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아주대학교 심리학과에 10학번으로 편입학한 김경한입니다.
편입시험을 앞둔 수험생 여러분들께서는 합격자의 전적대와 어느대학 합격여부가 가장 흥미로운 정보겠죠?
자기와 비슷한 상황에서 합격한 사람의 글이 가장 가슴에 와닿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극을 줄 테니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서 스스로가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공부도 못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저의 글이 그 분께 공감을 불러오고, 합격으로 이끌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수능 : 외국어영역 8등급 (백분위 하위 10%)
전적대 : 순천향대학교 법학과 1학년 수료 (평점 3.91)
열린사이버대학교 법무행정학과 2학년 수료 (평점 3.79)
학점은행 경영학 학사 (평점 3.68)
지원·합격여부 : 고려대 심리학과 - 불합격
서강대 심리학과 - 불합격
성균관대 심리학과 - 불합격
한양대 실내환경디자인학과 - 불합격
중앙대 심리학과 - 불합격
건국대 철학과 - 불합격
동국대 법학과 - 불합격
홍익대 법학과 - 불합격
아주대 심리학과 - 최초합격 (등록)
숭실대 법학과 - 최초합격
불합격 빨간불에 눈이 아픈데요...ㅋㅋㅋ 합격한 학교 빼고는 다 불합격하거나 머나먼 예비번호 받았습니다ㅠㅠ
사실 더 유명한 학교의 합격을 기대했는데, 제가 생각한 것보다 편입의 문은 좁았습니다.(제가 못한 탓이 크죠!)
시험을 보러 이학교 저학교 다니고 가채점을 하면서, '혹시 올킬?'하는 생각에 가톨릭대 심리학과, 국민대 법학과에
지원하지 않은 것을 며칠간 후회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심리학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에 아주대학교에 입학하고
성적장학금을 좀 받아보고자 합니다^^
공부법은 저보다 더 열심히 공부한 제 동기, 선배님들이 잘 설명해드린 것 같습니다.
제가 지난 1년간 했던 것은 ①수업시간에 집중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기 ②배운 것을 혼자 공부할 때 적용하는 연습하기
③예습, 복습, 어휘시험 꼭 하기(수번 반복하면 효과좋음) ④강의후기는 꼭 써서 피드백하기 ⑤공부하는 생활 꾸준히 반복하기입니다.
이 글을 보시기 전 몇 개의 합격수기를 읽고 아픈 머리를 붙잡고 계실 여러분께 저의 과거를 에세이 형식으로 들려드릴까 합니다.
현재 자신에게 열등감을 갖거나, 스스로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정하거나, 자신의 안타까운 상황을 부모님의 탓으로 돌리는 학생들이
‘쟤도 합격했는데 나라고 왜 못해?’라는 생각과 함께 자신감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을 발판으로 합격까지
하신다면 저는 제가 글쓴 것에 대해 정말 보람을 느낄 것 같습니다.
목차
1. 가난함보다 무서운 소통의 부재
2. 잠깐의 행복, 다시 터널 속으로...
3. 엄마, 나 실업계로 전학갈래요ㅠㅠ
4. 나라고 왜 못해? 나의 꿈 찾다
5. 도전과 실패. 또 실패. 또 실패.
