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깡패
철인 정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나라는 배, 정치는 조타수
천억의 별로 돌아간 자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
그의 본명은" 아리스토 클레스"이다. 아리스토는 "훌륭한"이라는 뜻이고 클레스는 "명성"이라는 뜻이다. 훌륭한 명성의 그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자 철학자이다. 객관적 관념론(objective idealism)의 창시자이다. 넓은 어깨란 뜻의 "플라톤" (고대 그리스어: Πλάτων, "넓은, 어깨 폭이 넓은 Plato 기원전 428년~348)으로 유명하다.
그는 완벽한 남자였다. 수려한 외모와 아테네 최고 명문가 출신이었다. 스승 소크라테스에 관한 저서들을 대화 형식으로 남겼다. 이데아론이라는 새로운 학설을 제창하였다. 수없이 많이 들어본 "이데아"라는 말은 이해하기를 포기한 순간에 다가왔다. 꽃은 시들고 땅이 황폐화되고 매미의 소리가 사라져도 징검다리가 물에 휩쓸려 없어져도 아름다움은 영원히 남는다는 것이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를 인정하고 있었다. 철학의 혁명적인 다리를 놓았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충격을 받아서 정치가로서의 꿈을 접고 정의를 가르치기로 했다. 아테네를 떠나 시칠리아, 이집트, 이탈리아 등을 여행하면서 견문을 쌓았다.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로 동굴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림자만을 보고 그 동굴을 벗어나는 사람만이 햇살을 본다고 했다. 그와 같이 있을 수 있다면 동굴 안이건 밖이건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실 동굴 안에서 영원히 안 나오고 싶다.
당시 그리스 격투기는 타격기, 관절기, 그라운드 등이 결합한 종합무술이었다. 떡 벌어진 어깨를 가진 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 레슬링대회에서 2번의 우승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 귀족들은 1인당 노예가 3명 이상이라 일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부유층 자제들은 몸과 마음의 수련만 하면 되었다. 철학은 역시 배가 불러야 하는 것이었다.
조각천 같은 옷을 걸치고 12년간의 유랑 생활을 통해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고 아테나로 돌아온 직후 대학의 원형인 고등 교육 기관 ‘아카데메이아’를 세웠다. 폭넓은 주제를 강의하였으며, 특히 정치학, 윤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등 많은 철학적 논점에 관해 저술하였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사랑을 논한다. 영어로 쓰인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라는 말은 17세기 영국의 작가인 윌리엄 대버넌트(William Davenant)의 책, 희극 <The Platonick Lovers>(1635)에서 처음 나왔다. 그의 저서에서 <향연>의 내용을 토대로 덕과 진리 사이에 있는 선(善)에 대한 사랑을 플라토닉 러브라고 했다. 사랑 중에 난 플라토닉 러브가 제일 좋다. 아름다움 그 자체, 이미 사라져 버린 것도 사랑하는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애인이 화재나 사고로 얼굴이 진흙처럼 뭉개지고 육체가 망가져도 아름답게 보는 찬란한 사랑이 플라토닉러브이다. 원래 아름다웠던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절대적 사랑의 잣대로 보는 것이다. 상대평가가 아니다. 좋든 나쁘든 격정의 사랑, 그대로 전락하지 않는 것이다. 뇌성벽력처럼 왔다가 사그라드는 그런 사랑 말고 명예나 추락에도 굴하지 않고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황금의 뿔처럼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사랑이다.
품격이 있고 뭔가 고매한 정신이 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매함과 한계를 넘어선 사랑의 완전체처럼 느껴진다. 귀족적이고 우아한 사랑, 모든 것을 다 사랑하는 것, 이미 쇠락한 육체와 망가진 정신마저도 사랑하는 것이다. 이성 간에 이것이 가능할지는 난 모르겠다. (난 "당신의 육체를 사랑하노라!"가 더 정직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플라토닉러브는 더 위대해 보인다. 몰이해의 영역인 형이상학적인 논제를 어찌 감히 언급하겠는가!
황진이(1506~1567)와 서경덕, 율곡이이(2536~1584)와 기생 유지(柳枝)의 비장하고도 위엄 있는, 미완성의 부러운 사랑이 떠오른다. 본능을 초월한 사랑, 뭔가 바라는 게 전혀 없는 오로지 사랑 자체만을 위한 그런 사랑에 뜨거운 찬사를 보낸다. 원망과 질투는 존재하지 않고 존경과 그리움만 우러난다. 태초에 아무 거래가 없으니 계산할 필요가 없다. 퇴계 이황(1501~1570)의 지적장애인인 두 번째 부인 안동 권 씨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부부의 인연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를 보여준 조선 최고의 철학자이다.
