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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지섭은 묻는다. 내가 LG의 미래가 될 수 있는지를.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그 답을 잘 알고 있는 선수였다.(사진=이영미) |
프로야구 스프링캠프는 유망주들에게 기회의 장이다. 감독들 마다 시즌을 앞두고 다양한 카드를 실험해보는 터라 유망주들로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존재한다. LG 트윈스의 미래로 불리는 프로 2년차 좌완 임지섭(20)은 유망주들과는 색다른 카테고리를 형성했다. 그는 이미 지난 시즌 프로 데뷔 무대에서 첫 승을 거두며 깜짝 화제를 모았다. 고졸 신인 선수가 데뷔전 선발 등판에서 승리를 기록한 것은 2006년 한화 류현진 이후 8년 만의 일이다. 물론 이후 3경기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곧장 2군으로 내려갔고, 양상문 감독이 시즌 도중 LG 사령탑을 맡은 이후론 류택현 투수코치(당시 2군 선수)에게 임지섭을 온전히 맡겼다.
임지섭은 2군에서 절치부심하며 류택현 코치와 함께 투구 매커니즘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 자신의 장기인 스피드를 유지하면서 제구력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투구폼 교정을 시작했다. 2014년 프로야구 최고령 선수(투수부문 개인통산 최다 출장기록, 901경기 보유)와 프로 1년차의 만남은 상이한 역할 속에서 묘한 궁합을 나타냈다. 임지섭을 전담하는 순간부터 류 코치는 은퇴가 예정돼 있었고, 지난 11월 30일 보류선수 명단에서 빠진 후 12월 2일, 2군 투수코치로 이름을 올렸다. 즉, 2군에서 류 코치는 임지섭과 함께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그렇다보니 류 코치가 임지섭에게 갖는 마음이 각별할 수밖에 없다. 애리조나 캠프 초반에는 불안한 투구를 선보이는 바람에 양상문 감독의 근심을 샀지만, 캠프가 후반을 넘어갈수록 임지섭이 안정을 찾아가자, 류 코치는 기자에게 자신감을 드러냈다. “내가 지금까지 본 투수들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뛰어난 선수”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임지섭에게 팔의 위치를 올리고, 릴리스포인트를 앞으로 끌어냄으로써 제구력 향상을 꾀했고, 제구력이 안정을 찾으니 스피드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만들었다. 류 코치는 “임지섭의 마지막 불펜피칭이 너무 좋았다. 이 기운을 그대로 일본 오키나와까지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그리고 지난 22일. 일본 오키나와에선 LG와 SK의 연습경기가 열렸다. SK는 김광현을, LG는 임지섭을 선발로 내세웠다. 임지섭은 강한 모래 바람 탓으로 6이닝만 치러진 이날 경기에서 49개의 공을 던지며 3이닝 3피안타 3탈삼진 1볼넷 무실점으로 활약했다. 경기 후 임지섭은 “포크볼이 생각했던 것보다 잘 들어갔다. 류택현 코치님께서 그립을 좁히라고 하셨는데 잘 되고 있는 것 같다. 초반에 변화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잘 됐다”는 소감을 나타냈다. 류 코치가 애리조나에서 염려했던 부분이 깨끗이 해소되는 듯한 경기였다.
장진용과 함께 LG의 유력한 5선발 후보인 임지섭에 대한 인터뷰를 소개하기 전, 먼저 임지섭과 동고동락 중인 ‘불펜의 전설’ 류택현 코치와의 인터뷰를 정리한다. 이 인터뷰는 애리조나 캠프 마지막 날 진행됐다.
류택현 코치는 임지섭을 LG의 5선발 후보로 키우지 않았다. 그에 대한 한 가지 예이다. 지난 시즌 중반, 2군에서 임지섭을 만난 류택현 코치는 임지섭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했다. 류 코치가 전한 그 메시지 내용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LG 5선발을 목표로 연습하지 말고, 한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라고 생각해라.”
즉, 류 코치는 임지섭이 눈 앞의 목표에 집착하는 것 대신 ‘나무’가 아닌 ‘숲’을 보길 바랐다. 그만큼 임지섭의 실력에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가 있었다.
“내가 본 지섭이는 굉장히 예민한 아이다. 조그만 변화에 흐트러지는 선수라 캠프 초반에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애리조나에서 있었던 마지막 불펜 피칭을 보면서 이젠 어느 정도 안정권에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더라. 일본 가서 환경이 바뀌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는 만족스럽다.”