6. 계속되는 시행착오, 첫 성공
7. 그리고 현재
8. 고마운 사람들 (편지)
에세이
1. 가난함보다 무서운 소통의 부재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이혼하셨고, 저희 집엔 아버지와 누나, 저까지 세 가족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직업이 매번 바뀌셨습니다. 하루종일 집에 계신 적도 있었고, 밤늦게 전화로 “먼저 자라.”고 말씀하시고 아침에 오신 적도 있었습니다. 아빠가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면, 아빠가 전화기 밑에 넣어놓은 2500원으로 짜장면을 시켜먹거나, 혼자 라면을 끓여먹곤 했습니다.(9살부터 혼자 라면을 끓여먹었는데, 언제는 냄비 뜨거운 줄 모르고 그냥 내려놓았다가 바닥 태워먹은 적도 있고, 짜파게티 조리법 몰라서 라면처럼 끓여서 혼자 맛없다고 투덜대며 먹은 적도 기억이 있네요ㅋㅋ) 아무래도 아버지가 무뚝뚝하시다보니 저와 누나는 세심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전 꽤 지저분한 아이였습니다. 머리는 7살 때부터 혼자 일주일에 1~2번 정도 감았는데, 몇 마리씩 이가 나와서 손톱으로 꾹 눌러 죽이기도 했구요.(이를 죽이면 똑 소리가 나는데 정말 재밌었어요.) 귀는 할머니 올라오실 때만 파서 항상 그득그득했고, 응가도 잘 못해서 변비도 달고 살았죠. 또, 바지는 없는데 키는 점점 커서 나중엔 칠부바지가 되고, 신발도 없는데 발은 점점 커서 아플 때까지 신다가 신발이 터져 시원함을 느끼기도 했어요. 4학년부터는 몇 달에 한 번씩 엄마가 찾아와 기겁하시고 옷사주시고 스카이락(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밥도 사주시기도 했지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가난함이 아니라 부모님과의 소통 부재였습니다. 아버지께 질문을 하고 대답이 오면, 아는게 없는 어린아이는 “왜~?, 왜~?”하고 물어봅니다. 그럼 아버지가 인상쓰시며 “쓰읍~”하시면 한방에 조용해지곤 했습니다. 그것 때문인지 눈칫밥 때문인지 저는 누군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러려니’하고 넘기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상대방이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죠. 소통의 부재는 저에게 수동적인 삶을 살게 하고 무식을 불러왔습니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소릴 듣고는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께 물었죠. “아빠, 훌륭한 사람이 뭐야?”, “대통령.” 그 뒤부터 누군가가 꿈을 물어보면 대통령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4학년 때 그 꿈은 접었지만요.^^ 그 밖에도 ‘검사’를 칼싸움하는 검사로 알았다든지, 'me too'를 ‘me to’로 적어 놀림을 받은 등... 심지어는 고등학생 때 배가아파 조퇴하면서 선생님께 소아과 가야하냐고 여쭈었다가 너가 어린애냐고 해서 부끄러워하기도 했죠.(어렸을 때 아프면 항상 병원이 아닌 시간이 치료해줬거든요.) 정말 가지가지 몰랐습니다. 철부지 때라 제가 살았던 방식에 대해 불행하단 생각은 전혀 못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인생이 뭔지 공부가 뭔지 학교가 뭔지 얘기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들긴 합니다.
2. 잠깐의 행복, 다시 터널 속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가 하시는 일이 잘 되었는지, 있던 집을 팔고 경기도 광주에 있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갔습니다. 거기서 8개월을 보내고 다시 경기도 용인의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갔고, 거기서 새 엄마와 새 동생이 생겼습니다. 갓 중학생이 됐을 때였는데, 그 기간 동안 학원도 다녀서 성적도 많이 좋아졌고, 내 방도 생겼고, 무엇보다 맛있는 엄마밥을 먹고(아침에 삼겹살을 처음 구워먹었는데 정말 환상이었어요.ㅠ) 누군가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서 많이많이 행복했습니다. 그것 또한 8개월. 어느 날 아버지와 새엄마가 대판 싸우시더니, 새 엄마는 새 동생을 데리고 다시 집을 나가셨습니다. 며칠 뒤에 아버지께선 사무실을 차리고 싶은데 집이 더 좁아질 거라면서,(엄마의 필요성을 느끼셨는지도 모르죠.) (친)엄마한테 갈 생각 없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렇게 누나와 엄마 곁으로 갔는데, 엄마는 빚더미에 거동이 불편하신 외할머니를 부양하며 살고 계셨습니다. 그나마 넓은 안방을 저와 누나가 함께 썼고, 외할머니는 작은 방으로 옮기셨습니다. 엄마는 저와 누나에게 못해준 7년이 너무 미안하다며 저희가 하고싶은 대로 하도록 허락해주셨습니다. 동시에 엄마는 보다 많은 돈을 버셔야 했기 때문에 아침 일찍 나가고 새벽늦게 들어오는 일과를 매일같이 하셨습니다. 철없던 저는 하루종일 PC게임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 놀면서 중학생 시절을 허비했습니다. 엄격한 아빠와 살 땐 7시면 벌떡 일어나 시계를 깨우고, 눈치보며 적당히 컴퓨터하고 집에도 일찍 들어오곤 했는데, 마치 그 날의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놀았던 것 같습니다. 성적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매번 보는 시험 점수에 자신감도 같이 떨어졌습니다.
