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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마을에는 마침 나와 오랜 글동무인 선미숙씨가 충남 서산에서 우리가 사는 구미까지 차를 가지고 와서 우리 부부와 함께 갔다. 더운 여름에 수월하게 나들이 할 수 있어 퍽 고맙고 남다른 기쁨이었다.
이 마을 담장이 모두 돌로 쌓인 까닭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경오년(1930년)에 큰 물난리가 났는데 그때 떠내려온 돌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그것을 가지고 담장을 쌓았다고 한다.
그앞 돌에 새긴 안내글을 읽어보니, 마을에서 보호수로 삼았다고 하는데 나무 나이가 210살이나 된다고 한다. 이 나무 그늘에 넓은 마루가 있고, 거기에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쉬고 계셨다. 여기가 한밤마을이냐고 여쭈었더니, 이곳은 한밤마을이 아닌 '불로리' 이고 행주 은씨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또 이 마을에는 행주 은씨 재실이 있다고 하면서 자세하게 길까지 가르쳐 주셨다. 은씨 할아버지가 일러준 대로 찾아가니, 지난번 한개마을에서 본 것처럼 많지는 않았지만 옛집 여러 채가 마을과 잘 어우러져 있다. 또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어 보기에 퍽 흐뭇했다. 이렇게 한밤마을 가는 길에 뜻하지 않게 경북 군위군 불로리에서 행주 은씨 재실까지 덤으로 구경하였다. 나중에 이곳이 '불로리 전통마을'이란 걸 알았다.
다시 차에 타고 부계면 대율리를 찾아갔다. 불로리에서도 30~40분쯤 더 들어갔다. 가는 길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퍽 멋스러웠다. 시골풍경이라 더 정겹고 찻길을 따라 넓은 강이 흐른다.
이 한밤마을은 신라시대 950년쯤 홍관이라는 선비가 처음 이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데, 부림 홍씨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다. 지금은 한밤마을이란 이름이 '대율리'로 바뀌었는데 이것도 1390년 홍로라는 선비가 '대율'로 바꾸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름은 '율리''율촌'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바뀐 이름만 봐도 그 옛날 밤나무가 많았다는 걸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밤나무보다 호두나무가 더 많아서 우리끼리 '호두마을', '추자마을'이라고 해도 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집도 거의 전통 옛집 모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집집이 마을 사람이 살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성주 한개마을처럼 대문이 열려있는 집이 그다지 없었고 또 열려있다 해도 나그네가 불쑥 들어가기엔 왠지 조금 미안했다. 그래서 바깥에서 담장 너머로 집안을 내려다보았는데 담장이 그다지 높지 않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대청을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고, 그 옛날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공부하는 곳으로 썼으나 요즘은 마을 어르신이 모여서 쉬는 노인정이 되었다고 한다. 나무를 깎아서 조각 맞추듯이 끼워 만든 큰 마루였는데 거기에 누워 시원한 맞바람을 맞고 있으면 시 한 편이 저절로 읊어지지 않을까. 이밖에도 '남천고택'이라고도 하는 군위 상매댁이 있는데, 부림 홍씨 문중에서 가장 큰집이라고 한다. 한밤마을을 구경하면서 돌담길을 따라 볼거리들이 많아 퍽 즐겁고 기뻤다. 길에서 만난 마을사람들도 이 구불구불한 돌담길처럼 하나같이 부드럽고 착하게 보였다. 아쉽게도 미처 알지 못해 가보지 못한 곳이 있는데, 마을 들머리에 있는 대율초등학교 둘레에 200년이 넘는 소나무들이 많은 숲이 있다고 한다. 여기는 홍천뢰 장군이 임진왜란 때 군사를 훈련하던 곳이기도 한데 4미터 쯤 되는 돌기둥 '진동단'이 있고 해마다 음력 1월 5일에 '동신제'를 지낸다고 한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마을 구석구석을 다 둘러보았을 텐데, 놓치고 지나온 것이 많아 매우 아쉽고 다음에 또 찾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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