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이 글은 네이버 보돌이다방 까페의 최백서달 님께서 쓰신 글을 퍼온 것입니다.
http://cafe.naver.com/bodols.cafe
보더콜리의 역사
오래된 역사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보더콜리는 이제 100년 정도 되었다. 오늘날의 보더콜리는 오직 한 가지 목적, 뛰어난 양몰이 대회 우승견을 만들기 위해 무수한 라인브리딩과 인브리딩으로 번식되어왔다. 보더콜리 종의 초기 발전 단계의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종견들은 모두 최고의 경기 우승견이었다. 오늘날 올드 헴프(Old Hemp), 올드 켑(Old Kep), 워타임 캡 (Wartime Cap), 위스톤 캡(Wiston Cap, Wartime Cap 혈로 그의 혈통서에는 16번이나 Wartime Cap이 나온다)의 피가 섞이지 않은 보더콜리는 찾아볼 수가 없다.
올드 헴프(1893년생) 이전의 보더콜리는 단순히 워킹 콜리(Working Colley) 혹은 똥개 콜리(unimproved collie)라고 여겨졌고 보더콜리 역시 다른 콜리 종들과 같은 조상의 후예이다. 몇세기 동안 Colley, Coalley, Coolie, Shepherd's dogge이라 알려진 콜리 종 개들의 조상은 양떼와 가축을 몰도록 수백 년 동안 번식되어 왔었다.
Shepherd's dog에 역사가 언급되어있긴 하지만 보더콜리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다. 보더콜리가 유럽, 그리고 영국의 양몰이 개들과 기원이 같을 거라는 추측이 설득력 있다.
캐롤 프리스버그(Carole Presberg)는 영국의 양몰이개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이론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몇몇 오늘날 중동의 양치기 개들은 오늘날 보더콜리와 일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이를 통해 프리스버그는 이들이 로마인들과 함께 영국에 양몰이 개로써 처음 들어온 개들의 유형이라고 생각된다고 했다.
이러한 초기의 로마 개들은 역사책에 매우 크며 무거운 뼈를 가지고 있고 까만 색과 갈색, 흰색을 가졌다고 언급된다. 로마인 다음으로는 바이킹족이 영국에 들어왔는데, 그들은 스피츠 유형의 개들을 데려왔으며, 프리스버그는 스피츠 유형의 개들과 로마 유형의 개들이 의도적이건 의도적이지 않건 피가 섞였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고 말했다. 그 결과 언덕과 바위가 많은 지역에 적합한 좀 더 작고 더욱 민첩한 개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기원전 943년 하이웰 다(Hywel Dda)가 쓴 가장 오래된 양몰이개에 관한 글 중 하나는 까만 양몰이 개가 양의 무리를 언덕의 목초지에 풀을 뜯게 데리고 나갔다가 저녁에 다시 데려온다는 사실이 쓰여있다.
각각 다른 유형의 개들은 지형과 모는 가축의 종류의 차이에 따라 달리 번식되어 왔고 서로 달라졌다. 큰 개들은 로랜드 지방의 무거운 먹거리용 양의 큰 무리를 몰기 위해 필요했다. 작고 민첩한 개들은 산이 많은 지형의 높은 언덕에서 양들을 모는 데 필요했다. 1800년대에 오늘날의 등록소가 생기기 이전까지 유럽과 영국의 방방곳곳에서 양몰이개들은 서로 다양하게 피가 섞였을 것이다.
다음 그림은 보더콜리의 오랜 역사와 종 간의 유연관계가 잘 정리되어 있다.
종 이전의 역사
다음 글은 Carole Presberg의 오늘날 보더콜리의 역사에 관한 글이다.
< 산업혁명 이전 세기 영국(Britain)의 주 자본은 양털이었다. 사람들과 함께 협력하여 가축화된 양들을 쳤던 건 양치기 개들이었다. 로마인들은 양을 치면서 양치기 개들을 영국에 데려왔다. 16세기에 글을 쓴 한 의사, John Caius는 "양치기의 개들"을 언급했다. 그의 책 "De Canibus Britannicus(영국 개들(Englishe Dogges)에 대한 논문)"는 사실상 영국의 양치기 개들의 일하는 모습을 언급한 최초의 책일 것이다.
