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그 영화에서 나에게 맞는 이미지는 임예진옆에 향단이 처럼 붙어다니는 주책스럽고 덜 이쁜 여학생일텐데, 나는 죽어라 나와 임예진을 동일시 했다. 그게 영화의 재미 아닌가..착각을 하게 해주는 거.
그런데 그 착각의 기쁨도 오래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때였다. 어느 날, 어느 아파트에서 내가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에 내 또래의 남학생 세 명이 올라탔다.
(허억....이덕화같다. )
나는 여고졸업반의 임예진같은 기분이 되었다. 갑자기 내 삼겹살로 겹쳐있는 뱃살이 홀쭉하게 흡입되고, 두턱 살도 쪼옥 빠져 여우의 턱같이 갸름하게 된 거 같았다. 단추가 터질 거 같던 하얀 여름 교복이 헐렁하게 느껴졌다. 눈이 커지고, 입술이 도톰해졌다.
그리곤 난 임예진의 새침한 표정이 되었다. 엘리베이터의 번호판을 짜려보듯이 올려다 보았다. 내가 뭔가 도도하고 꿈꾸는 표정을 짓는 거 같았다.
이덕화와 그의 졸개들은 나를 흘낏흘낏 본다.
(으흐흐...나한테 관심있는 거지? 흐흐흐.. 맞아...관심이 있으면 저런 식으로 하더라.)
이덕화가 웃었다. (멋져! 악동이 주는 매력이란. 크으...취한다)
그가 나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말을 건다.
"야!"
(자슥, 저돌적이긴...난 모른 척 해야지... 좋은 척 하지 말아야 해. 흥! 하는 표정을 짓고 있자)
"넌..."
(자슥..벌써...야자를 트다니. 호호호호호...짓굳긴....)
"푸줏간 가라. "
뭐--라--구? 난 잠시 어지러웠다.
이덕화가 임예진한테 푸줏간 가라고? 이건 대본에 없던 말인데?....
"뚱뚱하니까...낄낄낄..."
쀼---우웅! 퍼퍽! 나는 갑자기 현실로 내동댕이쳐졌다. 삼겹, 두겹의 턱, 끼는 교복의 현실로 돌아왔다. 이것들이 내가 뚱뚱하다고 날 모욕해? 엉? 엉? 나는 60 킬로짜리 분노의 불덩이로 변하였다. 온 몸에서 스팀을 뿜어내며 서 있다가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이덕화와 졸개 세 명을 향했다.
(이덕화 무리가 내 뒤뚱거리는 꼴을 보며 '터진 만두도 굴러갈 수 있네!' 하고 조롱할 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은 나에게 여성미가 없다는 것의 확인과정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나에게 남성은 호기심의 대상이자 언제 나를 놀리고 씹을 지 모르는 위험한 인물들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주위를 보면 남성들이, 사회가 이뻐해주는 여성들 천지였고, 그런 대접이 부러워 여우 떠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뭐든지 야들야들하고 목소리도 앙증맞고, 하는 짓마다 귀여운 여성들, 그리고 그들은 사회가 주는 대접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었고, 일부 똑똑한 애들은 그것을 힘으로 사용할 줄 아는 능력까지 있었다.
나는 페미니즘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그 시절에도 자매애는 강했었기에, 나와 달리 여성미가 있어서 대접을 받는 여성들을 무조건 싫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쟤들 잘못이 아니지...질투할 필요 읍다. 읍다. 읍다. 그냥 두...자...빠드득..."
(으허!.....죽어라 죽어!-.-)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좋은 남성들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수하고, 여성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동등하게 대해주는 좋은 아이들...(친구들아, 고맙다!) 오히려 나의 털털한 성미를 더 좋아해주는 좋은 남성 친구들도 많았다.
