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대량생산을 했기 때문에 연결부위 등이 무척 조잡하다. 멋보다는 강인함에 초점을 둔 것이다. 물론 T-34가 2차 대전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전차는 아니었지만 주어진 임무는 확실하게 수행해냈고, 그 엄청난 생산량은 전쟁의 균형을 뒤집어버리기에 충분했다 - 영국 크롬웰 프로덕션, '2차 대전사'
"어떤 얼간이들은 소련의 T-34가 2차 대전 최고의 전차라고 합니다. 소련은 이걸 9만대나 생산해냈죠. 그래서, 당시에 그들이 우리 편이었던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군요."- 히스토리 채널, 밀리터리 Q&A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소련에서 생산되어 기갑부대의 주력으로 운용된 중(中)전차. 소련군이 붙인 별명은 로지나(Родина:조국)이라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많이 쓰인 말이 아니었으므로 현지에서 찾을 때는 그냥 T-34라고 찾아야 알아듣는다.
T-34는 BT-7M 쾌속전차의 후속 전차로 개발되었다. 1939년 8월 76.2㎜ 전차포를 장비한 A-32가 신형 중전차(中戰車)로 선정되었지만 1939년 12월 발발한 핀란드와의 겨울전쟁 결과 A-32의 성능부족이 드러나면서 생산 계획이 취소되고 말았다. 이후 A-32와 경쟁에서 탈락하였던 A-20 설계팀이 A-20의 장갑두께를 1.5배 강화한 개선안을 제출하고, 1939년 12월 이 개선안이 T-34로 제식 채용되었다
[T-26 보병 전차 당시 소련이 장비한 최신의 전차였지만 부족한 방어력과 공격력은 이내 새로운 전차의 필요성을 깨달게 해주었다]
하지만, T-34가 채용되기까지의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1940년, T-34 전차의 채용이 사실상 확정되어 제183공장에서 500대,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100대를 생산하기로 계획되었던 차에 독일로부터 3호 전차 2대가 수입되는 난항을 겪게 되었다.
[T-34 전차 1940년형 제일 처음 생산된 T-34 타입으로 독특한 형태의 포방패와 짧은 포로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당시 소음에 있어서는 치하와 자웅을 겨룰 정도로 요란하기 그지없던 T-34에 비해 비교적 소음이 적은 3호 전차는 소련 기술진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안정된 서스펜션과 넓은 포탑 내부 공간, 그리고 전차병 개개인에게 지급되는 차내 인터폰 및 우수한 성능의 무전기 등 T-34가 3호 전차에 비해 유리한 것은 공격력과 방어력 뿐이었다. 하지만 당장 T-34가 못 쓸 물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포병 사령관 그리고리 쿨리크 원수는 이걸 빌미로 계속 시비를 걸면서 T-34의 설계 및 생산 자체를 원천 봉쇄하려 한다.
[왼쪽부터 A-8 (BT-7M), A-20, T-34 1940년형, 1941년형]
쿨리크 원수는 1890년생으로, 스탈린의 최측근으로 막강한 권력을 보유한데다가 보수적인 육군 장성이었다. 게다가 코시킨 기사의 상관인 리하초프가 자신의 라이벌이라는 이유까지 있었으니 어떻게든 T-34의 채용을 막기 위해 애를 썼다.
[취소된 T-34M..T-34 전차는 개발이 완료된 시점에서 독일의 소련침공이 시작되었고 전장에서의 어려움으로 더이상의 개발보다는 기존 개발한 형식을 간략화 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리하여 T-34M과 같은 새로운 전차 개발은 중지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훗날 전후 이는 T-40 ..로 이어져 또하나의 걸작전차인 T-54/55 를 개발하는데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
초창기 'T-34에 탑재될 76.2mm 주포가 너무 약하니 107mm 주포를 탑재하라', '이런 전차보다는 BT 계열의 쾌속전차를 생산하는 것이 낫다!' 식의 태클을 시시건건 걸어왔던 것이다. T-34M로도 불리는 A-43은 그러한 쿨리크 원수의 태클이 절정에 이른 시제형으로 KV-1과 같은 전형적인 중전차의 외형을 갖추고 있으므로 사실상 T-34를 설계 중단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T-43(오른쪽)과 T-34 1943년형]
덕분에 레닌그라드 전차공장 지대에서 수석 설계자로 근무하다가 쾌속전차를 개발하던 하리코프 기관차 공장으로 전속된 후 이 곳에서 설계 중이던 신형 쾌속전차 A-20을 기초로 보다 강력한 76.2mm 주포를 탑재하고, 장갑을 강화하는 한편 광폭 궤도를 적용시켜 유명한 T-34를 만들어서 T-34의 설계자이자 아버지로 불리는 코시킨 기사는 과로와 쿨리크 원수의 방해로 인해 결국 1940년 9월 26일,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그 이후 모로조프가 수석 기술자가 되어 설계는 재수정되었지만 쿨리크 원수는 이 때까지도 계속 딴지를 걸어 A-43의 개발이 완료될 때까지 기존 T-34의 생산을 중지할 것을 제의하는 판국이었다.
