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톤즈
-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 故 이태석 신부님
김윤선
붉게 물든 나사렛 수도원 이태석 신부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경청하고 있다.
화면 속에 비춰진 신부님의 모습을 보며 암 선고를 받고 3개월 후 눈꽃이 천지를 하얗게 감싸던 날 신부님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하늘도 울고 땅도 울던 날 어머니는 아들 사진 한 장을 품어 안은 채 가슴에 묻었다. 열 명의 자녀 중에 아홉 번째로 태어난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삯바느질을 하여 십남매를 공부를 시키는 어머니를 보며 마음아파 했다는 신부님이셨다. 초등학교 다닐 때 구걸하는 걸인들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바늘 실을 가져가서 옷을 꿰매어 주는 애틋한 마음이 있었던 신부님. 부산 송도에서 자라면서 주변에 수녀원이나 성당 신부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보며 항상 자신도 자라서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여기에 있었다. 보잘 것 없는 사람도 힘든 사람에게 해 줄 것이 있다는 생각을 가슴에 안고 있던 차 어느 날 다미안 벨기에 신부께서 한셈병에 걸린 모습을 영화에서 보며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는 신부님이시다. 그 후로 의대를 지망했고 의사가 되었으며 자신의 의지를 굳히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적 재질을 타고난 신부님은 스스로 피아노와 기타를 배우고 온갖 악기를 다 섭력하셨다.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고 신부의 사제를 받고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아프리카 남수단을 떠난다.
1983년 수단은 남북으로 갈라져 남 백만 명이 죽어간 삭막한 나라라고 했다. 전쟁이 지나간 피폐한 땅은 폭격에 허물어진 집들과 사람들의 생명에도 전쟁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살아 있다고 하지만 손발이 돌처럼 뭉떵하게 굳어져 있고 온 몸의 세포가 죽어가는 생명과의 전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거리에는 병들어 쓰러져 죽어가는 생명들이 있었고 수족이 총탄에 맞아 기어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먹을 것이 없어 영양실조와 말라리아에 걸려 죽어 가는 사람들 먹을 물조차 없어 흙탕물을 마구 퍼 마시는 톤즈 사람들을 끌어안고 사랑으로 살아가시는 이태석 신부님의 고귀한 삶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린다.
이 땅에 상상 할 수 없는 신부님의 거대한 능력을 우리는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들의 아픔을 뼛속 깊이 느끼며 어떻게 하여 이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줄까,
50도가 넘는 더위를 이기며 신부님은 유일한 병원을 지었다. 먼저 설계도를 그리고 바로 실천으로 집을 지었다. 동네 사람들이 동원 되어 12개 병실을 짓고 그 곳에서 환자들을 수용하며 진료를 했다. 환자들은 2,3일 동안을 걸어서 밤낮도 없이 찾아왔을 때 신부님은 한사람도 그냥 보내지 않고 모두 진료를 하며 보살펴 주셨다. 또 신부님은 태양열을 이용하여 전기를 만들어 사용하며 냉장고에 약을 냉동시켜 아이스 박스에 보관 이동하는 것도 만들었다.
어느 날 케냐 나이로미에서 총격이 벌어졌다. 의료 약과 다른 물건을 나르기 위해 갔다가 톤즈로 돌아 올 수 없었다. 경계가 심한 그곳은 올수가 없어 1박 2일로 도로를 둘러서 톤즈로 돌아 왔다. 젊은 청년들은 총과 칼의 무기를 들고 적의 원수를 갚기 위해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톤즈강 주변 흙탕물을 마시는 사람들이 보이고 무기를 든 사람들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신부님의 유일한 차 한 대를 타고 여덟 개 마을을 이동하며 유목민들에게 진료를 하곤 했다. 톤즈에서 약 20분 거리를 자주 찾아다니던 곳 사람들은 상처투성이로 살이 썩어들어 가는 사람들이 시체처럼 쓰러져 간질을 앓고 있는 환자도 있었다.
들판에 소들은 유일한 그들의 식량이었다. 소들은 넓은 울안에서 풀을 뜯고 있었지만 언제 또 총성이 일어날지 소들도 긴장감이 흘렀다.
졸리 신부님이 오시는 날은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신부님을 맞이하는 감사의 인사 예를 치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각 신부님이 주신 옷을 입고 자랑을 하며 신부님을 하느님처럼 떠받들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신부님은 아버지 같으신 분이라고 손가락 발이 다 뭉덩한 사람들도 모여 들기 시작했다. 졸리신부는 항상 오실 때 그냥 오지 않고 약이나 의류 그들이 필요한 많은 것을 준비 하여 오곤 하였다. 썩어가는 상처를 치료해 주고 고름을 닦아 주시는 거룩한 모습을 보며 숙연해 진다. 그들은 신부님이 만들어 주신 신발 옷을 입고 한없이 기뻐하며 소리를 외친다. 맨발의 상처가 더 악화 될 때 신부님은 연구를 거듭하여 각자의 신발을 만들어 신겼다. 가진 것은 없어도 기쁨을 안겨줄 사랑은 할 수 있다는 신부님의 말씀이다.
