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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월정사 출가학교 총동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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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출가학교 6기 스크랩 돈키호테 (세르반테스)
견도(6기) 추천 0 조회 183 17.02.11 13: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 저자 소개

 

- 세르반테스 (Cervantes (Saavedra), Miguel de, 1547~1616)

세르반테스는 1547년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가까이에 있는 작은 도시 알칼라 테 에나레스에서 태어났다. 10월 초에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세례명이 미겔 이었기 때문에 대천사 마카엘(스페인어로 미겔)의 축일인 9월 29일에 태어났다는 설도 있지만 정확한 그의 생일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가난한 외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568년 마드리드에서 로페스 데 오요스의 사숙에서 잠시 공부한 것 외에는 학교교육을 거의 받은 적이 없다. 당시 하급귀족으로서 출세할 수 있는 길은 세 가지였다. 성직자나 군인이 되던가 아니면 신대륙에 가서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가난한 하급귀족이었던 세르반테스는 군인의 길을 택했다. 1570년 23세의 나이로 이탈리아 나폴리에 가서 보병 연대에 입대한다. 이탈리아 각지를 순회하면서 르네상스 말기의 이탈리아 문화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된다.

1571년 스페인 해군에 입대하여 터키 함대를 격멸한 레판토 해전에 참가했다. 레판토 해전에서 세르반테스는 가슴에 두 군데, 왼손엔 평생 사용 불능의 상처를 입었다. 악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레판토의 외팔이’라고 조롱했지만 그 자신은 오히려 ‘오른손의 명예를 더욱 높이기 위해 왼손을 잃었다’하며 끝까지 이 명예의 부상을 자랑했다.

1575년 에스파냐 해군 총사령관이며 왕제인 돈 후안의 표창장을 받고 일년 휴가를 얻어 에스파냐로 귀국하던 도중, 당시 지중해에 횡행하던 해적들에게 습격을 당해 5년간 알제리에서 노예생활을 하였다. 4차례에 걸쳐 탈출을 기도하였으나 실패한다. 1580년 9월, 콘스탄티노플로 이동하기 위해 승선하고 있을 때 수도사 환힐이 몸값을 치름으로써 자유인으로 석방하게 되고 11월에 스페인으로 귀환한다.

1584년에 37세의 나이로 18년 연하인 카타리나라는 부유한 농가의 딸과 결혼하였고, 이듬해에 처녀작 소설 《라 갈라테아 La Galatea》를 출판하였다. 1587년까지 20~30편의 희곡을 쓴 것으로 전해지나, 《알제리의 생활》과 《라 누만시아》 등 2편만이 현재 전해오고 있을 뿐이다. 그 후 문학을 버리고 일개 무명의 세금 수금원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였고, 1597년에 징수한 세금을 예금해 두었던 은행가의 파산으로 3개월 동안 세빌랴에서 투옥 당한다.

1602년 55세의 나이로 다시 투옥 당하는데 이때 옥중에서 《돈 키호테》를 구상하게 된다. 그러다가 1605년 명작 《돈 키호테》 제1부를 출판하였다. 출판과 함께 세상의 갈채를 받았으나, 여전히 빈궁한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 후 12편의 중편을 모은 《모범 소설집 Novelas exemplares》(1613), 동시대의 시인을 평한 장시 《파르나소에의 여행 Viage del Parnaso》(1614) 《신작 희곡 8편 및 막간희극 8편 Ocho comedias, y ocho entremeses nuevos》(1615)을 출판하였다.

《돈 키호테》의 모작이 성해하자 1614년 후편을 서둘게 되고 1616년 《돈 키호테》를 출판하게 된다. 후편도 전편 못지않은 호평을 받았고 이로써 그의 명성의 확고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1616년 4월 2일에 그는 병상에 눕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17일에는 죽음이 온 것을 깨닫고 조카의 부축을 받아 가며 이미 완성되었던 《페르시레스와 시히스문다의 고난》에 레모스 백작에게 바치는 헌사를 썼다.

‘어제 사람들이 제게 종유를 부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시간은 짧고 고통은 더해 가며, 희망은 줄어들 뿐입니다. 그래도 저는 살아있습니다…….’
그로부터 6일 후인 1616년 4월 23일, 그는 마드리드에서 사망하였다.

 

 


2. 시대 배경

 

- 16~17세기의 스페인

스페인 남부의 항구도시 세비야는 16C 당시 신대륙 발견의 거점으로 번성했던 도시였다. 세르반테스가 태어나기 반세기 전인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향한 닻을 올린 것도 바로 세비야였다.

