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에는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안보신 분들은 나중에 읽어 주세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국의 록그룹 ‘퀸’의 리드보컬이었던 프레디 머큐리의 젊은 시절, 밴드에 합류해 기념비적인 85년 런던 웸블리구장에서의 ‘Live Aid’ 공연을 끝으로 ‘후천성면역결핍증’, 이른바 에이즈(Aids)로 사망한 1991년까지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최근에 ‘휘트니 휴스톤’, ‘맘마미아2’, ‘스타 이즈 본’ 등 여러 음악영화를 봤지만 가장 감동적이었는데, 음악과 삶, 노래와 개인의 비극이 절묘하게 어울린 것에 있지 않나 합니다.
영화는 시작하면서 1985년 웸블리구장에서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실황 직전, 프레드 머큐리가 가볍게 몸을 푸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 공항에서 화물운반 노동자로 살아가는 프레디를 비춥니다. 아프리카의 영국식민지였던 탄자니아 자치령인 잔지바르의 인도계 부모 밑에서 자라다가 봄베이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청소년기에 영국으로 이주합니다. 영화에서는 영국인들이 비하의 의미로 ‘파키’로 부르는 등 인도-파키스탄 출신으로 나오지만, 그의 아버지는 인도 국적을 가졌으며 8세기에 무슬림들에게 쫓겨 인도로 망명한 페르시아인 조로아스터교 교도의 후손인데 이것은 ‘보헤미안 랩소디’의 중요 배경으로 나옵니다. 이주노동자, 툭 튀어나온 앞니 등으로 영국 주류사회에 낄 수 없었던 프레디의 미래는 암울 자체였는데, 프레디의 비극은 미래 아닌 자신의 성 정체성에 있었죠.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안 순간부터 '전설'로 남기 원했던 '퀸'의 프레디 머큐리. 하늘은 한 사람에게 두가지 재능을 주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초반 프레디의 미래를 알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합니다. 프레디의 아버지는 항상 “좋은 생각을 하고, 좋은 행동을 하고 좋은 말을 해야 바른 인간이 된다”고 합니다. 프레디는 아버지에게 대들면서 따집니다. “그러는 아버지는 무엇을 이뤘나요?” 미래없이 방황하는 아들, 아버지는 아들에게 바르게 살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지만, 대개 아들이 그렇듯이 반항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른 하나는 밤마다 찾아가는 클럽에서 노래부르는 3류 밴드, 거기서 평생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던 여성 메리를 만납니다. 고급백화점 여성복 코너에서 일하는 그녀를 만나러 갔다가 여성복에 관심을 보이고 마치 ‘드랙퀸’처럼 화장까지 합니다. 그렇게 프레디는 자신의 미래를 찾아갑니다.
클럽 밴드에서 리드 보컬이 떠나자 프레디는 뛰어난 가창력으로 리드 보컬이 되고 음악적 재능을 꽃피웁니다. 밴드의 이름도 <퀸 Queen>으로 바꿉니다. ‘퀸’이라는 이름은 영국의 여왕을 의미하지 않느냐는 말이 많았지만, 프레디의 성향이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1975년에는 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 ‘A Night At The Opera’를 발표, ‘퀸’만의 파격적이고 독특한 구성을 가감 없이 담아낸 첫 싱글 ‘Bohemian Rhapsody’를 선보이며 그 해에 영국 내 9주 연속 1위라는 신기록을 달성합니다. 불후의 명곡 보헤미안 랩소디는 장장 6분에 걸친 곡, 당시 제작자는 라디오에 적합하지 않다며 3분으로 줄이라고 요구하는 등 갈등을 겪지만, 노래의 길이가 아닌 내용이 더 문제였지 않았나 합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당시로서도 파격이었습니다. 락에 오페라를 접합시키고, 종교적 용어들이 튀어 나오고, 겉으로는 쾌활하지만 내면에는 불안함과 외로움으로 가득찬 한 남자의 절규 그 자체였죠.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를 보면 프레디와 아버지의 갈등, 단순한 부자지간의 세대차나 성격 차이가 아닌 성 정체성에서 비롯된 갈등임을 알 수 있습니다.
