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 온 더 보더
하성란 작
식당 문이 열리고 앞치마 차림의 청년이 나와 손님들을 들여보내기 시작했다. 입장한 손님이 자리에 가 앉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손님들을 몇 명 들여보내는 식이었는데 손님의 입장 여부가 청년의 왼팔에 달려 있었다. 간혹 제멋대로 들어가려는 손님들을 청년은 왼팔을 단호하게 내리그어 “커트‘하고는 했다. 길게 늘어선 줄이 와짝와짝 줄어들면 그녀는 ‘모종의 기대감’으로 가슴이 조금씩 부풀기 시작했다. 사실 이번 타임을 놓치면 빈자리가 날 때까지 좋이 20분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이번에 꼭 식당에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 기대감이 단순히 이번 타임에 밥을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의 왼팔이 정확히 김과 그녀의 뒤를 갈랐다. 그녀 뒤에 서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여학생 둘이 속상하다는 듯 탄성을 지르면서 동시에 발을 굴렀다. 약속이라도 한 듯한 똑같은 동작에서 어떤 장면 하나가 떠오르려다가 말았다.
입구와 가까운 자리부터 손님들이 앉기 시작해 그녀와 김은 빈자리를 찾아 식당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에어컨을 살짝 틀어놓은 것처럼 시원했다. 곳곳에 방향제와 제습제 등이 눈에 띄었지만 지하실 특유의 냄새를 숨기지는 못했다. 반년 만이었다. 그녀는 오랜만에 찾은 식당을 둘러보았다. 벽에 걸린 유화에서부터 선반 위의 낡은 인디언 인형까지 자신이 이곳에 오지 않은 사이에도 크게 바뀐 것은 없는 듯했다. 김이 들은 것도 아닌데 그녀는 재빨리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다. ‘오지 않은 사이’가 아니라 ‘오지 못한 사이’였다. 자리에 앉았는데도 두근거리는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마음 내키면 언제든 와서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맛 집이라는 소문을 타면서부터 식사 때면 식당 문 앞으로 길게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한눈에도 맛집을 찾아 다니는 젊은이들과 한가한 주부들이 많았다. 점심시간이 정해진 직장인들은 아예 엄두를 낼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식당은 2층 양옥의 지하를 개조해 만들었다. 길가로 폭이 좁고 기다란 창이 어른 턱 높이쯤까지 나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김과 그녀는 그 창의 위치와 크기를 두고 지하니 반 지하니, 옥신각신했다. 불광동 지하 방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지하방이네”라고 말했다가 김에게 꼬투리를 잡힌 거였다. 대부분의 결정을 그녀에게 양보하는 것과는 달리 김은 사소한 부분에서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그런 곳에서는 살아본 적도 없으면서 바락바락 반 지하라고 우겼다. 마치 방세를 몇 푼이라도 더 받아내겠다고 지하를 반 지하로 격상시키는 집주인처럼 고집을 꺾지 않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 몸이 축축해지는 느낌이었다. 불광동의 그 지하 방도 비슷했다. 장마철엔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숲을 헤치고 쏘다닌 듯 온몸이 눅눅했다. 창이 있지만 열 수는 없었다. 창턱이 지상과 맞닿아 있어 창문을 열면 뽀얀 먼지가 들어왔다. 가끔 창틀로 담배꽁초나 휴지 뭉치, 음료수 깡통 등이 날아오기도 했다. 환기나 채광은 꿈도 꿀 수 없던 방. 못 이기는 척 김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곤 하던 그녀도 웬일인지 그날은 끝까지 우겼다. 결국 지하니 반지하니의 문제가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올 때까지 둘의 의견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그때 그 일이 떠오르기라도 한 걸까. 김은 긴 다리를 꼬고 앉아 뭔가 잘못된 것을 바로 잡으려는 듯 천장 어딘가를 삐딱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입구 쪽에서부터 음식이 나오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잡담과 웃음소리 사이로 유리 식기에 가 부딪히는 쇠붙이 소리가 쟁강쟁강 울리는데 별안간 한 남자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돌올하게 튀어 올랐다.
“이거 뭐 가께모찌도 아니고∙∙∙∙∙∙.”
가께모찌?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었다. 순간 그녀는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김이 살짝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겹치기”라고 바로 잡았다. 겹치기라는 순화된 말이 엄연히 있었지만 그 단어로는 그 맛을 살릴 수 없었다. 사실 그 맛이란 것도, 그 현장엔 얼씬도 해본 적 없는 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모를 거였다. ‘겹치기’가 아닌 ‘가께모찌’가 되어야 그 현장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다는 걸 김은 모른다. 무더운 여름날이 떠올랐다. 매미가 극성스럽게 울어대는 바람에 음향팀이 애를 먹었다. 1년 넘게 현장에 붙어 있었지만 그동안 수중에 쥔 건 교통비 정도밖에 되지 못했다. 한창 촬영 중인데도 그녀는 일이 없어 쉬고 있을 때처럼 막막했다. 김은 죽었다 깨어나도 그 막막함을 모를 것이다.
가께모찌란 말의 맛을 기막히게 잘 살려 구사한 남자는 기껏해야 스무 살 중 후반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앉은 테이블의 대각선에 놓인 테이블이었다. 남자 하나와 여자 둘. 여자 둘이 통로 쪽 자리에 앉았고 여자 중 상대적으로 통통한 여자의 맞은편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엿들으려던 건 아니었다. 테이블 간격이 너무 비좁았다. 협소한 장소에 손님을 하나라도 더 받으려다 보니 테이블들을 바투 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른 테이블 사람들에게 들려도 상관없다는 듯 그들이 목소리 크기를 줄이지 않은 탓도 있었다. 왜 시간 간격을 충분히 두고 시작하려던 일이 가께모찌 식으로 몰리고 말았는지 그 사정이 궁금해 참을 수 없었다. 어느새 그녀는 김이 그녀를 핼끔 흘겨볼 정도로 노골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대화를 주도하고 있는 건 마주 앉은 남녀였는데 그녀는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의 대화 방식에 묘한 규칙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남자가 반말처럼 말끝을 눙치나 싶으면 그것을 상기시키기라도 하듯 여자가 깍듯하게 존댓말을 썼다. 가끔 남자와 여자, 상황이 바뀔 뿐 규칙은 바뀌지 않았다. 대체 저 둘은 어떤 관계일까. 상대방을 존중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상대방이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셋이 각자 다른 음식을 시켜 가운데 모아놓고 나눠 먹고 있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존댓말을 쓰는 사이라면 입으로 쪽쪽 빨아먹은 숟가락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의 대접에 담긴 국을 떠먹고 밥을 퍼먹는 일 같은 건 좀 그렇지 않은가. 그녀가 생각하는 상식 선에서는 그랬다. 물론 그녀와 맞은편의 김, 그들이 그렇게 친근하면서 지금껏 한 번도 서로의 밥그릇에 수저조차 대지 않은 것도 그녀의 상식 선에서 이해가 가지 않기는 매한가지였다.
