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백상인, 그는 정말로 죽은 것일까?
물론 그는 죽지 않았다.
최초, 그가 악마성자를 향해 광검과 금검을 동시에 사용하려다가 돌연한 탈진으로 쓰러졌을 때, 소요성수는 그를 구해서 달아났다. 그것은 거의 임기응변적인 행동이었으되 동시에 그를 따르는 사람이 세 명이나 더 있었다. 바로 나탁과 여초량과 공공문주인 여절생, 그들 모두는 목숨을 다해서라도 백상인을 구하고자 했다.
백상인이야말로 차후 무림을 다시 찾을 수 있는 희망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며 또한 그들은 나름대로 백상인과 모종의 인연이 있었다.
허나, 목령존자의 무예가 너무도 막강하여 도무지 그 길이 없었다.
따라서 그들은 절박한 모험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그 의견에 동의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심리와 공공문주 여절생의 특유한 환술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먼저, 나탁이 희생양이 되어 먼저 목령존자에게 희생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여초량과 여절생이 동시에 나타난듯 했으나 실은 그중 여절생의 모습은 다만 환술에 불과했다.
목령존자가 만일 보통 때였다면 능히 그 구별을 해냈었겠지만 소요성수를 뒤따르느라 미처 거기에 대한 주의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당시 가루로 부서져버린 여절생은 역시 환술이었으되 목령존자는 이를 당연히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고 지나쳤다.
그것은 이미 나탁의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며 이와 같은 방법은 마치 최면효과와 같은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코 목령존자와 같은 사람을 속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최후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들은 본래부터 행로를 잠룡곡으로 잡았으며 모퉁이를 돌아가는 한순간 소요성수는 백상인을 잠룡곡의 절벽 아래로 힘껏 내던졌다. 그러한 행위는 매우 위험했으나, 목령존자에게 잡히는 것보다는 덜 위험하다는 사실을 그는 이미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살아날 확률이 얼마 되지 않을는지는 몰라도 거기에 기대를 거는 것이 더욱 현명한 까닭이었다.
동시에, 여절생은 백상인으로 변장하여 소요성수에게 안긴 채 달려갔다. 그러다가 소요성수는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행동을 보여 목령존자로 하여금 초조한 마음을 일으키게 했고, 그로 말미암아 목령존자는 여절생의 환신을 백상인으로 잘못 알고 얼떨결에 죽여 버린 것이다.
이미 의식을 잃었던 백상인과는 달리, 여절생은 아무래도 살아있었으므로 최후의 순간에 전신이 부르르 떨림을 어찌할 수 없었던 것이며, 다행히 목령존자는 그러한 사실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가 만일, 그 순간에도 저 멀리에서 아득하게 떨어져 내리고 있는 백상인의 진짜 육신을 보았었다면 사태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어쩌면 향후 무림의 양상이 크게 달랐을지도 모른다.
* * * * * * * *
그럼, 천장절벽 아래로 세차게 곤두박질하며 떨어져 내린 백상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육신이 보통사람과 같았다면 아마 떨어지는 동안에도 그의 목숨은 산목숨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백상인은 이미 금강불괴를 연성한 몸이었고, 또한 우연히도 백상인이 떨어져 내리는 바로 아래가 폭포수였다.
소요성수가 일부러 그를 그곳에 내던졌는지도 모르지만,
콰콰콰콰콰.....
허나 폭포수라고 할지라도 거기에 세차게 부딪치면 결코 안전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의 육신이 세차게 마악 폭포수의 물줄기에 부딪치려는 찰나였다
슥!
돌연 하나의 금빛 인영이 유령같이 나타나 백상인의 몸을 허공에서 부드럽게 받아들었다. 헌데, 그 인영의 모습이 결코 예사롭지 않았다. 구름 같은 금빛수발이 아름답게 나부끼는 투명한 금빛 나녀, 바로 과거 백상인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우담화의 정령이 아닌가?
전설의 무극지지에서 자라는 신비의 우담화, 그 정령과의 만남은 실로 운명적인 기연이라고 아니할 수 없었다.
이미 육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우담화의 정령은 백상인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정령은 백상인의 품속에서 과거 자신이 주었던 정표, 금화를 꺼내들어 냄새를 맡아보더니 이내 백상인을 안고 폭포 속으로 사라졌다. 우연히도 이곳은 과거 백상인과 잠룡회의 거주지로 이용했던 바로 그곳이었던 것이다.