3. 엄마, 나 실업계로 전학갈래요ㅠㅠ
중학교 2, 3학년 성적은 정말 별로였으나 1학년 때 성적이 괜찮아서 다행히 인문계에 진학할 수 있는 내신점수가 나왔습니다. 그렇게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는데, 연합모의고사에서 전교생 620명 중에 512등으로 입학하면서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어진 시간도 다 채우고 최선을 다해 찍었는데(?) 거의 꼴찌니까 말이죠. 첫 중간고사에서도 평균 7등급을 달성하면서 정말 제가 바보로 느껴졌습니다. 바보는 되기 싫어서 엄마한테 실업계로 전학가고 싶다며 울고불고 떼를 썼습니다. (결국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 한 마디에 조용히 인문계 다녔습니다.ㅋㅋㅋ) 이 때 ‘학습된 무기력’을 앓았던 것 같습니다. ‘1등과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달랐고, 이제는 뒤집을 수 없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리치료사, 선생님, 검사... 해보고 싶은 어떠한 직업도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공부를 잘 해야 하는지부터 찾았고, 아무 대학교 졸업만 해도 자격증이 나온다는 사회복지사를 꿈이라는 바구니 안에 담았습니다.
4. 나라고 왜 못해? 나의 꿈 찾다
고등학교 때 엉겁결에 사물놀이 동아리에 가입하고, 열심히 참여하면서 처음 여자친구도 사귀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잘하던 친구였기에 공부방에 자주 다녔는데, 그 친구 보려고 공부방에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다보니 책만 보는데도 점수가 점점 오르고, 3~4등급이 성적표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꼴찌가 사법고시 합격했다는 이야기도 책으로 나오는데, 나라고 왜 못해?’ ...학습된 무기력을 벗어던지고 자신감을 되찾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공부에 맛을 들이려던 찰나에 외할머니께서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치매 증상을 보이셨습니다. 더 이상 집에 홀로 둘 수 없는 상황에서, 돈버느라 바쁜 엄마 대신 매일 4시 쯤 정규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서 할머니를 챙겨드렸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중학생 때부터 이동, 식사 등 많은 일을 거들어드렸기 때문에 힘든 점은 없었지만 잔심부름이 잦고 이것저것 말씀을 많이 하셔서 장시간 무언가를 하진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나가 기숙사에서 돌아왔고, 저는 중간고사 기간이라서 누나한테 할머니를 맡기고 공부방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전화를 받고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수면제를 안준다고 방에서 홀로 나오시다가 넘어지신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119를 불러 병원으로 옮겼고, 병원에서는 엉덩이뼈가 으스러져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까운 평촌 한림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시고 입원하셨습니다. 저희 가족은 할머니의 수술이 최종 마무리될 때까지 돌아가면서 몇 주간 병상을 지켰습니다. (병실침대 옆에 앉아서 기말고사 공부한다고 사회문화 교과서 보던 기억이 나네요.) 할머니께서 재활치료를 힘들어하셔서, 저희 엄마는 할머니를 요양원에 입원시켜드리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고3이 된 저는 다시 법조인의 꿈을 가지고 대학교 입시에 대한 정보를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내신과 수능의 비중이 적은 적성검사 수시전형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적성검사를 시험보는 학교들을 목표로 공부를 했습니다. 문제집을 한 20권 풀었는데, 공부법을 몰랐기 때문에 그저 풀고 채점하고 풀이보고... 효율적이기보다는 무식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10월 18일 경기대를 끝으로 적성검사 공부를 끝내고 최저등급을 위해서 수능 언어와 사회탐구영역을 공부했습니다. 최저등급을 채우지 못해 기회조차 박탈당했지만, 물오른 수리찍신으로 순천향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5. 도전과 실패. 또 실패. 또 실패.
