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아와 밀라노여행1 - 비스콘티성을 보고 파비아대학 페트라르카를 회상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061424E5005F9C030)
우리 일행 4명은 오늘 아침에 스위스 루가노에서 코모를 거쳐 밀라노 에 도착해서는
호텔에 배낭을 맡기고는 동북쪽으로 옛날 성곽 도시 베르가모 를 다녀온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2ACF485005FD6608)
동북쪽의 베르가모를 보고는 기차를 타고 밀라노에 도착하자말자 이번에는 서남쪽으로
예술과 학문의 도시 파비아 를 보기 위해 다시 기차를 타는 데.....
![](https://t1.daumcdn.net/cfile/cafe/1340934D5005FDF604)
우선 벽에 붙어 있는 노랑색 출발시간표를 보니 17번 플랫폼에서 16시 05분에 출발하는
리보르노 LIVORNO 가는 기차를 타면 되는데 30분 가량이 걸린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5AAE4E5005F9C333)
이 기차는 등급이 IC (인터 시티) 인지라 EC (유로 시티) 처럼
유레일 패스 를 가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좌석을 예약(구입) 해도 되고 안해도 되지만, 짧은 거리는 그냥 타도 무방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57D74E5005F9C433)
6인실 컴파너먼트에 앉으니... 기차는 30분 가까이 들판을 달려서는 16시 33분에
파비아 Pavia 에 도착하는데 택시를 타니 단테광장 Piazza Dante 과 카스텔로 광장을 지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36914B5005F9C739)
비스콘티 성 까지 6유로가 나오니 우리 일행 4명으로서는 버스비와 비슷하네!
성 앞은 공원으로 꾸며 놓은지라 잔디밭과 벤치에는.....
![](https://t1.daumcdn.net/cfile/cafe/170BAD4B5005F9C803)
처녀들이 선탠을 하거나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벤치에 앉아서
오후 한 때를 즐기는 여유로운 모습을 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03BEA4B5005F9C938)
예전에는 일본의 성들 처럼 성을 지키는 1차 방어선이었던 성을 둘러싼 해자 는
오랜 세월이 흐른 탓인지 물이 말라버려 잔디가 자라는 데.....
![](https://t1.daumcdn.net/cfile/cafe/123C794B5005F9CA33)
붉은 벽돌의 옛 성 은 수리중 인지 아님 월요일이어서 문을 닫은건지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게 아쉽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3E3B4B5005F9CB36)
여기 비스콘티 성 Castello Visconteo 은 밀라노의 통치자 비스콘티 의 명으로
1,365년에 건축된 벽돌이 겹겹이 쌓인 성으로 시립박물관이 있다고 하네...
![](https://t1.daumcdn.net/cfile/cafe/170BD64B5005F9CC03)
이 도시 파비아 Pavia 는 로마시대 군사 거점으로 중세에 자유도시로 발전했으며
11세기에 파비아 대학 이 설립되어
레오나르도 다빈치 와 페트라르카 도 수학했다고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07ED4B5005F9CE06)
14세기에 밀라노의 통치자 비스콘티가 의 지배하에서 학문이 번성했으나...
16세기 이후 이탈리아에까지 손을 뻗친 스페인의 통치를 받았으며!!!
![](https://t1.daumcdn.net/cfile/cafe/1860754E5005F9CF2F)
그 후에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고통을 당했기에
여기 파비아는 훗날 이탈리아 통일운동 이 거세게 타올랐던 도시이기도 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6A674E5005F9D029)
그러니까 1,515년에 프랑스의 왕이 된 프랑수아 1세 가 북이탈리아를 침공해
밀라노와 이 도시 파비아를 장악 하니.....
![](https://t1.daumcdn.net/cfile/cafe/2060284E5005F9D135)
이에 로마 교황 클레멘스 7세가 프랑스의 세력 확대를 근심하여
독일 황제 카를 5세를 충동질하여 서로 이간질 시킨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058D64E5005F9D231)
그 충동질에 넘어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 가 북이탈리아에 군대를 파견하니
프랑스와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서는.....
1,525년에 여기 파비아 전투 에서 프랑스의 프랑수아 왕은 패배하고 포로 가 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66FD4E5005F9D32C)
이에 밀라노는 독일 지배하에 들어가는 데 황제가 오스트리아는 동생에게
스페인, 네델란드, 나폴리와 더불어 밀라노를 아들에게 물려주니 파비아는 스페인령 이 되는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5F7B4E5005F9D431)
1,525년 파비아 전투 는 참전한 병력의 수가 적어 프랑스군이 2만 4천에
독일이 2만3천명을 참전시켰다는 데,
당시는 오늘날곽과 같은 징병제가 없어 왕이 개인 돈으로 용병 을 고용하였단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58E74E5005F9D531)
스위스인 용병을 거느린 프랑스왕 프랑수아가 북이탈리아에서 남진하여
독일측 6천명의 수비대가 지키는 파비아를 포위 하자
독일측 이탈리아인 용병과 스페인군이 프랑스군을 역 포위 한 전투였다고 하네!