정령은 폭포수 뒤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침상위에 백상인의 몸을 눕혔다. 이 동굴은 과거 백상인이 사용했던 곳인데 인적이 끊긴지 오래된 지금에도 여전히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당연하게도 백상인은 침대에 눕혀졌지만 깨어날 생각을 못했다.
"....."
애타게 그를 바라보고 잇던 정령은 잠시 후에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 마치 꿀처럼 끈적한 황금빛 물을 손에 담아와 그에게 먹였다. 이 황금수는 실로 기이한 것이었다. 거기에서는 정신을 맑게 하는 진한 향기가 흘렀고, 백상인의 입에 닿자 절로 목구멍으로 스르르 넘어갔다. 그리고 대뜸 백상인의 전신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허나 쉽사리 그는 의식이 깨어나질 못했다. 그러자, 정령은 주저하더니 계속해서 백상인에게 그 황금수를 떠다가 먹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가 깨어날 때까지 이 일을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황금수는 끊임없이, 그리고 꾸준하게 백상인의 체내로 스며들어갔다.
그렇게 많은 양의 황금수를 마시고도 배가 부르지 않는 것을 보면 백상인의 몸은 마치 물을 끊임없이 습수하는 특수한 스폰지같았다. 허나, 황금수에는 언젠가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마침내 최후의 황금수마저 떠온 정령은 눈이 퉁퉁 붓도록 울기 시작했다. 비록 말은 하지 못하고 소리는 지르지 못했으나, 애절한 그 흐느낌은 실로 그 어떠한 슬픔보다도 더해보였다.
그러다가, 정령은 백상인의 옷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스스스슷.....
백상인은 금세 태어날 때와 똑같은 알몸이 되었다.
그러자 정령은 그의 몸 위에 자신의 영신을 실었다. 이어, 서로의 입을 맞추자, 홀연 정령의 입속에서 달콤한 향기가 흐르는 우유빛 타액이 흘러나와 백상인의 입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타액의 양은 매우 많은 편이었다.
향 한 자루 탈 동안의 시간이 흐르자 그 타액의 양도 줄어들었다.
그러자, 정령은 이번엔 몸을 백상인과 비벼대기 시작했다. 그럼에 따라서 기이하게도 백상인의 나신을 붉게 달아오르더니 사지를 마구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욕정에 굶주린 야수 같았다. 이어, 정령은 잠시 주저하더니 백상인의 상징을 자신의 비소로 가져가고는 힘주어 안았다. 순간, 그녀의 비소에서는 흡사 피처럼 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헌데 그것들은 백상인의 피부에 닿자 거짓말처럼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정령은 매우 황홀한 표정으로 입속에서 더욱 많은 타액을 흘려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기를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홀연 정령의 몸이 그대로 백상인의 몸 위에서 녹아들기 시작했다. 마치 환상처럼..... 서서히 자신의 몸이 녹아들고 있음에도 정령은 끝내 황홀한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그것은 진정 사랑하는 님에게 모든 것을 바쳤을 때의 즐거운 자부심과도 같았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정령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정령의 죽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백상인은 다시 홀로 남았다. 허나, 이 순간 그의 육신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황금빛 서광, 그의 전신에서 황금빛 서광이 점차 강렬해지더니, 어느 한순간 백상인의 육신이 저절로 깃털처럼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허공에서 천천히 가부좌를 트는 백상인의 모습은, 이미 그가 원래대로 회복되어 감을 뜻하는 것이었다. 여기 한 애틋한 정령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채...
* * * * * * * *
백상인, 그는 서서히 의식이 돌아왔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허공에 떠오른 채 깃털처럼 가벼워져 있음을 느꼈다. 이는 그의 몸과 무예가 전과 다름없게 회복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몰론 그는 그 이유와 그간의 사정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믿을 수가 없었다.
눈을 뜬 후, 동국바닥에 내려선 그는 동굴안쪽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동굴의 끝에는 하나의 작은 샘이 있었는데 그 빛깔은 은은한 금빛을 띠고 있었고 그것은 다름 아닌 금천령수라는 것이었다. 금천령수는 바로 무극지지의 특성중의 하나이다. 이미 알몸인 백상인은 축골공을 발휘하여 금천령수의 비부로 스며들었다. 금천령수의 안쪽에는 크기가 주먹만 한 구멍이 하나 있다.