2010년 2월 신부님이 떠난 후 뭉그러진 손으로 신부의 사진을 가슴에 안고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 입을 맞추고 가슴으로 안아보는 그들이 사랑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사랑일 것이다. 신부님이 떠나는 것은 슬픔이며 죽음이다. 손수 밭에 배추를 심고 그 배추를 뽑아 된장국을 끓여 먹던 졸리신부님의 진실한 삶속에 우리는 가슴이 뭉클 해 진다.
어머니는 아들이 의대 합격 했을 때 이 세상 태어나서 가장 기쁜 날이었다고 하셨다. 그 아들이 우리나라도 많은 일이 있는데 왜, 하늘아래 가장 위험하고 가난한 나라를 가느냐고 하셨다. 아들의 뜻을 거역할 수가 없어 눈물로 보내셨던 어머니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하셨다. 2.3년 만에 한번 씩 아들을 보며 늘 가슴 아파 하셨던 어머니의 아픈 사연을, 피아노를 치면서 죽어가는 이들을 왜 보고 있어요.
눈물이 나네요, 눈물이 흘러내리네요.
세상엔 죄인들이 교도소에서 번뇌만 하니
조용한 침묵 속에서 사랑은 오직 서로 사랑 한다고
꿈을 실현 하며 힘들지만 행복해 하는 이태석 신부님
터를 고르고 배추를 심고 배추국을 끓이고 혼자 사랑과 사랑으로 살고 있었다.
당신을 사랑해 정말로 사랑해
아이들에게 연주를 가르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미래가 없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암울의 땅에서도
톤즈의 지극한 사랑 앞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 진다.
그 속에서도 학교를 지었다. 사랑이 넘치는 학교를 지붕만 해놓고 온 동네 사람들이 힘을 모아 학교를 지었다. 12년 과정 초 중 고등학교를 짓고 신부님은 수학을 가르쳤다. 자격증을 시험하고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한국으로 데리고 왔다.
톤즈 학교 초 중고등학교를 지어 뜨거운 교육의 열기를 보였다. 옷도 한국에서 가져가서 입히고 전기가 없는 곳에 밤에 손전등으로 공부를 했다.
총을 들고 무기만으로 긴장하던 젊은이들에게 악기를 들고 음악을 가르쳤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오랜 전쟁 속에 상처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벤드 부를 만들어 상상 할 수 없는 합창단을 만들었다. 신부님은 잠자는 시간 악보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쳤다. 악대들은 의상을 입고 마치 진군하는 의장대 같았다. 의장대 사열처럼 늠름한 젊은이들의 행진모습에 정부에서도 깜짝 놀란다. 대통령도 기적 같은 한사람의 헌신과 재능이 평화의 마음을 불러 일어 킨다고 했다.
신부가 돌아가시고 음악 공부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의 울음소리 사진을 가슴에 안고 피울음을 울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먹을 것이 없어 나무에 올라가 익지 않은 망고를 따서 하나 먹는 것이 한 끼의 식사라고 했다. 영양이 없어 젖이 나오지 않는 아기 엄마의 모습, 배고픈 아이들은 신부를 향해 기도하고 있었다. 신부님이 계셔야 악기를 배울 수 있고 공부도 할 수 있는데 가혹한 형벌 속에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유럽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잘 울어도 수단 아이들은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 아이들은 매일 신부님의 사진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신부님은 자신의 몸속에 암덩어리가 침투를 해도 모르고 오직 톤스 사람들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신 신부님이시다.
2008년 10월 건강 검진 암 선고를 받고 일주일 전 톤즈 젊은이들의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생과 함께 기타를 치며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어머니께 밝은 미소로 맞이하는 아들 이태석 신부님 2010. 2. 16. 먼 길을 가시며 톤즈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가슴에 안고 가셨다. 아이들의 쏟아지는 눈물은 피울음이다. 앞을 볼 수없는 눈먼 환자들의 눈에서도 소리 없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신부님이 보고 싶어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듯 기도를 하며 어둠 속에서도 집으로 가지 못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었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 악기 소리는 하늘을 울렸다.
뜨거운 사랑이 무엇인지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한센 병에 걸린 사람들이 모여서 신부님의 사진을 들고 악기 행렬을 하는 아이들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의 소리가 신부님의 뜨거운 사랑의 소리로 울음 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늘나라로 가신 졸리 신부님 눈을 감으셔도 톤즈 사람들의 뜨거운 함성을 듣고 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