그런데 연애를 하면서 나는 내가 낭만적 정서 결핍증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남자 친구는 내가 꽃돼지임을 귀여워해주고 나를 있는대로 사랑해준 사람이었는데도, 나는 마치 향단이가 춘향이 대접을 받은 거 처럼 불편했다. 나에게는 사랑의 각본에 아름다운 여주인공의 배역이 맞는 것 같지 않았다. 그 불편한 기분...아시는 분 계신감?
내가 꼭 여성적인 여성을 부러워했던 건 아닌 거 같다. 난 내가 아닌 그 누군가가 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내가 더 똑똑하고, 내가 더 이쁘고 더 여성적이었다면, 아니면 그 반대로 내가 더 털털하고 억세고 덩치도 컸다면 더 멋있는 사랑을 할 거 같았다. 남자같이 씩씩한 여성이 사랑에 빠지는 것도 낭만적 사랑의 각본 중의 하나가 아니던가!
어떤 면에서 나는 사랑에 빠지는 많은 여성들이 빠지는 함정---여성은 남성의 시각으로 자기 자신을, 그리고 다른 여성을 바라본다---에 빠져 있었다. 내 마음 속에는 나와, 나의 남자 친구와, "어떻든간에 나보다 더 나은 여성"의 영원한 삼각관계가 있었다. 당연히 삼각관계의 패배자는 나였다.
그 시절 이야기는 뒤로 하고서...
나는 유학을 떠나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게 되었다.
여성미가 없는 것에 대한 열등감은 가볍게 극복하게 되었다.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생긴대로의 내 자신을 껴안게 되면서 나는 다른 여성과 나의 자매애를 더 중요시하고, 남성들의 평가에 연연해하지 않게 되었다. (그 자유로움이 주는 기쁨이란!!!!)
그런데 로맨틱 정서 결핍증의 증세는 더 심해지게 되었다.
페미니즘 덕에 한 남성과의 관계에서 동등성을 유지하고, 내 목소리를 자신있게 뿜어내게 되었지만, 반면, 나는 내가 내가 나는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일종의 회의 내지는 혐오감마저 갖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낭만적이라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문제제기를 해야할 문화적 각본으로만 보이는데 어쩌리오. 나는 낭만적 사랑이란 뿌연 렌즈로 얼굴의 잡티를 감춘 사진 마냥 현실을 왜곡하거나 숨기고 사랑의 감정만을 이상화하는 '꾸라' 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썰렁~~누가 페미 아니랄까봐..-.- )
그래서 나는 내가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라는 사실 조차 싫었다.
(그거, 낭만적 사랑의 공식의 하나야!)
사랑에 매달리는 내 자신도 싫었다.
(낭만적 사랑이란 이성애를 극도로 신비화하는 문화적 구성물일진데 네가 거기에 넘어가?!)
그러나...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이 있었다. 나는 에릭이 좋았다.
내가 행복한 독신녀 시절, 나는 "괜히 결혼해서 서로 망하지 않게 혼자 살거야. 그러나 만약 이러저러한 사람이면 결혼할지도 몰라" 하곤 했다. 그 '이러저러'에 해당하는 사람이 에릭이었다. 내 인생을 걸고 밑지는 장사를 해도 아쉬울 거 없다 싶은 사람이었다. (이것도 너무 낭만적인 소리같지만...) 가족 공동체를 나와 비슷한 이상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인간 같았다.
어쩐다...어떻게 사랑해야하나?
나는 에릭과 내가 사랑의 언어를 창조하고, 그 각본을 우리 나름대로 새로이 써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실, '각본을 다시 쓰니 뭐니' 하는 거 내가 잘나서 떠들어대는 게 아니라, 다 페미니즘에서 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굳이 페미니즘을 논하지 않더라도,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사랑의 텍스트가 있기 마련이다. 에릭과 나도 그 중의 하나라는 소리..
그런데 거기에 낭만적 정서 결핍증의 페미의 결벽증 때문에 우리는 낭만주의의 문화적 각본에서 아주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즉, 우리의 이야기는 무드랑은 거리가 먼 탈(脫)무드 사랑이야기였다.