고무줄처럼 가늘게 늘어난 몸으로 그 구멍을 통과하자 거기에는 또 다른 신천지가 펼쳐진다.
직경이 십 장 정도의 원통형 공간, 백상인이 올라온 아래쪽에는 금천령수가 가득하고 가운데에는 전설의 무극금황정과 그 위의 우담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황금빛 광채가 이 작은 공간을 가득 덮고 있을 것이다.
헌데, 사실은 그와는 달랐다.
동국속에서 이곳 무극지지의 중심으로 향하는 작고 기다란 구멍을 통과하고 났을 때 우선 그 공간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만일 백상인의 무예가 어떠한 어둠속도 꿰뚫어볼 수 있는 허실생동의 경지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면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칠흑 같은 어둠도 백상인은 대낮같이 환하게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공간의 중앙, 무극금황정은 없었다.
다만 과거의 무극금황정이었음직한 얇은 껍질과 그 옆에 말라 죽어버린 우담화의 형체가 보였다. 있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바닥에 가득 찼던 금천령수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그것은 무극금황정이 사라짐에 따라 무극지지라는 것이 완전히 소멸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제 세상에 더 이상의 무극지지는 없을 것이다. 백상인은 내심 장탄식을 하며 우담화의 껍질을 집어 들었다. 본래, 정령은 자신의 피와 살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무극금황정의 용해된 액체, 무극금장을 백상인에게 먹인 것이고, 그것이 완전히 바닥이 나자 마침내 자신의 정기까지 백상인에게 주입시킨 것이다. 따라서 백상인은 완전히 무극지지의 결정을 체내에 받아들인 격이 되었으나 그때문에 우담화는 이렇게 죽어간 것이다.
단순히 백상인을 애모하는 마음으로 인해 그녀는 자신을 희생시킨 것이다.
대체 이와 같은 정성은 가히 인간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백상인은 내심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허나, 이제 와서 그가 그녀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다는 말인가? 백상인은 연신 장탄식을 토했다.
그러자 그의 입김에 의해 우담화의 껍질은 완전히 가루로 변해 사라지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무극금황정의 껍질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이곳은 무극지지였다는 증거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된 것이다.
백상인은 연신 한숨을 내쉬다가 서서히 신형을 돌렸다. 금천령수도 어느 틈에 모두 다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그 화려하던 이곳은 황폐한 유부처럼 변해버렸다.
헌데, 그가 이곳을 나가려고 무심코 금천령수가 모두 사라진 바닥에 시선을 주었을 때였다.
".....!"
백상인은 문득 흠칫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금천령수가 가득차 있던 바닥, 그 바닥은 평탄한 암반으로 되어 있었는데, 다름이 아니라 거기에 온통 기이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고대의 범어가 아닌가.....)
백상인은 내심 중얼거렸다.
범어 -----
그것은 천축어를 말함이다.
그리고 고대범어라고 하면 최소한 천 년 정도의 전에 쓰던 문자였다. 그러한 고대의 범어가 이러한 지극히 은밀한 곳에 새겨져 있다는 것은 실로 기이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히 모든 학문에 능통한 백상인은 고대범어에 대해서도 정통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 글자들의 첫머리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기에 백상인도 전혀 예측을 못한 엄청난 비사가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 연자에게 남김다.....
우리 반야문은 오직 단맥으로만 은밀하게 전해 내려왔다.
그것은 그만큼 본문의 무예가 심오하기 때문이었다. 본문의 무예를 연성할 수 있은 기재를 찾기도 어렵지만 만일 본문의 무예를 연성한 자가 자칫 악의를 품고 세상에 나간다면 장차 거대한 겁란이 일게 되리라. 하여, 우리 반야문의 제자들은 다음대를 이을 기재를 선별하는데 있어서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마가 씌인 것일까?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 제자선별이 본인의 대에 이르러 엄청난 차질을 빚고 말았다. 제바다라, 그는 본인이 십 년이란 세월을 들여 겨우 찾아낸 실로 훌륭한 무학기재였다.
그리고 당연히 그의 심성도 최초에는 선량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무예연마도중 그가 심마에 빠져들 줄이야... 그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나는 능히 그러한 사실을 헤아렸다. 그의 사고가 본문의 교시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해가자 나는 부득불 그를 제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간의 정이 많이 들었던 까닭에 나는 다소 그러한 결단을 주저하게 되었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엄청난 결과를 몰고올 줄이야.....