적성검사로 가톨릭대, 경기대 등의 수도권 학교를 원했는데 순천향대라니.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원하던 법학을 배울 수 있었고, 친구들도 좋았고, 더욱이 학생 복지는 어느 학교 못지않게 만족스러웠습니다.(현재도 학교 스쿨버스 운행이나 등록금 인하율 등 혜택이 좋다고 자부합니다!) 또한 장학금도 받았습니다. 4등까지 주는 장학금에서 성적이 5~6등밖에 안됐는데, 봉사활동 8시간 내고 신청한 게 저밖에 없어서 4등으로 겨우 받았습니다. 2학기에는 틈틈이 도서관에서 논술에 관한 책 빌려서 읽고 인하대와 경기대에 논술전형으로 시험도 봤었어요.(당연히 처음 써보는데다 준비도 제대로 못해서 떨어졌죠.) 그래도 공부를 더 타이트하게 해서인지 학교시험에서는 3등 성적장학금 받았습니다.
하지만 공부보단 놀았던 기억이 10배 이상 더 많았습니다. 1학년을 마치고 더 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요. 특히 편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등록금 고지서가 나올 때면 ‘340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똑같이 지불하는데 나는 고려대와 같은 취급을 받는가. 같은 기회를 얻는가.’하는 생각에 한탄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입시에 대한 미련, 학력에 대한 욕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1학년밖에 못 마쳤기 때문에 지원자격도 없었고, 영어의 ‘ㅇ’자도 몰랐으니 누군가가 봤을 땐 무모한 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중 사이버대학교는 2학년 편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당장 가장 저렴한 사이버대학교에 등록하고 순천향대를 자퇴했습니다. 서울로 올라와 모든 연락을 끊고 건대근처 작은 학원엘 등록했는데, 4월에 덜컥 여자친구가 생겨버렸습니다. ‘안되는데... 안되는데...’ 머리로는 알면서도 온 정신을 여자친구에게 쏟았습니다. 그렇게 주말데이트와 독서실데이트를 병행하면서 편입학원에서도 꼴찌를 벗어난 적이 몇 없는 것 같습니다. 도저히 점수는 오르지 않고 지치고... 결국 여름만에 편입을 포기했습니다. 갈 곳도 없으면서.
6. 계속되는 시행착오, 첫 성공
리딩만 있는 편입영어를 공부하고보니, 스피킹, 리스닝도 해보고 싶어졌고, 외국에도 나가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학연수나 갈 심산으로 집 가까이 있던 국가보훈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여자친구도 저와 도보거리 20분 정도 떨어진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이 때도 영어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알바 끝나고 여자친구 데리러가는 동안에 얇은 영어소설을 읽었습니다.(읽히든 안읽히든 그냥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몇 달 알바하고 그만둔 뒤에, 여자친구 알바하는 4~5시간 동안 근처 독서실에 앉아서 영어지문 아래에 한글로 번역하는 형식으로 된 공무원영어책을 1권 끝내고, 좋다고 소문났던 토플 해커스 베이직리딩을 2번 정도 풀었습니다. 그리고 알바와 용돈으로 모은 돈으로 순천향대에서 만난 친구와 서울 종로에 자취방 잡고, 자금상황에 가장 싼 곳 찾아 온 곳이 이정남편입학원이었습니다.