결국 쿨리크 원수의 딴지 및 몇몇 악재로 인해 1940년 제183 공장과 스탈린그라드 트랙터 공장에서 생산될 약 600대의 T-34/76은 겨우 117대만이 생산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프로호로프카 전투에서 파괴된 T-34 초기형]
그리고 쿨리크 원수는 T-34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만행을 저질렀는데, 대표적인 것이 실탄을 낭비한다고 보병의 기관단총 도입을 막았고, 지뢰도 쓸모없다고 하다가 결국 바르바로사 작전 때 소련군의 대패를 초래했다. 후에 소장으로 강등된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차리다가 전후에 전화로 스탈린에 대한 험담을 하다가 도청에 걸려서 반역죄로 총살당했으니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무덤을 판 대가를 치루었으나, 그가 저지른 만행은 바르바로사 작전뿐 아니라 독소전 초반과 중반기에 소련군의 막대한 피해를 불러오는 큰 원인이 되었다. 소련의 무다구치 렌야? 그런데 나중에 복권됐다(…).
[T-34/76 형은 가장 기본이 되는 T-34의 형식중 하나로 76.2 밀리의 주포와 제조공장의 포탑의
차이에 따라 형식을 구분짓게 된다 사진은 1941년식]
<1941년형 제원>
전장
6.68m
전폭
3m
전고
2.45m
전비중량
26.5t
탑승인원
4명 (전차장, 포수, 조종수, 무전수)
엔진
12행정 수냉식 디젤엔진 V-2
최고출력
500hp
최고속도
55km/h
항속거리
400km
무장
41.5구경 76.2mm 강선포 F-34 1문(77발)
7.62mm DT기관총 2정(2,898발)
T-34는 스페인 내전에서 기존의 고속/경장갑 중심의 전차들이 37mm Pak 36같은 견인식 소구경 대전차포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은 경험에 대한 반성에서 탄생한 중전차이다. 동맹국 생산을 포함하여 1940년~1958년까지 약 8만4천여대가 생산된 것으로 추산되어 대전중 생산된 전차로서는 최다 숫자를 자랑한다.
초기에는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한 대구경인 76.2mm포를 주포로 장비하였으며, 미국의 크리스티 전차로부터 도입한 특유의 현가장치는 경쾌한 기동력을, 넓은 캐터필러는 극한지에서의 기동력을 보장하였다. 차체와 포탑의 전/측면 장갑부에 크게 60도급 피탄경사설계를 도입하여 보병 지원 위주의 단포신 포 일색이던 독일군의 전차들을 무력화시켰다.
[T-34 1940년형의 부위별 장갑 두께]
이 형식을 보통 T-34/76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생산 시기에 따라 꾸준히 개량이 가해졌기에 주포가 같은 T-34/76이라고 하더라도 연도에 따라 별도로 구분하는게 옳다.
[앞서 이야기한대로T-34/76형은 주포의 형태에 따라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특히 L-11형은 1940년형에만 장착되는 독특한 방순을 가지고 있다]
경쾌한 기동성과 상당한 화력, BT고속전차로 부터 물려받은 피탄경사 설계로 당시 3/4호 전차가 주력이던 독일군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고, 이후 독일군은 T-34의 장점을 적극 도입한 판터를 새 주력으로 개발하는 등 기갑전력 개선에 박차를 가하지만 독일의 국력은 공산러시아를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었다.
[1940년 타입은 대형 사다리꼴 헷치로도 쉽게 구분이 되는데 그림처럼 전차장이 옆으로 보면서 지휘를 해야했기 때문에 상당히 불편했다 이후 이 헷치는 개량된다]
독소전 발발 시점에서 소련군이 배치한 T-34는 960대(생산은 1,220대)였고 이는 독일군이 동원한 전차 3000여대 중에 3호/4호 전차의 수효가 2천대 정도였음을 감안해 보면 그렇게까지 모자르지는 않을 정도의 숫자였다.
[1940형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일러스트]
그러나 막 새로이 배치된 신형 전차다보니 제대로 운용할 줄 아는 승무원 및 정비 인력이 거의 없을 정도였고, 대숙청으로 인해 지휘체계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한데다 예비 부품과 탄약비축량마저도 극히 부족해 거의 힘을 쓸 수 없었다. 심지어 한 소련 전차병은 '파시스트 놈들 땅크는 펄펄 날아다니는데 이 쌍놈의 T-34는 조금만 달려도 퍼져버린다. 변속기도 독일 놈들이 더 좋았고, 우리 건 엿이나 바꿔먹으면 딱 맞는다.'라며 폭풍디스를 시전했다.
[1940형은 작은 2인용포탑으로 방어력과 더불어 장전수가 없어 전투력에 문제가 있었다.]
