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피와 깨달음
가피 체험과 깨달음으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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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윤홍 대기자
기사입력 2019-02-08
가피 체험과 깨달음으로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일반적으로 기도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거나 본인이 원하는 바를 얻고자 절대적인 유일신 또는 외부에 존재한다고 믿는 절대적인 힘(Absolute Power)에 의지해서 간절하게 비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불교에서의 기도는 부처님과 불보살의 원(願)을 기반으로 하는 가피(加被)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중생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게 해준다.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불·보살의 원력과 자비가 중생의 간절함을 담고 있는 기도에 감응(感應)하여 중생이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결국 가피는 부처님과 불·보살이 중생을 구제하려는 회향의 모습이며 동시에 대자자비(大慈慈悲)의 현현인 것이다.
가피란 산스크리트어로 adhitiṣṭhante이며, ‘가지(加持)한다’ ‘지배(支配)한다’ ‘섭수(攝受)한다’는 뜻으로 부처님과 불·보살에게 위신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부처님과 불보살이 중생에게 불가사의(不可思議)한 힘을 부여해서 이익을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부처님과 불·보살이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어주는 것과 동시에 중생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 이들을 지혜와 복덕으로 지켜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가피는 중생이 간절히 원하는 바를 기도(염불)를 통해 이룰 수 있게끔 해주는 불·보살의 위신력이다.
가피의 종류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몽중(夢中)가피’, ‘현전(現前)가피’와 ‘명훈(冥勳)가피’이다. 몽중가피는 불자가 꿈속에서 부처님이나 불보살을 만나 본인이 원하는 소원을 이루는 것이다. 중생의 간절함이 끊이지 않고 이어져 바로 중생의 꿈에 나타나서 부처님과 불보살이 중생을 구제해 주는 것이다. 현전가피는 부처님과 불보살이 지금 당장 눈앞에 나타나 그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해주는 것이다. 잘 알려진 바로는 조선시대 세조와 문수동자의 이야기다. 세조는 조카인 단종을 영월로 귀양 보낸 후 왕위를 차지했다. 이후 단종은 유배된 후 죽임을 당했다. 어느 날 세조의 꿈에 단종의 어머니가 나타나 독설과 저주를 퍼부어 그 이후 세조는 몹쓸 병에 걸리게 되었다. 세조가 백방으로 노력을 기울여도 이를 고치지 못했으나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에서 기도하던 중에 문수동자가 현신하여 고쳐주었다는 이야기가 바로 현전가피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명훈가피는 꿈속에도 눈앞에도 나타나지 않지만, 평소 불자로서의 신행생활을 하면서 체험하게 되는 직접적인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불자가 느끼며 겪게 되는 부처님과 불보살의 가피로 중생이 원하는 바가 성취된다.
명훈가피는 중생의 절박한 간절함에 대한 부처님과 불보살의 감응의 결과가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지는데 중생이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중생이 이 변할 수 없는 진리를 알고 지심(至心)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가피를 받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진실한 신심을 가진 채 살아가는 불자들에게 있어서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각자가 행하는 신행이 공덕이 되어 돌아온다고 인식하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기도의 목표는 깨달음이어야…운명은 스스로 바꿔 나갈 수 있어
명훈가피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특별한 가피’는 기도를 통해 실상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지혜롭게 바라보는 혜안(慧眼)을 얻게 되는 것이고 동시에 삶의 변화를 통해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한 생각에 의해 운명이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로 뒤바뀔 수도 있으며 이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많은 작용을 한다. 이와 같은 결과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지금 한 생각을 전환하는 것에 의해 새롭게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참선을 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부처님을 부르고 화엄성중(華嚴聖衆: 신장들 즉, 신중神衆들은 화엄신중(華嚴神衆 또는 화엄성중)을 말하며, 이는 화엄경에 나오는 104분의 성현. 신장들, 8금강, 4보살, 10대명왕, 대범천왕, 제석천왕, 사천왕 등 각 천왕과 천자. 호법선신 등을 말함)을 찾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결국 아무것도 없는 상태, 진리의 당체로 들어가기 위해서다.
