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백구(1897~1982) 장목석(張牧石) 등에게 불리(佛理) 및 소명(小名) 등 신찰·사고(辭稿) 5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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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록 번호: 1162
평가 RMB: 60,00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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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구( 1897~1982) 장목석(張牧石) 등에게 불리(佛理) 및 소명(小名) 등 신찰(信、)·사고(辭稿) 5종
원고 2쪽, 편지 3통 3쪽(봉투 2매 포함)
약 1973년~1978년 작
설명:장목석,양소기,손정강상관.손씨는 일찍이 학사를 따라 다니며, 장백구(張驹多)와 시를 많이 지어 노래를 불렀다.장백구(張驹与)장목석은 사견으로 친하게 지냈다.장백구가 만년에 사용한 도장.목석의 손길이 많이 나오다.장백구 사위 빌딩은 《장백구사》에 있다.'집' 재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선 장인어른 말년에 사우와 왕래가 잦은 편인데 먼저 진문 장목석 선생을 추대합니다.
이것은 장백구(張驹信) 신찰(信、)과 원고(辭稿)의 다섯 종류로, 장씨의 만년의 경상과 인생 깨달음을 둘러싸고, 불리를 많이 섭렵하고 담론하였다.시와 사에 맞추어 노래하고, 각인하고, 꽃구경을 하다.그리고 판소, 동제주, 우만강, 심유군, 송진정,황군탄, 손정강 등은 장백구의 만년사상을 이해하는 데 대해 언급하였다.중요한 참고 의의.소심유군과 황군탄은 장백구와 함께 중앙문사관의 관원이며, 늘 시와 사가 화목하고 교제가 깊다.
자작 원고 《상화비옥》은 장목석과 사작하기 위하여, 오몽창운으로 1977년 중양일(10월)을 썼다.21일)작, 아직 게재되지 않았다.장백구가 "서리꽃 비옥"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극히 드물며, 시문집에는 겨우 19가 있다.49년에 하인호, 관고린 제공과 함께 직원에 있는 임춘을 모아서 등정시켰다고지회작 《서리꽃 비옥》>>>>>>>.>>>>>>>>>>>>>>>>>>>>>>>>>>>
자작 『소진왕·한류』는 『장백구사집』 『장백구집』에 사사되어 있다.장백구는 《작은 것》에 꽤 열중하고 있다.《진왕》의 사패, 일찍이 장목과 함께 하였다.석담은 이 조를 언급하며, "진목 석사가가 와서 글을 쓰는 것을 극명하게 소진왕응이라 한다.위성곡의 경우, 평측을 모두 따라야 한다.나머지는 소위 소진왕사가 포함되어야 한다당칠절시" "유창한 시"'위성곡("。城曲)'과 같이 평측(平,)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일찍이 《소진왕》을 백 곡 가까이 썼는데, 여기에 있다.그 하나를 위하여.
편지에서, 장씨는 "8·5년이면 올 수 있다고 생각하나, 속세의 인연이 오면 곧 끝이다"라고 말한 후, 장씨는 8세에 이르렀다.다섯 살 때 세상을 뜨다. 자신에게꿈에서 조짐을 보이자, 장씨는 "이건 믿을 수 없는 일이니, 그래도 역시 그렇지 않은가.믿는 일'이라는 말과 함께 염불을 한 후 '이렇게 역경에 처하면 담담하게 일을 볼 수 있고, 맑게 할 수 있다.초나라의 생사는 걱정이 없다.말년의 활달함을 알 수 있다.또 장목석을 위해 서련과 함께 장목석을 청하여 "기린" 인을 새긴 것을 기린이라 하였다.장백구(張驹小)의 작은 이름. 판소의 퇴직과 개퇴와 "하라 요시"임 선전부장은 지린성 혁명위원회에 당선되었다쑹 부주임은 1977년 반란을 일으킨 뒤 지린성위원회 선전부장을 거쳐 성 반반위원회 주임을 겸임한 선전부장을 겸임하고 있다.1978년 5월 1일 장백구의 회고록 '50년 동안의 나의 사정'에 따르면 "성 예술학교에서 나의 애인인 판수(素退)의 퇴직을 정년퇴직으로 바꾸어 성위원회 선전부장 송진정(宋批交)이 성박물관에 비준하여 곧 정책을 실행할 것"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장백구는 만년에 장기간 당뇨병을 앓았는데, 다리와 다리가 붓는 것은 보행에 좋지 않고, 심장과 혈압 모두 문제가 끊이지 않아, 믿음에 구름이 끼었다.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식욕 방해"그 때 국내 약물이 긴장되어 외국에서 많이 가져온다.미국 출신 생물 교수 우만강 1979년 4월 장백구 씨 알게 됐다북경까지 여행 예정"동제주형이 서양삼이나 당뇨약을 가지고 오도록 함"이라고 말했다.
