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하나님을 사랑하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날아오르는 삶” はばたく人生라고 하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보면 어떻습니까. 어떤 말씀은 참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힘이 되기도 하고, 주님의 뜨거운 사랑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28장을 볼까요?
마태복음 28장 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わたしがあなたがたに命じておいた、すべてのことを守るように教えなさい。見よ。わたしは世の終わりまで、いつもあなたがたとともにいます。」
우리가 외로울 때라도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는 주님의 마음을 생각을 하면 외롭거나 불안하거나 할 때라도 마음이
든든해집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전도서 1장 2절 말씀이지요?
전도서 1장 2절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空の空。伝道者は言う。空の空。すべては空。
오늘 말씀, 참 유명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물론이지만,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일이 있을 법한 말씀이지요. 그렇다면, 이 말씀. 읽고 힘이 나시나요? ㅎㅎ
잠언과 아가 그리고 오늘 살펴볼 전도서는 대부분을 솔로몬이 썼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 전도서는 솔로몬 왕이 노년 때 쓰여진
책이라고 신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전도서를 보면, 힘이 팍팍 난다기 보다는 힘이 좀 빠지게 되는 구절들이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힘이 빠지는 구절은 여기만이 아니지요. 인생은 바람을 잡는 것 같다는 말씀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전도서 1장 14절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私は、日の下で行われるすべてのわざを見たが、見よ、すべては空しく、風を追うようなものだ。
전도서 2장 11절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しかし、私は自分が手がけたあらゆる事業と、そのために骨折った労苦を振り返った。見よ。すべては空しく、風を追うようなものだ。日の下には何一つ益
になるものはない。
전도서 2장 17절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私は生きていることを憎んだ。日の下で行われるわざは、私にとってはわざわいだからだ。確かに、すべては空しく、風を追うようなものだ。
이 외에도 2장 26절, 4장 4절, 4장 16절, 6장 9절 등등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 같다는 말씀입니다. 참 힘이
팍팍 나는 게 아니라, 추욱 하고 빠집니다.
그래도 끈기 있게 꾹 참고 계속 읽어나가면 전도서 마지막 장인 12장에 다음 구절이 나옵니다.
전도서 12장 8절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空の空。伝道者は言う。すべては空。
아, 정말 참 이처럼 기운이 나지 않는 책도 드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도서만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90편에 보면 모세의 시가 나옵니다.
시편 90편 10절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私たちの齢は七十年。 健やかであっても八十年。 そのほとんどは 労苦とわざわいです。 瞬く間に時は過ぎ 私たちは飛び去ります。
신약성경 야고보서를 볼까요?
야고보서 4장 14절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あなたがたには、明日のことは分かりません。あなたがたのいのちとは、どのようなものでしょうか。あなたがたは、しばらくの間現
れて、それで消えてしまう霧です。
자, 이런 말씀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그래. 고통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짧은 인생, 빨리 끝내고 어서어서 천국에 갔으며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드시나요?
그렇다면 우리 잠깐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지금 이 주어진 삶, 이 삶은 정말로 그렇게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그저
잠깐 왔다가 가는 덧없는 인생일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인생. 누가 주신 것입니까. 우리가 지금
호흡을 하고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을 누가 허락하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이 땅에서 살아가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이는 다른 말로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작품에 대해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전도서는 우리의 삶을 부정하는 책, 빨리 죽고 천국이나 가자고 하는, 그런 책이 아닙니다.
전도서 9장 4절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
しかし、人には拠り所がある。生ける者すべてのうちに数えられている者には。生きている犬は死んだ獅子にまさるのだ。
라고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한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순간 이 땅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괴로워해야 하거나 힘들어해야 할 일이 아니라 기쁘고 감사해야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별로 기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그렇다면 이렇게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이 땅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또한 죽어갔습니다. 그 중에는 돈이 많은
사람들도 있었고,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죽기 싫어했겠지요. 얼마나 하루하루를 더 살고 싶었겠습니까.
