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뉴라이트식 식민사관으로 무장
홍범도장군 존영
나는 40년을 역사 교사로 재직하고 얼마 전에 퇴직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생각도 못 했습니다. 요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일본과 관련된 일들이 나를 몹시 분노케 합니다. 특히 최근 정부의 행태나 윤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뉴라이트 식민사관으로 무장한 역사전쟁의 전위부대이자 전사와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
매천 황현 선생은 1910년 8월 조선이 망한 것을 거의 한 달 뒤에 알았습니다. 아마 나라가 망했음에도 크게 슬퍼하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나라의 녹을 받고 머리에 먹물이 들은 사람들 누구도 죽은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서 나라도 죽어서 선비들의 명예를 지키겠노라고 절명 시를 쓴 후 목숨을 끊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은 재산과 가족을 비롯한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며, 독립운동은 죽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을 경중으로 나눌수 없지만, 그 중의 으뜸은 항일무장투쟁이고 바로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전투와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전투입니다.
홍범도 장군의 삶이 독립운동의 역사
내가 홍범도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을 때는 초등학교 3. 4학년 경입니다. 그 당시 도덕책에 홍범도 장군 관련 교과 내용이 있었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함경도에서 포수 생활을 하셨으며 워낙 실력이 뛰어난 명사수여서 호랑이를 잡을 만큼 용맹하고 담력이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장군은 훗날 구식 소총과 죽창으로 무장한 독립군을 이끌고, 신식 포탄과 개인 화기로 무장한 일본군을 맞아 봉오동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내용입니다. 홍범도 장군 없이 봉오동전투의 승리를 말할 수 없습니다. 장군은 청산리전투도 깊게 관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홍범도 장군 삶이 독립운동의 역사였습니다.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한 장면 (일본은 신식 무기로 무장한 월강추격대를 필두로 독립군 토벌 작전을 시작하고, 독립군은 불리한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봉오동 지형을 활용하기로 한다.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비범한 칼솜씨의 해철(유해진)과 발 빠른 독립군 분대장 장하(류준열) 그리고 해철의 오른팔이자 날쌘 저격수 병구(조우진)는 빗발치는 총탄과 포위망을 뚫고 죽음의 골짜기로 일본군을 유인한다. 계곡과 능선을 넘나들며 귀신같은 움직임과 예측할 수 없는 지략을 펼치는 독립군의 활약에 일본군은 당황하기 시작하는데... 1920년 6월, 역사에 기록된 독립군의 첫 승리 봉오동 죽음의 골짜기에 묻혔던 이야기-영화사제공)
나라를 잃고 타국에서 독립운동을 한다는 것
원칙적으로 모든 국가는 자국의 영토 내에 다른 나라의 군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설령 군대를 인정한다 해도 원칙적으로 주둔 국가의 지휘를 받아야 합니다. 임시정부도 그랬습니다. 당시는 중국의 도움이 없으면 우리 독립군은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우리 독립군이 활동할 수 있었던 곳은 공산주의 소련과 중국뿐이었습니다.
악조건에서 독립운동해야 했던 장군에게 최근 정부는 자유시참변에 연루되었다고 억지를 부립니다. 하지만 많은 역사학자가 주장하고 학계가 인정하는 바와 같이 “홍범도 장군은 러시아 적군의 독립군 진압 과정에 개입하지 않고 부대를 다 철수 시켰다."며 "홍범도 장군을 자유시참변의 '가담자'라고 보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 정부는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라서 육사에서 기리는 건 부적절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홍범도 장군이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이념적 판단보다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것만이 독립운동을 지속할 유일한 동아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홍범도 장군이 사회주의에 가담한 시점은 김일성의 공산당과는 전혀 관련없는 시기라는 학계의 주장을 감안한다면, 홍범도 장군을 북한의 공산주의와 연결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입니다.
홍범도장군의 생애(kbs1 뉴스 갈무리)
뉴라이트 그들이 독립투사의 희생을 알기나 할까?
최근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해괴한 논리로 일본 침략의 역사를 지우려 하는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만주의 혹독한 추위와 한 줌의 곡식으로 버티며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몸을 바쳤던 독립투사의 희생을 알기나 할까요?
정부는 무의미한 역사와의 전쟁을 멈추길 바랍니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 역사에서 사회주의 투쟁을 빼고 나면 그야말로 일본사의 지역사인 조선사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식민지근대화론입니다. 사회주의를 우리 역사에서 제거하면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1926년 6.10만세 운동, 광주학생의거, 신간회도 교과서에서 빠져야 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전투와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전투는 우리 민족의 자긍심이며 역사에 남을 쾌거입니다. 독립 영웅들의 흉상을 옮긴다는 말을 하지 말고 오히려 옮기겠다는 그곳에 홍범도 장군의 전신상을 세우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독립군을 예우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길이며 국가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입니다.
정용택 전국역사교사모임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