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각연사로 1... (안영IC를 지나며)
覺(각)... ‘깨닫는다.’는 뜻으로 불교를 창시한 석가모니(釋迦牟尼)가 생각난다.
釋迦는 샤카(Sākya)라는 민족의 명칭을 한자로 발음한 것이고, 모니(muni)는
성인이란 뜻으로 ‘샤카족 출신의 聖者(성자)’란 뜻이다. 석가모니를 부처님,
석존(釋尊), 세존(世尊)으로 부르는 것이 존경하는 뜻이다. 그는 29세에 고(苦)의
본질 추구와 해탈(解脫)을 깨달음을 얻고자 출가하였다. 6년간의 고행(苦行) 끝에
보리수나무 아래서 사색에 정진하다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현실을 판단하여 자기의 입장이나 능력 따위를 스스로 깨닫는 것은 우연한 일이다.
느티나무의 고장 괴산(槐山)... 각연사(覺淵寺)가 있는 곳은 칠성면 태성리다.
연못에서 깨달았다는 覺淵.... 그 유래는? 신라 법흥왕 때 어느 대사가 쌍곡리에
사찰을 지으려고 목수를 시켜 나무를 다듬고 있는데, 까마귀 떼가 날아와서 나무
조각을 물고 자주 날아가므로, 이상하게 생각한 대사가 그 까마귀 떼를 따라가
보니 깊은 산골에 있는 연못 속에 나무 조각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스님이 연못을 살펴보니, 석불(石佛)이 앉아 있어 그곳에 절을 세우고 ‘연못 속에서
부처로서 깨달을 수 있다.(覺有佛於淵中)’ 하였기 때문에 절 이름을 覺淵寺라
하였다 한다. 이 覺淵寺 여행을 11월 11일 떠나게 되었다.
11월 11일은 ‘빼빼로 과자를 주고받는다.’는 ‘빼빼로 데이’란다.
가늘고 길쭉한 과자인 빼빼로... ‘서로 날씬해지자.’는 공감대를 형성하자는 의미에서
1996년 부산지역의 여중생들 끼리 과자를 주고받은 것이 처음 시작하였으니 이
제품을 생산한 OO제과는 단단한 광고 효과를 누렸다. 빼빼로 선물은 ‘너도 빼빼로
처럼 빼빼하게 마르길 바란다.’는 의미란다. 다이어트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서는 수업시간을 무시하고 11월11일11시11분11초에 맞춰 먹어야 한다고 하였단다.
동해안의 정동진역이나 오리구이 식당의 5292, 이사짐 센터의 2424 전화번호도
같은 맥락으로 광고효과를 자동적으로 불 수 있어 이것도 인연(因緣)이 아닌가?
밸런타인데이가 외래(外來)에서 유래되었다면 빼빼로데이는 토종기념일로 볼 수 있다.
안영IC를 통과한 여행길은 남부 순환도로를 따라 비룡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안영터널과 구완터널 사이에 무수(無愁)천하마을... 하늘 아래 근심이 없는
마을이란다. 무쇠가 많이 매장되어 무쇠골로 불렀으나 조선 숙종 때 대간사를 지낸
권기(權紀)가 낙향하여 자신의 호를 무수옹(無愁翁)이라 부르면서 마을 이름도
無愁洞으로 유래되었다. 농촌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된 이 마을은 종가(宗家)와
유회당 등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고, 우렁이 농장, 각종 작물 채취를 할 수 있는
체험장이다. 흙을 사랑하는 마음... 심은 대로 거누는 마음으로 순수함을 뜻한다.
괴산 각연사로 2... (오창휴게소를 지나며)
무수천하마을을 바라보며 무엇을 심어 소득 증대를 올릴까? 요즘 농촌의
고민이다. ‘고민은 어떤 일을 시작해서 생기는 것보다 일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데에서 더 많이 생긴다.’는 러셀의 말이 생각나지만 청년이 없는 농촌이 더 문제다.
특히 출산율이 낮다보니 아이들이 부모에 대한 의존율이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공부를 잘하면 국가의 자식이요, 돈을 잘 벌면 사돈집 자식이요, 빚진 놈만
내 자식’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또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 남남이 되고, 군대에
가면 손님이 되고, 장가가면 사돈이 된다.’는 말도 떠돌아다니고 있다.
구완터널을 지나면 은진송씨 승지공파 재실과 월송재가 있다.
비룡JC를 지나 대전IC근처에는 박팽년선생 유허비, 우암사적공원, 쌍청당, 동춘당,
송애당, 옥류각, 제월당, 옥오제 등 은진송씨의 제각들이 있어 대전 문화재의 주류를
이룬다. 이 중에서 동춘당 송준길과 우암 송시열선생은 대전의 대표적인 유학자다.