그러기 위해선 모든 걸 놓아버려야 한다. 분별을 끊어버리고 삼독심(三毒心·탐진치)을 제거해야 한다. 내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경계, 내가 마멸되고 사라지는 현상. 이 모든 것은 일심(一心)으로 정진했을 때 가능하다. 따라서 수행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중요하다.
복을 받기위해서 또는 병을 고치기 위해 기도하기도 한다. 불자들은 기도할 때 가르쳐 준 목표에 따라 기도를 한다. 물론 기도를 통해 복을 받을 수도, 병을 고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도의 목표는 깨달음이어야 한다. ‘내가 나를 바로 알 수 있게 해 달라’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사실 기도든 예불이든 염불이든 간경이든 모두 방편이다.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목표가 중요하다. 목표는 깨달음이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경전에 회광반조(回光返照)라는 표현이 있다. 빛을 돌이켜 자신을 비추는 것을 말한다. 경전을 읽기는 읽되 자기를 보는 것이다. 자기를 보는 경전 독송(讀誦)이어야 한다.
모든 불교경전은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된다. 내가 이와 같이 들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시아문의 무엇이 이와 같은가. 내가 들었는데, 내가 누구인가. 이렇게 바로 자신에게 묻는 것이 수행이다. 팔만대장경의 내용을 꿰뚫고 있다고 해도 자기를 바라보는 눈과 가슴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그 어떤 신출귀몰한 존재가 당신을 행복하게 하고 열반의 세계로 안내한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결국 당신이 수행의 주체이고 운명의 주인이고 행복의 디딤돌이다.
부처님은 『화엄경』에서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고 했다. 미진(微塵)속에서 우주의 실체를 본다고 했다. 인체를 해부하지 않아도 조직세포 하나만 떼어 보면 몸의 상태를 알고 병을 진단할 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주변에 벌어지는 일들을 비롯해 이 우주까지도 나로부터 비롯됐다. 옳고 그름, 행복과 불행, 잘 살고 못사는 것, 모든 것의 원인이 나에게 있다.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다. 운명에서 운(運)은 움직인다는 의미이다. 명(命)은 생명 또는 생활을 의미한다.
내 생명과 생활은 움직이는 것이다. 멈춰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내 삶은 변화시킬 수 있고, 실제로 현재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운명이 박복(薄福)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는 영원하지 않다. 지금 잘 사는 것이 영원하다는 보장은 없다.
운명은 바뀐다. 내가 지금 둔하다면 처절한 몸부림으로 지혜롭게 거듭나야 한다. 비록 현재의 처지가 어렵다하더라도 일념으로 노력하면 그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수 있다. “내 인생이 왜 이래!“하고 집어 던져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누가 잘 살게 해주는 것이 아니다. 잘 살고 못살고는 내 한생각 내려놓는 것에 달려 있다. 내 운명을 바꾸는 것은 나에게 있다. 부처님도 내 운명을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못한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조언자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어느 누구에게 예속되거나 노예가 되지 않고 오로지 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우주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운명은 바꿀 수 있다. 노력에 의해 박복을 잠재우고 행복을 불러올 수 있다. 노력에 의해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수 있다.
운명을 바꾸는 것은 내 안의 불성(佛性)을 바로 보는 것이다. 스스로 부처였음을 자각하고 중생의 굴레를 벗는 것이다. 결국 나의 운명은 어느 누가 도와주지 않는다. 나 스스로 바꿔나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운명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내 마음을 똑바로 보는 순간을 체득해야 한다. 수행을 통해 그 세계를 맛보게 되면 우리는 영원히 참다운 세계에서 살 수 있다.
수암(守岩) 문 윤 홍 大記者/칼럼니스트, moon475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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