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age to Catalonia. pp.197-200
APPENDIX I
이전 초판의 5장은 이 판의 4장과 5장 사이에 위치한다.
처음에 나는 전쟁의 정치적 측면을 무시하였는데, 그것이 내 주의를 끌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당신이 정당정치의 공포에 관하여 관심이 없다면 그냥 넘어가기 바란다. 나는 정확하게 그 목적을 위해 별도의 장에서 이 서사의 정치적 부분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동시에 순전히 군사적 시각에서 스페인 내전에 관해 기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전쟁은 모든 면에서 정치적 전쟁이었다. 어쨌든 첫 해 동안의 모든 사건은 정부의 이면에서 계속되는 정당간의 투쟁을 어느 정도 파악하지 않는 한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스페인에 왔을 때, 그리고 그 후로도 종종 나는 정치적 상황에 관심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인식하지도 못하였다. 나는 전쟁이 계속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떤 종류의 전쟁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없었다. 당신이 내게 민병대에 입대한 이유에 대해 물어 본다면, 나는 ‘파시즘에 대항해 싸우려고’라고 대답할 것이며, 당신이 내게 무엇을 위해 싸웠냐고 뭇는다면, 나는 ‘통상적인 예의common decency를 위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히틀러를 위해 일하는 블림프 대령Colonel Blimp; Colonel Blimp is a British cartoon character by cartoonist David Low, first drawn for Lord Beaverbrook's London Evening Standard in April 1934.[1] Blimp is pompous, irascible, jingoistic, and stereotypically British, identifiable by his walrus moustache and the interjection "Gad, Sir!"의 군대에 의해 광적으로 발발하는 전쟁에 대항하여 문명을 지킨다는 뉴스 크로니클과 뉴 스테이트맨의 관점을 수용한다. 바르셀로나의 혁명적 분위기는 나를 깊이 매료시켰지만, 나는 그것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려하지 않았다. 정치적 정당들과 노동조합들의 만화경 같은 그들의 지루한 이름들은 -PSUC, POUM, FAI, CNT, UGT, JCI, JSU, AIT- 나를 그저 화나게 할 뿐이었다. 처음 볼 때 마치 스페인이 머리글자의 명판 때문에 고통 받는 것 같았다. 나는 POUM으로 불리는 곳에서 복무하였지만 (그 까닭은 다른 무엇보다 우연히 ILP 증명서를 가지고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나는 POUM 민병대에 입대하였을 뿐이었다.) 정파 사이의 심각한 차이를 깨닫지 못하였다. 포체로 산Monte Pocero에서 그들이 우리의 왼쪽을 가리키며 ‘저들은 사회주의자들이야’ (PSUC라는 뜻이었다)라고 말하였을 때 나는 혼란스러워서 말하였다. ‘우리 모두 사회주의자들 아니오?’ 나는 그들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이 정당으로 나누어져야 한다는 것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였으며 나의 태도는 항상 ‘왜 우리는 이런 정치적 헛소리를 때려 치고 같이 전쟁을 할 수 없는 것이오?’였다. 그것은 물론 영국의 신문들이 크게는 투쟁의 실질적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신중하게 유포된 올바른 ‘반파시스트적’ 태도였다. 하지만 스페인에서, 특히 카탈로니아에서 그것은 아무도 할 수 없거나 무기한정으로 유지할 수 없는 태도였다. 하지만 모두 마지못해 이르든 늦든 진영을 선택해야 했다. 누군가가 정당과 그들의 대립하는 ‘노선’에 신경 쓰지 않더라도 그의 운명이 관여되어 있다는 것은 너무나 뻔하였다. 민병대원으로서의 그는 프랑코에 대항하는 군인이었지만, 그는 또한 두 정치적 이론 사이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투쟁 속의 졸pawn이기도 했다. 내가 산기슭에서 땔 나무를 찾으면서 이 전쟁이 진짜 전쟁인지 아니면 뉴스 크로니클에서 지어낸 것인지 생각할 때, 바르셀로나 봉기 때 공산주의자들의 기관총을 피할 때, 그리고 마침내 내가 경찰을 한 발 뒤로 하고the police one jump behind me 스페인에서 빠져나왔을 때 - 그 모든 것들이 내가 PSUC가 아닌 POUM민병대에서 복무했기 때문에 특별한 방식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그래서 머리글자의 두 조합의 차이가 이렇게 컸던 것이다So great is the difference between two sets of initials!