전문가연하며 떠들어대는 두 사람 틈에서 다른 한 여자는 묵묵히 밥만 먹고 있었다. 두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왜소한 편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기계적으로 컵에 물을 따르고 두 사람 앞에 냅킨을 깔고 그 위에 나이프와 포크를 짝 맞춰 착착 놓아둘 때부터 그녀는 이미 그 여자에 대해 대충 파악이 끝난 뒤였다. 여자는 ‘막내’였다.
“영화하는 치들인가?”
김이 조심스럽게 칼질을 하면서 중얼거렸다. 함박스테이크 위에 올려진 달걀 프라이의 노른자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는 모습이 옹졸해 보였다. 그녀는 ‘치’라는 말에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뭔가 담겨 있다는 걸 김에게 상기시켜 주려다 말았다. 똑똑한 김이 그걸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가슴이 두근두근하는 그녀와 달리 평상시처럼 침착할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그가 오후에 있을 발표의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은 그녀가 그쪽에 줄이 있다는 걸 몰랐다. 오래전부터 김이 그 자리에 내정되어 있었다는 걸 그쪽 관계자들에게 들었을 때 그녀는 놀라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이었다. 그런데 김은 지금까지 그런 언질은커녕 오히려 너도 지원을 해보라고 그녀를 부추기기까지 했다.
“오우! 최희선이!”
대각선 테이블의 그 남자였다. 함박스테이크에 곁들여 나오는 빵이 먼저 떨어지자 막내가 독자적인 판단으로 빵을 추가시킨 모양이었다. 남자는 칭찬에 인색했다. 그것도 방법은 다르지만 자신의 울타리 단속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거 이거 니가 먹고 싶어서 시킨 거 아냐?”
식당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막내가 입을 뗐다. 왜소한 몸집과는 달리 저음에 굵은 목소리였다.
“나중에 맞을까봐요!”
어쩌면 막내도 남자가 과장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 그 빈정거림을 눈치 챘는지도 모르겠다. 남자는 가만히 있는데 옆의 통통한 여자가 탁 소리 나게 포크를 내려놓았다. 같은 국그릇에 숟가락을 섞게 할지언정 선배들의 대화에 끼는 건 아직 허락하지 않는다는 완고함이 엿보였다. 여자의 입에서 두 번째로 현장감 남치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이건 뭔 구다리?”
구다리? 난데없이 식탁 위로 개구리 한 마리가 튀어 오르기라도 하듯 김의 얼굴이 혐오감으로 일그러졌다. 그러고 보니 오전 내내 촬영 트럭 하나가 요 앞 도로 1차선을 막고 서 있었다. 정체 구간이 길게 늘어났고 행인들은 보도위에 잔뜩 늘어놓은 촬영장비들을 피해 걸어야 했다. 느지막이 연구소에 나타난 김은 다짜고짜 화부터 냈다. 젊은 스태프 하나가 길을 지나려는데 그를 향해 막대기를 마구 흔들어 대면서 “아저씨! 거기 아저씨!”라고 불러댔다는 것이다. 김은 아저씨라고 불리는 걸 싫어했다. 도로와 인도까지 막아놓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더라고 김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 “영화하는 치들”이라는 말도 그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가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말이 분명했다.
막내의 퉁명스런 대꾸에 ‘구다리’가 생각지도 못한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화기애애하던 ‘구다리’에서 눈물이 쏙 빠지는 ‘구다리’쪽으로.
남자가 이참에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듯 정색하고 말했다. “내가 만만하냐? 니가 그런 농담을 할 만큼?” 지금까지와는 달리 똑 부러지는 반말이었다. 통통한 여자가 쯧쯧 혀를 찼다. “이 바닥에서 가장 중요한 건 눈치야. 눈치. 그래야 살아남아.”
그래서 눈치가 빤한 니들은 살아남았니? 라고 묻고 싶은 걸 꼭 참았다. 먼젓번 경희에 비하면 넌 날랜 축에도 못 낀다는 둥, 누누이 이야기했다시피 네가 잘해야 우리의 ‘니쥬’가 되어줄 수 있다는 둥. 그녀와 남자의 눈이 얼핏 마주쳤을 때까지 그들의 추궁은 길게 이어졌다.
“도긴 개긴!” 김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한참 어른인 척 구는 남녀나 아무 말 없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막내나 그녀가 보기에도 오십보백보였다. 나이답지 않은 심각함 때문에 그들의 대화는 과장되어 보이고 미성숙함이 물씬 드러났다. 잘 나가는 척 으스댐으로써 스스로 ‘쌈마이’라는 걸 드러내는 꼴이었다. 그 시절 그녀도 그 사실을 몰랐다. ‘리마이’이고 싶었지만 현실은 늘 ‘쌈마이’이던 그 시절에 말이다.
*
남자가 일어서자 통통한 여자가 의자에 걸쳐둔 겉옷을 챙겨 들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막내가 일어섰다. 앉아 있을 땐 몰랐는데 막내는 키가 컸다. 선배들보다 얼굴 하나는 더 있었다. 체격도 웬만한 남자만큼 건장한 편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왜소하게 느껴졌을까. 식당에서 나갈 때도 상하 질서가 그대로 드러났다. 선배들이 앞서고 막내가 뒤따랐다. 그제야 막내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 반쪽에 그림자가 졌다. 로션도 바르지 않은 듯 까칠하고 윤기라곤 없었다. 이 모든 게 다 식상하다 는 듯한. 앞으로도 크게 변할 게 없을 거라는 듯한, 겪어보지 않았지만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 뒤섞여 있었다. 막내가 입을 꽉 다물었다. 그녀도 그런 표정을 지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일도 술을 마시는 일도 남자를 사귀는 일도 다 시큰둥하던 시절. 에어로빅 학원에서 그녀는 사오 십대 아주머니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딸 뻘인 그녀를 아주머니들은 “선생님”하고 불렀다. 단물 빠진 껌 냄새가 섞인 시금털털한 입 냄새를 풍기곤 했다. “선생님은 젊어서 몰라. 별거 없어 진짜 별거 없어.” 그렇게 말할 때면 아주머니들의 눈빛은 누군가 다 훔쳐가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창고 같은 눈빛이 되고 했다. 가끔 그녀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고 가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선생님 언제까지 젊을 줄 알어? 금방이야, 금방.”