두 분은 동종(同宗)으로 학문을 같이 한 성리학자로서 우정(友情)이 깊었으나
송시열은 정계에서 많은 활동을 한 반면 송준길은 후학 양성에 힘썼다.
죽마고우(竹馬故友)로 인생을 아름답게 산 한음 이덕형과 오성 이항복...
많은 일화(逸話)를 남겼지만 감나무 사건이 생각난다...
권율장군과 옆집에 살았던 이항복은 자신의 감나무 가지가 권율 장군의 담 너머에
열렸으나 세도가인 권율장군의 하인들이 못 따게 하자 권율장군의 사랑방에 손을
내밀고 ‘이게 누구 팔입니까?’하여 감나무가 자신의 소유임을 확인하고 땄다고 한다.
어릴 때 이항복의 비범한 행동을 본 권율은 이항복을 사위로 삼았으며 특히
혼담(婚談)이 오갈 때에 색시 감을 직접 보고 싶어 한 이항복은 누님의 옷으로
여장(女裝)을 하여 제사상을 머리에 이고 권율의 집에서 하인노릇을 하였단다.
한편 토정 이지함은 재치있게 행동하는 이덕형을 자신의 조카인 이산해(훗날 영의정)
의 사위로 천거하였으니 오성과 한음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주를 가졌다.
한편 ‘죽도록 마주 앉아 고스톱을 친 친구’도 죽마고우라 한다.
대전을 떠난 여행길은 오창휴게소를 지난다. 이곳 양지리에는 노비 삼월(三月)의
비(碑)가 있다. 청풍 김씨 집안의 여종 三月은 주인집의 장자인 김윤이 태어난 지
3일 만에 어머니가 죽자 젖을 먹여 키웠다. 김윤은 장성하여 18세에 결혼하였으나
유복자(遺腹子)를 남기고 죽게 되어 삼월은 정성으로 보살펴 키웠단다.
훗날 자손이 벼슬에 오르는 등 가문이 번창하였으니 그 공(功)을 三月에게 돌려
김윤의 사후(死後) 150여년 후에 김윤의 묘소 옆에 비석을 세워주었다 한다.
노비 三月의 애정은 사육신 중에 유일한 혈손을 남긴 박평년 생각이 난다.
괴산 각연사로 3... (증평을 지나며)
사육신 박팽년... 병자사화 때 모두 삼족(三族)을 멸하였으나 박팽년의 며느리가
관비(官婢)가 된 후 아들을 낳았다. 그 무렵 다른 여종이 딸을 낳아 바꾸어 죽게
하고 박팽년의 손자를 키웠으니 그 이름이 박일산(朴一珊)이요, 사육신 중에서
유일하게 대(代)를 이었다 한다. 그는 달성군 하빈면에 가서 살았는데 순천 박씨의
집성촌이 되어 입향시조로 불리고 그 후손 중 유명한 분이 박준규 전국회의장이다.
증평IC를 통과하면서 510번 도로를 따라가면 왼쪽에 충용사가 있다. 이 사찰은
37사단 법당으로 훈련병들의 군 문화 적응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군인 가족과 부대
인근 지역민까지 이용하는 사찰이다. 최근 낡은 법당을 천태종 총본산인 구인사의
협찬으로 새롭게 단장하였다. 근처에 조선 개국 공신인 배극렴의 묘소가 있다.
국도 510번에서 34번 도로를 따라 이어가면 사곡리 안내판... 이곳에 가면 말세
우물이 있다. 버드나무로 6각형의 틀을 설치하고, 그 위에 석축을 쌓아올린 형태로
조선시대 우물의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무더운 여름 날 목마른 노승(老僧)이
20리 넘게 떠온 물을 대접한 부인에게 고마움을 뜻하여 우물터를 찾아 주었다는
미담은 지금도 내려오고 있다. 이 우물은 장마나 가뭄에도 마르거나 불지 않지만
세 번을 넘치면 말세(末世)가 온다는 스님의 말씀... 임진왜란과 경술국치 때
넘쳤다고 전한다. 곡산 연(延)씨 집성촌인 이곳에 있는 명언이 가슴에 닿는다.
‘하늘이 충실히 행하는지 살피고 있으니 천리를 따르도록 하고 고독하게 혼자
있어도 자중하며 스스로 삼갈 줄 알라. 모든 나무에 뿌리가 있듯이 아버지가 있어서
내가 사는 것이니 먼저 부모를 잘 섬겨야 만사가 뜻한 대로 이루어지느니라.’
