을 상회합니다. 물론 지금도 계속 거두어들이고 있고 더구나 그 많은 물량을 모두 들어오는 대로 그 자리에서 결제를 해줍니다. 소제도 다는 알지 못하지만 사람의 크기가 다릅니다."
"허어~, 그래 막내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곁에서 호위를 맡고 있습니다."
"젊은 공자라 들었는데 그리 재산이 많으니 호위가 필요하겠지....."
용형호는 허인회의 무공이 한참 더 높아 자신의 호위가 유명무실함을 알지만 차마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다, 더구나 허인회가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것을 서문자숙에게 들은 바가 있으니 함부로 밝히기도 난감한 일이었다.
용형호는 두고 보면 알게 될 일이니 미리 말해 불신을 살 필요는 없다 생각하고, 앞으로 무관의 제자들이 호위로 나가게 되면 절로 알 것이기에 몇 명이나 데려갈 수준이 되는지가 더 궁금했다
용형호가 이미 알고 있는 제자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모두 알기는 어려웠기에 식사를 하는 제자들을 둘러보며 그나마 제자들이 많이 는 것이 다행이라 여겼다.
"그래 사제가 이곳을 찾은 것이 호위로 쓸 아이들이 필요해서인가?"
"역시 대형이십니다. 단번에 그리 말씀하시니 소제가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사람이 많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그래도 종남의 이름을 지킬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수준을 말하는 것인가?"
"일전에 소제가 진평에 친우가 있다 하지 않았습니까, 사형들도 아시겠지만 천하 전장의 소장주 서문자숙이 혹시 기억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하네, 사제가 늘 함께 놀러 다니는 친우라 하지 않았는가?"
"하하~ 사형은 나쁜 것만 기억하시고 왜 좋은 것은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서문자숙은 소년 급제한 진사입니다. 은세선원의 자은 이초량 선생님의 수제자이기도 하고요."
"그런 말도 했었는가? 사제는 놀러 다닌 이야기만 한 걸로 기억하고 있다 보니 그러려니 했네."
"서문자숙도 허 공자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자숙이 말하기를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만,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데려오라 했습니다. 소제야 사형들을 믿으니 사형들께서 내주시는 대로 돌아가면 되지만 한번은 보고도 싶습니다."
"호위든 보표든 문제 될 것은 없네만, 얼마나 준다 하던가?"
"조금 주면 안 보실 겁니까?"
"사제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고 산문에도 보내야 하지 않는가, 잘 알면서 아이들을 그냥 데려가려 했는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우가 아무리 놀러 다녀도 경우를 잃지는 않았습니다. 사형들께서 판단하시기에 이류는 열 냥, 삼류는 다섯 냥을 준다 했습니다."
"은자를 말하는 겐가?"
"아무려면 동전을 말하겠습니까?"
"정말 소문이 맞는 모양이로군, 그 정도를 내준다는 것은 아무나 받지 않겠다는 것이로군."
"대형 말씀이 옳습니다. 다른 곳에서 주는 값의 네댓 배를 준다 하니 실력을 보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막내, 혹시 위험하거나 하지는 않은 일인가?"
"대형, 소제를 믿으시지요. 대부분 창고를 지키게 될 것입니다. 맡은 시간을 제외하면 마음껏 수련을 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창고에는 무엇이 들었는가?"
"들고가지도 못할 약재입니다, 그렇다고 지키지 않으면 만일의 경우 화재의 위험도 있고 하니 지키려 하는 것입니다."
"가서 직접 고르시게, 종남 무인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소리는 죽어도 듣기 싫으니 알아서 하시게."
"걱정 마십시오, 소제도 누구보다 종남을 아낍니다."
"모두 식사를 마치는 대로 수련장으로 모이거라 예외는 없다."
"예, 사부님."
수련장에 무관의 제자들이 모두 모이자 제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수군거렸다.
"막내 사숙께서 호위를 뽑으러 오셨다는데 이번에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까 사부님들과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니 많이 뽑으실 것 같았어, 그동안 한 것을 제대로 보여 드리면 되겠지."
"자신이 있는가 보네."
"최선을 다해야지, 그렇지 않아도 무관 밥만 축내는 것 같아 죄송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나."
용형호는 제자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보며 모두 의지가 있어 보이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늘 수련만 하시는 사형들과 대보려면 몸을 먼저 풀어야겠습니다. 그 정도는 봐주시겠지요?"