Mama just killed a man 엄마, 사람을 죽였어요
Put a gun against his head 그의 머리를 향해 총을 들이대고
Pulled my trigger 방아쇠를 당겼어요
Now he`s dead! 그는 죽었어요!
Mama... Life had just begun 엄마... 삶이 이제야 시작됐었는데
But now I`ve gone and thrown it all away 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내던져버렸어요
Mama... wooo 엄마...
Didn`t mean to make you cry 당신을 울리고 싶었던 게 아니었는데
If I`m not back again this time tomorrow 내가 내일 이 시간에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Carry on carry on 살아가세요 살아가세요
As if nothing really matters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출처]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의 가사 해석: 도전과 자유에 관한 이야기|작성자 지금 여기
‘보헤미안 랩소디’는 호모 섹슈얼, 흔히 게이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밝힌 노래, 이후에 나오는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 대부분은 정체성과 관련이 많은 것들이죠. 프레디가 활동한 70년대 초반부터 사망한 91년까지 동성애는 금기였고, 에이즈는 천형(天刑)이었습니다. 그룹 퀸의 리드 보컬로 최고의 인기와 절정의 가창력, 엄청난 무대 매너, 프레디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지만, 단 하나 사랑만큼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이죠. 인기가 올라가고 예술성이 깊어질수록 그의 내면은 갈등이 심해집니다. 결국 프레디는 ‘퀸’에 집중하지 못하고 약물에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멤버들과도 멀어집니다. 젊은 시절 사랑했던 연인이자 음악적 지지자였던 메이 마저 떠나자 홀로 남은 그에게는 약물중독, 에이즈에 걸려 무력해지는 몸만 남았을 뿐이죠.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룹 '퀸' 아닌 프레디 머큐리 개인에 대한 잘 만든 뮤직비디오 같은 영화
자신의 삶이 얼마 안남고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1985년 아프리카의 기아를 돕자는 지상최대의 공연 소식이 들려옵니다.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공연임을 알았는지 프레디는 멤버들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며 공연을 같이 하고 싶다는 뜻을 보입니다. 멤버들은 공연이 얼마 안남은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프레디를 다시 받아들여 함께 무대에 오릅니다. 1985년 런던과 필라델피아에서 동시에 열리고 위성중계로 전 세계에 방영된 ‘Live Aid’ 웸블리공연에서 프레디는 촛불이 꺼지기 전 마지막으로 불타오르듯이(回光返照) 자신의 모든 역량을 끌어모아 최고의 무대를 만듭니다.
‘Bohemian Rhapsody’로 수많은 관중들을 열광시킨 퀸은 ‘Radio GaGa’에서 리드 싱어 프레디 머큐리가 보여준 익살과 무대매너로 웸블리 스타디움에 운집한 관중들의 박수를 이끌어냅니다. 공연은 ‘We Will Rock You’, ‘We are the Champions’으로 이어지고, 훤한 대낮 공연임에도 ‘퀸’은 관중을 휘어잡았고, 그들의 공연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공연의 하이라이트로 꼽혔습니다. ‘Hammer to Fall’ 공연 도중 보여준 카메라맨과의 춤을 포함해 퀸의 퍼포먼스는 당대 아티스트 중 손에 꼽히던 그들의 열정적인 무대매너를 대중에 각인시키는 한 계기가 되었죠. 후에 엘튼 존과 밥 겔도프는 "그들이 쇼를 훔쳤다(They stole the show)"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위키백과에서 인용)
1991년 11월 프레디는 자신이 에이즈 투병중이라는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였고, 에이즈와의 투쟁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한지 하루 뒤인 11월 24일 자신의 집에서 폐렴 등의 합병증으로 45세 나이에 숨을 거둡니다. 1992년 4월 20일 부활절. 그를 추모하기 위한 거대한 공연이 영국 런던 웸블리 경기장에서 거행되었으며 ‘퀸’의 나머지 멤버들과 엘튼 존, 데이비드 보위, 조지 마이클, 익스트림, 건즈 앤 로지스, 메탈리카, 밥 겔도프, 로버트 플랜트 등 최정상급 음악가들이 대거 참여했고 이 콘서트는 전세계 TV로 생중계되어 약 10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시청했다고 합니다.