이정남편입학원을 다니는 몇 달 동안, 작년에 다녔던 몇 달 간의 타학원 수강료가 아깝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수업도 항상 +@였습니다. 수업 때마다 상위권의 Mind와 틀을 알려주시고, 잘못된 사고방식과 비합리적인 행동 등을 지적해주시는 선생님은 제가 자기계발서에서 읽던 모델이셨습니다. 한눈에 사로잡혀 엄청난 집중력으로 수업을 들었습니다. 선생님과는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대화를 나눴는데, 선생님께서 전적대가 어디냐, 편입영어가 처음이냐, 어렵진않냐, 라고 물으셨는데 왠지 다른 선생님께 배웠다고 하기 죄송스럽고, 어렵다고 하면 선생님께서 어렵게 가르쳤다는 대답으로 비출까봐 아니라고 얼버무렸던 기억이 납니다^^;;; 본의아니게 처음부터 거짓말을 해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ㅠ.ㅠ
5월 첫 고려대 모의고사에서 45등을 하고 스터디 E조에 들어갔습니다. 10% 안에 든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았습니다. 작년에 W학원을 한 달 다녔는데 그땐 주로 뒤에서 30등을 벗어나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자꾸 저의 과거 점수가 오버랩되면서 ‘내 점수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아냐, 선생님 기대에 부응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강박관념이 되었는지 결국 6월에 점수가 대폭락하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그 이후에 마음을 비운 뒤 7월 시험에선 5월보다 더 올라가고, 8월에 또 대폭락하고, 참 일정한 주기와 등수로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9월부터 배치고사가 시작됐고, 11월까지도 오르락내리락하다가, 12월 쯤 되어서야 2~30등 대의 일정한 점수를 받고, 타 학원 전국모의고사에서도 백분율 16%를 받으면서 이게 ‘내 점수구나.’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종강이 왔고, 저는 열 군데의 원서를 넣고, 평상시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 시험을 보러 다녔습니다. 최종적으로 상위권 학교엔 모두 떨어졌으나, 그래도 아주대학교와 숭실대학교는 최초합격을 하면서 편입도전에 마무리 도장을 찍었습니다^^
7. 그리고 현재
저보다 어려운 상황에 계셨던 분도 많을테고, 저만큼 영어 못했던 분도 많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 처한 대부분의 편입준비생분들은 저처럼 과거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뭐 어때~ 지금부터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일 겁니다. 편입에 도전했다는 자체가 본인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한 번 해 볼 의지가 있다는 증거니까요. 그렇지만 수험생활을 하면서 긍정의 힘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꽤 좋은 대학교 출신, 토익에서 괜찮은 점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 외국 나가본 경험 있는 사람, 초중고를 학원으로 메워서 기본적인 영어실력이 있는 사람 등등 괜찮은 자원을 가지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잘 하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내 과거가 싫어지고 학원 갈 돈이 없으셨던 부모님들이 원망스러우면서 좌절하는 순간이 올 겁니다. 그리고 이런 좌절을 겪으면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역시 난 안돼.’, ‘저런 사람들을 어떻게 이겨.’ 생각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그것은 그저 ‘학습된 무기력’에 불과합니다. 이솝우화 보면 거북이도 토끼를 이겼잖아요. 확률에 매달리지 마시고, 가능성에 매달리세요. 설령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불구하고 확률적으로 편입시험에서 떨어졌다고 해도, 분명 당신이 흘린 땀과 노력은 미래 성공의 발판이 됩니다. 저 역시 과거의 많은 실패를 겪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실패가 저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스스로가 고생을 사서 한 적도 없고, 사회생활도 많이 안해봤으니까요. 하지만 앞으로 많은 실패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내 인생의 황혼 무렵에는 꿈을 이뤘노라고 말할 수 있다고 또한 확신합니다.
저는 영어를 21살에 처음 배웠습니다. 형식이 있다는 것, 3인칭 단수주어가 나오면 동사에 s가 붙는다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엄청 기본적인 것들도 서슴없이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품사와 문장의 5형식을 익히고 문장구조를 이해하는 순간 영어를 정복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느 문장이 나와도 뽀갤 수 있다는 자신감. 처음 스터디카드를 적어 단어, 문법사항을 외울 때 느꼈던 놀라운 암기력, 처음 스터디 할 때의 놀라운 피드백효과. 저에게는 그 순간순간에 가장 성적이 올랐던 것 같습니다. 이 때 몇 달만 집중해도 다른친구
들 10년간 어영부영 한거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나한테도 놀라움이 올거야!’ 생각하고 쭉 공부해보세요.