막내가 왜소해 보인 건 필리핀 여자 같은 검붉고 작은 얼굴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빛이 바랜 날고 값싸 보이는 야상 때문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 야상의 주머니 속에는 교통카드 한 장과 비상금 몇 천원이 반듯하게 접혀 들어 있을 것이다.
“선배라고 복날 개 잡듯 잡네.” 김이 혀를 찼다. 복날 개도 잡아본 적 없으면서 “그렇죠? 선배니임?” 그녀의 익살에 김의 입가가 샐쭉했다. 그녀와 김은 동갑이었다. 그녀가 3년 늦게 대학에 입학하고 김이 군대에 다녀오는 바람에 3학년 2학기와 4학년을 같이 다녔다. 늦게 입학한 탓에 그녀 또한 김처럼 현역들에게 ‘예비역’이라고 불렸다. 그 시절 선배라는 이름으로 김이 그녀를 복날 개 잡듯 잡은 적이 있었나? 없었나? 그건 그렇고 왜 김은 여태껏 그녀에게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은 걸까. 따로 점심을 먹자고 불러냈으면 말을 꺼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오늘 오후면 발표가 날 일이었다.
빈자리는 재깍재깍 새로운 손님들로 채워졌다. 어느 테이블에선가 코를 톡 쏘는 향신료 냄새가 풍겨왔다. 코를 킁킁거리고 있는데 김이 새삼스럽게 뭘 그러느냐는 듯 말했다. “여기 카레 하잖아.” 그제야 이곳 메뉴 중에 카레가 있다는 게 떠올랐다. 함박스테이크 위에 카레 소스를 끼얹은 소스라고 별미라고 했다. 곁들임으로 나오는 숙주나물이 사각사각 씹히는 맛도 일품이라고 했다. 메뉴판에 깨알 같은 손글씨로 다 적혀 있었다. 반년 전 식당이 맛집으로 소문나기 전만 해도 그녀는 연구소의 직원들과 2,3주에 한 번 꼴로 이 식당에 들렀다. 숙주나물이 싫었는지 카레가 싫었는지 결코 눈여겨보지도 않았고 시킨 적도 없는 메뉴였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 그래서인지 음식의 이름도 독특했다.
카레향 뒤로 물비린내가 흠씬 몰려오면서 얼굴만큼이나 둥글둥글하던 여자애의 이름이 떠올랐다. 영은이? 아니 은영이었던가? 그때나 지금이나 그 여자애의 이름을 혼동하는 것은 똑같았다. 왜 자꾸 남의 이름을 바꾸느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던 여자애의 얼굴 뒤로 동시에 발을 구르던 여자애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녀는 다시 무언가를 몹시 기다리는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10여 년 전 그날의 호출은 밤 11시가 다 된 시간에 왔다. 그 시간에 오는 호출은 대부분 상대편 남자 수가 예고 없이 늘어난 경우였다. 그 무렵은 그녀가 에어로빅 학원을 그만두고 영화 쪽으로 일을 튼지 1년이 지나고 있을 때였다. 조명 팀의 회식 자리였다. 삼겹살을 먹고 나서 입가심으로 맥주 한잔 하자는 것이 전철역 근처의 호프집 술자리로 이어졌다. 선배들의 맥주잔이 비고 공짜 안주로 나오는 팝콘 그릇이 빌 때마다 막내인 그녀가 일어나 주문을 하곤 했다. 취할 새가 없었다. 가끔은 근처의 편의점으로 달려가 담배를 사 오기도 했다. 담배를 사 오는 길에 어두운 골목에 숨어 급하게 담배를 피웠다.
막차 시간이 다가오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서는 바람에 파장 분위기였다. 마음 편하게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여유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몇 개월째 임금도 받지 못했다. 그 자리는 영화 한 편을 끝낸 걸 축하하는 자리기도 했지만 돈 한 푼 받지 못한 스태프들의 불만과 불평을 잠재우려는 입막음 자리이기도 했다.
문자창에 클럽 제이드라고 떴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조명 팀 팀장이 스태프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부르면 진작 부를 것이지. 후보선수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지만 후보선수라도 선수는 선수였다. 아직 운동장에 서 있는 것이다.
적어도 클럽 제이드 같은 데서 술을 마실 남자들이라면 일단 기본 이상은 된다는 걸 의미했다. 그럼 영은이? 동글동글한 그 애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로 이런 건수는 영은이가 물어오곤 했다. 영은이는 대기업 계열사인 대형 놀이공원의 무용수였다.
