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hmynews.com%2Fdown%2Finarticle%2F020206_lee_51.jpg) | ▲운이 좋다면 시 한수와 흘러간 대중가요를 열창하는 시인을 만날 수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살아있다는 사실이 일생 너에게 술을 권하리라"는 시인 조정권의 말에서 자유로운 문인이 몇이나 될까? 이 진술을 부연하며 시인 오세영이 말을 잇는다. "술이란, 스스로 존재의 결빙을 녹이는 묘약"이란다.
전후(戰後)의 가난과 가파른 역사의 언덕을 힘겹게 오르며 살아왔던 한국의 문인들에게 술은 '마시면 이성이 마비되는 투명·반투명의 액체'라는 단순한 물질적 정의를 뛰어넘는 어떤 것이었다. 남루한 지상에서 위대한 천상을 꿈꾸게 했던 술. 그들이 위장을 엉망으로 만들면서까지 잊고싶었던 현실은 어떤 것이었던가?
바로 그 술과 꿈에 취해 시인 김수영(67년 교통사고로 타계)과 채광석(87년 교통사고로 타계)은 거리에서 죽음을 맞았고, 월탄 박종화를 "박 군"이라 낮춰 부르던 한국문단 최고의 기인(奇人) 김관식은 못 다 마신 됫병소주를 옆에 두고 시멘트 포대 깔린 방에서 37세로 요절했다.
군사독재가 입힌 고문의 상처를 돌소금과 깡소주로 다스리던 시인 박정만도 '나는 사라진다/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라는 절명시(絶命詩)만을 남긴 채 41세의 아까운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났고, '소주에 밥을 말아먹던' 전설의 술꾼시인 조태일도 99년 회갑을 목전에 두고 간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그러나, 그들의 안타까운 죽음과는 별개로 오늘도 문인들은 술을 마신다. 살아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슬퍼서 혹은, 정말이지 제대로 살아가고 싶어서. 바뀐 시대에도 문학은 장엄함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작가일수록 더 하다. 그들에겐 그 역시 술과 꿈에 취해 평생을 소풍 나온 어린애처럼 살다간 시인 천상병의 "몽롱하다는 것은 장엄하다"라는 말의 효력이 여전한 모양이다.
싸구려 술 한잔의 힘을 빌어 '보다 인간적인 문학'과 '더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이상향을 꿈꿔온 한국의 시인과 소설가들. 여기 문인들의 가슴 속 목마름은 물론, 머릿속 갈증까지 달래 온 술집 몇 군데를 소개한다. 그들의 추억 속에서 아직도 모락모락 동태찌개의 하얀 김을 피우는 술집들을 더듬어본다. 사회와 문학에 대한 거대담론에서부터 소소한 생활인의 이야기까지 넘쳐나던 바로 '그 술집'들.
인사동 <시인학교>는 문인사랑방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hmynews.com%2Fdown%2Finarticle%2F020206_lee_53.jpg)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hmynews.com%2Fimages%2F00.gif) | ⓒ 오마이뉴스 이종호 | 83년 인사동 '통인가게' 맞은편에 문을 연 <시인학교>. 시동인 '두레'의 회원이기도 했던 정태승이 시작, 87년 정동용이 인수한 후 95년 한빛은행 아래편으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는 술집이자, 갤러리다. 상호 탓일까? 주인도 '교장'이란 명칭으로 불린다. 96년엔 자매업체라 할 일산 백마의 <시인학교>도 탄생했다.
신경림, 이행자('전태일 문학상' 수상), 강형철, 이도윤, 이승철, 임동확, 이산하, 박철, 함민복, 이윤학, 박형준(이상 시인)과 현기영, 전성태, 조헌용(이상 소설가) 등이 <시인학교>의 단골손님들. 경남작가회의의 수장 김춘복(소설가)과 전주 모악산의 은자(隱者) 박남준(시인)도 서울을 찾을 때마다 들르고, 통일운동가 백기완과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민족미술인협의회(민미협) 소속 화가들도 종종 들른다.
