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관리에도 진화 물결

[첩첩산중]

입력 : 2009.06.09 15:59 / 수정 : 2009.06.13 22:43

"우리 단지는 관리비 ZERO에 도전"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59호에 게재되었습니다.>

“관리비요? 이젠 걱정 없어요!”

매달 28일이 되면 아파트 관리비를 내느라 한숨을 내쉬던 주부 손지연씨(부산 강서구)는 요즘 표정이 밝아졌다. 새로운 아파트 관리 기법을 도입한 후 관리비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손씨가 거주하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 L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입주자대표회의는 지난 4월 말부터 관리비 절약을 위해 ‘관리비 제로 프로젝트’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주체가 돼 단지 주변 음식점, 상점, 어린이집, 주유소 등과 가맹 계약을 맺고 이들 시설을 주민이 이용할 경우 이용액의 평균 4%를 포인트로 돌려받아 매달 관리비에서 자동 차감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주변 상점들은 단골 고객을 확보해 매출이 증가하는 효과를 얻는 반면 아파트 주민들은 1개월간 누적된 포인트로 관리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됐다. 이 시스템을 도입한 후 한 달 만에 관리비 납부액을 7만~8만원가량 줄인 가구도 상당수 생겼다고 한다. 가계 운영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겼던 관리비가 줄어들자 미분양 물량이 줄고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덤’까지 얻었다고 한다.

▲ 새로운 아파트 관리기법을 도입해 주민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는 부산의 한 아파트. /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5월 29일 L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만난 주부 손씨는 “사실상 현찰이 들어오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너무 좋다”며 “다른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L아파트로 이사 가야겠다’며 부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이 아파트는 국내 대형 아파트 전문 관리업체인 대원로이안이 관리를 맡고 있다.

아파트관리업체 600개 넘게 난립 관리비 인하 등 출혈 경쟁 심화

통계청이 지난 2005년 조사한 주택 거주 현황을 보면 국내 전체 주택(1322만2641호)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52.6%(696만2689호)로 조사됐다. 전통적인 개인주택보다 아파트가 우리 주거지의 중심으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통계청 관계자는 “아파트 거주 비율은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라며 “2010년 예정된 조사에선 아파트 거주율이 2005년 조사치보다 높게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최근 분양된 신규 아파트들은 단순 거주 개념을 넘어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첨단 보안 시스템을 비롯해 영화관, 공원 등이 들어서면서 복합문화공간의 개념으로 거듭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아파트 관리기법도 전문화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대형 아파트 전문 관리업체들은 인력 중심의 단순 관리 업무에서 벗어나 보안, 미화, 방역 등의 분야에 별도 계열사를 둘 정도다. 현재 업계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우리관리’와 ‘대원종합관리’ ‘대원로이안’ 등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 업체들은 전국에 최소 20만가구 안팎을 관리하는 대형 회사로서 관리 영역을 관공서, 첨단 고층빌딩 등으로 넓혀가고 있다.

대원로이안의 획기적 관리시스템 관리 중인 다른 아파트로도 확대

그러나 아파트 관리 시장은 업체가 난립하면서 출혈경쟁도 심화되고 있다. 허가제 형태의 관리업체 등록 방식이 신고제로 바뀌면서 현재 무려 600개가 넘는 업체가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세 관리업체들은 공개 입찰 방식으로 진행되는 아파트 관리 업체 선정 시 계약 주체인 입주자대표회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조건 이전보다 줄인 관리비를 제시하자’는 식의 전략도 불사한다. 그러나 대형 업체 관계자들은 “아파트 관리의 질과 효율성을 살리는 선에서 적정 관리비를 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무리하게 관리비를 줄일 경우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생기고 결국 아파트 전체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업계 ‘톱5’에 속한 대원로이안이 새로운 관리 기법인 ‘관리비 제로 프로젝트’를 도입하게 된 것도 ‘관리의 질을 유지하면서 관리비를 절감하자’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 업체 고위 관계자는 “전문 관리업체로서 입주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도 관리비를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고민을 하던 중 ‘관리비 제로 프로젝트’를 고안한 입주민과 만나게 됐다”면서 “솔루션 개발비용 등이 들긴 했지만 새로운 관리기법이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사업장을 넓히며 영업 이익을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상가 "손님 늘고 홍보비는 절감" 인근 아파트 "우리도 시작하자"

관리비 제로 프로젝트의 특허권자는 현재 부산 강서구 L아파트 입주자대표회 회장을 맡고 있는 황인환씨다. 부산영상예술고 교사인 황씨는 “신규 아파트에 입주했지만 주변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이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놓고 솔루션 업체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시스템을 개발하게 됐다”면서 “주변 상권 형성이라는 목표와 관리 업체의 관리비 절감이라는 고질적 숙제를 놓고 양측의 입장이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말했다.