영은이의 천진난만한 표정이 떠올랐다. 에어로빅 학원에서도 그랬다. 한 기수가 서른 명이 넘었다. 그 서른 명이 3개월 만에 동시에 에어로빅 3급 자격증을 딸 수 있다고 했다. 영은이는 아무 때나 그런 표정을 짓곤 해서 선배들의 부아를 돋우곤 했다. 겨우 두세 살 많을 뿐인데 선배들은 한참 어른인 것처럼 굴었다. 마치 오랫동안 득음을 목표로 소리를 한 사람들처럼 선배들은 하나같이 목소리가 쉬어 있었다. 그것이 구령 때문인지 담배와 술, 불규칙한 생활 때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단체 기합을 받고 서 있던 모습도 떠올랐다. 아마 여자 라카룸 도난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나라는 구령에 팔을 굽히고 둘이라는 구령에 팔을 폈다. 그 힘든 동작을 하는데도 영은이는 무슨 영문인줄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뒤에 있었는데도 그녀가 영은이의 표정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던 건 그녀들 앞에 있던 전면 거울 때문이었다. 땀이 흘러 겨드랑이와 가슴에 땀자국이 선명했다. 거울 속 땀이 흘러 번들번들한 영은이의 왼팔에 어김없이 대일밴드가 붙어 있었다.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클럽 제이드로 갔다. 가게 간판의 불들이 꺼지고 어두컴컴한 도로에서 만취해 택시를 잡으려는 취객들이 눈에 띄었다. 인적이 끊기는 밖과는 달리 클럽 제이드는 한층 더 열기가 고조된 듯했다. 클럽 문 손잡이를 잡은 채 그녀는 안에서 새어 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었다. 가슴이 설렜다. 그녀는 클럽에 들어가서도 잠깐 서 있었다. 입구에 가만히 서서 반 층 아래의 무대에서 춤을 추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미러볼이 돌아가고 음악 소리에 금방 귀가 먹먹해졌다. 그녀 속에는 아직도 리듬감이 살아 있었다. 그 리듬감만 믿고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에어로빅 학원에 수강 신청을 했다. 3개월 만에 강사 자격증을 따면 고등학교 동창들이 대학 신입생이 되는 봄에 자신은 벌써 돈을 버는 사회인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대를 지나서 클럽 안쪽 룸으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자 흘낏 남자 몇이 그녀를 보았다. 노래방 기계 앞에서 열심히 탬버린을 흔들던 영은이가 그녀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영은이가 마이크에 대고 “영화하는 친구예요!”라고 소리 질렀다. 우! 남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영은이는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스쿨걸 룩이었다. 짧은 치마 아래로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을 신었는데 어두운 조명 탓인지 중학생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여자애들은 다 아는 애들이었다. 겨우 3개월 같이 학원을 다녔을 뿐인데 관계는 오래갔다. 고작 3개월이었는데 그 안에서 편이 갈리고 무성한 소문이 만들어졌다. 결국 3개월을 참지 못하고 그만두는 아이들이 있었다. 서른 명이 넘는 기수에서 그녀들이 뭉친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녀들이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그 길에 뛰어들었다는 이유였다.
남자들은 취해 있었다. 넥타이를 풀고 와이셔츠 단추를 두어 개 푼 편안한 모습으로 소파에 깊숙이 등을 대고 앉아 술을 마시고 돌아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어디에도 브랜드가 없었지만 그녀는 한눈에 그들이 입고 있는 셔츠가 값비싼 거라는 걸 간파했다. 체격은 다 달랐지만 그들이 입고 있는 와이셔츠의 ‘핏’은 하나같이 딱 떨어졌다. 맞춤 셔츠 같았다. 드러내놓고 나 뭐다, 라는 브랜드가 없는 옷이 진짜라고 엄마는 말하곤 했다. 좋은 옷을 알아채는 건 다 엄마 덕이었다. 엄마는 그녀는 물론이고 그녀의 오빠와 남동생에게도 좋은 옷을 입히려 했다. 자연스럽게 안목이 생겼다. 영은이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인지 몰랐다. 다들 영은이가 좀 사는 집안의 딸이라고 했다. 저 나이가 될 때까지 저렇게 세상 물정을 모르는 것도 다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든든한 부모가 있기 때문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영은이의 동그랗게 뜬 눈 뒤에서 석연치 않은 그 무엇인가를 보았다. 뭐라 꼭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좋은 옷과 그렇지 않은 옷을 구분하는 것과 같았다. 재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값싼 옷은 뒤처리가 말끔하지 않았다. 대충 처리한 시접은 쉽게 올이 풀렸다. 단추도 대충 달아놓아 금방 떨어져 달아나기 일쑤였다. 영은이에게서도 어딘지 모르지만 급하게 시접을 처리한 듯한 느낌이 들곤 했다.
늦은 시간에 그녀를 불러내게 한 장본인은 만취한 친구들과 조금 떨어져서 자작을 하고 있었다. 그 앞에 앉아 배낭을 풀었다. 촬영할 때 배우가 돌린 캔 음료가 두 개가 배낭 아래로 떨어지면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삼겹살 냄새가 좀 빠진 다음에 올 걸 그랬다. 그가 그녀 앞으로 잔을 밀고 술을 따라주었다. 스트레이트로 한 잔 들이켰다. 의외라는 듯 그의 한 쪽 눈썹이 올라갔다. 식도 저 아래쪽에서부터 탁구공 크기만 한 불덩이 같은 것이 천천히 올라왔다. “∙∙∙∙∙∙그럴 땐 저 속에서 이만한 울화가 올라와.” 밑도 끝도 없이 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주머니가 주먹 쥔 손을 그녀 앞에 들이대고 흔들었다. 물에 분 듯한 손이 놀랄 만큼 하얬다. 에어로빅을 그만둔 지 1년도 넘는 그때까지 종종 그런 일들이 떠올랐었다.
좋은 술이었다. 그가 다시 빈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이번에도 단숨에 비웠다. 맞은편의 그도 질세라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어느 틈에 그와 그녀는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영화판의 용어가 마구 튀어나왔고 그는 별다른 대꾸 없이 그녀의 손을 꼭 쥐고만 있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노래방 기기 앞에서 악을 쓰듯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한눈에도 노래를 듣는 사람은 없었다. 끼리끼리 붙어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노래가 끝날 만하면 다시 후렴구가 나왔다. 영원히 노래가 끝나지 않는 건 아닐까. 누군가 제발 이 노래의 2절을 받아 불러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허리를 구부리고 정지 버튼을 찾으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그녀 곁에 와 섰고 노래를 받아 불러주었다. 영은이였다. 몇 소절 같이 불러 보았을 뿐인데 의외로 호흡이 딱딱 잘 맞았다.
술은 마셔도 맞담배는 결례라는 생각이 있었나 보다. 그녀들은 두셋씩 짝을 맞춰 화장실에 가 담배를 피웠다. 사이사이 룸에 있는 남자들도 씹었다. 은근슬쩍 내 허벅지에 손을 올렸어. 내 허리에 팔을 둘렀어 따위의 이야기였지만 다들 분개하지는 않았다. 누군가 말했다. 그들이 대기업 사원이고 유부남들이라고. 이번에도 분개하지 않았다. 누군가 영은이 이야기를 꺼냈다. 영은이가 얼마 전 놀이공원에서 잘렸다는 거였다. 아무래도 오늘 이 자리에 있는 한 남자 때문인 것 같다는 말도 나왔다. 이번에도 분개하는 사람이 없었다.