일찍이 신대륙 개척을 주도했던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황금과 부로 역사상 가장 화려한 시절을 누렸다. 16 ~ 17C 당시 스페인은 유럽은 물론 중남미 내륙까지 식민지로 거느린 대국이었다. 이른바 해가지지 않는 제국, 스페인 역사상 황금시대라 불리는 영광을 구가하고 있었다. 한편 스페인 제국의 영광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1588년에 제국의 군사적 기반이었던 부적함대가 영국에 패하면서 스페인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세르반테스를 통해 보는 스페인

기울어져 가는 제국의 운명은 작가 자신의 모습이었다. 출세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금징수원이라는 하급관리로써 라만차 곳곳을 전전하게 된다. 라만차 곳곳으로 모험을 떠나는 돈키호테는 바로 세르반테스 자신의 모습이었다. 소설 속 돈키호테처럼 세르반테스는 라만차 곳곳을 전전하며 농민과 목동 등 민중의 생활상을 피부로 체험하게 된다.

“나는 이 혐오스러운 시대에 황금의 시대를 소생시키기 위해 하늘의 뜻에 의해 태어난 새로운 기사다.” - 돈키호테 中 -
정의의 소신을 자처하는 돈키호테는 모순과 부조리를 드러내며 몰락해 가는 당시 사회에 대한 작가 자신의 목소리라 할 수 있다.
세르반테스는 당시 스페인에서 유행하던 통속적인 기사소설을 응징하기 위해 『돈키호테』를 썼다. 반종교개혁운동과 합스부르크 절대왕조의 통치하에 있던 스페인에서는 자유롭게 작품을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기사소설이라는 틀 속에 돈키호테의 광기를 이용하는 형태로 교묘하게 당시 사회를 비판하면서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종교와 연애의 자유, 계층간의 평등, 정의로운 재판 등을 꿈꾸었던 세르반테스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돈키호테』를 통해 끊임없는 모험을 감행한다. 

-  기사도 (chivalry)

중세 서유럽 봉건 제도의 꽃으로 불린 기사들 사이에서 성립한 규범의식 또는 행동양식의 이상형. 봉건제도가 전성기에 들어간 11세기에 발생하여 12∼13세기에 흥륭 기를 이루었고, 14∼15세기에 형식적으로는 완성을 보았지만, 실질적으로는 타락하여 퇴색해 갔다.

기사도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 변화를 가져왔었는데, 기사 서임식의 선서에서 알 수 있는 덕목은 무용(武勇)·성실(誠實)·명예(名譽)·예의(禮儀)·경건(敬虔)·겸양(謙讓)·약자보호(弱者保護) 등이 있다. 기사의 존립조건이기도 한 무용과 성실은 초기에 있어 기사도의 핵심을 이룬 덕목이었다. 그 후 십자군시대에 기사도는 그리스도교 윤리를 받아들여 경건·겸양·약자보호라는 덕목이 보태어졌다.

한국 화랑도의 이른바 세속오계(世俗五戒)는 이에 대응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서유럽의 봉건적 주종관계는 계약적·쌍무적(雙務的)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 한국의 세속오계에서처럼 충효를 바탕으로 한 무제한 ·절대의 것은 아니었다. 무용이라는 것도 세속오계의 임전무퇴와는 달리 포로가 되는 것이 원칙적으로는 수치가 아니었던 점은, 봉건 가신(封建家臣)을 주군(主君)이 몸값을 지불하고 빼 와야 할 의무가 있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십자군시대부터 교회의 영향 밑에 행동의 세련에 관한 덕목이 강조되기 시작하여 약자보호는 물론 부인(婦人)에 대한 봉사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무기와 전술이 바뀌고 기사의 기반인 봉건제도가 무너져 감에 따라 기사의 사회적 몰락이 뒤따르게 되었다.

이렇게 퇴색일로에 처했던 기사도는 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고취되어, 기사도의 몰락 후에도 변형된 모습으로 전수되었는데 거기에서 서양의 신사도가 나온 셈이다. 자존심의 존중, 관용·봉사, 여성에 대한 남성의 엄격한 예의 등이 발전을 보았다. 서유럽에서 중세 이래 기사문학 작품이 많이 쏟아져 나온 것도 기사도가 사회생활 속에 얼마나 깊고 넓게 침투하였는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출처 : 네이버 에스파냐 문학작품, 문병철]

- 기사이야기  

16세기 전반에 에스파냐에서 성행한 소설의 한 장르. 기사의 특징인 초인적인 무용(武勇), 사모하는 여성에 대한 고결한 사랑, 국왕에 대한 충성 등을 축으로 하고, 지나친 이상주의와 기상천외의 공상이 넘치는 모험 이야기는, 신대륙 발견 당시에 에스파냐 사람들이 가졌던 미지의 것에 대한 꿈과 모험심을 더욱 자극하여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였다. 심지어 그 매력은 젊었을 때의 성녀(聖女) 테레사의 마음을 사로잡고, 《돈키호테》의 주인공을 발광하게 할 정도였다. 이러한 비상한 인기로 인한 폐단을 우려하여, 도학자(道學者)들은 기사 이야기의 작품들에 대해서 격렬한 비난을 퍼부었으나, 아무 효과도 없었다.