이는 전훈의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된 바가 컸다. 제2차 대전 직전에 열린 스페인 내전에서 운용된 전차는 그다지 활약을 못하고 보병에 큰 피해를 입었는데, 공화국군의 군사고문으로 갔던 소련군 장교들이 이것을 보고 한 목소리로 "대규모 전차운용은 별로 효과없고, 역시 전차는 보병에 딸린 보조역을 해야한다. "고 주장했다. 이때문에 소련은 스페인 내전 이후 사단급 이상의 기갑부대를 모두 해체하고 기껏해야 보병에 딸린 여단이나 연대급으로만 기갑부대를 운용했다.
[1941년식은 본격적으로 F-34 의 주포가 장착된 타입이다]
그러다가 독일군이 폴란드 침공이나 프랑스 침공에서 대규모 전차운용으로 성공을 거두고, 겨울전쟁에서 소련이 참패하면서 "아 그때 그렇게 한게 맞았구나"하며 다시 예전대로 전차부대를 대규모로 편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독일한테 그 틈을 찔리면서 독소전쟁을 맞게 되는 불행을 겪게 된다. 이렇게 갓 신편되거나 재편중이었던 소련군 기갑부대는 아직 제대로 싸울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실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T-34/76 1941년형의 외형적 포인트를 잘 보여주는 모습]
그래도 무겁기 짝이 없는 KV계열도 아닌 중형 전차가 3호/4호의 공격을 잘근잘근 씹어먹는 성능은 독일군을 뒤집어놓기에 충분했고, 1941년 말 모스크바 전투에서는 눈밭에서도 우월한 기동성으로 활약하여 독일의 공세를 좌절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며 '모스크바의 수호신', '조국 전차'라는 별명을 얻게된다. 이후에는 생산량도 빠르게 늘어나고 허접한 성능도 서서히 개선되기 시작하며, 소련 지휘관들이 전차의 집중운용 개념을 제대로 습득하고 활용하기 시작하면서는 더욱 더 독일군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1940년형과 1941년은 독소개전까지 총 1,225 대가 생산되었습니다.
[T-34/76 1941년형은 1940년형과 더불어 대전초반의 대표적인 주력전차로 널리 이용되었다]
[소련군 T-34-85 이는 1943년부터 등장한 T-34의 후기 버젼으로 대형화된 3인용의 포탑의 장착과 85밀리 급의 대구경 포의 장착으로 덩시 무적이라 불리던 독일의 킹타이거에 맞설수 있는 전차중 하나였다. 훗날 이전차는 한국전쟁에서도 참전하여 악명을 떨치기도 하였다]
비록 초기의 T-34들이 불리한 조건에서 분전했으나 한계도 분명했다. 특히 단순 스펙상으로는 우세했으나 관측 및 통신장비가 부실하고 승무원 배치도 구식이라 전차장이 포수를 겸해야 하는등, 종합적인 전투 효율에서는 단점도 많았다. 이 문제는 꾸준한 개량으로 포탑을 대형화 시키고 전차장석을 독립시키며 큐폴라를 장비하는 등의 성능 향상으로 부분적으로 해결했으나, 본질적으로 2인용 포탑이라는 것을 개선하지 않은데다가 1942년 이후 독일군이 4호 전차의 주포를 개량(단포신 7.5Cm에서 장포신 7.5Cm로 재장착.)하고 티거, 판터 등의 신형 전차들을 개발하기 시작하자 근본적인 공격력이 답보 상태라 질적으로 압도적인 열세에 처하기 시작했다.
결국 대대적으로 화력을 개선한 것이 T-34/85.
[T-34-85형의 포탑. 후기형에 와서야 비로서 차장 장전수 포수등 3명이 포탑에 탈수 있어 전투 효울이 다소 높아였으며 특히 전 방위 관측이 가능한 지휘관 용 큐폴라가 장비됐다.]
주포로 채택한 54구경장 85밀리포는 티거의 주포보다 파괴력이 조금 떨어졌지만 APCR을 사용할 경우 이론상으로는 1,000미터 이내의 표준교전거리에서도 티거의 정면장갑을 관통할 수 있었다.
[T-34/85 1944/45년형에 장착되기 시작한 ZIS-S-5S 85밀리 주포 이는 독일군이 장비한 88밀리포에 윽박하는 관통력을 가진 주포였지만 실제로는 포신의 가공성과 포탄 제작기술의 어려움으로 원거리에서의 명중력 많이 떨어진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킬로 이내의 근거리 전투에서는 확실하게 티이거를 잡을 정도로 연합군이 가진 주포로는 꽤 강력한 성능을 보여주었다]
기존의 76mm 주포는 본래 경야포를 개수한 것이라 구경에 비해 실질적인 장갑 관통능력이 약하여 타국의 50mm급 대전차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처음에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티거 상대로는 사실상 측후면조차 거의 관통이 불가능했다. 티거야 극소수가 운용된 특수 전차니까 그렇다 쳐도, 1943년부터는 그동안 만만했던 3호/4호 전차 조차 장갑을 강화하며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력이 크게 부족해졌다.
