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5시 반에 맞춰놓은 자명종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밖은 벌써 환하다. 출근 전에 해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 마당으로 나간다. 스티로폼 화분에서 잎이 넘실대게 자란 상추와, 약이 적당히 오른 풋고추를 따고는 수고비를 지불하듯 물 한 바가지를 퍼 안겼다. 장미의 시든 꽃대도 따 주고 몇 개 안되는 장독대를 물로 닦는 것으로 마당 정리를 끝내는 사이 세탁기도 빨래가 다 됐다고 소리로 알려준다.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빨랫줄에 식구들의 내력을 내다 넌다. 겨울 동안 실내에서만 건조했던 빨래를 밖으로 내다 널면서 마당 풍경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자주 수런대는가 하면 간간이 웃음소리도 들린다.
나는 치아배열을 흉내 내듯 빨래를 종류별로 구분해서 넌다. 따로 삶아 빤 행주와 하얀 수건은 빨랫줄의 한 가운데쯤에 키를 맞추어 나란히 널었다. 촉촉한 수건에서 풍기는 섬유 유연제 향기가 마치 목욕탕에서 갓 나온 여인의 본새를 떠올리게 한다. 하얀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고 웃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다.
고된 노역의 자국이 묻어있는 남편의 작업복 바지는 허리춤 양쪽을 빨래집게로 단단히 집어 어금니 자리에 넌다. 어쩌면 그렇게 일관성이 있게 벗어놓는지. 25년을 한결같이 토르소 모양으로 벗어놓는 남편의 상의는 반듯하게 모양을 잡아 작업복 바지 곁에 바짝 붙여서 널었다. 두 손으로 싹싹 비벼 애벌빨래까지 거친 남편의 작업복엔 아직도 기름때 얼룩이 곳곳에 남아있다.
대형 중장비 수리 전문업을 하는 남편은 자신의 기술에 대한 프라이드가 대단한 사람이다. 기계를 오래 다루어 온 탓인지 거친 성격에 고집 또한 이만저만 센 것이 아니다. 성격이 이러니 사업장에서도 종종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있다. 손님들의 여하한 잔소리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거친 남편의 성격에 윤활유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심정으로 작업복에 묻어있는 젖은 먼지를 집어낸다.
삶지 않으면 제 빛깔을 되찾지 못하는 작은아들의 흰 셔츠는 목이 늘어나지 않게 옷걸이에 고정을 시켜 사랑니 자리에 배치를 했다. 제대 후 차일피일 복학을 미루고 있는 작은아들은 아르바이트로 용돈벌이를 하고는 있지만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 어깨가 축 처져 있다. 아이는 세상은 자신감만으로 살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벌써 알아버린 것일까. 자신의 일은 스스로 알아서 할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던 갓 제대할 무렵의 자신감은 많이 사라져 보인다.
평생 발아래 깔려 존재감조차 드러내지 못했던 양말은 빨래집게로 코를 물려 물구나무서기를 시켰다. 들쑥날쑥 식구들의 취향에 따른 각양의 양말들이 꼼지락꼼지락 건들건들 꼭 내 흉을 보는 듯 수런대고 있다. 고작 세 식구의 양말치고는 그 수가 너무 많아 빨래를 모아서 한꺼번에 한 티를 내고 말았다. 하루 일감을 배당받은 빨랫줄이 휘청 늘어진다.
빨랫줄에서 이빨을 가지런히 드러내고 웃는 식구들의 옷가지들, 참 보기가 좋다. 흐뭇하다. 밥상머리에서도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이 빨랫줄에 나란히 늘어서서 손을 붙잡고 있다. 어느 결에 왔는지 밀잠자리 한 마리가 살포시 날아와 중심을 잡고 앉는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손에 물 안 묻히고 살게 해 주겠다던 남편의 약속은 손에 물 마르는 날 없는 삶으로 방향 전환을 했지만 그래도 이만한 집칸에서 이만한 재미라도 누리고 사는 게 어디냐 싶다. 물세탁 절대 금지라는 비싼 옷 한 벌 없는 삶이지만 물로 씻어내고 햇볕에 말리면서 하얗게 갈무리 지어지는 내 삶도 이만하면 족하리.
빨래를 널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또 하나 있다. 지금은 직장을 따라 집을 떠나있는 큰아들이 여섯 살 때쯤인가 내게 햇살 냄새를 알게 해 주었다. 마당에서 그림자밟기 놀이를 하고 있던 아이가 빨랫줄에 널린 이불 홑청에 얼굴을 부비며 햇살 냄새가 참 좋다고 했다. 햇살에 어찌 냄새가 있다고 한 것인지. 그날 아이에게서 듣고 처음 알게 된 햇살 냄새는 아련한 그리움처럼 내 뇌리에 터를 잡고 앉아 내가 풀 죽어 있을 때마다 까슬까슬한 향기로 추임새를 준다. 흐느적거려도 안 되고, 미지근해서도 절대로 생성될 수 없는 향기, 아이는 해님이 빨래 속에서 낮잠을 자고 간 것이라 했었다.
큰 아들의 말대로 이제 햇살은 빨래 속으로 스며들어 한숨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갈 것이다. 남편의 옷 속으로는 두루뭉수리하면서도 다정한 성격을 가진 햇살이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느슨하게 풀이 죽어있는 작은아들의 옷에는 적극적이고 패기 있는 정오의 햇살이 내려와 아이의 쳐진 어깨도 추어주고 속 깊은 얘기도 나누고 갔으면 좋으련만.
어미가 할 몫을 슬쩍 햇살에게로 떠넘기며 바쁜 출근길을 서두른다. 해지기 전에 돌아와아 할 텐데 대문을 나서다 말고 바지랑대를 조금 더 치켜세운다.
(이영순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