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명색이 도미토리라, 반나절도 못 돼 나는 어마어마한-_-? 사교성으로 도미토리의 일본아이들과 금세 친해졌다.
대부분이 학교나 직장을 쉬고 있는 20대 젊은이들인데, 델리 게스트하우스에서의 하루는 일종의 루틴(routine)이 돼 버려서, 아침에 일어나면 버릇처럼 몇몇 아이들과 뒷편의 레스토랑으로 가서 오코노미야키나 토스트 등 저렴한 식사를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는 손빨래를 하고 책을 읽고 수다를 떨곤 했다.
적잖이 일본애들과 부대낀 경험에 의하면, 일본애들은 대체로 '착하고 / 재미있고 / 소심하고 / 어리버리'하다.
일본인 게스트하우스에서 유일한 외국인으로 묵어본 경험이 많은데, 대뜸 영어로 말을 걸면 일본애들은 급당황하며 삐질삐질;;;
영어에 대한 부담감보다도, '일본인 구역'에 잠입한 '이방인'인 내가 너무 뻔뻔하게 그들의 암묵적 평화를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교육받은 바가 있으니 예의바른 일본인들은 삐질삐질하면서도 기꺼이 이방인의 말상대가 돼 준다.
장기여행하는 일본애들 중엔 루저 타입도 많지만 흥미있는 회의주의와 이상(ideal)으로 무장한 아이들도 많다.
그들 중 상당수가 일본 내에서 新 하류지향층을 형성하는 프리터族인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극단적 개인주의와 악의 씨(ㅎㅎ)같은 맹목적 전체주의의 유산 사이에 엉거주춤 걸쳐있다.
난 대체로 무관심한 편이지만, 일본 장기여행자들에 대해선 일종의 애증을 품고 있었다. 친숙함과 거리감? 애정과 경멸?
일본 여행자, 일본인 게스트하우스 특유의 골때림과 폐쇄성을 경멸하면서도, 곧잘 동참해서 즐거이 웃어넘기곤 했으니까.
어쨌건 일본 게스트하우스에서 유일한 한국인으로서 '가깝고도 먼 이웃'을 느껴보는 것도 유쾌한 문화체험이다.
일본인 특유의 이중 잣대인 '혼네와 다테마에'가 과연 일본인에게만 유효한 건지도 가물가물, 갸우뚱해진다.
아침식사를 하다 보면 테이블 밑에서 죽치던 개나 고양이들이 슬슬 접근한다.
이 아이는 벌써 몇 번을 출산했는지 젖이 남아나질 않았다. -_-
배를 살살 발로 간질러 주니 순종모드가 된다. :-)
워드머신을 수리하기 위해, 나는 빠하르간지의 구멍가게틱한 전자제품점부터 코넛 플레이스('코코넛' 플레이스랑 맨날 헷갈림)의 지하 콤플렉스까지 델리 구석구석을 전전했다. 그 노력은 결실을 이뤄, 워드머신을 정상화하는데 성공!! (본 기기 자체가 아니라 배터리가 문제였다. 오호, 유능한 인도 기술자들!!)
덕분에 이후 이집트에서 또다시 작살날 때까지(ㅠ_ㅠ) 톡톡히 워드머신의 은덕에 힘입었다. 실시간 기록은 물론, 무료할 때면 얼마든지 다운받은 e-book을 읽고 글 나부랭이를 끄적이면서 스스로 벗할 수 있었으니.
게다가 고장난 휴대용 스피커를 대신해 흥정해 새로 스피커도 구입하고, 물 끓이는 데 쓰는 돼지꼬리 등도 마련했다. 빠하르간지에선 네팔, 인도, 동남아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의 거지 패션(or 히피패션) 모드에 어느 정도 부합하게 헐렁한 알라딘 바지나 구슬달린 가방, 수제 악세사리 등도 샀다. 물론 엽서도- :-)
야무져 보이는 왼쪽 소년.
망할 워드머신. 노트북도, 넷북도 아닌 것이 휴대하려면 참 말썽이 많다.
구식 HP 워드머신 고치려고 델리 온 구석을 헤집고 다닌 걸 생각하면... 헉;
델리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다 보니 상반되는 광경도 자주 목격한다.