L아파트는 관리비 절감과 주변 상권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철저한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 단지 내에는 가맹 계약을 맺지 않은 개별 상점들의 홍보가 원천 차단돼 있다. 대신 등록된 가맹점 리스트는 입주민들이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눈에 띄는 곳에 비치해 두고 있다. 현재 L아파트와 가맹 계약을 맺은 점포는 30여곳에 이른다. 최근에는 전국 체인망을 갖춘 배달 전문 업체에서도 가맹 계약을 맺자는 제안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 관리비 절감에 관한 소문이 인근 단지로 퍼지면서 L아파트의 관리 기법을 도입하겠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원로이안 측은 “최근 1800가구가 거주하고 있는 부산 H아파트에서 관리비 제로 프로젝트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한 결과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다”고 주장했다. 공청회를 통해 관리비가 차감된 고지서를 직접 확인한 주부들은 “시행시기를 앞당기자”는 제안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주변 상점들도 관리비 제로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분위기다. 관리사무소에 등록하고 난 이후 대부분의 상점에서 매출이 늘었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장우권씨는 “우리는 매상의 3%를 포인트로 돌려주고 있는데, 가맹 계약을 맺고 나서 저녁 손님이 크게 늘었다”며 “별도 가맹비가 없어서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식당 주인은 L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손님이 계산을 하고 나면 곧바로 포인트 적립 내역을 휴대폰으로 보내주고 월말에 관리사무소에 해당 금액을 지급하고 있다. 업체 입장에선 오히려 홍보비용이 절약되는 측면도 있다. 신규 아파트 또는 단골 고객을 잡기 위해 홍보 전단지를 제작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대원로이안은 조만간 이 프로젝트를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 운영할 계획이다. 현재 이 업체가 관리 중인 18만가구가 전국 어디서든 관리비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가맹점 확충에 주력하고 있다. 대원로이안 관계자는 “우선 입주민들을 상대로 공청회를 거쳐야 하겠지만 우리 회사가 관리를 맡고 있는 아파트는 모두 관리비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확대해 나갈 방침”이라고 했다. 대원로이안은 또 아파트 단지별로 태양광 발전 설비를 유치해 전기료를 낮추는 새로운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인터뷰 | 대원로이안 방준형 회장

영업맨 시절 전국 판매왕, 창업 3년 만에 전국 5위로
전국 18만가구 관리… “비용 절감이 절체절명 숙제”

▲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창업 3년 만에 ‘아파트 전문 관리업체 국내 톱5와 부산지역 1위’ 실적을 일궈낸 ㈜대원로이안 방준형(43) 회장은 대학에서 유도를 전공한 체육인이다. ROTC 장교로 군에 입대한 방 회장은 전역 후 첫 직장인 ㈜애경에서 연거푸 전국 판매왕을 거머쥘 정도로 뛰어난 영업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이후 처남이 운영하던 아파트 관리업체 대표로 영입돼 9년간 아파트관리 노하우를 쌓았고, 2006년 부산에 내려와 창업했다. ‘사람 사귀기’가 취미라는 그를 지난 5월 29일 부산에서 만났다.

아파트 관리업체로 급성장한 비결은.

“어느 한 분야에 미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다. 수도권에서 아파트 관리업체를 운영하는 처남 밑에서 수년간 대표를 맡으며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부산에 진출, 3년 만에 지역 최대 업체로 키웠다. 최근 수도권 업체인 화신종합주택관리를 인수해 전국 5위 규모로 성장했다. 사람 사귀는 게 취미라 한동안 아내가 고생했지만, 국내 도급 순위 100위 안에 드는 건설회사와 협력 관계를 맺은 게 많은 도움이 됐다. 부산에서 빠르게 성장한 것도 건설사와 신규 아파트 관리 계약을 일사천리로 따냈기에 가능했다.”

영업에 남다른 수완이 있는 것 같다.

“1990년대 중반 중위로 제대하고 나서 ㈜애경에서 잠시 일했다. 입사 초기부터 그만둘 때까지 전국 영업왕을 놓친 적이 없다.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KFC 창업주인 할랜드 샌더스다. 60대의 나이에도 1001번의 도전 끝에 투자자를 만난 그의 노력을 늘 동경하며 산다. 이런 정신력과 노력이 없다면 산전수전 다 겪은 아파트 관리소장들을 통솔하기 어렵다.”

아파트 관리업은 직원들에게 박한 급여를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그랬다. 하지만 대원로이안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입주민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직원들의 동기를 유발해야 한다. 그래서 경쟁업체들보다 많은 급여를 주고 있다. 자랑은 아니지만, 부산지역에서는 우리 회사에서 일하고자 하는 분들이 가장 많다.”

아파트 관리업체 선정 계약은 어떻게 이뤄지나.

“신규 아파트의 경우 시공사가 계약 당사자다. 기존 아파트는 입주자대표회의가 경쟁입찰 방식을 통해 업체를 선정한다. 업체 입장에서 보면 요즘 입주자대표회의는 과거와 달리 예리하고 까다롭다.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관리기법을 연구하고 주민의견을 적극 반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관리비 제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 배경은.

“업계의 가장 큰 숙제 중 하나가 바로 관리비 절감 문제다. 입주자들은 관리비가 절약되기를 원하지만 요즘 아파트는 복합문화공간의 개념으로 바뀌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 그럼에도 관리업체로 선정되려면 관리비 부분을 어떻게든 개선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업체 간 출혈경쟁도 심화되는 추세다. 이런 와중에 부산 L아파트 입주민이 한 솔루션 업체와 함께 개발한 ‘단지 인근 상점 가맹 포인트제도’를 알게 됐다. 입주민들은 새로운 관리 시스템을 맡길 업체가 필요했는데, 우리처럼 대형 관리업체가 적격이었다.”

아파트 관리에 있어서 가장 큰 애로사항은.

“법개정을 통해 관리업체들이 유연성을 갖고 업무를 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현재 대다수 단지는 관리업체와 위수탁계약서를 체결한다. 인건비 등을 정산하고 난 후 관리업체에는 위탁 수수료로 평당 30원씩 계산해 지급된다. 그러다 보니 관리 업체가 고가 장비를 구입하거나 새로운 관리기법을 도입하는 게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99㎡(30평형) 1000가구 단지를 관리할 경우 매달 관리업체에 지급되는 돈은 100만원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관리비를 총괄 운영할 수 있는 도급제도로 법개정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만 보다 책임 있는 관리가 가능하고 운영의 묘도 살릴 수 있다. 대원로이안도 부산에서는 대부분 도급 계약을 맺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업체와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었다.”

[하간다]

좋은 글이군요..노원에도 이런 관리 업체들 많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