류 코치는 이례적으로 임지섭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래의 내용에 그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던지는 힘은 내 야구인생에서 봐온 투수들 중 최고이다. 인색하게 말해도 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간다. 섀도피칭을 할 경우, 다른 선수들과 소리가 틀리다. 우리는 회초리 소리가 나는 반면에 지섭인 통나무 소리가 난다. 젊은 시절의 내 모습과 비교조차 안 된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임지섭은 스피드가 올라갈수록 고개가 들리는 단점이 지적됐었다. 고개가 들리다보니 제구력에 문제가 생겼다. 류 코치는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스피드에 대한 욕심을 버릴 것을 주문했다.
“강하게 던지지 않아도 충분히 타자들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전에서 증명해 보였다. 애리조나 투산에서 있었던 NC다이노스와의 연습경기에서 임지섭은 80% 정도로만 공을 던졌는데 145km가 나왔다. 머리도 들리지 않았고. 내가 보기엔 135km 정도였고, 지섭이는 132km라고 느꼈는데 실제 스피드가 145km였다. 이렇게 던져도 충분히 타자를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지금의 피칭을 유지해서 시즌 개막 때까지 흔들리지 않게 만드는 게 관건이다.”
류 코치는 야구인생의 첫 지도자 생활에서 만난 임지섭과의 인연이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치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전담을 맡은 선수이다 보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누구나 첫 경험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섭이는 토종 선발투수 발굴에 어려움을 겪었던 LG로선 굉장히 중요한 자원이다. 그렇다보니 지섭이를 맡게 되면서 욕심이 생겼다. LG의 든든한 선발로 자리 잡게 해주고 싶은 욕심 말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선수이다.”
류 코치는 임지섭에게 팔굽혀펴기를 시켰더니 팔의 힘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150km의 스피드를 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팔의 힘을 키우면 그런 공을 꾸준히 ‘길게’ 던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지섭이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의 에이스로 성장할 수 있는 재목이다. 유연성과 야구 감각이 아주 뛰어나다. 앞으로 경기 경험을 쌓으면서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과 수비 등을 보완해가면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낼 선수이다. 무엇보다 겸손하고 인성이 훌륭하다. 그래서 더 지섭이에게 기대를 거는 지도 모른다.”
![]() 같은 곳을 보고 가는 코치와 제자.(사진=LG트윈스) |
류 코치의 입에선 임지섭에 대한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선수가 자만할까봐 정작 임지섭한테는 좋은 얘기를 건네지 못했다는 그는 기자를 통해 임지섭에게 최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에 대해 임지섭은 인터뷰에서 “단 한 번도 코치님으로부터 칭찬을 듣지 못했는데,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하니까 신기하다”며 기분 좋은 웃음을 나타냈다. 다음은 임지섭과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스프링캠프를 치르고 있는 지금, 소감이 어떤가.
“캠프 초반과 중반에는 썩 좋지 않은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다 류택현 코치님께서 조급하게 마음 먹지 말고 힘을 빼자고 조언해주셨다. 그 다음부터 감을 찾아갔다. 워낙 선발 경쟁이 치열해서 예민해질 때도 있다. 다른 선수들 하는 걸 보면 나만 잘하면 될 것 같은 분위기이다.”
지난 해에 비해 올해 달라진 점을 꼽는다면?
“프로 데뷔 후 지난 시즌에 이어 올해 두 번째 맞는 스프링캠프이다. 지난 시즌에는 신인이고, 어리바리한 데다 정신 줄 놓고 있기 십상이었다. 이번에는 생각하는 시간들이 많았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리가 주어질 수도,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보니 모든 면에서 신중하게 다가간 듯하다.”
류택현 코치가 목표를 크게 설정하셨더라. LG 5선발이 아닌 나라를 대표하는 에이스가 되라고 얘기했다고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해 2군에서 코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내게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어보시기에 ‘풀타임 선발이 목표입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런 목표를 세우려면 야구선수로 성장 못한다고 혼내셨다. KBO리그를 씹어 먹는 투수가 되라고,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마음속에는 그런 절박함을 품고 있으라고 가르치셨다. 코치님의 메시지가 내게 강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 말씀을 듣는데, 어떤 전율 같은 게 느껴졌다. 설령 내가 그 정도의 그릇이 안 된다고 해도, 그 정도의 그릇이 되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마산 용마고에서 2학년 말에 제주고로 전학을 갔다. 보통 그 시기에는 대학이나 프로 입단을 위해 전학은 언감생심이다. 서울도 아닌 마산에서 제주로 내려간 이유가 무엇인가.