어느 오후, 인도인들이 여흥을 즐기는 잔디밭에 도미토리에서 만난 H와 앉아있는데, 구걸하는 아이들과 꽃파는 처녀들이 노골적으로 따라붙어 거의 피신해야 했다. 구걸하는 아이들은 절박했다. 돈 몇 푼 쥐어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러다간 온갖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일 상황. 작은 선행도 늘 간단명료하지가 않다.
그러나 시내의 번지르르한 커피숍에 가니 이 곳은 신세계. 빠하르간지 뒷골목의 허름한 숙소에 묵는 우리가 촌스러울 정도로, 때깔고운 인도 젊은이들이 자리를 잡고 담소를 나누고 있다. 나는 여기서 인도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있다는 한국학생도 만났다. 힌디가 아닌 영어 어학연수. 광고는 보긴 했다만 효과는 어떨련지 모르겠다. 인도 액센트가 강하긴 하지만 비용도 저렴하고 결국 자기 할 탓이니까.
최근 새로 개통됐다는 빠방한 지하철도 아직 노선은 적지만 샤방샤방~ 완소모드. :)
아, 얘기가 샜는데, 극빈층과 중산층/상류층이 지척에 공존하는 인도 사회가 겉보기엔 큰 위화감 없이 유지되는 비결은 역시 종교인 걸까. 뿌리깊은 카스트 제도와 윤회설에 바탕을 둔 민중에 대한 세뇌, 체념의 사회화 말이다. (그러나 불평등과 태생을 합리화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윤회, 업보설이라면- 그런 건 개나 주셈;;)
그러고 보면 '종교는 곧 마약'이라는 마오 쩌둥의 모토와 중국의 문화대혁명도 아예 근거가 없는 건 아닌데, 인도에서 힌두교는 종교라기보단 곧 생활이다. 석가모니의 열반지이자 삶의 궤적이 오롯이 각인된 신화적인(?) 장소 치고는 불교의 영향은 그러나 미미한 편. 정작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는 머나먼 옛날 실크로드를 거쳐 저 동방에서 꽃을 피웠으니, 이 아이러니란...
맛살라 도사(Dosa).
인도 남부 음식으로, 팬케잌 정도.
저녁에 게스트하우스에선 소위 비밀스런 마리화나 파티-_-가 열리곤 했다.
북인도의 마리화나 재배지인 마날리 등을 다녀온 몇몇 아이들 중심으로 (주인 몰래) 마리화나 파티가 일상이 돼 버렸다. 파티라고 해봤자 한 명이 마리화나 잎을 말아 타바코처럼 만들면, 여럿이서 느긋하게 돌려피는 형식이었다. 나는 종종 디카로 그 광경을 히덕거리며 녹화해, 나른 & 황홀 모드에 빠져있던 마리화나 주동자들-_-을 식겁하게 했다.
- 제발 지워주삼... ㅠ_ㅠ 나 수갑차고 감옥에 끌려갈지도 몰라~ @_@'
엄살투였지만, 파일을 증거자료로 경찰서에 제출하면 기소될 이유는 충분하다. 델리의 감옥에 외국인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건너건너 마약 때문에 1년간 형살고 나온 불쌍한 아햏의 얘기도 들었다. 그러길래 누가 마리화나건 LSD건 소지하고 다니래?
물론 괜한 위협 뿐이었지, 동영상 파일은 추억으로만 보관할 뿐 경찰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이래뵈도 난 소극적 쾌락주의자, 두루뭉실한 평화주의자를 자칭하니까. -_-;
첫댓글 마리화나라..... 우리나라는 그쪽 계통은 경기를 하니.. 근데 외국가면 흔하게 널렸던데요..
맞아요 우리나라에센 규제가 심하지만 외국에선 카페에서도 할 정도니까..그냥 우리의 담배 정도 수준이잖아요
이웃나라 자빠니들의 전형이란 이런말들이 오가곤 하죠. 저 친구들속엔 구렁이가 열두마리?^^; 어딜가건 숙소 루프탑에서는 대략 이러한 구도가 형성되곤 하죠. 한국인들은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술마시기.. 이웃나라 친구들과 그외 등등들은 한쪽 구석에서 악기 연주하며 조용히 마리화나 그리고 화시시의 마법 속에 빠져들기..ㅎㅎ
뉴델리는 발전되어 있고 제일 비싼 지역인데..이렇게 조금 벗어나면 올드 델리는 시골의 농가같은 풍경이죠,..
잘 읽고 갑니다
이뻐라하면 순종모드^^되는 건 타국 견종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