정부측의 조정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전쟁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7월 18일에 전투가 발발하였을 때 아마도 유럽의 모든 반 파시스트세력들은 희망이 서린 짜릿한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마침내 그곳에서 파시즘에 맞서는 민주주의가 일어섰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소위 민주국가들은 매 단계마다 파시즘에 굴복하였다. 일본은 만주리아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허용되었다. 히틀러는 권력을 잡고 모든 종류의 그의 정치적 반대자들을 학살하였다. 무솔리니는 53개국 (나는 그것이 53개국이라 생각한다)이 경건한 소리들을 지껄이게 하는 동안 아비시니아인들을 폭격하였다Mussolini had bombed the Abyssinians while fifty-three nations (I think it was fifty-three) made pious noise 'off. 하지만 프랑코가 온건한 좌파 정부를 뒤엎으려 할 때 스페인 인민들은 모든 예상과는 반대로 그에 대항하여 봉기하였다. 그것은- 그것이 가능해 보였다-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견해에서 벗어난 몇 가지 요점이 있다. 우선 먼저, 프랑코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비교하여 엄격하지 않았다. 그의 봉기는 귀족과 교회가 뒤를 봐주는 군사반란이었고, 대부분, 특히 초기에는 파시즘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봉건제를 회복하려는 시도였었다. 그것은 프랑코가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류의 자유주의적 유산계급- 파시즘이 더 근대적인 형태로 나타났을 때 파시즘의 지지자인 바로 그 사람들을 적으로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페인의 노동계급은 영국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았으며, 민주주의나 현상유지status quo의 이름으로 프랑코에 저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저항은 - 거의 다음과 같은 것으로 구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one might almost say it consisted of - 명백하게 혁명의 촉발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토지는 농부들이 점유하고 있었다. 수많은 공장과 대부분의 수송수단은 노동조합이 점유하고 있었다. 교회는 피폐해졌고 사제들은 쫓겨나거나 살해당했다. 가톨릭 성직자들의 환호 속에서 더 데일리 메일은 프랑코를 사악한 ‘빨갱이’ 무리들로부터 그의 나라를 지키는 애국자로 표현할 수 있었다. 전쟁의 처음 몇 달 동안, 프랑코의 진정한 적은 정부라기보다는 오히려 노동조합이었다. 봉기가 일어나자마자 조직화된 도시 노동자들은 총파업을 선언하였고, 투쟁 후에 공공무기고에 요구하여 무장 하였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다소간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면 프랑코는 결코 저항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이에 관해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최소한 그것을 생각해볼 이유는 있다. 정부는 과거 오랫동안 예견되었던 봉기를 방지하려는 시도를 거의, 또는 전혀 하지 않았으며, 그 문제가 시작되었을 때 그 태도는 나약하고 머뭇거리는 것이어서, 실제로 하루 동안 세 명의 총리를 갈아치웠다. 더욱이 당면한 상황을 구할 수 있는 한 단계인 노동자들의 무장은 폭력적인 대중들의 요구에 마지못해 부응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무기는 분배되었고, 동부 스페인의 큰 마을들에서 충성을 유지해 온 군대들 (돌격대 등등)의 도움을 받은 노동계급이 주도한 엄청난 노력으로 파시스트들을 물리쳤다. 그것은 아마도 혁명적 의도를 가지고 싸우는 사람들, 즉, 그들이 지금의 상황보다는 더 나은 어떤 것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종류의 노력이었다. 봉기의 여러 중심점에서 하루 동안 거리에서 삼천 명이 죽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이너마이트sticks of dynamite로만 무장한 남자와 여자들이 개방된 광장을 가로질러 기관총을 가진 훈련된 군인들이 점거하고 있는 석조건물을 향해 돌격하였다. 전략적 거점에 파시스트들이 설치한 기관총 진지는 시속 60마일로 그들을 향해 달린 택시에 의해 뭉개져 버렸다. 농민들이 토지를 점유했다는 말을 듣지 못하더라도, 지방에 평의회soviets가 설립되었다는 등등의 말을 듣지 못하더라도 저항의 중추였던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들이, 특히 아나키스트의 관점에서 볼 때 중앙집중화된 착취기계에 불과한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이러한 종류의 노력을 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