클럽에서 나왔을 때는 새벽이었다. 영은이는 건주정을 부리는 남자들을 요령 있게 잘 다루었다. 남자의 겨드랑이에 제 어깨를 끼워 넣어 부축하고 택시를 태웠다. 한 남자가 영은이의 귀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했고 영은이는 크게 놀란 듯 예의 그 표정을 지었다. 학원의 여자 선배들과는 달리 영은이의 그 표정을 남자들은 좋아했다. 귀엽다는 듯 남자가 영은이의 뺨을 꼬집었다. “넌 몰라. 외로운 게 뭔지 아직 넌 몰라.”
마지막 남자까지 택시에 태워 보낸 뒤 영은이가 마지막 이삿짐을 실어 보낸 사람처럼 두 손을 털었다. “대단하지 않니? 저 오빠들 저렇게 술 먹고도 새벽같이 출근해. 겨우 두 시간 자고 회사에 나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라도 되는 양 영은이는 감동해서 말했다.
*
왜 그 새벽에 불광동 지하방으로 가지 않고 영은이를 따라갔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남자들이 돌아간 뒤에도 그녀들은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근처 해장국 집에서 죽치다가 새벽 첫차를 탔다.
지하 구간을 달리던 전철이 지상으로 나왔다. 어느새 해가 떠 있었다. 눈을 찌를 듯한 햇빛이 쏟아졌다. 스포트라이트처럼 해가 그녀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그대로 해를 보았다간 눈이 멀 지경이었다. 이런 아침 햇살이 그녀는 익숙지 않았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날이면 정오가 넘을 때까지 내처 잤다. 아침 햇살이 창으로 들어와 잠을 방해했다는 말은 그즈음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 중 하나였다. 불광동 지하 방에는 해가 들지 않았다. 그 방에는 주야장천 늘 짙은 어둠이 고여 있었다. 지하 방은 지상에서 고작 열 계단 아래였다. 그런데도 그녀가 상상할 수 없는 어둠이 펼쳐졌다. 불을 켜는 스위치를 찾을 때까지 그녀는 한참동안 어둠을 더듬곤 했다. 그때가 가장 싫었다. 어둠 속에서 뭔가 다른 것이 만져질 것 같았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그녀는 어둠에 짓눌렸다. 건장한 남자 같았다. 숨이 막혔다. 북쪽 벽에는 검은 곰팡이들이 피어 있었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발이 그 쪽에 닿을라치면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발을 떼곤 했다.
영은이는 입을 벌린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햇빛이 싫은지 꿈틀대는 노래기처럼 얼굴 표정이 자꾸 바뀌었다. 밤새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영은이는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새벽까지 활짝 웃었다. 두터운 화장 위로 자글자글 웃음 주름이 패어 있었다. 아이섀도가 눈 밑까지 번지고 화장 위로 살얼음이 얼듯 유분막이 올라와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10년은 늙은 것 같았다. 에어로빅 학원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이 떠올랐다. 쫄쫄이 스판 운동복 속으로 소시지 같은 살집이 울룩불룩했다. 반쯤 지워진 입술 화장이 지워진 입으로 아주머니들이 그녀에게 말했다. “금방이야, 금방. 방심하는 사이에 금방,” 결국 에어로빅 강사 일을 그만둔 건 아주머니들 때문이었다. 깜빡 존 모양이었다. 영은이가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
영은이의 집은 전철역에서도 꽤 걸어 올라가야 했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자 개발이 되지 않은 낡은 집들이 나타났다. 비탈길은 가팔라졌다. 한겨울이면 자동차는 아예 올라갈 엄두도 내지 못할 듯 했다. 목이 말랐다. 얼마나 이 비탈길을 오르내렸는지 영은이는 산다람쥐처럼 비탈길을 탔다. 그 애의 양손에는 전철역 근처의 슈퍼에서 장을 본 검은 봉지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짧은 치마와 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 사이 스타킹 올이 풀려 있었다. 아침인데 해는 중천에 떠 있는 듯했다. 새벽까지 마신 술이 깨기는커녕 도로 취기가 올라오는 듯 속이 매스꺼웠다. 그녀가 힘이 들어 잠깐 멈춰 서면 영은이가 뒤돌아보고 생긋 웃었다. 영은이는 그녀가 얼마큼 자신을 따라잡을 시간을 주었다가 다시 걸어올라 갔다.
지은 지 오래된 빌라였다. 빌라의 창들은 먼지가 자욱했다. 그나마 창틀 높이 물건을 쌓아두어 안이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그곳에 오래 있었는지 종이 가방의 빛이 햇빛에 바래 있었다. 한눈에도 날림 공사로 지어진 빌라라는 걸 알 수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는 순간 알아졌다. 챌판의 높낮이가 다 들쑥날쑥했다. 디딤판은 수평이 맞지 않았다. 계단을 딛고 올라갈 때마다 몸이 뒤로 밀리거나 앞으로 쏠렸다. 4층으로 올라가는 일이 비탈길을 올라오는 일만큼이나 힘에 부쳤다.
영은이가 검정 비닐봉지를 바닥에 내려놓고 열쇠를 찾아 현관문을 열었다. 손바닥만 한 현관에 달랑 삼선 슬리퍼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바닥에 고여 있던 쿰쿰한 냄새가 조용히 일어났다. 안방 문은 닫혀 있었고 현관 맞은편 화장실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결국 그녀들을 반긴 건 뚜껑이 열린 낡은 변기였다. 바닥엔 줄눈이 맞지 않은 타일이 깔려 있었다. 타일을 다 뜯어내서 반듯하게 재정렬하고 싶은 욕구가 이는 화장실이었다.
영은이를 따라 안방 반대편 쪽으로 들어갔다. 빌라의 구조가 특이했다. 안방과 화장실 앞의 통로를 지나면 부엌이 나타났다. 부엌은 아주 작았다. 부엌과 안방을 연결하는 통로가 두루미의 목처럼 가늘었다. 부엌 앞의 작은 방에는 크고 작은 상자들이 가득 쌓여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 영은이가 겉옷을 벗어 상자 위에 걸쳐두었다. 대일밴드는 영은이의 오른팔에 붙어 있었다. 영은이의 모습을 거울 속으로 보는 게 더 익숙했다. 그녀도 그 상자 중 하나에 옷을 걸쳐놓고 다른 상자에 등을 대고 앉았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맡았던 쿰쿰한 냄새가 더 짙어졌다.
