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 (828년)에 증각대사님이 9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을 개산하면서 창건했다. 이 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 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가 버린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정유재란 때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조선 숙종 26년(1700년)에 다시 지었으나, 고종 19년(1882년)에 거의 불타 버려 일부만 남게 되었다. 현재 통일 신라 시대 작품으로 국보 제10호인 높이 약 5m의 백장암 3층석탑과 보물 11 여점을 포함 단일사찰로는 가장 많은 17점의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진입로는 논 가운데 있고, 절은 산속이 아닌 들판에, 수목들에 둘러싸여 있어 소박한 분위기가 감돈다. 절 입구에서 반달모양의 돌다리인 해탈교를 지나면 보이는 돌장승이 인상적이다.
개관시간 - 여름(3월~ 10월) : 오전 9시 ~ 오후 6시. 겨울(11월~ 2월) : 오전 9시 ~ 오후 5시
○ 실상사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글,사진 이종찬 기자 2005-10-05]
황금빛 들판 한가운데 자리잡은 구산선종 최초의 절 '실상사'
한반도의 영산(靈山)이라 불리는 지리산 자락을 맴돌다 보면 황금빛 들판(입석리) 한가운데 마치 지리산이 낳은 사내자식 같은 천년 고찰 실상사(實相寺)가 있다.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흐르는 만수천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실상사는 동으로는 천왕봉, 남으로는 반야봉, 서로는 심원 달궁, 북으로는 덕유산맥의 수청산을 병풍처럼 거느리고 있다.
실상사는 우리나라 대부분 사찰이 깊은 산 속에 둥지를 틀고 있는 데 비해 들판 한가운데 섬처럼 떠돌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실상사가 이곳에 처음 세워질 때부터 평평한 들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심산유곡이었던 이곳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부처님의 품을 찾아드는 사람들로 마을이 이루어지고, 그들을 위한 논밭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통일신라 흥덕왕 3년, 서기 828년에 증각대사 홍척(洪陟)이 처음 지었다는 실상사(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 50). 실상사는 홍척이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가 지장의 문하에서 선법(禪法)을 배운 뒤 귀국, 선정처(禪定處)를 찾아 2년 동안 전국의 산을 헤매고 다니다가 지금의 자리에 발길을 멈추고 세웠다는, 구산선종(九山禪宗) 가운데 최초로 절이다.
하지만 이 절도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불에 몽땅 다 타버린다. 기록에 따르면 서기 1498년 세조 때 원인 모를 불에 타 없어졌다 하기도 하고, 정유재란 때 왜구들이 조선의 기운을 꺾기 위해 전각 모두를 모조리 불태웠다고도 한다. 그때 이 곳에 남아 있었던 것은 불에 타지 않는 철불(보물 제41호)과 석탑(보물 제37호), 석등(보물 35호)뿐이었단다.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살상사가 흥한다
그래서일까. 호국사찰 실상사에는 일본, 즉 왜구에 얽힌 설화가 유난히 많이 남아 있다. 안내자료에 따르면 "약사전에 모셔놓은 약사여래불은 천왕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그 천왕봉 너머에는 일본의 후지산이 일직선상에 놓여져 있다"고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절의 배치도 일본이 있는 동쪽을 향해 마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절에는 예로부터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는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다. 또한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경내의 보광전 안에 있는 범종에는 일본 열도 지도가 그려져 있으며, 스님들이 예불을 할 때마다 종에 그려진 일본 열도를 마치 큰 잘못을 저지른 아이의 종아리에 회초리를 치듯 마구 두들기고 있다.
그런 까닭에 지금 범종에 그려진 일본 열도 지도는 훗카이도와 규슈지방만 제 모양으로 남아 있을 뿐 나머지 열도는 희미해져 있는 상태다. 이는 요즈음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 독도 망언 등을 살펴볼 때 참으로 많은 점을 일깨워준다고 할 수 있으며, 실상사가 예로부터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한 호국사찰이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실상사는 우리나라에서 단일 사찰로는 가장 많은 수의 국보와 보물을 가지고 있는 절로도 유명하다.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3층석탑'을 비롯해 보물 제33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秀澈和尙楞伽寶月塔)', 보물 제34호인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 보물 제36호인 '부도(浮屠)', 보물 제37호인 '3층석탑' 2기(基)가 있다.
또한 보물 제38호인 '증각대사응료탑(凝寥塔)'과 보물 제39호인 '증각대사응료탑비', 보물 제40호인 '백장암 석등', 보물 제41호인 '철제여래좌상(鐵製如來坐像)', 보물 제420호인 '백장암 청동은입사향로(靑銅銀入絲香爐)', 보물 제421호인 '약수암목조탱화(藥水庵木彫幀畵)' 등도 있다. 한 마디로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문화유산인 셈이다.