자신이 가진 많은 돈과 권력을 쓸 수 있다면 써서라도 하루 1분 1초를 더 살아보려고 애 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늘 2019년 8월 4일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이고, 뭐 돈이 많고 권력이 많고 팔자 좋은 사람이야 오래 살고 싶겠지만, 가진 것도 없고 힘도 없는 우리한테는 그냥 하루하루가
괴롭고 고생이야……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떤 분은 또 그러실 지도 모르겠지요. 그렇다면 이 질문은 어떠십니까. 우리 삶이 정말로 힘들고 괴롭고
고통일 뿐이라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 땅에 오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냥 이 땅에 오셨나요? 이 땅에 오셔서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다 받으시고, 그것도 모자라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물론 이는 우리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생을 마친 후에 하나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우리 죄가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죽고 난 다음만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여에 걸친 공생애 기간을 통해서, 우리가 죽은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한다……가 아닌,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셨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잠시 화제를 바꿔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오늘의 질문을 한 번 드려볼까요? 어떤 시합에 대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가지 경우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느 쪽이 좋습니까.
첫째, 우리가 2대 1로 진 시합.
둘째, 우리가 10대 0으로 지고 있는 시합.
이 두 경우, 물론 둘 다 좋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둘 중에서 여러분께서는 어느 쪽이 좋다고 생각되십니까.
첫째의 경우, 비록 2대 1, 점수는 1점 차이밖에 나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이미 시합은 끝났습니다. 우리가 진 것으로 시합이 끝나고
말았어요.
하지만 둘째 경우는 어떻습니까. 점수가 10대 0이에요. 아주 점수 차이가 많이 나버렸습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
큰 점수 차로 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시합이 진행 중이에요. 아직 시합이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면, 무엇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길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포기하기에는 아직 일렀다는 것을 믿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모세의 경우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400여년의 애굽생활을 마치고 성인 남성만 60만 명, 남녀노소를 모두 합치면
아마도 200만명 정도는 되었다고 여겨지는 수많은 사람들, 우리 군마현 전체 인구가 200만명 정도인데, 그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홍해 앞에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큰일 났어요. 길이 막혔습니다. 더
이상 갈 길이 없어요.
그래요. 시간이 있다면 힘을 합쳐서 배를 만들어서 건너든, 아니면 다른 길로 돌아가든 방법은 여러 가지 있었겠지요. 그러나 당시는
이제 시간이 없었습니다.
출애굽기 14장 6절~7절
6.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7.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そこでファラオは戦車を整え、自分でその軍勢を率い、
選り抜きの戦車六百、そしてエジプトの全戦車を、それぞれに補佐官をつけて率いて行った。
애굽 왕 바로가 애굽 군대, 그것도 특별히 선발한 마차부대와 모든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민족을 죽이기 위해 추격해오고 있습니다.
당시 최강 선진국이었던 애굽의 군대와, 몇 백 년 동안 종살이를 해온 이들을 비교한다면, 그 숫자는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이스라엘
민족이 200만이 아니라 2000만이라 하더라도 한쪽은 첨단무기로 무장한 군대이고, 다른 한쪽은 완전히 무장해제된 사람들, 전쟁도
모르고 훈련도 안 된 사람들입니다.
이는 앞서 본 시합으로 생각해본다면 이는 점수차이가 10대 0이 아니라 100대 0, 아니, 1000대 0으로 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애굽 군대가 추격해올 때까지의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습니다.
이길 확률이요? 1%나 되겠습니까? 이는 누가 보더라도 0%입니다. 생각해볼 필요도 없습니다. 상대 자체가 안 되는 것이지요.
이 때 모세의 심정을 생각해보면 참 아찔합니다.
우리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내가 미국이나 유럽에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기도를 할까 고민을 했습니다. 마침 성경을 찾아보니까, 아주 좋은 구절이 있었어요.
시편 55편 6절~7절
6.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7.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私は言いました。 「ああ 私に鳩のように翼があったなら。 飛び去って 休むことができたなら。
ああ どこか遠くへ逃れ去り 荒野の中に宿りたい。
아~ 정말 멋진 기도문이 아니에요? 그래서 기도를 했습니다. 내가 미국이나 유럽에 가고 싶습니다.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제가
원하는 곳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 저에게 날개를 주십시오.