또 손정강을 언급했는데 소운은 손정강이 그동안 '비공' 운동으로 여기저기서 연설하다 연루됐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장백구는 "힘써서 힘쓰라"고 권했다.나오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ZHANG BOJU AUOTGRAPH VERSE MANUSCRIPTS AND LETTERS SIGNED TO ZHANG MUSHI, ET AL. ABOUT BUDDHIST DOCTRINES AND ZHANG BOJU'S ALIAS
Two pages of manuscript and three pages of letter
Dated circa 1973-1978
Note: Dedicated to Zhang Mushi, Yang Shaoji and Sun Zhenggang.
34.5×20cm 33.5×19.5cm 24.5×14.5cm 32.5×31cm 20×17.5 cm
RMB: 60,000-80,000
위의 조항은 1. 장목석(張牧石, 1928~2011), 자는 개호(盦,), 또 자는 양재(斋齋), 호는 구원(园園)이다.천진 사람. 공시화 전각, 정예.감상. 진거래와 더불어 전각계의 "남진북장"으로 불리며, 적과몽벽·진종추와 함께 진문사원의 세 집안으로 불린다.저서로 《전각경위》가 있다.《장목석인보》.
2.양소기[현대]는 장백구세(張驹世世)가 사교를 배운 후 캐나다로 이주하였다.조부 양증신(增新新)은 신장(新达)을 17년간 주정하였다.장백구부 장진방은 1913년에 진보당 명예로 함께 선출되었다이사.
3.손정강(孫正(, 1919~1980), 본명은 정(,), 호는 진재(晋齋), 자는 정강(正,), 천진(天津) 사람이다.연경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일찍이 몸담았다.수행사. 천진사범학원, 천진교육원 강사를 역임하였다.1950년 주여창, 코몽벽과 함께 장백구(張主持张)에 들어가 사회를 본 경인(寅仁)사사는 "진문삼"이라고 부른다.군. 어학신탐, 천상구곡, 인간신사가 있다
张伯驹(1897~1982) 致张牧石等论佛理及小名等信札、词稿五种
图录号: 1162
估价RMB: 60,000-80,000
成交价RMB: 103,500(含佣金)
1162
张伯驹(1897~1982) 致张牧石等论佛理及小名等信札、词稿五种
文稿二页、信笺三通三页(带信封二枚)
约1973至1978年作
说明:张牧石、杨绍箕、孙正刚上款。孙早年从顾随学词,与张伯驹多诗词酬唱,深得张器重。张伯驹与张牧石因词相识,过从甚密。张伯驹晚年所用印章多出张牧石之手。张伯驹女婿楼宇栋在《张伯驹词集》再记中写道:“先岳父晚岁与词友之间来往比较频繁的,首推津门张牧石先生。”
此为张伯驹信札、词稿五种,围绕张氏晚年景状和人生感悟而作,多涉佛理,谈及诗词酬唱、刻印、赏花,以及潘素、童第周、牛满江、沈裕君、宋振庭、黄君坦、孙正刚等人,对于了解张伯驹晚年思想有重要参考意义。所及沈裕君、黄君坦,与张伯驹同为中央文史馆馆员,常有诗词唱和,交往甚密。