나의 제자인 제바다라는 나의 의도를 재빨리 간파하고서 어느 날 은밀하게 나를 암습했던 것이다. 비록 무예가 그보다는 고강했으나 암습에 의해 나는 패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야말로 죽을 고비를 무수히 넘기고 중원으로 도망쳐왔다. 허나 만만치 않은 나의 반격에 의해 그 역시 심각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중원에 들어온 나는 다행히도 이 무극지지의 땅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래 나는 이곳에서 우담화를 복용하고 상처를 회복하여 다시 천축으로 건너가 제바다라를 제거하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나는 천기를 헤아려보게 되었다.
헌데 어이없게도, 그 천기에 의하면 나의 제자였던 제바다라는 의외로 나의 반격에 의해 내상이 심해져서 죽어버리고, 지금은 그의 무예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문파명도 달라져서 악마교라 자칭한다고 했다.
이러한 사실에 나는 고민했다.
지금 즉시 달려가 그 제가의 후예를 제거해 버릴 것인가? 아니면... 나는 그때 마침 나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다. 더욱이 사실상 우담화는 나와는 인연이 없는 것이며 그 악마교의 피해도 당장은 없을 것을 알아차리고 나는 마음을 돌리기로 작정했다.
나는 천년 후를 내다보았다.
그때에야 비로소 그 악마교의 해악이 천하에 미칠 것이며 또한 이 우담화와 인연이 있는 자 역시 그 시대에 나타날 것이라고, 그리고, 이 우담화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면 능히 그 심성도 훌륭하리라. 우담화는 신령스런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 연자를 위해 이곳에 본문의 절학을 모두 남기기로 했다. 동시에 내가 해야 할 과업도 그대에게 전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우담화와 무극금황정에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고 그냥 죽어간다. 그러면 그대는 이렇게 의문을 가질는지도 모른다.
천 년 전의 본문의 무학을 연성해 보았자 악마교의 무리들과 상대가 되겠느냐고, 허나, 그러한 의문은 가질 필요가 없다. 당시 나는 나의 제자인 제바다라에게 본문의 절학을 다 전수시킬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문무공의 초고봉에 도달하면 어떠한 야욕도 품을 수가 없는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 성자의 지위에 오르게 되기 때문이다. 제바다라는 미처 그 지위에 오르지 못하고 사견을 품어 마의 길로 들어섰으니 그의 제자들도 역시 그 수준일 것이다. 안심하고 본문의 무예를 연성하라. 그리면 아무런 장애도 없으리라.
참고로 말하자면, 제바다라가 연성한 단계는 도검의 경지이고 본문최고의 경지는 바로 도검을 넘어선 무검의 경지이다. 그 무검의 경지는 본문의 오랜 숙원인 성검에 오르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아직 성검의 단계는커녕 무검 이상의 경지에 오른 사람도 없으니, 그것은 오직 말 그대로 숙원일 뿐이다.
따라서, 나는 그대에게 굳이 본 반야문을 계승해 달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본문의 숙원인 성검을 이루어서 만인에게 가르침을 베풀어주길 바란다. 실상 그것이 바로 본 반야문을 잇는 실질적인 것이 될 것이니까.
헌데, 그대는 자칫 또 다른 두려움에 접할지도 모른다. 자신 역시 제바다라처럼 마의 길로 접어들게 되면 어쩔까 하고, 그러나, 역시 안심하라!
나는 천기에 의해 그대가 불세출의 가장 위대한 전설적인 신체인 완벽한 대인상을 갖춘 전륜성제상을 지닌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지식에 의하면 전륜성제상의 인물은 결코 마의 길로 빠져들지는 않는다고 하였으니, 그대는 장차 어쩌면 본문의 숙원을 이루어 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제 임종이 다가왔다.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은 금천령수가 덮여있는 관계로 오직 그대만이 볼 수가 있으리라 나의 이 글을 보는 즉시 지워줄 것을 당부하면서, 차후의 일은 모두 그대에게 맡긴다. 모든 일은 정말 잘 되어가리라.
그럼, 천년 후에 나와 인연이 있을 친구여, 안녕히.....
(이럴 수가..... 그럼 내가 정말로 전륜성제상의 인물이란 말인가?)
