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식품에 대한 과도한 환상
자연이 제공해 주는 ‘천연’ 식품에 대한 관심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모든 먹거리를 자급자족하던 농경 시대의 전통에 대한 향수(鄕愁)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트의 진열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 화려한 가공식품이 오히려 소비자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고도로 발달한 산업화 사회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 안전한 천연식품은 환상
자연 생태계를 구성하는 생물들은 자신의 몸체를 만들고, 생리작용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고, 후손에게 유전정보를 넘겨주고, 용도를 다한 화학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하기 위해서 필요한 다양한 화학물질을 생산해야만 한다. 혹은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포식자를 퇴치하기 위한 독성 화학물질을 만들기도 한다. 생물이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화학물질을 합성하는 일은 화학적으로 흉내 내기도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하다. 그래서 생명체를 고도로 복잡하고 정교한 화학공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생물들이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화학물질을 스스로 합성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수많은 효소와 에너지가 필요한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결국 자연 생태계는 다른 생물들이 만들어놓은 화학물질을 ‘식량’으로 사용해 자신에게 필요한 화학물질을 합성함으로써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하는 절묘한 기술을 개발했다. 오랜 세월 동안의 ‘진화’를 통해서 그런 생존 기술을 획득한 생물만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가 간절하게 원하는 ‘천연식품’은 다른 생물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어렵게 생산해놓은 ‘천연물질’이다. 우리가 3대영양소라고 부르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이 모두 그렇다. 건강에 꼭 필요한 것으로 알려진 비타민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서 섭취한 식품을 부분적으로 분해해서 우리 스스로의 생존에 필요한 화학물질을 재합성한다.
자연 생태계에서 우리의 생존은 우리가 식량 또는 먹잇감으로 선택한 다른 생물들의 존재에 의해서 보장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어떤 생물도 이유 없이 다른 생물의 건강을 위해 애써 화학물질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
결국 자연에서 생산되는 천연식품이 우리에게 안전하고 좋은 것이라는 기대는 허무맹랑한 것일 수밖에 없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태계에서 다른 생물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천연물질을 애써 만들어주는 너그러움은 비현실적인 사치일 뿐이다.
▣ 치열한 경쟁의 현장
오히려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남으려면 포식자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물론 사자와 호랑이 같은 맹수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물리적인 방어와 공격 능력이 부족한 독사의 경우에는 맹독성의 독액을 활용한다.
물리적인 방어 능력을 충분히 갖출 수 없는 식물의 경우에는 사정이 절박하다. 맹독성의 화학무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아름답게 보이는 해바라기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매우 효율적인 제초제 기능을 가진 살생물질(bio-cide)을 활용한다. 인간이라고 해서 그런 독성물질의 공격 대상에서 제외되지는 않는다. 약육강식(弱肉强食)과 적자생존(適者生存)을 기본으로 하는 자연 생태계에서는 그런 가공할 위력을 가진 화학무기가 일상화되어 있다.
결국 자연에서 우리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천연식품’을 찾아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인간이 살지 않는 무인도에서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를 찾아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등산학교와 우주인 교육에서 실시하는 ‘생존훈련’은 사실 자연에서 안전하고 유용한 천연 먹거리를 찾아내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 믿을 것은 우리 자신뿐
인류는 오랜 문화적 경험을 통해서 독성이 강한 생물을 가려내거나, 요리 과정에서 독(毒)을 제거하는 지혜를 터득했다. 독버섯을 구별하는 능력과 감자의 일종인 카사바에서 맹독성의 사이안산 성분을 제거하는 요리법이 그런 예다. 야생의 식물과 동물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살생물질의 생산에 필요한 유전자를 억지로 퇴화시키기도 한다.
1만 2,000년 전에 인류가 농경목축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도 인공적인 잡종 교배를 통해서 식물과 동물의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육종(育種)’ 기술을 우연하게 개발하게 된 덕분이었다. 잉카인들이 육종을 이용해 맹독성 화학무기를 쓰던 가자를 무장해제시켜 버렸다. 오늘날 감자가 전 세계의 구황 작물로 널리 재배되고 있는 것도 그런 육종 기술 덕분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해준 육종 기술이 감자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된다. 실제로 곰팡이에 대한 방어능력을 잃어버린 감자는 인간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19세기 중엽 아일랜드의 감자가 모두 곰팡이에 의한 감자잎마름병에 걸리게 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아일랜드 주민들은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