작가들과 함께 한 독자들에게는 즉석사진을 찍어주는 서비스도 하고, 인심 넉넉한 2대 교장 정동용이 안면을 익힌 손님들에겐 시원한 콩나물국도 곧잘 가져다준다. 물론 공짜다. 머스타드 소스와 타바스코 소스를 섞은 독특한 양념의 훈제치킨과 번철(燔鐵)에 구워주는 감자전이 별미. 맥주와 소주, 포천에서 직접 가져오는 동동주는 물론, 몇몇 가지 전통주도 갖추고 있다.
흥취한 기분으로 사방을 둘러보면 벽을 가득 채운 그림과 붓글씨들. 입구에 걸린 김종삼 시인의 시 '시인학교'. 옥호(屋號)는 이 시에서 연유했다. 붓글씨는 정동용 교장의 솜씨다.
공고
오늘 강사진
음악부문
모리스 라벨
미술부문
폴 세잔느
시부문
에즈라 파운드
모두
결강
김관식,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지름
찹한 막걸리를 먹음
교실 내에 두려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김소월
김영랑 휴학 중
전봉래
김종삼 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눔
브란덴브르그
협주곡 제5번을 기다리고있음
교사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80년대엔 술 마시다 의자 붙여놓고 아예 자기도 했어. 아침에 일어나서는 또 마시고. 그래도 그 시절이 좋았지. 노찾사, 안치환, 정태춘의 노래 한 소절에도 피가 뜨거워지곤 했으니까. 어떤 방향으로 나갈 것인지 갈팡질팡이던 90년대와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자기 속으로만 숨는 2000년대에 비하면..." 과거를 추억하는 정 교장의 목소리가 젖어있었다.
'이익'보다는 '정'에 이끌리는 장사방식이 문제였을까? 이번 달 말로 일산 <시인학교>는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다. 천장부지로 뛰는 전세값을 지금의 수입으론 감당할 수 없게 된 것. 이제 거기도 추억의 책장 속에 새겨진 이름으로만 남게 될까?
박철의 기타반주에 맞춰 현기영이 근사한 발음으로 부르는 '데니 보이'.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함민복이 "차라리 쌀로 주면 먹기나 하지"라며 만취하여 <시인학교>에 팽개치고 갔던 500만원 상당의 트로피를 찾으러 오는 모습. <시인학교>가 있었기에 들을 수 있었고, 볼 수 있었던 이런 모습을 그리워할 사람은 비단 기자 하나뿐일까?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hmynews.com%2Fdown%2Finarticle%2F020206_lee_52.jpg) | ▲시인학교 정동영 교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인사동엔 <동루골>과 <선천> <평화만들기>도 있다
94년 '종로의 전설' <탑골>이 사라지고 난 후, 문단 술꾼들의 아쉬움을 달래준 술집이 마포 불교방송국 뒷골목의 <동루골>이다. 주인 나경희 씨의 맛깔스런 안주와 깔끔한 손님접대에 매료된 <만월>의 작가 이시영(시인)과 강혈철(시인, 현 작가회의 상임이사) 등이 "변두리에 있을 게 아니라, 시내로 진출하라"는 조언을 여러 차례 했고, 안국동 참여연대 뒤편과 마포 경찰서 인근으로 옮겨다니던 끝에 최근 인사동에 같은 상호로 가게를 열었다.
부침개와 생선찜 등의 안주가 두루두루 입맛을 당기고, 입구의 고풍스런 분위기도 좋다. 일산에 살면서도 서울 출입이 많지 않은 시인 김지하도 <동루골>만은 올 때마다 들른다는 것이 이시영의 귀띔이다. 주인에게 인사동 진출을 권유했던 이시영과 강형철도 물론 단골. "잃었던 <탑골>의 분위기를 다시 찾아준 술집"이라는 상찬을 강형철이 덧붙인다.