[신형 주포를 장착한 1944년형 T-34/85형의 모습 만텔의 형태와 직시형의 두개의 관측창이 있어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즉, 85mm포로 교체한 결과 기존의 76mm형에 비해 티거나 기타 독일 전차와 확실한 교전 능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수치상의 결과이고, 일단 이론상 관통력과 실전에서 발휘되는 관통력은 상당히 달랐다. 한 때 독일군은 실제로 85mm를 자군의 88mm와 동급으로 분류했으나, 1944년 겨울의 독일 병기국 보고서는 소련군의 85mm 철갑탄은 티거의 전면 장갑을 상대로 300~500m 정도에서나 효과를 볼수 있는 것으로 기록했다. 전후의 기록을 연구한 후대의 연구자들도 85mm를 88mm가 아닌 75mm Pak 40과 거의 동급으로 보고 있을 정도.
[운전수 햇치로 들여다 본 T-34-85 전차의 내부. 탄약 상자가 바닥에 쌓여 있고 포탑 바스킷이 없어 장전수가 서서 작업해야했다. 앞은 운전석이다. 상당히 넓은것을 잘 알 수 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티거, 판터를 상대할 때였고, 다른 독일 전차 상대라면 85mm의 화력은 충분함 그 자체였다. 이전까지의 T-34는 독일의 4호 전차를 상대할 때조차도 화력이 충분치 않았지만, 이제는 효과적인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T-34/85는 4호 전차에 비해 확실히 방어력 및 기동력에서 우세했고 아무리 나쁘게 보아도 화력은 대등했다. 단지 표적획득 및 정밀조준능력, 그리고 조직적인 전투에 필요한 각종 부가적 요소들의 측면에서 여전히 4호 전차가 더 우세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이미 전략적 우세를 잡은 소련의 입장에서 그런 부차적인 요소들은 숫자로 메우면 그만인 수준이었다. 그 전까지는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확실한 우위를 잡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또한 이 전차의 기동력과 생산 용이성이 높이 평가되어 T-34의 하부 차체를 그대로 이용한 각종 대전차자주포 및 구축전차가 대량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T-34/85 1943형을 특징을 잘 보여주는 3면도 D-5T형 85mm포를 장착한 1943년형은 정면에서 봤을때 포방패에 4개의 구멍이 있어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독소전쟁 초기에 소련군은 초기의 기계 결함과 숙련병 부족으로 인해 멀쩡한 수준의 T-34를 대량으로 전선에 유기했고 독일군은 자국의 전차 물량부족과 T-34 전차의 우수성을 인정하고서 이렇게 유기된 T-34를 상당량 거두어 사용했다.
독일군의 기갑부대 지휘관들이나 일선 전차병들도 대부분 T-34를 위협적으로 평가했다. 독일 기갑부대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은 "몇 가지 기계적인 문제가 있지만 여태까지의 독일전차보다 훨씬 우수하다."며 이 전차를 위협적인 존재로 인정했다. 회고록 "기계화 부대장"의 모스크바 전투를 기록한 부분에서도 T-34때문에 독일 기갑부대가 큰 피해를 입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또한 "판처 클라이스트" 라고 불린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원수 또한 "지금까지 나온 전차 중에서 가장 좋은 전차"라고 인정했다. 또한 독소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전역에서 영미군 기갑부대와 싸워본 프리드리히 폰 멜란틴 중장은 후에 저서에서 "우리에겐 T-34에 맞설만한 것이 없었다" 고 호평을 했다. 심지어 전설적인 티거 에이스인 오토 카리우스조차 동부전선에서 가장 위협적인 상대는 T-34라고 기록했다.
[제183 공장에서 생산된 3인용의 포탑의 형태 용전선이 일자이며 MK-4신형 페리스코프가 장착된 타입으로 쉽게 구분이 가능하다]
사실 대전 초반 독일군에게 있어서 T-34보다 더 큰 충격을 준 것은 더럽게도 떡장을 쳐발랐던KV-1였다. 하지만 KV전차는 구식 방식으로 바른 떡장갑만 빼고는 독일의 기술진들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의 전차였고, 오히려 부작용으로 느린 속도와 둔중한 반응속도, 게다가 중전차 주제에 T-34와 동급의 주포를 장착해서 화력이 빈약하다는 약점까지 있었기에 일단 초기의 충격을 이겨낸 독일군에게는 T-34와 비슷하거나 약간 처진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단, KV전차 때문에 독일 전차의 중장갑, 중무장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사실이다.