그러나 16 세기 중간쯤부터 차차 쇠퇴해 가다가, 사실주의의 처지에서 이를 타도하려고 한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1605)에 의하여 결정적으로 종지부가 찍히고 말았다. 기사 이야기의 작품 중에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유명한 것은 몬탈보의 《아마디스 데 가울라》(1508)이며 그 밖에 같은 작가의 《에스프란디안의 위업(偉業)》(1510)과 작자 미상의 《파르메린 데 올리바》(1511) 등이 있다.

 

 

 

 

3. 내용 요약

- 돈키호테 : 이 소설의 주인공인 라 만차 지방의 귀족으로 기사도 소설을 탐독한 뒤 스스로 기사라 일컬으며 무술 편력의 길에 나선다.

- 산초 : 돈 키호테와 같은 마을에 사는 고지식한 농부로서 돈 키호테가 섬의 영주를 시켜 준다는 말에 돈 키호테의 충직한 종자가 된다. 돈 키호테와 대조적인 인물로 어떤 경우에도 현실과 타산을 잊지 않고 어리석으면서도 주인에게는 충성을 다하며 때로는 놀랄 만큼 현명하다. 물질적이고 현실적이며 빈틈없는 인물이면서도 어리석은 반면, 서민적이고 독특한 유머가 있다.

- 둘시네아 : 델 토보소 마을에 사는 농부의 딸. 돈키호테가 마음속에 두고 있는 애인

- 페로 페레스 신부 : 돈 키호테의 친구로서 돈 키호테를 정신 이상에서 구하려고 애쓴다.

- 니콜라스 : 돈 키호테의 친구로서 라 만차 마을의 이발사.

- 카르데니오 : 안달루시아의 젊은 기사로서 주인이자 친구였던 돈 페르난도의 배신으로 약혼자를 잃고 미쳐 버린다.

- 루스신다 : 카르데니오의 약혼녀

- 돈 페르난도 : 안달루시아의 리카르도 공작의 아들. 방탕아로 많은 여자를 울린다.

- 도로테아 : 돈 페르난도에게 버림받았던 여자로 신부와 이발사를 도와 돈키호테를 구하는 재치 있는 여자


(1) 전편

한가로운 시골 귀족인 주인공은 에스파냐의 라 만차 지방에서 한 시골 귀족이 가정부, 조카, 하인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기사 이야기를 탐독하다가 이성을 잃고, 자신이 편력기사라는 환상을 갖게 된다. 그는 스스로 방랑의 기사가 되어 모험 길에 나서서, 천하의 사악한 것을 쳐부수어 공을 세우기로 작정한다.

그는 말라비틀어진 자기 말에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붙이고,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낡은 갑옷을 입었다. 기사의 신분에 어울리는 귀부인으로는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는 그럴듯한 이름은 멋대로 붙인 농가 집 딸을 마음속으로 정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돈 키호테라는 이름과 함께 중세 무기와 복장을 하고 상상 속의 여인 둘시네아의 사랑을 얻고 기사의 숭고한 이상을 실천하기 위하여 길을 떠난다.

집을 나선 돈 키호테는 다 저녁때에 어떤 여인숙에 도착하였는데, 그 곳을 성으로 잘못 알고 여인숙 주인을 성주라고 부르는가 하면, 옆방의 매춘부를 공주로 대접하기도 한다. 밤중에 기사 서임식을 열고 있던 돈 키호테는 물 길러 온 마부와 시비가 붙어 큰 소동이 일어났으나 주인의 주선으로 수습되고, 새벽에 여인숙을 나온다. 돈 키호테는 길을 가다가 만난 상인들에게 둘시네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사실을 말하도록 강요하다가 몰매를 맞고 길가에 쓰러진다. 마침 같은 마을에 사는 농부가 그를 알아보고 집으로 데려다 주어 간신히 자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기사 소설 때문에 돈 키호테에게 광기가 생겼다고 믿은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서재에 있는 책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린다. 그러나 돈 키호테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이웃에 사는 순진한 농부 산초 판사를 설득하여 종자로 삼고 아무도 모르게 두 번째 모험을 떠난다. 산초 판사는 섬을 하나 점령하여 그 곳 태수로 임명해 주겠다는 돈 키호테의 말을 곧이듣고 처자식을 버려 둔 채 돈 키호테를 따라 나선다.