세상을 순리대로 살고 효(孝)를 실천하라는 뜻이지만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하면서 노년의 생활을 양로원에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
자녀가 ‘대학에 가면 4촌, 군대를 다녀오면 8촌, 장가가면 사돈의 8촌,
손자를 낳으면 동포, 이민을 가면 해외 동포라는 세상이란다.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 딸만 둘이면 은메달, 딸 하나 아들 하나면 동메달,
아들 둘이면 목 메달이란다. 장가간 아들은 희미한 옛 그림자, 며느리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란다. 자녀들을 모두 출가
시키고 나면, 아들은 큰 도둑, 며느리는 좀 도둑, 딸은 예쁜 도둑으로 변한단다.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여자, 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 며느리 남편을 아직도
아들로 인정하고 있다면 오늘 이곳의 우물처럼 말세(末世)가 아닌가?
더 지나면 청안면 초등학교 안에 있는 은행나무도 가 볼만하다. 이 나무는 고려
성종 때 심은 나무로 귀 달린 뱀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여행길은 괴산읍으로...
괴산 각연사로 4... (각연사에서)
괴산읍에 도착한 여행길은 홍범식의사 고가로 갔다. 아들 홍명희의 생가로 더
유명한 이 집은 최근 노무현 정부 때 공사를 끝내어 아름답게 단장되었다.
금산군수로 재임 중 한일 병탄(倂呑)으로 울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한 아버지
홍범식 애국지사와 일제 강점기 때 민족 운동의 지도자이며 소설 ‘임꺽정’의 저자로
유명한 홍명희... 하지만 그는 월북하여 6.25동란 당시 북한의 부수상으로서 남침을
주도(主導)하였다. 고택(古宅)은 노무현 정부 때 보수(補修)를 하였지만 반공단체의
반대로 갈등이 매우 심하였다. 반공(反共)하니 23일 북의 도발로 인하여 연평도의
민간인 희생... 1953년 정전 협정 이후 북한군이 쏜 포탄이 우리 영토에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그것도 우리 군 기지와 민간인을 직접 겨냥하였단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 국민은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4대 강 사업 등 국책사업에
갈등이 심하다. 친북좌파가 판을 치고 있는데 일부 국민은 무관심 속에 살아가고
있으니 30여 년 전 월남 등 동남아의 공산화가 된 것을 반추(反芻)할 때다. 지금도
일부 단체에서는 북에 지원을 하여야 한다든가 좌경 판사가 설치고 있다.
특히 선거를 통하여 당선되어서는 안 될 후보들을 적극적으로 낙선시켜야 한다.
홍범식 고가는 문화재로 지정을 받았지만 지금도 보는 시각에 따라 홍명희
생가로 불리고 있다. 정조의 어머니(혜경궁 홍씨) 집안인 풍산 홍씨인 홍범식...
조부는 홍우길은 이조판서를, 아버지 홍승목은 병조참판을 지낸 명문가이다.
홍범식 선생 고택을 나와 옆에 있는 괴산군민가마솥으로...
‘괴산군의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고 군민이 다함께 한솥밥을 먹는다.’는 이념아래
군민 화합과 21C괴산을 정립하고자 제작하였다 한다. 가마솥이 있는 광장은
괴산 청결고추 유통 센터로 괴산이 고추의 고장임을 말해준다.
한편 느티나무 괴(槐)를 사용하는 괴산(槐山)... 임금님이 계시던 궁궐을 괴신(槐宸),
옛 조정인 의정부(議政府)를 괴부(槐府), 삼정승의 지위를 괴정(槐鼎), 삼정승의
자리를 괴위(槐位)라 불리었다. 각연사로 가는 여행길에 괴산 매운탕집으로..
메기, 빠가, 쏘가리, 모래무지 등으로 만들어지는 매운탕... 여름에는 많은 손님이
찾아오는 이곳을 추천하고 싶다. 다시 34번 도로를 따라 연풍방면으로 달려가면
오른편으로 각연사 안내판... 4km이상을 좁은 길로 오르면 고즈넉한 곳에 각연사다.
사찰 오른편에 비로전...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신 당우로 대적광전이라 부른다.
이곳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대사부도와 더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불상이 연못에서 톱밥사이로 서광(瑞光)이 비추던 불상이라 ‘연못에서 깨달음’을
얻은 절이라 한다. 여행길은 다시 대전으로 오면서 마친다. 감사합니다.
각연사 비로자나불상, 말세 우물, 청안 은행나무, 홍범식 생가, 괴산 가마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