제가 여러분께 이래라저래라 할 만 한 성과는 이루지 못했지만, 편입생활을 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돌아가실 많은 편입수험생분들 어깨에 손을 올릴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로 돌아가지 마세요! 인생은 항상 변하고, 도전하지 않으면 성과도 없습니다! 0승 0패보다 1승 99패가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1년 뒤 여러분의 합격소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자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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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고마운 사람들 (편지)
To. 이정남 선생님께
선생님, 정말... 선생님이 제게 주신 관심에 저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ㅠㅠ 처음 학원에 등록한 5월부터 가능성있다고 평가해주시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심어주시고, 수강후기를 통해 계속해서 피드백해주시고... 아마 그런 세세한 관심 때문에 제가 끝까지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찾아가서 이정남편입학원 뱃지 가지고싶다고 말씀드렸을 때, 흔쾌히 주셨던 거 기억나시나요? 면접 때마다 자랑스럽게 달고 가서 최초합격하고 돌아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대학원 면접이나 취업 면접 때도 달고갈지도 모르겠어요^^ㅋㅋ 비록 시험 후반에 저의 꾸준함이 제 머리 한쪽 구석에 남아있는 태만함에게 종종 자리를 내주면서 목표하던 대학교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앞으로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시작으로 더욱더 발전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선생님도 앞으로 이루고자 하시는 목표 모두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자아자 파이팅!!! 합격!!! 합격!!! 합격!!!
To. 이정남편입학원 식구들
모두 끝까지 달리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축하합니다!!! 저는 정말 묻고 싶은게 하나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다거나 조금 쉬고 싶단 생각 없으셨나요?ㅋㅋㅋ 바보같은 질문이지만 정말 매일같이 학원 나와서 수업듣고 자습하고 그 많은 분량 군말없이 소화하고... 대단하다는 생각 많이 했습니다. 이번에 책정리를 했습니다. 집에 쌓아둔 공부자료들을 몇 개 빼고 싹 다 버리니까 책장 두 칸이 비더라구요. 저는 5월부터 했으니 먼저 시작하신 분들은 얼마나 하셨겠어요. 모두가 각자 꿈 꾸고 있는 것들이 있고, 그것을 향해 달리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12월 마지막까지 달리신 분들은 언젠가 모두 꼭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하실거라고 제가 보장합니다!!!
나의 단짝 승미! 내가 꼬득여서 편입학원에 발 들이고, 정말 열심히 해서 성적도 많이 오르고 스터디까지 했는데! 편입의 바늘구멍을 통과하기엔 내 밥까지 들어있던 도시락통이 너무 컸지?ㅋㅋㅋ 너의 닭갈비 여전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걱정했는데 궁중음식연구원에 들어갈 수 있어서 정말 기뻐!!! 너는 꼭! 성공할거라는거 내가 알고 있어! 나중에 꼭 궁중요리 해줘야 해!!!ㅋㅋㅋ
그리고 근령누나, 혜진누나, 진선이누나 정말 누나들 때문에 재밌었어! 날 친동생처럼 많이 챙겨주기도 하고ㅠㅠ 우리 편입공부하면서 계획했던 맛집탐방 올해에 꼭 가자!!ㅋㅋㅋ 앞으로도 연락하고, 편입에 대한 열정 잊으면 안돼! 아 그리고, 진선이누나 숙명여대 합격한거 축하해(요)!!! 그리고... 혜진이누나 꼭 남자친구 사귀길 바라!!!ㅋㅋㅋ 참한 남자가 만났으면 좋겠구만! 연하는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내 주위에 23살 남자밖에 없는 건 정말 아쉬운 일이야ㅠㅠ 새로운 학교에서 괜찮은 형 만나게 되면 연락할게!!!!!!