한 번 더 침략하면 일본 열도를 단칼에 베어 동해의 다도해로 만들리라
실상사는 나그네가 지난 해 시월 이맘 때, 지리산 계곡이 단풍빛에 젖어 불이 난 것처럼 발갛게 불탈 때 조경국, 최경호 기자와 함께 다녀온 곳이다. 하지만 올해는 그 곳에 다녀오지 못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눈을 감고 있어도 자꾸만 떠오르는 그 곳. 황금들판과 절 황토마당에 노랗게 떨어지는 은행잎이 마음을 한없이 저리게 하지만 아직까지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
그날, 나그네는 천년 고찰 실상사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가을풍경과 너무나 많은 국가지정문화재를 한꺼번에 본 탓인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빨갛게 물든 단풍잎이 석탑의 지붕돌 같기도 하고, 짙푸른 가을하늘이 부처님의 피안의 세계 같기도 했다. 또한 이 문화유산이 아까 본 저 문화유산 같기도 하고, 저 문화유산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문화유산 같기도 했다.
그중 나그네의 눈을 가장 많이 저리게 만든 것은 실상사 황토마당 한가운데 우뚝 솟은 두 개의 돌탑이었다. 뾰쪽하게 솟은 그 쌍둥이 돌탑은 마치 예전에 하나로 붙어 있었던 일본 열도를 단칼에 베어 동해 곳곳에 흩뜨려 놓은 염라대왕의 쌍칼처럼 보였다. 한 번만 더 우리나라를 침략하면 일본 열도를 동해의 다도해로 만들고 말겠다는 염라대왕의 부라린 눈알 같았다.
근데, 하필이면 왜 두 개의 멋들어진 쌍둥이 돌탑이 나그네의 눈에 그렇게 무섭게 비쳤을까. 이는 아마도 이 절 곳곳에 우리나라를 끊임없이 괴롭혀온 일본, 불교에서 말하는 마장을 이겨내기 위한 보살들의 정기 같은 것이 배어 있기 때문이리라.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는 일본의 음모가 저 쌍둥이 탑 앞에 시커먼 그림자로 늘어뜨려져 있기 때문이리라.
돌탑의 아름다운 머리 장식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이 특징
보물 제37호 실상사 삼층석탑(實相寺 三層石塔). 실상사 보광전 앞뜰에 동, 서로 뾰쪽하게 세워져 있는 이 쌍둥이 돌탑은 2층으로 된 기둥돌(基壇) 위에 3층의 몸돌(塔身)을 올리고 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우리나라 절마당 곳곳에 서 있는 대부분 돌탑들이 머리 장식이 사라지고 없는 것에 반해, 이 쌍둥이 돌탑은 모두 아름다운 머리장식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두 개의 돌탑은 증각대사 홍척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이 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건너간다'하여, 실상사를 처음 지을 때 세운 탑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누가 언제 이 쌍둥이 돌탑을 세웠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다만,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것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돌탑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이 돌탑은 각 층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지붕돌은 처마 밑이 수평이며, 아랫면의 받침은 4단이다. 그리고 처마 네 귀퉁이가 하늘로 살짝 휘어져 있어 부드러우면서도 막 날개를 편 새처럼 날렵한 느낌을 준다. 탑의 머리에는 아름다운 장식부재들이 마치 소원을 비는 돌탑처럼 차례대로 올려져 있다. 높이 8.4m.
그날, 나그네는 쌍둥이 돌탑을 오래 바라보다가 쌍둥이 돌탑 꼭대기에 앉은 부처님의 모습을 보았다. 짙푸른 하늘을 품고 있는 부처님께서는 나그네에게 네가 가지고 있는 것, 네가 바라는 것 모두를 몽땅 버리라 했다. 단풍빛 예쁘게 매단 저 나무들도 그 예쁜 단풍잎을 버리고 모진 겨울을 이겨낸 뒤에서야 비로소 새로운 희망의 파아란 새싹을 내밀 수 있다며.
서울-대진고속도로-88고속도로 함양 교차로-광주, 남원 방향-지리산 나들목-인월(심원, 달궁, 뱀사골 쪽)-삼거리-마천 쪽-만수천-실상사-실상사 3층석탑
대중교통
1)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계곡행 버스 이용(1일 4회 운행)
2) 인월이나 함양에서 마천 또는 백무동행 버스 이용, 실상사 앞에서 하차 / 20-30분 간격
3) 열차는 전라선 남원에서 백무동행 직행버스 이용 / 1일 9회 운행
4) 전주공용버스터미널에서 백무동행 직행버스 5회 운행
5) 대구서부시외버스정류장에서 거창, 함양 경유하여 백무동 가는 직행 3회 운행(07:40, 10:40, 13:30, 3시간 소요)
자가운전
1) 대전 진주간 고속도로와 88고속도로가 만나는 함양 교차로에서 광주 - 남원 방향으로 진행 - 지리산 IC로 나와 인월산내 실상사
2) 호남고속도로 전주IC - 전주시 - 17번 국도 이용 - 남원 - 운봉 방향 24번 국도- 운봉- 인월-산내면 방향 60번 지방도- 실상사
3) 88올림픽고속도로 - 지리산IC -인월 방향 -산내면 방향 60번 지방도- 실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