프레디는 ‘퀸’ 활동을 하면서 종종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스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전설이 될 것이다”
자신이 말대로 전설이 된 남자, 어쩌면 프레디는 시대가 용납하지 않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함을 알고, 그것을 노래로 예술로 승화시키다 사그러진 불꽃이 아니었는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프레디 머큐리의 노래 중 가장 야하다는 ‘Don’t stop me now’가 흘러 나옵니다. 노래에 몰입했는지 젊은 시절 ‘퀸’의 모습과 노래하는 프레디 머큐리에 빠져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설 생각을 못합니다. ‘Somebody to love’, ‘Love of my life’ 등 사랑을 많이 노래했지만 공개적으로 사랑할 수도 사랑을 받을 수도 없었던 불우한(85년 이후 짐 허튼이라는 연인을 찾았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끝은 결국 ‘스타 아닌 전설’이었습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어쩌면 영화라기 보다는 ‘퀸’ 아닌 프레디 머큐리, 프레디 개인의 절망과 비애, 그리고 불타는 예술혼과 사랑을 다룬 잘 만든 한편의 뮤직비디오 같지만, 그의 음악적 재능을 보는 것 아닌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전설'로 남은 1985년 런던 웸블리구장에서의 'Live Aid' 공연 실황
* 프레디 머큐리가 ‘퀸’ 멤버들을 데리고 ‘보헤미안 랩소디’를 녹음했던 곳은 대도시의 최신식 첨단 녹음 스튜디어 아닌 웨일스의 록필드팜과 리지팜이라는 시골농장 두 곳에서 녹음했더군요. 전원 풍경의 시골농장에서 수없이 많은 녹음을 하고 그것들을 다 이어붙여서(겹녹음) 장장 6분에 걸친 곡을 완성하기 위해 마감시한을 훨씬 더 연장했다고 합니다. 시골의 한가롭고 평화로운 곳에서 격렬한 ‘보헤미안 랩소디’의 완성, 프레디의 비범함과 전원 풍경의 아름다움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언젠가 영국을 가게 되면 여전히 녹음 스튜디오로 활용되고 있는 록필드팜과 리지팜을 찾아가고 싶네요.
* ‘스타 이즈 본’에서 뮤지션 뿐 아니라 연기로도 재능을 보인 레이디 가가는 함께 녹음 작업을 했던 음반 제작자 롭 후사리가 그녀의 보컬 스타일이 프레디 머큐리와 비슷한 것을 보고 1984년 ‘퀸’의 싱글 "라디오 가가"를 따서 지은 가가 (Gaga)라는 예명을 지어줬다고 합니다.
* 프레디 머큐리가 자신의 성 정체성으로 괴로워 하면서 마약에 찌들은 1983년 햇살 찬란한 북부 이탈리아 크레마, 두 젊은 남자는 자연의 아름다움 속 우정을 나누고 애정을 키워가면서 그것을 조심스레 확인합니다. 애정을 확인한 두 사람, 지나간 시간이 낭비였다며 남은 시간 불타는 사랑(?)을 나누게 되는, 두 남자 얘기를 다룬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떠오릅니다. 만약 프레디 머큐리가 음악적 재능 보다 평범한, 보통의 사랑을 원한 남자였다면... 하늘은 그에게 엄청난 음악적 재능과 함께 남들과는 다른 성향을 주었으니 이를 조물주의 장난이라고 해야할지, 가혹한 운명이라고 해야할지...