만만치 않은 음식값 탓일까? 한정식집 <선천>을 찾는 젊은 작가들은 많지 않다. 2000년 겨울 세상을 뜬 시인 서정주가 생전에 자주 찾던 집이라고. 한국문단의 원로 중의 원로인 시인 구상(83)도 이 집의 단골이다. 기자도 꼭 한번 여기에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는데, 너비아니와 홍어찜의 맛을 보곤 '유명한데는 이유가 있구나'라는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hmynews.com%2Fimages%2F00.gif)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hmynews.com%2Fdown%2Finarticle%2F020206_lee_57.jpg) | ▲<평화만들기>는 통유리창의 화려한 인테리어를 갖춘 술집이 아니다. 위로 초록색 차양을 친 소박한 술집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선천>에는 미당이 쓴 글씨도 걸려있다. <논어>에서 인용해온 '思無邪(생각에 사악함이 없는 순정한 상태)'. 그 글귀를 통해 어떻게 '삶'과 '사상'을 조화롭게 결합시켜가며 살아갈 것인지 반면교사(反面敎師)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평화만들기> 역시 문인들의 출입이 잦은 술집. 황석영, 마르시아스 심(이상 소설가), 하응백(문학평론가) 등을 여기서 본 적이 있고, 탤런트 서갑숙과 89년 방북했던 임수경도 가끔 들른다고. <평화만들기> 단골 중엔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 기자도 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촌의 <섬> 강남의 <도이치호프>도...
양재역 인근 뱅뱅 사거리에 위치한 <도이치호프>도 문인들이 자주 찾는 술집의 하나. 깨끗한 맥주 맛과 신세대 음악을 시끄럽게 틀어대지 않아 조용한 분위기를 즐기는 문인들이 자주 찾는다.
단골 중 좌장은 지난해 <슬픈 시간의 기억>을 내며 노익장을 과시한 소설가 김원일(60). 문학평론가 박덕규와 방민호도 일주일에 한번쯤은 이 집을 찾는다.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교수들도 <도이치호프> 단골수첩에 등재된 사람이 많다. 문흥술(서울여대), 김수복(단국대), 이숭원(서울여대) 등.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싶다'라는 싯구와 카뮈가 매료당했다는 장 그르니에의 산문 '섬'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신촌 현대백화점 뒤의 술집 <섬>. 시인 김정환이 기증(?)했다는 1000장이 넘는 LP가 벽면을 가득 메운 <섬>도 2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만큼 단골도 많다. 맥주에 소주를 섞어 마시는 독특한 주법의 김정환을 비롯, 출판사 '이론과실천'의 김태경 사장, 문학평론가 현준만, 소설가 김인숙, 공지영 등이 오랜 단골.
맥주는 냉장고에서 알아서 꺼내먹고, 안주는 커다란 바구니에 담긴 새우깡을 양껏 가져다먹으면 된다. 계산도 "우리 몇 병 먹었어요"라고 말하면 병을 따로 세지도 않는다. 반가운 손님이 오랜만에 오면 주인 누님(?)이 직접 마련하는 '두부김치'와 '겨자잎 겉절이' 또한 일품이다. <섬>의 일등손님으로 대우받는 김정환과 함께 가면 따끈한 계란 후라이도 넉넉하게 먹을 수 있다.
아주 가끔, 손님 뜸하고 밤이 깊어지면 벌어지는 '트위스트 파티'도 압권이다. CCR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들으며 춤추는 맛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호랑이를 봤다> <순정> 등의 작품을 낸 소설가 성석제의 '엉거주춤 트위스트'도 바로 여기서 단련됐다는 후문이다 화장실에 걸려있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포스터도 이채롭다. 성석제의 산문 중엔 바로 이 화장실 포스터를 소재로 삼은 것도 있다.