그런데 주님이 응답해주셨습니다. 날개를 주신 것이 아니라 쇳덩어리를 주셨어요.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운 쇳덩어리를 주셨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렇다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쇳덩어리로 미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유럽에 갈 수 있겠습니까. 하늘을 날 수 있게
날개를 달라고 했더니 그런 크고 무거운 쇳덩어리를 주셨다면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쇳덩어리로 하늘을 날 수 있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쇳덩어리는 무슨, 지갑에 들어있는 요만한 동전 하나도 하늘로 던지는 순간
떨어지고 맙니다. 그런데 어떻게 쇳덩어리로 하늘을 날 수 있겠습니까.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쇳덩어리가 하늘을 날 수 없는 이유. 많이 배운 사람과 적게 배운 사람, 누가 더 많이 이유를 들 수
있겠습니까. 예, 많이 배운 사람이 훨씬 더 많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한 대학 공대 교수님을 남편으로 둔 부인이 남편을 전도하려고 하는데, 공대 교수님 정도 되니까 아는 게 얼마나 많으셨겠어요.
성경에서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었다는 예수님의 기적을 전해주니까 남편이 이러시더래요.
“여보. 물이 포도주로 바뀐다구요? 아니, 어떻게 H2O가 C6H12O6가 됩니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로 5000명을 먹이셨다는 말씀을 했더니, 그 남편 분이 하시는 말씀이, 그것은 물질의 질적인
변화가 아니라 양적 팽창이 일어났다는 것이니, 이는 질량보존의 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이것도 역시 불가능하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랬던 이 남편 분이 누구냐 하면 훗날에 한국 포항에 있는 미션스쿨인 한동대학교 초대 총장을 지낸 김영길 총장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합니다.
앞서 모세 이야기로 돌아가보겠습니다. 모세는 그럼 얼마나 배운 사람이었습니까. 출애굽기에 의하면 그는 유대인 레위 지파 부부에서
태어났지만 당시 애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학대를 받고 있었는데, 특히 그 때는 유대인이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졌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장에 보면 모세의 부모는 낳은 아들을 하는 수 없이 작은 상자에 실어서 나일 강에 담아 띄워 보내게
되는데, 그 아이가 애굽 공주에게 발견됩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갓난아기 때부터 나이 마흔 때까지 당시 최고의 선진국인 애굽 왕궁에서
자라면서 최고의 학문을 배웠을 것입니다.
모세에게 있어서 홍해가 갈라지지 않을 이유를 대라고 한다면, 수십 가지, 수백 가지는 더 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자, 그는 손에 뭘 잡고 있었어요? 예, 지팡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합니다. 홍해 바다 모래사장 위에
글씨를 쓰기 시작합니다. 당시 성인 남성 60만명, 여자와 어린 아이까지 다 합치면 200만 명 정도 되고, 지금 추격해오는 애굽
군대를 향해서 총공격을 한다고 했을 때, 예상 희생자 수와 이길 확률을 막 계산을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그랬더니 “아잇, 지금 바쁘니까 잠깐 좀 계세요.”
그러면서 이제 또 계산을 합니다. 아니면 지금 약 200만명이 빠께쓰……아니, 지금 한일관계를 생각하면 빠께쓰라고 하면 안 되죠.
양동이를 들고 홍해 바닷물을 퍼냈을 때 걸리는 시간을 막 정신 없이 계산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또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그러니까 또 모세는 신경질을 냅니다.
“아잇, 지금 정신 없는데 왜 자꾸 말을 걸어요. 가만히 좀 계시라니까요.”
만약에 모세가 이랬다면, 여러분, 이게 뭐라구요? 예, 이것이야말로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すべては空しく、風を追うようなものだ)”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헛된 인생, 바람을 잡으려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헛된 인생을 살지 않았습니다. 바람을 잡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명령합니다.
출애굽기 14장 14절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主があなたがたのために戦われるのだ。あなたがたは、ただ黙っていなさい。」
이것이야말로 믿음의 사람 모세의 놀라운 신앙고백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출애굽기 14장 15절~16절
“1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16.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主はモーセに言われた。「なぜ、あなたはわたしに向かって叫ぶのか。イスラエルの子らに、前進するように言え。
あなたは、あなたの杖を上げ、あなたの手を海の上に伸ばし、海を分けなさい。そうすれば、イスラエルの子らは海の真ん中の乾いた地面を行くことができる。
이렇게 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100대 0, 1000대 0으로 지고 있었던, 아니, 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그들의
상황은 완전히 역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린 아이 하나 다치지 않았고, 애굽 군대들은 모두가 홍해 바다 속으로 잠겨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승리하는 삶,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사는 사람의 모습인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어떤 스포츠 경기가 있다고 칩시다. 저는 그 스포츠에 대해서 전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께서는 야구는 잘
아시죠? 그런데 비슷한 것으로 크리켓이라고 하는 스포츠가 있어요.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만, 갑자기 우리가 그 스포츠를 해서 이겨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어요.