![](https://t1.daumcdn.net/cfile/cafe/1163444E5005F9D52F)
당시에는 국민개병제하의 징병제가 없어 왕이 독일, 이탈리아인이나 스위스인 용병을 고용 하였다고 하니
국가의 군대라기 보다는 "왕의 개인 군대" 라고 보는게 옳겠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62374E5005F9D82F)
제3차 십자군 전쟁에 영국왕 리차드, 프랑스왕 필립과 더불어 참전한 독일왕의 대군은
프리드리히 왕 이 1,190년 터키 킬리키아의 강을 건너다 익사하자 해산된 이유이기도 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73244E5005F9D926)
그러니까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한 신의 전쟁이라는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군대로서는 당장 행군 비용과 전투비용.....
![](https://t1.daumcdn.net/cfile/cafe/1164864E5005F9DC2E)
그리고 다달이 월급을 줄 왕이 없으면....
한시도 유지되지 못하는 "용병의 한계" 인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61654E5005F9D930)
훗날 로마 교황이 프랑스와 손을 잡자 카를 5세는 군대를 가톨릭의 도시 로마 로 진격시키니...
독일인 개신교도 용병 란츠크네흐트 들은 종교적 원한도 있어
재산 약탈로도 모자라 로마 부녀자들을 겁탈하고 학살 하였던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55AF44E5005F9DA32)
용병제도가 무너지는 것은 훗날인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 일어나 프랑스 왕의 군대가 흩어진후
혁명의 전파를 염려한 이웃나라들이 연합해 프랑스를 침략해 오니....
![](https://t1.daumcdn.net/cfile/cafe/1858D74E5005F9DB32)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및 러시아등 여러나라 군대의 침략으로 부터
조국인 프랑스 내나라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 인들이 자발적으로 군문에 참가하면서 징병제도가 시작 되었던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161DC495008A1FF0B)
다시 지도를 보며 또 행인에게 물어서 골목길을 7~8 분을 걸으니 조그만 광장이 보이고
한 건물이 길게이어지는 데, 바로 "파비아 대학" 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5F514C5005F9DD2E)
![](https://t1.daumcdn.net/cfile/cafe/175B884C5005F9DE31)
파비아 대학 Universita di Pavia 은 볼로냐나 파리 처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의 하나로
현재 보이는 대학 건물은 14세기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859254C5005F9DF2D)
![](https://t1.daumcdn.net/cfile/cafe/1361BC495008A20014)
그러니까 밀라노 공작 인 비스콘티 가문의 갈레아초 2세 가 파비아를 지배하게 되면서....
이 도시 출신 시인 페트라르카를 후원 하는 한편 파비아 대학 까지 설립했던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52C54C5005F9DF34)
대학교 앞은 바로 도로로 버스정류장도 있는 데, 자전거로 등하교 하는 학생들을 보며
교문으로 들어가니 마주치는 동상 은 누구일러나?
![](https://t1.daumcdn.net/cfile/cafe/165F574C5005F9E02E)
파비아 대학 Universita di Pavia 은 볼로냐나 파리 처럼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의 하나로
현재 건물은 14세기에 건축되었다고 하는데 보자니 운동장은 없는 모양이네?
![](https://t1.daumcdn.net/cfile/cafe/206C22495008A2000A)
![](https://t1.daumcdn.net/cfile/cafe/147073495008A20111)
정문인지 측문인지 모를 문으로 대학교 내부로 들어가니 수많은 이들의 조각상 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을 보는데 이 대학 출신 유명인사 들인 모양이네?
![](https://t1.daumcdn.net/cfile/cafe/20423D4A5008A20207)
*** 대학 구내 벽에 낙서처럼 생긴 이 조형물은 해시계 같네? ***
대학 구내에 역사박물관이 있다고 들은지라.... 그러면 레로나르도 다빈치 와 인문주의자
시인 페트라르카 의 흔적을 볼 수 있을까 하여 이리저리 찾아다녀 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5FCD4A5008A20305)
페트라르카 는 단테 처럼 피렌체에서 추방된 서기의 자식으로 1,304년 토스카나의 아레초 에서 출생해
볼로냐대학에서 공부한후 프랑스 아비뇽 교황청 에서 자리를 얻는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40014A5008A2030F)
이무렵 성 키아라 교회에서 만난 라우라 라는 처녀에게 반해 연애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라틴어 서사시 아프리카 와
사랑의 빛과 어둠을 표현한 서정시 “칸초니에레” 를 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355CA4A5008A2040E)
한편 키케로의 연설문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 을 발굴하면서 인문주의자로 되어 갔는 데,
1,348년 흑사병 으로 라우라가 죽자 심리적 갈등을 격는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930554A5008A20509)
그의 제자 보카치오 가 피렌체를 휩쓴 흑사병의 참혹함을 격으며 쓴
작품이 바로“데카메론”인 데....
그는 교황과 불화하여 아비뇽을 떠나 비스콘티가의 초빙 으로 1,361년에 파비아 로 온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6777A4A5008A2060D)
만년에 파비아 근처 알쿠아 에 은거하며 단테의 신곡과 유사한“승리”를 집필했는데
저 비스콘티가의 갈레아초 2세가
메디치가 처럼 이런 "인문주의자를 후원" 했던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01B374A5008A20711)
그 갈레아초의 아들 잔 갈레아초는 1,395년에 신성로마 제국 황제로부터 정식으로
밀라노 공작 겸 파비아 백작 지위를 받아 번영했으나 오래가지는 못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1248AA495008A2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