그녀가 발을 뻗은 곳에 스펀지를 넣은 삼단요와 이불이 가지런히 개켜져 있었다. 잔뜩 눌린 베개 두 개도 보였다. 백설공주가 프린트된 베개는 침 자국으로 얼룩덜룩했다.
“배고프지? 잠깐 기다려?” 그 순간부터 영은이는 손놀림이 바빠졌다. 검은 봉지에서 꺼낸 채소들을 개수대에 쏟아부었다. 과도를 꺼내들더니 빠른 속도로 감자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몇 번의 칼질에 뽀얗게 속살을 드러낸 감자가 나타났다. 양파도 마찬가지였다. 눈물이 나는 지 몇 번 훌쩍거리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반쯤 입을 벌린 채 그 모든 것을 보았다. 감자는 깍둑썰기하고 당근은 반달썰기했다. 모든 동작은 에어로빅 한 세트처럼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연결이 되었다.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고 냄비가 달궈질 때를 기다리면서 양파를 썰었다.
그때 안방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노인이 나와 부엌 쪽을 살폈다. 아버지뻘이었다. 반팔 러닝에 칠 부 길이의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아버지보다 더 늙은 것도 같았다. 아버지는 흰 머리카락이 자라서 보이기 전에 염색을 하곤 했다. 염색을 하지 않는다면 아버지도 저 노인뻘일 것이다. 그럼 영은이의 아버지인가? 인사를 하려 엉거주춤 일어서려는데 노인이 괜찮다는 듯 손짓을 했다. 영은이는 누가 문을 열었는지 안 보고도 아는 모양이었다. 양파를 볶으면서 소리를 높였다. “배고프시죠? 좀만 기다리세요!”
대체 몇 살 때부터 요리를 해야 저런 실력을 가지게 되는 걸까. 서울로 올라온 지 2년째였지만 그녀의 요리 실력은 늘 그 자리였다. 영은이의 실력은 한눈에도 평생 가정주부였던 엄마의 요리 솜씨보다 한 수 위였다.
그쯤 영은이는 상을 펴고 밑반찬들을 고루 꺼내놓았다. 그때 안방 문이 다시 열렸다. 아까 그 노인인가 싶었다. 그런데 어딘가 좀 달랐다. 반팔 러닝에 칠 부 파자마 차림이었지만 이전 노인보다 조금 더 마른 듯싶었다. 게다가 무릎도 아까 노인보다 밖으로 더 굽어 있었다. 아버지의 형님인가? 그럼 영은이는 몇 분의 노인을 모시고 있는 건가? 의아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노인이 놀란 듯했다. 부끄럽다는 듯 노인이 문을 닫았다. 카레가 끓기 시작했다. 카레 냄새가 조금씩 더 짙어졌다.
소리도 없이 문이 다시 빼꼼 열렸다. 이번에는 다른 노인이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체형이 완전히 다른 데다가 이 노인은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듯했다. 그제야 영은이가 잊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는 듯 “어마, 내 정신!”했다. 김치 국물이 묻은 손을 수돗물로 대충 헹구더니 쪼르르 안방 안으로 사라졌다. 잠시 뒤 나온 영은이의 손에 무언가 들려 있었다. 요강이었다. 가득찬 듯 영은이는 조심조심 요강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급하게 요강을 헹구는 소리가 들렸다. 스댕 요강이 자꾸 바닥에 부딪히며 쇳소리가 났다. 화장실에서 나온 영은이가 빈 요강을 안방 안에 밀어 넣고 다시 문을 닫았다.
지난밤 영은이는 집에 오지 않았다. 대체 저 방에 몇 명의 노인이 있는 걸까. 밤새 노인들이 번갈아 눈 오줌이 요강 가득 찼을 것이다. 참다 참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문을 열고 영은이에게 신호를 보낸 거였다.
요강을 헹군 손을 제대로 닦지도 안은 채 영은이가 밥을 푸고 카레를 끼얹었다. 작은 밥상에 다섯 개의 밥그릇이 놓였다. 그녀가 방금 본 노인 셋 그리고 영은과 자신. 처음 보는 노인들과 겸상을 해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순간 그 노인들이 오줌인지 화장실 냄새인지 알 수 없는 역한 물비린내가 밀려왔다. 그 모든 냄새를 지우 듯 집안 가득 카레 향이 진동하고 있었다.
영은이가 상을 들었다. 가느다란 손목에 힘줄이 파랗게 일어났다. 두루미처럼 좁은 통로를 통과할 때는 마술 같았다. 상을 낮게 들면 튀어나온 싱크대의 하부장 때문에 상이 빠져나가지 못했다. 영은이는 일단 상을 가슴높이까지 들어올렸다. 수평이 잠깐 어긋나면서 상 위의 그릇들이 조금 쏠렸다. 영은이와 그녀가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영은이가 몸을 돌려 먼저 빠져나가고 상을 빼냈다. 그다음 다시 몸을 돌렸다. 잠시 뒤 닫힌 안방 문 너머에서 수저질 소리가 났다. 영은이가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했다. “천천히 드세요! 꼭꼭 씹어 드세요. 아셨죠?”
상 위에 차린 두 개의 밥은 그녀들 몫이 아니었다. 안방 안 아직 그녀가 만나지 못한 노인 둘이 더 있었다. 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노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쿰쿰한 냄새의 진원지는 안방이 틀림없었다.
영은이는 작은 방에 쌓인 상자 하나 위에 신문지를 갈고 카레를 얹은 접시 두 개를 놓았다. 김치를 놓으니 다른 반찬을 놓을 공간이 없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신 데다 급하게 요리를 만드느라 영은이는 지쳐 보였다. 땀에 젖어 앞머리가 이마에 달싹 달라붙어 있었다. 비위가 상했지만 그녀는 영은이의 수고를 생각해서 겨우 카레밥 한 술을 입에 떠 넣었다. 도대체 카레에 뭘 넣은 걸까? 엄마는 카레에 사과를 갈아 넣고는 했다. 하지만 그 맛이 아니었다. 영은이의 요리 과정을 다 지켜 보았지만 특이하달 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 거지? 비위가 상하는데도 그녀는 숟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영은이의 팔뚝에 붙은 대일밴드가 땀 때문에 접착력을 잃고 반쯤 떨어져 있었다. 왜 늘 그곳에 대일밴드를 붙이고 있는 건지 궁금했었다. 흘깃대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자신의 팔뚝을 내려다보던 영은이가 “아, 이거?”라며 수줍게 웃더니 간당간당 붙어 있던 대일밴드를 잡아 뗐다. 작은 상처나 점이 있는 건 아닐까 상상했었는데, 거기엔 한자가 새겨져 있었다.