추억 속으로 사라진 술집... 뜨는 술집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hmynews.com%2Fdown%2Finarticle%2F020206_lee_56.jpg)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hmynews.com%2Fimages%2F00.gif) | ⓒ 오마이뉴스 이종호 | 한때 문인들의 단골집으로 호황을 누리다가 추억 속으로 사라진 술집도 적지 않다. 전체 손님 중 문인 비율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았던 작가회의 앞 목로 <아현 호프>를 비롯해, 강남 룸살롱 출신의 마담이 합정동에 소박하게 열었던 치킨집 <모모>, 함께 마시면 술자리가 더 없이 풍성해진다는 소설가 송기원이 홀딱 반한 미모를 자랑하는 여주인이 인사동에서 운영했던 <이화>, 80년대 중반 공덕동 철둑길 근처에서 영업하던 <정>은 '만년필 하나'라는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던 아줌마를 보러 조태일과 황석영이 자주 들렀다한다.
"<모모>는 현기영의 단골집이었고, <이화>에는 이한동(현 국무총리)과 언론사 기자들도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라고 이시영과 강형철이 당시를 추억한다. 이제는 모두가 옛날 기억을 애써 떠올려야만 희미한 모습을 드러내는 '그리운 그 시절 술집들'이다.
그리고, 2002년 오늘. 젊은 작가들의 술자리에 끼고싶다면 작가회의 앞 <탱크호프>에 가면 된다. 작가회의 내 소모임인 '소설합평회' 모임과 '청년분과위원회' 회의의 뒷풀이,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의 신년회까지가 모두 거기서 열렸다.
방현석, 한창훈, 김지우, 강기희, 오수연, 김별아, 김상영, 전성태, 송경아, 원시림, 김신우, 이현주(이상 소설가), 조기조, 손세실리아, 김은경, 신용목(이상 시인), 방민호, 권명아, 고영직(이상 문학평론가) 등이 최근 <탱크호프>에서 생맥주잔을 부딪쳤던 문인들, 그 중 일부다. 정말이지 요샛말로 '뜨는 술집'이라 아니할 수 없다.
| | |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진 '해병대 아저씨'
- 작가회의 역사와 함께 했던 목로 '아현호프' | | |
마포 아현동 연탄재 쌓인 뒷골목 어귀
눈보라 송이송이 잘 오신다
목덜미에 사타구니에 아슴푸레한 어깨 위에
우우우 안기다 곤두박질친다
길 잃은 동무들 '아현호프'에 퍼질러앉아
철 지난 유행가를 목청껏 부를 때
기대일 언덕도 몸 눕힐 벤치마저 없어
산신이 부서지는 세기말의 시간들
......
무너져라, 무너져라, 무너져 내려라
청춘이 나에게 가르쳐준 길은 왜 그리 먼가?
- 이승철 '청춘의 먼길' 중에서.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hmynews.com%2Fimages%2F00.gif) | ![val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hmynews.com%2Fdown%2Finarticle%2F0207ahh1.jpg) | ▲현기영의 해병대 선배였던 '아현호프' 주인아저씨. 술집을 경영하며, 딸 4명을 대학까지 공부시켰다. ⓒ사진제공 민족문학작가회의 |
87년 9월.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마포구 아현동에 새 둥지를 마련했다. 울혈과 울분의 80년대. 뼈다귀해장국에 소주 한 병, 노가리에 생맥주 한잔은 그 맺힌 피와 가슴 속 분노를 때론 누그러뜨리고, 때론 폭발시켰다. 작가회의 건물과 지호지간에 있었던 '아현호프'. 그 술집은 87년부터 2001년 여름까지 작가회의 소속 작가들 모두에게 '고향'같은 곳이었다. 술집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술집'.
