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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스크랩 김정옥(62) 충북 보은과 보성 宣씨 종부 - 2015.9.30.조선外
하늘나라(홍순창20) 추천 0 조회 1,073 15.10.01 17:0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황금빛 솔밭 너머 99칸 古宅에는 고단한 종부의 삶이…

 

 

[박종인의 땅의 歷史] 충북 보은과 보성 宣씨 종부 김정옥


종갓집 시집온 스물네 살 처녀 김정옥, 한 해 제사만 아홉 차례 고단한 삶
씨간장 1L 500만원에 팔려

임한리 솔밭에는 치유의 향내가… 산 너머 월류봉에는 달빛이 부서지고

[박종인의 땅의 歷史] 

 

충북 보은에는 소나무 숲이 있다. 사시사철 아침저녁,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안개 낀 주말 아침이면 소나무 반(半) 사람 반(半)이다. 이름도 예뻐서, 임한리(林閑里)라 한다. 삼가천(三街川)을 따라 북쪽으로 10분만 올라가면 아흔아홉 칸 고택이 나온다. 보성 선씨 참의공파 종갓집이다. 이름은 '선병국 가옥'이라 한다.

김정옥은 이 종갓집 21세손 종부다. 여느 해와 똑같이, 올해 추석도 바빴다. 며칠 동안 한과를 만들고 생선을 굽고 전을 부치며 큰 상 두 개에 오를 차례 음식을 준비하고, 집 안에 있는 사당에 차례를 올렸다. 1977년 시집온 이래 38년째다. 종부는 매년 아홉 번씩 제사상을 준비했고 정월 대보름과 추석에는 차례상을 차렸다. 8년 전부터 김정옥은 매년 콩 100가마로 장을 담근다.

▶▶선병국 고택과 종부(宗婦) 김정옥

보성 선씨 참의공파 21세손 종부 김정옥. 한 해 아홉 번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뒤에 보인다.
보성 선씨 참의공파 21세손 종부 김정옥. 한 해 아홉 번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뒤에 보인다.

 

양반가에서 며느리끼리 대물림하는 간장을 씨간장이라고 한다. 가까이는 시어머니와 시할머니, 멀리는 아득한 조선 중기 어느 며느리까지, 간장독에 간장이 줄어들면 줄어든 그만큼 햇간장을 부어 만드는 간장이다. 햇간장은 제사상에 바쳤다가 이듬해 씨간장독에 붓는다. 시간을 초월한 종부들의 합작품이요, 일관된 장맛과 가풍(家風)을 유지하려는 의미가 숨어 있다. 2006년 10월 16일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한국골동식품예술전'에서 보성 선씨 참의공파 씨간장 1L가 500만원에 팔렸다. 정확하게는 350년 된 씨간장에 햇간장을 덧보탠 덧간장이고, 마지막으로 간장을 더한 이가 21세 종부 김정옥이다. 그녀는 올해 예순두 살이다.


1977년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던 스물네 살 처녀 김정옥이 시집을 왔다. 시댁은 보은에 있는 고택 선병국 가옥이었다. 종갓집이 뭔지도 몰랐다. 중매에 나온 농부 선민혁은 "안채, 사랑채가 있는 집이니,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지혜로운 친정어머니가 철부지 딸에게 말했다. "…살아서 돌아올, 아니, 죽어서도 돌아올 생각을 마라." 어머니는 이후 오래도록 초인종이 울리면 딸이 쫓겨난 줄 알고 부리나케 문을 열곤 했다.

철부지 딸 시집온 지 닷새째 되던 날, 마을 잔치가 끝나고서 시할머니가 말했다. "집안이 망한 다음에야 장 담기를 그만두는 법이다. 장을 배워라." 백만 가지 의미가 담긴 당부였다. 이후 김정옥은 여름이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집안 손님을 맞고 한 해에 아홉 차례 제사상을 차리는 상상도 못했던 삶을 살았다.

▶▶보은 땅에 터 잡은 착한 부자(富者)

1910년대 말 전남 고흥군 거금도에 살던 보성 선씨 참의공파 18세손 선영홍이 뭍으로 이주했다. 풍수가들을 보내 전국 명당을 훑게 했는데, 천안과 대전과 보은 가운데 낙점한 곳이 충북 보은군 외속리면 하개리 땅이었다. 해산물 무역으로 부를 이룬 거상(巨商)이라, 이사 행렬에는 씨간장독을 비롯해 소달구지 수십 대가 장관을 이뤘다. 1998년 홍수 때 떠내려간 씨간장독은 뒤집어지지 않고 마을 어귀에서 무사히 발견됐다. 1919년 선영홍은 속리산에서 내려오는 삼가천(三街川) 변 삼각주에 당대 최고의 목수를 모아 아흔아홉 칸 집을 지었다. 연자방앗간과 마굿간도 있었다. 선씨 가문이 이주한 뒤, 고흥군 4개 면 사람들은 선씨가에 철(鐵)로 선정비를 세웠다. 소작료를 깎아주고 세금을 대납해준 선정에 대한 감사였다.