스코틀랜드에서 목양 경제(Sheep Economy)가 확립되었을 때, 양치기 개들은 반드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스코틀랜드 국경선 Ettrick Valley 출신의 시인이자 양치기인 James Hogg(1772-1835)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만약 양치기개가 없었다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산악지대는 단돈 6펜스 어치만큼도 가치가 없었을 것이다. 양들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데에 필요한 전체 비용보다 양들을 관리하고 시장까지 끌고 가는 것을 해 줄 일손을 더 필요로 했다.
예전의 양치기 개들은 오늘날보다 더 다양했다. 양들의 종류만큼이나 양치기 개의 종류가 다양했다. 대부분의 영국의 양치기 개들은 사라져가고 있다. 양 떼를 습격하는 포식자들이 사라졌다는 이유만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몇몇 양치기개들은 특정화된 사역능력의 필요에 따라 사라지게 되었고 또 다른 몇몇 양치기개들은 양떼나 소 떼가 더 이상 시장으로 몰고 갈 필요 없이 철도나 트럭으로 대체가 가능해졌을 때, 수많은 가축 떼를 먼 거리까지 몰고 갈 능력의 강인한 몰이개가 필요 없어지게 되면서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양떼 무리가 있고 예외적인 기후가 종종 일어나는 호주와 뉴질랜드, 그리고 미국의 몇몇 지역에서는 특정화된 타입의 양몰이개가 번식되어왔고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 양몰이개(heelers), 짖는 개(barkers), 양떼의 뒤를 근접하게 왔다갔다 거리거나 그들을 먼 거리까지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개들 말이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의 몇몇 지역에서는 아주 우세한 양몰이 개로서 보더콜리가 출현하게 되었다.
보더콜리와 같은 개들은 몇 세기 전부터 존재했다. 오래된 그림이나 석판화는 보더콜리와 닮은 양치기의 개를 찾아볼 수 있다. Sheila Grew는 그녀의 책 "보더콜리계의 주요한 개들 (Key Dogs from the Border Collie Family 1985)"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세기 전 수많은 워킹 콜리들은 일을 열심히 하고 강인한 개들이었으나 다루기가 힘들었고 가축을 험하게 다루었다. 그러나 그들의 예리함과 본능, 집중 그리고 양들과 소들을 향한 강인한 힘은 매우 유용한 이점이어서 이들과 교배하여 좀더 부드러운 타입의 새로운 워킹 콜리를 만드는 데 노력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그루는 말하길 1894년 노썸브리아의 농부 아담텔퍼가 "개의 그 두 가지 타입을 적절히 조화시킨 적당한 개를 찾는 데 성공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오늘날 알고있는 보더콜리는 바로 그 개로부터 내려온 후손이다. >
아마 당신은 보더콜리의 강렬한 눈빛을 의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강렬한 눈빛은 뛰어난 새 사냥개나 총 사냥개들에게서 나오는 특징이다. 사냥개들은 먹이를 공격하는 대신 부동자세로 먹이의 방향을 가르친다. 보더콜리의 강렬한 눈빛은 세터, 포인터와 같은 사냥개의 피와 혼합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사냥개와 섞인 양몰이개, 보더콜리가 보이는 이러한 최면을 거는 듯한 눈빛은 개들이 짖고 떠드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 쉽게 양을 몰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크라우치(crouch)라고 불리는 포복자세는 보더콜리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중세 시대에 오늘날 스파니엘들의 조상인 한 유형의 스파니엘이 번식되었을 때 그들은 사냥에 임할 때 선천적인 크라우치를 보여주었다. 사냥꾼들은 작은 새를 쏠 적당한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새들을 향해 엎드린 개들 위로 그물을 던졌다. 이 크라우치가 바로 보더콜리의 크라우치의 기원이 되었을 것이다. 스프링거 스파니엘의 색 패턴을 본 적 있는가? 그것은 오늘날 보더콜리에게 역시 존재하는 색이다.
그레이하운드와 휘펫도 보더콜리 교배되었다. 그레이하운드와 쉽독의 자손들은 쉽독 어버이보다 훨씬 빨랐으며 그레이하운드 어버이보다 훨씬 똑똑했고 체력이 강했다. 이렇게 섞인 개들을 러쳐(lurchers)라고 불렀고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은 결국 보더콜리로 되었다. 보더콜리의 가장 흔한 귀의 형태는 그레이하운드 또는 휘펫에서 왔다.