(누가 로맨스를 기대라도 하나? 애시당초 대머리랑 노처녀 이야기가 뭐 그리 로맨틱하게 들렸겠냐?!-.-)
처음엔 에릭이 전통적인 낭만적 시나리오를 적용했었다. 비싼 보석가게를 구경가자고 하고 (티파니에서 아침을?) 와인과 촛불 식사를 준비하거나, 비싼 레스토랑에 초대하고, 예쁜 스카프를 선물하고...
다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당연히 내 반응은 심드렁....
좋아할 수 없는 일에 좋아하는 척 한다는 거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앞으로 오래 같이 살 사람인데, 괜히 기초공사 잘못해놓았다가는 평생 내가 좋아하지 않는 선물을 받고 살 위험이 있다.
촛불과 와인의 식사를 몇 번 했다.
(촛불에 반사되어 대머리가 더 빛나더라.... )
당시만 해도 페미니즘 이론을 매일의 양식으로 먹고 살던 나는 소위 낭만적인 상황에 놓이면 너무 어색하고 불편해서 잔을 떨어뜨린다던가, 수다 떠는 중에 침이 튄다던가, 비싼 음식에 물을 쏟는다던가 하며 무드를 깨기 일수였다. 그리곤 노상 가부장제가 어쩌구 저쩌구...그 때 에릭이 도망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이다.
에릭은 차차 알게 되었다. 내가 중증 로맨틱 정서 장애자라는 것을...
그리고 그는 서서히 나름대로 교과서적인 로맨스가 아니고도 서로를 기쁘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찾아내었다. (한참이 지나고서 그가 말하길, '촛불 저녁에, 멋진 보석이 여성을 기쁘게 한다고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나를 진정으로 기쁘게 한 것은 들판에서 들꽃을 꺾어온 거 처럼 돈 안들고, 뭔가 남이 안 한 일을 할 때였다. 또 언제였더라? 흠...그가 나에게 자기가 만든 빵을 정식으로 선물했을 때 나는 참 좋았었다.. (에릭의 두상을 닮은) 그 빵을 받고 나는 집에 가져와 식탁에 놓고 사진을 여러 각도에서 찍고, 자동차 위에 올려놓고 햇볕을 받은 대머리...아니...빵을 여러 각도에서 찍었다. 금새 말라 비틀어질 빵임을 알고 있기에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다.
자기의 빵을 그렇게 좋아하는 걸 보고 에릭은 나름대로 계산이 선 거 같다. (흠...얘는 먹는 걸 좋아하는구나...)
언젠가 그가 나에게 준 선물이 과일 꾸러미였다. 각종 과일---망고, 파파야와 같이 자자주 먹지 않는 과일에서 평범한 사과와 배, 오렌지등이 커다란 사기 그릇에 담겨있었다. 그리고 적힌 말은:
"이 맛들이 우리의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맛일 거야. 어떤 건 익었고, 어떤 건 덜 익었어. 어떤 건 시고, 쓰고, 어떤 건 달아. 그 모든 맛을 너와 함께 맛보고 싶다"....
그 선물을 받고 나는 우리가 환상과 낭만의 교과서를 졸업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단 맛보다는 쓴 맛, 신 맛, 떱더름한 맛을 기대하는 우리들은 결혼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에릭과 사귄 지 일 년이 되었을 때였다. 엄마는 나에게 물으셨다.
"일년을 사귀어보니 어떠니?"
그것은 엄마가 일년 전에 나에게 부탁하신 것과 관계가 있는 질문이었다. 엄마는 나더러 결혼을 결정하기 전에 1년은 사귀어보라고 말씀하셨었다. 그리고 일년 후에 다시 물으신 것이다.
"더 좋아."
엄마는 아무 말씀이 없었다. 그것은 내가 내 뜻을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엄마아버지가 약속을 무지 잘 지키시는 분이므로 나는 결혼 승락을 받은 셈이었다.