一心.
영은이는 번들거리는 얼굴을 들고 너도 다 아는 것 아니냐는 듯 동조의 눈빛을 보냈다. “다 철없을 때∙∙∙∙∙∙.”그녀들은 이제 스물둘이었다. 그녀가 영은이를 처음 만났을 때는 열아홉이었다. 그때도 영은이의 팔뚝에는 대일밴드가 붙어 있었다.
남자친구가 곧 온다고 보고 가라는 영은이의 말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려 했지만 영은이가 눈짓으로 괜찮다고 했다. 그 노인들이 몇 명이고 누구인지 영은이는 끝내 말해주지 않았다. 왜 일심이라는 문신을 새기게 된 건지도 말해주지 않았다. 다 알지 않느냐는 영은이의 눈빛과는 달리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녀는 겨우 스물두 살이었다. 대체 어떤 마음을 먹어야 팔뚝에 그런 단어를 새길 수 있는 걸까. 음식을 했던 부엌 싱크대 앞의 그 좁은 공간에 밤이면 영은이는 요를 깔 것이다. 요 위에 겨우 베개 두 개가 놓일 것이다. 소리죽여 영은이는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룰 것이다. 문도 없는 부엌의 자투리 공간에서,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안방 문이 빼꼼 열리고 열 개의 눈이 반짝거리면서 그 광경을 훔쳐볼는지도 모른다.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그녀는 쏜살같이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날림 공사로 만든 계단에서 몇 번이나 구를 뻔했지만 용케 중심을 잡았다. 에어로빅으로 다져진 운동 신경 때문이었다. 1층까지 왔지만 커다란 손이 나와 그녀에게 검은 그물을 드리울 것만 같았다. 안방 문 뒤에선 대체 어떤 풍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일까. 나이 든 노인들이 엇비슷한 차림으로 앉아 종일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것 같았다. 오징어를 말리는 듯한 냄새는 늙음과 죽음 그리고 가난의 냄새일지도 몰랐다. 진한 카레향으로도 가릴 수 없는 냄새. 그것이 너무도 공포스러워서 영은이는 늘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지도 모른다.
빌라에서 조금 벗어났을 때에야 그녀는 4층 영은이의 집을 올려다보았다. 거기 먼지로 안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는 두 쪽짜리 창이 있었다. 그 창 너머로 노인 다섯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비위가 상했다. 어제저녁에 먹었던 삼겹살부터 차례로 들고 일어나는 듯 배 속이 요동을 쳤다.
그녀는 헛구역질을 하면서 비탈길을 내려왔다. 그녀가 그 골목 어딘가에 먹은 것을 게우지 않은 것은 다 카레의 위력이었다. 카레라는 향신료가 가지고 있는 강한 살균력 때문이었다.
*
“어째 이상하다 했어.” 문득 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감의 시선이 그녀의 등 뒤에 꽂혀 있었다. 식당에 들어설 때부터 못마땅하다는 듯 계속 보던 곳이었다. 그녀도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곳에 붉은 색이 잔뜩 섞인 추상화 한 점이 걸려 있었다. “잘 봐. 어째 저 그림 위아래가 바뀐 거 같지 않어?” 그랬나? 반년 전과 식당은 바뀐 게 없는 듯했다. 그녀가 오지 않은 사이가 아니라 오지 못한 사이에. 위아래를 바꿔 걸어 놓는다 해도 무슨 그림인지 여전히 모를 것 같았다. 중요한 건 위아래가 바뀐 그림이 아니었다. 왜 김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인가.
식당 앞에는 여전히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녀와 김이 나오자마자 두 사람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면 늘 그랬던 것처럼 김과 골목을 한 바퀴 돌았다. 김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자신이 내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왜 그녀에게 지원서를 내라고 부추겼던 걸까. 그녀가 알기로 공석은 딱 하나뿐인데 말이다.
영은이의 집에 다녀와서 그녀는 불광동 지하방에서 잠을 잤다. 며칠이 지났는지 알 수 없다. 전화가 걸려 왔지만 받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디론가 떠돌고 있었고 엄마는 예전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채 백화점 쇼윈도 앞을 서성이고 있을 거였다. 열흘쯤 잔 것 같았는데 일어나보니 겨우 하루 반이었다. 그녀는 슬리퍼를 질질 끌면서 동네 삼겹살집으로 갔다. 여종업원이 다가와 말했다. “일 인분은 안 돼요. 아시죠?” 물론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영은이들과 만나지 않게 된 건 그녀가 집이 있는 지방으로 내려갔고 1년 뒤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이었다. 단언컨대 그녀가 영은이들과의 연락을 끊은 게 아니었다. 그녀가 대학에 들어갔다는 말을 전해 듣는 순간 자연스럽게 영은이들이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에어로빅 학원 시절 그들이 뭉친 건 그녀들이 고졸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영은이들은 잊혔지만 가끔 영은이 때문에 들렀던 고급스런 클럽들이 떠오르곤 했다.
김은 곧 이곳을 떠나 다른 연구소로 떠나게 될 것이다. 함박스테이크가 햄버그스테이그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는 모든 단어들을 순화시키느라 남은 생을 바칠 것이다. 그녀가 가끔 중얼거리고 숨통을 틔우는 그 단어들을 하나하나 다 바꾸려 들 것이다. 식모가 가정부로 차장이 안내양으로 바뀌는 순간 덩달아 사라졌던 것들이 떠올랐다. 누군가 말했다. 한 개인의 사회적 자아는 그 개인의 언어에 깊은 자국을 낸다고. 똑똑한 김이 모를 리 없었다.
그녀는 아까 식당 앞에서 줄을 서 있을 때부터 느끼던 모종의 기대감을 떠올렸다. 김이 들었다면 ‘어떤 종류의 기대감’이라고 고쳐 말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기대감이라고 해서는 그 맛이 살지 않는다. 반드시 모종의기대감이어야 했다.