그들이 들판에 내려서자 커다란 풍차가 여러 개 있었다. 돈 키호테는 이것들이 거인의 무리들이라고 판단하여 다짜고짜 공격을 감행하였다. 산초 판사가 말려도 막무가내였다. 때마침 바람이 세게 불어 와 돈 키호테는 말과 함께 풍차에 말려 들어가 건너편으로 내동댕이쳐진다.

몇 가지 모험 이야기를 써가다가 아이디어의 고갈로 작가는 글쓰기를 중단한다. 그러나 그는 톨레도 시장에서 아랍어로 씌어진 <라만차의 돈 키호테 이야기>를 발견하고는 그 작품을 스페인어로 번역하면서 돈 키호테의 모험 이야기를 계속한다.

양떼들을 적군이라고 착각하고 벌인 모험에서부터 둘시네아를 위하여 산속에서 고행하게 되는 모험, 포도주 부대를 거인이라고 착각하여 벌이게 되는 모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피스카이아인과의 1대 1 결투, 양치기 오두막의 환대 등을 거쳐 수없이 우스운 짓을 당하지만, 본인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결국 돈 키호테를 찾아 나선 고향의 신부와 이발사의 꾀에 넘어가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간다.


(2) 후편

후편의 서문에서 그는, <돈 키호테>의 성공을 틈타서 나온 위작에서 자신을 늙고 시기심 많은 외팔이라고 비방한 데 대하여 ‘오른손의 명예를 더욱 높이기 위해 왼손을 잃었다’는 고상한 유머로 응수한다.

그를 찾아 나선 마을 사람들 꾀에 넘어가 자기 집으로 돌아왔지만, 건강을 되찾게 되자 다시 모험 길에 나서게 된다. 3차 여행에도 산초 판사는 동행을 하는데, 이번에도 먼저와 같은 실수와 소동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어느 공작 저택에 초대되어 기사로서의 정중한 대접을 받고 마음이 들떴으나, 공작 부처의 장난이었음을 알고 낙담하게 된다.

같은 동네에 사는 산손 카라스코가 그이 광기를 고치기 위하여 그에게 길을 떠나도록 부추긴다. 카라스코는 기사로 위장하여 돈 키호테와 마주친다. 저자가 '숲의 기사', '거울의 기사'라고 부르는 카라스코는 돈 키호테와 결투를 벌이고 일부러 패한다. 그러나 '백월의 기사'로 위장한 카라스코는 두 번째 결투에서 돈 키호테를 보기 좋게 무찌르고는 그에게 고향에 돌아가 1년 동안 편력기사의 모험을 포기할 것을 요구한다. 결국 고향에 돌아온 돈 키호테는 병석에 눕게 되고, 자신의 어리석음에 눈을 뜨고 이성을 회복한 후 다시 시골 신사가 되어 기독교인으로 생을 마감한다.

 

 



4. 작품 해설


돈 키호테의 원명은 《재치 있는 향사 돈 키호테 라만차》로서 전편 4권 52장, 후편 73장으로 되어 있다. 세르반테스가 《돈 키호테》를 내놓으면서 ‘이 책은 기사도 이야기가 세상에서 누리고 있는 권위와 세력을 타도하는 것밖에는 다른 목적이 없다.’고 했다. 세르반테스는 자신의 쓰라린 체험을 작품 속에 부각시킴으로써 희극적인 편력 기사를 ‘우수의 기사’라는 비극적인 인물로 변모시켜 《돈 키호테》에 불변의 매력을 첨가한 셈이다.

『돈키호테』는 17세기 출간 당시부터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는데, 당시는 유쾌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캐릭터와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이 주효했다. 그 후 18세기에는 그 진가가 인정되면서 언어예술의 본보기로 꼽히게 되었고, 19세기 낭만주의시대가 되자 『돈키호테』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불붙기 시작했다. 철학자, 역사가, 사상가, 비평가, 그리고 정치가 등이 이 소설의 복합적인 메시지를 탐구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면서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인간의 내면에 공존하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화신으로 묘사되었다.

세계 소설사상 최초로 문학 속의 ‘인간’을 창조해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돈키호테는 인간의 본질이 가장 완전하고 날카롭게 표현된 인물이다. 러시아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햄릿과 돈키호테〉라는 에세이에서 사색과 회의에 몰두하는 우유부단한 사색형 인간 햄릿과, 자신의 이상을 향해 무모하지만 용기 있게 나아가는 행동형 인간 돈키호테로 인간의 대표적 성향을 이분했고, 영문학자 이언 와트는『근대 개인주의 신화』라는 책에서 서양 근대문학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캐릭터로 파우스트, 돈 후안, 로빈슨 크루소와 함께 돈키호테를 꼽기도 했다.  

 



자료정리 : 이민아 (영리더스아카데미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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