팔뚝에 하트와 화살 문신이 새겨져있던 아현호프 주인아저씨. 젊은 시절엔 크게 한가락했을 것 같았던 그 아저씨. 해병대 130기였다던가. 89년 남북작가예비회담 시도가 무산되었을 때, 만취해 술집 바닥에 큰 대자로 드러눕던 이도윤을 비롯한 젊은 작가들의 눈물과 아픔을 함께 앓아주던 사람. 90년대 초반. 이승철의 시처럼 '철 지난 유행가'인 '임을 위한 행진곡'과 '우리의 소원'을 가게가 떠나가라 합창해도 그저 담담히 바라보며 웃기만 하던 사람.
21세기 서울 어디에 5000원 짜리 과일안주가 있을까? 하지만 딸들의 강권으로 지난해 문을 닫기까지 아현호프의 과일안주 값은 근 10년 가까이 5000원에서 멈춰있었다. 최고급 안주는 일금 8000원의 통닭. <국경>의 작가 김남일이 즐겨먹던 3000원 짜리 번데기도 맛이 좋았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hmynews.com%2Fimages%2F00.gif) | ![val1](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hmynews.com%2Fdown%2Finarticle%2F0208cho2.jpg) | ▲ 고 조태일 시인 ⓒ자료사진 | <국토>의 시인 조태일(99년 타계)은 그 싼 안주도 남기는 것이 아까워 담뱃가루 지근거리는 낡은 양복 호주머니에 변색된 사과를 숨겨서는 다음 술자리 안주로 내놓았다던가. 조 시인이 500CC 생맥주 20잔을 마시고도, 화장실 한번 안 갔다는 믿기 힘든 사실은 아직도 젊은 시인들 사이에서 '아현호프'를 둘러싼 전설의 하나로 떠돈다.
<나의 칼 나의 피>로 기억되는 시인 김남주(94년 타계). 93년 작가회의 상임이사를 맡았던 그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아현호프'의 단골. 2000원 짜리 계란말이 안주에 소주를 즐겼다. "씹팔, 좆 돼버렸어"라며 90년대의 지리멸렬함에 독설을 던지던 그는 그 부실한 안주와 독주 그리고, 주체 못할 분노가 자신의 췌장에 암세포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공포의 유신시대. '4.3 제주항쟁'을 정면으로 다룬 <순이삼촌>을 내놓으며 박정희 정권과의 일대 일 전쟁을 선포한 열혈의 소설가 현기영(현 작가회의 이사장). 무엇에건 거침이 없는 성격이었지만, 아현호프 주인아저씨에게는 언제나 한 수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현기영은 해병대 131기. 나이는 41년생 동갑내기였지만, 해병대 기수에서 한 끗발이 밀렸던 것이다. 말수가 적은 주인아저씨가 해병대 시절 이야기만 나오면 왜 그리도 말이 많아지던지. 그 장광설이 펼쳐질 양이면 현기영은 슬그머니 화장실로 향했다.
'아현호프'의 재래식 화장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 그런 거대하고도 깊은 구멍(?)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취한 문인 몇몇이 발을 헛디뎌 빠질 뻔했다는, 누구는 빠졌다는 소문이 흉흉했던 '아현호프'의 어둡고 눅눅했던 화장실. 소설가 김신우를 비롯한 20대의 젊은 여성작가들은 그 화장실이 무서워 인근 '애오개' 지하철역 화장실까지 출장(?)을 다녀오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이 화장실이 왜 작품화되지 않느냐"는 우스개를 하고.
그러나 이제 거기엔 아무 것도 없다. '청년' 이도윤의 눈물도, '전사(戰士)' 김남주의 걸쭉한 욕설도, '검은 야생마' 조태일의 전설적 폭음도, 5000원 짜리 과일안주도, 삐걱대는 문을 단 냄새나는 재래식 화장실까지도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다. 아현호프가 있던 장소엔 폼 나는 대형 통유리의 '현대자동차서비스'가 들어섰고, 화장실은 수세식 좌변기로 바뀌었다.