自作词稿《霜花腴》为和张牧石词作,用吴梦窗韵,1977年重阳日(10月21日)作,未见刊载。张伯驹作“霜花腴”词极为少见,诗文集中只1949年与夏仁虎、关赓麟诸公邀集稷园上林春为登高之会作《霜花腴》词。此件为所见张氏第二首《霜花腴》词。
自作《小秦王·寒流》词见载于《张伯驹词集》《张伯驹集》。张伯驹颇热衷《小秦王》词牌,曾与张牧石谈及此调,云“津牧石词家来书,极谓小秦王应为渭城曲,平仄应皆遵依。余则谓小秦王词应包括唐七绝诗”“流畅有词味就行,不必拘守平仄,与《渭城曲》一样”。曾作《小秦王》近百首,此为其一。
在信中,张氏谓“自以为八五之年可到,亦尘世之缘来即了也”,后张氏果于85岁时去世。对于自身做梦先兆事,张氏谓“此为不可信之事,亦为未可不信之事”,而念佛后“如此处逆境能淡泊观事,清楚生死,无牵挂”,可见其晚年之豁达。又谈到为张牧石书联并请张牧石刻“麒麟”印,谓麒麟为张伯驹小名。所及潘素退职改退休和“原吉林宣传部长当选任吉林省革委会副主任,仍兼宣传部”事,指宋振庭1977年平反后重任吉林省委宣传部长,后兼任省平反委员会主任。据张伯驹1978年5月1日所作回忆录《五十年来我的情况》记述,“请由省艺术学校将我爱人潘素退职改为退休,已由省委宣传部部长宋振庭批交省博物馆,即将落实政策”。
张伯驹晚年长期患糖尿病,腿脚肿胀不利于行,心脏、血压皆问题不断,信中云因服药太多,“妨碍胃口”。其时国内药物紧张,多依托从国外带回,因之张伯驹得知美籍生物教授牛满江1979年4月将行程到北京,拟“由童第周兄函其带西洋参或治糖尿药”。
另,信中提及孙正刚,所云应指孙正刚此前因“批孔”运动中到处演讲受牵连事,张伯驹则劝其当“力求安静,免入魔道而不要能出也”。
ZHANG BOJU AUOTGRAPH VERSE MANUSCRIPTS AND LETTERS SIGNED TO ZHANG MUSHI, ET AL. ABOUT BUDDHIST DOCTRINES AND ZHANG BOJU'S ALIAS
Two pages of manuscript and three pages of letter
Dated circa 1973-1978
Note: Dedicated to Zhang Mushi, Yang Shaoji and Sun Zhenggang.
34.5×20cm 33.5×19.5cm 24.5×14.5cm 32.5×31cm 20×17.5 cm
RMB: 60,000-80,000
上款简介:1.张牧石(1928~2011),字介盦,又字扬斋,号邱园,天津人。工诗画篆刻,精鉴赏。与陈巨来并称篆刻界的“南陈北张”,与寇梦碧、陈宗枢并称津门词苑三家。著有《篆刻经纬》、《张牧石印谱》。
2.杨绍箕[现代],张伯驹世交,曾随张学词,后移居加拿大。祖父杨增新,曾主政新疆达十七年,与张伯驹父张镇芳于1913年同被选为进步党名誉理事。
3.孙正刚(1919~1980),原名铮,号晋斋,字正刚,天津人。燕京大学国文系毕业,曾从顾随学词。历任天津师范学院、天津教育学院讲师。1950年与周汝昌、寇梦碧入张伯驹主持之庚寅词社,称“津门三君”。有《语学新探》《天上旧曲》《人间新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