그리고 스터디 함께 했던 이슬이, 승혜, 지희, 경옥이누나, 이삭이형, 주영이누나, 채원이누나, 진선이누나, 명세형, 기택이형, 제현이형, 준호형, 현박이형, 혁중이형!!!!!! 정말 내가 영어 쬐끔 늘어서 쬐끔 하는 줄 알았었는데, 여러분들이랑 스터디하면서 잘하는사람 진짜 많구나 느꼈어요! 고마워요ㅋㅋㅋ 다들 고생했구요! 스터디하면서 배웠던, 즐거웠던 기억 잊지않을게요!
그리고 또 등등 학원에서 공부하다 알게 된 소라, 수진이, 선정이, 보얀이, 다홍이, 지혜, 유미누나, 수연이, 한나, 민선이누나, 정기형, 건이형, 자익이형, 해수, 채희 등등등 아 기억이안나네 댓글로 좀 적어줘요 내이름 없다고!ㅋㅋ 되게 새록새록하네요. 왠지 수강생들 이름 적어보니까 수험생활이 재밌었던 것만 같아요!^^
마지막으로 강.동.우!ㅋㅋㅋ 나랑 많이 이것저것 한건 없지만 22살 남자가 희귀했다는 점에서 널 혼자 호명하기로 했다ㅋㅋㅋ 카투샤간다고 하더니 토익점수 모자라가지고... 사실 685점도 대단해 나한테는! 난 대학교에서 첫 모의토익 225점 맞았었거든ㅋㅋ 어쨌든 정말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줬던 너가 2관왕 했다니 역시 노력>>>>>현재성적인 것 같아! 나 아주대가면 넌 나랑 반대로 왔다갔다 통학하겠지?ㅋㅋ 수원에서 밥 한번 쏴! 나도 서울에서 밥 한번 쏠게! 그럼 입학해서도 파이팅이닷!!!
To. 수경이에게(여자친구)
편입과 강수경을 같이 떠올리면 ‘고맙다’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라! 진심으로 고마워!
수험생활을 하면서 외롭거나 걱정 없이 계속 공부할 수 있었던 건 다~ 네 덕이야! 매번 내가 성적 때문에 고민하면 내 얘기 다 들어주고 ‘이렇게 해보면 어때?’라고 말해주면서 잘 될거라고 격려해주고 응원해주고... 홍삼이랑 비타민도 챙겨주고ㅠㅠ(아무도 안주고 내가 다 먹었어!ㅋㅋㅋ) 그리고 아주대학교 시험 전날 국어사회 기출문제 같이 풀고 피드백 해줬잖아! 그것 때문에 붙은 거라고 확신해! 유형이 비슷한 건국대는 적성검사 공부했었다고 자만하게 풀었다가 바로 낙방했잖아! 그러니까 합격증 반은 너꺼야!ㅋㅋㅋ
처음 만났을 때, 정말 학교도 좋고 영어도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내가 다가가지 않았다면 분명 합격했을거야! 나 때문에 편입을 포기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많이 들어ㅠㅠ 근데, 그 때 했던 생각들 아직도 변하지 않았어!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지금까지 말했던 몇 개의 진로들! 한국거래소라든지 금융감독원! 입사한 사람들 스펙이 어쨌든 너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나보다 현명하고 똑똑하고 끈기있잖아!^^!! 과외하면서도 장학금도 매번 타고 동시에 토익공부도 하고. 정말 존경스러워!
이번 편입 합격을 기점으로 우리의 데이트일정에도 약간의 변화가 있을거야! 나는 수원으로 학교를 다니고, 너는 서울에 계속 있으니까. 또 우리 약속한 여행 가려면 나는 아르바이트하면서 돈도 모아야 하니까, 거의 주말데이트나 평일에 한번 볼 수 있을까? 그래도 난 꼭 돈 모아서 약속 지킬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앞으로 꾸준히 만나고 연락하면서 편입 준비하느라 못했던 것들 하나하나씩 해치워버리자! 올해에는 내가 받았던 것들보다 많이 줄 수 있도록 많이많이많이 노력할게! 사랑해♥
그럼 합격자수기를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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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예비편입합격생 여러분! 편입생활의 어려움을 제가 도와드릴 수 있다면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
필요하신 분은 제 아이디 오른쪽클릭해서 쪽지나 메일 보내주세요^^!!!