결혼이라...
흑...페미는 또 새로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래...가부장제도..일부일처제라. 종속적 관계.그것도 못말리는 문화적 각본인데, 내가 거기에 투항하는 거란 말이지? 흠...
그러나 어쩌나? 나는 내가 에릭을 사귀는 한, 그와 결혼하는 거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니, 다른 각본이 있긴 했다. 내가 서양에서 살면서 많이 보던 또 하나의 사랑의 각본....끈적끈적하게 피곤한 부부관계와 달리 어느 정도의 거리와 독립성이 보장되는 cool 한 남녀 관계였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불필요하게 속하지 않고, 감각적인 육체관계를 사랑의 감정보다 우선으로 두고, 개인의 피해를 최소한도로 하는 합리적인 계약관계가 있었다. 내 인생의 어느 싯점에서 내가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그런 이성관계이다.
그러나 에릭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나는 그런 'cool' 한 관계보다는 '끈적한' 관계를 원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나를 온전히 주고, 그것을 요구하고 싶었고, 그게 내가 싫어하던 '배타적인 관계'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에릭과는 그 관계를 맺고 싶었다. 적극적으로 인생을 같이 꼬아보고, 같은 공동체 의식을 갖고 살면서 남녀간의 연대를 맺고 싶었다. 결혼은 현실과의 타협이 아니라 능동적 헌신이어야한다는 내 소신을 이 남자랑은 지킬 수 있을 거 같았다.
(남들 다 하는 결혼하면서 왜 이리 말이 많은고....페미....)
결혼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남자친구' '여자친구'의 관계를 업그레이드 하고 싶어졌다. 우리는 꼭 결혼을 하려고 작정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니...나는 새로운 언어적 정의를 필요로 했다.
'피앙세'...
결혼을 약속하고 사귀는 관계.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어디론가 가서 약혼식을 올리자.
그래서 나는 샌프란시스코에 조그만 호텔을 잡았다. 비행기편도 예약했다. 에릭을 데리고 나가 50불짜리 시계를 서로 샀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로 갔다. 에릭은 내가 수선떠는 것을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또 뭔 일을 저지르려구..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성당에서 약혼식을 올렸다.
이렇게 얘기하니까 갑자기 우리가 무지 낭만적인 약혼식을 올린 거 같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약혼을? 그럴싸하다. 게다가 나중에 알고보니 그 성당이 마릴린 몬로와 조 디마지오가 결혼을 올린 곳이라나...
그러나 현실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가 묵었던 샌프란시스코의 호텔은 아주 후진 곳으로서 새벽부터 밤까지 시끌시끌한 중국인촌 시장의 한 가운데에 위치했었으며, 침대는 삐꺽거리고, 벽지는 낡았었고, 화장실은 청결치 않았다. 이국적인 도시의 전망이 좋은 방에서 촛불을 켜놓고 거품 비누 속에서 목욕하는 낭만적인 광경이란 없었다. 예물은 그리 좋은 게 아니었고, 약혼식을 올린 날 저녁 식사를 한 후에 나는 속이 니글거린다면서 호텔에 돌아와 김치 통조림을 뜯어먹었다. 오, 참, 약혼식을 끝내고 나오자마자 우리를 맞이한 것은 성대한 장례 행렬이었다. 정말 탈무드의 순간이었다.
약혼식 자체도 그저 그랬다. 도착한 다음 날, 에릭과 근처의 커다란 성당에 가서, 맨 뒤에 앉아 있다가, 신부님이 성찬을 드리는 순간---와인이 예수의 피이며, 떡이 예수의 살이라---하면서 예수와 하나됨을 선포하는 순간에 에릭을 쿡 찔렀다.
"하나되는 거야. 시계 빨리 줘! 여기 끼워 줘! 그래.."
