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100년의 역사를 지닌 죽곡정사에는 매화가 한그루 있다. 꽃도 남다를 뿐 아니라 그 수형이 와룡매를 닮았다.
이 나무는 이름도 없이 하냥 피고지고 몸을 만들어 갔다.
몇 년 전부터 이 매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오랜 역사를 가진 마지를 만들어 낸 이찬식선생님이 이대로 두면 안 된다는 것과 함께
죽곡정사를 설립한 회봉선생은 월랑동이라 부르던 이 골짜기에 일제의 강압을 피해 작은 초가 한채를 매입 서당을 열었다. 당시에 이 집은 비록 초가지만 서까래나 기둥이 반듯하고 단단하여 조금 손을 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했다.
이후 이 집을 관리하던 분은 봉산조부님이었다.
내가 이집 식구가 되었던 1981년부터 난 매년 매화를 봐 왔다.
그러나 꽃에 대한 관심보다는 우선의 삶이 바빴다.
주어지는 삶을 이기며 살다가 보니 어느덧 세월은 40여년을 넘겼다.
나날의 계단을 오르며 사는 요즘 이제는 느긋하게 돌아 볼 여유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
연못과 함께 있는 매화나무에 관심이 갔다. 그래서 찾고 싶었다. 우리 매화나무는 어디서 왔으며 어떤 수종일까?
다행이 기인처럼 사시는 조규춘선생님 역시 이 나무에 큰 관심을 보였다. 나의 뜻을 말하자 그 역사를 짚어 주었다.
비슷한 나무들이 있다고 담양쪽에 많다고 하여서 찾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작년에는 조금 늦어서 꽃들이 거의 저버릴 무렵에 갔더니 사진이 잘 나오지 않았다.
어제는 갔더니 또 너무 빨라서 꽃들이 피어나지 않았다.
아쉬운대로 첫 송이들이 피어 있어서 하나씩 찍어 왔다.
죽곡정사 매화꽃
꽃이 참 단아하다.
성글게 피어나기는 하지만 해마다 이리 고운 자태로 피어나니 나로서는 고마울 뿐이다.
올해는 확실하게 죽곡매의 원 조상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으며 나무의 이름은 무엇으로 해야 하는지 꽃을 보고 정리하고자 이 글을 쓴다.
우선 매화의 이름은 당호나 심은 사람의 호를 따서 부치는 경우가 많다.
꽃 모양으로 봐서 당 희종이 고부천선생께 선물했다는 매화에서 배양되어 나온 것은 아닐까?
고부천은 고경명선생의 증손이다.
호남에서 고씨, 안씨, 양씨는 집안끼리 서로 내왕하며 지내던 사이다.
죽곡매가 서로 꽃을 나누어 심던 그 매화 중 하나였지 않을까? 사진을 직어 대조해 나가고 있다.
임진왜란 때는 목숨을 바치며 나라를 지켰고, 일제강점기에는 문화를 말살하려는 무리들에게 문학적인 글로 우리의 자존심을 지켰다. 매화는 오직 꽃 모양을 변하지 않고 해마다 피어나서 자신의 존재를 지켜왔다.
전해듣기로는 희종황제가 선물로 준 매화는 고부춘 선생이 담양 창평 유천리 고향에 심었고 황제가 선물로 준 매화라 하여 귀하게 여기고 배양했을 터, 거기서 배양된 나무들이 퍼져나가서인지 담양에는 비슷한 화형으로 피어난 매화가 많았다.
작년에 늦게 가서 아쉽게 찍은 매화들 중에도 비슷한 화형을 가진 꽃이 많았다. 조씨문중의 죽림재, 우선 사진으로 찾은 계당매,
명옥헌, 매화도 비슷했다.
문서로 기록 된 것이 없어 원 조상을 찾을 길은 없으나 화형으로 봐서 대명매나 계당매가 모두 같은 수종으로 보인다.
죽곡정사 앞에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 있는 은행나무의 수령을 200년으로 보았을 때 매화역시 낮게 잡아도 그와 비슷한 수령이지 싶다.
사람들이 나이가 어쩌고, 화형이 어떻고, 수형이 어떻다고 하건 말건 올해도 매화는 곱게 피었다.
첫댓글 멋지십니다
매화꽃의 조상 찾기도 어렵군요.
알고 보면 더 자세히 볼 수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