1941년 당시 소련의 전투/전투근무 지원능력은 매우 열악해서 많은 T-34들이 퍼진 채로 줄줄이 노획되거나 자폭했다. 이는 1942년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사실 부랴부랴 빼돌렸다가 황무지에 대충 건물 세워서 가동시킨 공장에서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터져나가는 수보다 훨씬 많은 쪽수를 찍어내서 버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숫자로 메꾸는 것에도 문제가 있었던 위기상황이 닥친 적도 있는데, 폭증하는 손실에 비해 생산된 전차의 전선 배치 속도, 승무원 훈련의 적체, 그리고 무엇보다도 76mm형의 구식화와 85mm형의 개발로 인한 차종 변경 문제 및 재고 차량 처리 때문에 1943년 12월 시점에는 1만 8천 대가 넘는 재고 전차를 후방에 안은 상태에서, 독일군과의 가용 전차 비율이 역대 최저 수준인 1.7:1까지 떨어지는 참사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한 달 남짓한 사이에 4:1 수준으로 전력격차를 늘린게 함정
물론 소련군이 그냥 구식 전차에 승무원이 바보라고 해도 닥치는 대로 그냥 밀어넣었으면 이제 독일군은 끝장이나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형벌 부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시점에 이르면 소련에서 병사가 될 남자가 동이 나기 시작한 때다. 따라서 위의 상황이 닥치자 그야말로 승승장구로 잘나가는 전선에만 전차를 몰아주는 극약처방을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1944년 중반쯤 되면 다른 연합국, 특히 미국의 협조로 무전기 등의 주요 부품의 신뢰성도 좋아진 덕분에 양과 질 모두에서 독일군한테 본격적인 지옥을 보여주게 된다.
대전 후에는 소련 영향 하에 들어간 동유럽 공산 위성국들이나 세계 각국의 친소 국가들에 대량으로 공여(무료나 헐값에 퍼주기)되었으며, 중동권에서는 현지 개수를 가해 8~90년대까지도 굴러다녔고 아프리카 일부 빈국에서는 아직도 현역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셔먼 전차와 T-34 중 어느 쪽이 먼저 현역에서 사라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상태.
공산권 대량 공여의 결과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운용했던 전차이기도 해, 우리와도 나름 인연이 있는 전차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관련 기록 필름이나 사진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당시 북한군에게 공여된 전차는 오로지 85mm 탑재형(그것도 죄 전후 생산형) 뿐이다.
사진상으로 76mm형이 포착되었다고 주장하는 사진이 사실은 1945년 8월 소련군의 만주 진공작전인 8월의 폭풍 작전 당시 사진을 잘못 해석한 결과인 적도 있었다.MBC의 모 드라마에서도 그렇게 주장하는 것 같다. 사실 76형은 그 당시에는 거의 다 소모된 상태라 얼마 있지도 않으므로 별로 신빙성도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어쨌든 T-34/85는 북한군에게 개전 전까지 242대가 공여되었고, 이후 북진 직전까지 150대 가량이 추가로 공여되었음이 소련 문서로 확인되고 있다. 현재도 250여대를 보관중이라고 한다.
당시 한국군이 가지고 있던 보병용의 무반동총과 2.36인치 바주카, 그리고 6파운더의 미국 라이센스판인 57mm 대전차포 정도의 대전차화기라면 숙련된 병력에 의해 전차의 취약부위를 공격할 경우 충분히 상대해 볼 수도 있어 실전사례에서 대전차화기를 이용하여 T-34를 격파한 전과는 많다. 하지만 보병이 조작하는 대전차화기를 그런 방법으로 사용하려면 앞서 언급한 제대로 훈련된 병력이 필요한데다가 해당 대전차화기들은 이미 독일군의 전차를 전면에서 사격할 경우 위력부족이라는 점이 입증된 상태였다. 따라서 당시의 한국군의 보병용 대전차화기는 이미 능력부족인 상태였다.
문제는 당시 미군도 보병용 대전차화기는 한국군의 것과 거의 동일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미군중 최초로 전투에 돌입한 스미스 특임대대가 대혼란에 빠진 것도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가장 먼저 투입될 수 있었던 일본 주둔 미군의 경우 훈련부족에 편제병력도 모자라고, 전차의 경우도 일본의 좁은 도로와 빈약한 교량을 감안해서 M24 채피같은 경전차로만 구성된 상태였으므로 T-34를 대적할 수 없었다.
또한 개전 초기의 한국군은 대대급 훈련을 받은 부대가 최정예였던 시절이었을 만큼 훈련도가 부족했고, 전차에 대한 무지도 겹쳐 일방적으로 박살났다. 갓 태어난지 얼마 안된 한국군은 사기도 낮고 준비도 부족한 만큼 많은 걸 바랄 수 없었다.
이러한 한국군의 T-34 쇼크는 화염병이나 수류탄을 이용한, 이른바 육탄돌격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실제 전차 파괴전과를 확인해보면 실질적인 타격은 줄 수 없었던 것 같다. 일단 1952년에 집계된 256대 파괴전과 중 전차포 97(37.9%), 북한군 유기 63(24.6%), 로켓포 및 무반동총 35(13.7%), 항공기 29(11.3%), 포병 28(10.9%), 수류탄 3(1.2%), 미군 지뢰 1(0.4%)다.
