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 시대 인간의 조건과 인문학
우리는 사과를 안다. 어떻게 아는가? 뇌가 사과의 모양, 색, 크기와 맛에 관한 통합적인 정보를 모아 사과라는 개념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인간과 자연어로 소통하는 AI를 만들려면 먼저 사과라는 개념을 이해할 줄 아는 학습부터 시켜야 한다. 그런 학습을 위해 등장한 것이 '멀티 모달리티 (Multi Modality)'다. 생성형 AI의 출현과 함께 인공지능 분야에서 문자와 말·동영상·3D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는 모달리티가 대세로 떠올랐다. OpenAI는 이번 달 13일 멀티 모달 언어 모델로 GPT-4o를 공개했다. 이는 사용자와 실시간 대화가 가능하며, 상황에 맞는 감정 표현과 농담을 할 뿐만 아니라 노래도 부른다. 이전 모델의 음성 모드는 말하기 전 1~2초의 대기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GPT-4o는 거의 즉각적으로 대답하며, 실제 사람과의 대화에서처럼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기도 한다. 이는 영화 '그녀(Her)'에 나오는 인공지능 사만다가 현실로 등장한 것으로 여겨져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이 새로운 모델은 감성뿐 아니라 추론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수학 문제를 카메라로 읽어내고, 풀이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는 장면도 연출했다. AI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만능의 교사로 활동할 날이 머지않았다. 이에 대해 실제로 범용인공지능(AGI)이 출현한 셈이라고 열광하는 반응도 나왔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기술 도약이 없는 마케팅을 위해 '잘 짜인 쇼'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생성형 AI에 대한 양극단의 평가는 결국 그것이 생성한 정보가 얼마나 창의적이고 유용하냐에 달려있다. 가장 치명적인 비판은 그것이 기존 정보들 사이 확률적 상관성에 근거한 것이기에,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는 기본 개념을 바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같은 과학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근본 지식은 생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사고는 본질과 구조를 파악하는 개념적 추상화에 근거한다. 이에 반해 생성형 AI는 유사성의 일반화를 한다는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가족유사성(family resemblance)의 논리에 따른다. 문제는 가족유사성으로도 천동설을 지동설로 대체하는 과학혁명이 일어날 수 있는가다. 부모와 나, 그리고 형제자매는 생물학적 DNA가 유사하다. 마찬가지로 생성형 AI는 문화 유전자인 밈(meme)의 새로운 연결로 가족유사성의 정보를 출력한다. 그렇다면 그런 문화적 진화를 통해서도 지식과 정보의 돌연변이가 일어날 것인가? 자연에서는 복제의 횟수가 많아지면 공룡에서 새가 출현하는 것과 같은 진화가 일어날 수 있다. AI 시대에는 지질학적 시간이 아닌 기계학습으로 그 시간이 크게 단축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선택이 아닌 지적 디자인도 가능하다. 그 가능성을 실제로 보여준 사건이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이다. 제2국에서 알파고는 바둑판 테두리에서 안쪽의 다섯째 줄에 37수를 두었다. 이 수는 바둑 역사의 기보에 없었던 '신의 한 수'였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지를 알파고를 만든 허사비스는 바둑은 오래도록 수학자들이 국소 최대점(극대점)이라 부르는 곳에 머물러 있었지만, 알파고는 종래 인간이 알지 못했던 중앙 근접의 전체의 최대점을 컴퓨터 연산으로 찾아낸 덕분이라 했다. 이는 창의성 또한 수학적 계산으로 도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이미 AI의 발전은 그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변곡점을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이 지점에서 인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날 우리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종일 스마트 폰이라는 인공지능과 함께 살고 있다. 스마트 폰이 만들어낸 초연결 네트워크의 인포스피어 (infosphere)는 이제 인류 전체의 사유를 담당하는 대뇌피질이자 세계와 접촉하는 피부로서 인간 실존의 근본 환경이다. 인포스피어는 인간과 컴퓨터의 연결이 만들어낸 네트워크 세계다. 에드먼드 후설은 인간 존재의 토대를 과학 이전의 생활세계라고 말했다. 생성형 AI시대에 우리의 생활세계는 인포스피어로 지칭되는 디지털 생활세계로 바뀌었다. 그런 세상에서 한나 아렌트가 노동 (labor), 일(work), 행동(action)으로 구분한 인간의 조건은 바뀔 수밖에 없다. 생존을 위한 노동과 자기 삶의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일, 이 둘 모두를 생성형 AI를 동반자로 해서 수행할 전망이다. 그러면서 AI는 인간의 집단 의사결정의 전개 방식과 인간 참여자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것은 정치적으로 결코 중립적이지 않고 편향되며, 조작할 수 있기에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위험성을 가진다. 아렌트는 1957년 인간이 만든 지구 태생의 한 물체가 우주로 발사된 것을 계기로 지구생활자로 살아온 인간의 조건에 관해 성찰하는 책을 썼다. 이제 우리는 인류의 운명이 점점 더 크게 AI의 발전에 달린 시대 인간의 조건에 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AI 시대 인문학은 도태당해서는 안 되며, 인류 존속을 위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학문으로 육성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