곱슬곱슬한 수염 같은 털과 라일락, 레몬, 블루그레이 같은 모색은 비어디드 콜리에게서 왔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비어디드 콜리가 1944년 독립된 견종으로 공인되기까지, 이 녀석들은 그저 워킹 콜리(보더콜리 선조)의 하나의 모질 타입이라고 여겨졌다)
ISDS 등록소 내에서조차 보더콜리에게 미친 비어디드 콜리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ISDS에 8번으로 등록된 텔퍼에 의해 번식된 S.E. Batty's Maddie는 엄청나게 오늘날 보더콜리에 영향을 끼친 윌슨의 워타임 캡의 선조 할머니이다.
멀은 또한 영국의 양몰이개들의 고전적인 색깔이다. 켈트와 색슨간의 역사적 불화는 블루멀, 레드멀과 같은 멀에 대한 합리적이지 못한 반감으로 이어졌고 오늘날에도 스코틀랜드에서는 멀 강아지들을 평범하다 혹은 하등하다고 여기고 있다.
보더콜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종종 서로 너무나 다른 보더콜리들을 보고 "설마 같은 종은 아니죠"라고 묻곤 한다. 보더콜리의 생김새는 매우 다양하지만 이 녀석들은 수 세대동안 양몰이라는 한가지 목적에 따라 번식되어온 가장 오래된 종 중 하나이다. 사실상 보더콜리라는 견종을 "동종교배된 비슷하게 생긴 개들의 집합"이거나 "유전적 순종을 위해 선택된 개들의 집합"이라라는 말로 정의내릴 수 없다. 보더콜리는 행동과 능력, 양치기나 농부들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선택되어온 견종이다. 이들은 이들의 수많은 조상들의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한배에서 태어난 강아지들이 그의 엄마를 닮았거나 아빠를 닮았거나 아니면 그 누구도 한번도 보지 못한 개를 닮았거나 할 수도 있다.
보더콜리의 말뿌리
보더콜리라는 이름은 최근에 전형적인 일하는 콜리(working collie)에게 붙여진 새 이름이다. 아델라이드 L. J. 고셋(Adelaide L. J. Gosset)은 그의 1911년 책 "영국의 양치기들(The Shepherd of Britain)"이라는 책에서 콜리(collie)라는 이름은 콜리들의 까만 색이었거나 스코티시블랙페이스 양들의 얼굴과 다리가 까만 색이었기 때문에 검정 색을 뜻하는 석탄(coal)으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양몰이개들: 영국에서의 그들의 기원과 발달"에서 아이리스 콤브(Iris Combe)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콜리라는 단어는 게일 사람들의 단어로 "유용한(useful)"을 뜻한다. 몇몇 사람들은 잉글리쉬 철자로 콜리(collie) 혹은 콜레이 colley)가 이들이 몰았던 양 종의 이름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옛 견종 목록과 양에 관한 책을 통틀어 콜레이(colley) 또는 코알리(coally)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 다른 주장으로는 게일어 "콜리(collie)"가 유용한 것(something useful) 또는 일꾼(laborer)을 뜻하는 게르만어 "쿨리(kuli)"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쿨리(kuli)는 영어 "쿨리(collie)"와 정확하게 발음이 같다. 양치기의 개들은 명백히 유용하며 개라는 종을 가진 일꾼이다. 오늘날 독일에서는 알트 다잇셔 쿨리(Alt Deutscher Kuli; Schaferhund)가 여전히 양을 몰고 있다. 이러한 개들은 콜리 유형의 개들이고 기원전 400년경에 침략자 색슨족을 통해 영국(Great Britain)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종합해 볼 때 콜리라는 이름의 말뿌리는 색깔이라기 보다는 "유용한(useful)"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양들은 양털과 가죽, 우유, 고기 등을 제공해 주는 유용한 존재이고 개들도 양을 몰며 가축들과 농장을 지키고 도난을 방지하는 유용한 존재이다.