“고등학교 1학년 끝날 무렵에 감독님이 바뀌셨다. 그래서 아버지가 전학을 권유하셨지만, 내가 안 가겠다고 버텼다. 그러다 2학년 초에 어깨가 아팠다. 어깨 통증으로 야구를 못했고, 그런 시간들이 지속되자, 2학년 말에 아버지가 또 전학 얘기를 꺼내셨다. 이번에는 거절하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제주도로 향한 것이다. 사실 제주도는 수학여행 갈 때나 가보는 곳 아닌가. 무슨 심정으로 거기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가족들은 창원에, 난 혼자 제주고에서 기숙사 생활하며 야구를 했다. 힘들고 외로웠지만,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마산이나 제주나 똑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제주로 갔던 게 옳은 선택이었다. 그곳에서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2013년 7월 청룡기 고교선수권대회에서 울산공고와의 1회전 경기에서 9이닝 동안 무려 18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1실점으로 완투승을 거뒀다. 이후 3일 만에 나선 배명고 경기에서도 9이닝 16탈삼진 2실점 완투승을 올렸는데, 2경기에서 던진 투구수가 무려 278개였다. 팀에선 호투라고 얘기했지만, 스카우트는 혹사라고 불렀던 대회였다.
“사실 당시에는 그런 스케줄이나 투구수가 혹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보다 더 많이 던진 선배들도 있었고, 고교야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등판했을 때는 몸이 무겁더라. 몸이 무거웠던 것 외에는 팔꿈치나 어깨 모두 괜찮았다.”
2014년 3월 30일은 임지섭의 야구인생에 어떠한 날로 기억될 것 같나.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데뷔전? 당시만 해도 김기태 감독님께서 선발이라고 미리 얘기해주지 않으셨다. 그냥 잠깐 던질 수 있다는 얘기 정도? 그래서 가볍게 생각했다. 개막전을 앞두고 구리에서 자체 청백전이 있었는데, 그때 공이 아주 좋았다. 그 경기를 지켜본 강상수 코치님과 박석진 코치님이 감독님께 좋은 평가를 전달해주신 걸로 알고 있다. 사실 개막 2연전보다 시범경기 때 더 긴장했었다. 개막전은 관중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었고, 나름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올라간 터라 긴장이 심하진 않았다. 선배님들은 두산전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지만, 난 두산전도 여러 경기 중 한 게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범경기 때보다 긴장을 덜 한 것일 수도 있다.”
고졸 신인 선수가 개막 2연전 데뷔전에서 5이닝 3안타 4볼넷 2삼진 1실점으로 막은 건 훌륭한 기록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때 첫 승을 거둔 후 진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호들갑 떤다고 오해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감정 표현을 자제했었다. 친구들이 축하 전화나 문자를 보낼 때는 별 일 아닌데 왜 이리 난리를 치냐며 오히려 내가 정색했었다. 내심 ‘네이버’에 임지섭을 검색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애써 참고 버텼다. 돌이켜보면 좋을 때 좋다고 말하고, 기쁠 때 기쁨을 제대로 느끼는 게 맞는 일이더라. ‘별일 아니다’라고 애써 외면한 덕분에 그 말이 씨가 돼 버렸다. 프로 데뷔 해가 별 일 아닌 것으로 마무리 됐으니 말이다(웃음).”
데뷔전에선 호투를 벌인 선수가 그 다음 경기에서부터 또 다른 임지섭이 돼 나타났다. 이후 3경기에서 보인 성적은 14.2이닝 동안 17개의 볼넷을 내줬고, 제구력 난조가 여실히 드러났다.
“첫 게임을 선발로 던지고, 그 다음 경기에도 선발로 들어갔으면 리듬을 유지하면서 로테이션을 이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김선우 선배님이 선발로 나갔을 때 중간에서 한 번 던진 이후부터 안 좋아졌다. 아무래도 선발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가 갑자기 중간으로 내려가니 실망스런 감정에다 밸런스가 무너지면서 공을 던지는데 흥이 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4월 11일 잠실 NC 다이노스전에서 선발등판한 김선우는 1⅓이닝 6피안타 2볼넷 7실점하며 최악의 피칭을 선보였다. 2회 1사 1,3루에서 나온 임지섭은 에릭 테임즈에게 볼넷을 허용한 후 모창민에게 좌중간에 떨어지는 3타점 3루타를 얻어맞았다. 결국 임지섭은 1⅔이닝 3피안타 4볼넷 2실점을 기록했다. 최고 147㎞의 직구를 뿌렸음에도 제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나타내는지 제대로 보여준 경기였다.)
그래서 5월 이후에는 2군으로 내려갔고, 줄곧 2군에서 머물렀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1군에는 선배님들이 많으시니까 주눅이 들고, 친구도 없어 마음 둘 곳이 없었다. 차라리 2군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투구폼을 교정하면서 진정한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나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1군은 내가 잘하면 얼마든지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애써 위안 삼았다. 시간이 금세 지났다. 2군에서 더 머물고 싶었다.”
1군에서 2군으로 내려간 선수들의 대부분은 하루 빨리 1군으로 올라가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난 지금 당장의 성적보다 더 멀리 바라보고 싶었다. 2군에 있다 보면 성적에 대한 부담보다는 내가 부족한 부분을 고치고 다듬고 수정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그런 과정이 정말 좋았다. 경기에 대한 부담도 없었고. 올해부터는 신인들이 들어왔고, 내가 반말 할 수 있는 후배가 생겼다. 그건 정말 기분 좋다(웃음).”