그렇다고, 문인들은 '아현호프'를 영영 잊었는가? 천만에다. <관촌수필>의 대문장가이자 아현호프의 부침(浮沈)과 함께 한 이문구(전임 작가회의 이사장)의 "지게꾼밥집 같지만, 안 오고는 못 배겨낼 끈덕진 정(情)이 여기 있다"라는 말을 기억하는 시인과 소설가가 단 한 명이라도 있는 한, '아현호프'는 '추억한다는 것의 따뜻함'을 상기시키며, 작가들의 가슴 안에서 언제나 건재(健在)할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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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인터뷰] 인사동 <시인학교> 교장 정동용
- "술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물" | |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hmynews.com%2Fdown%2Finarticle%2F020206_lee_55.jpg) | ⓒ 오마이뉴스 이종호 |
문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있는 인사동 <시인학교>의 정동용(42) 교장이 잠시 짬을 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었다.
-술집주인이기 이전에 등단한 시인이라고 알고 있다.
"91년 무크지 <한길문학>에서 발행된 18인 신작시집 <그대들 사는 세상>에 '손님은 돈' 등을 발표하며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렸다. 거참, 생각해보니 벌써 10년이 넘었네. 근데 이거 시는 안 쓰고 매일 술에만 절어서 살고있으니..."
-특이한 상호 덕택에 일어난 에피소드는?
"예술고등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하는 딸을 가진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우리 딸이 발레뿐 아니라 문학에도 소질이 있는데, 그 학교는 입학금과 등록금이 얼마나 되냐'고 그러더라(웃음)."
-15년째 인사동에서 장사하고 있다. 경쟁업체인 술집 말고, 추천할만한 밥집은?
"된장비빔밥이 맛있는 <툇마루>, 올갱이무침과 더덕구이가 일품인 <풍류사랑>, 칼칼한 생태찌개가 입맛을 돋우는 <부산식당>이다. 거기서 1차로 식사하고, 우리 가게로 2차를 오는 작가와 화가들이 가끔 있다."
-문인들이 <시인학교>를 자주 찾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익숙하고, 편안해서 그렇겠지. 문인들의 경우는 꼭히 약속을 정하지 않더라도 동료문인들과 반갑게 조우할 수도 있고, 독자들은 책으로만 대하던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같은 것도 있을테고."
-동료문인들을 상대로 한 것이니, 외상도 거절 못할 것 아닌가?
"80년대엔 외상 때문에 망할 뻔도 했다. 누가 외상을 주로 했느냐고? 그 사람 체면을 생각해서 그것까지야 말할 수 없지(웃음). 시를 좋아하고, 시 쓰는 사람들이 좋아서 시작한 장사다.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어려운 시절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hmynews.com%2Fdown%2Finarticle%2F020206_lee_54.jpg)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ohmynews.com%2Fimages%2F00.gif) | ⓒ 오마이뉴스 이종호 | -흐뭇했던 순간도 많았을 것 같다.
"92년엔 손님들이 남긴 글을 모아 <시인학교>라는 제목으로 3권의 낙서시집을 내기도 했고, 전시공간을 마련하지 못한 화가들을 위해 무료대관 전시도 수 차례 했다. 물론 그림이 많이 팔리진 못했지만(웃음). 돌아서 생각하면 그런 기억들이 나를 미소짓게 해주는 것 같다. 4월에 이재무를 필두로 앞으로는 시인들이 자필로 쓴 작품을 전시하려고 계획중이다."
-<시인학교>에서 술 매너가 가장 좋은 손님은 누군가?
"포항제철 동료였고, <대학일기>를 낸 공광규(시인)다. 지금은 금융노련에서 일하고 있는 걸로 안다. 경희대 강사로 나가는 맹문재도 깔끔한 매너를 가진 신사다."
-세상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술은 사람과 사람의 대화를 이어주는 매개물이다. 대화의 대원칙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아닌가? 아무리 취해도 자신의 의견만을 막무가내로 내세우지 않았으면 한다. 비단 술자리에서만이 아니라, 세상살이의 태도도 그러해야 하지 않겠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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