그러면 여러분께서는 처음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으십니까. 아, 야구랑 비슷하다고 하니까, 공을 잘
던지는 훈련을 해야겠구나. 아니면 공을 방망이로 잘 맞추는 연습을 해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게 틀렸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우선순위가 바뀌었습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운동경기의 규칙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무조건 공만 잘 던져요? 무조건 방망이만 잘 휘둘러요? 이기려고
하면 점수를 따야 하는데 점수를 따는 방법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그 운동경기의 규칙을 알아야 합니다. 규칙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공을 멀리 던져도, 아무리 방망이를 잘 휘둘러도 절대로 점수를 딸 수 없고, 점수를 딸 수 없다면 절대로 이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건 그야말로 헛되어 바람을 잡는 일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すべては空しく、風を追うようなものだ
우리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이기려면 점수를 따야 하고, 점수를 따려면 규칙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규칙은 어디에 나와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에 나와 있는 것인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는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레위기 19장 18절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あなたは復讐してはならない。あなたの民の人々に恨みを抱いてはならない。あなたの隣人を自分自身のように愛しなさい。わたしは主である。
여호수아 1장 9절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わたしはあなたに命じたではないか。強くあれ。雄
々しくあれ。恐れてはならない。おののいてはならない。あなたが行くところどこででも、あなたの神、主があなたとともにおられるのだから。」
시편 115편 9절~11절
“9.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10.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11.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イスラエルよ 主に信頼せよ。 主こそ助け また盾。
アロンの家よ 主に信頼せよ。 主こそ助け また盾。
主を恐れる者たちよ 主に信頼せよ。 主こそ助け また盾。
잠언 9장 1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主を恐れることは知恵の初め、聖なる方を知ることは悟ることである。
신약성경도 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18절
“16.항상 기뻐하라
17.쉬지 말고 기도하라
18.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いつも喜んでいなさい。
絶えず祈りなさい。
すべてのことにおいて感謝しなさい。これが、キリスト・イエスにあって神があなたがたに望んでおられることです。
요한복음 13장 34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わたしはあなたがたに新しい戒めを与えます。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わたしがあなたがたを愛したように、あなたがたも互いに愛し合いなさい。
성경에는 온통 규칙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위한 규칙입니까. 우리의 자유를 속박하는 규칙입니까?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 위한
규칙입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승리하기 위한 규칙,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인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지금 이기고 있는 것 같지가 않습니까. 믿음 안에서 지고 있는 것 같습니까. 실패한 인생을 살아온 것 같습니까.
헛되고 공허하고 바람을 잡는 것만 같은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것 같으십니까.
괜찮습니다. 게임은 아직 안 끝났습니다.
날개를 달라고 했는데 쇳덩이를 주셨다고 원망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할 때 그 쇳덩이는 거대한 비행기로 변하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규칙,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비결인 성경 말씀대로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는 그 비행기 일등석에 앉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조종석에 누가 앉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주 되신 예수님께서 앉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엔진을 거십니다. 그리고 힘차게 활주로를 달리고는 저 하늘 높이
날아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믿고 의지할 때 물이 포도주가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할 때 홍해가 갈라지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을 믿고 의지할 때 힘차게 활주로를 달려서 저 하늘 높이 날아 오르게 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편 103편 3절~5절
3.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主は あなたのすべての咎を赦し あなたのすべての病を癒やし
あなたのいのちを穴から贖われる。 主は あなたに恵みとあわれみの冠をかぶらせ
あなたの一生を 良いもので満ち足らせる。 あなたの若さは 鷲(わし)のように新しくなる。
베드로전서 5장 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ですから、あなたがたは神の力強い御手の下にへりくだりなさい。神は、ちょうど良い時に、あなたがたを高く上げてくださいます。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남은 귀한 우리의 인생 속에서, 주님을 믿고 의지할 때에, 주님께서 주신 이 성경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더 이상 헛되고 바람을 잡는 삶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놀라운 기쁨과 축복으로 가득 찬 삶,
넘치는 은혜로 가득 찬 삶,
이기고 또 이기는 승리하는 삶,
독수리처럼 저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삶,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올리시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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