![]() 아버지의 눈물이 지금의 야구선수 임지섭을 만들었다고 말한다.(사진=이영미) |
아버지가 야구선수 출신이라고 하던데, 현재 아버지 동기가 야구계에서 활약하고 계시나.
“김인호 코치님이랑 대학(성균관대) 동기이시다. 아버지 말로는 야구를 썩 잘했던 선수가 아니었다고 하시더라. 부상으로 일찍 그만둬야 했지만, 아버지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접했던 게 선수 생활로 이어졌다. 아버지가 처음에는 내가 야구하는 걸 심하게 반대하셨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2년간 조르고 졸라서 겨우 허락을 받았고, 내가 야구를 시작하면서부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버지랑 캐치볼하고, 실내 야구장에서 밤새도록 배팅훈련을 했다. 그때는 내 공도 잘 잡아주셨는데, 지금은 속도가 있어서인지 아버지가 제대로 받질 못하신다.”
제주고 시절, LA 다저스로부터 러브콜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맞다. 실제 접촉이 있었지만 팔꿈치 인대가 좋지 않아서 무산됐다. 다저스 측에서 부상에 대한 부담 때문에 MRI 촬영한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줬는데, 계약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물론 굉장히 가고 싶었다. 류현진 선배님도 계시는 팀이고, 물론 처음부터 같은 팀에 있진 못해도 마이너리그에서부터 절차를 밟아 올라가고 싶었다.”
다저스의 류현진 선수와 이번에 한 달 동안 같이 훈련을 했다.
“신기했다. TV에서 보는 사람이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이. 직접 보니까 메이저리거가 달리 메이저리거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불펜피칭하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리듬감도 뛰어나고 제구가 되는 변화구가 일품이었다. 류현진 선배님이 내게 체인지업 던지는 그립을 가르쳐줬는데, 막상 해보니까 잘 안되더라. 요즘엔 연습만 하고 있다. 류현진 선배님이 던지는 체인지업은 공을 채는 느낌이 더 강하더라.”
류택현 코치가 전담해서 가르쳐왔다. 프로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스승이나 다름없을 텐데.
“작년에 2군에서 같이 운동했던 선배님이 지금은 코치님이 되셨다.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공을 잘 던지는 법 외에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 마운드에 오르는 마음가짐, 구종 변화 등 경험에서 나오는 조언들을 많이 해주신다. 코치님은 자꾸 내게 세뇌를 시키신다. ‘넌 다른 선수들과 클래스가 다르다’라고. 기분은 좋지만, 실제 그렇진 않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자신이 LG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당연하다. 내가 타고난 부분도 있고, 운동을 열심히 안 한 것도 아니고, 훌륭한 코치님도 계시고, 나를 도와주는 동료들이 존재하는 환경들이 날 자극시키고 성장 발전시키고 있다. 나 뿐만 아니라 유망주로 활약 중인 모든 선수들이 LG의 미래가 될 수 있다. 그중 내가 제일 위에 있었으면 좋겠다(웃음).”
2015 시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첫 등판을 앞두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마운드에 오르면서 어떤 생각을 할 것 같나.
“내 밸런스를 잃지 않고 포수의 사인대로 던질 것이다. 선배님들은 타자를 요리한다고 말씀하시는데, 난 아직 그런 수준이 못 된다. 포수의 리드에 의지해가면서 힘을 빼고 제구에 중점을 둔 채 스트라이크를 잡아 나갈 것이다.”
야구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언제였는지 궁금하다.
“제주고로 전학 가서 팔꿈치 통증 때문에 힘든 시기를 겪었다. 학교도 낯설고, 선수들과도 어색하고, 적응하기가 진짜 어려웠다. 그래서 하루는 무작정 공항으로 가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야구하기 싫다고. 아니, 야구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지금 항공권을 끊고 있다는 내용의 전화를 드렸더니 아버지가 우시더라. 전화기를 통해 아버지가 우시는 걸 알고 마음을 돌렸다. 만약 아버지가 그때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눈물이 날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이끈 셈이다.”
임지섭은 자신감이 차고 넘쳤다. 원래는 자신감이 없었다고 한다. 류택현 코치와 함께 생활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조금은 ‘뻔뻔해졌다’단다. 임지섭도 잘 알고 있다. 이런 모든 부분들을 마운드에서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것을. 앞으로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초보 코치와 프로 2년차가 함께 걷는 길이 꽤 멋스럽게 보인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임지섭이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진짜 제가 LG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요? 아까는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려 ‘당연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정말 제가 우리 팀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요?”
<미국 애리조나=이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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