물론 이러한 자살돌격으로 인해 전차의 기동을 방해하거나, 돈좌시킴으로 약간의 시간을 끌 수는 있었을 것이다. 주위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북한군 전차 육탄 돌격은 사실 잘 몰라서 전차인 줄 알았던 자주포였던 경우가 많았으니...
그러나 북한군의 전차운용 방식과 훈련미숙 등의 병크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소모되던 중 미군이 본격적으로 M26 퍼싱이나 M46 패튼 등의 고성능 전차를 투입한 이후엔 지리멸렬했다. 만약 인민군이 개전 초의 절대우세에 전차를 집중적으로(일명 기갑웨이브) 운용했다면 낙동강 전선이란 말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3.5인치 바주카포의 보급으로 바주카포로도 전차의 전면에서 충분한 타격을 줄 수는 있게 되었다. 물론 퍼싱 같은 신형 전차들이 왔으니 T-34는 더이상 안될꺼야, 아마였지만.
태어난지 환갑이 다된 1990년대의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도 꽤 널리 사용되었다. 유고 연방군은 소련과 라이센스 계약을 통해 T-34를 수천대 보유하고 있었는데, [1] 유고 연방이 붕괴되면서, T-34는 세르비아 민병대 손에 넘어갔고, 내전에 사용되었다. 내전의 성격상 중화기가 쓰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병들을 상대로 의외로 큰 위력을 발휘하였다고.
북한에서도 전쟁 발발시 (중화기 없이 강하하는) 남한의 특수부대를 상대하기 위해 후방에서 아직도 T-34를 운용중이라고 한다니.. 아직도 전역할 날은 먼것 같다. -국방부 시계는 안가나..- 국방부 시계는 가도 인민무력부 시계는 안갑니다 그야말로 레전드라고 말할 수 있는 전차. 성유물이 동네는 병사도 전차도 남쪽보다 5배 복무
2차대전을 소재로 한 영화들에서는 맨얼굴로 소련군의 T-34역을 맡거나 외형을 적당히 개조해서 독일군의 티거 역을 맡기도 하였다. 원본과의 차이점은 오리지널 티거에 비해서 포탑이 약간 앞으로 달려 있다.
2인용 포탑을 사용하므로 전차장이 1인 2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격시에는 주변관찰이 안되고, 주변관찰시에는 사격이 안되므로 독일의 전차보다 반응속도가 엄청나게 떨어진다. 이 점은 T-34의 개량형인 T-43에서 3인용 포탑을 채용하여 해결되었으나, 화력이 빈약하다는 이유로 인해 생산되지 못했으므로 결국 T-34/85에서 3인용 포탑을 채용해서 해결한다.
부실한 조준장치로 명중률이 떨어지며,[2] 주변을 감시할 수 있는 감시창이나 잠망경의 수가 적고, 그 위치도 부적당해서 우회하는 적 전차나 육박공격을 감행하는 보병에게 당하기 딱 좋다. 이를 개선하려고 T-34/85에서 원시적인 큐폴라를 설치했지만, 그래도 완벽한 해결은 불가능했다고 한다.
포탑이 전방에 치우쳐 있으므로 전면장갑을 강화할 경우 차체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장갑강화가 힘들다. 이런 이유로 인해 1942년 이후에 등장한 대전차 화기 상대로는 방어력의 우수성이 퇴색했다.
차체 높이가 낮고, 경사장갑을 채용한 덕분에 조종수는 매우 불편한 자세를 한 채 전차를 조종해야 하며, 전차 상면에 조종수 해치를 못만들기 때문에 전면장갑에 조종수용 출입구를 만들었다. 게다가 조종수용 관측창도 부실해서 일반적인 이동시에는 출입구를 열고 다니는 일도 많았다. 이렇게 되면 차체 전면에 큼직한 약점이 생기는 셈이라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심지어 한국전쟁때는 M8 그레이 하운드 장갑차에게 당하기도 했다
변속기가 별로 좋지 않다. 덕분에 기어를 조작하려면 고릴라와 같은 팔힘과 망치가 필요할 정도로 뻑뻑하고, 그것도 모자라 종종 기어가 튕기면서 조종수를 가격하는 일도 잦았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조종수는 불편한 자세로 전차를 조종하기 때문에 결국 이런 문제점은 중량대비 고출력 엔진을 장비했음에도 전차가 굼뜨게 움직이는 원인을 제공했다
포탑 바스켓이 없이 전차장과 장전수 좌석이 차체에 고정되었다. 따라서 포탑 선회시 잘못하면 고정된 좌석과 움직이는 포탑 내부의 시설물에 사람이 끼어서 으스러지는 일이 많이 발생한다. 덕분에 포탑 선회를 할 때 내부에 있는 승무원이 대처할 시간이 필요하므로 포탑 선회속도가 느려진다. 이 점은 T-34/85에서 바스켓을 채용함으로서 해결한다.