플라톤은 사랑에 있어 육체적인 관계와 욕망은 저속하다고 했다.(이 의견에 대해서는 난 반반 치킨이다. 사랑에 빠진 인간의 애틋함과 애절함과 모호한 눈동자와 입술을 속이기는 어렵다. 플라토닉러브는 어쩌면 허울 좋은 이상일지도 모른다. 아니, 나 같은 약 쟁이나 기대고 싶은 지게 받침대 같은 것일지도! )
플라톤은 행복을 이성과 사색을 통해서 발견해야 한다고 했다. 현실과 우주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지식이 행복을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했는데 초등학교만 나온 어르신이 나보다 훨씬 더 행복하니 그분은 진정한 지식인이다. 무지는 고통이라 했다. 난 이 말을 수십 년 동안 고민해 보았다. 때론 사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아냐, 아냐, 조는 죽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 가장 행복한 사형수 조 애리디이고 싶다. (그는 6살 수준의 지적 장애인이었고 사후 72년이 흘러 2011년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교도소장 로이에 의해 쓰인 시 덕분이었다.
사람의 영혼은 원래 이러한 이데아계(界)에 있었는데 육체를 갖추고 이데아를 망각하여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므로 진·선·미를 인식하는 것은 영혼이 원래 살던 이데아계를 상기하는 것과 같다는 상기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지식이란 단순히 사실과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현실의 본질에 대한 더 깊은 이해라 했다. 시인 에머슨은 “철학은 플라톤이고, 플라톤은 철학이다”라고 말했다.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리기를 꿈꾸었고 철학자가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철인정치를 난 찬성 한다. 정치인은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측량할 길 없는 길을 떠난 자들이 그립다. 2400년 전, 플라톤이 말한 정치의 방향은 오늘날의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다. 국가 공동체를 위해 올바른 조타수를 찾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나라는 배, 정치는 조타수라고 했다.(난 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노래가 생각날까?)
이제는 지상에 남아있지 않고 토성의 고리를 돌리며 철학을 공부하고 있을 플라톤을 만나러 가는 길, 애인을 빨리 만나기 위해 장미를 가득 안고 마부에게 30분마다 팁을 주었던 발자크처럼 설렌다. 블랙홀의 위를 꺼내 토하게 만들면 떠나간 이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는 어디에 가있을까? 천억 개의 행성으로 돌아가서 목성의 위성인 메티스와 토성의 위성인 판 위에서 그와 숨바꼭질을 하고 싶다. 언제나 우주는 내 안에서 피었다 졌다를 수없이 반복한다.
어린 시절 죽은 새끼 참새를 묻어둔 자리에 흰 수염 고래 같은 백화점이 들어섰다. 세상의 빠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내 서글픈 자화상과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나도 하지 않고 간 자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일은 너무 고통스럽다. 난 언제나 그랬다. 하필 이 인조로 당번인 날, 결석한 짝을 위해 담임선생님의 책상을 치우고 립스틱 짙게 묻은 커피잔을 두 번이나 퇴짜 받으며 찬물에 씻고 또 씻었다.
강원도에 있는 애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선생님 대신 부치고 은행에서 받은 고지서 영수증을 잃어버려서 혼났다. 유다가 스승을 팔기 전 고민했을 것 같은 밤들이 유난히 많았다. 철학이 나를 철들게 하는 밤, 역사를 논하면 누군가가 딴죽을 걸겠지만 철학의 아버지인 소크라테스 덕분에 맘이 편안하다."나는 모르오! 아무것도 모르오!" 오리발 내밀면 된다.
빗살 무늬처럼 남은 상처와 차라리 미분류 딱지가 붙은 박스처럼 없었던 거라 생각하는 게 더 나은 삶과 재로 변하는 그 순간까지 뛰어야만 하는 죄 없는 심장과 개똥 같은 철학으로 남은 삶을 버텨야 한다. 각자의 모든 경험은 다르며 사랑과 고백이 추해지는 세월의 강을 건너가고 있다. 날 가지고 놀았던 그들이 나를 비웃건 경외하건 타인의 경멸은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중요한 오늘, 좌이건 우이건 스토아학파이건 에피쿠로스학파인지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내 몫의 학대에 무지했던 한 시대의 착오와 야만성에 대해 격렬한 반성문을 받고 싶다. 앞니 빠진 아이처럼 삶에서 비어버린 한 공간에 대한 고통과 두려움과 부끄러웠던 그 순간 속에 난 너무 장기 체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천둥 벼락같은 분노를 용서해 주기를, 시대가 나를 품어 질퍽한 분노의 연꽃이 피어나길! 누추하고 남루했던 노트르담의 꼽추 같은 한 생이 걸어가고 있다. 정말 어깨 넓은 그에게 기대어 맘껏 물어보고 싶다. 수천 년 동안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사랑과 행복이 무엇인지를?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