충북 보은 임한리 솔밭에 석양이 깔렸다. 푸른 솔잎들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어지럽던 숲 바깥 풍경은 햇살 속에 사라졌다. 숲 옆 천변에는 착한 부자가 살고 남쪽에는 달과 함께 노니는 월류봉이 기다린다.
충북 보은 임한리 솔밭에 석양이 깔렸다. 푸른 솔잎들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어지럽던 숲 바깥 풍경은 햇살 속에 사라졌다. 숲 옆 천변에는 착한 부자가 살고 남쪽에는 달과 함께 노니는 월류봉이 기다린다. 렌즈=캐논 EF 24-70mm 1:2.8 USM, 셔터스피드=1/30초, 조리개=f11.0 /박종인 기자

 

선영홍의 아들 정훈은 따로 서른세 칸 집을 짓고 관선정(觀善亭)이라는 서당을 만들었다. 교습은 물론 숙식도 무료였다. 관선정은 1941년 일본어를 가르치지 않는 대가로 폐쇄됐다가 6·25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불에 탔다. 한학의 태두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1914~ 1999)이 관선정 출신이다. 고택에 이름이 붙은 선병국은 서당을 지은 선정훈의 아들이고 종부 김정옥의 시아버지다.


▶▶500만원짜리 간장과 방문객들

세월이 가면서 선대가 이뤘던 거부(巨富)는 쇠락했다. 폭격으로 사라진 집 한편에는 군부대가 들어섰다. 돈이 떨어져 시집올 때 가져온 패물을 팔아 제사를 지낸 적도 있었다. 1992년 김정옥이 선언했다. "며느리의 주권(主權)을 행사하겠어요."

행랑채 곳간들을 개조해 고시원을 열었다. 이름은? 당연히 관선정이었다. 운전면허를 딴 다음 날 흰색 중고 프린스 승용차를 사서 제사상에 올리고 고시생들 먹일 장을 봤다. "걸레가 되도록 몰고 다닌" 끝에 차는 2년 만에 폐차했다. 차를 수없이 바꾸는 사이에 1000명이 넘는 고시생들이 오가고 세월이 갔다. 그러다 2006년 가을 덧간장 1L가 500만원에 팔리면서 삶이 바뀐 것이다.

대추 주산지인 보은군에서 선씨 가문 장을 상품화했고, 지금 김정옥은 제사상 차림과 함께 씨간장 만들던 그대로 메주를 쑤고 된장을 만들고 간장을 만들고 있다. '아당골'이라 이름 붙인 된장·간장은 백화점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중이다. 종부는 백화점, 지자체 문화행사에 강사로 초청되고 CF 모델로도 나서는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선병국 가옥은 수많은 고택 중에서도 관광객이 와서 구경을 하고 종가 숙식 체험을 하는 인기 목적지가 되었다. 김정옥이 말한다.

보은 

 

"가끔 속없는 사람들이 묻곤 했다. '무슨 복이 그리 많아서 이런 집에 살게 됐냐'고. 그러면 속으로 대답했다. '살아봐라.' 아들 종완이가 가끔 그랬다. '나, 형이 있었다면 좋았겠어'라고. 22세손이니, 자기도 책임을 느낀 거지. 그런데 종완이가 문화재 보존학을 전공하더니 집으로 들어와 같이 장을 만든다. 작년에는 결혼도 했다. 며느리가 공무원인데, 여러 번 물었다. '너, 어떤 집인지 아니? 안채에 앉아서 이거저거 시키기만 하는 건 절대 아니다.' 각오를 거듭 확인하고서 날 잡아 혼례를 치렀다. 5년 뒤에는 곳간 열쇠를 줘야지. 코스모스처럼 가냘픈 아인데,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장독대에 늘어선 장독이 800개다. 절반은 가득 차 있다. 장독대와 안채는 외부인 출입 금지다. 넉넉하고 시원한 사랑채, 돌담, 팔도에서 모은 장독 야외전시장과 관선정 자리는 공개돼 있다. 사랑채는 찻집으로 쓰인다. 종부는 사랑채로 출입하지 않는다. 집이 하도 커서 그냥 공원 같다. 관광객들을 보면서 종부가 말했다. "행복하되, 몹시 무겁다"고.