"하하, 그렇게 하게 얼마나 늘었기에 큰소리치는지도 보아야 하니....."
용형호는 자세를 잡고 현천건강기로 몸을 추스르고서 천하삼십육검의 기수식인 천하도도부터 펼쳐나갔다.
천하성산, 천하도사, 천하성진, 천하도쾌 하며 초식을 외치고 풀어나가는데 검에서 피어나는 예기가 심상치 않았다.
종남 삼검의 놀라움이 매우 컸는지 평소 말이 많던 셋째 감원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용형호를 지켜봤다. 천하수조, 천하비사, 천하 비탄에 이르자 눈은 더욱 커지며 수련장은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용형호가 삼십육검을 모두 마치고 검을 갈무리 하고서 쾌장권구식을 펼쳐 보였다. 종남 삼검이 알던 막내 사제 용형호가 맞는가 싶으리 만치 변화한 모습에 모두가 감탄을 터트렸고, 모든 초식이 끝나자 수련장이 떠나가라 박수 소리가 요란했다.
종남 삼검의 대형인 관주 관위는 벌떡 일어나 용형호에게 다가가 물었다. 미쳐 기다릴 시간조차 아깝다 생각했기에 몸이 먼저 알아서 움직였다. 종남 삼검의 둘째 종철과 셋째 감원도 용형호를 둘러싸고 물어 댔다.
"어찌 된 일인가?"
"작은 기연도 있었고 폐관 수련도 했습니다."
"그랬군 그러니 이렇게 일취월장하지 않았겠나, 괄목상대라더니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것이었나 보네."
"비무는 되었으니 우선 아이들을 살피시게 물어볼 말이 너무 많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모두들 잘 보았느냐?"
"예, 사부님."
"보고 느낀 것이 있으면 되었다. 앞으로 배전의 노력을 경주하여 용 사숙을 본받도록 하거라. 용 사숙께서 너희들을 위해 오셨으니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예, 사부님."
"따로 보고 싶은 것이 있는가?"
"평소대로 보면 됩니다."
"그렇게 하세."
현천무관의 제자들은 용형호의 무공을 보고 그 높은 경지에 감탄했지만, 그럴수록 용형호를 따라가면 자신들도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갖게 되자, 평소보다 힘이 많이 들어가 흐트러진 모습도 많이 나왔지만, 용형호는 그동안 무관 제자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막내, 아이들이 평소와 달리 힘이 많이 들어간 듯 실수가 많았네. 몇 명이나 데려가려는가?"
"사형들, 모두 데리고 가고 싶지만 무관은 본산을 지키기도 해야 하니 절반만 데리고 가겠습니다. 소제의 생각으로 진평이 그리 멀지 않으니 육 개월을 주기로 교대했으면 합니다."
"너무 많은 것 아닌가?"
"모두 다 데려간다 해도 많지 않습니다. 하나 더 부탁드리자면 둘째 사형과 셋째 사형이 교대로 제자들을 이끄시는 것은 어떠신지 여쭙고 싶습니다."
잠시 생각한 무관주 관위가 두 사람을 보자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아이들의 안전도 생각하고 가르쳐야 하니 그렇게 하세, 우리는 비용을 받지 않겠네."
"하하하, 무슨 말씀이시오 모셔가기만 하면 빈객으로 모신다 약조가 있었소이다, 허락이 없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 아우의 체면이 크게 살아나게 생겼소이다. 자숙이라면 모르기는 해도 은자 백 냥은 내놓을 것이니 그런 말씀은 꺼낼 생각도 마시오."
종남 삼검은 모두 놀랐지만 그 정도의 대접에 맞게 열심히 노력하면 될 일이었기에 더는 말하지 않았다.
용형호가 전표 다발을 대형 관위에게 내주며 말했다.
"자숙이 총관을 맡고 있습니다. 종남에 드리는 예물이라 했으니 거절하지 마시고 받아주십시오."
전표 다발을 받아 살펴보니 천하 전장이 발행한 백 냥 전표 열 장이었다.
"너무 많지 않은가?"
"대형께서 제자들을 절반이나 내주시고 이렇게 사형까지 붙여 주셨는데 별거 아니지요. 가보시면 놀랄 일도 많으실 것이지만 결코 후회하는 일은 없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