*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등의 기아를 해결하기 위한 1985년 웸블리구장에서의 ‘라이브 에이드’ 공연은 전세계에 실황중계 됐고, 다른 한편 미국에서는 해리 베라폰테가 주도하고 라이오넬 리치와 퀸시 존스가 나선 그 유명한 ‘We are the World’ 기금마련 음반작업이 진행됩니다. 이 작업에 마이클 잭슨이 참가하면서 범세계적인 프로젝트가 됩니다. 1985년, 인공위성과 방송장비 등으로 세계는 그야말로 하나가 되는 ‘글로벌’ 시대에 진입하게 됩니다. 다만 아프리카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호기금 마련 공연이나 음반작업이 유효한가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구호기금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원주민에게 가는 것이 아닌 오히려 독재정권이 독점, 그들의 권력유지에 도움이 됐다는 비판이 바로 그것이죠,
진행 낙화 포함 총 16분이 관람. 한분이 참가번호를 연속으로 적어 한 분 찾기 위해 한참이나 두리번 거렸다는...
영화 끝나고 감동을 피맛골 김치찌개집에서... 라오님이 소개한 곳인데 값도 싸고 고기도 푸짐~~
왼쪽은 아리님과 동행, 오른쪽 앞은 꽃편지님과 동행분
프레디 머큐리를 추모하며~~ 왼쪽부터 라오님 내일님 이숲님 쿨밤님 수화님 시카고님
첫댓글 미국보다 먼저 개봉했죠
거기 학생이 저보고 봤냐고 물어보던데 아직이네요 ㅠㅜ
낙화님의 해박하신영화평 잘보았어요 라오님이 소개해주신 김치찌게도 일행분들과 맛있게먹고 즐거웠어요 다음번 영화모임을 기대할께요~~^^
아직도 여운이 남아서 음악을 찾아듣고 있었어요.
음향 좋은 영화관에서 공연실황만 스탠딩으로 두시간 내내 보고 싶네요.
글 읽고 프레디 머큐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뒷풀이 김치찌게집도 잘 기억해 두었구요.
즐거운 시간 주셔서 감사합니다~~ ^^
"Another one bites the dust"
퀸 최고의 힛트 싱글이 안나오니 무효 ~~~~ ㅠ..ㅠ
영화 내내 22곡이 나옵니다~ 뮤직비디오 보는 줄~~ 그래서 유효^^
후린님도 그 곡 좋아하시는 구나요~~ 베이스 음이 둥 둥 둥 둥두둥두둥,,, 계속 반주되는 곡,유난히 저음을 좋아하는 저도 진짜 좋아하는 곡인데 아쉽게도 그 곡이 안나오더라는,, 그 곡은 베이스 주자인 디콘이 작곡했다고 들었어요~ 멤버가 각각 작곡실력도 갖추고 히트곡도 있는 락그롭 퀸!! 음악만 들을 땐 몰랐던 프레디 머큐리의 화려한 무대 펴포먼스를 알게 된 영화였어요^^
@이숲 4명 멤버중에서 가장 존재감 없는 베이시스트 존 디콘 작곡이죠.
그래서 초반부터 계속해서 베이스 연주가 쭈욱~~~ 깔리도록 만든것 같아요.
이곡이 인기도 최고였지만 정말 멋진 명곡입니다.
@이숲 이 곡이 대한민국에서 한 때 금지곡... 이 곡은 영국 심장 재단과 미국 소생술 협회가 심폐소생술에 적합한 곡으로 선정됐다고 하네요. 왜냐하면 Another One Bite The Dust의 박자는 분당 110비트로 , 심폐소생술 과정에서 1분당 100~120 번의 흉부압박을 실시해야 되는 수칙과 부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영화 초반 퀸 멤버들이 모일 때 이 곡에 대한 배경이 깔리는 것 같앗는데... 아닌가요? 다시 봐야겠네요^^
@낙화 라이브 에이드 공연에선 빠졌지만, 영화 속에서는 나왔던 것 같아요~ 영화 ost 수록곡에도 있네요~^^
재밌엇다면서요? 흑훅...
다시 한번 영화의 감동을 느낄수있는 놀랍구 감동적인 후기입니다
좋은영화를 함께해서 더욱 좋았던거 같습니다
김치찌개 뒤풀이도 잊지못할꺼 같애요
너무 맛있는 저녁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만나요~~
이동네도 마찬가지로 비주류집단 출신이 출세할 기회는 대부분 연예계 아니면 스포츠계로 진출하는거지요.
그래도 우리는 옛날에 고등고시라도 있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