끝내 촬영 트럭이 말썽이었다. 대체 누구 허락을 받고 이런 데 서 있는 거냐고 김이 툴툴거렸다. 왜 저 남자는 저렇게 쩨쩨한 걸까 생각하다가 그만 촬영용 커다란 상자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손바닥이 뾰족한 것에 찔리는 순간, 그녀는 풍선의 공기가 새기 시작했다는 걸 느꼈다. 삐리릭, 공기가 새면서 요란한 동작으로 날아오르다 바닥에 패대기쳐지는 풍선이 떠올랐다.
열아홉 그해 겨울, 그녀들은 울긋불긋한 에어로빅복 위에 점퍼를 걸치고 곧잘 포장마차로 갔다. 혼자라면 그 차림으로 길가에 나설 용기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여럿이라면 사정이 달랐다. 만약 그 차림으로 시내를 활보해야 했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묘한 복장에 길 가던 사람들이 그녀들을 돌아보았다. 가끔 노골적인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녀들은 침을 뱉듯 쏘아붙였다. “눈 깔엇!”
그녀는 넘어진 그녀의 손을 잡아주기는커녕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김에게 침을 뱉듯이 그녀가 아는 가장 모욕적인 욕을 날려주었다. 10년 묵은 체증이 뚫리는 느낌이었다. 김의 얼굴이 묘하게 바뀌었다. 그는 방금 자신의 귀가 들은 것을 의심했다.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 순간 그의 얼굴은 지금껏 자신이 알아왔던 것에 대한 의구심과 배신감으로 일그러졌다. 무엇보다 그녀는 아까부터 그녀를 두근거리게 하던 정체 모를 기대감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십수 년을 걸쳐 질질 끌어오던 김과의 관계가 끝나는 거였다. 식당의 청년처럼 왼팔을 단호히 내리 그으면 될 일을 이제껏 끌어 왔다. 김은 예정대로 그 연구소로 갈 것이다. 식당의 카레 메뉴 이름이 떠올랐다. 카레 온 더 보더였다. 김은 못마땅한 듯 이맛살을 찌푸리곤 했다. 똑똑한 김이 그 메뉴의 이름을 어떻게 바꿀지 궁금했다. 맛이라곤 짜고 단것밖에 분간하지 못하는 그가.
끝
수상 소감 바로 그 방법으로
갈치를 손질하다가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래 전 예약 주문해 둔 갈치가 도착하는 바람에 저녁보다 분주해져서 첫 번째 울린 전화 벨 소리는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스티로폼 상자 속의 갈치 네 마리를 들여다보다 그들이 헤엄쳐 다녔을 대서양을 떠올렸습니다. 언젠가 갈치에 대해 검색을 했었고 제 기억이 분명하다면 갈치는 태평양이 아닌 대서양에 서식한다고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대서양을 헤엄치던 갈치가 한국과 일본에도 오는 걸까? 그것까지는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품종이 다른 갈치가 따로따로 분포하는지도 모르지요. 한 번도 대서양 위를 날아본 적이 없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도 잠시, 갈치는 기대치보다 너무 잘았습니다. 일 년에 한 번이다시피 한 연례행사라 잔뜩 기대를 했었지요. 구이를 할까 조림을 할까 궁리하며 가위로 지느러미를 잘라낼 때 전화벨 소리를 들었습니다. 같은 번호의 부재중 전화가 한 통 떠 있었지요.
갈치에서 문학상으로, 너무도 급격한 장면 전환에 저는 어리둥절했습니다. 하지만 짧은 순간 제가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각하기도 했습니다. 뜻밖의 소식이었습니다. 제가 너무 어리둥절해하니 심사를 맡으셨던 최원식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상은 그렇게 도둑처럼 오는 겁니다.”
이렇게 도둑처럼 상이 제게로 왔습니다. 아마 전화를 받았을 때의 제 표정도 딱 도둑맞는 사람의 표정이었을 겁니다. 선생님께서는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라는 것에 강조점을 두셨을 겁니다. 그런데 왜 저는 그날 밤 내내 제가 몰래몰래 털어왔을 동료 작가들의 행운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걸까요. 저는 그 밤 내내 미안했습니다.
저는 행운아입니다. 신춘문예에 응모했던 십 년 간의 시간을 보상 받기라도 하듯 행운이 따랐습니다. 참,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200자 원고지 60매 분량의 단편을 썼습니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그 글에 대한 심사평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소나기」와 흡사하나 앞으로의 가능성이 엿보인다.”였지요. 제 소설은 중학교 때 읽은 황순원 선생님의「소나기」와 정말 흡사했습니다. 심사를 한 국어 선생님들이 제 글 어느 곳에서 어떤 가능성을 ‘엿보신’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심사평에 기대 줄곧 소설을 썼습니다. 그러니 제 시작에 황순원 선생님이 계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락앤락을 열어보니 소금에 절인 갈치 도막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굵은 도막을 골라 굽고 대부분 꼬리 부분이었지요. 잠을 설친 간밤이 떠올랐습니다. 사는 곳이 다른 갈치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이 갈치가 대서양에서 이곳의 서해까지 왔다고 믿기로 했습니다. 갈치를 이곳까지 오게 한 것이 바로 보잘 것 없는 이 꼬리가 아니었나라는 생각도요. 꼬리처럼 앞으로 글을 쓰겠다는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이런 시간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아직까지도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후보에 오른 선후배 작가들에게 죄송하고 오랜 시간 묵묵히 글을 써온 작가들에게 죄송합니다. 죄송함만큼 열심히 글을 쓰겠습니다. 그분들이 그런 것처럼 바로 그 방법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작가 소개
하성란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학창작과를 졸업했다. 1996년《서울신문》신춘문예에 단편소설「풀」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루빈의 술잔」,「옆집 여자」,「푸른수염의 첫 번째 아내」,「웨하스」,「여름의 맛」과 장편소설「식사의 즐거움」,「삿뽀로 여인숙」,「내 영화의 주인공」,「A」, 산문집「왈왈」,「소망, 그 아름다운 힘」(공저)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수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첫댓글 읽지 말라는 거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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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3만 읽고 갈께요
읽으라는겁니다
열독하셈
모니터라 눈 아퍼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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쬐끔씩 읽을래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잇힝](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exticon127.gif)
저는 다 읽었어요.. ^^
잘하셨어요~♥
책한권 다 본듯한..^^
네 ㅋ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쁘십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