이건 모든 소련제 병기에 해당하지만. 부품자체의 정밀도가 낮거나 마무리가 거칠어 단순하고 고장않나는 이미지의 소련군이 무색하게 잔고장이 심했다. 그래서 소련군은 아수 단순무식한 해결책을 내는데 그냥 고장난 부품을 교체하고 고장난 부품은 그냥 버린다.라는 해결책이다.(...) 고장난 부품을 갈아 끼우는것은 흔한 일이지만 겨기서 교체하는 부품은 케터필러 나 탐조등 같은게 아니라 트랜스미션이나 엔진의 부품이란 것이다! 보통은 고장난 엔진을 수리하지만 소련군은 야전 수리능력이 딸려서 그런 나름 간편한(...) 해결책을 내놓은 겄이다. 오죽하면 랜드리스로 들어온 M4 셔먼이 무고장 전차라며 사랑받고 정예부대에 집중적으로 몰아줄 정도였다.
그 외 통신장비의 부실이나 거주성이 안좋다는 등의 소련 전차 특유의 자잘한 문제점을 가진다.
전차 자체의 성능만 보면 왜 이 전차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차 중 1위를 기록하는지 의문이 드는 전차일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승전국 버프가 붙은 것으로 보이는것도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T-34가 이처럼 인정을 받게된 것은 T-34의 존재가 소련군의 절망적인 소프트웨어, 한세대 뒤떨어진 하드웨어를 만회하고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끌게 해준 명품이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인 독일군의 수많은 명장들마저도 T-34를 명품이라 극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적절한 시기에 대량으로 등장해서 전쟁의 향방을 바꾼 전차이기 때문이다. 당장 독일군의 티거나 판터 1대가 한번 출격할 때마다 T-34가 수십대 이상이 박살났지만, 독일군은 전투에서 승리했지 전쟁에서 이기지는 못했다.
전쟁무기로써 우수한 전차란 전차 자체의 능력뿐 아니라 생산력, 유지보수능력 등 제반사항까지 포함하여 판단해야 한다. 만일 이러한 점을 무시하면 최강의 전차는 프로토타입으로 제작된 몇 안되는 초중전차들이 독점하게 될 것인데, 누구도 그런 것을 인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의 예시도 가능하다, 성능은 동급의 돌격소총과 비교해 고만고만한 AK-47이 왜 M16과 함께 최고의 소총으로 군림하는지 생각해보자.
거기에 T-34의 대량생산에 무기대여법을 통한 서방연합국의 지원이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는것도 이야기도 반만 맞는 이야기이다. 무전기등 부속설비의 장비에는 서방연합국의 지원물자가 요긴하게 쓰였고, 또 다른 장비의 생산에 투입될 노력이 T-34에 집중되며 생산량 증폭에 크게 일조한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핵심적인 것은 T-34 자체가 원래부터 생산력이 높은 전차였다는 점이다. 예로 T-34가 첫 생산된 1940년 9월부터 독소전쟁 발발 직전까지 랜드리스는 꿈도 못꾸고, 전시체제도 아닌 평시상황에서, 위에서도 서술되어 있듯이 쿨리크 원수의 지속적인 방해속에서, 단 두곳의 전차공장에서 9개월간 생산된 T-34의 수량이 1,220대였는데, 독소전이 가열되던 1943년 한해 동안 독일이 생산한 (숫적 주력인)4호 전차의 총 생산 수량이 3,013대 였던 것을 비교해보아도 알수 있을 것이다.
단지 소련군의 고질적인 인명경시 및 경직된 구조탓에 화력강화시점이 상당히 늦은 시점에서 결정되었으므로 불필요한 희생을 다대하게 냈으며, 독소전쟁후반기의 소련의 진격속도를 느리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을 쓰던간에 전장에 적정수준 이상의 능력을 가진 전차를 대량으로 쏟아붙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며, T-34는 이 기준에 적합하며, 소련이 대량 생산 및 전선투입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당장 생산량만 따지면 오히려 더 많고, 신뢰성이나 거주성도 양호하며 같은 2차대전 승전국의 전차이면서도 왜 M4 셔먼이 T-34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지도 한번 생각해 보자.
결론적으로 T-34는 승리의 견인차였고 조국을 구한 전차였다. 물론 개별성능은 뛰어나지 못하므로 전투에서는 불리한 전차였기도 하다.
뜬금없이 신금형으로 T-34/85형을 출시한다고 하네요.. 출시예정일은 3월이고 가격은 놀랍게도 27,000원!!!
말씀드린대로 신금형에다 이정도 가격이면 진짜 승산있네요.. 가격으로 보니 내부재현형은 아닐듯 하고.. T-34 가 사실 복잡한 전차도 아니니 반연결식 궤도만 넣어주고 해도 충분히 기존에 나와 있는 드래곤이나 AFV 클럽제품보다 가격대비 품질로 승산있어 보입니다.