▶▶치유(治癒)의 숲, 임한리 솔밭

그리고 솔밭으로 갔다. 선병국 가옥에서 남쪽으로 10분만 내려가면 왼편에 '임한리 솔밭공원'이 나온다. 주소는 충북 보은군 탄부면 임한리다. 250년 전 마을 사람들이 심은 소나무 100여 그루가 자유롭게 자라나 4만2600평짜리 거대한 송림을 이뤘다. 마침 해거름 때라, 송림은 황금빛으로 빛났다. 오감이 느끼는 고요함과 안락함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음이 틀림없다.

주말이면, 특히나 안개 자욱한 아침이면 송림의 고요는 깨진다. 카메라와 삼각대로 무장한 사진가들이 송림을 누비며 안개를 몰아낸다. 명징한 깨우침을 원한다면 해 질 무렵이 좋고 선적(禪的)인 분위기가 좋다면 가급적 이른 아침이 좋다. 솔밭 바깥으로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그 옆에는 마을과 비닐하우스가 있다. 마을과 전봇대와 비닐하우스는 안개와 강렬한 석양빛이 가린다.

▶▶우주적 장관, 월류봉

짙어지는 하늘 앞으로 솔숲 실루엣 또한 짙어질 무렵 월류봉으로 간다. 종부의 무겁고 행복한 삶, 솔밭을 거니는 여행자의 뒷모습을 내려다볼 달님을 맞이하러 간다. 해발 400m짜리 낮은 산이라, '달(月)이 머무는(留) 봉우리(峰)'라는 거창한 이름치고는 아담하기 짝이 없다. 밤이 되면 그 진면모가 나타난다. 국도를 따라 영동으로 50분 정도 내려가면 갑자기 이정표가 나타나고, 입구로 들어가면 그만큼 느닷없이 월류봉이 보인다.

영동 월류봉에 달이 떠올랐다.
영동 월류봉에 달이 떠올랐다. 정자에는 불이 밝다. 개울에는 달빛이 부서진다. 렌즈=삼양옵틱스 14mm 1:2.8 EDAS IF USM, 셔터 스피드=15초, 조리개=5.6 /박종인 기자

 

아홉 개 봉우리가 눈앞에 보이고 맨 앞 작은 봉우리에 정자가 서 있다. 그 아래에는 작은 개울이 흐른다. 임한리 솔밭에서 석양을 맞았다면, 이맘때 운이 좋으면 거기 왼편으로 달이 솟을 것이다. 그리고 개울에는 달빛이 부서지고 있을 터이고. 조선조 유학자 송시열 또한 이 우주적인 경치에 반해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10월 1일부터는 이 정자에 조명을 설치해 무지개색으로 정자가 밝게 빛날 예정이다. 이른 아침 떠난 여행자는 보은에서 종부의 삶을 보았고 치유의 숲을 걸었다. 지금 여행자는 달빛과 장난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보은 여행수첩]

선병국 가옥: 보은군 장안면 개안길 10-2. 고택 체험과 종가 음식 체험. 장 담그기 체험도 할 수 있다. 아당골 장류는 통신판매도 한다. 홈페이지 blog.daum.net/sammanpyung, (043)543-7177

맛집: 선병국 가옥 건너편 복해가든. 능이백숙 5만원, 버섯찌개백반 9000원. 선병국과 형제인 선병우 가옥이 운영. www.복해가든.kr, (043)543- 0606

임한리 솔숲: 선병국 가옥에서 남쪽으로 5분 거리. 이른 아침 또는 석양 무렵 추천.

월류봉 주변: 오토캠핑족은 월류봉 안쪽에 있는 '달이 머무는 집' 추천. '신의 계시를 받아야 예약할 수 있는' 강력 추천 캠핑장. 월요일 오전 8시부터 그 주 한 번에 딱 다섯 팀만 예약 접수. (043)742-4347

보은 관광정보: www.tourboeun.go.kr, (043)540-3000

 

 

 

 

종갓집 솜씨 ‘천기누설’ - 2010.7.6.중앙   http://blog.daum.net/chang4624/2090

 

 

 

 

보성 선씨 영홍종가_한식기행 종부의 손맛-여름시즌 2회

게시일: 2015. 8. 2.

보성 선씨 종가 : 민어탕과 민부레순대, 장떡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 자락에 위치한 선병국 가옥. 개천으로 둘러싸여 섬 아닌 섬이 되는 곳. 개천과 집 사이 사시사철 푸르른 노송들이 종택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따로 연못도 정원도 필요 없는 연화부수형 명당! 연꽃처럼 그렇게 피어오른 고택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가옥 중 하나가 됐다.

[한식기행 종부의 손맛-여름시즌] 2회, 20150801

[skyTravel(www.skytravel.co.kr)]
[skyTravel 앱 다운로드: bit.ly/1yhXQQU ]
[한식기행 종부의 손맛-여름시즌 다시보기 링크 : bit.ly/1Ie5wF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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