우리는 서로에게 시계를 끼워 줬다. 그게 약혼식이었다. 대머리와 페미의 약혼식에는 하객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 성당의 신자들이 엑스트라 였습니다.-.-)
낭만적이다? 아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틀릴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은 우리 마음에 편안한 방식의 사랑 고백이자 약속이었다. '장미빛 색안경을 벗고' 우리 둘이 미래를 약속하기 위한 의식이었다.
환상이라면, 그것은 현실에 밀착된 환상이었다.
약혼식이 끝난 뒤 우리는 길 가에서 서서 샌드위치를 사먹었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관광지인 알카르타즈 섬으로 가는 유람선을 탔다. 감옥의 섬...아무도 탈출에 성공한 적이 없다고 하는 신화의 섬이다.
그 섬으로 가는 길에 우리는 안내 방송을 들었다. '저렇게 가까운 샌프란시스코를 바라보기만 하면서 섬에서 탈출하지 못했단 말이지?"
우리는 물안개 속에서 아스라히 멀어지는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를 연신 돌아보고, 점점 가까와지는 알카르타즈 섬을 기대감으로 바라 보았다.
섬에 도착했다. 내내 감옥구경이었다.
빽빽하게 붙어있는 감방들이 있는 커다란 홀(hall) 에 이르자 가이드가 자유롭게 구경을 하라고 했다. 관광객들이 이 방 저 방 돌면서 옛 감방들을 구경하는 동안, 나는 구석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했다.
나의 약혼자가 녹음된 가이드 카셋을 들고, 이 방 저 방 들여다보고 있었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는데...
그런데...갑자기 내가 그에게 채워준 약혼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감옥과 시계..
어어...그래...저거 수갑같다.
갑자기 우리가 둘 다 수갑을 차고 감옥에 들어와있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훗...나왔다. 그리고 내가 계획했던 약혼식이라는 각본에 내가 계획하지 않았던, 상상하지도 않았던 새로운 상징적 의미를 발견하는 기쁨이 느껴졌다.
그래..
우리의 약혼은 결혼이란 감옥에 들어가려는 약속이었구나.
가부장제..일부일처제의 감옥.
알카르타즈처럼 탈출할 수 없는 감옥인가?
환상의 샌프란시스코는 돌아갈 수 없단 말인가?...
되돌아 갈 수 없다...흠....
옥살이..
그려..우리, 우리의 결혼의 약속을 지키자. 공약을 지킨다는 의미의 단어, commitment에는 '옥살이' '투옥'이란 말도 있다고 해. 결혼이란 약속을 지키는 것도 그만큼 갑갑하고 외롭고 어렵겠지.
우리 이미 약속을 지키는게 얼마나 어렵다는 거 아는 상태에서
결혼하는거니까
나중에 이럴 줄 몰랐다고,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징징거리고 발뺌하지 말고, 멋지게 옥살이 해보자.
자매애, 형제애로 뭉쳐서
수갑차고 잘 살아보자.
의리있게..
우허허허..
결혼..알카르타즈
둘 만 보고 사는 우리의 감옥..
그게 에덴동산이 될 수도 있을 거 같다.
아담하고 이브도 에덴에서 쫓겨나기 전에 그랬잖아?
(갸들은 얼마나 좋았을까? 부킹할 남성도 없어, 룸살롱의 여성도 없이, 한 눈 팔 대상이 없었자녀...)
우리..
아담이랑 이브처럼 서로에게 뼈중의 뼈, 살중의 살이 되어보자.
테리우스, 아니, 대머리우스 아담, 페미니스트 이브..
우리 정말 잘 어울린다.
우허허허.
혼자 이 생각 저생각하면서 비지직 웃음을 흘리고 있던 나.
에릭이 다가왔다.
"왜 웃어?"
나는 내가 했던 '심오한 생각'을 조잘거렸다.
근데, 이 남자가, "그래? 결혼? 감옥? 헌신? 정말 그렇구나. 아담? 이브?"하고 맞장구를 칠 주 알았더니, 하는 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