가장 중요한건 이 제품의 출시로 줄줄히 파생형 전차 아이템이 나올수 있다는것!! 일단 기본이 되는 112 공장은 기본이고.. 여기에 포탑만 다른 183 공장제도 나올것이고 (포탑런너만 한판 추가하면 되니..) 거기에 T-34 차체를 이용한 SU-100 자주구축포도 나올것이고.. 한국전 아이템에..
[T-34 가 나온다면 반드시 노려야 하는 아이템중 하나가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으로 참전한 T-34/85형 올해가 휴전 65주년이라 급힌 나오는것잀도.. 사진은 미군에 파괴된 북한군의 T-34/85 형 ]
[다리에 대롱대롱 메달린 북한군 소속의 T-34/85형 ]
[역전의 노병 최근 보스니아 내전에서 목격된 T-34/85형 그럴싸한 고무강화장갑 (?)을 장착하고 있다]
[T-34 하면 바로 연상되는 아이템이 바로 자주포 버젼인 SU 씨리즈이다 76 차체를 이용한 SU-85 가 아닌 후기형 T-34 의 차체를 이용한 SU-100 자주포도 기대해볼만한 아이템이다.]
그리고 이어 공개된 나머지 아이템들..
이미 K200A1 이나 어제 출시된 F-4J 졸리로져에 이어 티거1 후기형과 즈베즈다 재포장 제품들이 줄줄히 대기중입니다. 아x발 즈베즈다 제품 졸라 사다 쌓아뒀는데 이러면 어째???
그리고 맨 마지막에 나오는 S-27SM 은 즈베즈다사의 신금형 제품으로 보입니다. 아래 제품입니다.
티거1 후기형은 이미 중기형 개수판이 등장했을때 예상된 아이템인데요... 중기형과 후기형의 차이는 후방의 머플러 부분만 좀 단순하게 바뀐게 다인지라.. 런너 한판으로 간단히 해결이 되니 거져먹는 아이템이죠..
문제는 저넘의 찌메리트 코팅인데... 중기형과 더불어 후기형 기체에도 빠짐없이 찌메릿 코팅이 재현되어 있는데 가격으로 보니 드래곤 제품처럼 재현되어지 있지는 않은것 같고 저게 직접 해보니 퍼티로 재현하는게 쉽지 않은일이라 심히 걱정입니다. 그나마 다행인건 카로토그라프 데칼이 들어있다는점.. 가격도 좀 저렴한편이고.. 자세한건 아래 리뷰 참고..
아카데미가 기존에 이탈래리 제품의 재포장 제품 판매로 솔솔하게 재미를 보았는지 이번에는 그 오리지날격인 (?) 즈베즈다 제품을 재포장 하여 판매할건가 봅니다.
이탈래리 제품중 대부분이 즈베즈다 제품 재포장 제품인건 익히 알려진 사실인데 아카데미가 기존의 이탈래리 제품을 수입하여 재포장 하는 대신 가격이 훨 저렴한 즈베즈다 제품을 수입하여 재포장 판매한다는게 다소 놀라운 일...
일단 위에 3종 T-90A 과 MI-24V/VP HIND-E 그리고 S-27SM 플랭커등 최근에 나온 품질이 상대적으로 좋다고 알려진 제품을 수입해서 재포장 하나 봅니다.
장점은 일단 즈베즈다 오리지날 제품들 데칼이 개판오분전인 악평이 자자한 데칼인데 그나마 데칼은 국산데칼 (사실 품질면에서 도찐개찐이긴 한데.. 그래도 국산데칼이 좀 낫지..) 가격이 저렴하다는것..(물론 공구가로 한다는 가정하에..) 그리고 메뉴얼이 그나마 좀 나아질려나..??
어찌되었던 쇼핑몰에서 10~20% 정도 할인되어 팔린다는점을 생각하면 국산데칼에 가격도 저렴하면 오리지날 즈베즈다 제품을 구입하는것보다는 나을것 같네요..
일단 이거외에 몇가지 시크릿 아이템이 중간중간에 더 나온다고 합니다. 어떤제품이 나올지는....
현재 비밀방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공동구매 예정중에 있습니다.
미라지콤프방 공동구매는 비밀방에서만 진행합니다. 참가하고싶은 분은 아랫글 읽어보시고 부담없이 (단 꼭 공동구매는 참가할수 있는분들만..) 참가해주시고 혹시 매번 공동구매는 부담스럽고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다면 언제든 카톡이나 문자로 (010-3209-6098) 로 찔러주세요.. 다만 문의하실때는 까페회원 누구라는걸 알려주심 감사하겠습니다. (워낙 잘 알려진 번호라 이상한 문의나 광고가 많아서 그럽니다.)
첫댓글 아카데미가 올해는 소련군 아이템에 몰빵 하는군요. 다수의 초보자들께선 어떤 평가를 내릴지 긴장해야겠습니다^^ 저야 좋지만 ㅋㅋ
즈베즈다 제품 상태가 어떤지 늘 궁금했는데.. 제품들이 많이 괜찮은 모양이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