"보더(Border)"라는 말은 1915년부터 1948년까지 ISDS의 비서이자 에어드리 사무변호사(airdrie solicitor)였던 제임스 레이드(James Reid)가 만들어낸 새로운 말이다. 레이드는 1918년에 슈프림 챔피언쉽의 우승견을 이야기할 때 그 최고의 일하는 콜리의 혈통이 그레이트 보더 쉽 런(the Great Border Sheep runs)이라는 곳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처음으로 "보더 콜리"라는 단어를 썼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에 공식적으로 "보더"라는 말을 ISDS 일하는 콜리 등록서에 집어넣었다. 쇼 콜리의 인기 때문에 수많은 이름들이 보더 콜리와 쇼링의 보더콜리와 구분 짓기 위해 쓰였다. 그 이름들 중에는 일하는 콜리(working collie), 똥개 콜리(unimproved collie), 옛날 콜리(old-fashioned collie) 그리고 농장 콜리(farm-typed collie)가 있었다. 미국에서도 잉글리쉬 세퍼드(english shepherd)라는 이름이 일하는 콜리를 쇼 콜리에서 구분 짓기 위해 사용되었다.
양몰이개 경기의 역사
첫 양몰이개 경기는 1873년 10월 9일 웨일즈의 발라라는 곳에서 열렸다. 경기 책임 및 기획자는 리차드 존 로이드 프라이스와 그의 친구이자 켄넬 클럽의 창시자인 S. E. 셜리였다.
그 경기에는 열 마리의 개들이 참가했고 300명 이상의 구경꾼들이 참석했다. 승자는 제임스 톰슨과 그의 탄탄하게 생긴 여우같은 얼굴의 까맣고 갈색인 개 트위드였다. 그의 아들 윌리암은 많은 초창기 쇼 콜리들의 브리더로 유명해지게 된다. 제임스 톰슨은 미국과 호주의 콜리 애호가들과 교류했고 수많은 탁월한 워킹독들을 해외로 보냈다고 한다.
첫 번째 잉글랜드의 양몰이개 경기는 1876년 노썸버랜드에서 개최되었다. 승자는 월터 텔퍼였으며 그는 아담 텔퍼와 형제였다. 5년 뒤에는 아담 텔퍼가 상을 탄다.
첫 번째 스코틀랜드 양몰이개 경기는 1874년에 열린다. 승자는 제임스 가드너와 강렬한 눈빛을 가진 그의 까맣고 흰 암컷 슬라이(Sly)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담 텔퍼, 월터 텔퍼, 윌리엄 월레스, 제임스 가드너, 알렉스 밀러, 그리고 윌리암 톰슨이 번식한 뛰어난 보더콜리들은 인터네셔널 쉽독 소사이어티와 켄넬 클럽 쇼의 초기 혈통에 무수한 영향을 끼친다.
켄넬클럽과 인터네셔널 쉽독 소사이어티(ISDS)
첫 독쇼는 1860년 뉴캐슬에서 열린다. 이 독쇼에 5마리의 콜레이(Colley)가 참가하는 데, 이들에 반한 빅토리아 여왕이 1865년에 첫 콜리를 데려오자,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게 된다. 1885년에는 100마리 이상의 콜리가 크리스탈 궁의 왕족 아쿠아리움 쇼에 입장한다. 이 콜리들의 등록과 공식적 혈통서 만들기는 새롭게 만들어진 켄넬 클럽에 의해 1873년에 시작된다.
인터네셔널 쉽독 소사이어티는 12명의 최정상의 양몰이개 경기 훈련사들이 1906년 7월 해딩턴에 모여 만들게 된다. 제임스 윌슨(James Wilson)이 첫 회장(secretary)으로 뽑힌다. 창립자들은 켄넬 클럽이 양치기와 농부로써 자신들의 필요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며 독쇼에서 기능보다는 아름다움만을 강조한다고 생각했다. ISDS의 목적은 단 한가지 였다. "가축을 관리하는 데 있어 편리와 유용함을 주는 이 콜리 종을 개선시킨다." 그들은 한달 뒤에 첫 슈프림 챔피언쉽을 개최한다. 첫 우승견은 R. 샌디랜드의 돈(Don)이었다. 돈은 제임스 스콧의 올드 켑의 아들이었다.
<참조>
Janet E. Larson, "The Versatile Border Collie"
Popular Dog Series, "The Border Collie"
Iris Combe & Pat Hutchinson,
“The ancestral relationships of contemporary British herding breeds”
Carole Presberg, “The History of the Border Collie”
Sheila Grew, “Key Dogs from the Border Collie Family”
<출처> 이 글은 네이버 보돌이다방 까페의 최백서달 님께서 쓰신 글을 퍼온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