백상인은 내심 믿을 수 없어 반문했다.
허나, 지금 그러한 일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반야문, 이 생소한 이름.. 그리고 악마교와 제바다라, 이러한 것들이 얽히고설킨 전래의 비사는 확실히 그에게 강렬한 충격과 어떤 진로를 분명하게 시사하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실행뿐이다.
자신의 전륜성제상이 분명하느냐 아니냐로 주저할 시기는 아니었다. 전후의 이야기와 지금 현무림의 동태를 미루어 보건대, 이 이야기에는 조금의 거짓도 없을 것이다. 백상인은 시선을 다음으로 움직였다. 다음으로 적혀있는 내용은 바로 난해하기 짝이 없는 이른바 무예구결이었다.
그 내용은 백상인 마저 언뜻 이맛살을 찌푸릴 정도로 어려웠다.
백상인은 그 구결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구결은 대체로 생각보다는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한자 한자에 숨어있는 심오한 뜻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백상인은 어렵게 읽어나가면서도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앞에 적혀있는 그대로, 그 결의 내용은 심검의 초보부터 시작하여 그 중간단계인 광검, 그리고 심검의 마지막 단계인 도검과 마지막의 무검순으로 되어 있었으며, 광검의 내용을 읽는 도중 백상인은 자신이 연마한 선조의 광검구결이 바로 이 반야문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 광검구결은 그의 선조들에게 어떻게 전해진 것일까? 악마교에서 전해졌을 리는 없고, 아마도 과거 반야문에도 정식제자가 아닌 사람들이 몇 명 정도는 있었을 것이며, 그 방계의 사람들에 의해 구결이 전해졌을 것이다.
도검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악마교의 도대호법존자들이 연성한 오행도검에서부너 태극, 양의, 삼재, 사상, 육합, 칠효, 팔쾌, 구궁도검에 이르기까지 그 수효는 매우 많았다. 그런, 그러한 것들은 일정한 이치를 담고 있으니 태초의 우주가 무극에서 시작하여 다시 무극으로 돌아가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누구라도 태극도검에서 구궁도검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연성한 다음에야 비로소 무극도검이라는 도검최고경지에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마성자는 어느 경지에 도달해 있을까?
아마 무극도검에는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구결에 의하면 무극도검에 이르기 위해서는 온갖 사견과 마를 제거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이를 연성하면 곧 무검의 위치에 당도하리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극도검을 연성하기가 가장 어렵고 또 마가 생기기 쉬운 것이다.
어쨌든, 백상인은 적혀있는 모든 내용을 암기하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로서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무려 수십여 가지나 되는 이러한 심오한 무예구결을 쉽사리 이해하겠다는 것
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 난해함은 마지막 무검의 구결에 이르러 확실히 더했다. 그리고 모든 구결의 끝에는 다음과 같은 서명이 적혀있었다.
----- 반야다라.
아마 이 글을 적은 사람이 바로 그인 모양이었다.
백상인은 그 모든 내용을 암기하고 진기를 일으켜 바닥의 글씨를 지워버렸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그는 지금 모든 무예구결을 완벽하게 빠짐없이 암기한 상태이며 어느 곳이건 시간만 있다면 연마가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곳에서도 연마는 가능하다.
허나, 만일 돌아간 목령존자가 깊이 생각해본 끝에 자신의 허술함을 발견하여 다시 이곳으로 온다면 자신은 그들에게 암습을 당할 염려가 있다. 그리고 또한 자신은 무맹이 완전히 무너진 지금, 최후의 보루하고 할 수 있는 그의 성수장의 금검문과 잠룡회를 찾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천상삼화라고 해도 그들의 눈을 피하기는 무리일 것이다.
다소 위험성이 있더라도 그가 그들을 돌봐주어야 한다. 세상에 그들마저 없어진다면...
결국, 백상인은 즉시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그는 다시 한번 모든 구결들은 완벽하게 지운 후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담화의 정령, 그 애틋한 체취는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았다. 백상인은 우담화가 있던 자리로 가서 다시 한번 눈시울을 붉힌 뒤, 서서히 떠나기 시작했다. 이제 이곳을 다시 찾을 일은 없으리라.
안개처럼.....
그의 신형이 사라져간 뒤.....
이 은밀하고 어두운 공간에는 적요만이 남았다.
마치 자신의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성자의 마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